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그의 우수는 여전히 삼절묵창으로 절기를 구사하며 허공에 뜬 은화인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복청양은 하나는 허공에 띄운 채로 하나는 몸 가까이 붙여서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팟! 다시 땅이 갈라지면서 아래에서 하나의 그림자가 솟구쳐 올라왔다. 그자는 아래에서부터 곧장 복청양을 두 쪽으로 갈라갔다. "헛!" 복청양이 움직였다. 그는 신형을 이동하여 암습을 피하며 발길질로 상대를 쓰러뜨리려고 했다. 그러나 그자는 바닥을 뒹굴며 여전히 복청양의 하반신을 노렸다. 세 명의 복면인이 동시에 복청양의 상중하를 노리고 들어온 것이다. 복청양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그는 쇄금십팔창법을 구사하여 간신히 상대하고 있었지만 차츰 수세로 몰리는 느낌이었다. 암습자들은 단순히 암습에만 능한 것뿐 아니라 하나하나가 초절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안 되겠군." 만리추종이 손바닥에 고인 땀을 닦으며 다급한 말을 뱉어냈다. "아무래도 내가 나가 거들어야겠어." "그럴 수 없습니다." 장경신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다니, 왜지?" "위요!" 장경신이 소리치며 바닥을 굴렀다. 그와 동시에 만리추종이 손바닥을 뒤집으며 거대무비한 장력을 위를 향해 토해내고 있었다. 쾅! 우르르 천장이 터져나가면서 뽀얀 흙먼지가 아래로 떨어졌다. 동시에 하나의 그림자가 천장에서 튕겨져 나가고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만리추종은 다급히 어깨로 벽을 밀었다. 그러자 여각의 약한 벽이 심하게 흔들렸다. 만리추종이 재차 몸을 부딪치자 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어서!" 만리추종은 그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두 사람이 밖으로 뛰쳐나감과 동시에 이번에는 방바닥이 갈라지면서 하나의 그림자가 솟구쳐 올라왔다. 그림자는 천장에서 떨어진 자와 합세하여 두 사람을 뒤쫓았다. 그와 동시에 지붕 위에서 하나의 그림자가 떨어져 내렸다. "도대체 몇 놈이나 되는 거야!" 만리추종은 급히 삼장을 갈겨 지붕에서 떨어지는 자를 밀어내며 복청양이 있는 쪽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그는 마음처럼 빠르게 이동하지는 못했다. 옆에 바싹 붙어오는 장경신의 안전도 생각해야만 했던 것이다. "으…… 내가 무공만 잃지 않았어도……." 장경신은 만리추종이 자신을 보호하느라 암습자들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고전하는 것을 보고 이를 갈았다. 그가 손만 쓸 수 있어도 이토록 곤욕스러운 처지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암습자들. 그들은 각기 셋이 짝이 되어 한 패는 만리추종을 공격하고 한 패는 복청양을 공격하고 있었다. 위기가 아닐 수 없었다. 제 30 장 약속(約束) 복청양은 만리추종이 고전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급해졌다. 그 자신이 세 사람의 협공을 당하고 있는 처지라 이들의 공격이 얼마나 감당하기 힘든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만리추종 혼자의 몸이라도 일신을 지키기 힘들 터인데 다시 장경신이라는 혹이 붙어 있으니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비켜라!" 복청양이 침중하게 소리치며 좌수를 반쯤 움켜쥐며 손등으로 상대의 얼굴을 후려쳤다. 후웅권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흥!" 상대는 복청양이 평범한 주먹질을 하는 것을 보고 얕잡아 보는 마음이 생겨 고개를 옆으로 틀며 바싹 그의 곁으로 다가들었다. 그가 들고 있는 것은 짧은 검이니 만큼 상대에게 근접해서 승부를 가리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 복청양의 주먹이 기묘한 각도로 틀어졌다. "앗?" 그자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얼굴에 일격을 얻어맞고 말았다. 그자가 피를 쏟으며 비틀하자 그토록 엄밀하던 진세에 빈틈이 생겼다. 복청양은 찰나를 놓치지 않고 몸을 날려 곧장 만리추종을 공격하는 세 명을 향하여 덮쳐갔다. "이놈들!" 그때였다. 땅 밑에서 홀연 하나의 검이 불쑥 솟아오른 것은……. "앗?" 전혀 생각지도 못한 암습이었다. 더구나 복청양은 만리추종을 향해 덮쳐가던 중인지라 미처 신형을 바꿀 여유가 없었다. 옆구리에 얼음을 대는 것 같은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그의 옷이 너풀거리고 그리로 혈선이 치솟고 있었다. 그러나 복청양은 날아가는 기세를 늦추지 않고 곧장 만리추종을 공격하는 세 명을 덮쳐갔다. 그의 삼절묵창이 두 자 길이로 줄어들며 일종의 검초를 전개하고 있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자들은 복청양을 상대하는 대신 선뜻 뒤로 물러서는 것이 아닌가! 그 덕분에 복청양은 쉽사리 일행과 합류할 수 있었다. "괜찮나?" 만리추종이 복청양의 상처를 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다행히 상처가 깊지 않습니다." 복청양이 씩 웃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이 창백한 것으로 보아 말처럼 상처가 가볍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의 상처에서는 여전히 가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혈을 할 여가가 없었던 것이다. 일곱 명의 복면인이 멀리서 그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가슴에 은실로 한 송이씩의 꽃을 새기고 있었으며 날카로운 안광을 흘리고 있었다. 이제 보니 그들이 길을 열어준 것은 세 사람을 한데 모아 일거에 제압하려는 속셈인 것 같았다. "복형, 유감스럽게도 내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구려." 장경신이 우울한 얼굴로 말했다. 아무래도 그는 자신이 도움이 되기는커녕 짐만 되고 있다는 사실이 영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복청양이 새삼스러운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장경신이 그에게 복형이라는 호칭을 사용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관계치 마시오." 복청양은 의연하게 삼절묵창을 움켜쥔 채로 은화인들을 노려보았다. 기이하게도 은화인들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그저 짧은 검을 움켜쥔 채 차가운 눈으로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이 내뿜는 살기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실로 가공할 수준이어서 이대로 있다가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그들이 발산하는 살기에 눌려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괴물들이 나타났지?" 만리추종이 더 참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흐흐, 그것이 알고 싶으냐?" 음침한 웃음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붉은 장포를 걸친 노인이었는데 대나무처럼 깡말랐으며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다. 그는 여유있는 웃음을 흘리며 뒷짐을 진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헉, 당신은?" 노인을 보는 순간 만리추종이 놀라움의 탄성을 질렀다. "노부를 아는 모양이군." 붉은 장포의 노인이 기특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저게 누굽니까?" 장경신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괴물일세. 벌써 죽은 줄 알았는데……." 만리추종이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혈영마군이라는 자지. 십 년 전에 갖은 악행을 저지르던 거마로, 그때 단심백결회의 끈질긴 추적을 받아 죽은 줄 알았는데 아직도 살아있다니 믿어지지 않는군." "흐흐, 그 당시 노부가 상당히 곤욕을 치른 건 사실이지." 혈영마군(血影魔君)이 음침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한 사람이 노부를 도와주었지. 그리고 그자는 그 후로 줄곧 노부와 손을 잡고 일해 왔다네." "너 같은 괴물을 살려주다니! 그자가 누군지는 몰라도 간이 부었구나." 만리추종이 분을 참지 못해 소리쳤다. "흐흐, 그자의 간이 부었는지 어쨌는지는 노부도 보지 못해서 알 길이 없군. 하지만 그자가 곧 단심백결회의 회주가 되리라는 사실만은 알고 있지." "남궁격!" 장경신이 외쳤다. "한 가지만 더 말해줄까? 남궁도주가 대권을 잡으면 노부는 단심백결회의 태상호법이 될 예정이다. 그러면 정말로 재미있지 않겠나? 지난날 노부를 죽이려고 안달을 하던 단심백결회가 노부의 발 아래에 무릎을 꿇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하하!" 혈영마군이 광소를 터뜨렸다. 그러자 펄펄 날리던 눈송이들이 허공에서 한바탕 요동을 쳤다. 무서운 내공이 아닐 수 없었다. "남궁격, 그자가 정말로 미쳤구나……." 만리추종이 탄식을 했다. 그는 남궁격의 야망이 무섭다는 건 알았지만 이처럼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못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 설마 하니 혈영마군 같은 괴물과 손을 잡았단 말인가! "미친 건 남궁도주가 아니라 너희들이지. 자고로 꿩 잡는 게 매라는 말도 있지 않느냐. 어쨌든 너희는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흥! 칠화섬검수는 노부가 십 년의 세월을 기울여 키워낸 절대의 살수란 말이다." 혈영마군이 눈짓을 했다. 그러자 그때까지 잠자코 서 있던 은화인들이 조금씩 옆으로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천천히 움직였으나 점차 그 속도가 빨라져서 마침내는 신형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움직임이 어찌나 빠른지 세 사람의 주위에 커다란 원이 하나 둘러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의 몸에서 화려한 검화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검화는 점차 커가면서 가공할 기운을 뿜어냈고 그 기운은 하늘을 덮고 그들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손 한 번 못 써보고 그 기운에 짓눌려 죽을 지경이었다. "차앗!" 두 손에 가득 공력을 주입하고 있던 만리추종이 우렁찬 기합과 함께 두 손을 앞으로 쭉 밀었다. 그러자 거대무비한 장력이 검화를 향해 들이쳐갔다. 하지만 그 순간 검화는 잠깐 주춤했을 뿐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연달아 삼장을 갈긴 만리추종의 얼굴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아무리 기운을 써봐도 그의 장력은 마치 철벽을 두드린 것처럼 강력한 반탄력에 의해 손만 아파올 뿐 아무런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는 중에도 검화는 점점 그 범위가 넓어지더니 마침내 조금씩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검화가 흘리는 가공할 기운은 진정 엄청난 것이어서 마치 쇠사슬로 온몸을 친친 동여매는 것만 같았다. '이건 보통 기운이 아니다. 일곱 사람의 진기를 한데 모아 펼치는 일종의 검막이다.' 장경신은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게 고이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수많은 악전을 치뤄온 그였지만 이 검막을 파해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만일 내 공력이 그전 대로이고 벽라검결 중 절정의 파천황결을 사용한다면 이 검막을 뚫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식의 검막은 전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서 그 고리만 끊는다면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었다. 그러나 말이 쉽지 그 고리를 끊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물러서십시오." 복청양이 침중하게 말했다. 그는 두 자 길이로 줄어든 삼절묵창을 받쳐들고 침중한 안색으로 진기를 모으고 있었다. 그의 안색이 극도로 창백해지면서 옆구리의 상처에서 피가 샘솟듯 흘러나왔다. 하지만 복청양은 아랑곳없이 전신진력을 모으고 있었다. 그의 태도는 장중하기 그지없었으며 엄숙한 기운마저 풍겼다. '저건 어검술의 기수식이다.' 장경신은 복청양이 삼절묵창을 받쳐든 자세를 보며 숨을 삼켰다. "하핫!" 우렁찬 고함과 함께 복청양이 검은 선을 끌며 검화를 향해 덮쳐 가고 있었다. 그러자 하얀 검막이 일순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것 같더니 하나로 모아져 검은 선에 대항했다. 차창 요란한 금속성이 울려 퍼졌다. 그토록 엄밀한 기운을 떨치던 검막이 일순 두 쪽으로 갈라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갈라진 듯 보였던 검막은 이내 하나로 합쳐졌으며 다소 그 범위가 넓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세 사람을 에워싸고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리고 두 팔을 힘없이 늘어뜨린 복청양이 뒤로 비틀비틀 물러나는 것이 보였다. "괜찮나?" 만리추종이 창백해진 복청양을 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러나 복청양은 그 말에 대답할 기운도 없는지 거친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대단하다.'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혈영마군이 놀라움을 삼켰다. '천노살성, 저자의 능력이 이 정도일 줄이야. 만일 저자가 일성만 공력이 더 높았어도 검진은 파해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고 만리추종이나 무당신검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힘을 합쳤다면 검진은 결코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기회는 사라졌다. 천노살성은 다시 그런 일격을 펼쳐내지 못할 것이고 그러면 모든 것이 끝이다.' 혈영마군은 만족한 웃음을 입가에 흘렸다. '흐흐, 천하의 천노살성과 무당신검이 내 앞에서 피를 쏟고 죽게 될 것이다.' 기이한 쾌감이 혈영마군의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그것은 그가 처음 살인을 했을 때 느꼈던 쾌감과도 비슷한 것이었다. 검화는 점점 좁혀지고 있었고 그 속에 갇힌 세 사람의 목숨은 바람 앞의 등불과 같았다. 우웅 거대한 기운이 소용돌이쳤다. 마침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던 검화가 하얀 파도가 되어 세 사람을 덮쳐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복청양의 입에서도 우렁찬 고함이 터져나왔다. 그는 남은 기운을 몰아 검막을 향해 일격을 가하고 있었고 눈에 핏발이 선 만리추종이 거기에 자신의 전력을 더했다. 마침내 두 줄기의 기세가 정면으로 충돌하려는 순간. 모든 것이 결정나려는 순간이었다. 스팟 어디선가 날카로운 기운이 일어나더니 검막의 뒤를 덮쳐갔다. "저, 저건?" 혈영마군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비명 같은 소리가 터져나왔다. 칠화섬검수의 검막은 전력을 앞에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기에 실상 그들의 치명적인 약점은 뒤에 있었다. 만일 누군가가 있어 약간의 힘으로라도 뒤를 친다면 검막은 힘없이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기에 혈영마군은 검막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언제나 조금 떨어져 관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변수에 대비하기 위해서. 하지만 날카로운 기운은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혈영마군으로서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가 비로소 상황을 깨달았을 때 날카로운 기운은 벌써 검막의 뒤를 치고 있었다. "으악!" 처절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칠화섬검수 하나가 맥없이 쓰러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그토록 가공스럽던 검막이 힘없이 붕괴되었다. "으악!" 다시 하나가 훌훌 날아갔다. 전력을 다한 만리추종의 일격에 가슴을 얻어맞은 것이었다. 그 사이 복청양의 삼절묵창은 두 은화인의 어깨를 관통하여 그들을 재기불능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다시 날카로운 기운이 두 명의 은화인을 베어 넘겼다. 설명은 긴 것 같았지만 사실 그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날카로운 기운이 나타날 때부터 여섯 명의 은화인이 죽거나 혹은 부상을 당하여 재기불능이 될 때까지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적이었다. 그리고 모든 상황이 끝난 다음에야 비로소 혈영마군이 괴성을 지르며 덮쳐왔다. "이노옴!" 혈영마군의 머리털이 빳빳하게 곤두서고 있었다. 그의 깡마른 몸이 두 배로 늘어나는 것 같았으며 두 손은 붉은색을 띤 채 세 배로 커졌다. 눈앞에서 자신이 심혈을 다해 키운 칠화섬검수들이 죽어가는 것을 본 혈영마군이 극도로 분노하여 필생의 절기를 펼쳐낸 것이다. "조심해라! 저것은 혈마장이다!" 만리추종이 덮쳐오는 혈영마군을 보고 기겁하여 소리쳤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혈영마군은 한 줄기의 날카로운 기운이 자신의 가슴을 향해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송곳 같은 기세로 곧장 그의 가슴을 찔러오고 있었는데 그 기세가 어찌나 매섭던지 도저히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혈영마군은 덮쳐가는 기세를 늦추지 않고 두 손을 어지럽게 흔들었다. 그의 앞에서 눈송이들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거대한 기운이 일어나고 있었다. 거대한 기운은 가슴 앞으로 닥쳐오는 날카로운 기운을 그대로 꺾어버리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날카로운 기운은 그 거대한 기운 속에서도 힘을 잃지 않고 여전히 기세좋게 혈영마군을 덮쳐가고 있었다. 퍽! 기묘한 소리가 났다. "으음!" 답답한 신음소리도 들렸다. 이윽고 그토록 무섭게 비산하던 눈보라의 소용돌이가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속에 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혈영마군이었다. 그가 백설을 빨갛게 물들이며 넘어져 있었다. 그의 몸은 두 쪽으로 갈라져 있었으며 그리로 선혈이 뭉클뭉클 흘렀다. 검은 내장이 밖으로 삐져 나와 바닥을 더럽힌다. 그 앞에 한 복면인이 서 있었다. 복면인은 칼을 아래로 드리운 채로 아래에 쓰러져 있는 혈영마군을 무심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그 모든 것이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저, 저럴 수가……." 만리추종은 입을 너무 벌려 턱이 빠져버릴 것만 같았다. 단 일도에 혈영마군을 죽일 수 있는 자가 존재하다니! 그가 직접 보지 않았다면 절대로 믿지 않았을 것이다. 복면인이 천천히 도를 거둬들이더니 몸을 돌려 복청양을 보았다. 그의 옷은 여기저기가 찢어져서 맨살이 그대로 내비쳤다. 아까 혈마장과 부딪칠 때 입은 상처였다. 그러나 그는 신형을 비틀거리지도 않았다. "복청양." 그의 입에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당신은 누구요?" 복청양이 가라앉은 음성으로 물었다. 방금 복면인이 보여준 일격은 너무나 엄청난 것이었다. 맹세코 그가 강호에 나온 이래 저러한 절초는 본 적이 없었다. 만일 저자가 친구가 아니라 적이라면 그는 결코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자림의 약속을 잊지 마라." 복면인의 입에서 알 수 없는 말이 흘러나왔다. "사자림의 약속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오?" "내 말만 기억하고 있으면 된다. 사자림의 약속을 잊지 마라. 절대로." 복면인이 훌쩍 몸을 날렸다. 그는 함박눈을 둘로 가르며 신형을 비스듬히 날리더니 이내 어둠 속으로 묻혀 버렸다. "사자림의 약속을 잊지 마라." 그의 음성만이 은은하게 멀어지고 있었다. 복청양은 기운없이 삼절묵창을 거두어 들였다. 그의 주위에는 죽어간 은화인들의 시체뿐이었다. 살아남은 은화인은 부상입은 동료를 끌고 벌써 달아나버린 것이다. "아는 사람이냐?" 만리추종이 옆으로 다가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복청양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한다. "그럴 리가…… 저 사람은 너를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저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사자림의 약속이라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복청양은 복면인이 한 말을 곰곰이 되새겨 보았다. 그가 공연한 말을 할 리 없으니 그 말 속에는 뭔가 깊은 뜻이 숨어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누군지 알 길이 없었다. "어쨌든 한 가지만은 분명하군. 저자가 적은 아니라는 것이야." 만리추종이 침잠해 가는 복청양의 기운을 북돋워 주려는 듯 활발하게 말했다. "만나야 할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겠지. 지금은 어서 갈 길을 가는 게 좋아. 어차피 세 목숨을 건진 셈 아니냐!" * * * 복청양 일행이 운유애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사흘 뒤였다. 장경신으로 하여금 단심백결회의 중심이 되어 십마에 대항하게 하려 했던 계획이 틀어진데 대해 천품신성 악자량은 크게 실망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그는 이내 체념을 했는데, 그 체념이 너무 빨라 그가 어쩌면 이 모든 일을 예상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였다.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만. 천품신성은 장경신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두 사람이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후 장경신이 운유애에 그대로 주저앉은 것을 보면 그 대화가 상당히 유익했던 모양이다. 장경신의 공력은 어렵지 않게 회복되었다. 그것은 그의 공력이 폐쇄된 게 허영대사의 특이한 점혈법에 의해서였는데 천품신성이 소림사의 점혈법에 대해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산에 눈이 쌓이고 다시 그 눈 위에 덧눈이 덮여 통행이 불편하게 될 때까지 운유애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천품신성은 무슨 일을 하는지 자신의 거처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으며 은조를 세상에 내보낸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른 특별한 지시도 없어서 복청양과 장경신은 무료한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복청양으로서는 오랜만에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는 것이었지만 단심백결회의 사정을 모르는 장경신은 초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역시 천품신성의 지시가 없는 한 함부로 산을 내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유일하게 산을 내려간 사람은 만리추종이었다. 그는 찬품신성의 특별한 지시를 받고 단심백결회와 십마의 동태를 알아보러 간 것이다. 그러나 하산한 만리추종에게서는 보름이 넘도록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저 바깥에서야 어떤 일이 벌어지건 말건 운유애의 겨울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천품신성은 몹시 수척한 모습이었다. 이 보름 사이에 그는 십 년은 늙은 듯이 보였다. 동안(童顔)이던 얼굴은 쭈글쭈글 주름이 잡혔으며 자애롭기만 하던 눈도 흐릿했다. 그는 몹시 피로에 지쳐 있었지만 그런 내색을 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사부님……." 보름 만에 사부의 얼굴을 보는 은조는 행여 사부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는가 걱정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런 은조를 보는 천품신성은 여전히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염려할 것 없다." 좁은 초막 안에는 관솔불이 연기를 내며 타고 있었다. 관솔불빛은 흐릿했지만 그렇다고 사물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다. 더구나 여기에 있는 사람은 천품신성을 제외하고는 어둠에 구애를 받지 않았다. 밖에서는 사각사각 단조로운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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