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작은 소리조차도 몇백, 몇천 배로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의 판단은 적중하였다. 이곳의 바닥과 벽면에는 수많은 구멍들 이 뚫려 있어 소리를 흡수하였다가 이내 증폭시켜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 검 3권 제25장 대왕릉(大王陵)! -5 ━━━━━━━━━━━━━━━━━━━━━━━━━━━━━━━━━━━ ⑤ 북궁후는 입술을 달싹였다. 그는 백의소녀에게 전음을 보내고 있 었다. (입을 열지 말고, 발자국 소리도 내지 마시오!) 백의소녀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헌데 그녀를 내려다 보던 북궁후는 내심 움찔하였다. 그녀는 턱을 들어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그윽한 눈길이 심상 치가 않았다. 북궁후는 황급히 그녀를 조심스럽게 밀어내고는 서둘러 고개를 돌 렸다. 그녀의 순종이 가득한 얼굴은 결코 타인을 바라보는 눈길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때 북궁후가 밀어내자 그녀는 가냘픈 몸을 휘청했다. 그녀는 간신히 몸을 바로잡으면서 원망어린 시선으로 북궁후를 쏘 아보더니 이를 악물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은 일면 가련해 보이기도 했다. 북궁후는 자신이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자 그녀에게 전음 을 보냈다. (괜찮소?) 백의소녀는 토라진 듯 대답도 하지 않았다. 북궁후는 실소를 흘리더니 이내 정색을 하고는 천천히 앞서 나가 기 시작했다. 백의소녀가 일시 당황하는 것 같았으나 급히 그의 뒤를 따라왔다. 어느새 그녀의 작은 손은 북궁후의 옷자락을 꼬옥 쥐고 있었다. 두 사람은 다시 동굴 안을 전진하고 있었다. 이때 그들은 바닥에 서 한 치 정도 뜬 채 걷고 있었다. 발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서 답 설무흔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었다. 또다시 어느 정도 전진했을까? 기괴한 조화를 부리던 동굴을 모두 벗어난 것 같았다. 고막을 괴 롭히던 사악한 음향이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판단되자 그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더욱 그들의 속도를 빠르게 한 것은 저 멀리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이 보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빛이 흘러나오는 곳에 도착했다. 그곳은 막다른 곳이었다. 헌데 놀랍게도 그들의 앞에는 거대한 철문이 가로 막혀 있었고 빛 은 철문의 틈새 사이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으음, 이곳 역시 밖에 있는 장군상의 기관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구나. 조금 전 그 음공의 조화 역시 자연적으로 형성된 게 아니 라 인공이 가미된 것이고.' 그의 눈에 은은히 놀람의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헌데 대체 이곳은 어디란 말인가?' 그는 짙은 의혹을 떠올리면서 철문을 살피기 시작했다. 철문이 가 로막혀 있다는 것은 필경 어딘가에 개폐장치(開閉裝置)가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때 북궁후를 바라보던 백의소녀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하고 있었 다. 그녀의 얼굴에는 왠지 기이한 초조감이 떠올라 있었다. 그녀는 머뭇머뭇 거리더니 이내 결심한 듯 북궁후 곁으로 다가서 며 기어드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시간이 없어요." 북궁후는 의아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오?" 북궁후의 어리둥절해 하는 표정을 본 백의소녀의 얼굴이 핼쑥하게 변했다. '아니, 그럼 이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르고 한빙염홍단을 복용했단 말인가?' 그녀는 다그치듯이 말했다. "다, 당신은 정말 한빙염홍단의 내력(內力)을 모르고 있단 말인가 요?" 북궁후가 고개를 갸웃했다. "내력?" "그래요. 내력!" "아니, 모르겠소." 북궁후는 고개를 저었다. 백의소녀가 바짝 다가왔다. "그럼, 내게 염홍단을 복용시키고 공자 스스로 한빙단을 복용한 것은 우연이었단 말인가요?" 북궁후가 반문했다. "그 영약에 무슨 내력이 있었단 말이요?" "그래요. 그 음양신단(陰陽神丹)을 만일 거꾸로 복용했다면 우리 모두 죽거나 주화입마에 빠지고 말았을 거예요." 그러자 북궁후는 싱긋 웃었다. "하하, 천우신조로 하늘이 도왔던 모양이군." 그는 돌연 한쪽 벽면의 돌출된 부분을 향해 일지를 튕겼다. 그러자 우르릉! 소리와 함께 철문이 서서히 좌우로 갈라지기 시작 했다. "자, 그럼 이제 되지 않았소? 어서 이 지옥이나 벗어납시다." 그는 말을 마침과 동시에 철문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갔다. 백의소녀는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그의 등을 바라보았다. '크, 큰일이다! 이 사람은 진짜 한빙염홍단의 진정한 내력을 모르 고 있구나! 그렇다고 차마 내 입으로 말할 수는 없고... 이를 어 쩌지?' 그녀는 북궁후를 놓칠세라 재빨리 철문 안으로 따라들어갔다. ■ 검 3권 제26장 빙궁(氷宮)의 정사(情事)! ━━━━━━━━━━━━━━━━━━━━━━━━━━━━━━━━━━━ ① 철문이 열리고 나타난 석실 안의 광경에 두 사람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석실 안은 아담한 여인의 규방이었던 것 이다. 이 만장지하 동굴 속에 규방이라니! 북궁후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이거야말로 기문괴사(奇問怪事)가 아닌가!' 그는 방 안을 세세히 살펴보았다. 특별한 위험의 징후는 없어보였 다. 그저 단순한 규중처자의 은밀한 방 안이었다. 방 안에는 여인 의 지분냄새같은 야릇한 냄새가 흐르고 있었다. 북궁후는 왠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이때 북궁후는 흠칫하였다. 자신의 옷자락을 잡고 있는 백의소녀 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는 것이 느껴진 것이다. 뿐인가, 야릇하게 거칠어진 숨소리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기이한 느낌이 들어 북궁후가 돌아보자 백의소녀가 황급히 그의 옷자락을 놓고는 몸을 돌리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몸을 돌린 채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가늘게 떨고 있었다. 북궁후의 눈이 바보처럼 깜박였다. 이때 뒤에서 경미한 소음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북궁후의 눈이 크게 떠졌다. 맞은편에 있던 방문이 스르르 열리더니 한 명의 홍 의소녀가 불쑥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부끄러운 듯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는 절세의 미녀였 다. 그녀는 힐끗 북궁후를 보면서 생긋 웃더니 한쪽 벽쪽으로 자 박자박 걸어가고 있지 않은가! '맙소사! 이 만장 지하석굴 속에 사람이, 그것도 절세의 미녀라 니!' 북궁후의 눈이 더욱 커졌다. 그녀의 뒤를 이어서 또 한 명의 소녀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또다시 소녀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하나같이 보기 드문 미녀들이었는데, 그녀들은 줄을 지어 들어오더니 벽쪽으로 걸어가면서 둥글게 북궁후와 백의소녀를 에워싸고 있었다. 북궁후가 아차 했을 때에는 그녀들은 이미 두 사람을 완전히 에워 싸고 있었다. 뒤늦게 이 사태를 눈치챈 백의소녀는 황급히 몸을 이동하여 북궁 후의 옆으로 바짝 붙어섰다. 헌데 그녀의 몸이 닿자 북궁후는 흠칫하였다. 놀랍게도 그녀의 몸 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던 것이다. '내상이 완전히 치료되지 않은 것일까?' 북궁후는 근심어린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그녀는 웬일인 지 그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이때 두 사람을 에워싼 정확히 스물네 명의 미녀들이 돌연 샐쭉 웃더니 입고 있던 옷을 벗는 것이 아닌가! 북궁후의 표정이 어리둥절하게 변했다. 백의소녀는 당황하더니 황 급히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고 있었다. 스물네 명의 미녀들은 순식간에 벌거숭이가 되었다. 하나같이 미끈한 나체를 가진 그녀들을 보는 순간 북궁후는 정신 이 아찔하였다. 나체가 된 미녀들이 돌연 나비처럼 하늘거리며 팔다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춤을 추면서 북궁후와 백의소녀의 주위를 돌 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방 안은 그녀들의 나체에서 발산되는 자극적인 체향으로 가득찼다. 그녀들의 춤은 실로 뇌살적이었다. 겨드랑이와 음부를 교묘한 방법으로 보여주는가 하면 탐스러운 젖 가슴과 둔부를 도발적으로 내밀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그 교태어린 표정이라니! 방 안은 삽시간에 춘풍이 몰아치면서 뜨거운 열기로 후끈하게 달 아올랐다. 북궁후는 가슴이 철렁하였다. '색혼천마무(色魂天魔舞)다! 맙소사, 그 환상진(幻想陣)이 여기 펼쳐져 있다니!' 그의 놀람은 적지 않은 것이었다. 색혼천마무라면 사백 년 전에 한때 무림을 색욕의 지옥으로 몰아 넣었던 무녀궁(巫女宮)의 독문절예였다. 당시 그 얼마나 많은 무림기웅(武林奇雄)들이 무녀궁의 치마폭 아 래 무릎을 꿇었던가. 소림의 전설적인 고수였던 만해고불(萬海孤佛)조차 무녀궁주(巫女 宮主)의 색혼천마무에 현혹되어 그녀의 노예가 되기를 자청하였던 것이다. 한 번 빠져들면 정욕의 노예가 되어 정기를 모두 발산할 때까지 음행을 멈추지 못한다는 최심마무(催心魔霧)가 바로 색혼천마무였 던 것이다. ■ 검 3권 제26장 빙궁(氷宮)의 정사(情事)! -2 ━━━━━━━━━━━━━━━━━━━━━━━━━━━━━━━━━━━ ② 색혼천마무는 더욱 격렬해졌다. 그에 따라 소녀들의 교태는 더욱 노골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입술과 손으로는 쉴새없이 사내를 더듬는 것 같았으며 아랫도리는 마치 교접이라도 할 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 체위도 아주 다양하고 기묘하여 실제로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 는 것 같았다. 미끈한 다리와 펑퍼짐한 둔부가 위아래로 끊임없이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북궁후는 단전으로부터 견딜 수 없이 뜨거운 열화(熱火)가 솟구치 는 것을 느끼고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급히 진기를 끌어올려 들끓는 기혈을 가라앉히면서 백의소녀 를 돌아봤다. 백의소녀의 상태는 심각했다. 그녀의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으며, 얼굴은 창백하게 질린 채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옆에 있는 북궁후조차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단내를 맡을 정 도였다. 그녀는 돌연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더니 양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껴안으면서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녀는 시선을 바닥으로 향하고 있었으나 이미 그녀의 이성은 색 혼천마무가 지배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면서 종래에는 쉰 듯한 쇳소리를 내고 있었다. 북궁후는 가슴이 서늘하였다. '여인의 몸으로 이 색혼천마무에 빠져들다니!' 그것은 확실히 그의 사고(思考)를 뛰어넘는 이변이었다. 허나 그 가 어찌 알겠는가! 지금 그녀의 눈에는 소녀들이 여자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바로 북 궁후로 보이는 것이다. 준수한 외모, 잘 발달된 튼튼한 근육, 우람한 동체, 북궁후는 나 체가 되어 그녀를 끊임없이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이 환상에서 벗어나려는 듯이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고 악다물린 옥니 사이로는 고 통에 찬 신음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헌데 돌연 그녀가 눈을 번쩍 떴다. 그녀의 숙여졌던 고개가 천천 히 들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뜨거운 열기가 이글거리고 있었 다. 그것은 정욕의 불꽃이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 는 것 같았다. '더이상 지체했다가는 못볼 꼴을 보게 된다!' 북궁후는 불가의 사대선공중 하나인 자운불선공을 십이성으로 끌 어올렸다. 그의 양손에 달무리같은 불광(佛光)이 어렸다 싶은 순 간 그의 입에서 우레같은 대갈이 터져나왔다. "갈(喝)!" 동시에 합장을 하고 있던 그의 손이 양쪽으로 쫙 펼쳐졌다. 번쩍! 하는 섬광과 함께 달무리처럼 떠올랐던 불광(佛光)이 호선 을 그리며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소녀들의 나체를 휩쓸었다. 소녀 들의 처절한 비명이 일제히 터져나왔다. 칼날처럼 세찬 경기가 그녀들의 육신을 휘감으면서 맹렬한 속도로 스쳐가고 있었던 것이다. 후두둑! 하는 소음이 들리면서 소녀들의 팔다리 육신이 갈대처럼 부러져 나갔다. 채 일각이 흐르기도 전에 온몸이 으깨어진 소녀들의 나체는 해면 체처럼 흐느적거리면서 사방으로 내동댕이쳐지고 있었다. 잠시 후, 자욱한 낙진이 가라앉으면서 장내의 상황이 일목요연하 게 드러났다. 장세를 거두며 주위를 둘러보던 북궁후의 눈에 감탄의 빛이 떠오 르고 있었다. 장내의 상황은 돌변해 있었다. 아담하고 은은한 향기가 흐르던 규방은 퀘퀘한 냄새가 풍기는 지 하석실로 변해 있었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바닥의 여기저기에는 예의 소녀들이 죽은 듯이 누워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것들은 모두 나무로 만들어진 목각상 들이 아닌가! 예의 소녀들은 모두 나무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미녀상(美女像)들 이었던 것이다. 거미줄까지 여기저기 쳐져 있는 석실을 둘러보며 북궁후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과연, 색혼천마무다! 우리는 이곳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이미 색 혼천마무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북궁후의 판단은 실로 정확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 더러운 지하 석실이 아름다운 여인의 규방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는 이 기관장치를 설계한 이에게 절로 경외감이 드는 것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이때 북궁후는 나직한 신음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백의소녀는 여전히 그에게 등을 돌리고 앉은 채 양손으로 어깨를 껴안고 몸을 세차게 떨면서 신음을 토하고 있었다. 북궁후는 혀를 끌끌 찼다. 그는 그녀의 등쪽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더니 장심을 그녀의 명문 혈에 갖다대었다. 순간 그의 손바닥이 등에 닿자 그녀의 몸이 더 욱 세차게 떨리기 시작했다. 북궁후는 기이한 생각이 들었다.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그녀의 명문혈을 통해 그녀의 체온이 전해졌는데 놀랍게도 그녀의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그가 막 진기를 불어넣어주려는 순간 고개를 떨구고 있던 그녀에 게서 더듬거리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어서... 저리... 가요. 빨리...." 그녀의 목소리는 섬칫하게도 쇳소리로 변해 있었다. 북궁후는 비 로소 뭔가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소저, 어찌된 일이오?" 그는 명문혈에서 손을 떼며 그녀의 앞으로 몸을 돌리면서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화들짝 놀라면서 돌아앉았다. 그 순간 북궁후는 그녀의 표정을 보았다. 그녀는 고통에 가득찬 표정으로 이를 앙다물고 있었다. 북궁후가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나에게... 말해주지 않겠소?" 그의 음성은 너무나 부드럽고 다정다감하였다. 백의소녀는 온몸을 한차례 부르르 떨더니 자신도 모르게 북궁후에 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얼굴을 본 북궁후는 움찔하였다. 그녀의 아름다운 두 눈은 붉게 충혈된 채 뜨거운 열기에 가득 휩싸여 있었다. ■ 검 3권 제26장 빙궁(氷宮)의 정사(情事)! -3 ━━━━━━━━━━━━━━━━━━━━━━━━━━━━━━━━━━━ ③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욕염에 타오르는 눈이었다. 헌데 그녀는 그것을 이를 악물고 참고 있는 것 같았다. 북궁후는 내심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백의소녀가 체념한 듯 고개를 떨 구면서 입을 열었다. "사실... 음양신단은 희세의 영약이나... 그것을 복용한 남녀는 한 시진내에 함께 음양교합(陰陽交合)을 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 면 오히려 독단(毒丹)이 되고 말아요." 북궁후의 안색이 굳었다. 백의소녀는 이왕 내친 걸음이라 생각했 는지 술술 토해내고 있었다. "헌데... 시간이 되고... 색혼천마무 때문에 음기가 더욱 발동되 어 나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요." 그녀는 애처롭게 몸을 떨며 북궁후를 올려다 보았다. 부끄러움과 수치심에 도화처럼 물든 얼굴, 그러나 두 눈은 뜨거운 갈망의 빛 을 띠고 있었다. '그랬었구나.' 그제서야 북궁후는 지금까지 오는 동안 그녀가 보여주었던 기이한 언행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헌데 한 가지의 의문이 풀리자 또 다른 의문이 떠올랐다. '그런데 어째서 내게는 그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그는 이미 과거에 무수한 영약신초를 복용해 만독불침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그 어떤 약효도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을 미처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는 정색을 하고 물었다. "소저의 신분을 내게 말해줄 수 있겠소?" 백의소녀는 가벼운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공자께선... 북해(北海)... 빙궁(氷宮)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북궁후의 두 눈썹이 미간을 향해 모아졌다. "빙궁! 신비세외의 일궁(一宮)인 빙궁 말이오?" "그래요. 소녀는 빙궁의 당대 궁주(宮主)인 빙지신녀(氷至神女) 노옥정(盧玉貞)이에요." "으음. 얘기는 들은 적이 있소. 헌데...." 그는 문득 기이한 눈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헌데 이해할 수 없구료. 당신같은 신분의 여인이 어찌 그런...." 그런 음란한 환약을 가지고 다녔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노옥정이 수치심을 느꼈는지 몸을 경직시키더니 고개를 더욱 떨구 면서 입을 열었다. 그녀의 입에서 빙궁의 숨겨진 비사(秘事)가 흘 러나오기 시작했다. 또한 그녀가 그런 음란한 환약을 가지고 다니 게 된 비사(?)가.... 비사는 이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선천빙모(善天氷母). 그녀는 빙궁의 십칠대(十七代) 궁주였다. 빙궁 사상 최고의 고수 이기도 한 그녀는 또한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미모보다도 무학에 자신을 갖게 된 그녀는 자연 중 원으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중원(中原)! 이 얼마나 가슴 뛰는 말인가! 수많은 기인이사(奇人 異士)들이 장강의 모래알처럼 많다는 바로 그 신비의 땅! 선천빙모는 바로 그곳에서 기라성같은 고수들과 자신의 무학을 겨 루어 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단신으로 중원으로 내려왔다. 그것은 빙궁을 벗어날 수 없다는 빙궁의 천년금계(千年禁械)를 무 시한 일이었다. 그녀가 중원에 나타나자 강호(江湖)는 발칵 뒤집 혔다. 그녀의 출현은 전무림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던 것이다. 아름다 운 미녀의 신비로운 무공은 천하를 들끓게 하고도 남았다. 쟁쟁한 명성을 날리던 무수한 흑백양도(黑白兩道)의 고수들이 그 녀에게 도전했으나 그녀의 신기막측한 무공 앞에 무릎을 꿇고 말 았다. 아니 어쩌면 그녀의 미모에 굴복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녀는 중원에 내려온 보람을 찾고 있었는데.... 헌데 어느날 그녀는 깊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 천외유협(天外遊俠) 가석규(加石奎). 당대 무림의 절대고수요, 준수한 용모의 소유자이며 흑백양도에서 존경받는 백도의 일대영웅이었다. 마치 운명적이라 할 만큼 두 사람은 첫눈에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 고 이내 그것은 사랑으로 발전하였다. 두 사람은 열렬히 사랑했 다. 진정 아무도 그들의 사랑을 갈라 놓을 수 없었다. 마침내 선천빙모는 천외유협과 함께 빙궁으로 돌아왔다. 빙궁은 본래 여인일맥(女人一脈)으로만 이어져온 신비궁이었다. 선천빙모가 아니었다면 영원히 강호에 알려지지도 않았을 문파였 다. 선천빙모는 금계를 무시하고 천외유협을 데리고 왔으며, 더 나아 가 그에게 빙궁의 비전무공(秘傳武功)까지 전수해 주었다. 헌데 불행은 바로 그것에서 시작되었다. 빙궁의 최절정 무학인 빙백신공(氷魄神功)은 극음지체(極陰之體) 의 여인만이 익힐 수 있는 것이었다. 헌데 그것을 사내가 익히게 되자 변괴가 일어났다. 빙백신공이 십 성에 이르는 순간 그는 완전히 심성이 바뀌어버리고 말았다. 희세 의 마인(魔人)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것은 빙백마공의 저주(咀呪)였다. 천외유협은 심마(心魔)에 빠 져 날뛰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생명체는 무엇이든지 죽여버렸 다. 결국 빙궁은 쑥대밭이 되었으며 천여 명에 이르는 궁도(宮徒) 의 절반 가량이 그의 마수에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 검 3권 제26장 빙궁(氷宮)의 정사(情事)! -4 ━━━━━━━━━━━━━━━━━━━━━━━━━━━━━━━━━━━ ④ 노옥정은 가느다란 한숨을 토했다. "그때에야 비로소 선천빙모께선 빙백신공의 결함을 깨닫고... 눈 물을 흘리며 천외유협을 수십 장 지하빙옥(地下氷獄)에 가두었어 요." 선천빙모는 천외유협을 가두고 그의 심성을 회복시킬 수 있는 영 약을 만들기 시작했다. - 천선회령단(天旋廻靈丹). 마침내 오십 년의 각고끝에 그것이 완성되었다. 선천빙모는 뛸 듯 이 기뻐하며 한걸음에 지하빙옥으로 달려갔다. 허나 그녀의 오십 년 노력은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천외유협은 지하빙옥에 갇혀 있는 동안 지심(地深)의 빙한지기(氷 寒之氣)를 취해 오히려 빙백신공이 최절정에 이른 것이었다. 그리하여 심성이 완전히 마성(魔性)에 젖은 하나의 괴물(怪物)로 변해버린 그는 선천빙모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이미 빙백신공이 십이 성의 경지에 이른 그를 선천빙모가 제압한 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제압은커녕 오히려 그녀는 죽을 고비를 무수히 넘기면서 간 신히 천외유협의 손아귀를 벗어나야 했다. 선천빙모는 결국 눈물을 뿌리며 빙옥을 완전히 폐쇄하기에 이르렀 다. 천외유협이 밖으로 뛰쳐나오면 빙궁은 물론 천하가 피로 물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노옥정은 말을 계속 이어갔다. "대마인이 된 천외유협은 지하에서부터 집요하게 빙옥을 부수기 시작했어요. 이에 선천빙모께선 크게 근심하셨지요." 결국 선천빙모는 천외유협이 탈출해 나올 것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다시 뼈를 깎는 세월이 백여 년이 흐르고 그녀는 마침 내 빙백신공을 능가하는 어마어마한 무공을 창안해 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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