무영금강장의 특성은 말 그대로 최고의경지에 오르면 발출하는데 전혀 기척이 일지 않고 일단 적에게 부딪치면 강력한 위력을 일으킨다는데에 있었다. 느닷없이 쾅하는 소리와 함께 그 마인의 신형이 앞쪽으로 풀풀 날려가는 것이 보였다. 황종의는 이것을 보고 주저할 것 없이 즉시 뒤따라가며 재차 전력을 다해 그 자의 등짝을 향해 무영금강장을 격출했다. 그런데, 실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일반적으로 제아무리 공력이 강한자라도 그의 전력을 다한 일장을 받으면 거 의 치명적인 중상을 당하기 마련인데도, 게다가 그자는 순간 전혀 반격할 시간적여유가 없었음에도 일순 황종의의 눈 앞에는 하늘을 뒤덮는 듯한 거대한 검기가 휘몰아쳐오는 것이 아닌가? 그자는 발작적으로 앞으로 날려가는 그순간,찰나에 지나지 않아서 전혀 몸을 돌릴 여유도 없는 그 짧은 시간을 이용하여 뒤로 검공을 일으킨 것이었는데, 황종의는 비록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자들의 무공이 이렇게나 고강할 줄 은 미처 생각도 하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천잠사의 날개가 그 가공할 검기의 위력에 의해 갈가리 찢겨져 날 아가고 가슴이 화끈하는 느낌! 마치 자신이 일순 지옥의 아수라장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듯한 그러한 느낌에 황종의는 일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 순간의 그의 뇌리에 떠오른 것은 오직 급히 이곳을 벗어나서 목숨을 보존 해야 한다는 절절한 본능의식밖에 없었다. 그가 그 순간 의도하고 있던 무영금강장을 그자의 등짝에 격중시켰는지 어떤 지는 잘 알수가 없었다. 다만, 황종의는 거의 미친 듯이 그 자리를 빠져나왔고 그리고 전혀 뒤돌아볼 여유도 없이 전력을 다해 이곳까지 도망쳐나온 것이었다. 다행히 그뒤로는 다른 마인들을 만나지는 않았지만, 급한 마음에 미처 지혈을 하지 않은 가슴의상처는 갈수록 심해져서 지금에 이르렀다. 하남성 복우산과 이곳 석문산과는 가히 수천리의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니 그 는 최소한 하루낮과 밤을 쉬지않고 달려온 셈이었다. 하지만, 그는 무인다운 본능적인 느낌으로 안심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추 격하는 무리들이 더욱 가까워져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잇었다. 그러한 예감과 전에 마주쳤던 그 마인의 공포스런 무예에 대한 상념은 갈수록 그를 초조하게 만들고 공포의 수렁으로 밀어넣고 있었다. 백팔신마는 그가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강적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더 이상 그들을 피할 수 있는 능력이나 기력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는 결국 이렇듯 허망하게 오랫동안 쌓아올린 명성도 쓸모없이 어이없게도 삶을 마감해야 한다는 말인가? 황종의는 갈수록 현실에 대한 비감과 운명에 대한 극심한 분노와 반발을 느꼈 지만 가능한한 과거의 일을 떠올리며 초조한 마음을 달래려고 애를 썼다. 지금과같은 상황에서 격한 감정에 휘말린다는 것은 실로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황종의는 그리고 가슴의 상처를 억누르며 쉬지않고 끊임없이 걸었다. 비록 그가 걷는 속도는 전에 비하면 굼벵이처럼 느리기 한이 없었지만,그래도 그가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운명에 대해 굴복하지 않는다고 하는 처절한 의지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었다. 그는 사실 어느 한곳에 주저앉아서 당장에라도 운공조식으로 내상을 치료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도저히 그럴 여유가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거의 무의식적으로 비몽사몽간에 걸음을 옮기던 황종의는 문득 한순간 흠칫하 여 걸음을 멈추고 눈을 번쩍 떴다. 돌연 어디선가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소리는 비록 미약했지만 지금 전신의 감각에 최대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 는 그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마치 천둥소리처럼 그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그는 이어 씁쓸한 웃음을 입가에 매달았다. 이것은 결코 그가 경계하고 있던 그 마인들의 음성이 아닌 것이다. 마인들이라면 비단 이런 음성을 내지 않을뿐만 아니라 움직임에 있어서도 그 가 전혀 눈치채지 못할 만큼 기척조차 없을 것이 분명했다. 따라서, 그가 경계해야할 것은 기척이 없는 은밀한 것이지 이런 무방비한 소음은 아닌 것이며,차라리 이런 소리는 그에게 반가운 느낌을 주었다. 누구라도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면 이런 사람의 말소리는 어떤 구원의 등 불처럼 생각되기도 하는 것이다. 황종의는 잠시 생각하다가 즉시 그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내공을 가진 사람의 것이 아니어서 불과 얼마 가지 않아서 그는 곧 뚜렷해진 낭랑한 음성을 들을 수가 있었다. [......탐욕의 때는 적으나 이것을 여의는 것이 더디다.진에는 죄의 때는 크지 만 이것을 여의는 것이 빠르다.우치는 죄의 때도 크고 그것을 여의는 것도 더 디다.벗이여!법의 유쾌한 모양을 사악하게 생각하는 데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탐욕이 일어나고,이미 발생한 탐욕이 증장하는 것이다.또 법이 마음에 합하지 않는 모양을 사악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진에가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진에가 증대하는 것이다.또 바르지 못한 생각에 의해서 아직 일어 나지 않은 우치가 일어나고 이미 발생한 우치가 증장한다.......] 이것은 무슨 소리일까? 황종의는 느닷없이 이러한 소리를 듣게되자 문득 신형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거 렸다. 그는 원래 소림사에서 오랫동안 생활해왔던 사람이어서 이것이 곧 어떤 불경 에 씌여있는 구절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구절을 낭랑하게 읽고 있는 목소리는 기이하게도 다소 치기가 섞인듯 한 어린아이의 음성이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이상한 일인 것이다. 이런 깊은 산중에서 그것도 한밤중에 불경을 읽고 있는 어린아이가 있다는 말 일까? 이것은 얼핏 생각하기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잠시 머뭇거리던 황종의는 기왕에 다가왔으니 어쨌든 끝까지 다가가 보기로 결심을 굳혔다. 그리하여 그가 다시 바삐 걸음을 옮겨 거대한 원시림의 고목들이 울창한 계곡 의 모퉁이를 마악 돌았을 때였다. 문득 그의 눈앞에 희미한 등불이 나타났다. 이때 사방은 워낙에 지독하게 어두컴컴했었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그 등불을 보게 되자 황종의는 일시 눈이 부신 느낌마저 일었다. 때문에, 그가 두어번 눈을 껌벅거리고 다시 전면을 주시했을 때에는 하나의 두칸짜리 허름한 모옥이 등불아래 은은하게 드러나 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이 허름한 모옥은 두어개의 고목들을 기둥삼아서 지어놓은 집이었는데,그 형상 은 지극히 조잡하고 허술했을 뿐만 아니라 누추했다. 두칸의 방중 하나는 부엌으로 쓰이고 다른 하나는 방으로 쓰이는 것 같았는데, 지금 은은하게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는 곳은 그 방이었다. 방안에는 지금 한 사람이 불빛 아래에서 책을 읽고 있는 광경이 느껴졌는데, 예의 그 낭랑한 독경소리는 아직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유쾌한 모양을 바르게 생각하고,유쾌하지 못한 모양을 바르게 생각하여 자비심을 쌓을 때에는 탐욕과 진에는 일어나지도 않고 일어나더라도 멸한다.그리하여 이 바른 생각에 의해 우치는 일어나지 않고 일어나더라도 멸 하는 것이다.제자들이여 너희들은 이와같이 대답해야 한다.......] 황종의는 그 독경소리를 들으며 주인을 부를까 말까 잠시 망설였다. 만일 그안에 그의 적이라도 있는 날이면 그는 어이없게도 스스로 섶을 지고 불 길속으로 날아든 모양이 되고 마는 것이다. 허나, 원래 어렸을 때부터 소림사에 머물며 불법의 이치에 깊이 물들어온 그는 지금 이 불경을 읽고 있는 것으로 보아 결코 나쁜 사람일리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지금 상황에서 이 불빛이야말로 유일한 희망이라고 느껴졌기때문에 그는 잠시 주저하다가 천천히 모옥으로 다가가서 주인을 불렀다. [저......주인 계시오?] [......!] 순간, 유창하고 담담하게 흐르던 독경소리는 문득 거짓말처럼 뚝 끊어졌다. 황종의는 쫓기는 입장으로서 주인을 부르기는 했지만,만일 그의 생각이 잘못 되었다면 이것은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상황을 낳게 되는 것이다. 황종의는 따라서 매우 초조한 마음으로 일순 전신에 남은 기력을 최대한 끌어 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일 나타나는 사람이 적도일 경우에는 상대를 격살시키지 못한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더 이상 욕을 당하지 않을 결심을 했다. 그런데, 다음순간 방문이 열리며 그의 눈앞에 나타난 사람은 의외에도 이제 겨우 십사 오세나 되었을까 한 어린 소년이었다. 황종의는 비록 어린 소년의 음성을 듣기는 했어도 이렇게 정말로 어린 소년을 대하고 나자 실로 어리둥절한 기분이 되었다. 이런 깊은 산중에 어린 소년이 있다는 것은 확실히 의외인 것이다. 황종의는 절로 전신의 긴장을 풀며 소년을 향해 물었다. [자네의 부모님은 지금 안계신가?] 황종의는 필시 지금 이 소년의 부모가 어디로 출타한 것이리라 생각했다. 그의 이목에는 지금 이 모옥에는 이 소년 외에는 다른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 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소년의 잠시 황종의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저의 부모님은 제가 아주 어렸을 때 돌아가셨습니다.선생께서는 저의 부모님 께 무슨 볼 일이라도 계십니까?] 황종의는 이 말을 듣자 일순 흠칫 놀랐다.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 아닐세,헌데 그럼 자네는 여기서 혼자 살고 있다는 말인가?]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지난 수년간 저는 여기서 혼자살고 있는 중이지요.헌데 무슨 일이 십니까?] [......?] 황종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실로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깊은 산중에 혼자 산다는 것은 사나운 맹수들이 가끔씩 습격을 하기 때문 에 매우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아니,그런 것은 둘째치고라도 이렇게 나이어린 소년으로서 과연 이렇게 적막 하고 공포스러운 곳에서 홀로 살아갈 수가 있다는 말일까? 황종의는 일시 이 소년이 지금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을 했으 나 문득 그 표정을 보아하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혹시 이 소년의 어딘가에 남다른 비범함이나 이런 곳에서 살지 않으면 안될 무슨 기막힌 사연이라도 있다는 말일까? 그는 무심결에 소년의 전신을 다시한번 세심하게 살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헌데 이 소년의 용모는 실로 추괴하기 이를데가 없었다. 그것이 어느정도인가 하면 마치 얼굴을 한 번 끓는 물속에 집어넣고 얼마쯤 튀기다가 꺼낸 것처럼 이목구비의 구별이 없고 여기저기가 극심하게 뒤틀리고 일그러져 있는 것이다. 사실 지금은 겨우 희미한 불빛을 받아서 애써 사물을 구별할 수 있는 밤이니 까 망정이지,만일 지금이 훤한 대낮이었다면 보고 구역질이라도 할 만큼의 그 렇게 추괴한 얼굴이었다. 황종의는 비록 전날 수많은 지역을 돌아다녀봤지만 실로 이렇게 추괴한 용모 의 소유자는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 소년은 바로 이러한 자신의 용모를 괴롭게 생각한 나머지 홀로 이런 깊은 산중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살고 있다는 말인가? [백상] 소림화상 제1권 제2장 제 2 장. 추괴한 소년. 보아하니 소년의 몸에서는 무예를 익힌 흔적은커녕 무예의 냄새도 나지 않는 것이 전혀 무공이라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살아온 것 같았다. 황종의는 눈앞의 허술하게 지어진 조잡한 형태의 모옥을 둘러보며 내심 빠르게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그럼 이 집도 이 소년이 스스로 지은 것이란 말인가?) 황종의는 내심 그러한 생각을 하며 소년을 향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실은 나는 보다시피 누군가에게 급하게 쫓기는 몸일세. 그런데 그자들의 무공 이 워낙 대단해서 더 이상은 달아날수도 없게 되었네.그래서 말인데......수고 스럽지만 자네가 나를 좀 도와주지 않겠는가?] 그말에, 소년은 되물었다. [그럼 저더러 먹을 음식과 은신처를 마련해달라는 말입니까?] 황종의는 생긴 것과는 달리 눈치빠르고 공손한 소년의 태도에 내심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엇었다. 그러고보니 추괴하게 생긴 얼굴 가운데 박힌 두 눈은 반대로 아주 맑고 신비스 럽게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수가 있었다. 황종의는 이 소년이 근본은 아주 훌륭하며 잠시의 실수로 말미암아 이런 추괴 한 용모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황종의는 다소 겸연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네, 미안하지만 그렇게 좀 해주겠나?] 황종의가 이런 어린 소년에게 아쉬운 말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노릇이었 다. 그를 돕는다는 것은 비단 어려운 일일 뿐만 아니라,만일 그것이 백팔신마의 이목에 포착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소년마저 무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 다. 아니,만일이 아니라 이제 십중팔구는 그렇게 될 것이다. 기실 이렇게 그의 처지가 절망적이고 사태가 위급하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이 런 부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그가 소년에 대한 의심을 이미 깨끗이 씻었다는 표현이기도 했다. 소년은 그의 말에 잠시 곰곰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어, 소년은 도로 방안으로 들어가더니 잠시후에 손에 뭔가를 들고 다시 밖으로 나 왔다. 알고보니 그것은 바로 삶은 감자였는데,소년은 그것을 즉시 황종의에게 건넨 다음에 밖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 황종의는 엉겁결에 그 삶은 감자를 받아들고 군침을 삼키고 있다가 어리벙벙 해져서 소년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는 일개 나이어린 소년이 그와같이 어려운 부탁을 받고서도 이토록 침착하고 신속하게 행동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황종의는 급한김에 소년의 뒤를 따르면서 받은 감자를 꾸역꾸역 입속으로 밀 어넣었지만 도대체 그 맛을 알 수 없었다. * * * 이미 수년간이나 이 숲속에서 살아왔다는 소년의 말은 거짓이 아닌 듯 했다. 소년은 사방이 칠흑같이 어둡고 또한 도처에 가시덤불이나 빽빽한 고목,그리 고 나무등걸들이 널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쉽게 길을 찾아서 태연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것이 비록 빠른 걸음걸이는 아니었지만,이미 심한 중상을 입어서 운신이 어 려운데다가 지리를 모르는 황종의로서는 그 편한 걸음걸이를 일시 따라가기 곤 란할 정도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소년은 그리 멀리가지않고 하나의 거대한 아름드리 고목의 뒷편에 이 르러 걸음을 멈추었다. 이곳은 바로 모옥의 뒤편에 위치한 곳으로,모옥과는 겨우 백여보 남짓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황종의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곳이 사방으로 훤하게 뜨여있는 곳이요,게다가 주변에 별다른 은폐물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지었 다. 이 소년은 지금 자신을 숨어있을 은신처로 데리고 온 것이 아니란 말인가? 이때, 그의 내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년은 그의 얼굴쪽을 한 번 바라보다가 고목의 밑둥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이 아래가 그래도 가장 안전할 것입니다.한번 들어가 보시겠습니까?] (......?) 황종의는 그말을 듣고 일시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헌데, 소년의 손가락을 따라 고목의 밑둥지를 유심히 주시하고 나니 짙은 가시덤불 과 풀잎으로 뒤덮여 있는 그 아랫부위에는 아주 은밀한 구멍이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원래 이 고목의 아랫부위에는 어찌된 영문인지 커다란 구멍이 생겨나 있었는 데,그것이 지하에 있는 데다가 부근에 풀잎등으로 뒤덮여 있어서 잘 알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황종의는 이 은밀한 구멍을 보자 내심 생각했다. (실로 이러한 장소는 사람의 허를 찌르는 곳으로 그냥 지나치기 쉬우며 운공 조식하기도 좋고 잘만하면 백팔신마에게 발각되지 않을수도 있겠구나,허나.... ..) 황종의는 문득 한가지 일을 생각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만일 계속 신법을 펼치다가 이런 곳에 숨어있었다면 그들의 눈을 피할수 도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미 얼마전부터 신법을 펼치지 않고 흔적을 노출시킨채 이곳까지 걸어온 것이 아닌가?) 그렇다! 황종의는 비록 어쩔수 없는 상황아래 그렇게 행동했지만 이미 그렇듯 뚜렷한 흔적을 노출시킨 상황아래 백팔신마가 그를 찾지 못하기를 바랄수는 없는 일 이었다. 사실, 그가 여태까지 백팔신마를 따돌릴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신법이 빨랐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신법이 지상에 종적을 남기지 않는 만리추풍영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를 추격하는 사람들은 그가 도주한 방향을 찾기 위해 온 사방을 다 뒤져보 아야 했기 때문에 자연 뒤쳐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거리가 점차로 가까워지고 있다고 하는 것은 실로 공포스런 일이었다. 황종의는 일단 이러한 현실을 파악하자 잠시 멍하니 넋을 잃고 말았다. 그는 비로소 이제는 그가 제아무리 기묘한 곳을 만난다고 할지라도 도저히 그 들의 추격을 따돌릴 수가 없다는 사실으 깨달은 것이었다. 백팔신마는 이미 그가 전혀 흔적을 남기지 않았음에도그를 빠르게 추격하고 있거늘,완전히 흔적을 노출시킨 지금에 있어서야 그들이 모르고 지나치기를 바랄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럼 나는 이제 이대로 죽어야만 한단 말인가?) 시로 절망적인 현실을 느끼게 되자 황종의의 전신은 문득 사시나무 떨리듯이 가늘게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는 실로 이러한 사실에 대해 크게 반박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지금과 같은 절망적인 상황을 헤쳐나갈 묘안이란 결코 없었다. 황종의는 지금에서야 전에 아직 기력이 남아있을 때 정신없이 달아날 생각만 하지 말고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아니면 은밀한 곳으로 숨어들 생각을 하 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후회란 것은 아무리 빨라도 늦은 것이다. 황종의는 이렇듯 훤하게 자신의 최후를 알게되자 저도 모르게 탄식이 터져나 와 땅이 꺼져라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뇌리에는 순간적으로 전에 알고 지내던 많은 사람들과 또한 과거의 쓰고 달았던 많은 기억들이 스치고 지나가 두 눈에 몇방울의 눈물을 지어냈지만 그 것이라도 결코 그의 지금의 쓰디쓴 고통을 대변하기에는 부족했다. 이때,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소년이 그렇게 물어오자, 황종의는 다시금 길게 탄식을 토하며 고개를 내저었 다. [이곳은 아주 마음에 들지만,나는 잠시 생각을 잘못했네.] 소년은 일시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다가 물었다. [제가 그것을 알아도 되겠습니까?] 이 소년의 언행은 아주 잘 절제되어 있었다. 황종의는 일단 삶을 포기하고 미련을 끊고나자 마음이 맑아져서 즉시 그러한사 실을 알 수가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무슨 생각을 잘못한 것인가를 물어오기 마 련이다. 최소한 그가 상대에게 어떤 관심이라도 있는 것이라면, 그러나, 이 소년은 그러한 와중에서도 이렇듯 간접적으로 묻고 있는 것이다. 즉,그가 알 필요가 없는 것이라면 굳이 묻지 않겠다는 말인데,그러한 가운데에 서도 태도는 공손하건만 구태여 알고자하는 집착도 서려있지 않아서 상대를 편 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실로 이러한 태도는 일조일석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황종의는 잘 알고 있 었다. 원래 황종의는 소림사에서 무예를 배울 때에 여러번에 걸쳐서 많은 동문들과 사부 사백 사숙들로부터 불문에 귀의하라는 권유를 받곤 했었다. 물론 그러는 과정에서 자연 그는 많은 불문의 가르침을 얻어듣게 되었고,그러 한 가르침은 오늘날까지 그의 내면에 깊은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차마 속세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해서 많은 사람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세상 에 나오기는 했지만 지금 소년과 같은 이런 마음의 성취는 고도의 무예처럼 오 랜 기일에 걸쳐서 정진을 거듭해야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던 것이다. 황종의는 자연 탄복하는 마음이 일었다. 게다가 소년의 아까 보았던 그러한 추괴한 용모를 떠올리게 되자,어려운 여건 하에서 이러한 마음의 수양을 이룬 소년에게 더욱 탄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나는 이제 곧 죽게될 텐데 자네가 그 사실을 안다고해서 안될것이 뭐가 있겠는가?] 황종의는 이런 말을 하면서 내심 자신이 소년을 이 일에 개입하게 만든 사실을 매우 후회하는 마음이 일었다. 어쨌든 간에,소년이 그와 만났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백팔신마는 결코 소년을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역시 소년의 그러한 운명 역시 피할 수가 없을 것이다. [......] 황종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가 말을 이었다. [지금 나의 뒤를 쫓고 있는 무리들은 아주 무공이 고강할 뿐만 아니라 그 성 격또한 매우 흉악한 자들이지.그들은 원래 내가 전혀 흔적을 드러내지 않았는 데도 나를 추격해왔는데 나는 얼마전부터 부주의하여 그만 고스란히 흔적을 노 출시키게 되었네.그런데 내가 어디에 숨은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소년은 그 말을 듣자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황종의는 그러한 모습을 보자 내심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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