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유애에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번에 눈이 내리면 산짐승들은 먹을 것을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그 동안 걱정을 많이 했을 줄 안다." 천품신성이 깊은 눈으로 앞에 앉은 세 사람을 돌아보았다. 천노살성 복청양과 무당신검 장경신, 그리고 은조. 바깥에 나가면 하나같이 세상을 크게 떠들썩하게 할 인물들이었지만 천품신성의 눈에는 그저 철없는 어린애와 같았다. "너희도 알다시피 상황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그 가변적인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구나." 천품신성이 의미를 알 수 없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아아…… 내 실수였다. 진작에 이런 생각을 했어야 하는 것을…… 시작이 너무 늦었다. 인간의 능력이 아무리 크다 하나 하늘의 뜻을 거역할 수는 없거늘 나는 그 동안 하늘의 뜻을 거역하려고 무진 노력을 해왔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장경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의 가장 큰 실수는 여럿의 힘을 합쳐 십마에 대항하려고 한 것이다. 지난날 나는 그런 방법으로 통천삼십삼마를 이긴 바 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너무 간사하여 한 번 성공한 일은 쉽게 잊혀지지가 않는구나. 그래서 나는 이번에도 그러한 방법을 쓰려고 한 것인데 바로 그게 실수였다." "사부님." "가만히 있거라." 천품신성이 손을 들어 은조의 말을 막았다. "나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다. 하나의 힘은 작은 것이나 그 작은 힘이 하나로 합쳐지면 큰 힘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결집된 힘이라면 십마를 이길 수 있다. 단심백결회와 전 백도가 하나로 합쳐지기만 했다면 십마의 준동을 막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바로 그렇습니다. 모두가 하나로 힘을 합하기만 한다면 반드시 십마의 준동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장경신이 소리쳤다. 그의 눈은 굳은 의지로 훨훨 불타고 있었다. 그러잖아도 이 산속에 갇혀서 갑갑했던 참이라 천품신성의 명만 떨어지면 이제라도 당장 뛰쳐나갈 기세였다. "그렇지 않다. 한때 나도 그러한 착각에 사로잡혔으나 그러한 생각에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다." 천품신성이 장경신의 말허리를 자르며 조용히 말했다. "내가 간과한 것은 십마가 이미 그러한 방법으로 좌절을 겪었다는 것이다. 그들도 바보는 아니니 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리 없건만 나는 그러한 사실을 무시한 것이다. 불행히도 지금은 예전과 같은 방법으로는 그들을 막을 수 없다. 그것은 여럿의 힘을 합한 것보다 더 큰 힘을 지닌 절대인이 있기 때문이다." "단황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복청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다." 천품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십마는 지난날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하여 어떠한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는 절대인을 만들어내고자 했으며 그러한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 그런데도 나는 십마를 예전의 십마로 생각하고 그들을 막으려 한 것이다. 오산의 출발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단황을 막아내지 못하는 한 십마가 아니라 백마를 막아낸다고 해도 모든 것은 허사다. 십마가 지니고 있는 힘의 원천은 바로 단황에게 있는데 가지를 아무리 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따라서 이번 싸움은 단황 그를 막아내는 데 모든 관건이 달렸다." "하지만 저는 단황이 그렇게까지 강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장경신이 힘주어 말했다. 아마도 그것은 호승심이리라. 천하에 자신보다 강한 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젊은이다운 호승심. 그러나 그의 말은 은조에 의해 여지없이 꺾이고 말았다. "사부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아마도 이 자리에서 단황의 실체를 제대로 본 사람은 저 하나일 것입니다. 그는 진정으로 강합니다. 아마도 하늘 아래 그보다 더 강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믿지 않겠지만 장회주라고 하더라도 그의 십초를 받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 그가 진신실력을 발휘한다면 오초를 받아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럴 리가……." 장경신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미 은조의 능력을 알고 있었다. 은조가 자신보다 상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많이 떨어지는 하수도 아니다. 그런데 그런 은조의 입에서 그 같은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그가 사람인지조차 의심스럽습니다. 그는 이제껏 자신의 진신실력을 한 번도 보인 적이 없지만 그가 지니고 있는 능력을 전부 발휘한다면 그야말로 가공할 것입니다. 만일 저보고 그와 싸우라고 한다면 기꺼이 싸울 것이지만 그의 삼초를 받아낼 자신은 없습니다." "네 말이 옳다." 제자가 의기를 꺾는 말을 하고 있음에도 천품신성은 조금도 불쾌한 내색없이 자애롭게 말했다. "단황은 십마 전체를 합친 것과 같다. 아니, 그 이상이다. 그를 꺾지 못한다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 머리를 자르지 못하는데 일만 가지 계획이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이냐." "하지만 그자가 그렇게 강하다면 무슨 수로 그를 제압하겠습니까?" 복청양이 침을 삼키며 물었다. 그는 이제까지 단황을 본 일이 없건만 그에 대한 두려움이 일었다. 단지 듣는 것만으로도 누구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게 앞으로 너희들이 할 일이다." 천품신성이 힘주어 말했다. "나는 그 동안 한 가지 방법을 연구해 왔다. 그리고 확신은 할 수 없지만 그 방법이라면 단황을 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바로 이것이다." 휙 한 권의 책이 세 사람 앞에 날아와 내렸다. 그것은 복청양도 익히 알고 있는 책. 바로 천공검환록이었다. "천공검환록에 대해서는 이미 다들 잘 알고 있을 터이니 구구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 천공검환록은 천고의 비급이나 세상에는 쓸모없는 책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그걸 무시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에 청양이가 산을 내려간 뒤, 나는 천공검환록에 적힌 내용을 다시 살펴보면서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천공검환록이 소문처럼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이…….' 장경신이 천공검환록을 움켜쥐었다. 천공검환록은 세상에 널리 유포되어 있는 비급이어서 그도 읽어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역시 무시하지 않았던가! "천공검환록에 적힌 일초 검식, 파천일해만 완벽하게 시전할 수 있다면 단황을 이기는 일은 어렵지 않다. 세상에 그 누구도 파천일해를 막아내지 못한다. 그것은 천공검환록을 다시 검토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이다. 그것은 진정 완벽한 검식이라 인간이라면 누구도 막아내지 못한다. 아니, 신이라도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새삼스럽게 그 검식을 창안한 세 분 고인을 존경하게 되었다. 그것은 인간의 검식이 아니다. 하늘의 검식이다." 천품신성의 얼굴에 조용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는 어쩌면 그 세 분 고인을 만나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파천일해는 세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특별한 검식은 아니다. 다만 그것은 시전하는 사람이 가진 바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무서운 점이다. 한 사람이 낼 수 있는 능력은 거의 무한대에 가깝다. 그런데 그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게 한다면 그것을 누가 감당할 수 있을 것이냐." 천품신성이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한꺼번에 많은 말을 하기가 힘이 드는 모양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천공검환록을 익히는 것은 어렵고 어렵다. 만일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자가 파천일해를 무리하게 시전하려고 한다면 그는 자신의 몸 속에서 폭발하는 잠재력을 이기지 못하여 오히려 자신을 망치게 될 것이다. 또한 파천일해가 진정한 위력을 발휘하려면 세 사람의 절정고수가 필요하다. 이 세 명이라는 것은 절대 조건이어서 어느 하나만 부족해도 성공하지 못한다." "그럼……." 복청양은 옆을 돌아보았다. 여기 있는 사람이 바로 셋이 아닌가! 그는 비로소 천품신성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바로 그렇다." 천품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너희들로 하여금 파천일해를 익히게 하여 단황과 싸우게 할 참이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장경신이 의문을 표시했다. 세 사람의 절정고수. 그러나 여기 있는 삼 인 중에 자신이 절정고수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나도 자신할 수는 없다." 천품신성이 장경신의 의문을 인정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지니고 있는 자산이라는 게 바로 너희들뿐이 아니냐. 그러니 가지고 있는 것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수밖에. 나는 그 동안 천공검환록을 깊이 연구하여 어느 정도 그 안에 적힌 묘리를 터득했다. 그리고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들에게 전수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들이 노력하기만 한다면 파천일해를 시전할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은 과히 어렵지 않다. 큰 시간을 요하는 것도 아니니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다면 단황을 이길 수 있겠군요!" 은조가 흥분하여 소리쳤다. 그녀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면사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으로 보아 마음의 동요가 심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게 그렇지 않다." 천품신성의 말은 은조의 흥분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같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파천일해를 완벽하게 시전할 수만 있다면 단황을 이길 수 있다. 이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단황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절대로 그 일초 검식을 막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희망일 뿐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누가 있어 감히 파천일해를 완벽하게 시전할 수 있다는 말이냐. 내가 너희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너희 정도라면 파천일해를 익힐 수 있는 최소 조건이 충족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최소 조건일 뿐이다. 파천일해를 완벽하게 시전하려면 시전하는 세 사람의 능력을 동일하게 맞춰야 하며 그들의 능력이 지극히 뛰어나야만 한다. 그러나 너희들은 불행히도 천공검환록이 요구하는 능력에 미치지 못한다. 천공검환록이 요구하는 조건에 맞추려면 너희들은 아마도 지금보다 배에 가까운 능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그럴 수가……." 여기 있는 세 사람 다 자신의 능력에 강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배를 더하라니, 그것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닌가! "내가 보기에 천공검환록을 진정으로 익힐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은 단황 하나뿐일 것이다." 그러한 세 사람의 충격을 이해했는지 천품신성이 덧붙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희에게 파천일해를 익히기를 요구한다. 그것만이 단황을 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노력하고 너희가 최선을 다한다면 파천일해가 지니고 있는 원래 능력의 오성 가량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방금 오성이라 하셨습니까?" "그렇다." 천품신성이 무겁게 말했다. "하지만 오성이라 해서 얕보아서는 안 된다. 만일 파천일해를 오 성만 시전할 수 있어도 그 위력은 가히 경천동지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막아낼 수 있는 자가 존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단황이 지니고 있는 능력은 너무나 가공한 것이기에 나는 승리를 장담하지는 못한다. 만일 하늘이 도와서 파천일해를 오성만 시전할 수 있다면 단황과의 승부에서 아마도 사 할 정도는 승산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승산이 사 할이라면 한 번 해볼 만한 도박이 아니냐?" 승산이 사 할이라면 패할 가능성은 육 할이라는 뜻이 된다. 파천일해의 위력을 그렇게 높이 평가하면서도 겨우 그 정도의 승산을 잡는 것은 천품신성이 단황을 얼마나 어렵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게 했다. "사실 청양이와 경신이의 능력이라면 파천일해를 육성까지도 시전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내가 오성의 가능성만 점치는 것은 은조, 너의 능력이 저들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이다. 파천일해를 시전하기 위해서는 세 사람의 능력이 동일해야만 하는데 그러자면 저들이 너의 능력에 맞출 수밖에는 없다. 내가 오성의 성취만을 기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은조가 고개를 숙였다. 천품신성의 말이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린 모양이었지만 감히 사부의 앞이라 그런 내색을 하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저희 둘에 적룡을 끼워넣는 것은 어떨까요? 적룡이라면 그 능력이 저에게 뒤지지 않습니다." 장경신이 불쑥 말했다. 사실 무림삼룡 개개인의 실력은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어서 그가 적룡을 떠올린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나도 그 생각을 안한 것은 아니다." 천품신성이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적룡이란 여인은 이미 단황과 상당히 가까운 처지인 것 같더구나. 그런 그녀가 우리의 일에 협조할 리 없다. 파천일해를 시전하기 위해서는 세 사람의 마음이 하나로 일치되어야만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적룡은 적임자가 아니다." '적룡이…….' 적룡인 날수염적 군성초가 이미 단황과 가깝게 되었다는 말은 장경신에게는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니……." 천품신성이 무겁게 일동을 돌아보았다. "이제는 너희들뿐이다. 너희들이 힘을 합하여 단황을 꺾어 주어야만 하고 또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너희들을 믿는다." '단황…….' 복청양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단황이라는 그 낯선 이름이 거대한 태산과 같은 무게로 그를 짓눌러 오고 있었다. '과연 그를 이길 수 있을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다만 최선을 다할 수밖에…… 그날부터 운유애에는 새로운 활력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천품신성의 지도로 파천일해를 익히기 시작했다. 파천일해를 익히는 과정은 이미 천품신성의 많은 연구가 있어서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파천일해는 처음에는 무척 단순해 보였다. 그러나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 난해함이 심해져서 일조일석에 성취를 이루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히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조급한 성격이 아니었으며 무공이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게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만리추종이 운유애에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다시 열흘이 지나서였다. 그는 몹시 수척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고 있는 차림새도 걸인이나 다름없는 것이, 그 동안 겪은 고초가 상당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는 미처 쉴 사이도 없이 두 가지의 놀라운 소식을 토해 냈다. 그 중 하나는 단심백결회가 새로운 회주로 남궁격을 선택했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이미 예상됐던 일이었다. 하지만 만리추종이 전한 두 번째의 소식은 진정 놀라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복청양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운유애를 빠져나갔다. 그의 발길은 단심백결회로 향하고 있었다. * * * 무림은 경동하고 있었다. 그 경동의 근원지는 바로 천노살성이라는 이름이었다. 천노살성이 단심백결회를 친다. 천노살성은 십마를 이끌고 있다. 그는 이미 단심백결회를 피로 물들이겠다고 선언했다. 십마는 악마다. 아무도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살고 싶으면 단심백결회를 떠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옥석을 가리지 않고 모두 죽을 것이다. 천하가 어둠에 잠긴다. 대암흑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그런데도 새로운 회주가 된 남궁격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고 만 있다. 이제 최후는 멀지 않았다. 머지않아 악의 무리가 천하를 수중에 넣을 것이다. 악씨세가와 화화궁은 이미 무너졌고 무당파도 단심백결회를 떠났다. 육대지부는 거듭된 동원령에도 불구하고 움직이려 하지 않으며 칠십 이순찰당은 각기 자가의 안위를 돌보는 데만 급급해 있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나 단심백결회는 텅 비어 있다. 어둠을 몰고오는 소문들. 그 소문의 끝은 언제나 절망이었다. 그 동안 숱한 피바람을 일으키며 강호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천노살성과 전설적인 마인들인 십마의 이름이 한데 합해지면서 이러한 결과가 초래되고 있는 것이다. 무를 익힌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감추고, 문을 꼭꼭 닫아걸고 숨기에 바빴으며 많은 고인들이 산속으로 은거했다. 누구도 십마와 맞서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 지난날 그토록 드높았던 의기는 간곳이 없고 모두들 자신의 목숨만 소중한 줄 알았다. 단심백결회가 무너지면 그 여파가 곧바로 자신에게 미칠 것이건만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저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며 이 혈겁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바야흐로 암흑의 시대가 도래하는가. 하지만 그 암흑에도 빛은 있었다. 무궁수사 남궁격은 병법의 대가다. 그는 십마와 천노살성을 지옥으로 밀어넣을 것이다. 무궁수사가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 그를 따르면 십마를 이길 수 있고 장차 천하의 권력을 손에 쥐게 될 것이다. 그 소문은 믿는 사람이 별로 없는 미약한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소문도 있었다. 한 기인이 나타났다. 그는 지난날 천품신성이 그랬던 것처럼 십마를 주살하고자 한다. 또한 구태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단심백결회를 벌하고 무림에 새로운 정의를 세울 것이다. 그의 능력은 지난날 천품신성에 못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그 이상이다. 그의 무공은 이미 신의 경지에 도달했으며 천하무적이다. 누구도 그를 이길 수 없다. 설사 십마라고 하더라도 그의 일초지적도 되지 못할 것이다. 십마가 이토록 서두는 것은 바로 그 기인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마는 결코 그 기인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십마의 최후는 멀지 않았으며 천노살성도 이제 곧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그 기인이 사람을 모으고 있다. 그는 단신으로도 십마를 주살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나 이 땅에 정의를 세우기 위해 천하동도의 힘을 하나로 모으고 있는 것이다. 여산(麗山) 기슭에 하나의 성이 우뚝 섰다. 그 성의 이름은 정의지성(正義之城)이라고 하는데 바로 그 기인의 본 거지이다. 거대한 성이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나타났다. 그러한 능력을 지닌 사람은 신일 수밖에 없다. 그 기인이야말로 신이다. 기인을 따라라. 그러면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 기인의 이름은 단황이며 별호를 천하대협(天下大俠)이라고 한다. * * * 한 청년이 있었다. 백의를 걸친 청년이었다. 키는 약간 작은 편이었으며 몸매는 여인의 것처럼 가늘었다. 얼굴은 옥을 깎아놓은 것처럼 하얗고 얇은 입술이 굳게 다물려 있었다. 가는 눈썹이 얼굴을 장식하고 있다. 그러나 그토록 아름다운 용모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에는 그 누구도 범접하기 어려운 차가운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강한 살기였으며 보는 사람의 피를 얼어붙게 만드는 강한 빛을 띠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이름을 안다. 청년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든든한 의지가 되었으며 청년과 적대시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이름. 천노살성 복청양. 그인 것이다. 천노살성은 차가운 시선으로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살육의 현장이었다. 하얀 옷과 검은 옷을 걸친 사람들이 어우러져 싸우고 있었다. 싸움은 산기슭을 가득 메운 채 벌어지고 있었는데 흑의를 걸친 사람들의 수효가 훨씬 많았으며 백의의 인물들이 뒤로 밀리는 중이었다. 아니, 그것은 단순히 뒤로 밀리는 정도가 아니었다. 백의인들은 이미 싸울 의지를 상실하고 달아날 구멍을 찾아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흑의인들이 그들을 끝까지 쫓아가며 도살하고 있었다. 그것은 애당초 상대가 되지 않는 무자비한 살육이었다. 천노살성의 뒤에는 많은 사람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흑의를 걸쳤으며 전신으로 사악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지마의 모습도 보였고 흑마와 백마, 그리고 환마도 있었다. 십마 중 네 명이 그와 함께 있는 것이다. "끝났군." 조용히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지마가 중얼거렸다. "그렇군요." 천노살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일 각 이내에 저들을 청소할 수 있을 것이네. 그러면 단심백결회의 제이저지선도 무너지는 것이지." "그런데 의외로 저항이 미미하군요." 천노살성이 다소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그는 공공연히 단심백결회를 치겠다고 선언하고 대병을 이끌고 정면공격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단심백결회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힐 줄 알았다. 그리고 그 싸움은 승패를 장담하기 어려운 것이 되리라 여겼다. 그런데 정작 뚜껑을 열고 보니 이건 상대가 너무 허약하지 않은가. 단심백결회의 제일저지선도 불과 일 각 만에 무너졌고 단심백결회의 회도들은 서로 앞을 다투어 달아나기에 급급했다. 그런데 이 제이저지선 역시 반 시진도 안 되어 무너지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제이저지선이 무너지면 곧바로 단심백결회였다. 더 이상은 단심백결회를 지켜줄 외부 보호막이 없는 것이다. "이상할 것 없네." 지마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는 이 모든 일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투였다. "남궁격은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함을 알고 힘을 하나로 모으고 있는 중일 게야. 단심백결회의 진정한 힘은 저 안에 숨어있네. 지금 죽어가고 있는 저들은 다만 형식적인 눈가림일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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