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서(廣西) 계림(桂林)에 조유강(條維江)이 흐르는데, 사계여춘(四季如春)하니, 연안(沿岸) 풍경(風景)은 유아(幽雅)하기 그지없고, 강물은 구비구비 일대 장강 푸른물이 되어, 계곡을 따라 산천을 둘렀으니 선계유곡이 온천지에 펼쳐 있다.
강의 남쪽 연안(江南岸)에 그 웅위(雄偉), 장려(壯麗)하기 이를 데 없는 창룡산(蒼龍山)이 위치해 있으니 크고 작은 세 개의 봉우리가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서있는데 그 산 아래 쪽으로는 하나의 고진(古鎭)이 위치해 있어 동그랗게 하나의 성이 형성되어 있었다.
고진(古鎭)은 방원(方圓) 십리(十里)에 달하는데, 사주(四週)는 높고 커다란 성의 담벽이 둘러 쌓여 있고, 동서남북으로는 각개 하나씩의 성문(城門)이 위치해 있는데, 새벽이 오면 네 개의 성문이 열리니, 사람들이 오고 가고, 밤이 되면 성문은 굳게 닫히는 것이었다.
성 안쪽으로는 동서남북으로 각각 커다란 길이 놓여 있으니 도로변으로는 번화흥륭(繁華興隆)하기 이를 데 없어 사람들과 마차가 끊임없이 지나다니는데 양 변으로는 주관(酒館), 다사(茶社), 여점(旅店), 기원(妓院) 등이 늘어서 있고 소상 소판(小商小販)들이 옹기종기 길을 가득 메운 채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기녀(妓女)들 또한 거리에 나와 거리 구경을 하는데 하나 하나가 마치 꽃과 같이 아름다운데 그 음성 또한 낭랑하니 온 거리에 춘색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 고진(古鎭) 전역에서 가장 부자로 손꼽히는 사람은 엽부(葉府)의 노야(老爺)인 바로 엽복(葉福)이었다. 진(鎭) 전체 상하에 걸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가 운영하는 반점에서 먹고 마시고, 진상에서 벌어지는 대소사에 걸쳐 그의 힘이 미치니 진상의 유일무이한 실권(實權)을 쥐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것은 그가 부자일 뿐 아니라 원래 무림(武林)의 고수(高手)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가 지금의 다섯 명의 부인들과 결혼하기 이전부터 그는 강호를 떠돌며 그 명성을 쌓았던 것이었다.
고진(古鎭) 상에서 그 권세(權勢)가 엽부(葉府)에 비교될 만 한 곳은 엽부와 담장을 사이에 두고 있는 이웃인 바로 왕부(王府) 뿐이었다. 왕부는 금전과 권세로서는 엽부에 비할 바가 못되었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힘은 바로 의술(醫術)이었다.
하지만 왕부에서 병자를 치료하는 것은 약간 괴이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왕부의 노야(老爺)가 일찍이 세상을 떠나고 주요한 의술은 그의 네 명의 미망인들이 시술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왕부(王府)에는 특별한 규정(規定)이 있었으니, 그것은 남인(男人)이 병을 얻어 찾아오면 왕부의 외당에 위치한 진료소에서만 진료를 하니 병자 자신이 다른 약방(藥房)에서 약을 구해야 하고, 여인(女人)이 찾아오면 왕부 안에서 모든 간병(看病)을 해주며 그 비용 또한 매우 적게 받았다.
특별히 임산부에 대한 일조 규정이 있으니, 임산부는 왕부 내에서 아이를 낳는데, 아이를 낳기 삼개월 전과 삼개월 후 동안 왕부 내에서만 머물러야 하며 집으로 돌아 갈 수가 없었다. 이 것은 최근 반년 동안 지켜져온 규정이었는데 한 번도 깨진 적이 없으니, 이는 왕부내에서 최고의 안락함을 제공하고 비용 또한 적게 받으며 산모와 아이의 평안함을 보증하니 산부의 남편들도 십분 낙의(十分樂意)한 일이었다.
엽부(葉開)와 왕부(王府)의 관계는 매우 좋은 사이를 유지하고 있었으니, 이는 엽부의 대소저(大小姐)가 왕부의 소야(少爺)에게 시집을 가서 두 집안이 사돈 사이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양 집안이 항시 마치 친가(親家)와 같이 지냈으니, 두 집안은 모두 고진(古鎭) 내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십분 존경(尊敬)을 받고 있었다.
엽복(葉福)은 다섯 명의 처첩(妻妾)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비록 그녀들로부터 여덟 명의 아이들을 낳았지만 모두 여아(女兒)였다. 회심지여(灰心之餘), 한 남자 아이를 들여오니 그 이름을 엽개(葉開)라 지었다. 매일 같이 그와 다섯 부인이 그에게 무공을 가리치니, 단 엽개의 원래 신상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니, 다만 사람들은 엽복(葉福)이 아마 거리에서 한 고아(孤兒)를 주워 온 것일 거라고 소근거리는 것이었다.
엽개(葉開)는 그 용모가 비단 영준(英俊)할 뿐만 아니라 머리 또한 총명(聰明)하기 그지 없으니 하나를 가리치면 열을 알아 들을 정도였다. 그의 나이 십육세가 돼자 하나의 정원(庭院)이 주어지고 소란(小蘭)과 소련(小蓮)이라는 두 하녀가 시중을 들게 되었다.
최근 들어 엽복(葉福)은 늘상 강호 주행을 즐기니 거의 집에 머무르는 일이 드믈게 되었다. 따라서 그의 다섯 부인은 각기 세 명 씩의 여제자들을 받아 들여 각자 무공을 전수 하는 일에 몰두하니, 최근 반 년 내의 그녀들의 유일한 즐거움은 제자들의 무공 수련이 날로 향상되어 가는 것을 보는 것이었다.
엽개(葉開)가 십팔세가 되던 바로 그 해, 엽부(葉府)에는 양건의 대사가 발생했으니, 그 하나는 엽부(葉府) 대소저(大小姐)의 남편인, 바로 담장을 사이에 두고 이웃한 왕부의 소야(少爺)가 중병으로 돌연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또 하나는 연이어 엽복(葉福)이 강호주행시 옛 원한에 연유해 암산(暗算)을 받아 세상을 역시 떠난 것이었다.
엽복(葉福)이 이루었던 일맥(一脈)이 단전(單傳)되기에 이르렀으니, 형제 또한 없었으니 이 후 부상(府上)의 대소사는 대부인이 접수하여 관리하게 되었다.
엽복(葉福)에게 비록 엽개(葉開)라는 아들이 있었지만, 단 엽개는 실제상은 외인(外人)이니, 따라서 다섯 부인은 심사숙고 상의하여 엽개와 둘째 소저인 엽추(葉秋)를 결혼 시키기로 결정하였다.
사정이 이렇게 결정이 되었지만, 단 노야(老爺)가 돌아 가신지 얼마 되지 않아 두 사람의 결혼을 즉시 치룰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와 같은 속사정을 알게 되었으니, 특히 결혼 할 두 사람은 은밀한 웃음을 그치지 않으니, 이야기의 시작은 어느날 엽개가 늘상 그랬듯이 엽추(葉秋)의 손을 잡고 뒷산으로 야유회(幽會)를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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