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록]천객 - 3 - 2편 (2/17)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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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록]천객 - 3 - 2편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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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안색은 원래부터 창백한 편이었으니 지금 조금 더 창백하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는 팔걸이에 손을 얹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가 뭔가 풀기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곧잘 나타나는 습관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들어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겉으로 나타내는 걸 그다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남궁격의 앞에 부복해 있는 중년인은 그래서 불안했다.
백보신궁(百步神弓) 국충(國忠).
그는 철궁위대를 책임지고 있는 인물이었으며 사실상 철궁도의 제이인자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신분을 가지고 있는 그도 남궁격의 앞에서는 늘 진땀을 흘려야만 했다.
언제 무슨 불호령이 떨어질지 몰랐다.
아니, 남궁격은 결코 성을 내지 않았다.
그는 수하들 앞에서 자제력을 잃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너그럽고 인자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남궁격을 곁에서 오래 보필해 온 사람이면 누구나 그가 얼마나 편협한 위인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천하가 인정해 줄 만큼 머리가 좋았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머리 좋은 사람이 으례 그렇듯 그는 자신이 뜻한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참지를 못했다.
실패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성격.
그게 그의 장점이자 단점인 것이다. "태산명동에 서일필이라고 했던가?" 남궁격의 입에서 조용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오늘은 완전히 헛수고를 한 셈이로군.
얼마나 오래 준비한 일인데 이렇게 아무런 소득도 없이 끝나다니……." "죄송합니다, 도주." 국충이 깊이 고개를 숙였다.
사실 이번 일은 남궁격이 처음부터 계획했고 그가 직접 지휘했다.
그러니 명에 따라 움직인 국충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내색을 했다가는 목이 열 개라도 무사하지 못하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지마, 그자는 언제나 나를 한 발 앞서가는군.
그자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고 그렇게 쉽게 본거지를 버릴지는 몰랐다." 십마의 본거지라고 판단하고 자신있게 들이친 것이 실수란 말인가.
위기에 몰린 도마뱀이 꼬리 하나를 잘라놓고 도망가듯 그 저택은 십마의 버려도 좋은 꼬리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저들의 세력은 얼마나 큰 것인가? 아직 단심백결회 내에서는 저들의 존재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아니, 십마가 다시 세상에 나타난 것조차 모르는 자들이 많다.
어리석은…… 소위 십방좌라고 큰소리치고 있는 그들이 잠자고 있는 사이에 십마는 어느새 단심백결회를 능가할 정도로 큰 세력을 구축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이 전면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천노살성이라는 허수아비만 앞세우고 저들은 꽁꽁 숨어 있다.
나는 그게 두렵다.
저들의 막강한 세력이 두렵고 저들을 암중에 지휘하고 있는 신비인이 두렵다.' 신비인.
그는 실상 남궁격이 가장 꺼려 하는 존재였다.
그가 모습을 나타낸 것은 지금까지 꼭 한 번이었다.
하지만 그때도 그자는 자신의 진신실력을 과시하지 않았다.
그저 쇠마에게 뒷일을 맡기고 물러났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비인의 존재는 남궁격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그자는 십마를 수족처럼 부리고 칠대공적을 수하로 거두어 들였다.
그뿐 아니라 그의 밑에 얼마나 많은 자들이 들어가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대체 누가 있어 그런 엄청난 일을 벌일 수 있단 말인가.
그만한 능력을 가진 자가 진정 사람인가.' 그래서 남궁격은 두려웠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천하에 자신보다 뛰어난 인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이번에 십마의 본거지를 친 것도 그런 초조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대 도박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일은 아무런 성과도 없이 끝났다.
너무도 허망하게……. '경솔했다.
아무리 마음이 급했어도 좀더 무르익기를 기다렸어야 옳았다.' "도주님!" 밖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누구냐?" 국충이 얼굴을 찡그리며 돌아보았다.
도주의 심기가 불편한 지금 그의 심사를 건드리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누가 감히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어떤 자가 와서 도주님 뵙기를 청합니다." "그게 누구든 쫓아내면 그뿐 아니냐.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그게……." 목소리가 잠시 머뭇거렸다. "속하도 그럴려고 했지만 그자가 자칭 천노살성이라고 해서……." "뭣이?" 소리를 지른 것은 남궁격이었다.
그는 어느새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있었다. "천노살성이 나를 찾아왔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음…… 그자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들어오라 해라." 천천히 의자에 몸을 앉히는 남궁격의 얼굴은 언제 놀랐냐는 듯이 평정을 되찾고 있었다.
놀라운 회복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은 격동으로 들끓고 있었다. '천노살성이 나를 찾아오다니, 이건 정말로 의외로군.
천노살성이 내 손에 들어온다면 뜻밖의 변수가 될지도 모른다.
그 신비인을 꺾을 수 있는 변수가…….' 남궁격이 손짓을 했다.
물러가라는 뜻이었다.
국충은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뒷걸음질로 방을 나갔다.
뒤에서 문이 닫혔다.
복청양은 심호흡을 하고 의자에 앉아있는 남궁격을 바라보았다.
남궁격은 그가 들어오는데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속내를 알 수 없는 눈으로 그를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오랜만이군." 그가 문득 입을 열었다. "그렇군." 복청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남궁격이라는 인간이 싫었다.
사정이 이처럼 어렵게 변하지만 않았더라도 그를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앉지." 남궁격이 앞의 의자를 권했다.
두 사람은 마주앉고도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속내를 나타내지 않는 눈으로 서로를 보고 있을 뿐이다.
이윽고 남궁격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 집에 와서 사람을 데려간 게 언제라고 이렇게 다시 오다니, 대담하다고 칭찬을 해야 할까." "내가 왔다 간 걸 알고 있었군." "물론." 남궁격이 얇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눈을 속일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지." "그러고 보니 그대가 지마의 본거지를 친 건 우리를 미행한 덕분이겠군?"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의외로 선선하게 남궁격이 모든 걸 인정했다. "그런데 그대가 내 집에 나타난 것은 전혀 생각 밖이야.
그대는 지금쯤 지마와 함께 있어야 하지 않나?" "꼭 그런 것도 아니지.
난 지마의 수하가 아니니까." "그랬던가……." 남궁격이 몸을 바로 세웠다.
그는 이제까지의 유화한 태도를 버리고 복청양을 사납게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그대를 잡으려고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겠지? 그걸 알면서도 이렇게 날 찾아온 걸 보면 뭔가 중요한 용건이 있을 텐데?" "그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네." "제안이라……." 남궁격의 눈이 가늘어졌다.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일단 여기에 온 이상 빠져나갈 수 없다는 걸 알 텐데?" "나 하나 죽는 건 두렵지 않지.
그리고 그대도 나 하나만 잡아서는 직성이 안 풀릴 거고." "하긴……." 남궁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제안이라는 게 뭔지 궁금하군." "내가 원하는 건 단 한 가지일세." 복청양은 한마디 한마디를 힘주어 말했다. "중원검보에 있는 아버님을 구해내는 것.
그 일에 그대의 도움이 필요하네." "지마가 그러던가? 중원검보에 팔통창절이 있다고?" "그럼 아니란 말인가?" "아냐, 사실이야.
검제 금수근이 그를 데리고 있지.
그리고 검제는 나를 무시할 형편이 못 되니 내가 부탁을 하면 팔통창절을 풀어줄 수도 있네." "그럼 됐군." "다된 건 아냐." 남궁격이 말했다. "팔통창절을 풀어주는 대가로 그대가 내게 무엇을 줄 수 있느냐가 남았지." "그대가 원하는 것." "그게 뭔데?" "지마.
그리고 나머지 구마." "흠……." 남궁격은 애써 숨결이 거칠어지는 것을 참았다.
천노살성이 직접 와서 이런 제의를 할 줄은 정말이지 몰랐다.
십마를 넘겨주겠다니, 이거야말로 그가 바라던 천재일우의 기회가 아니고 무엇이랴.
제 20 장 중원검보(中原劍堡) 타배신장(駝背神將) 모악(牟岳).
그는 한 자루 귀두도를 무기삼아 한때 흑도의 거두로 명성을 누렸던 인물이었다.
타배신장이 한창 명성을 떨칠 때는 그의 귀두도에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 인물과의 만남이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검제 금수근.
그는 단신으로 모악을 찾아와 단 십 합 만에 그를 굴복시킨 인물이었다.
금수근과의 싸움에서 모악은 왼손 세 손가락을 잃었고 그 대신 새로운 인생을 찾았다.
그 뒤로 그의 삶은 오직 하나, 금수근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이었다.
그는 중원검보가 세워질 때 큰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그 공로로 중원검보의 세 호법 중 하나로 뽑혔으며 과거의 악명을 다 씻게 되었다.
이제 그는 중원검보에서 가장 성질이 포악한 인물로 기억될 뿐이었다.
모악은 길옆에 있는 커다란 바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유난히 더운 날씨였다.
가을이 깊어 가는 데도 더위는 좀처럼 식을 줄을 몰랐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고 숨이 턱턱 막혔다.
이런 날은 그저 맑은 물에 풍덩 들어가 하루 종일 앉아 있으면 알맞을 것이다.
모악의 뒤에 서 있는 열 명의 검수들도 한결같이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전신을 땀으로 적시며 원망스러운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런 더위에 그늘 한 점 없는 뙤약볕에 나와있다는 것 자체가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모악은 그런 생각을 할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그자가 곧 올 것이다.' 천노살성.
가는 곳마다 피를 뿌리고 다닌다는 그 악독한 자가 머지않아 이 길을 지나게 될 것이다.
중원검보에 갇혀있는 팔통창절 복후정을 구하기 위하여.
중원검보로 올 수 있는 길은 많이 있었다.
하지만 그자는 이 길을 택했다.
그 이유야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다.
이 길이 중원검보로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이었으므로.
천노살성이 나타났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 세 시진 전이었다.
그리고 그 세 시진 동안 그자는 중원검보가 마련해 놓은 세 개의 관문을 거침없이 통과했다.
그리고 이제 네 번째의 관문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간이 부었어도 유분수지." 모악이 중얼거렸다.
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여기에 하나도 없었다. "감히 단신으로 우리 중원검보에 도전하다니, 그자가 죽으려고 환장을 하지 않고서야 이럴 수가 있는가." 오늘 벌어지고 있는 천노살성의 행로는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적어도 그가 알기로는 사람을 구하려면 야음을 이용하여 몰래 숨어드는 게 상책이다.
그리고 그게 여의치 않을 때는 사람들을 모아 기습을 하든지, 아니면 혼자 오더라도 흔적을 남기지 말고 숨어들어야만 한다.
적어도 중원검보에 못지 않은 세력을 가지지 않은 자라면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천노살성의 행적은 그 같은 상식을 모두 무시한 것이었다.
그자는 벌써 사흘 전에 행적이 노출되었다.
이제 그자가 중원검보에 온다는 것은 천하에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천노살성이 중원검보에 도전한다.
그것은 강호인들의 지대한 관심사였다.
중원검보가 천노살성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심지어는 검제 금수근이 천노살성과 싸워 이길 수 있는가에 돈을 거는 자도 있다고 한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우리 중원검보를 얕잡아 보아도 분수가 있지.
그자는 보주님의 앞에 가기도 전에 내 손에 죽고 말 것이다.' 모악은 지난 수십 년간 그의 의지가 되어주었던 귀두도를 굳게 움켜쥐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이 귀두도가 천노살성이라는 특별한 피를 맛보게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람을 죽여본 지도 참 오래 되었구나.' 모악이 다시 뜻없이 중얼거릴 때였다.
뒤에 있던 검수 하나가 눈에 빛을 내었다. "그자가 옵니다." 모두의 시선이 한 곳에 집중되었다.
멀리 황토가 누런 먼지를 풀풀 날리고 있는 길 위로 까만 점 하나가 나타났다.
그 점은 천천히 이리로 다가오고 있었는데 전혀 서두는 것 같지 않았다.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듯한 한가로운 모습이었다.
점이 점차 확대되면서 사람의 형체로 변해갔다.
흑의를 입은 청년이었다.
청년은 손에 아무런 병기도 지니고 있지 않았으며 까만 끈으로 머리를 묶고 있었다. "오는군." 모악이 몸을 일으켜 길 중앙으로 나갔다.
그러자 검수들이 그의 등 뒤에 일렬로 자리잡았다.
그들은 언제 더위를 느꼈느냐는 듯이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긴장하기는 모악도 마찬가지였다.
그 동안 천노살성의 명성을 수없이 들었으면서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그저 어디서 광망한 놈이 하나 나타나 귀찮게 구는구나 하고 여길 정도였다.
하지만 막상 천노살성이라는 자가 눈앞에 나타나자 사정은 달라졌다.
그는 역전의 노장답지 않게 손바닥에 땀이 축축이 괴는 것을 느꼈다.
흑의청년이 점차 가까이 오고 있었다.
그는 길 한복판에 일단의 검수들이 가로막고 있는 것을 보고도 조금도 놀라는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입가에 씩 미소를 머금기까지 했다.
마치 기다리던 것이 왔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기분나쁜 표정이군.' 모악은 갑자기 세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중원삼검.
그들은 중원검보가 자랑하는 절정의 검수들로 지금 다섯 번째 관문에서 천노살성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에게 넘겨주지는 않을 것이다.
천노살성은 반드시 내 손으로 처리한다.' 모악은 집도 없는 귀두도를 단단히 움켜쥔 채 성큼 앞으로 나섰다. "멈춰라!" 그러자 흑의청년이 정말로 멈춰 섰다.
마치 길 잘 든 양이 하는 행동 같아서 도리어 소리를 지른 모악이 무색해질 지경이었다. "네가 천노살성이냐?" 모악은 스스로 생각해도 멍청한 질문을 했다.
흑의청년이 천노살성이 아니라면 누가 감히 단신으로 살기가 넘치는 중원검보에 들어섰겠는가! "당신은 누구요?" 흑의청년, 복청양이 물었다. "나는 타배신장 모악이라 한다.
중원검보 사람이다." 모악은 키가 복청양의 목 정도밖에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등이 굽어있기 때문이지, 결코 체격이 작아서는 아니었다.
쩍 벌어진 어깨는 복청양보다 절반은 더 있어 보였고 팔은 길어 거의 땅바닥에 끌리는 것이 커다란 원숭이를 연상시켰다. "그렇군." 복청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중원검보 사람들을 많이 보았지만 그 중에 쓸 만한 자는 하나도 없었지." "흥! 그 쓸모없는 자들과 나를 같게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모악이 눈짓을 했다.
그러자 뒤에서 두 명의 검수가 썩 나서더니 아무런 말도 없이 동시에 화려한 검화를 피워올렸다.
두 명이 일제히 발초를 한 것이다.
중원검보는 검의 명가였다.
당금 무림에 무당파를 제외한다면 검으로 중원검보를 능가하는 집단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발검솜씨는 가히 일류였다. "제법이군." 복청양도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그가 움직였다.
그는 적수로 검화 속으로 뛰어들고 있었는데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앗?" 놀란 것은 도리어 먼저 공격을 한 검수들이었다.
그들은 천노살성이 이처럼 무모하게 돌진해 올지는 몰랐기 때문에 급급히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게 실수였다.
복청양의 손에서 흐릿한 권영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는 오른손으로는 회현잠영권을 펼치며 왼손으로는 흑오조를 전개해 검수의 가슴을 움켜쥐려고 했다. "흑!" 검수가 다급히 검을 옆으로 후렸다.
복청양의 손가락을 그대로 베어버리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흑오조는 어느새 기록장으로 변화하여 어깨를 강타했다. "윽!" 그자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검을 든 손이 아래로 축 처지는 것이 다시는 검을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복청양은 그자를 돌아보지도 않고 몸을 돌리며 손등으로 두 번째 검수의 얼굴을 후려치고 있었다.
그것은 초식이라고도 할 수 없는 지극히 평범한 동작이었다.
하지만 검수는 손이 자신의 얼굴로 다가오는 것을 멍청하게 보면서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일격을 얻어맞는 것이 아닌가! '저게 무슨 수법인가?' 모악은 아연했다.
눈을 감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상대가 무슨 초식을 썼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차앗!" 일거에 두 명의 검수를 쓰러뜨린 복청양이 고함을 지르며 앞으로 내닫고 있었다. "앗, 막아라!" 여덟 명의 검수들이 산개했다.
그들은 신속하게 검진을 형성하면서 복청양을 저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검진이 미처 형성되기도 전에 다시 두 명이 복청양의 기이한 주먹질에 얼굴을 맞아 쓰러지고 말았다. "물러서라." 침중하게 외친 모악이 귀두도를 움켜쥐며 앞으로 나섰다. "내가 너를 잘못 보았다.
과연 대단하구나." "그렇소?" 복청양이 싱긋 웃었다.
그는 한바탕 격전을 치르고도 조금도 지친 기색이 아니었다.
모악이 귀두도를 몸 앞에 반듯하게 세웠다.
그러자 그의 왜소한 몸이 갑자기 두 곱절로 늘어나는 것 같으면서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고수로군.' 복청양은 서둘지 않고 품속에서 삼절묵창을 꺼내들었다.
물론 후웅권을 사용하면 모악을 어렵지 않게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정식으로 나온 이상 그도 무기를 사용하는 게 예의라 여겨졌다.
몸 앞에 반듯하게 세운 귀두도가 점점 거센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세찬 바람 같기도 하고 무형의 살기 같기도 했다.
반면에 복청양은 삼절묵창을 힘없이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런 자세도 잡지 않은, 그저 무심한 동작이었다.
오랜만에 강적을 눈앞에 두었지만 복청양은 조금도 긴장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정도의 상대는 간단하게 해치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반면에 모악의 귀두도는 눈에 띄지 않게 점점 흔들리고 있었다. '나를 무시한다는 뜻인가?' 모악은 아무런 자세도 잡지 않고 그저 늘어져 있는 삼절묵창을 보면서 점차 마음이 급해졌다.
강적을 눈앞에 두고 마음이 흔들린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를 게 없었다.
그걸 모를 리 없는 모악이건만 복청양과 마주서자 어쩐 일인지 평상심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안 되겠다.
이대로 버틸 수는 없다.' 무형지기(無形之氣)란 그런 것이다.
무형지기가 크게 일어나 상대를 압박하기 시작하면 상대는 힘도 쓰지 못하고 굴복하고 만다.
그것은 실력 이전에 기세와 기세의 싸움이었다.
그 기세 싸움에서 밀리면 그 뒤로는 걷잡을 수가 없게 된다. "차앗!" 마침내 모악의 입에서 우렁찬 기합이 터져나왔다.
츄앗 귀두도가 긴 선을 끌며 복청양을 향했다.
그것은 일반적인 도법에서 벗어나 창처럼 찌르는 동작이었다.
귀두도란 원래 끝이 두 갈래로 나서 상대를 찌르기에 알맞았기 때문에 이런 동작이 가능한 것이다.
동시에 복청양도 움직였다.
그의 삼절묵창이 돌연 여섯 자 길이로 늘어났다.
삼절묵창은 우선 길이에서 귀두도를 압도하며 마주 찔러갔다. "엇?" 귀두도가 길게 호선을 그렸다.
삼절묵창의 허리를 후려쳐 힘으로 상대를 압도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악의 그러한 시도는 어이없게도 삼절묵창이 두 자 길이로 줄어들면서 허공을 베는 꼴이 되고 말았다.
동시에 삼절묵창이 기묘한 흐름을 타며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무수한 창영이 허공에 나타났다.
쇄금십팔창법을 전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복청양이 지금 전개하는 쇄금십팔창법은 예전의 그것이 아니었다.
예전의 복청양이라면 창영을 열여섯 개 만드는 데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창영이 열여덟 개로 불어나 있었다.
일찍이 복가장의 그 누구도 완성시키지 못했다는 쇄금십팔창법의 최고 단계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만일 복후정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너무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으리라.
착 쩡그렁 청! 요란한 금속성 소리가 연속하여 울려 퍼졌다.
모악의 귀두도가 삼절묵창의 엄밀한 수비벽을 뚫지 못하고 불꽃을 튀기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몇 개의 창영이 모악을 찔러갔다.
이제 쇄금십팔창법은 단순한 수비초식이 아니라 절묘한 공격도 겸하고 있었다. "윽!" 짤막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모악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얼굴은 참혹하게 일그러져 있었으며 오른쪽 팔꿈치 부분에서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복청양의 삼절묵창이 그의 팔에 구멍을 낸 것이다.
아마도 모악은 당분간 귀두도를 잡을 수 없을 것이다. "하하, 잘 배웠소." 복청양이 낭랑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망연하게 팔을 늘어뜨리고 있는 모악의 옆을 지나 앞으로 달려나갔다. "저, 저것이!" 검수들이 고함을 지르며 복청양을 추적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의 움직임은 이내 모악의 외침에 의해 저지당하고 말았다. "그만 두어라." 모악은 의기소침하여 옆으로 물러섰다.
그의 귀두도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는데 그걸 주울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것으로 두 번째 패배로구나.' 참담함이 그의 가슴을 적셨다.
지난날 금수근에게 패할 때는 이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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