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태극문 - 9편 (9/87)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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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태극문 - 9편 (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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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 도끼질을 마친 위지혼은 도끼를 땅에 꽂았다.
그런다음 벌떡 일어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조자건은 묵묵히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가 그의 몸이 사라 지자 번우량을 돌아보았다. "저 자는 무척 자존심이 강하구료." 번우량은 위지혼이 땅바닥에 내팽개친 도끼를 뽑아들며 부드 럽게 미소지었다. "신경쓰지 마시오.
원래 저런 성격이니." 조자건은 씁쓸하게 웃었다. "하지만 왠지 이제부터 내게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 감이 드는구료." 번우량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도 문득 그런 생각 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지우려는 듯 묵묵히 장작을 패기 시작했 다.
조자건의 예감은 그대로 적중했다.
그날 저녁, 일과를 마친 후 조자건이 잠시 쉬고 있을 때 위 지혼이 불쑥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는 두 개의 목검(목검)을 들고 있었다. "나와 한 판 겨룹시다." 그는 조자건에게 목검 하나를 던져주며 말했다.
그의 말투와 행동은 조자건이 절대 거부하지 못할거라고 단정하고 있는 듯 했다.
옆에 있던 번우량이 거절하라고 그에게 눈짓을 했다.
허나 조자건은 빙긋 웃으며 목검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원래 청해오는 싸움을 거절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위지혼은 이미 공터의 중앙에서 목검을 든 채 우뚝 서 있었 다.
조자건이 그의 앞으로 다가가자 모용수와 섭보옥이 흥미를 느꼈는지 공터 주위로 모여들었다.
번우량 또한 걱정어린 얼굴 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위지혼은 맹수처럼 번뜩이는 눈으로 조 자건을 쏘아보았다. "먼저 손을 쓰시오." 조자건은 사양하지 않았다. "그럼 실례하겠소." 그는 목검을 중단(중단)에 겨눈 채 위지혼을 쳐다보다가 그 의 가슴을 찔러갔다.
그가 시전한 일초는 형산파(형산파)의 절기인 와운검법(와운 검법)중의 승룡와운(승룡와운)이었다.
이 초식은 비록 강맹한 맛은 약간 부족했으나 빠르고 변화무 쌍했다.
위지혼은 목검이 자신의 가슴팍 부근에 올때까지 꼼짝 도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번개같이 수중의 목검을 아래에서 위로 쳐올렸다.
팟! 예리한 섬광이 번뜩이며 한 가닥 백선(백선)이 조자건의 승 룡와운 초식을 뚫고 들어갔다.
그 속도는 가히 번개와도 같았다.
조자건은 목검을 반쯤 내 뻗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느 새 위지혼의 목검이 그의 목덜미를 겨누고 있기 때문이 었다.
누구도 위지혼이 어떻게 조자건의 초식을 파해하고 그의 목에 목검을 갖다댔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
위지혼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조자건을 뚫어지게 응시하 며 말했다. "이게 진검(진검)이었다면 당신은 죽었소." 조자건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랬다면 결과도 약간 달라졌을거요." 위지혼의 눈에서 섬찝한 한광이 번뜩였다.
그는 무서운 눈으로 조자건을 응시하다가 천천히 목검을 거 두었다.
그런다음 말없이 몸을 돌려 사라져갔다.
번우량은 급 히 조자건에게 다가왔다. "괜찮소?" 조자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자의 검은 아주 빠르구료.
번개가 무색할 지경이었소." "너무 실망하지 마시오.
당신의 검초도 훌륭했소." 번우량은 그를 위로하려 했으나 오히려 조자건은 활짝 웃었 다. "실망하다니......내가 왜 실망한단 말이오? 내가 태어나서 무공을 펼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오.
첫번째치곤 내 솜씨도 그 런데로 쓸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소?" 그말에 번우량은 멍청해져서 입을 딱 벌렸다.그때 갑자기 누 군가가 그들에게 다가오며 불쑥 물었다. "그게 정말이오? 당신이 오늘 처음으로 무공을 펼쳤다는 말 이?" 조자건이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모용수의 준수한 얼굴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조자건은 서슴없이 고개를 끄덕 였다. "그렇소.
헌데 왜 그러시오?" 모용수는 차가운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나는 당신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소." 조자건은 흥미어린 표정을 떠올렸다. "그거 재미있구료." 모용수는 날카로운 눈으로 조자건을 응시하며 분명한 음성으 로 입을 열었다. "얼마전에 나는 하남성의 고수인 섬전도 서귀가 어느 무명의 청년에게 살해당했다는 소문을 들었소.
그때 서귀를 죽인 그 청년의 성도 조씨인데 당신은 혹시 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 소?" 조자건은 빙긋 웃었다. "물론이오.
내가 바로 당시의 그 사람이오." "그런 줄 알았소.
서귀를 죽일 정도의 실력을 지닌 사람이 아직 무공을 펼쳐본 적도 없다니 그게 거짓이 아니고 무엇이 오?" 조자건은 담담하게 말했다. "당신은 무언가 오해를 하고 있구려." 모용수의 눈쌀이 살짝 찌푸려졌다. "무얼 말이오?" "나는 무공을 펼쳐본 적이 없다고 했지 남과 싸워본 적이 없 다는 말은 하지 않았소." "그럼 무공을 쓰지도 않고 서귀를 죽였단 말이오? 그런 억지 가 어디 있소?" 모용수가 퉁명스럽게 쏘아붙였으나 조자건은 오히려 껄껄 웃 었다. "하하......그건 분명한 사실이오.
서귀와 무공을 겨루었다 면 내가 패했겠지만 그와 나는 목숨을 걸고 싸움을 했던 거요.
그 싸움에서 나는 무공을 쓰지 않고 그를 죽였소." 이어 그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모용수를 쳐다보았다. "때로는 무공을 쓰지 않고도 사람을 살해할 수가 있소.
승부 란 꼭 무공으로만 판가름나는 것이 아니란 말이오." 말을 마친 조자건은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다음날 아침 조자건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을 때 그 는 오늘이 어제와 틀리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룻동안에 그는 다른 네 사람의 표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는 어제와 똑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허나 그가 방문을 나왔을 때 본 광경은 위지혼이 벌써 나무 를 한 짐 지고 산에서 내려오는 모습이었다.
조자건이 뒤뜰로 지게를 가지러 가니 자신의 지게외에는 아 무 것도 없었다.
그가 지게를 어깨에 걸머매자 지게끈이 끊어져 버렸다.
그는 끊어진 지게끈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무언가 예리한 것으로 반 쯤 잘라놓은 듯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자건은 씁쓸하 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점점 귀찮은 일이 벌어지는군." 그가 끊어진 지게끈을 고치느라 지체하는 동안 번우량과 모 용수 등이 산에서 모두 내려왔다.
번우량은 그가 지게를 지고 산으로 올라가려 하는 것을 보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껄껄 웃었다. "하하......오늘은 조형이 조금 늦었구료." 조자건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채 산으로 올라갔다.
그가 산에서 내려왔을 때는 다른 사람들은 이미 아침식사 를 모두 끝낸 뒤였다.
조자건은 익숙한 솜씨로 장작을 패기 시작했다.
다른 네 사람들은 주위의 여기저기에 편한 자세로 앉아 쉬고 있었다.
허나 그들의 시선은 알게 모르게 조자건의 동작에 쏠 려 있었다.
조자건은 남들이 보건 말건 묵묵히 자기 일에만 열중했다.
한동안 말없이 그것을 보고 있던 모용수가 불쑥 입을 열었 다. "저 자는 항상 모든 일을 저렇게 하는군." 번우량이 의아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저렇게 하다니?" "아주 익숙하게 한단 말이오.
마치 그 일이 생활의 일부분인 것 처럼." 번우량은 수긍하는 빛을 보였다. "확실히 그렇군.
그가 뭐를 하든 남들이 보기에는 아주 수월 하고 간단하게 처리하는 것 처럼 보이는군." "그래서 이상하다는거요.
저 자의 나이는 우리와 비슷한데도 마치 우리보다 수십 년을 더 산 것처럼 노련해 보이지 않소?" "옳은 말일세.
하지만 그에게도 한 가지 미숙한 것이 있지." 모용수는 즉각 말을 받았다. "남들과 싸우는 것 말이오?" "그렇네.
저 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들 중 누구도 그를 격파시킬 수 있네.
그리고 그는 거짓말을 할 사람 같지는 않더 군." 모용수의 눈빛은 유성처럼 반짝거렸다. "지금은 그렇겠지요.
하지만 그가 그것에 마저 익숙해 진다 면 그때도 그를 이긴다고 장담할 수 있겠소?" 번우량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지.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자신있 게 말할 수 있네." "그게 무엇이오?" 번우량은 힘주어 말했다. "그가 싸우는 것에도 익숙해 진다면 누구라 해도 천하제일 고수가 되려는 자는 반드시 그를 꺾어야 한다는 것일세." 모용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난 듯 옆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원래 위지혼이 앉아 있었다.
허나 위지혼은 어느 새 자리에서 일어나 저만큼 걸어가고 있었다.
모용수와 번우량이 볼 수 있는 것은 위지혼의 굳건한 뒷등 뿐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위지혼의 눈빛이 굶주린 맹수처럼 무시무시하 게 번뜩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제6장 거 자 물 추 (가는 자를 붙잡지 않는다...) 일, 천 기 첫 눈이 내리고 있었다.
솜털같이 하얀 눈송이는 온 천지를 뒤덮을 듯 쏟아져 내려 마치 선경(선경)에라도 들어선 듯한 착각에 사로잡힐 지경이었 다.
세상이 온통 하얗게만 보였다.
아름다운 것, 추한 것, 깨끗한 것, 더러운 것, 웅장한 것, 그리고 초라한 것들이 모두 백설(백설)에 덮혀 버렸는지라 원 래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 세상의 모든 일들이 이렇듯 공평하다면 얼마나 평 온하고 즐거울 것인가? 그러나 눈이 녹아 버리면 질퍽질퍽해지는 것처럼 세상 일이 란 돌고 도는 것이니 항상 그럴 수는 없는 법이다.
눈덮힌 산등성을 걷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등에 커다란 지게를 지고 있다면 절대로 수월하지가 않다.
나무를 한 짐 가득 해왔을 때는 천하의 위지혼이라도 온 몸 이 땀으로 목욕을 한 듯 젖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허나 위지 혼은 나무를 내려놓자마자 잠시도 쉬지 않고 도끼를 들고 장작 을 패기 시작했다.
눈에 젖은 나무들은 축축해져서 잘 쪼개지지가 않았다.
그래 도 위지혼은 쉴 사이없이 도끼를 휘둘렀다.
그가 장작을 반쯤 패고 있을 때 조자건이 내려왔다.
조자건의 전신도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나무를 내려놓더니 위지혼을 돌아보며 빙긋 웃었다. "오늘도 위지형이 제일 빨랐구료." 위지혼은 그를 힐끗 쳐다보았으나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도끼질을 계속했다.
조자건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나무더미위에 벌렁 드러누 웠다.
눈발은 어느 새 그쳐 있었다.
눈이 그친 하늘은 마치 푸른 물감을 뿌려 놓은 듯 맑고 창창 했다.
조자건은 한동안 멍하니 그 끝없이 푸르른 하늘을 바라 보았다.
푸른 색종이같은 하늘에는 여러가지 영상이 떠오르고 있었 다.
조자건의 눈빛이 침침해졌다.
그때 누군가가 그에게 다가왔 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나?" 조자건이 돌아보니 어느 새 번우량이 그의 옆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조자건도 따라 웃으며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잠시 쓸데없는 공상을 하고 있었네.
자네는 언제 왔나?" "방금.
위지혼은 도끼질을 모두 끝냈는데 자네는 하지 않을 셈인가?" 그들은 그동안에 상당히 친해져서 서로 격의없는 대화를 나 눌 정도가 되었다.
조자건은 피식 웃었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자네가 먼저 하게.
나는 좀더 쉬고 싶 으니까." "하하......
불감청(불감청)이언정 고소원(고소원)이라.
그 럼 내가 먼저 실례하겠네." 번우량은 사양하지 않고 위지혼이 던져 두고간 도끼를 움켜 잡았다.
조자건은 묵묵히 번우량이 장작을 패는 광경을 지켜보 고 있었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며 나무를 져 날랐는데도 힘이 남아 도는지 번우량의 도끼를 휘두르는 동작은 아주 힘찼다.
쫙! 쫘악! 나무는 흠뻑 젖어 있어서 잘 쪼개지지 않을텐데도 번우량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아주 수월하게 그것들을 장작으로 만들었 다.
멀찌감치 않아서 전신으로 김을 무럭무럭 내며 도끼를 휘 두르는 번우량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커다란 불곰 한 마리를 보고 있는 듯 했다.
단지 이 불곰은 말을 할 줄 알며 머리를 쓸 줄 안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순식간에 번우량은 장작을 모두 패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 쳤다. "아.
오늘은 보통 때보다 약간 힘이 드는군." 그는 숨을 크게 몇 번 들이마셨다가 내쉬며 조자건에게 걸어 왔다. "자.
이제 자네 차례일세." 그때 마침 모용수가 땀을 비오듯 흘리며 산에서 내려왔다. "빌어먹을." 모용수는 나무더미를 바닥으로 집어던지듯 내려놓으며 그 자 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정말 이런 일은 나에게는 맞지가 않아.
대체 언제까지 이런 미친 짓을 계속해야 되는거야?" 그는 숨을 헉헉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이런 짓을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무 공을 익힐 수가 있다고." 번우량은 담담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자네답지 않게 왜 그러는가?" "난 이제 지쳤소.
아주 지긋지긋하단 말이오." "그래서 이제 그만 포기하겠다는 말인가?" 번우량은 별다른 생각없이 농담조로 물었다.
허나 모용수는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번우량은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 을 번쩍 빛냈다. "자네는 정말로 여기를 떠나려는군.
이미 그렇게 결심을 굳 혔군.
그렇지 않나?" 모용수는 그를 힐끗 바라보다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당신의 가장 큰 재주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꿰뚫어 본다 는 것이오.
아마 타고난 천성이겠지만 어떨때는 나까지도 놀란 다니까." 번우량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이제와서 포기하기에는 자네가 지금까지 쏟은 노력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나?" "어차피 포기할 거라면 하루라도 빠른게 낫소." "하지만......" 번우량은 무어라고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모용수의 걸심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 이다.
모용수의 입꼬리가 위로 슬쩍 치켜올라가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모용수는 무언가 중대한 결심을 했을 때면 항상 이런 표정이 되었다.
그가 이런 표정을 지을 때는 무슨 수로든 그의 마음을 바꿀 수가 없었다.
그래서 번우량은 그를 설득하려는 생각을 버린 것이다.
잠시 그들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때 조자건이 모용수에게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모용형이 떠나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소.
하지만 하던 일은 마저 끝마쳐야 하지 않겠소?" 조자건은 모용수에게 도끼를 내밀었다.
모용수는 유성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조자건을 응시하다가 그 의 손에서 도끼를 받아 들었다.
이어 그는 말없이 장작을 패기 시작했다.
번우량은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가 조자건을 돌아보며 씁 쓸하게 웃었다. "그가 갑자기 그런 마음을 먹게 될 줄은 몰랐군." 조자건은 고개를 흔들었다. "갑자기가 아닐세." 번우량은 조금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조자건은 담담한 눈으로 모용수의 뒷등을 응시하며 차분하게 말했다. "모용수가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무슨 일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나?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일에 대해 여러 가지로 심사숙 고했음이 틀림없네.
이해득실을 신중하게 검토해 본 후에야 그 는 자신이 이곳을 떠나는 것이 더 이로울 거라고 생각했을거 네." 번우량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수긍하는 빛을 떠올렸다. "자네 말이 맞겠군.
확실히 모용수는 자신없는 일은 하지 않 는 성격이지.
하지만 앞으로 그에게 어떤 계획이 있는지는 모 르겠군." "머지 않아 알게 되겠지." 번우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그는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참.
자네의 마음이 그렇게 넓은 줄은 몰랐군.
나한테도 순 서를 양보하더니 모용수에게 까지 양보하다니......자네는 언 제부터 그렇게 선심을 쓰게 되었나?" 조자건은 입가에 기이한 미소를 머금었다. "나는 조금있다가 섭보옥이 오면 그녀에게도 차례를 양보할 걸세." "아니 왜 그런가?" 조자건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녀가 일을 마칠 때 쯤이면 내 장작들은 물기가 다 말라 있을게 아닌가?" 번우량은 어이가 없어 멍청히 그를 쳐다보고 있다가 버럭 소 리를 질렀다. "뭐라고? 이런 약아빠진 친구같으니....." "하하......그렇지 않으면 내가 무엇때문에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며 남들에게 양보를 하겠나?" 조자건이 껄껄 웃고 있을 때 섭보옥이 산에서 내려왔다.
그녀는 원래 일부러 헐렁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옷은 흐르는 땀과 눈에 젖어 몸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 다.
덕분에 굴곡이 완연한 그녀의 몸매가 여실히 드러나 보였다.
그 모습은 남자로 하여금 이상한 충동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었 다.
다행히 번우량과 조자건은 모두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녀는 지게를 간신히 바닥에 내려놓은 채 비오듯 흐르는 땀 을 씻으며 조자건을 쳐다보았다. "무엇이 그렇게 우습죠?" 조자건은 담담하게 말했다. "별일 아니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늦었구료."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눈내리는걸 조금 구경했어요.
낙안봉의 설경(설경)은 옛부 터 천하의 절경(절경)으로 이름이 높거든요." 조자건과 번우량은 확실히 여자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아직 한 번도 설경을 감상할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 다.
허나 또한 이런 점이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지도 몰랐 다.
그녀는 땀을 닦고 머리위에 쌓여 있는 눈을 털었다. "참.
내려오면서 보니까 사부님에게 친구분이 찾아오셨더군 요." 번우량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알기로는 그들의 사부인 동곽선생은 평생 친구라고는 사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찾아온 사람이 누군지 아시오?" "몰라요.
얼핏 보았는데 머리가 아주 눈처럼 하얀 백발에 화 의(화의)를 걸친 노인이더군요.
사부님 연배쯤 되어 보였어 요." "그 노인이 사부님의 친구라는건 어떻게 알았소?" "두 분은 바둑을 두고 계시더군요.
그래서 친한 사이라고 짐 작했어요." 번우량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동곽선생은 취미나 특기라고는 거의 없었지만 바둑만은 상당 히 좋아했다.
그의 바둑실력은 상당해서 번우량이 알고 있기로 는 당금 천하에서 적수가 몇 사람 없을 정도였다.
그때 문득 조자건이 그녀를 향해 불쑥 물었다. "모용수도 그 노인을 보았소?" 섭보옥은 뜻밖의 물음에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으나 고개 를 끄덕였다. "그럴 거에요.
그와 나는 똑같은 길로 내려왔으니까." 조자건은 눈을 반짝이며 의미심장한 눈으로 번우량을 돌아보 았다. "이제 모용수의 앞으로의 계획이 어떤 것인지 짐작하겠네." 번우량은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나도 자네가 말하는 뜻을 알 것 같네.
자네의 말인즉 모용 수가 사부님을 찾아온 그 화의노인을 따라 갈 것이라는 말이로 군?" "십중팔구 그럴걸세.
그렇지 않았다면 왜 하필이면 오늘 그 런 말을 하겠는가? 이미 그런 복안(복안)이 마련되어 있기 때 문에 그는 이곳을 떠날생각을 한 걸세." "그럴 듯 하군.
하지만 그가 그 노인을 따라간다고 무슨 뾰 족한 수가 생기겠나?" 조자건은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따. "아마 천하에서 제일가는 무공을 배우게 되겠지.
그가 자신 의 입으로 그렇게 말했지 않나?" "자네의 말은 마치 그 노인이 천하제일의 기인(기인)이라도 되는 것 처럼 들리는군." "틀린 말은 아닐세." 번우량은 흠칫 놀랐다. "그럼 자네는 그 노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나?" 조자건은 차분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이 세상에서 동곽선생과 바둑으로 맞상대를 할 수 있는 사 람은 결코 많지 않네.
그중에서 화의를 즐겨 입는 백발의 노인 은 더더욱 많지 않네.
그리고 모용수가 따라가고 싶을 정도로 고강한 무공을 지닌 사람은 거의 없지.
그런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네." 번우량은 자신도 모르게 급히 물었다. "그게 누군가?" "천기노인(천기로인)." 번우량의 눈이 크게 뜨여지며 입이 벌어졌다. "아니 삼기(삼기)중의 제일인자이며 천하제일의 기인이라 불 리우는 그 천기노인 말인가?" "천하는 비록 넓지만 천기노인은 오직 한 사람 뿐일세.
그렇 지 않고서야어찌 모용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나?" 번우량은 우두커니 서 있다가 나직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모용수는 한 눈에 천기노인을 알아보았단 말인 가?" "나도 말만 듣고 그가 누구인지 알았는데 모용수같은 절대천 재가 어찌 눈으로 보고도 모르겠나? 더구나 자신의 부친과 함 께 삼기에 속해 있는 천기노인을." 번우량은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군.
하지만 천기노인이 반드시 그를 받아들인다는 보 장은 없지 않나?" 조자건의 대답은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모용수는 반드시 그 방법을 생각해 낼걸세." 그때 묵묵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섭보옥이 더 이상 궁 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대체 무슨 일들이에요? 모용수가 이곳을 떠난다니 그게 무 슨 말이지요?" 조자건은 그녀를 돌아보며 빙그레 미소지었다. "당신이 도끼질을 모두 끝내면 그때 자세하게 말해주겠소." 그의 미소를 보자 그녀의 마음에 미묘한 파문이 일어났다.
그녀는 말없이 몸을 돌려 장작을 패러 갔다.
더 이상 그를 보고 있다가는 마음속의 파문이 점점 더 커질 것 같았기 때문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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