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장풍파랑 - 3편 (3/61)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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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장풍파랑 - 3편 (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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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피면구로 얼굴을 가리고 삼척단구(三尺短軀)로 변해 있다고 모를 그가 아니었다.
불덩이가 치솟고 있었다. "끄억! 컥!" 화기(火氣)는 그의 호흡을 막고 눈을 충혈 되게 했다.
죽음 같은 침묵이 흐른 후, 산공이 긴 한숨을 쉬며 마침내 입을 열었다. " ...장강의 깊은 곳에는 천년(千年), 만년(萬年), 공(功)을 쌓아도 하늘로 오를 수 없는 용(龍)이 있지." 그가 마의(麻衣)를 벗었다.
구부정한 그의 등이 드러났다.
우드득! 산공이 뼈를 풀며 신형을 꼿꼿이 세웠다.
그의 등에 선명하게 드러나는 그림.
타룡! "나를 보지 못했소.
나는 이미 죽었소.
인정해야 할 것이오.
해골선주(海 船主) 엽광!" 산공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해골선주! 장강수로연맹 호반영주(湖畔令主) 산하, 사대선주(四大船主)의 일인. "끄억! 억!" 엽광이 가슴을 쳤다.
그가 목줄기를 잡고 굴렀다.
목구멍이 터이자 비로소 그가 고함을 질렀다. "으아아!" 그의 눈에서 장대비 같은 눈물이 쏟아졌다.
짙은 검미, 꽉 다문 입술, 면구 속에 들어 있던 얼굴은 어딘지 허허로운 눈빛의 약관의 청년이었다.
산공! 그의 손에 들린 인피면구가 쉴새 없이 바람에 흩날렸다.
엽광의 울음은 한동안 계속되었고 산공의 눈빛은 여전히 무심했다. " ...왜 갑자기 떠났습니까?" 엽광이 비로소 눈물을 감추었다. " ...소영주(少令主)를 찾아 중원을 이 년이나 떠돌았습니다.
이곳에서 만날 줄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엽광은 아직도 가슴이 진정되지 않은 듯 말을 잘 잇지 못했다. "소영주를 찾아 다니다가 재수가 없으려니 삼명(三明)에서 남뇌로(南雷路) 놈들의 마수(魔手)에 걸려...
놈들이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고통을 안겨 주기 위해 나를 노예상에 넘겼습니다." 그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 ...나를 찾으러 다녔단 말이오? 의외군." 산공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엇이 의외란 말입니까?" 엽광이 격하게 소리쳤다. "나는 은혜를 모르는 놈이오.
아버님은 그런 자는 자식으로도 생각지 않지." 탁! 탁! 탁! 산공이 칼등으로 현측판을 두들겼다. "영주(令主)께서 섭섭해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 엽광이 고개를 숙였다. "이제 섭섭해 할 사람도 없습니다.
영주께서는 이 년 전에 이미 돌아가시고 대부인(大婦人)도 일 년 전에..." 그가 다시 눈물을 떨구었다. " .... " 하늘이 무너져도 꿈쩍 않을 것 같던 산공의 안색이 변했다.
칼을 쥔 그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호반영채도 불탔습니다.
이제 장강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엽광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세 겹으로 두른 금목걸이, 흑진주가 매달린 귀고리, 손목에는 황금으로 된 팔찌가 번뜩였고 허리에는 은사(銀絲)를 이어 만든 요대(腰帶)가 걸려 있었다.
산고는 삼본장선의 보물을 노략질하는 것으로 분풀이를 대신한 양이었다.
패물을 철렁이며 산공을 향해 걸어가던 산고가 흠칫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녀가 산공의 얼굴에서 표정을 보는 일은 드물었다.
장풍이 불 때를 제외하고...
장풍이 불면 산공은 발작을 했다.
분노에 찬 괴성, 산공은 미친 듯이 칼을 휘둘렀다.
산고는 그때 산공의 도법(刀法)을 훔쳐 배웠었다.
장풍이 사라지면 분노도 사라졌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 장풍이 불 조짐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산고는 전신을 미미하게 떨고 있는 산공의 얼굴에서 시꺼멓게 밀려오는 폭풍을 보고 있었다.
제 2 장.
귀 향(歸 鄕). - 한량없는 어둠이 찾아 들며 모든 것을 암장(暗葬)했다.
곧 새벽이 올 징조였다.
예측대로 잠깐 사이 태양은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남해의 태양이 붉게 바다를 비추며 그의 전신을 핏빛으로 적셨다.
너무도 화려한 일출(日出)! 그 화려함이 '죽음'이라는 단어를 더욱 뚜렷이 부각시켰다.
그는 입술을 악다물었다.
두 눈에 물줄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어머니... ' 그의 응어리진 가슴을 유일하게 다독거려 주던 분.
두 눈에서 흐르는 물줄기는 가슴을 적시고 바지 가랑이를 타고 흘렀다. "으으으... " 신음이 절로 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 지긋지긋한 중원...
영남의 오지에서 '산공'이라는 이름 없는 귀신으로 죽더라도 결코 돌아가지 않으리라 맹세한 곳이다.
그러나 돌아가야 한다.
마타룡! 그 흉물(凶物)스러운 별호를 다시 짊어지고... "크핫!" 그가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칼을 날렸다.
칼이 뇌전(雷電)으로 불덩이를 가르며 수평선(水平線) 너머로 사라졌다.
매주(梅州), 영안(永安)을 지나 삼명에 이르자 풍물들은 중원의 빛깔로 확연했다.
낯익은 풍물에 낯익은 정경.
싸움의 형세를 살피던 엽광이 도신(刀身)에 묻은 피를 닦았다.
그의 주위로는 십 여구의 시신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를 어이없이 올가미에 걸리게 했던 만로방(萬路幇) 남뢰로(南雷路) 삼명분회(三明分會) 소속의 무사들이었다. "끄억!" 삼명분회 분회주(分會主)의 목젖이 활짝 열렸다.
작자의 목에 피가 주르르 흐르며 싸움은 끝이었다.
산고라는 여자의 솜씨였다.
분회주와의 일전이 힘들었던지 그녀는 몇 가닥의 혈흔을 보이고 있었다.
엽광과 산고의 눈빛이 부딪혔다.
산고가 배시시 웃었다.
그녀가 화섭자를 꺼냈다.
치지직! 화섭자에 불이 붙으면 여자(女子)는 비적(匪賊)으로 변한다.
산고가 삼명분회의 재물을 노략질하며 불을 붙이고 다녔다.
활활활! 삼명분회가 거세게 타올랐다.
엽광이 삼명분회 무사들의 시신을 불길 속에 내던졌다.
영안분회에 이은 두 번째 싸움...
너무 쉽게 끝난 싸움이라 엽광은 싸웠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휙! 시신을 따라 한 자루의 칼이 불길 속을 날았다.
무심한 눈빛...
칼의 주인은 엽광이 남은 생을 주인으로 모시려는 자였다.
마타룡 위무일(魏武逸)! 엽광은 시신을 던지며 소영주를 흘깃 바라보았다.
삼명분회 놈들이 아무리 하찮다고는 하나 그를 포획했을 만큼 제법 실력을 가진 놈들...
싸움이 싸움 같지도 않게 끝난 것은 소영주의 무위 때문이다.
엽광은 문득 호반영채 사대선주의 한 명이었던 유정선주(游艇船主)의 말을 떠올렸다. - 엽(葉) 선주(船主), 소영주가 지닌 무공의 연원을 아시오? 아무래도 영주와 다른 듯 한데....
그리고 내가 보기에 소영주의 무위가 영주 보다 오히려 한 수 위인 것 같소.
소영주가 장강에 파랑(波浪)을 일으키고 다닌 지는 단 몇 개월이다.
그 몇 개월 동안 소영주를 모시고 장강을 종횡 하던 선단(船團)은 유정선단이었다.
자신이 모시는 분의 격(格)을 높이고 싶은 것은 수하들의 한결 같은 마음.
엽광은 그때 유정선주의 말에 실소로 흘렀다.
그러나 지금 가만히 생각하니 유정선주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닌 듯 싶었다.
하류배(下流輩)들을 상대하는데 진신(眞身)의 무공을 펼쳤을 리는 만무할 것이다.
따라서 영주와 소영주의 무위를 비교하거나 무공의 상이(相異)를 지금 구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도세(刀勢)의 흐름은 고수를 상대하건 하류배를 상대하건 별반 구별이 있을 리 없다.
그 점에서 소영주는 영주와 너무도 달랐다.
영주는 상리(常理)를 벗어나는 도세를 극히 꺼려했다.
도검(刀劍)은 백정들이 쓰는 칼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이 그곳까지 이르자 엽광은 고개를 저었다. 'ㅉ...
영주와 대부인께서 돌아가신 이 마당에 격에 맞춘 검무(劍舞)를 춘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그가 이내 자신의 의문을 접었다.
궁금한 것은 다른 것이 백 배 더 많았다.
갑자기 사라진 이유, 영남까지의 행적, 산고라는 여자의 정체까지...
그러나 그는 묻지 않았다.
수하는 주인에게 궁금함을 물을 자격이 없다.
그리고 궁금함으로 따지면 소영주가 더 할 것이다.
영주와 대부인의 죽음, 호반영채의 겁화, 영채 동도들의 행방,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심지어 흉수의 정체까지... '물을 때가 되면 묻겠지.' 말 보다 행동이 앞서는 위씨(魏氏) 가문(家門)의 과묵한 성품을 한두 해 겪은 겪은 엽광이 아니었다.
화르르륵! 화마(火魔)는 삼명분회를 삽시간에 잿더미로 만들고 있었다.
위무일이 발길을 옮겼다.
느릿한 보폭이었으나 그의 신형은 놀랍도록 빨랐다.
엽광이 그를 따라갔다. "이제 어디요?" 위무일이 앞뒤 없이 물었다. "영채는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먼저 그곳을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위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정호(洞定湖)로 가는 길에는...
남창분회(南昌分會)! 그런 대로 칼에 피를 묻힐 만한 놈들입니다." 엽광이 냉랭하게 말했다.
위무일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그와 엽광이 삼명분회의 화마가 가뭇하게 보이는 곳까지 이르렀을 때였다.
투두두두두! 세 필의 말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왔다.
말을 끄는 자는 산고였다.
그녀는 말에 온갖 잡다한 것을 싣고 있었다.
삼명분회에서 약탈한 물건들이었다.
산고가 위무일을 스쳐 가며 그의 어깨를 쳤다.
그녀가 한 모금의 술을 들이킨 후 위무일에게 건넸다.
위무일이 술을 반 비우고 술병을 엽광에게 돌렸다.
산고는 위무일이 술병에서 입을 떼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육포(肉脯)를 건넸다. "행로난, 행로난, 다기로, 금안재.... " 그녀가 흥얼거리며 먼저 길을 열었다. '저 여자와 있는 동안 소영주는 쓴 음식은 먹지 않았겠군.' 엽광이 술을 들이키며 실소를 흘렸다. * * * 만로방은 호상단(護商團)이다.
방주(幇主)는 금반수(金盤手) 주황(周黃)! 원래 그는 객상(客商)들의 무력 기반인 흑사회(黑社會)의 총수(總帥)였다.
주황은 자신의 세력이 점차 커지자 상인들의 밑에서 칼이나 휘두르는 생활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택한 길이 만로방.
주황의 힘에 오히려 위협을 느끼던 객상들이 그를 후원했다.
만로방은 개봉(開封)에 총단을 연 이후, 칠팔 년만에 대부분의 표국들을 잠식하며 육로(陸路)를 장악했다.
남은 것은 수로(水路)! 장강수로연맹과의 충돌은 필연이었다.
관부(官府)의 공공연한 외면 속에 만로방과 수로연맹의 암중(暗中) 칼부림이 시작되었다.
금력(金力), 세력(勢力), 관부의 입김까지...
모든 것이 만로방이 나았으며 만로방의 승리는 당연한 귀결로 보였다.
그러나 장강의 물길에 의지해 수 천년을 살아온 자들은 그들의 긴 역사(歷史)만큼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끝없는 싸움! 항상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만로방의 힘은 장강수로연맹의 숨통을 끊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삼사 년여 전에는 장강수로연맹의 역습에 만로방은 존망(存亡)이 위기까지 처한 적도 있었다.
태반의 세력이 꺾이고 개봉의 총단까지 불탔다.
단 몇 개월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때부터 비세(非勢)가 된 것은 만로방이었다.
주황은 절치부심했고 마침내 이 년 전 단도(丹徒)에서 수로연맹에 통쾌한 설욕전(雪辱戰)을 펼침으로써 승부를 다시 원점(原點)으로 돌렸다.
오 년 여 이상을 끈 싸움...
남은 것은 뒹구는 무사들의 시신뿐! 싸움이 길어지고 갈수록 격렬해지자 관부도 더 이상 모른 척 눈을 감을 수 없었다.
관부의 눈총, 긴 싸움에 대한 염증, 싸울 여력도 없었다.
단도의 싸움을 끝으로 대화해(大和解)가 이루어졌다.
평화가 온 것이다.
그러나 그 평화가 영원하리라고 생각하는 자는 바보가 아니고는 중원에 아무도 없었다.
만로방에는 동서남북(東西南北)으로 뻗은 길을 오가며 상단을 호위하는 네 개의 커다란 세력이 있다.
사대행회(四大行會)! 북풍로(北風路), 황사로(黃砂路), 적양로(赤陽路), 남뇌로.
행회(行會)는 원래 송대(宋代)부터 발전해 온 상인들의 조합(組合)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만로방에서 행회의 의미는 다르게 통용된다.
상로(商路)를 따라 움직이며 상단과 표물( 物)을 호위하는 자들을 만로방에서는 행회라 부른다.
분회(分會)는 각 지역에 상주하며 상로를 지나치는 행회에 필요한 인적(人的), 물적(物的) 자원(資源)을 제공하고 그 지역의 작은 호상 업무를 맡는 역할을 한다.
분회의 관할도 행회의 소관이다.
사대행회 중 남뇌로는 항주(抗州), 온주(溫州), 복주(福州)로 이어지는 해안의 상로와 무창(武昌), 남창, 광주(廣州)로 이어지는 동남(東南)의 상로를 관할한다.
끼익! 끼익! 남도의 뜨거운 태양 아래 길은 불덩이로 이글거렸다.
그 길 위에 길게 이어진 우마차(牛馬車)의 행렬.
우마차 사이에는 광대뼈가 불쑥한 무사들이 묵묵히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적의에 '만(萬)' 자를 새긴 무사들은 만로방 남뇌로의 무사들이었다.
그들은 영남으로 향하는 표물을 호위 중이었다.
표행의 중간에는 적삼(赤衫)을 걸친 초로인이 냉막한 표정으로 백마를 몰고 있었다.
만로방 남뇌로 행회의 회주(會主) 문회(文檜)! 매부리코 초로인의 이름이었다.
열 다섯의 나이에 흑사회에 가입, 줄곧 주황을 따라다니던 인물로 지금은 주황을 제외한 만로방의 최 연장자였다.
그와 같이 입신(立身)했던 숱한 자들은 모두 검하(劍下)에 고혼이 되었으니 살아 있다는 자체만으로 문회는 행회의 회주 자리를 충분히 자신의 몫으로 챙길만 했다.
문회가 잠시 말을 멈추고 하늘을 우러렀다.
태양은 중천을 가리켰다. "회주, 이제 올 시각이 된 것 같습니다.
저곳에서 기다리며 요기나 하지요." 표행의 선두에 선 자가 문회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문회가 고개를 끄덕였다.
덜컹! 덜컹! 우마차의 행렬이 해송(海松) 나무 숲 근처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일시에 정지했다. "잠시 여장을 푼다! 산개(散開)!" 선두에 선 자가 고함을 질렀다.
남뇌로의 무사들이 두 개 조(組)만을 남긴 채 나무 그늘을 찾아 우르르 흩어졌다.
그들이 칼을 풀고 건량(乾糧) 주머니를 꺼냈다.
문회는 수하들이 요기를 하는 것을 둘러보며 넓적한 바위에 엉덩이를 걸쳤다.
그가 빳빳하게 풀 먹인 적삼의 먼지를 털며 비구(臂構)와 각반(脚絆)을 풀었다.
표행의 선두와 중단, 후미를 책임진 세 명의 조장(組長)들이 그의 앞에 시립 했다.
문회가 손을 저었다.
조장들이 읍을 한 후, 요기를 위해 각자의 자리를 찾았다. "해해해...
회주!" 땅딸한 체구에 쥐꼬리 수염의 노인...
이번에는 표물을 의뢰한 상인이었다. "귀한 죽산홍(竹山紅)을 구했는데 잠시 맛을 좀 보시려는지요?" 문회는 그의 말에 대꾸도 없이 눈을 감았다.
장사치라면 신물이 나는 그였다.
죽산홍을 든 상인이 머쓱한 표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상인이 사라진 후, 문회는 탄식을 터뜨렸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것인가?" 그가 자신의 허벅지를 바라보며 탄식을 터뜨렸다.
비육지탄( 肉之嘆)이 아니었다.
오히려 문회는 이 나이까지 허벅지에 살이 붙을 날이 없는 날들이 한심스러울 따름이었다.
말안장에서 엉덩이를 떼는 길은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수로연맹! 총채(總寨)는 주인을 잃어 표류하고 호반영채는 불에 탔다.
이제 마지막 싸움이 벌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 한데... " 문회가 이마를 좁히며 중얼거렸다. "예전처럼 싸울 수 있을는지... " 그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그때였다.
투두두두두! 자욱한 흙먼지와 함께 십 여필의 말이 달려왔다.
그들은 송림(松林)에 말을 멈추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역시 만로방의 무사들이었다.
그들 중 텁석부리 장한 한 명이 문회를 향해 걸어왔다. "회주, 놈의 목을 벴습니다." 텁석부리가 포권을 하며 피에 절은 보자기를 던졌다.
보자기 속에 든 것은 물어 보나마나 수급이다.
창해방(蒼海幇)의 방주 이습(李習)의 목! 창해방은 복주를 중심으로 활약하는 반 해적의 무리로 그냥 두어도 만로방에 전혀 위협이 되지 못할 존재였다.
고작해야 지역의 파락호들.
그럼에도 문회가 수하들을 보내 창해방을 와해시킨 이유는 근자에 만로방에서 해안에 특별한 신경을 기울일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해륭도(海隆島)! 장강의 모래가 쌓여 형성된 작은 섬.
도주(島主)는 해손왕! 중원이 만로방과 수로연맹과의 일전으로 어수선한 틈에 해륭도는 바다를 중심으로 급격히 세를 불려 가고 있었다.
해륭도는 만로방이나 수로연맹에 비해 세(勢)가 아직 비할 바가 아니고 중토(中土)에도 전혀 무관심을 표하고 있었음으로 역외(域外)의 존재로 치부되던 터였다.
그러나 지금 시기적으로 해륭도는 묘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해륭도가 중토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단언할 자는 없다.
만약 해륭도가 중토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을 두고 만로방이나 수로연맹 중 한 곳과 손을 잡는다면...
해륭도는 저울추가 기울어지게 할 정도의 실력은 충분히 되었다.
따라서 만로방은 물론 수로연맹도 해륭도의 비위를 거슬리는 일은 극히 삼갔다.
문회가 창해방을 친 이유는 그 때문이다.
해륭도가 자신들의 세를 불리는 방법은 너무도 간단하다.
굴복을 요하는 통첩(通牒) 한 장! 해륭도의 굴복을 거부하면 창해방은 잿더미가 될 일이니 문회가 신경 쓸 일도 없었다.
그러나 창해방이 해륭도에 무릎을 꿇고 들어간다면...
복주에 귀찮은 혹덩어리가 하나 생기는 셈이다.
작금의 국면(局面)에서 해륭도의 수족인 줄 알면서 그들을 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안의 하오문(下五門)에 대한 만로방의 입장은 명확했다.
해륭도의 수족이 될 만한 세력들을 미리 쓸어버리는 것! 창해방주 이습은 그 때문에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체 목을 뒹굴고 있었다. "묻어 주어라!" 문회가 말했다.
텁석부리가 이습의 목이 담긴 자루를 들며 품속을 뒤졌다.
그가 한 통의 서찰을 꺼냈다. "창해방 놈들을 상대하고 있는데 복주의 분회주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분회를 비울 수 없는 처지라며 저 보고 급히 이 서찰을 전하라 했습니다." 텁석부리가 겉봉에 '즉파(卽破)'라고 적힌 서찰을 문회에게 건넸다.
문회가 서찰을 뜯었다.
서신을 읽던 그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해 갔다. "무슨 일입니까?" 텁썩부리가 놀라 물었다.
찰칵! 문회가 비구와 각반을 재빨리 찼다. "돌아간다!" 그가 송림(松林)이 떠나갈 정도로 고함을 질렀다.
남뇌로의 무사들이 문회의 외침에 놀라 옷깃을 풀어헤친 채 모여들었다. "출발을 지시하라! 남창!" 문회가 텁석부리에게 지시한 후, 자신의 말에 훌쩍 올랐다. "기수를 돌린다! 남창!" 텁석부리가 영문도 모른 체 고함을 질렀다.
조장들이 문회를 따라 황급히 자신의 말에 엉덩이를 걸쳤고 조원들이 그들의 뒤를 도열했다. "회주! 아니 이 물건들은 어떻게 하라고? 이곳이 비적들의 소굴이라는 것은 회주께서 더 잘 알지 않습니까?" 표물을 맡긴 상인이 울상을 지으며 문회의 말고삐를 잡았다. "비켜라! 이 돼지 같은 놈!" 짝! "아악!" 문회의 채찍에 상인이 얼굴을 맞고 풀밭을 굴렀다.
남뇌로를 이끄는 대회주 답지 않은 경박한 말과 행동이었다. "하!" 문회가 말고삐를 챘다.
투두두두두! 다섯 필의 말이 달려나가고 그 뒤를 남뇌로의 무사들이 칼을 철컹거리며 달렸다. "마타룡... " 문회의 입에서 신음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대화급(大火急).
관성(冠省).
영안, 삼명분회 괴멸(壞滅).
흉수(兇手)는 마타룡의 추정.
동북(東北)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함.
복주 분회주 경백(敬白) 문회의 가슴은 불에 덴 듯 후끈거렸다.
마타룡! 그가 누구인가? 문회의 눈에 불타던 개봉 총단이 눈에 선명했다.
마타룡의 불시 습격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사대행회의 회주는 그를 제외하고 모두 새 얼굴이다.
한 명은 단도의 대접전 당시 단심호(丹心虎) 위호연(魏浩然)에게 목을 잃었다.
단심호는 바로 마타룡의 아비다.
나머지 두 명의 회주...
그들의 목을 앗아간 자도 마타룡이다.
뿐만 아니다.
마타룡의 미친 듯한 공세에 만로방은 승기를 잃고 한동안 비세로 허덕여야 했다.
마타룡이 활약하던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일어난 일! '이미 늦었다.' 문회는 입술을 깨물었다.
영안, 삼명분회의 괴멸, 소식이 이제야 전해졌다는 것은 마타룡이 전서(傳書)보다 빨리 움직이고 있다는 것! 원래 마타룡은 그랬다.
한 번 일어서면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광풍(狂風)! 단 한 달만에 만로방의 십 여개 분회가 박살난 적도 있었다.
채찍을 휘두르던 문회의 손에 힘이 빠졌다. '내가 가서 어떻게 한단 말인가?' 스스로에게 이는 참혹한 질문! 문회는 마타룡를 어떻게 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가야 했다.
방주에게 마타룡의 출현을 알리고 이후의 대책도 논해야 했다. * * * 남뇌로는 하남(河南), 절강(浙江), 안휘(安徽), 강서성(江西省) 등에 열 한 개의 분회를 가지고 있고 그중 남창분회는 항주(抗州), 소주(蘇州)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분회다.
남창분회에 어스름이 지고 있었다.
타닥탁탁탁! 화톳불에 불씨가 튀며 콩 볶는 소리가 났다.
술시(戌時) 초(初)가 지난 시각이었다.
원래 이 시각이면 어떤 이유라도 술을 찾아 마실 때였다.
하지만 술은커녕 마조패(馬弔牌)를 쥐고 있는 자들도 없었다.
우르르! 십 여명의 무사들이 분회로 들어섰다.
표행을 나갔던 자들이었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무사 한 명이 분회를 두리번거리며 의아스런 눈빛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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