德厚の野望 48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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德厚の野望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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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심가장은 달갑지 않는 성황을 맞이하는 중이다.
대상련에 불만을 가진 소주의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아침부터 한 데 뭉쳐서 웅성거리거나 손가락질을 하였다.
정문과 입구마다 도검을 지닌 호위무사가 눈을 부릅뜨고 있어 무력 충돌은 없었으나, 심가장 관계자 입장에서는 살얼음장을 걷는 심정이다.

금보옥은 전대 심가장주가 차지했던 서재에서 걸린 그림을 감상했다.
송대 문인화가 문동의 묵죽도墨竹圖 였다.
대나무 잎이 활기차게 퍼진 것을 표현한 이 수묵화는 흡수력이 높은 화선지의 미묘한 특징을 활용해 붓의 유연함과 먹의 농도를 조절하는 고도의 기예로 표현한 것이다.

금보옥은 가만히 그림들을 응시하는 것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삭였다.
밖에 소주의 시민들이 시위하듯 모인데에 대한 혼란과 두려움의 답을 찾으려했다.
처음에 덕후의 책략을 듣고 알면서 당해주는 역할이니 좀 인내하면 되겠지 라고 수락했는데, 막상 당해보니 영 아니올시다, 였다.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는 아군을 독려하고, 군중들이 대상련과 자신에 대해 거대한 적의를 가진다는 것에 금보옥은 용위수를 상대할 때도 느끼지 못했던 중압감을 받곤 했다.

유일한 위로라면 슬슬 반전이 시작될 때라는 점이다.

-그러나….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금보옥은 입 밖안로 도로 삼키며 사색에 들어갔다.
심가장에 모인 인원 수는 밀집한 도시라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하루에 천이라는 숫자가 심가장에 시위하듯 서 있다가 돌아가곤 하지 않는가.
허나, 소주에 한하지 않고 항주등을 비롯한 양주에 반향을 띄우는 것은 미지수다.

여기까지 와서 금보옥은 성사에는 큰 관심은 없었다.
단 한 가지 이대로 소요사태로 벌어지면 반란의 여부를 놓고 말이다.
위소에서 병력이 출동하면 끝장이다.
무보수로 움직일 수만에서 십만이 넘는 명나라 잡졸의 병참을 떠맏게 생길 뿐만 아니라 약탈을 눈감아야한다.
전쟁으로 정신이 돌아버린 이들에게, 이성적인 설득히 먹히지 않는다.
실패한 대가인 응징-약탈은 대상련의 몰락으로 이어질 터이다.

-상인입네, 했어도 나는 결국 강호인이었던 걸까?

문파 간의 흥망이 아닌 사회 전체의 흥망을 건 내기.
금보옥은 덕후와 사는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절감했다.
처음에는 약간 경시한 감이 없진 않았다.
비단 자신 뿐만 아니라 그의 여자도 마찬가지다.
겉보기만 보아서는 자신들이 뛰어난 점이 확연이 구분되니까.
그러나 그의 진짜 재능은 마음가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오.
가벼운 유희라오.
이런 것 쯤은.

덕후의 웃음소리가 환청처럼 귓전에 메아리친다.

10년지기라도 웃으며 등에 칼을 꼽을 수 있고, 불구대천의 원수라도 발가락을 핥을 수 있다.
역사에 그런 효웅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명제국에서 경제가 가장 풍요로운 도시 하나의 생사를 가지고 도박하는 이는 보지 못했다.
우위를 차지할 다른 방법도 많을텐데도 도시 전체를 뒤흔든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거부들이 하루에 몇 백냥, 심지어는 만냥을 날려도 끄떡하지 않는 것은 오직 짜릿함이라는 정신적 긴장을 원하기 때문이다.
금보옥도 거부에 속하고 도박적 승부를 많이 했지만 판돈을 노리기 위해서였지, 덕후처럼 유희하듯이 도박하진 않았다.

금보옥은 거기까지 추론하다가 막혀버렸다.
애당초 이계환생을 거친 덕후가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성장했는지 알 리가 없기에.

독선으로 진정으로 세상에 속해있기를 거부하고, 아집으로 자신을 떠받치려는 세계의 의지를 외면했다.
이 시대에 물들지 않기 위해 권모술수의 벼랑에 스스로를 몰아넣었다.
이렇게 타락해놓고 “나님은 너님들과 달라!” 하는 찌질이가 안 된 것은, 깔 짓을 한 놈은 존나 까준다라는 현대인의 소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전생에 인권평등사상을 삶과 함께 호흡해왔다.
배운 것과 달리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세상에 절망하고 순응하면서도 마음 한 켠에 갈무리한 분노의 앙금이 있다.
그런데 이제와서 환경이 180도 변했다고 잊으란 말인가? 정치적 타협이라면 몰라도, 본질까지 망각해버린다? 그럴 바에 무간지옥까지 정주행해서 소멸 루트를 타고 말지.
히로인들에 대한 굴절된 애정과 인간성에 대한 집착이 아니었더라면, 덕후는 이야기 속에 나오는 최종보스 역에 어울릴 것이다.
부패한 영혼에 녹슨 심장을 지닌 사이코패스로서.

그걸 모르는 금보옥의 눈빛에는 체념과 오기가 번갈아 발동했다.

-언니에게 질 수는 없지.

덕후로부터 사고가 막히니 우희선의 존재로 주의가 돌려진 덕분이다.
경사에서 밀천회를 몇 년 만에 장악한 우희선의 실적에는 덕후의 조력이 있기에 가능했으리라.
백학처럼 청순하고 우아한 태도의 이면에는 무수한 야합을 거쳐온 정객의 가면도 내재하고 있겠지.
그러면 자신 역시 도약하면 될 터이다.

금보옥이 심가장에 탈피를 하려는 심정으로 고치처럼 틀어박한 동안, 3공자는 주루를 전진하며 방황을 하고 있었다.
금보옥으로부터 내침을 당한 그들은 할 게 없었다.
유일하게 좋은 점이라면 장가장의 출입에 제한이 풀렸다는 점일까.
그렇다고 허리를 굽히고 가버리면 대상련에 버림 받아 실용상단 측에 붙었다고 곡해할 것 같아 내키지 않았다.
내키지 않은 현실을 잊고자 하니 술이 고플 뿐이었다.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작작 마셔!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남자 셋이서 무슨 궁상이니!”
“오빠, 얼른 기운 내.”

황폐해진 삼공자를 구원하는 것은 삼선녀였다.
원래는 금족령이 내려졌지만 삼공자를 포섭하자는 덕후의 제안으로 풀려진 것이다.
풀어난 그녀들은 덕후에게 고마워하지 않았다.
사태를 이렇게 꼬아놓은 당사자가 아닌가.
그 길로 쪼르르 달려가 황폐해진 삼공자를 어떻게든 일으키려 애썼다.

애쓴다고 해봐야 추태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별실을 잡고, 기녀 대신 옆에 앉아 대작을 해주는 정도지만.
원래라면 엄한 가풍에서 조신하게 자란 그녀들이 행할 행동거지는 아니었지만, 부친과 주변 환경에 대한 반항과 사랑의 힘이 수치가 아닌 애정으로 바꾸었다.

“처음부터 원해서 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은 아니라고.
자기들끼리라면 모르겠지만, 엄한 아버님까지는 왜 끌어들이는건지”

초제학과 짝을 짓는 반옥령이 육감적인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어쩔 수 없지 않소.
빙장어른은 소주에서 손꼽히는 유력가이니시 말이오.”
“그래서 그냥 내버려 둘거예요?”
“길이 없지 않소.
길이…..실타레라도 좋소.
방향만 제시한다면….제시할 수 있다면….”
“그렇지! 이렇게 술 마시고 있는게 제일 한심하다는 건 알아.
이 한심한 짓거리라도 안하면 울화통이 치미니 말이지.
방법이 있다면 정말 죽자살자 매달릴거다.”

황철웅이 거칠게 내뱉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장미미가 애처로운 눈빛을 하였다.

“오빠는 미미를 버리고 갈거야?”
“윽? 그, 그건 아닌데….그, 그래, 미미에게 부끄러운 남자가 되지 않으려는 거다!”

요조숙녀처럼 강윤식의 곁에 있던 추소연이 입을 열었다.

“이건 들은 이야기인데…..실용상단 회계에 부정이 있었나봐요.”

막 술잔을 입에 대려던 강윤식의 손이 멈췄다.
그뿐이 아니라 나머지의 시선도 그리로 향한다.
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이목을 집중시킨 추소연은 말을 이었다.

“쉬쉬하고 있었지만, 아버님이 후원자들에게 감사원으로 추천받았거든요.”
“있었나봐요, 라…그렇게 말할 이유가 있소?”

술이 들어갔음에도 가장 머리 회전을 많이 하는 초제학이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시비들의 소감으론 감사 대상에 든 분들이 초조해 하였다는데, 어느 순간 하나 같이 그런 기미가 싹 사라졌다는군요.
아버님도 상당한 증거를 모으신 모양인데, 어느 순간 말 없이 중단하더군요.”
“어느 순간이라…”
“네, 바로 쌀값이 폭등하고난 이후였어요.”

대상련이 썩은 쌀을 양점에 제공하여 쌀값이 미친듯이 올랐다.
삼공자는 그 소식을 듣고 막연하게 추론한 것은 실수가 있었거니 했었다.

“올라간 쌀값으로 이윤을 속여 손해분을 메꾸었다?”
“너무 비약인지는 모르지만요.
실용상단 측에서 위기 때이므로 쌀값을 올리지 말라고 합의를 봤다해요.”
“당장 시장을 조사해봅시다.”

지체할 것 없다는 강윤식이 일어서자 취기가 확 몰아쳐 어지럼증이 몰렸다.
추소연이 가만히 그의 팔을 잡아 앉혔다.

“이미 했어요.
미곡을 담당하는 하인들에게 따로 지시했어요.
시중가의 10배로 거래된다는군요.”
“아니, 그럼 약조를 어긴 건 아니요?”
“그러니까 아행(중개인)들이 중간에 끼어들게 한 거죠.
실용상단의 이름으로 직접 내는게 아니라 상표세탁을 거친 다음에 내놓은 거에요.
장부 상으로는 합의된 액수대로 기제된거니, 겉으로만 봐서는 모를 수밖에요.”

남자들 표정에 허탈함이 번졌다.
그것은 부끄러움으로 전이되었다.
자신들이 술퍼먹고 세월아 네월아 하고있는 동안 여자들은 실마리를 찾은 것 뿐만 아니라 조사까지 마치고 온 것이다.
강윤식이 추소연에게 고개를 숙였다.

“정말 면목없소.”
“고개를 드세요.
이러시라고 말을 꺼낸 게 아니에요.”

추소연이 몸을 살짝 옆으로 피하며 인사를 피했다.
배려하는 마음에 강윤식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언제까지고 감상에 젖어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3공자의 머리를 대표하는 초제학이 나섰다.

“빙장 어른은 이 일을 알고 있소?”
“막연히는 짐작하시라 생각해요.
안 그러면 그 동안 조사한 걸 완전히 폐기했죠.”
“그렇다면 공론화 시키는 것이 급선무군.”
“잠깐만, 장가장에 피해가 가면 안 돼.”

반옥령이 다급히 끼어들었다.
초제학은 안심하라는 듯 미소를 머금어보였다.

“물론이오, 다만 여론을 만들어 빙장 어른이 자연스럽게 발을 뺄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할 뿐이오.
실용상단은 급히 만든 터라 대상련처럼 가신단의 뿌리가 깊지 않고 후원자들의 입김이 매우 강하게 적용하는 편이오.
내가 보기에는 오직 주 집사와 심우량의 역량이 있기에 단결이 가능하오.
이들에게 명분을 제거할 수 있다면 모인 후원자들은 제 발로 떠날 것이오.
거기서 묻어서 나온다면 빙장 어른을 비난할 사람은 없을 것이오.
애당초 감사원으로 임명되셨다는 것 자체가 그들과 거리를 두고, 후원자들과 적당히 친분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소.”

유려한 설명에 반옥령은 살짝 황홀감에 젖었다.
3공자 중에 가장 약해보임에도 유생과 같은 단아한 태도와 지적인 느낌이 좋아했던 것이다.
초제학이 반옥령에게 끌렸던 것은 자신에게 없은 건강미와 쾌활함 때문이었고.

“방법이 있어?”

황철웅이 성급하게 묻는다.
초제학은 빙그레 웃었다.

“산불이 나면 맞불을 놓듯, 소문에는 소문으로 맞서야지.
그리고 우리는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분을 알지 않은가.”

황철웅이 무릎을 쳤다.
그 자리에서 원샷을 한 세 쌍은 그 길로 자리를 파했다.
바래다 주겠다는 3공자의 제안을 세 여자는 혹시라도 기미를 눈치 챌 수 있으니 주의해야된다는 것으로 만류했다.
3공자는 우선 별실에 목욕물을 들여와 주독에 찌든 심신을 씻어내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그 길로 천하문의 접선지 중 하나를 골라 염미홍과 소월하를 청했다.

하루가 지나자 소월하와 염미홍이 접선지에 찾아왔다.
3공자는 그녀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다.
듣고난 소월하는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고, 염미홍은 이미 다 알았다는 태도로 무심코 고개를 끄떡이다가 탁자 밑에 발을 밟히고 나서야 비명을 질렀다.
워낙 급작스러웠기에 3공자들도 덩달아 놀랐다.

“왜 그러십니까?”
“호호호, 우리 문주님이 진중하신 편이라서요.
의미를 곰곰히 새겨들으시다가 놀라신 모양입니다.”

예인 출신인 염미홍이 활달하고 기민하다면 모를까 진중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위화감이 들었지만, 염미홍이 군사의 말이 맞다고 거드는 편에 도로 접고 말았다.

“마침 우리들도 의혹을 가지고 추적하던 게 있습니다.
당시 호광미 수송을 책임졌던 중개인들과 양점상들의 뒤를 은밀히 캐내다보니 적지 않는 물증이 나오더군요.
다만 개별 처벌은 가능해도 몸통과 연관 고리를 찾지 못했는데 말씀하신 대로라면 윤곽이 드러나는군요.”
“다행이군요.
이제 놈들은 꼼짝 못할 것입니다.”
“그건 아니죠.”
“네?”
“물론 순리대로 처리하면 실용상단의 죄과를 물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부대인과 징세관과 한통이지 않습니까.
조작이라고 몰고가면 그만입니다.”
“설마….”
“설마가 아닙니다.
그래서 련주님이 안찰사에게 요청한 것이 아니라, 직접 경사로 연통을 보내지 않았습니까? 중앙에서 감찰어사를 파견되길 기대할 수 밖에요.”
“자체적으로 해결할 방법은 없습니까? 그 감찰어사도 어느 한쪽 편만 들으면 도로아미타불 아닙니까?”
“무리에요.
그렇게 하다가는 조정에 정면으로 거역하는 꼴이 될테니까요.
최선은 공론화시켜서 꼼짝 못하게 하고 감찰어사로 하여금 최대한 공정하게 심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공정하게, 라는 부분에서 소월하는 잠깐 반박자 늦췄는데 속으로 고소 지었기 때문이다.
금보옥이 상신할 사람을 보냈다 할 때 총명한 소월하는 약간 짐작할 수 있었다.
감찰어사는 최소한 우희선의 입김이 닿은 자이리라.
동창, 서창, 금의위를 한 손에 넣고 주무르는 우희선이다.
본인이 움직이지 않고 세휘가 움직여도 감찰 어사 하나 쯤은 구워삶는 건 일도 아니었다.

“공론이라면 어렵지 않습니다.
심가장 앞에 있는 시민들에게 사실을 알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성난 시민들이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데요? 너무 무책임해요.”

초제학의 의견에 소월하는 가볍게 면박을 주었다.

“폭도로 변해버리면 지부대인은 위소의 병사를 호출시켜서 진압시킬 거예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돼요.”

독하게 굴면 그 편이 낫다.
억울하고 무고한 죽음이 있어야, 희생양이 지표가 되어야 대중은 단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덕후는 소월하의 의견을 극력 반대했다.
그가 원하는 건 여론몰이와 소기의 각성이지, 왕조 전복을 할 수 있는 혁명의 불씨를 던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덕후는 소월하가 딴 꿍꿍이를 못하도록 드물게 위엄을 세우며 경고까지 했다.

- 피를 흘리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하오.
고는 절대 그들을 반역도당으로 몰고 갈 생각은 없소.

덕분에 소월하는 편한 길을 두고 멀리 돌아가는 길을 찾느라 이중으로 두뇌를 혹사시켰다.
덕후는 염미홍을 통해 툭툭 힌트를 주는 수준에 그쳤지만, 그것만으로 소월하는 근대 이후 시위문화에 가까운 규정을 짜낼 수 있었다.

“소요를 일으켜서는 안 되요.
어디까지나 비폭력으로 정정당당하게 요구해야합니다.”
“어떻게요?”
“우선 규칙을 몇 개 만들어 숙시키세요.
몸에 날붙이 같은 것을 지녀서는 안되고, 얼굴이 알려지지 않게 코 밑은 천으로 가리도록 하세요.
전자는 체포되었을 때 폭도 혐의 입증을 어렵게 하기 위함이고, 후자는 잡히지 않을 때 추격을 피하기 위해서에요.
가급적 대오를 짜서 행진하되 불이나 소동이 일어나면 당황하지 않고 수습하도록 하세요.
다들 얼굴을 가리고 있고 숫자가 천이나 되어가니까 통제할 사람이 필요해요.
큰 부채나 장대 같은 것을 만들어 인솔하도록 하세요.
무기로 오인 안받게 요구사항을 적는 것도 괜찮겠네요.
3공자님들의 명성은 양주에 진동을 하시고, 대상련과 실용상단 어느쪽에 속해있지 않다는걸 거리 사람들은 다 압니다.
그러니 말을 들을 거예요.”

듣고난 초제학이 무언가 깨달은 듯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련주님은 이런 일들을 짐작하고 우리들을 내보낸 겁니까?”
“그건 제가 답변할 사항이 아니군요.
나중에 직접 물어보시길.
그리고 이쪽에도 묻고 싶은게 있는데, 대상련주와 주 집사 어느 쪽이 이 지방을 위할까요?”

3공자는 답은 하지 않았지만 표정으로 이미 드러내고 있있었다.

“지금 심가장에 모여서 항의하는 이들은 하루하루 근근히 살아가는 사람들이에요.
일자리가 없으면 당장 굶어죽을 처지이죠.”

이 말은 3공자에게 하기보다는 이들을 모이게 한 원인, 덕후에 대한 원망이었다.
책사라는 이율배반 때문에 최선의 책을 위해 무고한 피를 원하는 구도를 짜면서도, 하층민에 대한 동정을 감출 수 없는 것이다.
천하문의 책사이니 하오문의 유력자 딸이니 해도 소월하의 근본도 거리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머리가 좋아 일반사람 다르다는 우월감을 가지긴해도, 귀족처럼 연민까지 배제하고 태어난 것은 아니다.

계획이 수립된 다음 날, 3공자는 심가장 정문을 배회하였다.
그 중에서 은근히 중심을 하는 이들과 차례차례 교섭하여 사정을 알리고 대책을 세우도록 했다.
처음에는 흥분했던 이들도 역도로 몰릴 지도 모른다는 가정과 함께 주의사항을 알리자 순순히 따랐다.
사흘 뒤, 심가장에 몰렸던 이들은 해가  뜨자 심가장에 모이다가 아문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 날은 마침 덕후와 심우량 패거리들이 지부대인과 징세관을 대접하러 간 날이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대낮에 얼굴을 반을 가린 사람이 질서정연하게 걷자 군중들이 몰린 것이다.
반은 호기심에 반은 내막이 어찌돌아가나 궁금해서 건장한 일꾼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와 여자 그리고 노약자까지 집집마다 골목마다 나와 합류했다.
아문에 이르렀을 때는 당초 천 명의 인원은 아문 정문에 있고 그 주위를 만 명에 달할 군중들이 순식간에 담을 둘러싸고 웅성거렸다.

이렇게 되자 아문에는 비상이 걸렸다.
포쾌들이 있기는 하지만 밖의 인원과 비교하면 한줌도 안된다.

“어찌된 일이냐!”

후원에서 향응을 베풀고 있다가 소식을 듣고 경악한 지부 대인은 전당으로 나와 아랫것들을 불러 닥달했다.

“반란이냐? 반란이 일어난 거냐?”
“바, 반란은 아니온듯 하옵니다.
밖에 무기를 들고 있는 자들은 없사옵니다.”

사안이 사안인만큼 통판이 달려와 아뢰었다.
지부대인은 그 말에 일단 안도했다.
지부대인은 다시 후원으로 건너가 징세관 태감을 비롯한 유지들을 안심시키려했다.

“저들은 대인을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대표자만 들어오라고 하게.”

들어오면 감옥에 가둬서 심문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통판은 고개를 저었다.

“저들이 말하길.
우리는 대표 따위는 없다.
하나가 전부고, 전부가 하나다.
만약 대인께서 굳이 초청을 원한다면 한꺼번에 들어가겠다고 합니다.”

1만명이 넘는 군중-실제로는 1천이지만-이 아문에 한꺼번에 들어선다고 생각하자 지부대인은 등골이 쭈뼛해졌다.
그러나 수십년 관직을 헤온 경험이 어딜가진 않았다.
그래, 백성들은 교화의 대상, 무지에 빠진 어리석은 이들이 아닌가.
그리고 자신은 사대부로 가르침을 내려야하는 입장이고.

“으음! 동지는 가서 귀빈들께 안심하라 이르고, 통판은 가서 탈 것과 아역들을 불러서 방비토록 해다오.”

지부대인은 하인을 불러 관복의 옷매무새를 잡게 하고 한껏 위엄을 부렸다.
그리고 아역꾼 중에서 남아도는 자들을 모조리 끌고왔다.
포쾌, 경부(야경꾼), 옥졸 등 무품으로 빌붙어있던 자들이 불안한 기색으로 지부대인을 둘러쌌다.
지부대인은 훅훅, 심호흡을 하고 아역꾼들이 준비한 가마에 탔다.
그리고 사방에 있던 가마꾼들이 번쩍 들어올려지자, 인파 속에 떠오르듯이 위풍당당하게 호위를 받으며 아문 밖으로 나섰다.

밖으로 나서자 수많은 군중들의 시선이 지부대인에게 와꽂혔다.
지부대인은 은근히 살이 떨렸지만 겉으로는 태연했다.

“본관이 소주의 지부대인을 맡은 자이다.
민들은 내게 고할 거리라도 있는가?”

고하거 나서 지부대인은 밖의 상황을 가늠했다.
주동자는 앞에 복면을 쓴 듯한 장정들이고, 나머지는 죄다 따라온 구경꾼들이었다.
보고한 통판에게 저주를 퍼붓고 싶었지만, 반대로 고했으면 군중은 이 놈들과 한통속이 아니냐고 질책할 거라는 것을 생각 못하고 있었다.

“대인께서는 통촉해주십시오.”

앞에 주동자로 보이는 세 남자가 복면을 하고 나섰다.
강남3공자였다.

“무엇을 말이냐?”
“징세가 너무 가혹하옵니다.
나라에서 필요한 재원을 마련한다해도 정도가 있지 않습니까? 벌써 물가가 폭등해서 파시를 하고 있는 실정이옵니다.
덕분에 일자리를 잃고 생계를 잇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나날이 늘고 있습니다.”
“어허! 위에서 정하는 일이다.
여기서 경사, 혹은 구변진까지 물자를 운송하는데 노임도 계산해야하는 것 아니냐.
북방에 혹한에 달자들과 싸우다 죽어갈 장병들에게 부끄럽지 않느냐?”
“진정 부끄러운 것은 어느 쪽이오리까? 그 물자가 아무리 많이 들기로서니 시중가의 10배 훌쩍 넘을 수가 있소이까? 그리고 횡령을 제어하고 비용을 절감해야할 것이 대인의 의무가 아니옵니까?”
“횡령이라니! 무엄하게!”
“우리들은 황상과 조정에 거역하려는 것이 아니오.
대명제국이 붙어 기생하려는 쥐새끼들을 박멸하려는 거지.
이 것이나 읽어보고 말하시오.”
“그건 무어냐?”

거한이 품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자 지부대인은 침을 꼴깍 삼켰다.

“호광미를 썩어버린 쌀로 바꿔치기한 천하의 날강도들의 명단이오.
덕분에 떼거지로 굶주리고 있는 자가 늘고 있소.
덕분에 가장 필요한 곡물 값조차 천정부지로 솟고 있소이다.
우리더러 쌀도 못먹고 죽으란 말이오리까?”

쌀이 없으면 흙을 먹으면 되지! 라고 대꾸하고 싶은 지부대인이다.
그러나 두툼한 볼 아래 난 윤기나다 못해 기름떡이 진 수염을 쓰다듬었다.

“에헴! 그건 민이 아니라 관에서 처리할 사안이니라.
본관이 봐서 엄정하게 처리해주마.”
“우리들은 공개 재판을 원하오.
이 사태의 원흉을 낱낱히 밝히고 재발이 없도록 해주시오.
아울러 과도한 징세를 중단해주기를 바라오.

“어허!
“우! 우! 우~!”

지부대인이 뭐라 호통치려고 하자 복면인들이 일제히 야유했다.
지부대인의 위엄은 만인의 조롱에 허망하게 묻히고 말았다.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해서 고함을 질렀다.

“지금 너희들은 지금 본관을 우롱함이 아니라 아문과 나아가서는 대명제국을 능멸하는 행위이니라! 폭도들이란 말이다!”

역성을 내자 일부는 움찔했다.
관에 대한 두려움과 권위에 스스로 눌린 것이다.
조금 진정되자 복면인들과 좀 떨어져 있던 군중들 사이에 한 유생이 뛰쳐나왔다.

“터무니없는 소리! 터무니없는 소리!”
“뭐가 터무니 없는 소리냐!”
“모름지기 목민관이라면 백성을 아끼고 구제를 해야함이 마땅할텐데 오히려 적으로 만들고 있있으니 터무니 없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입니까? 대학에서도 큰 배움의 길은 덕을 밝히고, 백성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라하였습니다.

“이 놈! 출전을 밝히려면 똑바로 해라.
백성과 친하게가 아니라 새롭게 한다이니라.
즉, 교화하는 것이지.”
“틀렸습니다! 그건 주자께서 해석한 것이지요.
출전을 보면 분명히 친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럼 주자께서 틀리셨단 말이냐?”
“그럼 공자께서 틀리셨단 말입니까?”

대학은 원래 북송의 사마광이 예기의 일부를 편찬한 것으로 이것을 다듬은 것이 남송의 주희(주자)이다.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데, 무에 둘째는 없고 문에 유일은 없다는 속담처럼 주희가 성리학 성립으로 아무리 추앙받는다한 들, 창시자인 공자를 능가할 수는 없는 법이다.
지부대인은 말문을 막혔다가 냉소했다.

“그리고 대인께서 이들을 폭도라고 규정하셨는데 소생이 보기에는 흉기 하나 지니지 않았습니다.
약탈하거나 방화를 저지르지 않았고, 넘어진 사람이 있으면 일으켜주기까지 했지요.
사연을 들어보면 하나뿐인 일자리를 잃고 사지에 처하다 못해 이렇게 탄원하러 온 것이라 하더이다.
이런 선량한 시민들을 폭도로 하면 진짜 폭도들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흥분한 듯 열변하는 서생은 박가흥이었다.
그 뒤에는 담죽군이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기서 슬슬 멈췄으면 하는데, 박가흥은 만인의 주목을 받는 첫 경험과 평소의 고민을 밝힐 수 있다는 점에 도취하고 말았다.

“지금 대인이 입은 수놓은 옷도 이들이 염색하고 직물로 지어내서 입은 것이 아닙니까? 아문의 담벽과 대문도 목공과 기술자들이 정성을 다해서 지은 것 아니고요? 아침저녁으로 올라가는 찬거리는 운송업자들이 옮긴 것이 아니고요? 그 일이 어찌 천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일에 매진하는 마음은 충신들이 나라를 위해 진충갈력하는 것과 비교해 가볍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박가흥의 언변은 투박했지만 모인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결사항쟁으로 모였던 복면인들의 고개도 지부대인에게 떠나 박가흥에게 향했다.

“사서오경만 파고드는 것이 학문이 아니라, 만사에도 학문의 도를 깨우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학문은 세상에 저 나름대로 위치에서 이바지 할 수 있고요.
도를 깨우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성인이라 할 수 있는데 이들도 그럴 자격은 됩니다.”

박가흥은 가마 위에서 거드름 피우고 있는 지부대인을 향해 백성들은 바보가 아니니 눈높이를 낮추라고 충고한 것이었지만 지부대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 무지랭이들과 자신을 동격 취급하는 것은 중대한 위반이었다.
예교체제를 위반할 수 있는 이단이었다.

“서생이면 글깨나 읽었을 모양인데 출처도 없는 사문난적에 혹해서 그 따위 유언비어를 퍼뜨리다니! 입이라고 근거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것은 아니되니라! 네 이름과 소속을 밝히도록 하라.
본관이 필히 관학장을 만나야할 것이니!”
“근거 없는 소리라니, 대인께서는 그 말을 책임질 수 있는지요?”

지부대인이 위협을 가자 일이 심상치않게 돌아가는 것을 느낀 담죽군이 나섰다.
주목을 받게 된 담죽군은 읍을 해보이고는 긴 소매를 휘두르며 침착하게 대꾸했다.

“소생의 친구가 말한 바가 좀 과격하기는 했지만, 아주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닙니다.
이 문제는 성즉리와 심즉리의 인식론에 대한 차이에서 출발한 것이니까요.”

그 말에 경청객들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듣기만해도 지루하고 잠이오는 고리타분한 소리라는 것을 예감한 것이다.
그러나 박가흥이 항의자들의 편을 들었던 만큼, 궁지에 몰리자 나선 담죽군 역시 변호하리라는 것을 알기에 최대한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담죽군은 여기서 학설을 주절주절 읊을 작정은 없었다.

“남송에는 주자만 있는 줄 알지만, 사실은 육상산도 있습니다.
북송의 정호의 학파를 계승한 유학자로 우주는 내 마음, 내 마음은 우주라는 심즉리를 제창하셨지요.
이는 주자의 성즉리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대립하고 말았지요.
하지만 육상산과 주자는 생전에는 서로를 존경했습니다.
육상산이 세상을 떠났을 때 주자께서는 통곡하셨지요.”

주자가 통곡까지 해준 학자를, 그래도 근거없는 사문난적으로 매도하겠느냐는 듯 지부대인을 응시한다.
주자하나만 알면 된다고 하악질하고 팔고문을 달달 외웠던 이들과 달리 담죽군은 여러 이론들을 폭넓게 망라한 편이었다.
그래서 실은 두 사람이 말년에 가서는 서로를 경원시 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언급하지 않았다.
육상산에 대해 들은 것 같기도 한 지부대인은 섣불리 반박을 주기 힘들었다.

그 빈 간극을 타서 담죽군은 항의객들을 향해 포권을 해보였다.
친구가 너무 나서기에 끼어들었지만 그도 본질적으로 관직을 추구하는 몸이다.
지부대인과 척을 지어 좋을 것이 없었다.
그는 복면인의 대표를 향해 걸어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만 물러가시오.
지부대인께서 여러분들의 억울한 사정을 성취하셨으니 곧 합리적인 판결을 내주실 것이외다.
이대로 계속 소란을 피우신다면 위소를 부를 수 밖에 없을 것이오.”
“부당함을 간하는데 무력으로 제압하겠다는 것이요?”
“당신들 주장을 관철하고자, 여기 멋모르고 모인 애꿏은 시민들까지 말려들게 만들 셈이오?”

담죽군의 말에 복면인의 대표, 강윤식은 침묵하다가 포권했다.

“일깨워주셔서 고맙소.
오늘만 날은 아닐 것이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평화적으로 탄원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는 어렵소.
우리에게 생존이 걸린 문제요.”

강윤식은 물러서면서 지부대인에게 은근히 엄포를 놓았다.
그리고 등을 돌려 부탁하니 복면인들은 군중들 사이에 일제히 흩어져 철수했다.
볼거리가 파장이 되자 군중들도 저마다 돌아가고 말았다.
그 사이 담죽군은 박가흥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얼른 돌아가세.”
“왜? 자네 연설에 감동했네.”
“이 친구, 철없는 소리를 하는군.
며칠 전에 내게 보인 모습은 포장이었나? 지부대인에게 찍혀서 좋을게 뭐가 있나? 자네만 아니었으면 나설 일도 없어.”
“이런, 내 빼기는.
앞으론 나에게 한 것처럼 백성들에게 해주게.
그럼 자넨 훌륭한 목민관이 될거야.”
“허파에 바람이나 빼게나.”

친구의 들뜬 분위기가 못마땅하다는 듯 담죽군이 퉁을 놓았다.
그러나 박가흥은 실실 웃었다.
담죽군은 연신 등 뒤에 신경을 쓰며 걸었다.
미행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에 둘은 거리를 여기저기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려는 듯이 빙빙 돌았다.
으슥한 곳으로 접어들었다.
친구의 소심함이 못마땅했다는 듯이 박가흥이 핀잔을 던졌다.

“죄 지은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신경쓰나?”
“모르는 소리 말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괘씸죄라네.”
“왜?”
“포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거든.”

목을 툭 치는 시늉을 하자 박가흥의 목이 움츠러들었다.

“그걸 잘 아는 놈이 그 따위 짓을 해?”

뒤에서 냉엄한 소리가 들리더니 포쾌 다섯이 에워쌌다.

“댁들은 누구시요?”
“이 나리들은 국민들에게 신속하게 달려가는 포쾌 어르신들이다.”

방망이를 든 모습이 당장이라도 때려주기 위해서인 듯 하다.

“이 새끼, 순진한 양민들을 선동해? 지부대인께서 하늘이 두쪽이 나도 너희들을 잡아오라 이르셨다.”

무품인 포쾌가 생원인 이들을 정식으로 잡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일단 수중에 잡고 보는 편법을 쓰려는 것이었다.
지식인에 속하는 생원이 선동했다고 하면 1만이나 되는 군중들을 모은 것에 대한 변명이 되고 남는다.

포쾌가 살기등등하게 성큼 걸어간다.
그러나 잡지는 못했다.
둘 사이에 무언가 쿵! 하고 떨어진 것이었다.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거기 장사님들 물건 옮기다 실수로 떨어뜨렸는데 올려주시겠어요?”

교태어린 소리와 함께 2층 높이의 좌우 난간에서 기녀들이 하나 둘 고개를 내밀었다.
순식간에 우리 안의 유인원 꼴이 된 포쾌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나으리들은 공무수행에 바쁘다! 너희들은 밤에 보자!”
“아잉~ 평소부터 안하던 짓을 하시다니…..백주 대낮부터 그렇게 진을 빼놓으면 밤에는 토끼처럼 빌빌거리시려고요?”

한 기녀의 걸진 농에 주변의 기녀들이 까르르 웃었다.
포쾌의 칠공에 김이 뿜어지는 듯 했다.
그러나 지부대인의 명을 떠올리고 가까스로 삼았다.
두 서생을 잡으려하자 우두머리 가녀가 외쳤다.

“얘들아, 정표가 부족한가 보다.
나으리들께 성의를 보여드리자.”

맞아맞아, 하는 소리와 함께 기녀들은 까르르 웃으며 손에 잡히는 것을 마구 던졌다.
과일과 먹거리는 물론 화병이나 목간, 그리고 심지어는 생리한 천까지 투척했다.
처음에 외친 여자가 서생들을 향해 급히 외쳤다.

“도망쳐요!”
“고맙소!”

담죽군과 박가흥은 포권을 하고는 꽁지가 빠져라 달아났다.

“쫓아!”

포쾌가 바락 외쳤지만, 난간에 줄지어선 기녀들이 계속 투척을 하며 끈질기게 방해했다.
워낙 미로 같은 골목이고 1리도 못가 놓치고 말았다.
포쾌들은 그 분노의 방향을 기녀들에게 돌렸다.
2층으로 성큼 올라가 문짝이 날아가라 걷어차며 외쳤다.

“누구냐! 어떤 쌍년이 훼방을 놓았어?”
“난데요.”

난간에 걸어나오는 한 단복을 입은 처자가 빈정거리 듯이 나섰다.
포쾌는 눈을 부릅뜨며 고개를 도도하게 든 처자를 향해 다짜고짜 손찌껌을 날렸다.
짝! 하는 소리와 함께 처자의 고개가 휙 꺾이더니 쓰러지고 말았다.
입안이 순식간에 터져 핏물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포쾌는 아랑곳하지 않고 머리채를 휘어잡더니 발갈질로 여기저기 짓밟았다.

“이 미천한 것이 어디서 지랄이야!”

첫 구타에 충격을 받았는지 여인은 육인형처럼 두들겨 맞았다.
그러나 실은 속으로 갈등하는 중이다.
 
-참아라, 미홍아.

두 유생을 구한 이의 정체는 염미홍이었다.
군중 속에서 구경을 나섰다가 돌발적으로 끼어드는 모습을 목도했다.
저번에 엿들었던 대화를 떠올리며 흥미있게 지켜보다가, 포쾌들이 추격하는 것을 보고 급히 달려온 것이다.
천하문주인 그녀는 기루와 객잔의 입장에선 사업주나 마찬가지다.
염미홍은 궁지에 몰린 틈을 타 기녀들에게 간략하게 사정을 설명하고는-시간이 별로 없었기에 쫓기는 놈, 착한 놈, 쫓는 놈 나쁜놈이라고 했다- 투척을 부탁했다.
그리고 몸을 피하라는 기녀의 만류를 제지하고 뒷감당을 하고자 스스로 앞으로 나선 것이었다.

-우리 자기도 흑룡방에 가서 오줌 지리고 멍석말이 당했는데도 참았잖아.
나라고 못할 게 뭐가 있어.

진기를 암암리에 돌려 골에 충격이 파고드는 것을 방지했으나, 피륙에 무차별로 엄습하는 둔통까지 어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염미홍은 머리가죽이 뜯기지 않도록 붙잡고, 한 손으로는 가슴을 보호한 채 몸을 최대한 말았다.
사전에 엄명이 있는지라 기녀들은 자기네 문주가 구타당하는 것을 울분을 삼키며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이 년들이 가만히 두지 않겠다! 끌고가서 죄상을 엄히 밝힐 것이야!”

헉헉 거리며 구타를 마친 포쾌는 염미홍을 풀어줄 생각이 없는지 동료에게 넘겼다.
기녀 한 명이참다 못해 나서려는 듯 하자 흐트러진 머리카락 아래로 염미홍이 휙 노려보는 것을 보고는 참았다.
그렇게 염미홍이 맥없이 기루 밖으로 끌려가자 지켜보는 기녀들 사이에 눈물과 함께 원한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 일은 초특급 급전으로 소월하에게 보내져 소월하가 잠시간 뒷목을 부여잡고 쓰러질 뻔한 계기를 마련하고 만다.

비단 이 사태는 염미홍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곳곳에 일어났다.
아문에서 풀려나온 아역꾼들은 주동자를 잡는다고 소주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무상 근무가 원칙이라 봉급은 없었다.(간혹 밥값은 주는 정도는 있다.) 그러나 권력의 단물을 빨을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이들은 호기를 만난 듯 억마구니로 사방을 둘러싸며 수상쩍거나 평소 거슬리던 이들을 잡히는대로 잡아들였다.
심지어 외국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니? 이에~이에~ 와시는 동영에서 유람왔스므니데스”

길거리에 양민이라는 사냥감이 널렸는데 그게 국산이든 수입산이든 알 바가 아니었다.
어색하나마 한어로 사정을 설명하려던 그 외국인은 이 자리를 모면하려 거짓말한다고 여기고는 사정없이 방망이 세례를 맞고 옥으로 끌려갔다.
지부대인이 구국의 결단에 불타오르며, 현장 진압을 위해 애쓰는 동안, 안에서는 환상적인 왜곡소통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거둬들이는 세입이 부족해서 불만이 높은 것 같습니다.”
“허어…..실로 이 백성들은 충심이 높군요.
하지만 더 올리기는 힘들텐데…”

태감도 백성이 거둬들이는 세입이 부족하다고 난리피우지 않으리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더 쥐어짤 기회를 준다는데 마다하지 않는 것일 뿐.
발상은 덕후가, 전달은 강부자의 입을 빌려 꿀물처럼 태감의 귓가에 스며든다.

“기계류나 원자재에 세입을 부과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직기나 염료 등등에 말입니다.”
“그것은…..만고에 영원히 남을 탁월한 안이오!”
“그러니까 그것은 좀….”
“안찰사 따위는 내게 맡기시오.
확실히 해결해주리다! 신용의 신! 하면 나요.”

태감은 호언장담을 하였다.
이로서 과세의 명은 착실히 이행되었다.
전해들은 지부대인의 두툼한 볼살이 비계보다 하얗게 변하건 말건 징세인들은 물만난 제비처럼 새로운 먹이를 향해 움직였다.

 

 


후반부 전개가 좀 유치하죠? 그런데 독자분도 알다시피 현실은 더 유치하답니다.
(….)

(파트 4를 기획했을 때 이런 방향이긴 해도 시국을 염두해서 쓴 건 아니었는데….orz) 모티브는 “광세의 화”라는 명말의 반세 운동에서 따온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400년전이나 지금이나 다름 없는걸까요.
명나라는 전제왕조인데 말입니다.
어쨌든 소설에 특정 정치색을 입히는 것은 지양하고 있습니다만 이 경우는 상식의 문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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