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그 아이가 여인이기 때문이다. 여인은 체질적으로 남자에게 뒤져 무공으로는 결코 상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 래도 나는 그 아이를 받아 주었다." 그것은 태극문의 율법 때문이었다. 찾아오는 사람은 누구도 거절할 수 없다는 율법! "며칠 후에 모용수가 왔다. 그 아이는 노부 평생 처음보는 절대천재(절대천재)였다. 허나 나는 그 아이도 후계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너무 똑똑했기 때문이었다." 태극문의 진정한 후계자는 천하제일고수가 되어야 한다. 천하제일고수가 되려면 비단 무공으로써 만인(만인)을 꺾어 야 할 뿐 아니라 큰 포용력과 백절불굴한 용기(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무수한 고통과 시련속에서만이 얻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똑똑한 사람은 그러한 시련을 감수하지 않고 피 할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 방법 을 생각할 수 있다. 홀연 동곽선생은 힘주어 말했다. "진정한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영원히 큰 그릇이 될 수 없다. 절대 될 수 없다!" 조자건은 묵묵히 동곽선생의 다음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 다. "번우량은 포용력이 있고 사람으로 하여금 심복(심복)케 하 며 대인(대인) 의 풍모가 있다. 허나 그는 너무 정직하고 남을 쉽게 믿어 꾀임에 넘어가는 수가 있다. 그는 장차 대협(대협) 소리는 들을 수 있을지 몰라도 천하제일고수는 결코 되지 못할 것이다." 동곽선생은 긴 말을 하느라 조금 힘이 드는지 몇 차례 기침 을 했다. 그런 다음 다시 말을 계속했다. "위지혼을 보는 순간 나는 이 아이야 말로 내가 찾던 사람이 구나 하고 생각했다. 허나 다음순간 나는 그 생각을 수정(수 정)해야만 했다. 그는 천부적인 승부사(승부사) 기질이 있는 아이이다. 그의 무공에 대한 초인적인 감각과 야수적인 본능은 내 평생 처음보는 것이었다. 허나 그는 너무 냉혹해서 적을 쉽 게 만들고 무공에만 집착하는 버릇이 있다. 그것은 천하제일고 수가 되기 위해서는 결코 바람직한 버릇이 아니다." 동곽선생의 주름진 시선이 조자건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가 왔다. 그 순간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 다. 너의 모든 것이 노부의 이상(이상)과 너무도 들 어맞았기 때문이다. 허나 나는 그런 마음을 내색할 수가 없었 다. 네가 자만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는 곧 자신의 걱정이 기우(기우)였음을 깨달았다. 조자건 은 충실히 동곽선생의 수련에 따랐다. 조자건은 다른 네 사람보다 뒤떨어졌다. 모용수보다 두뇌가 뛰어나지 못했고, 번우량같은 대자대인 (대자대인)의 마음이나 가공할 힘, 위지혼의 탁월한 승부감각, 섭보옥의 예리하고 섬세한 지혜를 갖추지 못했다. 허나 또한 그는 그들이 갖지 못한 것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그는 모용수보다 참을성이 강하고 번우량보다 영리하며, 위지 혼보다 임기응변에 능하고 섭보옥보다 체력이 뛰어났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그가 특별히 모자라는 점이 없이 모든 특성을 고루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위지독고의 후계자가 되기에 가장 중요한 조건 이었다. 위지독고의 무공은 천하무적이었다. 그는 순전히 혼자만의 힘으로 그와 같은 경지에 이르게 되었 으며 자신의 무공을 후대(후대)에 전하기 위해서 특이한 수련 방법을 세웠다. 그의 수련방법은 남들이 보기에는 이해할 수 없고 아무 쓸모 도 없는 것 같았으나 그 안에는 위지독고만의 심오한 뜻이 담 겨 있었다. 그가 자신의 무공을 익히려는 자들에게 우선적으로 시킨 것 은 많이 뛰고 끊임없이 도끼질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모든 무공의 기초는 튼튼한 하체(하체)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다리힘이 튼튼하지 않으면 제대로 중심(중심)을 잡 을 수 없고 무공을 올바로 펼칠 수가 없다. 반면에 하체가 강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몸의 균형이 흐트러 지지 않으며 완벽한 자세로 무공을 펼칠 수가 있는 것이다. 도끼질을 시킨 것은 어깨를 단련시키기 위해서였다. 다리가 수비를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어깨는 공격을 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곳이었다. 어깨가 튼튼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강한 상대를 쓰러뜨릴 수가 없다. 특히 위지독고는 모든 병기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은 단연 검(검)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검(검)을 익히려는 사람에게 어깨의 단련은 필수적인 것이라고 믿었다. 두 번째 단계에서 좌공을 시킨 이유는 강한 안력과 신경을 발달시키기 위해서였다. 안력이 뛰어나지 않고서는 상대의 공격을 제대로 피할 수가 없다. 또한 신경감각이 발달해야만 비로소 자신이 뜻한바대로 움직일 수가 있는 것이다. 야간(야간)에 숲속으로 물을 길러 보내는 것은 어둠속에서도 사물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함은 물론이고 몸을 빠르게 하기 위 해서 였다. 밤사이에 백 리 밖까지 물을 길러 갔다 오려면 정신없이 뛰 어야 한다. 칠흑같이 어두운 숲속에서 울창한 나무숲과 험준한 바위를 피해 뛰어다니다 보면 어떠한 불의(불의)의 암습에서도 피할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질 것이다. 이 두 단계의 수련을 마쳐야만 위지독고의 무공을 익힐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충족된 것이다. 그 다음에는 순전 히 익히는 사람의 재질과 오성, 그리고 인내에 의해 결정된다. 믿을 수 없겠지만 위지독고가 칠십 년전 강호무림의 천하 제일고수로 군림(군림)할 때 그가 사용한 무공은 정말로 육합 권을 비롯한 열 가지 시시한 무공들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그 무공을 사용하면 아무도 그것을 막아내는 사람이 없었다. 당시 사람들은 그가 육합권이나 복마검법같은 보잘 것 없는 무공으로 절정고수들을 가볍게 물리치는 것을 보고 그가 숨기 고 있는 절학(절학)을 펼치면 얼마나 위력이 가공할까 하고 궁 금하게 생각했었다. 허나 그에게 숨기고 있는 절학 따위는 없 었다. 그가 알고 있는 무공은 육합권과 복마검법을 비롯한 열 가지 무공이 전부였던 것이다. 그 열 가지 무공을 익힌 사람은 무림에서 쓸어다 버릴 정도 로 많았다. 단지 다른 것은 위지독고는 그 무공들을 그야말로 완벽(완 벽)할 정도로 익혔다는 것 뿐이었다. 그렇다. 바로 그것이 위지독고의 비밀(비밀)이었다. 완벽(완벽)한 무공(무공)! 위지독고의 무공은 완벽했다. 그가 시전하는 초식 하나하나 는 아무런 헛점도 없었다. 때문에 시시한 육합권으로도 가공할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 던 것이다. 육합권을 익힌 사람은 많지만 그것을 완벽하게 익힌 사람은 없었다. 다른 무공도 마찬가지다. 어떤 무공이라도 그것을 완벽하게 익힌 사람은 없다. 사람인 이상 완벽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헌데 이 불가능 (불가능)을 이룩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위지독고였다. 위지독고는 아무리 하잘것 없는 무공이라도 완벽하게 익힐 있다면 제아무리 막강한 무공도 격파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천하에서 가장 익히기 쉬운 열 가지 무공을 선 택했다. 위력이 뛰어난 무공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그런 무공 들일 수록 익숙하게 익히기가 힘들기 때문이었다. 그는 오랜 동안 신중히 고려한 끝에 각기 권(권), 장(장), 수(수), 각(각), 조(조), 지(지), 삼(삼), 보법(보법), 퇴 (퇴), 검(검)에서 가장 익히기 수월한 무공 열 가지를 선정했 다. 그런다음 그는 그 무공들을 완벽하게 익힐 수 있을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수련을 했다. 위지독고의 재질은 무림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뛰어난 것이었다. 거기에 그는 오성과 끈기, 강인한 체력, 그리고 반 드시 할 수 있다는 신념(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신념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무기였다. 그가 오 년동안 그 무공들을 연마했을 때 그는 어떠한 상태 에서도 그것들을 정확하게 펼칠 수가 있었다. 칠 년째가 되자 적어도 동작 자체는 완벽해 졌다. 그후 삼 년동안 그는 속도와 변화가 완벽해 질 수 있도록 노 력했다. 마침내 십 년 째 되는 날, 그는 자신이 익힌 열 가지 무공 이 조금의 빈틈도 없이 완벽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때 그는 자신의 무공을 시험해 보고 싶어졌다. 십 여 년동 안 신념을 갖고 경주한 자신의 노력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궁 금했다. 그래서 그는 무림에 출도했다. 그때는 공교롭게도 천하무림이 온통 화씨세가와의 격전으로 소란스러웠었다. 당연히 그의 발길은 화씨세가로 향했다. 화씨세가는 이미 이 백 여년전부터 무림의 제일가문(제일가 문)으로 손꼽혔었다. 그들의 무공은 기존의 여타 문파와는 전혀 달랐다. 그들의 무공은 어떤 특정한 초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무공에 서 헛점을 찾아 그 헛점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인간의 무공이라면 어느 것이든 헛점이 있기 마련이다. 화씨 세가의 무공은 전문적으로 이 헛점만을 노리기 때문에 상대하 기가 힘이 들었다. 위지독고가 갔을 때도 이 천명이 넘는 정사양도의 고수들이 백 여명밖에 되지 않는 화씨세가의 인물들에게 오히려 쩔쩔 매 고 있었다. 특히 화씨세가의 가주인 절대검왕 화무극은 구대문 파의 장문인들에게 협공을 받으면서도 오히려 그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화무극이 간단한 동작으로 검을 휘두를 때마다 구대문파의 장문인들은 쩔쩔매면서 뒤로 정신없이 후퇴하고는 했다. 위지독고는 한동안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가 전장(전장)에 끼어 들었다. 그는 우선 간단한 육합권으로 구대문파의 장문인들을 격퇴시 켰다. 이어 경악하는 화무극에게 정식으로 비무를 청했다. 화무극이 승락을 하고 비무가 시작되었을 때 위지독고는 복 마검법을 사용했다. 처음 화무극은 그가 사용하는 것이 복마검 법임을 알자 어처구니가 없어 우두커니 서 있었다. 허나 이내 그는 위지독고가 시전하는 복마검법이 여타 고수 들의 그것과는 완연히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위지독고의 복마검법은 아무런 헛점도 없는 완벽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완벽한 무공앞에서 상대의 헛 점을 찾아 공격하는 화씨세가의 무공은 무용지물(무용지물)이 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단 십 초만에 화무극은 양 팔이 모두 잘린 채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위지독고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면 승부는 더욱 빨리 끝났 을 것이다. 주위에 둘러서 있던 고수들은 화무극이 난데없이 나타난 괴청년(괴청년)에게 맥없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때부터 위지독고의 신화는 시작되었다. 일 년동안 그는 열 세 번의 싸움을 했다. 상대는 하나같이 당시 무림의 최절정을 달리는 고수들이었다. 위지독고는 상대에 따라 육합권이나 복호장, 복마검법같은 무공들을 사용했다. 결과는 항상 똑같았다. 제대로 몇 수 받아보지도 못하고 상대는 허무하게 쓰러지고 마는 것이다. 화무극 이후에 그의 손에서 오 초 이상을 버틴 사람은 아무 도 없었다. 그의 이름앞에는 천하제일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기 시작했 고, 그것은 곧 천하무적(천하무적)이라는 단어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그가 그토록 보잘 것 없는 무공들로 어떻게 강호의 최고절학들을 격파할 수 있었는지 불가사의하게 생각했다. 허나 그들이 사실을 알았다면 너무나 단순해서 깜짝 놀랐을 것이다. 위지독고의 무공은 완벽했다. 그에 비해 다른 사람들의 무공 은 어딘가에 크고 작은 헛점들이 있었다. 완벽한 무공과 그렇 지 못한 무공이 격돌을 하게 되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속이 꽉찬 단단한 바위덩어리와 속이 텅텅 빈 바가지가 부딛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바가지는 부딛치는 즉 시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위지독고와 싸우는 상대들도 바가지 처럼 맥없이 나가 떨어졌다. 나이를 먹자 위지독고는 자신의 천하무적인 무공을 전해줄 후계자를 찾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무공을 익히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들이 갖추 어져야 하는지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태극문을 만 들고 제자들을 모집했다. 태극(태극)이란 곧 만물(만물)의 가장 완벽(완벽)한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닌가? 그가 자신의 문파에 태극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이런 연유에 서 였다. 허나 곧 위지독고는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구름처럼 모여든 제자들중에서 그의 기대에 부응할만한 인재 의 모습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채 일 년도 되지 않아 제자들은 거의 떨어져 나갔고 이 년이 지나자 오직 한 명 의 제자만이 남게 되었다. 위지독고는 그를 자세히 관찰하고는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제자는 집념과 끈기는 갖추었으나 타고난 재질과 오성이 미약했던 것이다. 허나 위지독고는 실망하지 않았다. - 내 대(대)에 없으면 다음 대(대)에서라도 내 무공을 완벽 하게 익힐 후계자를 찾을 것이다. 그는 그 중임(중임)을 유일한 제자에게 맡겼다. 그리고 그 제자는 그의 기대대로 삼십 년을 끈질기게 기다린 끝에 마침내 하나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네가 그 열 가지 무공들을 완벽하게 익힐 수 있을지 없을지 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네가 다른 누구보다도 그럴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이제부터 남은 것은 네가 얼마나 끈질기게 그 무공들을 반복 수련해서 헛점을 없애 나가느냐 하 는 것 뿐이다." 동곽선생의 긴 이야기는 끝났다. 말을 모두 마친 동곽선생은 주름지고 진물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조자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는 실로 처음본다 싶을 정도로 온화하고 부드러 운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자건은 말없이 그 눈빛을 마주 보았다. 그는 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동곽선생은 그의 얼굴에 서 아무도 꺾을 수 없는 고집과 한 줄기 굳건한 신념(신념)을 읽을 수 있었다. 동곽선생의 입가에 좀처럼 볼 수 없는 미소가 떠올랐다. "너를 믿는다." 삼, 유 수 동곽선생은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졌다. 그는 가끔 조자건의 자세가 틀린 곳을 수정해 주기도 했으나 하루종일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을 때도 있었다. 피를 토하는 시간도 점차 많아졌고, 피의 양도 많아졌다. 누구라 해도 언제 올지 모르는 한 사람을 기다리며 차가운 동굴에서 삼십 년을 넘게 혼자 살아왔다면 진작에 한 줌의 백 골(백골)이 되었을 것이다. 동곽선생이 아직까지라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가 젊은 시절에위지독고에게서 받은 혹독한 훈련의 성과와 조자건 이 태극문의 무공을 완벽하게 터득하는 것을 보고야 말겠다는 끈질긴 집념 때문이었다. 조자건은 이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미친 듯이 수련을 계속했다. 심지어는 하루의 식사를 두 끼로 줄이고 밤낮을 두고 열 가 지 무공을 반복해서 연마했다. 그가 동곽선생에게 해 줄 수 있 는 일은 오직 그것 뿐이었다. 허나 인간의 체력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동곽선생의 나이는 이미 팔십을 훨씬 넘었고, 병(병)은 골수 (골수)까지 파고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 그가 갑자기 피를 한 사발이나 토하며 쓰러 졌을 때도 조자건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올 것이 온 것 뿐이었다. 다만 그 시기는 그의 생각보다 조 금 빨랐다. 조자건은 피를 토하고 혼절한 동곽선생의 몸을 안아 자신의 침상위에 눕혔다. 그의 몸을 안아들었을 때 그 몸이 너무나 가벼워서 조자건은 웬지 가슴이 아팠다. 동곽선생은 한참 후에야 간신히 눈을 뜨고는 자신이 조자건 의 침상에 눕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평생 동굴바닥에서 만 지냈으며 침상을 써본 적이 없었다. 그는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도 이제는 늙었군......" 그 음성에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감회가 어려 있었다. 그의 안광은 이미 불꺼진 초롱같이 희미하게 꺼져가고 있었 다. 그는 흐릿한 시선으로 조자건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온 것 같구나. 네 가 완성되는 것을 꼭 보고 싶었는데......" 조자건은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사부님께선 최선을 다하셨읍니다." "너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어쨌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 본 다. 아마 그랬다면 나는 선사(선사)를 뵐 면목이 없어서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을 것이다." 동곽선생은 말을 하며 빙그레 웃었다. 그것은 흐뭇함과 어떤 안도감이 짙게 배어 있는 웃음이었다. 조자건은 그 미소를 대하자 가슴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것이 확 치밀어 올랐으나 꾹 눌러 참고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제 무공은 몇 년내로 완벽해 질 겁니다." "그래. 하지만 너무 자신은 하지 마라. 자만(자만)이라는 것 은 인간의 마음을 갉아먹는 해충과도 같으니까." "알겠읍니다." 동곽선생의 눈빛이 급격하게 흐려졌다. "자......자건." 조자건은 나직히 탄식했다. "말씀하십시오." "내......내가 죽으면 나를 낙안봉의 정상에 묻어라. 네가 무림을 종횡천하(종횡천하)하는 모습을 그곳에서라도 보...... 볼 수 있게......" 조자건은 착잡한 눈으로 그를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꼭 그렇게 하겠읍니다." "아......태극문......" 동곽선생은 태극문이란 세 글자를 입가에 남기고 죽었다. 냉북두! 한 평생을 오직 태극문의 후계자를 찾기 위해 보내야 했던 외로운 노인은 세상의 어두운 곳에서 조용히 눈을 감은 것이 다. 그는 비록 죽었지만 그의 태극문을 향한 일편단심(일편단심) 은 조자건을 통해 언제까지고 살아 있게 될 것이다. 조자건은 약속대로 냉북두의 시신을 낙안봉 정상의 양지바른 곳에 묻었다. 그곳은 냉북두의 영원한 스승이었던 위지독고의 무덤에서 멀 지 않았고, 태극동과도 가까웠다. 그리고 아주 멀리까지 바라 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냉북두가 간 곳 까지는 볼 수 없었다. 저녁이 지나면 다시 아침이 찾아 오듯이 세월은 유수(유수) 와 같이 흘러갔다. 동곽선생 냉북두가 죽은 지도 벌써 이 년이 흘렀다. 낙안봉은 변함이 없건만 그의 무덤가에는 푸릇푸릇한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무덤앞에는 낡은 석비(석비) 하나가 초라하게 서 있었다. 석비는 작고 초라했지만 그 위에 씌여 있는 글씨는 단정하고 생기있는 것이었다. 태극문(태극문) 이대문주(이대문주), 동곽선생(동곽선생) 냉북두지묘(냉북두지묘). 조자건(조자건) 읍립(읍립) 언제부터인가 한 사람이 그 석비를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 었다. 그는 체구가 무척 큰 황포인이었다. 황포인은 등을 돌리고 있어 그 모습을 자세히 알아볼 수 없 었으나 떡벌어진 어깨와 굵은 목에서는 남성다운 힘이 넘쳐 흐 르고 있었다. 누구라 해도 그의 뒷모습만 보아도 위압감과 어 떤 위엄을 느낄 것이다. 허나 지금 황포인의 어깨는 거의 느낄 수 없을만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돌아가시다니......그 분께 지금의 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돌아 가시다니......" 황포인은 넋두리같은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제는 영원히 그 분께 용서를 빌 수 없게 되었구나......" 황포인은 한참동안이나 무덤앞을 떠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그는 몸을 돌려 낙안봉을 내려왔다. 그는 무덤에서 멀지 않은 태극동을 둘러 보았으나 이미 사람 이 살지 않은지가 오래되었던 듯 뿌연 먼지와 거미줄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다시 태극동의 뒷쪽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몇 채의 허름한 모옥이 나란히 늘어서 있었다. 황포인은 잠시 감회어린 표정으로 그 모옥들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모옥은 모두 다섯 개였다. 몇 년전만 해도 이 모옥에는 다섯 명의 남녀가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못했다. 모옥들은 이미 황폐할대로 황 폐해져 있었다. 황포인은 폐허가 된 모옥들을 둘러보며 허탈한 표정을 감추 지 못했다. "섭보옥......위지혼......조자건......그들도 모두 떠나 버 렸단 말인가? 조자건......자네만은 끝까지 남아서 태극문을 지킬 줄 알았는데......" 황포인은 몇 번이고 모옥을 바라보며 서 있다가 아쉬운 발걸 음을 돌렸다. 황포인이 떠난지 몇 달 후, 다시 한 사람이 태극동을 찾아왔 다. 그는 전신을 백포(백포)로 칭칭 동여맨 인물이었다. 손발은 물론이고 얼굴까지 백포로 감은 채 두 눈만을 빠끔히 내놓고 있었다. 허나 백포인의 두 눈은 유성처럼 차고 맑았다. 백포인은 폐허로 변한 태극동을 날카롭게 돌아보고 눈쌀을 살짝 찌푸렸다. 뒷곁의 모옥들도 살펴보았다. 그는 텅 비어 있는 모옥들을 바라보며 한참동안이나 무엇인 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안광을 빛내며 번개같이 낙 안봉의 정상으로 올라갔다. 그의 신법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만큼 빨랐다. 낙안봉의 정 상에서 하나의 무덤을 발견하자 백포인은 몸을 흠칫 떨며 탄성 을 터뜨렸다. "아......!" 그의 탄성속에는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야릇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 백포인은 신법을 멈추고 천천히 무덤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안광을 빛내며 무덤앞의 석비를 자세히 읽었다. 그런 다음 허 공을 응시하며 다시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가 없더라도 일은 계획대로 진행될 것이다. 아무도 그것 을 바꾸지는 못한다." 그의 음성은 확고한 자신에 가득찬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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