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더니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거의 보이지도 않는 가공할 신법으로 산을 내려갔다. 가마는 호화롭기 그지 없었다. 가마를 매고 있는 사람은 모두 네 명인데 하나같이 눈이 번 쩍 뜨일만한 절세의 미소녀들이었다. 미소녀들의 미모는 아름다웠지만 그녀들이 메고 있는 가마는 더욱 아름다웠다. 가마는 완전한 순금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전면에는 금시라 도 날아오를듯한 봉황(봉황)이 생생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봉 황의 두 눈에는 칠색채광(칠색채광)이 반짝이는 기이한 보석이 박혀 있어 마치 살아 있는 봉황같았다. 또한 소녀들이 들고 있는 가마의 손잡이는 비취(비취)로 이 루어져 있고, 가마의 앞에 쳐져 있는 주렴(주렴)은 수정(수정) 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야말로 호화의 극치였고, 아름다움의 덩어리였다. 네 명의 미소녀들은 무거운 가마를 메고 있으면서도 마치 빈 손으로 올라가듯 가볍고 경쾌한 걸음으로 산을 오르고 있었다. 이것만 보아도 그들의 경공이 굉장히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마가 멈춘 곳은 태극동의 입구였다. "도착했읍니다, 소궁주(소궁주)님!" 네 소녀중 한 명이 정중한 음성으로 가마안을 향해 말했다. 순간, "가마를 내려놓고 안으로 들어가서 통보를 해라." 수정주렴(수정주렴)안에서 인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이 라고는 믿을수 없을 정도로 맑고 그윽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예. 소궁주님." 네 명의 소녀들은 조심스럽게 가마를 동굴앞에 내려놓았다. 그런다음 놀란 기러기같이 날렵한 신법으로 태극동의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들은 곧 동굴밖으로 다시 나왔다. "안에는 아무도 없사옵니다." 조금전의 소녀가 가마를 향해 공손하게 절을 하며 말했다. 가마안에서는 한동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마 가 마안의 인영이 무언가를 곰곰히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다 가 다시 예의 영롱한 음성이 들려왔다. "동굴뒤로 돌아가면 모옥이 있다. 그곳을 살펴보아라." 네 명의 소녀들은 황급히 동굴을 돌아갔다. 허나 그녀들은 다시 맥빠진 걸음으로 되돌아왔다. "모옥안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사옵니다." 가마안의 여인은 다시 물었다. "사람이 살지 않은지 얼마나 되었느냐?"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상당한 시간동안 버려져 있었던 것 같사옵니다. 먼지가 많이 쌓여 있었읍니다." 가마안의 여인은 입을 다물었다.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계속되었다. 네 명의 소녀들은 꼼짝도 못하고 돌부처처럼 서 있을 수 밖 에 없었다. 한참 후, 가마안에서 나직한 탄식성이 흘러나왔다. "아......그마저 떠났다니 정말 믿을 수 없는게 사람마음이 군." 이어 그녀는 씁쓸한 음성으로 말했다. "돌아가자." 네 명의 소녀들은 익숙한 동작으로 각기 가마의 사귀퉁이로 흩어져 가마를 어깨에 들쳐맸다. 그녀들은 오랫동안 손발을 맞 춘 듯 가마를 땅에서 들어 다시 어깨에 매는데도 가마는 거의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들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경쾌한 걸음으로 산을 내려갔 다. 허나 가마안에서는 한동안 의미모를 탄식성이 몇 번이나 흘 러나오고 있었다. 그 사나이가 온 것은 하늘이 온통 붉은 핏빛으로 물든 저녁 무렵이었다. 피처럼 불타오르는 석양을 등지고 그 사나이는 산봉을 올라 왔다. 그 사나이는 다 떨어진 낡은 가죽옷을 걸치고 오른손에는 한 자루 칼을 들고 있었다. 기이하게도 사나이의 칼은 칼집이 없어 거무틱틱한 도신(도 신)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 사나이에게서는 무언가 야수(야수) 와도 같은 거칠고 자 유스러운 분위기가 짙게 풍겨나오고 있었다. 머리를 산발해 온 통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나 가끔 바람이 불때마다 흐트러진 머 리카락 사이로 맹수의 그것처럼 차고 싸늘한 안광이 번뜩거리 며 나타났다. 한 마리 야수와도 같은 그 사나이는 봉우리의 한쪽 구퉁이에 있는 작은 무덤을 발견하고는 그 앞에 우뚝 섰다. 사나이는 한 동안 무덤과 그 앞에 서 있는 초라한 석비를 뚫어지게 바라 보 았다. 그러다가 아무 말도 없이 몸을 돌렸다. 몸을 돌리는 순간, 번쩍! 그의 손에 들려져 있는 도가 날카로운 도광을 뿌려댔다. 찰 나, 아아......! 놀랍게도 하늘을 온통 차지하고 있던 붉은 석양이 그대로 잘 려지는 것이 아닌가? 아니, 그것은 눈의 착각이었다. 사나이의 도가 너무도 빠르 고 가공하게 석양을 가르고 지나갔기 때문에 마치 석양이 잘려 진 것 처럼 보였던 것이다. 허나 그 짧은 순간에 사나이가 보여주었던 예리한 광채는 한 번 본 사람이라면 절대로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사나이의 얄팍한 입술이 아주 살짝 열리며 뼈골이 시릴 듯한 차가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언젠가 다시 만나면 조자건......너를 이렇게 베어 주겠 다." 떨어지는 해를 벤 야수같은 사나이! 그는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붉은 노을을 받으며 사라져 갔 다. 삼 년이라는 기한이 어느 새 지나고 무림대회가 육 개월 앞 으로 다가왔다. 그동안에 강호에는 많은 인물들이 바뀌었다. 무적검수맹은 여전히 강호무림의 중심세력이었지만 그 외에도 여러 세력들이 우후죽순(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신진사정(신진사정)이라 불리우는 네 개 의 방파(방파)였다. 그 방파들은 기존의 모든 문파를 능가하고 무적검수맹에 필 적하는 막강한 세력을 쌓고 있었다. 그 중 하나는 구파일방(구파일방)의 우두머리로 오랜 세월동 안 강호무림의 태산북두(태산북두)로 군림해 왔던 소림사였다. 사실 그동안 구파일방은 쇠퇴일로를 걸어왔었다. 칠십 년전 에 화씨세가를 협공하다가 대부분의 정영(정영)들을 잃고 몰락 해 버린 것이다. 허나 소림사만은 특유의 저력(저력) 을 발휘하여 다시 과거 의 성세(성세)를 되찾았을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 능가할 위세 까지 보이고 있었다. 신진사정의 다른 하나는 오래전부터 강호에 전설(전설)로만 전해내려오던 신비(신비)의 문파, 오행신궁(오행신궁)이었다. 오행신궁에 대한 소문은 이미 지난 백 년간 강호무림에서 잠 시도 가실 날이 없었다. 허나 그들이 정식으로 무림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채 일 년 도 되지 않았다. 그 짧은 시일동안에 그들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혁혁한 명성을 구축했다. 신진사정의 나머지 두 문파는 이제까지 강호에서는 누구도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던 그야말로 완전한 신흥방파(신흥방 파)였다. 집마부(집마부)와 구호당(구호당)이 그들이었다. 집마부는 이름 그대로 천하마인(천하마인)들의 집합체였다. 집마부주가 누구이길래 무림의 내노라하는 마인들이 앞을 다 투어 그의 휘하에 모여들었는지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허나 집마부가 마교(마교)이래 처음으로 마도(마도)를 완전 하게 일통(일통)했다는 것만은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구호당은 가장 신비로운 집단이었다. 알려진 바로는 이들은 단지 아홉 명 만으로 조직(조직)되었 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들이 신진사정중의 하나로 꼽히게 된 것은 그들 아홉 명이 각기 천하에서 내노라하는 인물들로만 구 성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들이 구체적으로 누구누구인지는 철저한 비밀에 가려 있었다. 단지 알려진 것이라고는 그들이 모두 일호(일호)에서 구호 (구호)까지의 암호명으로 불리우고 있고, 현재 천하에서 일어 나고 있는 모든 사건들의 배후에는 십중 팔구 그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 뿐이었다. 허나 그것만으로도 무림인들에게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그들은 당금 강호의 네 개의 거대세력중에서도 가장 신비하고 공포(공포)스러운 존재로 부각되고 있었다. 신진사정 외에 강호인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것은 우내십대기문병기(우내십대기문병기)라는 이름이었다. 우내십대기문병기란 병장기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열 사람 의 고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들 열 사람은 각기 혜성처럼 강호에 나타나 뭇 고수들을 연파(연파)했으며 한 가지의 병기 (병기)에 그야말로 정통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예전의 우내십대고수와 비교하기도 했 다. 단지 우내십대고수가 이미 몰락해 버린 이름이라면 우내십대 기문병기는 한창 찬란하게 뻗어 올라가는 이름이라는 점에서 엄연히 구분되었다.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벌써부터 신진사정과 우내십 대기문병기의 주인들 중에서 이번 무림대회의 우승자가 결정될 거라고 떠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허나 그들은 또한 누가 우승하더라도 화군악의 적수는 되지 못할 거라고 말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의견에 공감을 했다. 그만큼 화군악이 무림인들의 가슴에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절대적이었다. 어쨌든, 이런 저런 일로해서 강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소란 스럽고 어수선했다. 제8장 무 임 출 도 일, 곽 회 태을산은 높이 솟아 하늘까지 닿았고(태을근천도), 산줄기는 뻗어내려 바닥에 이었네(연산도해우) . 온 길 돌아보면 흰구름에 싸여 있고(백운회망합), 푸른 하늘은 가도 가도 잡히지 않는구나(청애입간무). 중봉을 경계로 고을이 변하고(분야중봉변), 흐리고 개인 곳이 분명하게 떠오르네(음청중학수). 인가를 찾아 머무를 곳을 얻고자(욕투인처숙), 개울 건너 나뭇꾼보고 소리질러 물었네(격수문초부). 춘삼월(춘삼월). 날씨는 청량했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섬서성의 명산인 종남산(종남산)은 봄날의 따사로운 기운에 휘감겨 있었다. 종남산은 섬서성의 남부에 있는 산으로 달리 주남산(주남 산), 진산(진산), 태을산(태을산)이라고도 한다. 서쪽은 감숙 성, 동쪽은 하남성에 미치고 소위 진령산맥(진령산맥)을 형성 하며, 위수(위수)와 한수(한수)의 분수령이기도 했다. 봄날의 종남산은 온통 푸르름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어디선가 미풍에 꽃향기가 실려왔고, 새들은 하늘높이 떠다 니며 즐거운 듯 지저귀고 있었다. 누구라 해도 이런 화창한 봄 날에 이런 그림같은 풍경을 대하면 무언가 아련한 그리움에 잠 겨 발길을 멈추기 마련일 것이다. 허나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헉헉......" 그 사나이는 숨이 턱에까지 찬 채 헐떡거리며 미친 듯이 앞 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사나이의 이름은 곽회(곽회). 나이 삼십 사세. 아직 미혼이며 별호는 분양쾌검(분양쾌검). 산서성(산서성) 분양(분양)의 곽가보(곽가보) 출신이며 어렸 을 적 부터 장래가 촉망되는 후기지수로 손꼽혀 왔다. 그는 원래 텁석부리에 피부 색깔이 약간 거무스름하고 남자 답게 생긴 용맹스러운 사나이였다. 그런데 지금 그는 검도 차 지 않고 신발도 신지 않은 채 험준한 산길을 정신없이 달려가 고 있었다. 그의 온 몸은 상처 투성이였고 머리카락은 까치집을 방불케 할 정도로 헝클어져 있었다. 몇 번이나 발길에 돌이 채여 앞으로 쓰러질 것 같았으나 그 는 용케도 쓰러지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온통 고통과 비분이 엇갈려 있었고, 입에서는 거품을 뿜어내었다. 돌연, 곽회는 커다란 돌에 발이 걸려 '쿵!' 소리와 함께 무디게 땅 위에 쓰러졌다. 허나 그는 황급히 일어섰다. 바로 이 순간, 쐐액! 날카로운 음향과 함께 하나의 채찍이 무서운 속도로 허공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쫘악! 쫙! 곽회는 다시 쓰러졌다. 쓰러진 그의 등에 피가 낭자한 채찍자국이 종횡으로 뚜렷하 게 드러나 있었다. 어느 새 나타났는지 곽회의 뒤로 일 장 떨어진 곳에 서생 차 림의 젊은이가 우뚝 서 있었다. 그 젊은이는 머리에 백건을 두르고 허리에는 철검을 매어 찼 다. 그는 한 손은 뒷짐을 지고 한 손에는 아홉 자 가량되는 채찍 을 쥔 채 흡사 개를 두들겨 패듯 곽회를 채찍으로 후려치고 있 었다. 보아하니 곽회는 먼 곳에서부터 줄곧 이렇게 맞으며 온 것 같았다. "으으......" 곽회는 땅에 쓰러져 신음을 토하며 안간힘을 다해 몸을 비틀 어 채찍을 피하려 했다. 허나 젊은이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빗발치듯 채찍을 휘둘러 사납게 후려쳤다. 파파파파팍! 곽회의 옷자락은 마치 나비가 춤추듯 붉은 피로 물든 채 사 방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곽회는 이를 악문 채 아무 소 리도 내지 않았다. "흥!" 젊은이는 입을 삐죽거리며 코웃음을 쳤다. 싸악! 그가 맹렬히 채찍을 떨쳐 곽회의 목을 휘감아 가지고 끌어당 기자 곽회는 저만치 날아가 다시 땅바닥에 쓰러졌다. 곽회는 온 몸을 부르르 떨고 사지에 극심한 경련을 일으켰 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불복하는 기색으로 눈을 부릅뜨고 젊은 이를 노려보았다. 노려보는 그의 눈에서는 쇠라도 녹일듯한 원한의 불길이 뿜 어지고 있었다. 젊은이는 독사같이 차가운 눈으로 곽회를 쏘아보며 냉랭하게 소리쳤다. "곽회. 그렇게 쓰러져 있지만 말고 끝까지 도망쳐라. 그러면 너를 구해 줄 사람이 나타날지 모른다." 곽회는 몇 번 몸을 꿈틀거리더니 처연하고 무서운 얼굴로 젊 은이를 쏘아보았다. 그러나 이내 가볍게 웃으며 쉰 목소리로 태연하게 말했다. "두인(두인)! 너무 날뛰지 마라. 나 곽회는 네가 아무리 악 랄하게 굴어도 절대 네게 애원하지 않는다." 두인은 싸늘하게 웃었다. "애원을 해도 소용없다. 곽회. 사실 너와 나는 같은 철검백 건대(철검백건대)의 통령(통령)으로서 몇 년동안이나 친분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네가 집마부(집마부)의 끄나풀이 되어 본 맹(본맹)을 배반했으니 너와 나의 교분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다. 그러니 나를 원망하지 마라." 곽회의 얼굴에는 절망의 빛이 떠올랐다. 그는 고통스러운 듯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지금으로서는 한 마디의 변명도 소용없다는 것을 그는 스스로 잘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두인은 수중의 채찍을 어루만지며 냉랭한 음성으로 다시 입 을 열었다. "네가 이제라도 너를 조종하는 자의 이름을 말한다면 네게 통쾌한 죽음을 내려줄 수 있다. 허나 네가 끝까지 고집을 부려 입을 열지 않으니 나는 맹규(맹규)대로 너를 집형전(집형전)으 로 끌고가 오대극형(오대극형)에 처하게 하는 수 밖에 없다. 자, 어서 일어나라!" 호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시 채찍이 빗발치듯 곽회의 등 에 떨어졌다. 쫙! 쫘악! 곽회는 전신을 부르르 떨며 한바탕 뒹굴었다. 그러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났는지 돌연 그는 벌떡 일어나 두인을 밀치고 사력(사력)을 다해 앞으로 치달려갔다. "엇?" 두인은 아직도 곽회에게 그와같은 여력(여력)이 남아있을 줄 은 미처 몰랐는지라 짤막한 경호성을 내지르며 뒤로 비틀 물러 났다. 허나 이내 그의 입가에는 잔인한 미소가 떠올랐다. "흐흐.......그래 끝까지 발버둥쳐 봐라. 그럴수록 네 놈 이 당하게 될 고통도 클테니까 말이야." 두인은 느긋한 걸음으로 곽회가 달려가는 쪽으로 몸을 움직 였다. 곽회는 흡사 미친 사람처럼 손발을 허우적거리며 앞으로만 내닫고 있었다. 지금 그의 머리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는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야 한다. 살아서 이 억울함을 풀어야 한다!) 분양의 곽가보는 대대로의 명문(명문)으로, 곽회는 곽가보주 의 둘째 아들이었다. 그가 이대로 배반자라는 낙인이 찍혀 죽음을 당한다면 곽가 보가 수십 년동안 피땀흘려 쌓아올린 명성은 영원히 더럽혀지 고 말 것이다. 그 생각만 하면 곽회의 마음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금시 라도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산은 점점 깊어갔다. 곽회의 몸은 나뭇가지들에 긁히고 돌에 채여 온 몸이 피로 물들다시피 했다. 그래도 곽회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때 문득 곽회는 멀리 비탈진 산등성이에 하나의 모옥이 있 는 것을 발견했다. 모옥은 대나무로 아무렇게나 지은 집이었다. 허나 곽회는 더 이상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모옥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갔다. "헉......헉......!" 그의 코와 입에서 선혈이 흘러나왔다. 바로 그때 그의 뒤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싸늘한 조소가 들 려왔다. "흐흐......곽회! 겨우 이곳까지 밖에 못갔나? 이거 실망인 데......" 그 음성은 두인의 것이었다. 허나 곽회는 아무 소리도 못들은 사람처럼 모옥만 바라보며 달려갔다. 그 모습은 마치 모옥까지 가기만 하면 하늘에서 구원의 손길 이 뻗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그에게 그것말고 다른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모옥 가까이에는 가지가 거의 땅바닥까지 늘어진 아름드리 소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한쪽 비탈에는 맑은 시냇물이 일정한 음향을 내며 흐르고 있 었다. 곽회는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무작정 모옥으로 뛰어들었다. "사......살려주시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외쳤으나 그 소리는 갓난아이의 울음소 리보다도 작았다. 곽회는 모옥의 앞마당까지 당도해서 마침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의 전신 기력은 이미 완전하게 탕진되어 움직이는 커녕 손 가락 하나 까닥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흐흐......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나? 그런건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거야." 음산한 웃음과 함께 두인의 몸이 쓰러진 곽회의 앞에 떨어져 내렸다. 이어 두인은 곽회의 얼굴을 발로 천천히 내려밟았다. 뿌드득! 곽회의 입이 벌어지며 부러진 이빨이 검붉은 피에 섞여 나왔 다. "끄으으......" 곽회는 마치 벌레처럼 꿈틀거렸으나 두인의 발은 치워지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덜컹! 모옥의 문이 갑자기 활짝 열렸다. 동시에 한 사람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왔다. 두인은 흠칫 놀라 예리한 눈으로 모옥에서 걸어나온 인물을 쏘아보았다. 그러다 두인은 깜짝 놀랐다. 모옥에서 걸어나온 인물은 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몸에 서는 악취가 풍기는 괴인(괴인)이었다. 입고 있는 옷은 얼마나 오랫동안 빨지 않았는지 시커멓게 때 가 묻고 헤질대로 헤져 누더기도 그런 누더기가 없었다. 괴인 의 몸에서 제대로 된 것이라고는 치렁치렁한 머리카락 사이로 번뜩 이는 한 쌍의 맑고 차가운 눈 뿐이었다. 두인은 한 줄기 무거운 압력이 자신의 가슴으로 엄습해 옴을 느꼈다. 살짝 몸을 비스듬히 하여 고개를 위로 쳐든 두인은 두 주먹 을 앞으로 내뻗으며 가슴 앞까지 끌어올려 보였다. 이 특이한 자세는 무림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것 이었다. 바로 무적검수맹(무적검수맹)이 바깥 사람에게 이름과 내력 을 묻는 자세였던 것이다. 헌데 괴인은 이 유명한 자세를 보고도 아무런 대꾸도 없이 묵묵히 그를 응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두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보아하니 무림인물이 아닌 것 같은데......이 일은 무적검 수맹이 배신자를 처벌하는 일이니 귀하는 상관하지 마시오." 괴인의 차가운 시선은 두인에게서 그의 발밑에 깔려 신음하 고 있는 곽회에게로 느릿느릿 옮겨졌다. 한동안 물끄러미 곽회의 피투성이로 변한 몸을 내려보고 있 던 괴인은 불쑥 입을 열었다. "당신은 이만 물러가시오."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았던 것처럼 괴인의 음성은 낮게 가라 앉아 있었다. 두인은 조금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두 눈 에 싸늘한 분노의 빛을 떠올렸다. "무례한 자로군. 귀하는 귀하의 이런 부질없는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기나 하는거요?" 괴인은 천천히 앞으로 다가오며 이상스런 눈초리로 두인을 쳐다보았다. "당신이야말로 무례한 자로군. 남의 집에 허락도 없이 쳐들 어와서 내 친구를 때리다니 너무 심하다고 생각치 않소?" 두인은 흠칫 놀랐다. "이 자가 귀하의 친구라고?" 괴인은 서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라도 내 집에 들어와서 도움을 청한다면 그 자는 내 친 구요." 두인은 화가 나서 버럭 노성을 질렀다. "그런 억지가 어디 있소?" "억지가 아니오. 나는 남이 나에게 도움을 청해오면 거절을 하지 않소." 두인의 눈꼬리가 쭈욱 치켜 올라갔다. 그는 터질 것 같은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이를 부드득 갈 았다. "좋다! 네 놈의 목숨이 몇 개이기에 김히 본 맹의 일에 간섭 하려는지 어디 보자!" 두인은 상반신을 약간 뒤로 젖히며 수중의 구렁이 껍질로 만 든 채찍을 사납게 떨쳤다. 쉬악! 고막이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채찍은 괴인의 목을 노리고 후려쳐 갔다. 괴인은 아무런 동작도 취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괴이 하게도 돌연 연기와 같이 사라져버려 두인의 채찍은 허공을 치 고 말았다. "앗?" 두인은 소스라치게 놀라 정신이 아찔했다. 그는 채찍을 쥔 손이 갑자기 저려오는 동시에 허공에서 별안 간 떨어지는 상대방의 발길질에 채여 일 장 밖으로 나가 떨어 졌다. 쿵! "으윽!" 두인의 입에서 고통스런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 순간 괴인의 몸이 다시 허깨비처럼 원래의 자리에 나타났 다. 괴인의 손에는 어느 새 두인의 채찍이 쥐어져 있었다. 아마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괴인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고 두인이 혼자서 바닥에 나가 껄어진 것으로 착각했을 것이 다. 두인은 무적검수맹의 중추세력인 철검백건대에서 통령을 맡 고 있는 인물로 일신의 공력이 매후 심후했다. 그는 땅에 떨어지자 마자 맹렬히 진기를 끌어올려 몸을 일으 켰다. 이어 그가 몸을 솟구치려는 순간, 스윽! 아무런 기척도 없이 괴인의 발이 섬전처럼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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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발길질은 강호의 하류무사들이나 시전하는 시시한 원앙각 (원앙각)같았으나 이상하게도 두인은 뻔히 괴인의 발이 자신에 게 날아오는 것을 보면서도 피할 수가 없었다. 쾅! "크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