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어느 날 자네가 나를 찾아와 싸움을 건다면 나는 자네 가 오는 즉시 달아날 것이네." 모용수는 담담하게 물었다. "어째서 그렇소?" 번우량은 단호하게 대꾸했다. "자네는 절대 자신없는 싸움을 하지 않기 때문이지. 자네가 일단 찾아 오면 그것은 이미 자네가 확고한 자신이 있다는 것 을 뜻하네." 모용수는 아무 말없이 가만히 웃기만 했다. 번우량이 우두커니 서서 위지혼이 장작을 패는 광경을 보고 있을 때 모용수가 산에서 내려왔다. 이, 오 제 모용수의 두뇌는 천하제일이었지만 몸은 그렇지가 못했다. 때문에 그는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 비틀비틀거리며 간신히 지게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는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준수한 얼굴을 찡그렸다. "이런 일은 내 체질에는 맞지 않아." 번우량은 빙그레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렇게 체질에 맞지 않는 일을 무엇때문에 하나?" 모용수는 땀을 닦으며 힐끗 그를 쳐다보았다. "나보고 이 일을 중지하고 산을 내려가란 말이오?" "하하......그게 아니라 나같으면 체질에 맞지 않는 일은 목 에 칼이 들어와도 못할 거라는 말일세." "다행히 나는 당신이 아니오." 번우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자네가 아니어서 다행일세. 이 일은 제법 내 체질에 맞거든." 그때 다시 한 사람이 비틀거리며 산에서 내려왔다. 그 인물은 자기 체구보다 두 배는 커보이는 지게를 질머진 채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용케도 쓰러지지 않고 그들의 앞까지 걸어왔다. 그 인물의 체구는 유난히 호리호리했고 머리카락은 잔뜩 흐 트러져 땀에 젖은 이마에 찰싹 달라 붙어 있었다. 허나 그녀의 타고난 미모는 그런 것으로도 가리워지지 않았 다. 오히려 그녀가 땀을 닦기 위해 머리카락을 슬쩍 쓸어올리 는 모습에는 말할 수 없는 매력이 담겨 있었다. 번우량과 모용수는 그녀가 무척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알면서 도 도와주기는 커녕 그럴 생각조차 없는 듯 멀뚱멀뚱 지켜보고 만 있었다. 그녀의 성격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럴 때 그녀를 도와주기 위해서 손을 내미는 것이 얼마나 그 녀를 모독하고 성나게 하는 일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간신히 산더미같은 나무지게를 내려놓은 채 가쁜 숨 을 몰아쉬었다. 그녀의 가슴부위가 파도처럼 일렁거리면서 묘한 충동을 느끼 게 했다. 모용수는 눈쌀을 살짝 찌푸린 채 고개를 돌렸다. 허나 번우 량은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빠르군. 머지않아 우리들중 한 사람을 따라 잡겠는걸." 섭보옥은 입술을 꼬옥 깨물었다. "언젠가는 당신들 모두를 따라 잡고 말거에요." 이런 표정으로 말해도 남자에게 아름답게 보이는 여자는 흔 치 않을 것이다. 번우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겠소. 나는 이제 한숨을 쉬었으 니 도끼질을 해야겠소." 그는 위지혼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위지혼은 어느 새 장작 패는 일을 모두 끝내고 도끼를 손에 쥔 채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가 도끼를 들고 서 있자 마치 사나운 맹수가 이빨을 드러 낸 채 으르렁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번우량은 그의 앞으로 가 서 손을 내밀었다. "이제 내 차례일세." 위지혼은 번쩍거리는 눈으로 번우량을 쏘아보고 있다가 도끼 를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모용수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위지혼이 손에 흉기를 들고 있을 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서 번우량 뿐일 것이다......" 위지혼은 여전히 웃통을 벗은 채로 한쪽에 가서 번우량이 장 작을 패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쪽에 섭보옥이 있었으나 그는 벗은 상체를 가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녀도 그런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 것 말고도 그들 이 신경써야 할 일은 너무나 많았다. 예를 들면, 언제까지 이런 일들을 계속해야 하는가? 동곽선 생은 과연 태극천자 위지독고의 무공을 알고 있는가? 알고 있 다면 언제 그들에게 그 무공을 가르쳐 줄 것인가? 어떻게 하면 다른 세 사람에게 뒤쳐지지 않고, 아니 그들을 뛰어 넘어 앞서 갈 수 있는가? 이런 문제들이 그들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허나 지금 위지혼의 가장 큰 관심사는 번우량의 도끼질이었 다. 번우량이 도끼를 사용하는 방법은 위지혼과는 약간 달랐다. 그의 도끼를 내려치는 속도는 위지혼에 비하면 상당히 느렸다. 어찌보면 답답할 정도였다. 반면에 그의 도끼에 잘려져 나간 장작들은 표면이 아주 매끄 러웠다. 그것은 한 가지 사실을 나타내준다. 번우량의 도끼에는 무서 운 힘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번우량은 비록 위지혼보다 빠 르고 정확하지 못할지는 모르지만 그의 힘만은 위지혼도 감탄 할 정도였다. 그는 마치 곰처럼 힘이 셌다. 허나 곰처럼 미련하지는 않았 다. 그것이 바로 번우량의 무서운 점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번우량의 가장 무서운 점은 그가 무슨 일이 있어도 절 대로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화를 내지 않으므로 그는 무슨 일이건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흠모하고 따 르게 했다. 이것은 그가 천성(천성)적으로 타고난 기질로서, 모용수의 두뇌, 섭보옥의 미모와 함께 위지혼이 가장 부럽게 생각하는 재능이었다. 허나 그들 세 사람도 또한 위지혼의 천부적인 승부감각을 부 러워 하고 있었다. - 무(무)로써 화군악에 필적할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서 오 직 위지혼 뿐일 것이다. 이것은 일전에 모용수가 한 말이었다. 그는 그 외에도 몇 마디 말을 더 했다. - 번우량이 세력을 쌓는다면 사상최강(사상최강)의 집단(집 단)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무림인들이 모두 자살한다 해도 조금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섭보옥이 원하면 남자들은 모두 목숨마저 내놓을 것이 니까. 그의 말을 받은 것은 이번에도 번우량이었다. - 만약 무림에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일들이 벌어진 다면 나는 제일 먼저 자네를 찾아가겠네. 그 일의 배후에는 자 네가 있을테니까. 번우량은 이렇게 말하며 껄껄 웃었으나 모용수는 웃지 않았 다. 모용수는 평소에도 웃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웃어도 소리내어 웃은 적은 거의 없었고 입속으로 가만히 웃다가 어느 틈에 웃음을 멈추곤 했다. 자신이 웃으면 남들에게 헛점을 보 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완벽(완벽)한 것을 추구해 왔으며 자신이 남들보 다 완벽하다는 믿음하에 살아왔다. 도끼질을 할 때도 그의 그런 성격은 어김없이 드러났다. 그는 항상 등을 지고 서서 도끼질을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떤 식으로 도끼를 사용하는지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 문이다. 허나 그가 자른 장작들은 하나같이 규격이 일정했고, 깔끔하 게 다듬어져 있었다. 도끼를 이토록 반듯하고 정교하게 사용하 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투박한 도끼도 이럴진데 하물며 그의 손에 정교하고 날카로 운 병기가 쥐어진다면 어떠하겠는가? 번우량은 가끔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왠지 모르게 섬뜩해졌 다. 모용수가 도끼를 사용하는 시간은 그래서 항상 제일 길었다. 동곽선생은 그들 네 사람에게 도끼는 겨우 하나 밖에 주지 않았다. 그래서 제일 마지막으로 섭보옥이 도끼를 사용할 즈음 에는 해가 벌써 중천에 떠있기가 일쑤였다. 오늘도 섭보옥이 장작을 채 반도 쪼개지 못했는데 어느 새 정오가 지나 버렸다. 섭보옥이 도끼를 사용하는 방법은 그들중 가장 특이했다. 그녀는 장작을 십 보 밖에 세워놓은 채 도끼를 던져 그것을 쪼개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한 개, 어떤 때는 두 개나 혹은 세 개를 세워 놓고 동시에 쪼갤 때도 있다. 그녀의 도끼를 던지는 솜씨는 그야말로 정확했다. 번우량은 아직 단 한 번도 그녀의 도끼가 빗나간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도끼를 던져놓고 다시 그것을 집으러 갈때도 그녀는 항상 뛰 어갔다가 뛰어왔다. 첫째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였고 둘째 는 다리힘을 기르기 위해서였다. 언젠가 위지혼은 그녀가 도끼를 던져 장작을 쪼개는 광경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번우량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나중에 무림에서 그녀를 만나게 되면 반드시 그녀의 열 발 짝이내에 있지 않도록 조심해야 겠소." 번우량은 항상 돌부처처럼 말이 없던 그가 먼저 입을 연 것 이 신기해서 즉시 물어보았다. "그건 왜 그렇소?" 위지혼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그래야 그녀의 비도(비도)를 피할 수 있을 테니까." 위지혼의 말인즉, 열 발짝 이내에서는 자신도 그녀의 암기를 피할 자신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때 번우량은 위지혼이 그녀까지도 마음속의 적(적)으로 생 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었다. 허나 머지않아 그는 위지혼이 그녀 뿐만 아니라 자신과 모용수 마저도 미래의 적으 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 뿐만 아니라 무공을 익힌 모든 사람은 위지혼에게는 적 이었다. 물론 위지혼이 필생(필생)의 상대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화군악이었다. 허나 그는 화군악 뿐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도 패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인생(인생)이란 곧 적과의 끝없는 싸움이 며 승부의 연속이었다. 적수(적수)가 없는 인생은 그에게는 죽음과도 마찬가지인 것 이다. 섭보옥이 장작 패는 일을 다 마쳤을 때는 이미 오후가 되어 있었다. 그제서야 그녀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아침식사 를 하러 갔다. 식사를 마친 후 해가 지기 전까지 그녀는 다시 나무를 한 짐 해와서 도끼질을 해야 한다. 그 일이 끝나기 전에는 잠을 잘 수가 없다. 이것은 그들의 사부인 동곽선생이 정한 유일한 규칙이었다. 이것외에 그들은 모든 것이 자유였다. 일을 마친 후에 그들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으며 어디든지 갈 수가 있다. 심지어 다른 문파(문파)의 무공을 익혀도 상관이 없다. 아니 오히려 동곽선생은 적극적으로 권장을 하기까지 했다. - 되도록이면 여러 문파의 무공을 두루 습득하도록 해라. 너 희들이 알고 있는 무공이 많으면 많을수록 너희들의 수련은 빨 리 끝날테니까. 그들은 아무도 동곽선생의 말뜻을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했 지만 그의 지시를 거역하지 않았다. 그들중 가장 열성적인 사람은 역시 위지혼이었다. 위지혼은 무공광(무공광)답게 닥치는대로 아무 무공이나 익혔다. 그는 나무를 해오고 장작을 패는 시간이 항상 빨랐기 때문에 남는 시간도 제일 많았다. 그는 그 시간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무공을 연마했다. 심지 어는 멀지 않은 연화봉 정상에 위치한 화산파에 몰래 숨어들어 가그들의 절기를 훔쳐 배운 적도 있었다. 가장 소홀한 사람은 모용수였다. 모용수는 이곳에 올 때 수 백권의 서적을 가지고 왔었다. 그는 틈만 나면 그 책들을 닳아 없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 다. 번우량은 모용수가 그 책들을 이미 첫 글자부터 마지막 글자 까지 한 자도 빼놓지 않고 모두 외우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 문에 궁금해서 물어 보았다. "그 책에 뭐가 씌여 있는지를 다 알면서 무엇때문에 또 읽고 있나?" 모용수는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위지혼처럼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기에는 체질에 맞 지 않소. 그렇다고 멍하니 앉아 있을 수도 없으니 책이나 읽고 있는 수밖에 없지 않소?" 번우량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그는 모용수처럼 가만히 책이나 읽고 앉아 있을 성격은 못되었다. 그는 일을 마친 후에는 항상 아무도 없는 으슥한 숲속으로 가서 내공을 연마하는데 열중했다. 그는 자신이 위지혼같은 날카로운 승부감각이나 모용수같은 천부적인 두뇌는 없다고 생각했다. 허나 내공방면으로는 그들 을 압도할 자신이 있었다. 그는 네 살때부터 내공을 수련해 왔다. 그의 할아버지인 건곤일수 번일악은 살아 있을 때 강호무림 에서 내공이 가장 막강한 고수로 손꼽혔던 인물이었다. 번우량은 네 살때부터 번일악에 의해 체계적으로 내공을 수 련해왔고,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청년층에서는 가장 강한 내 공의 소유자가 되었다. 그리고 작년에 스무 살을 막 넘긴 나이에 그는 강호무림에서 몇몇 전대(전대)의 기인(기인)들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에게 도 내공으로 밀리지 않았다. 그의 나이를 생각한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무림역사상 실로 보기 드문 일이었다. 그것은 그의 체질이 선천적(선천적)으로 내공을 연마하기에 적합한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 자신이 부단(불단)한 노력 을 했기 때문이었다. 번우량이 내공수련을 거의 끝마칠 즈음에서야 섭보옥은 간신 히 그날의 일과를 끝마칠 수 있었다. 처음 한동안은 그녀는 너무도 피곤해서 그대로 잠자리에 골 아 떨어지곤 했다. 허나 일이 조금씩 익숙해지고 약간의 시간 이 남게 되자 그녀는 숲속으로 달려갔다. 그녀가 일을 끝마칠 때면 항상 늦은 저녁이거나 밤이었다. 그녀는 솔잎을 한 주먹 가득히 따가지고 칠흑같이 어두운 숲 속으로 들어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녀가 솔잎을 가지고 컴컴한 숲속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허나 언제부터인가 근처 숲속에서 벌레들의 모습을 찾아보 기가 어려웠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숲속에서 그녀는 청력 에 의지하여 송침(송침)을 날려 벌레들을 죽였던 것이다. 그날 저녁. 그들이 일과를 마치고 잠깐 자리에 앉아 쉬고 있을 때였다. 한 달에 서 너번 밖에는 그들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던 동곽 선생이 갑자기 불쑥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의 뒤에는 백의를 수수하게 차려입은 키가 훤칠한 청년이 뒤따르고 있었다. 네 사람의 시선은 모두 그 백의청년에게 집 중되었다. 백의청년은 그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도 별로 쑥스러워 하 거나 어색해 하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번우량은 한 눈에 그가 마음에 들었다. 마음이 떳떳한 사람만이 남들의 시선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라면 기꺼이 친구로 사귀어 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모용수는 아주 살짝 눈쌀을 찌푸렸다. 그는 자신이 백의청년 보다 더 준수하다고 확신했다. 허나 왠지 모르게 기분이 언짢 았다. 백의청년이 그들을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지었을 때 그는 더 욱 기분이 상했다. 자신도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한참후에야 모용수는 그 이유를 알았다. 그는 상대에게서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느긋한 여유였다. 위지혼은 백의청년의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가 본 것은 백의청년의 발이었다. 백의청년은 분명 두 발 을 움직여 걷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귓전으로는 도무지 상대 의 발자국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다. 위지혼의 청력은 스스로 시험해 본 봐와 같이 십 장밖에 낙 엽 떨어지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바로 지척 에서 걸어오고 있는 사람의 발자국을 들을 수 없는 것이다. 그는 다시 유심히 상대의 발을 응시했다. 그제서야 겨우 그 는 한 가지 기이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걸을 때 발의 뒷꿈치부터 땅에 댄다. 그런 데 백의청년은 그와는 반대였다. 그는 앞부분부터 딛고 뒷꿈치는 거의 알아차릴 수도 없을만 큼 살짝 땅에 대는 것이다. 위지혼은 그가 왜 그렇게 이상하게 걷는지 그 이유는 알지 못했다. 허나 상대가 발자국소리를 내지 않고 걷는다는 것 자체만으 로도 그는 충격을 받았다. 동시에 그는 뱃속이 훨훨 타오르는 듯한 느낌에 몸을 가늘게 떨었다. 그런 느낌은 태어나서 두 번째였다. 첫 번째로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은 그의 첫번째 사부였던 홍 황도 우문황이 화군악에게 쓰러지는 광경을 보았을 때였다. 그 는 왠지 모르게 자신의 핏속을 뛰어다니는 기이한 전율에 사로 잡혀 있었다. 그들중 가장 냉정한 눈으로 백의청년을 관찰한 사람은 섭보 옥이었다. 섭보옥은 그의 발걸음이 어떻다는 것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 았다. 그녀가 그에게서 받은 첫 인상은 세가지였다. 첫째는 그가 무척 주관이 뚜렷한 사람일거라는 것이었고, 둘째로 그가 절대 로 우연히 이곳을 온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로 그는 '남자(남자)'라는 사실이었다. 그렇다. 그녀는 그것을 의식했다. 난생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외에 다른 사람을 남자 로 의식했던 것이다. 그녀는 곧 세 번째 인상을 부정(부정)했다. 그럴 리가 없다 고 생각했다. 허나 부정하면 할수록 그의 모습은 점점 더 매력 적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녀는 부정하는 것을 포기했다. 맞다. 그는 남자고 나는 여자다. 하지만 그것이 어쨌단 말인가? 세상에는 셀 수도 없을만큼 많은 남자와 그만큼의 여자가 있 다. 이 방에만도 네 명의 남자가 있다.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며 자신을 합리화시키려 애를 썼다. 다행히 그때 동곽선생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 사람은 너희들의 다섯 번째 동문(동문)이다. 오늘부터 너희들과 함께 생활할 것이다." 아무도 놀란 사람은 없었다. 동곽선생이 그를 데리고 왔을 때부터 그들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번우량이 껄껄 웃으며 그에게 다가와 그의 손을 덥썩 잡았 다. "하하......반갑소. 나는 번우량이라 하오. 귀하의 이름은?" 백의청년은 별빛같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담 담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조자건(조자건)이오." 삼, 경 쟁 번우량이 나무를 가득 지고 산에서 내려왔을 때 그는 무언가 일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위지혼은 이미 먼저 와 있었다. 허나 그는 장작을 패고 있지 않았다. 그의 손에 쥐어져 있어야할 도끼는 이미 다른 사람의 손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위지혼은 우두커니 선 채 그가 도끼로 장작을 패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위지혼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허나 번우량은 그것이 위지혼이 극도로 분노했거나 마음속에 살심 (살심) 이 들끓고 있을 때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순간 번우량은 위지혼이 그를 죽이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이 들었다. 허나 위지혼은 석상처럼 우뚝 선 채 미동도 않고 그를 바라 보고만 있었다. 그제서야 번우량은 가늘게 한숨을 내쉬며 그들 에게 다가갔다. 조자건은 도끼질을 하고 있다가 그를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번형은 조금 늦었구료." 번우량은 그의 천연덕스러운 모습에 어이가 없어 너털웃음이 절로 나왔다. "허허......내가 늦은게 아니라 조형이 너무 빨랐던거요. 어 떻게 된거요? 설마 나뭇꾼 출신은 아닐텐데......" "번형이 틀렸소. 나는 벌써 오래전부터 이런 일을 해왔소." 조자건이 담담하게 말하자 번우량은 믿을 수가 없다는 듯 눈 을 크게 떴다. "그게 정말이오?" "내가 무엇때문에 번형을 속이겠소?"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조자건은 도끼질을 계속했다. 조자건의 도끼질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아주 평범했다. 위 지혼처럼 빠르지도 않았고, 번우량처럼 무서운 힘이 담겨 있지 도, 모용수처럼 정교하지도 않았다. 또 섭보옥처럼 정확하지도 않았다. 허나 번우량은 곧 그의 도끼질에도 한 가지 기이함이 있음을 깨달았다. 조자건은 지금 그를 쳐다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런데도 그의 손은 한 치의 착오도 없이 도끼질을 계속하고 있 었던 것이다. 번우량은 그것을 보고 조자건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오직 수천, 수 만번의 도끼질을 해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익숙함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조자건의 도끼질은 남들보다 익숙했다. 그외에는 아무런 기 이한 점도 없었다. 허나 번우량은 그에 대한 의구심이 더욱 짙어갔다. 그는 대체 무슨 일을 해왔을까? 자신이 보는 견지에서 그는 절대 나뭇꾼도 아니고 도끼질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는 천부적인 체력 을 지닌 위지혼보다도 빨리 나무를 했을뿐 더러 아주 원숙의 경지에 다다른 솜씨로 도끼질을 해대는 것이다. 저런 솜씨는 절대로 흉내내거나 모방할 수 없다. 오직 수 만번의 실습(실습)을 통하지 않고서는 터특할 수 없 는 것이다. 그들이 보고 있는 동안에 모용수와 섭보옥이 차례로 내려왔 다. 그들은 위지혼보다도 조자건이 먼저 도끼질을 하고 있는 것 을 보고 각기 상반된 표정을 지었다. 모용수의 눈쌀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허나 섭보옥은 평상시보다 더욱 반짝이는 눈으로 조자건을 응시했다. 그때 그녀의 눈빛은 아주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었 다. 조자건은 능숙한 솜씨로 도끼질을 마쳤다. 이어 그는 도끼를 위지혼에게 내밀었다. "여기 있소." 위지혼은 도끼는 쳐다보지도 않고 조자건을 뚫어지게 주시하 고 있었다. 그러다가 덥썩 도끼를 움켜잡았다. 번우량은 그가 도끼로 조자건을 내려칠 것만 같아 가슴이 덜 컥 내려 앉았다. 위지혼은 그러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맹령한 속도로 나무를 내리찍을 뿐이었다. 파파파파! 그의 도끼를 휘두르는 손길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 손길은 비록 조자건보다 익숙하지는 않았으나 속도는 배나 빨 랐다. 순식간에 위지혼은 자신의 앞에 놓인 산더미같은 나무들을 모두 장작더미로 만들었다. 그 시각은 보통 때의 반도 걸리지 않았다. 그제서야 번우량은 위지혼이 지금까지 자신의 실력을 다 드 러내 보이지 않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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