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검이라... " 양웅이 조소를 흘렸다. 원래 강호인들은 검을 잘 사용하지 않았다. 배우기도 어렵고 도(刀)만큼 실용적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검은 대부분 반선반속(半仙半俗)으로 검선(劍仙)의 길을 가는 세외기인(世外奇人)들이 사용했다. 그들은 구름 속에 숨어 좀체 강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따라서 강호에서 검을 사용하는 자를 찾기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간혹 검을 차고 다니는 자가 있기는 했으나 그들의 대부분은 스스로의 위세를 뽐내느라 검을 찬 것에 불과했다. 양웅이 약관의 조소를 흘린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는 청년이 검을 든 것을 보고 그를 겉멋만 차리는 애송이로 판단한 것이다. '검... ' 생각에 잠겨 있던 엄영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채주! 저놈이 바로 금사강의 소채주 천화인입니다. 놈의 사문이 청성파라 하니 놈은 당연히 검을 찼겠죠." 엄영이 소리쳤다. "뭐야? 저놈이 우대량을 죽인 놈이라고?" 양웅이 고개를 쳐들었다.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양웅을 기다리는 청년은 물론 천화인이 맞았다. "죽일 놈! 잘 만났다." 우-웅! 양웅이 바람개비처럼 염왕도를 돌리며 거센 바람을 일으켰다. "채주, 조심하십시오. 청성파에서 무공을 익힌 놈입니다." "현문(玄門)의 무공이 고명함은 나도 알고 있다. 하나 현문의 무공은 또한 우리 속가의 무공과 달라 익히기 어렵고 성취가 느리지 않느냐? 놈이 청성산에서 무공을 익힌 것은 고작해야 오 년!" 양웅이 천화인이 들으라는 듯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놈은 식인랑도 단칼에... " 엄영은 우려를 금치 못했다. "흥! 우대량에게 미안한 말이다만 그는 고작해야 녹림의 삼류배! 그를 처치한 것이 무슨 큰 공적이라고... 하지만 저놈은 그것을 자랑으로 떠들고 다니더군." 양웅이 가소롭다는 듯이 천화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승부를 앞두고 말이 많다는 것은 역시 그가 천화인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 "어쨌든 조심하십시오. 저놈도 마타룡과 함께 장강의 용으로 불리던 놈입니다." 엄영의 한 소리에 비로소 양웅이 정색을 했다. "비켜라!" 양웅이 엄영을 밀치며 배 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건방진 애송아!" 양웅이 천화인을 불렀다. 천화인이 팔짱을 낀 채 서서히 앞으로 걸어나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양채주!" 그가 짐짓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일을 이 지경으로 벌려 놓고 인사는! 다른 말은 않겠다. 수하들의 피는 네놈도 원하지 않겠지?" 양웅이 염왕도를 치켜들었다. 천화인이 미소를 지었다. 그가 공손히 포권을 했다. 비무(比武)를 승낙한다는 인사였다. "금사강에 제법 사람 구실을 하는 놈이 있었군. 이래서 젊은 놈들을 만나면 기분이 좋다니까. 구질구질 하게 싸워도 되지 않으니... " 양웅이 장포를 벗으며 중얼댔다. "서황, 만에 하나 내가 패하면 수하들에게 은자를 배분하고 수채를 해산시켜라." 그가 장포를 엄영에게 던지며 소리쳤다. "으앗!" 양웅이 궁보(弓步)를 취하며 염왕도를 치켜들었다. 황평이 얼굴을 찌푸렸다. 염왕도를 든 양웅의 위용은 금강역사(金剛力士)가 저리 가라 였다. '소채주가 과연 그를 당해 낼 수 있을지.' 양웅의 괴력은 이미 중원까지 자자하게 소문이 나 있었다. 황평은 천화인의 무위를 말로만 들었을 뿐 직접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손이 벌써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갔다. "왜 먼저 덤비지 않는 게냐? 이놈아! 나는 중원 놈들처럼 예의 운운하지 않는다. 싸움에서 무슨 예의! 으핫!" 양웅이 선수(先手)로 염왕도를 휘두르며 천화인을 육박했다. 웅! 염왕도가 굉음(轟音)을 일으키며 사선으로 떨어졌다 사선으로 치솟았다. 먼저 천화인에게 위협을 가하기 위해 펼친 금리행파(金鯉行波)라는 멋진 출수였다. 천화인이 검을 빼 들었다. "가랏!" 쐐액! 양웅의 염왕도가 엄청난 기세로 천화인의 정수리를 찍어 왔다. 천화인이 발보등공(拔步登空)으로 신형을 비틀며 염왕도를 쳐 나갔다. 다섯 자 길이의 염왕도에 양웅의 긴팔, 그 속에 천화인의 검은 낫 아래 당랑(螳螂)의 발 보다 못했다. 그럼에도 천화인은 합(合)으로 염왕도를 받아 가고 있었다. 짧은 순간, 양웅이 안색을 찌푸렸다. 염왕도의 무게도 무게지만 그의 완력은 구주(九州)의 강호인들이 인정하는 바였다. 그런데 합(合)을 겨루려 하다니... 양웅이 어디 '죽어 봐라'는 심정으로 염왕도에 힘을 더했다. 챙! 다섯 자 길이의 염왕도와 검이 어지럽게 부딪히며 불꽃을 튀겼다. '으헛!' 양웅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천화인은 그의 염왕도를 받아 내고도 어깨만 잠시 흔들거렸을 뿐이었다. 양웅의 기세가 주춤했다. 그 틈을 이용 천화인이 근접전(近接戰)을 시도했다. 파파팟! 천화인의 검이 염왕도를 영사처럼 휘감아 갔다. 양웅이 반 보를 물러났다. 염왕도를 자유로이 펼치려면 반 장의 거리는 필요했다. 하나 수하들이 지켜보고 있고 천화인은 새카만 후학(後學)이다. 그에게 있어 예의와 자존심은 다른 문제다. 결국 양웅의 자존심이 허락한 거리는 반 보! 덕분에 양웅은 더욱 수세를 면치 못했다. '이놈이 이렇게 강할 줄이야. 천하에 나보다 강한 자는 마타룡 뿐인 줄 알았는데... ' 양웅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러다가 큰일 나겠구나!' 그가 염왕도를 반절(半切)로 잡았다. "으얍!" 양웅이 고함을 지르며 반격에 나섰다. 휘휙! 휙! 양웅의 도법은 난마(亂麻)처럼 어지러웠다. 그리고 양웅은 천화인의 검은 찔려도 죽지 않는 막대기쯤으로 생각했는지 수비는 전혀 무관심이었다. 천화인이 뒷걸음질을 쳤다. 흙먼지를 몰고 오는 바람처럼 격렬한 양웅의 도법은 강호인들이 과연 한 수 양보할 만한 데가 있었다. 우-웅! 염왕도가 상하를 찌르고 옆구리를 동강낼 듯 베어 왔다. 천화인이 다급한 차에 검을 세워 염왕도를 막았다. 챙! 염왕도가 검과 얽히며 천화인이 신형을 휘청거렸다. 양웅은 역시 힘으로 상대할 자가 아니었다. 황평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가 다급히 칼을 잡아 나갔다. 순간, "핫!" 천화인이 창룡음(蒼龍吟)을 터뜨리며 신형을 솟구쳤다. 그가 삼 장여를 물러난 후, 추산입정(推山入鼎)으로 공격 자세를 취했다. "물러나시오!" 천화인이 칼을 움칠거리는 황평에게 소리쳤다. 그가 눈빛을 달리하며 검을 상단에 세웠다. 천화인이 이제까지의 기세와는 다르게 완보(緩步)로 양웅을 접근했다. 봄바람 같은 걸음 걸이였다. "무슨 수작을 벌이려는 게냐?" 양웅이 맹호비월(猛虎飛月)로 솟구치며 염왕도를 번뜩였다. 천화인이 어깨를 가볍게 흔들었다. 웅! 염왕도가 바람 소리만 내며 허공을 갈랐다. 양웅은 자신의 염왕도가 너무도 어이없게 비켜 가자 쌍심지를 꿈틀거렸다. "우아앗!" 그가 연환삼(連環三)의 수법으로 천화인을 몰아갔다. 그러나 그의 염왕도는 기이하게도 천화인을 가르려는 순간 언제나 한 치를 비켜 흘렀다. 천화인의 신법은 한마디로 간들거리는 풍매화(風媒花)였다. 양웅은 온갖 수법을 다 동원했으나 천화인의 옷자락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암향표(暗香飄)! 청성파 독문(獨門)의 신법. 처음 천화인이 펼친 무공은 금사강에서 아버지에게 배운 무공이다. 그러나 지금 펼치는 무공은 청성파의 무공이었다. 촤ㅊ! 성하(盛夏)의 무성한 초목(草木)만이 양웅의 염왕도에 난도질당할 뿐이었다. 그의 이마에 땀이 흘렀다. 서너 합 어우러지는 순간, '아차!'하는 마음은 이미 들었다. 하지만 무사는 자신의 자존심을 관(棺)까지 가져간다. 물러설 명분이 없었다. 양웅은 이를 악물고 살초(殺招)를 난무했다. 천화인이 소매를 휘저었다. 파팟! 팟! 소매가 깃발처럼 펄럭이며 찢어지는 파공음을 일으켰다. 양웅의 전신에 때아닌 삭풍(朔風)이 불고 귀는 윙윙거리는 북소리로 요란했다. 광한수(廣寒袖)! 역시 소매로 펼치는 청성파의 절예. 양웅은 경풍(勁風)에 눈물을 줄줄 흘리며 신형을 비틀거렸다. 그러나 그는 끝내 패배를 자인하지 않았다. "해해해! 네놈이 청성산의 말코 도사들에게 한 수 배웠다는 사실은 인정하마! 그러나! 으흡!" 양웅이 깊게 호흡을 삼키며 가슴을 부풀렸다. "우핫!" 그가 최후의 힘을 모아 천화인을 육박했다. 콰쾅! 쾅! 양웅의 염왕도에 돌가루가 날리고 흙먼지가 일었다. 간들거리던 천화인의 보법도 그 엄청난 광풍 앞에서는 별 위력을 발휘하지 못할 듯 싶었다. 염왕도에서 뻗어 나가는 빛이 삽시간에 천화인을 덮어 갔다. 기세로 따지면 천화인의 목은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했다. 파팟! 비로소 천화인이 검을 번뜩였다. 챙! 날카로운 쇠소리와 함께 염왕도는 천화인의 검에 눌려 지면을 가리키고 있었다. 양웅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자신의 염왕도가 눌려질만한 강한 충격도 받지 않았었다. 단지 검이 가볍게 부딪히는 느낌만 받았을 뿐! "에잇!" 영웅이 그가 자랑하는 천력(天力)을 모두 염왕도에 실어 천화인을 다시 후려쳤다. 챙!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양웅의 염왕도는 이제 반 자나 지면에 꽂혀 있었다. "사술(邪術)이다!" 양웅은 더 이상 싸울 기분이 아니었다. 그가 뒷걸음질을 쳤다. 천화인이 미소를 흘리며 중얼거렸다. "이화접목(梨花接木)... 격산타우(隔山打牛)... " 상대의 힘을 되돌려 상대를 치고 상대의 힘으로 다시 다른 상대를 치는, 천화인이 중얼거리는 초식들은 현문(玄門)의 절예(絶藝)였다. 슥! 천화인이 검을 세웠다. 윙윙윙! 그가 자신의 검을 손가락으로 절묘하게 돌렸다. 그는 내친김에 자신의 진면목을 약간 더 보여 줄 생각이었다. 어차피 능력을 알리기 위해 벌인 일! 장강뿐만 아니라 그는 강호인들의 관심이 더 필요했다. "핫!" 천화인 창룡음을 터뜨리며 검을 움켜쥐었다. 파라락! 검이 춤을 추며 그의 주위를 돌았다. - 칼을 몸에 바른다. 양웅은 천화인의 검무(劍舞)를 그 이상으로 표현할 재주가 없었다. 검은 혼자 살아서 움직이는 듯했다. 황평과 엄염도 넋을 잃고 있었다. 카락! 천화인이 손목을 휙 비틀어 검무를 멈추었다. 철컹! 그가 웃으며 검을 꽂았다. "음... " 황평은 승리의 기쁨에 앞서 신음부터 내뱉었다. 소채주의 무위가 저 정도일 줄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천화인이 넋을 잃고 있는 양웅에게 말을 건넸다. "양채주, 나는 통천하에서 피냄새가 나는 것을 원하지 않소." "흥! 피냄새는 먼저 네놈들이 원하지 않았느냐?" 양웅이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고함에 맥이 빠져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결국 싸움을 원한다는 말이오?" 천화인의 표정은 놀랍도록 다양했다. 그는 어느새 고압적이 자세로 양웅을 쳐다보고 있었다. "물론!" 쿵! 양웅이 기가 꺾이지 않기 위해 염왕도로 땅을 쳤다. "정 싸우겠다면 거부하지 않겠소! 누구와 싸우기를 원하시오? 나와 싸우기를 원하시오 아니면 성 총관과 싸우기를 원하시오. 성 총관과 싸우기를 원한다면 수채로 돌아가고 나와 싸우기를 원한다면 이곳에 남으시오." '선택을 하라니... ' 양웅이 천화인의 말뜻을 헤아리느라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였다. "채주!" 엄영이 고함을 질렀다. "저놈의 말뜻을 아직 모르겠습니까? 금사강의 다른 패거리들이 지금 청하수채(靑河水寨)를 치고 있을 것입니다." "뭐야?" 양웅의 눈이 찢어졌다. "아이고! 연홍!" 그가 목선으로 뛰어갔다. "천화인, 수채에 무슨 일이 있다면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이다!" 양웅이 악에 받힌 고함을 질렀다. "그런 일은 없을 것이오. 그리고 통천하는 잠시 빌리려는 것뿐이니 너무 서운해 마오. 통천하에 뭐 먹을 것이 있다고... " 천화인이 실소를 흘렸다. "이놈들아! 빨리 저어라! 빨리 저어!" 양웅의 고함 속에 통천하의 선단이 올 때 보다 더 빠르게 오흉에서 사라졌다. 양웅이 사라진 후, 황평이 천화인에게 다가갔다. "소채주, 성 총관이 잘해 낼까요? 아무래도 그로서는 양웅을 상대하기가... " 그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서 혼이 났으니 더 이상 싸울 마음이 없을 것이오. 자! 우리도 돌아갑시다." 천화인이 휘적 발걸음을 옮겼다. ' ...심계(心計)도 깊다.' 천화인을 바라보는 황평의 얼굴에 더 이상 어떻게 표할 수 없는 존경의 염이 어렸다. 양웅은 마른침을 삼켰다. 수채는 불에 타지 않았다. 그러나 수채 앞에 쌓인 거대한 짐 더미. 그릇, 침구, 수채의 모든 살림살이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손을 댄 흔적도 없었다. 은자와 패물함, 값진 피혁(皮革)들도 그대로였다. 쾅! 양웅이 수채의 문을 박차고 들어섰다. 휘날리는 깃발, 번뜩이는 도검. 그를 맞는 자는 금사강 수채의 무사들이었다. 선두에 선 자는 양웅도 몇 번 안면이 있는 금사강 수채의 총관 성충기(成充己)라는 자였다. 그들은 한 떼의 사람들을 포위하고 있었다. "채주!" 여인의 울음이 양웅의 맥을 뺐다. 연홍의 울음이었다. 철컹! 철컹! 금사강 수채의 무사들이 움직였다. 그들이 양웅의 수하들이 달아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다. 우르르! 잡혀 있던 수하들이 앞다투어 달아나고 연홍은 그의 품에서 눈물을 흘렸다. "졌다!" 양웅이 손을 들었다. 통천하 청하수채의 해체였다. * * * 석어호(石魚湖)는 마치 동정호와 같은데 여름 물은 가득 차고 군산은 푸르렀도다. 산은 바로 술통이요. 호수는 소(沼)가 되어 여러 술꾼들은 모래톱에 둘러앉는다. 여러 날의 거센 바람 큰 물결 일으켜도 술 나르는 뱃사람을 막지는 못하였다. 나는 긴 바구니 들고 파구(巴邱)에 앉아 여러 사람과 술 마시며 시름을 흩날렸다. 빽빽한 갈 대숲, 물풀로 뒤덮인 샛강이었다. 강상(江上)에는 운무(雲霧)가 피어오르고 허공에는 안개비가 흩날렸다. 그 물길 사이, 거적때기로 차양(遮陽)을 만든 작은 배... 석어호의 뱃노래는 그 곳에서 흘러나왔다. 차양 아래는 어린 계집 한 명이 술병과 술잔을 들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 계집의 좌우로는 죽립(竹笠)에 도롱이로 몸을 가린 두 노인이 등을 맞대고 낚싯대를 드리운 채 세월을 낚는 중이었다. 좌측에 앉은 노인이 죽립을 반쯤 들며 하늘을 우러렀다. 회갈색 수염에 검붉은 얼굴, 일세(一世)를 풍미하던 영웅의 기도가 한 눈에 느껴지는 노인이었다. 그가 카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참으로 좋은 시외다. 아이야! 네 주인께 다시 한 잔의 술을 권하려무나." 좌측 노인의 말에 어린 계집에 우측 노인에게 술을 권했다. 우측 노인이 술을 마시기 위해 죽립을 들었다. 가슴까지 내려오는 긴 수염, 이제 저승꽃이 하나, 둘 피기 시작하는 이순(耳順)의 노인이었다. "천 채주에게도 한 잔 드리도록 하라." 우측 노인이 술잔을 비우며 말했다. 어린 계집이 좌측 노인에게 술잔을 돌렸다. 각기 한 잔을 술을 마시고 난 노인들은 다시 낚싯대에 신경을 모았다. 휘-잉! 강바람이 창파를 일으키며 안개비를 흩뿌렸다. 우측 노인이 다시 운을 뗐다. "생각하니 여름이 되어도 동정호의 물은 차지 않고 군산의 신록(新綠)은 오히려 시들고 있소. 정말로 거센 바람 큰 물결만 요란할뿐... " 그가 '석어호'라는 시를 끌어들여 자신의 의중을 내비쳤다. " .... " 좌측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작금의 정황(情況)에 대해 도(都) 채주(寨主)께서는 무슨 할 말이 없소이까?" 좌측 노인이 침묵을 지키자 우측 노인이 재차 물었다. "수룡왕을 모시고 장강을 종횡 하던 사람은 이제 나와 천(千) 채주(寨主), 오(吳) 채주(寨主)밖에 남지 않았소. 죽을 날만 기다리는 자가 무슨 할 말이 있겠소. 허허허!" 우측 노인이 헛웃음으로 좌측 노인의 물음을 피해 갔다. 두 노인이 낚시를 드리운 곳은 가릉강의 작은 수로. 우측 노인은 가릉강의 채주, 도연오(都衍悟)였고 좌측 노인은 금사강의 채주, 천태림(千太林)이었다. 도연오는 모처럼 가릉강을 찾은 천태림을 낚시로 환대하고 있었다. "원강, 무하가 만로방과 물길을 튼 것은 문제도 아니오. 파양호( 陽湖) 수계(水系) 전체가 만로방으로 흔들리고 있다고 하오. 도 채주께서는 나보다 더 가까운 곳에 앉았으니 그 소문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오." "귀가 있으니 당연히 듣고 있지요. 허나 내가 그들의 선택을 어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겠소? 총채에서도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 도연오가 탄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세상 돌아가는 꼴만 보고 있겠다는 말입니까?" 천태림이 목소리가 카랑하게 수로를 울렸다. "여기 먼 곳까지 왔으니 천 채주께서 그냥 오시지는 않았을 것이오. 좋은 해법(解法)이 있으면 같이 나누기로 하지요." 휙! 도연오가 파랑에 밀려 수초 속에 감기려는 찌를 당겼다. "험!" 천태림이 헛기침을 했다. '교활(狡猾)한 늙은이. 내가 이곳에 안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끝내 모른 척 하다니...' 서로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런 마당에 새삼 자신의 생각을 토로하려니 천태림은 남우세스러운 마음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더 이상 빙빙 돌려 말을 끌 수도 없었다. "문제의 발단은 모두 장강에 구심점이 없기 때문이오." " .... " 도연오가 침묵한다는 것은 자신의 말에 공감한다는 뜻. 천태림은 자신감을 얻었다. "총채에 새로운 주인이 필요하오!" 그가 자르듯이 말했다. "새로운 주인이라... 총채의 수하들과 추운객 어르신의 생각은 총채에 새로운 주인을 원하지 않는 듯 하던데... " "그럼 전임 총채주의 그 핏덩이 아이를 총채주의 자리에 계속 앉혀 놓자는 말이오? 현실을 너무도 무시한 처사요. 수룡왕에 대한 충정 때문에 그 같은 생각들을 하고 있겠지. 수룡왕에 대한 충정이라면 나도 그들에 못지 않소! 그러나 작금의 일들을 보시오! 그 핏덩이에게 장강을 맡길 수 있는지!" 천태림이 목소리를 높였다. "총채의 수하들이야 원래 채주들의 결정에 따라야만 하는 자들이니 별 문제가 없고... 추운객 어르신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군." 도연오가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추운객 어르신께서도 작금에 처한 장강의 어려움을 모르시지는 않을 것이오. 그래서 단지 흥악이라는 아이의 후견인(後見人)으로만 자처했을 뿐 후임(後任) 총채주로 앉힐 것이라는 말은 없지 않으셨소." "그 어르신이야 원래 장강에 자신의 고집을 내비치는 분이 아니니... " "그래서 채주들의 생각이 중요하오. 이번 춘절(春節)의 만회(滿會) 때... " 천태림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내 아들놈을 어떻게 생각하오?" 그가 갑자기 말머리를 돌렸다. "부러울 따름이외다." "나는 이번 춘절의 만회 때 내 아들놈을 총채주의 자리에 앉힐 것이오." "허허허! 허허허허... " 도연오가 배가 흔들릴 정도의 웃음을 터뜨렸다. "도와주시오." " .... " 도연오가 낚싯대를 놓고 등을 돌렸다. 천태림도 그를 마주보고 앉으며 눈을 감았다. 도연오가 소매를 걷으며 천태림을 가리켰다. 쪼르르! 계집이 술을 따라 천태림에게 권했다. 천태림이 눈을 번쩍 뜨며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그가 호목(虎目)으로 도연오를 바라보며 도연오의 다음 말을 초조히 기다렸다. "나도 아들놈들이 몇 있소만 모두 미천한 놈들이라 감히 총채주 자리를 넘볼 수는 없고... 그래 또 누구와 그 같은 말씀을 나누셨소?" 도연오가 면포에 술잔을 닦으며 물었다. "한수! 상강! 확답을 받았소. 소강의 채주들까지 책임져 준다고 했소." "상강까지... 의외군." 도연오가 술을 쭉 들이켰다. "상강의 젊은 채주는 야심만만한 인물! 배다른 여동생의 정리 보다 자신의 실익을 더 원했소." "그렇겠지." 도연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강, 한수, 천 채주의 금사강까지 합하면 벌써 육대강(六大江) 중 반을 잡으셨구려." 그가 한숨을 쉬었다. 장강십팔수로연맹 중 여타 수채들에 비교 월등히 강한 힘을 가진 여섯 개의 수채를 대강(大江)이라 부른다. 나머지는 소강(小江)... 대강 수채는 금사강, 민강, 가릉강, 한수, 상강, 진강의 여섯 개 수채다. 힘이 강성한 만큼 장강에 가장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도 그들 수채였다. "그런데 이상하구려. 금사강과 가까이 있기는 민강이 첫 번째인데.. " "민강 채주는 호반영주의 처남(妻男)이 아닙니까. 호반영주의 백씨 가문에 대한 충성이 어디 보통이었습니까? 지금으로서는 민강의 채주도 매부(妹夫)의 단심을 차마 모른 척 하기 힘들 터이니 대강의 채주들과 대충 이야기가 된 후 말을 꺼낼 생각이었소. 아마 그도 대세가 결정되면 거스르지 못할 것이오." 원래 장강수로연맹의 태두(泰斗)들은 이런 저런 관계로 인척(姻戚)의 연을 맺고 있었다. "그렇지! 그렇지!" 도연오가 무릎을 쳤다. "아!" 그가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난다는 듯이 손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민강 채주의 조카가 마타룡이라는 아이군요." "마타룡이라는 아이는 총채주가 될 수 없소! 그것은 민강 채주 스스로가 잘 알 것이오. 피냄새! 비록 그 아이의 공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소강, 대강의 채주 가리지 않고 그 아이의 피냄새에 진저리를 내고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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