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록]천객 - 4 - 9편 (9/17)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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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록]천객 - 4 - 9편 (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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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자는 검을 미처 절반도 빼내기 전에 다시 동료의 뒤를 이어 쓰러지고 말았다. "핫!" 일수에 두 사람의 경비를 쓰러뜨린 복청양이 낮은 기합을 지르며 놀라 일어나는 두 명의 검수를 덮쳐갔다. "크윽!" "침입자다.
막아라!" 두 명의 검수는 다급히 검을 빼들어 휘둘렀다.
그러나 그것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무작정 방망이를 휘두르는 것과 같은 동작이었다.
복청양의 기습이 워낙 갑작스러웠던 데다가 잠에서 깨어난 직후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서둘러야 한다." 복청양은 쓰러진 자들의 허리춤을 뒤져 열쇠를 찾아냈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그러나 열쇠를 꽂자 듣기 싫은 마찰음을 내며 양쪽으로 열렸다.
복청양은 안으로 들어갔다.
양쪽 벽에 유등이 걸려있어 어둡지는 않았다.
이 전각은 처음부터 감옥으로 만들어진 것인 듯 좌우는 반들반들한 청석의 벽이었으며 통로는 구불구불했다.
한참을 더 가자 비로소 조금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양쪽으로 철책이 보였다.
그리고 철책 안에는 각각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우측의 감옥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하나는 거적을 머리까지 둘러쓰고 누워 있어서 모습을 알아볼 길이 없었다.
다른 하나는 머리가 벗겨진 노인이었다.
노인은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잠을 자고 있는 건 아닌 듯했다.
그러나 반개한 눈에는 아무런 정기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분명 복청양을 보고 있었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에게는 복청양이 낯선 사람일 것이 분명하지만 관심도 없다는 모습이었다.
노인은 왼쪽 팔이 없는지 소매가 텅 비어 있었다.
좌측의 감옥에는 한 사람이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백의를 걸친 청년이었다.
청년은 잠이 들었는지 한 팔을 들어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있었다. "저건?" 청년의 모습을 주의깊게 살펴보던 복청양이 멈칫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낯이 익었던 것이다.
비록 남장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여자였다.
그리고 복청양이 잘 아는 얼굴이었다.
설사 꿈에서 보았다 하더라도 복청양이 그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청년은 그의 동생, 복금사였으므로. "금사야!" 쾅! 감옥의 문이 부서져 나갔다.
거대한 충격에 전각 전체가 무너질 듯이 흔들렸다.
무모하기 그지없는 행동이어서 아마도 잠이 든 모든 사람들을 깨우는 데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복청양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일격으로 감옥의 문을 부수고 복금사를 향해 몸을 날렸을 뿐이다. "금사야!"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복금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오빠의 음성을 들었으면 반갑게 일어나야 마땅하건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복청양은 다급히 무릎을 꿇고 복금사를 안아 일으켰다.
복금사의 팔이 축 늘어진다.
복청양의 가슴이 순간적으로 덜컹 내려앉았다.
그는 혹시라도 금사가 잘못 되지는 않았나 하여 그녀의 심장에 귀를 대보았다.
심장은 뛰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규칙적인 박동이었다.
복금사는 죽은 것이 아니었다.
다만 의식을 잃고 있을 뿐이었다. '금사야…….' 동생이 살아 있다는 사실.
그것이 복청양에게 큰 위안을 안겨주었다.
의식을 잃고 있는 게 혈도를 짚여서이건, 아니면 약물을 복용해서이건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었다.
살아만 있다면 그녀를 구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복청양은 복금사를 안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당연히 감옥 안에 있어야 할 두 사람이 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을 보았다. "후후후!" 독두노인(禿頭老人)이 웃음을 터뜨렸다. "천노살성, 네가 올 줄 알았다." "함정이었군." 복청양이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이 모든 게 속임수였어." "그렇다." 또 한 사람, 그 역시 노인이었다.
독두노인과는 달리 머리칼과 수염을 길게 기르고 있었다.
얼굴이 온통 털로 뒤덮여서 이목구비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는 독두노인과는 반대로 오른쪽 팔이 없었다.
팔이 있어야 할 자리를 끈으로 질끈 동여매고 있었다. "우리는 좌우쌍마라고 한다.
우리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독두노인, 우마(右魔)가 말했다. "물론이지." 좌우쌍마.
그들은 지난날 손노인이 제마옥에서 구해내라고 부탁한 인물들이 아닌가! 그러나 정작 제마옥에 갔던 복청양은 그들을 구하기는커녕 참혹한 참사의 현장만 목격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름만 들어도 그들이 낯설지 않았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 "물론이다.
천노살성, 너는 여기에 오는 것이 아니었다.
너의 어리석음은 정말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구나." 장발노인, 좌마(左魔)가 말했다.
좌우쌍마는 각각 한 자루씩의 검을 꺼내들고 있었다.
그들의 검은 보통 검보다 조금 짧았고 끝이 약간 구부러져 있었다. "비켜라." 복청양이 나직하게 말했다. "너희들과 놀고 있을 시간이 없다." "논다? 흥, 참으로 광망한 말을 하는구나." 우마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검을 가볍게 떨쳐냈다. "천노살성, 여기가 너의 무덤이 될 것이다.
미안하지만 우리는 너의 목이 필요하다!" 우마의 검이 차가운 한기를 일으켰다.
그는 곧장 복청양의 가슴을 찔러가고 있었다. "핫!" 복청양이 급히 뒤로 도약하여 물러났다.
그는 복금사를 안고 있었기에 반격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있는 곳은 좁은 감옥이었다.
단 한 번의 도약으로도 등이 벽에 닿았다.
더는 물러설 길이 없다.
그리고 그가 멈칫하는 사이에 이번에는 좌마의 검이 닥쳐왔다.
무자비한 검날에 복청양과 복금사가 일거에 양단이 되려는 순간이었다.
쨍! 날카로운 금속성이 일어나며 좌마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좌마는 검을 쥔 손아귀가 찌르르 저려오는 것을 느끼며 의아한 눈으로 전면을 바라보았다.
복청양이 어느새 삼절묵창을 꺼내들고 있었다.
그는 위기를 느끼자 순간적으로 복금사를 바닥에 내려놓고 삼절묵창을 꺼내어 좌마의 검을 막아낸 것이다. "후후…… 천노살성의 삼절묵창은 소문이 자자하지." 좌마가 음침한 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너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좌마의 검이 다시 한광을 길게 끌며 덮쳐왔다.
동시에 우마도 끌리듯 움직이고 있었다.
좌우쌍마는 다같이 한쪽 팔이 없었으며 남은 팔로만 검초를 구사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연수에 능했다.
하나의 약점을 하나가 적절하게 보충해 가면서 좌우에서 덮쳐드는 것이다.
그들이 일단 손을 쓰면 그 위력이 배가되어 가공할 위력을 나타낸다.
하지만 복청양은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좁은 감옥에서 신법을 구사한다는 게 애당초 무리가 있었던 데다가 복금사가 바닥에 있으니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다만 삼절묵창으로 엄밀한 수비벽을 형성하며 좌우쌍마의 공격을 막아낼 뿐이었다.
순식간에 삼십여 초가 지나갔다.
이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고 무식하게 정면 승부를 벌이면 공력의 고하가 승부를 결정짓는 것이다.
그리고 좌우쌍마는 당연히 자신들의 공력이 높을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당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삼절묵창과 검이 부딪칠 때마다 좌우쌍마는 팔이 찌르르 하여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복청양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삼절묵창으로 쇄금십팔창법의 엄밀한 수비벽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그 수비벽이 어찌나 조밀한지 빗방울 하나 스며 들어갈 틈이 없었다.
좌우쌍마의 집요한 공격은 번번이 삼절묵창에 막혀 되튕겨 나오고 있을 뿐이었다. "젠장, 이대로 가다간 끝이 없겠다." 마침내 좌마가 성질을 이기지 못하여 소리쳤다.
한쪽은 공격하고 한쪽은 수비한다.
그러한 형국은 처음부터 아무런 변함이 없었다.
상식적으로는 수비하는 쪽이 먼저 지치기 마련이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좌우쌍마는 점차 공력면에서 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차앗!" 좌마가 기합을 지르며 검을 끌었다.
그러자 그의 검이 긴 한광을 그려내며 복청양을 덮쳐갔다.
동시에 우마도 같은 방식으로 복청양을 덮쳐가고 있었다.
이번의 공격은 이제까지의 공격과는 차원이 달랐다.
좁은 감옥 안이 온통 좌우쌍마가 내뿜는 검기로 가득 차 있었다.
검기는 충만할 대로 충만하여 감옥을 폭발시켜 버릴 것만 같았다.
복청양의 삼절묵창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회전했다.
그는 더 이상 한 자리에 가만히 서서 수비만 할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좌우쌍마의 엄청난 검기에 휘말려 몸이 갈기갈기 찢어질 판이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전력을 다한 쇄금십팔창법을 구사하며 곧장 좌우쌍마의 틈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쩡 철그렁 쩡! 지긋지긋한 쇳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지더니 충만하던 검기와 창영이 일시에 사라졌다.
복청양은 비틀비틀 뒤로 물러나 벽에 등을 기댔다.
그의 영준하던 얼굴은 극도로 창백했으며 삼절묵창을 든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옷도 폭풍우에 휘말린 것처럼 여기저기가 찢어져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낭패하기는 좌우쌍마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더했다.
옷은 갈기갈기 찢어져 누더기가 되었으며 좌마의 긴 머리칼은 절반이 잘려 있었다.
우마 역시 펄럭이던 빈 소매가 어디로 갔는지 달아나고 없었다. "이럴 수가……." 좌우쌍마는 자신들의 회심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복청양도 자신들보다 그다지 나은 상황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두 눈에 흉포한 빛을 폭사시켰다. "찻!" 좌마가 검을 길게 끌며 복청양을 덮쳐갔다.
그와 동시에 우마도 움직였다.
그들은 심의상통하여 하나가 움직이면 언제나 다른 하나가 따라서 움직이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우마가 움직이는 방향이 조금 달랐다.
그는 엉뚱하게도 바닥에 쓰러져 있는 복금사를 덮쳐갔던 것이다.
의식을 잃은 채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그녀를. "무슨 짓이냐!" 복청양이 대경하여 급히 우마를 막아갔다.
그러나 그의 전면에는 어느새 좌마의 검이 번뜩이고 있었다. "흐흐…… 너의 상대는 여기다." "욱!" 복청양이 일검을 맞고 비틀거렸다.
그는 간신히 우마의 공격을 막아내어 복금사를 위기에서 구해내기는 했지만 그 바람에 좌마의 일검을 맞고 만 것이다. "후후후." 좌마가 떼구루루 바닥을 구르며 복금사를 찔러간다.
그의 이번 일검은 바닥을 구르며 펼치는 것이라 더욱 막아내기가 힘들었다.
복청양은 다급히 자세를 낮추어 좌마의 공격을 막아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바람에 우마의 일검이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머리칼이 싹둑 베어져 풀풀 날린다.
가까스로 위기는 모면한 것이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좌우쌍마는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공격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복청양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복금사를 찔러갔다.
그래서 복청양이 복금사를 구하기 위해 자세가 흐트러지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른 하나가 복청양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들의 이러한 작전은 상당히 효과적이어서 복청양은 순식간에 십여 곳에 상처를 입고 있었다.
검상은 하나같이 가벼운 것이었지만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그의 온몸을 적시고 있었다.
전신에서 피를 흘리며 악착같이 동생을 보호하려고 하는 복청양의 모습은 처절하기 그지없었다. "흐흐…… 마지막이다." 마침내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한 우마가 곧장 복금사를 내리쳤다.
그의 일검은 잔인하기 그지없어서 조금의 인정도 남겨두지 않았다. "안 돼!" 복청양이 다급히 삼절묵창을 휘둘러 우마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그 순간 옆구리의 살점이 뭉텅 떨어져 나갔다.
좌마의 검이 그의 옆구리를 찌른 것이다. "윽!" 복청양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그는 정기가 사라진 눈으로 자신의 정수리를 향해 날아오는 우마의 검을 보았다. '이젠 끝인가…….'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거의 본능적으로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동시에 삼절묵창이 여섯 자 길이로 늘어나며 우마의 어깨를 향해 날아갔다. "엇!" 우마가 다급한 신음소리를 뱉어냈다.
워낙 두 사람이 밀착해 있었다.
더구나 우마는 삼절묵창이 갑자기 길어질지는 몰랐으며 더구나 복청양이 그것을 던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당연히 피할 여가가 없었다.
삼절묵창이 오른쪽 어깨에 깊숙이 박혔다. "크아악!" 우마가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원래가 한쪽 팔밖에 없던 자였다.
그런데 그 남은 팔마저 삼절묵창에 찔려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크와악!" 몸부림을 치던 우마가 돌연 몸을 날렸다.
그는 곧장 바닥에 쓰러져 있는 복금사를 향해 전신으로 부딪쳐 가고 있었다. "안 돼!" 복청양은 급히 몸을 일으켜 우마를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 좌마의 살기어린 검이 그를 휘감았다.
복청양은 눈앞에 검기가 닥쳐오는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몸을 굴려 피했다.
쾅! 요란한 폭음이 들렸다.
우마의 머리가 복금사의 배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우마는 그 자세대로 몸부림을 치다가 축 늘어졌다.
죽은 것이다.
하지만 우마의 머리가 박혀있는 복금사는 더욱 처절한 모습이었다.
그녀의 배는 붉은 선혈로 흥건히 젖어 있었으며 검은 내장이 밖으로 비집고 나와 있었다.
복금사의 몸이 몇 차례 요동을 치는 듯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다시는 움직이지 못했다. "금사야!" 복청양의 입에서 절규가 터져나왔다.
순간 그의 눈앞에 하얀 광채가 번뜩였다.
좌마가 죽은 우마를 보고 눈이 뒤집혀 무지막지하게 그를 덮쳐온 것이다. "금사야." 복청양은 아무 것도 보지 않았다.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눈앞에 검광이 닥쳐오는 데도 그것조차 보이지 않았다.
머릿속이 그저 하얀 공백이었다.
잠시 시간이 정지된 듯했다.
복청양은 문득 자신의 손이 무척이나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마치 온수에 손을 담그고 있는 듯했다.
복청양은 흠칫 놀라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제야 사물이 명확히 보였다.
머릿속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깨끗하게 맑아져 있었다.
그리고 너무나 놀라운 광경이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좌마가 그의 앞에 우뚝 서 있었다.
좌마의 검은 그의 다리에 작은 상처를 내었는데 그리로 뜨거운 피가 철철 흘렀다.
그러나 좌마는 그 자세 그대로 굳어져 있었다.
마치 목상이 되어버린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두 눈은 한껏 부릅떠져 있었으며 얼굴은 극도의 놀라움으로 인해 일그러져 있었다.
그리고 복청양의 손은 좌마의 가슴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그리로 좌마의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방금 그가 느꼈던 따뜻한 감촉은 바로 좌마의 피였다. "내가……." 복청양은 좌마의 가슴에 손을 박은 채로 넋 나간 듯이 중얼거렸다. "내가 사람을 죽이다니……." 그는 좌마의 가슴에서 손을 빼냈다.
그러자 좌마가 고목처럼 옆으로 쓰러진다.
쿵! 복청양은 좌마를 내려다보지도 않았다.
그는 피로 물든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기이하게도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복수를 했다는 통쾌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모든 것이 백지였다.
아무런 감정도 일어나지를 않는다.
그는 휘청휘청 복금사를 향해 걸어갔다. "금사야……." 복금사의 얼굴은 너무나 평화로웠다.
마지막 순간에 느꼈을 지극한 고통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이것은 사람들이 바라는 가장 완전한 죽음인지도 모른다.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
그것처럼 큰 축복은 없을 테니까.
복청양은 복금사가 최후의 순간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약간의 위안을 받았다.
그는 복금사를 안아 들었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내리는 따뜻한 피가 그의 옷을 적셨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나 편안한 느낌이었다. '이로써 금사와 나는 하나가 되는 것이다.
다시는 헤어지지 않는 하나가…….' 우마의 어깨에 박혀있는 삼절묵창을 거둬들인 복청양은 복금사를 안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몇 사람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상의를 입고 있지 않았다.
벗어부친 건장한 상체가 구릿빛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하의는 짧은 바지만을 걸치고 있었으며 손에는 검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뭉툭한 쇠붙이를 들고 있었다.
무심한 모습이다.
하지만 그를 대하는 순간 복청양은 눈앞에 태산보다도 거대한 물체가 버티고 있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그것은 그가 어떤 동작을 취하거나 상대를 위압하는 눈빛을 흘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다만 무심히 서 있었을 뿐이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존재한다는 그 자체로 충분하였으므로.
복청양은 그를 보는 순간 그가 누구인지 알았다.
단황은 심유한 눈으로 복청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복청양을 보는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그가 눈빛이 흔들릴 만큼 동요의 빛을 보인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적어도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얼마나 무심한 사람인지 알 것이기에.
옆에 서 있던 복면인과 백아아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이내 평정을 되찾으며 복청양을 바라보았다. "그대가 복청양인가?" 그가 물었다. "그렇소." 복청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단황이오?" "그렇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내심을 읽을 수 없는 눈으로 복청양의 품에 안긴 복금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여자는 죽었느냐?" "당신이 상관할 바 아니오." 복청양은 몸을 돌려 복금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는 흐트러진 그녀의 옷을 수습해 잘 덮어주었는데 그 동안 한 번도 단황을 돌아보지 않았다. "복공자……." 백아아가 나직한 음성을 흘렸다.
그녀는 복청양에게 가려는 듯 움찔하였지만 차마 그에게 가까이 가지 못하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복금사를 안전하게 내려놓은 복청양이 품속에서 삼절묵창을 꺼내 들며 단황을 바라보았다. "그전부터 당신을 한 번 만나고 싶었소." "나도 너를 만나고 싶었다." 단황이 말했다. "아니, 너를 만나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너는 내가 거둬들여야 할 열세 개의 흑주 중에 마지막 열세 번째 흑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세 번째 흑주는 거둬들이는 게 아니다.
버리는 것이다." "그렇군." 복청양이 말했다. "당신은 나를 죽일 생각이었군." "그렇다.
너는 내 손에 죽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모든 것이 끝난다." "그러면 잘 되었소.
나도 어차피 당신한테 받아야 할 빚이 있으니까." 복청양은 바닥에 누워있는 복금사를 힐끔 보았다.
그녀가 보고 있는 앞에서 단황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그럼 끝을 냅시다." "싫다." 단황의 입에서 나온 말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너를 보는 순간 내 마음이 변했다.
나는 너를 죽이기 싫어졌다.
그러니 가거라." "아니 되오, 마주!" 기겁하여 소리친 것은 복면인이었다.
그는 너무 놀라 한 걸음 앞으로 나섰는데 그것이 예의에 벗어난 행동이라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 듯했다. '저건?' 복청양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복면인의 음성은 바로 지마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주, 천노살성은 죽어야 합니다.
그가 죽어야만 모든 것이 완성됩니다! 천하인들은 천하대협의 손에 천노살성이 죽는 것을 보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의 시체 위에 마천성이 우뚝 서야만 모든 일이 끝나는 것입니다.
그를 살려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될 수 있습니다!" "결정은 내가 내리는 것이오." 단황이 지마를 돌아보며 약간 불쾌한 듯 말했다. "누구도 내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소.
아무리 당신이라고 해도 말이오.
나는 저자를 죽이기 싫어졌소.
그냥 보낼 것이오." "하오나 마주, 그 명만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지마가 물러서지 않고 소리쳤다. "마주, 지난 삼십 년의 원한을 잊으셨습니까? 그때 우리가 실패한 것은 민심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마주는 민심을 마주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바로 천노살성을 죽임으로써 말입니다.
만일 지금 저자를 살려둔다면 당장은 아무 일도 없을 것이나 장차 후환을 남기게 됩니다.
후환의 씨앗은 미리 제거해야만 합니다.
만일 마주가 저자를 죽이지 않으시겠다면 내가 죽이겠습니다!" "듣지 못하였소? 나는 저자를 죽이지 않기로 결정하였소.
그리고 그 결정은 그대가 무슨 말을 하여도 변하지 않을 것이오." 지마의 말을 막은 단황이 복청양을 돌아보았다. "가거라.
그리고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거라.
내가 너를 살려 주는 건 지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다음에 너를 만나면 반드시 죽이겠다." "난 가지 않겠소." 복청양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자신의 생사를 논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아무런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동정은 필요없소.
그리고 당신이 나를 죽이지 않기로 결정하였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렇지 않소.
나는 반드시 당신을 죽이겠소." "복공자……." 백아아가 안타까운 듯 중얼거렸다.
그녀는 단황이 복청양을 죽이겠다고 했을 때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으며 그가 복청양을 그냥 보내겠다고 했을 때 얼굴이 활짝 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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