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망구가 입이 거칠군. 그렇다면 본 공자가 그 거친 입을 다물게 해주지." 냉면신구는 더 이상 솟구치는 화를 참지 못하고 수중에 들고 있던 용두괴장으로 힘껏 땅을 내리 찍었다. "이놈! 그래 어디 노신의 입을 다물게 해봐라!" 꽝! 엄청난 굉음과 함께 그녀의 용두괴장이 거의 반이나 땅속으 로 푹 들어갔다. 이 놀라운 광경을 보자 화접의는 내심 가슴이 섬찝해졌다. (정말 내공(내공) 하나는 끝내주는 할망구로군...그러나 강 호의 일이 공력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 흐흐...) 화접의는 입가에 음소(음소)를 흘리며 오른손의 중지와 검지 를 슬쩍 비벼댔다. 그의 동작은 아주 은밀했고 또 주위가 너무 어두웠기 때문에 중인들중 아무도 그의 행동을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화접의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이 오히려 한 발 앞으 로 나섰다. "할망구. 본 공자가 어떻게 할망구의 입을 다물게 하는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잘 보라구!" 냉면신구는 두 눈에 짙은 살광(살광)을 뿜어내며 말없이 화 접의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이 버르장머리없는 놈을 단번에 박살내기로 작 정한 듯 용두괴장을 움켜쥔 손에 노파답지 않은 굵은 힘줄이 툭툭 불거져 나오고 있었다. 그녀가 일단 손을 쓰기만 하면 살 인적인 공세가 펼쳐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한데 화접의는 덤빌 생각은 커녕 입가에 기이한 미소를 머금 고 있다가 돌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쓰러져라!" 그러자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금시라도 화접의를 찢어죽일 듯 기세등등하던 냉면신구의 몸 이 갑자기 앞으로 맥없이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앗?" "이...이게 어찌된 일이지...?." 한쪽에 서 있던 네 명의 미소녀들은 너무도 돌연한 일에 놀 라 어쩔줄을 몰랐다. 화접의는 그녀들을 돌아보며 빙글거리고 웃고 있다가 다시 소리쳤다. "흐흐...너희들도 쓰러져라!" 괴이무쌍하게도 그의 호통이 끝나자 네 명의 미소녀들 또한 그자리에 힘없이 쓰러졌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네 명의 미소녀들은 물론이고 냉면신구는 강호무림에서 내노 라하는 절정고수였는데 그의 호통 한 번에 모두 바닥에 쓰러지 고 만 것이다. 정각은 영문을 몰라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하나 곽표요는 사정을 짐작한 듯 화접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화형의 하독(하독)하는 솜씨는 비범하구료. 이건 이름 이 뭐요?" 화접의는 득의의 웃음을 날렸다. "흐흐...곽형은 역시 눈치가 빠르구료. 이번에 내가 사용한 것은 백화정분(백화정분)이란 것인데 남자에게는 아무런 효력 이 없지만 여인들이 마시게 되면 한 시진동안은 체내의 음기가 솟구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소." 곽표요는 내심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이놈이 강호제일의 색마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헛소리 는 아니었군. 조심하지 않으면 나중에 이 놈에게 당할지도 모 르겠구나.) 화접의는 쓰러진 냉면신구에게로 다가가서 그녀의 몸을 발로 툭툭 찼다. "쯧...할망구! 큰 소리만 뻥뻥 치더니 꼴 좋게 됐군. 본 공 자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이제 알겠지?" 냉면신구는 정신은 멀쩡했으나 움직이기는 커녕 입도 열 수 가 없어 화접의가 자신을 발로 차며 조롱하는 것을 보고도 감 수해야만 했다. 그녀는 너무도 화가 치밀어 거의 숨이 끊어질 지경이었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화접의는 화가 솟구쳐 돌아버릴 지경인 그녀의 몸을 넘어서 후원으로 들어갔다. 곽표요와 정각도 허겁지겁 그의 뒤를 따라 갔다. 세심장의 후원은 아주 정갈하면서도 고아(고아)한 분위기가 나서 그곳에 사는 사람의 풍취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화접의등 세 사람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후원의 안쪽으로 발걸음을 계속했다. 그때 화접의가 무엇을 발견했는지 눈빛을 빛내며 짤막하게 소리쳤다. "저곳이다!" 곽표요와 정각은 그가 가리키는 곳으로 급히 시선을 돌렸다. 그곳은 후원의 우측에 위치한 아담한 루각이었다. 루각은 모두 이층이었는데 일층은 칠흑같이 컴컴한 반면 이 층의 한쪽에서는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빛사이로 단정히 앉아 있는 여인의 그림자가 언뜻 비치고 있 었다. "신주홍안이다...." 곽표요등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들은 드디어 말로만 듣던 천하제일미녀를 볼 수 있게 된다 는 흥분에 몸을 떨며 누각으로 다가갔다. 특히 곽표요와 정각 은 오궁집회때 그녀를 언뜻 보기는 했으나 면사에 가려 얼굴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기대되는 심정이었다. 한데 그들이 누각으로 거의 다가갔을 때였다. 문득 그들은 누각의 컴컴한 일층입구에 한 사람이 우뚝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사람은 흑의를 입고 칠흑같이 어두운 일층의 한쪽 구석에 있었기 때문에 안력이 예리한 화접의와 곽표요도 누각에 가까 이 올때까지는 그가 그곳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었 다. 그는 체구가 우람하고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인이었다. 흑의중년인은 두손을 팔짱낀 채 오연(오연)히 어두운 밤하늘 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세 사람이 지척으로 다가왔건만 그들 을 전혀 개의치 않는지 아니면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아예 모 르는지 그들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묵묵히 허공만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은 무척 고독해 보이면서도 강인한 분위기를 풍겨내 고 있었다. 화접의의 눈쌀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는 이곳에 신주홍안외에 다른 사람이 있을 줄은 미처 예상 치 못했는지라 조금 당황했다. 그는 슬쩍 곽표요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 자가 누구인지 아시오?" 곽표요는 조금 긴장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에 한 번 본 일이 있소. 저 자는 호화단주(호화단주) 요." "호화단주? 저 자의 이름은 무엇이오?" "그건 잘 모르오. 아뭏든 저 자는 일년전에 신주홍안에게 반 해서 호화단주가 되었는데 어느 누구도 그의 이름이나 신분을 아는 사람이 없소." 화접의는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이내 눈빛을 빛내며 그자에게 다가갔다. 상대가 제아무리 대단한 고수일지라도 그는 자신의 독술(독 술)로 충분히 쓰러뜨릴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 상대의 정체를 모른다 한들 그가 두려워 할 리는 없는 것이다. 이상한 것은 그 자의 태도였다. 분명 화접의등이 나타난 것을 알았을텐데도 그는 허공을 올 려다 본 채 미동도 않고 있었다. 화접의는 그 자의 일장앞으로 다가간 후 정중하게 포권을 했 다. "귀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잠시 길을 비켜줄 수 있겠소?" 비록 어조는 공손했으나 그때 화접의는 깍지낀 양손을 이용 해서 미혼산(미혼산)을 발출해 냈다. 흑의중년인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우두커니 서 있 었다. 화접의의 눈꼬리에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한데 그때 갑자기 석상처럼 꼼짝않고 서 있던 흑의중년인이 오른손을 쑥 내밀어 화접의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아...그 순간의 가공함이란...! 화접의는 아직까지 인간의 손길이 이토록 빠르리라고는 상상 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무언가 희끗한 것이 어린다고 느낀 순간 어느 새 그의 목은 흑의중년인의 커다란 손아귀에 바짝 쥐어져 있었다. "끄윽!" 화접의의 안색이 시퍼렇게 변하며 그의 입에서 답답한 신음 성이 흘러나왔다. 흑의중년인은 너무도 간단하게 그의 목을 움켜 잡은 채 천천 히 입을 열었다. "죽고 싶으면 아무 곳에나 가서 칼을 깨물면 될텐데 왜 내 손에 죽으려고 하지?" 그의 음성은 아주 나직했으나 화접의의 귀에는 천둥치는 소 리처럼 우렁차게 들렸다. 화접의는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바둥거렸으나 그의 손아귀 힘이 어찌나 강하던지 옴짝달짝 할 수가 없었다. "케...케엑! 과...곽형...나좀..." 화접의는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며 곽표요에게 도움을 청했다. 곽표요는 머뭇거리지 않고 양 손을 벼락같이 휘둘러 흑의중 년인의 옆구리를 공격해 왔다. 그의 일격은 비단 신속할 뿐 아니라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아 서 방비하기가 어려웠다. 하나 흑의중년인은 여전히 오른손으 로 화접의의 목덜미를 움켜쥔 채 왼손을 슬쩍 휘둘렀다. 꽝! 벼락치는 듯한 음향이 터져나오며 곽표요의 몸이 뒤로 주르 르 밀려났다. "크윽!" 곽표요는 자신의 양 손이 흑의인의 왼손과 닿는 순간 엄청난 통증을 느끼고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토해냈다. 그의 양쪽 손 목은 아예 탈골(탈골)됐는지 밑으로 축 처져 흔들거리고 있었 다. 곽표요는 안색이 핼쓱해져서 감히 더 이상 손을 쓸 엄두도 내지 못하고 멍청하게 서 있었다. 그제서야 흑의중년인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 다. 어둠속에서 그의 눈이 마치 횃불처럼 이글거리는 안광(안광) 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무시무시한 눈빛과 마주치자 곽표요와 화접의는 모골이 송연해져서 고양이앞의 쥐처럼 옴짝달싹 하지 못했다. 흑의중년인은 자신의 손아귀에 쥐어진 화접의의 복면을 벗겼 다. 화접의의 유난히 창백하면서도 간사한 얼굴이 월광아래 드러 났다. "네 놈은 음탕한 짓만 일삼고 다닌다는 화가 놈이로구나." 흑의중년인은 그의 얼굴을 알아본 듯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하나 그 음성을 듣자 화접의의 얼굴에는 공포에 가득찬 표정이 떠올랐다. "대...대협...하...한 번만...살려..." "그 말은 지옥에 가서 염라대왕한테나 해라." 흑의중년인은 무뚝뚝한 음성으로 말하며 왼손으로 화접의의 머리통을 사정없이 가격했다. 쾅! 비명도 없었다. 화접의는 머리통이 산산히 부서진 채 그대로 즉사하고 말았다. 흑의중년인이 손을 놓자 머리통이 박살난 화접의의 시체는 한동안 경련을 일으키며 서 있다가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쿵! 시체가 바닥에 나뒹굴자 흑의중년인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 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그의 앞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던 곽표요 와 정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흑의중년인이 둘러보니 그들 은 어느 새 십 여장밖을 죽어라 달려가고 있었다. 약삭빠른 곽표요가 흑의중년인이 화접의를 죽이는 순간에 정 각을 데리고 냅다 줄행랑을 친 것이다. 흑의중년인의 무표정한 얼굴에 냉랭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천천히 오른손을 등뒤로 가져갔다. 그의 등뒤에는 기이한 모양의 병기가 십자(십자)로 교차되어 매어져 있었다. 그것은 극(극)같았는데 특이하게도 하나는 빨갛고 하나는 파 랬다. 빨갛고 파란 두 개의 극은 여타 극보다 훨씬 짧아서 얼 핏 보기에는 마치 작은 손도끼를 연상케 했다. 흑의중년인의 손은 그중 파란 극의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이어 그가 그것을 뽑으려는 순간, "그들을 내버려 두세요." 갑자기 이층누각에서 영롱한 여인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삼, 재 회 그 음성은 참으로 특이했다. 그 음성은 꿀처럼 달콤한 것 같기도 했고, 차갑게 흘러가는 시냇물처럼 시원한 것 같기도 했다. 또 어찌 들으면 그저 흘러 가는 바람처럼 공허한 것 같기도 했다. 그 음성을 한 번이라도 들은 사람이라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쉽게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 울렁거림을 느낄 것이다. 그 음성을 듣자 흑의중년인은 손을 딱 멈추었다. 그의 얼굴은 음성이 들려온 이층누각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 다. 그 영롱한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나는 이미 그 자들의 정체를 파악했으니 굳이 당신이 그들 을 죽일 필요는 없어요." 흑의중년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멍한 시선으로 이층누각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시선에 담겨 있는 빛은 참으로 복잡했다. 그것에는 뜨거운 갈 망과 애원, 고통, 절망, 좌절, 희망, 분노 등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는 그런 복잡한 시선으로 이층누각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의 눈에 날카로운 빛이 번뜩거렸다. 그는 아무 말없이 갑자기 등뒤로 오른손을 가져갔다. 파앗! 그가 손을 휘두르는게 보이지도 않았는데 돌연 그의 등뒤에 서 새파란 섬광이 폭사해 나왔다. 그 섬광은 가공할 속도로 누 각에서 십 여장 떨어진 커다란 나무를 향해 쏘아져 갔다. 쾅! 섬광에 부딪히자 나무는 그대로 박살이 나며 사방으로 파편 을 튀겼다. 놀랍게도 어른 두 사람이 간신히 안을 만큼 굵은 나무가 산산히 부서지고 만 것이다. 순간 나무위에서 두 개의 희끗한 인영이 허공을 날아 바닥으 로 떨어져 내렸다. 인영들이 내려섬과 동시에 나무를 박살내었던 푸른 섬광이 허공을 회전하며 흑의중년인에게로 날아갔다. 흑의중년인은 오 른손을 내밀어 섬광을 가볍게 움켜 잡았다. 이제보니 그것은 섬광이 아니라 푸른 색의 극이었다. 그 극 이 너무도 빨리 움직여 마치 섬광처럼 보였던 것이다. 흑의중년인은 그 청극(청극)을 움켜쥔 채로 나무에서 떨어져 내린 두 인영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화의를 입은 못생긴 사나이와 나무막대를 들고 있는 훤칠한 키의 백의청년이었다. 못생긴 사나이가 갑자기 그에게로 다가오며 소리쳤다. "당신은 혹시...하후형(하후형)이 아니오?" 흑의중년인은 무표정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 였다. "내가 하후태세(하후태세)요. 당신은 사마결이구려." "그렇소. 이년전에 당신과 술을 같이 했던 사마결이오." 사마결은 의혹과 호기심어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몇 년간 당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많은 무림인들이 혹시 당신이 죽은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소. 또 어떤 사람들 은 당신이 무림대회에 대비해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폐관(폐 관)하여 절학을 익히고 있다고도 했소. 그런데 당신은 이곳에 있었구료." 흑의중년인은 말없이 우뚝 서 있었다. 사마결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지난 일 년간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소? 당신은 무림대회 에서 우승하는게 일생의 목표라고 입버룻처럼 말하곤 했는데 왜 이번 대회에는 나오지 않았소? 대체 당신은 그동안 어디에 있었던거요?" 사마결의 거듭된 질문에도 흑의중년인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사마결은 안타깝고 답답한 표정이 되었다. 사마결이 흑의중년인을 만난 것은 딱 한 번, 지금부터 이년 전이었다. 그때 사마결은 자신의 거처인 장춘곡에 있다가 흑의중년인의 방문을 받았는데 그가 자신의 암기수법을 너무도 수월히 피해 서 깜짝 놀랐었다. 한 차례 손속을 겨룬 후 두 사람은 의기투 합해서 밤이 새도록 냉혼빙심설골일품향을 앞에 놓고 술을 마 셨다. 흑의중년인은 당시 강호무림에 떠오르는 해처럼 찬란한 명성 을 떨치고 있던 일월쌍극(일월쌍극) 하후태세였다. 하후태세의 일월쌍극은 우내십대기문병기중의 하나였다. 그의 일월쌍극은 전혀 다른 두가지 위력을 가지고 있어서 제 아무리 무공이 뛰어나고 경험이 풍부한 고수라해도 방비하기가 어려웠다. 그는 극(극)에 관한한 고금제일(고금제일)의 고수라고 알려 져 있으며, 우내십대기문병기중에서도 몇 손가락안에 꼽힐 실 력자라는 것이 무림인들의 거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게다가 하후태세는 인물됨이 호탕하고 성격이 자유분방해서 강호의 쾌남아(쾌남아)로 알려져 있었다. 사마결은 그와 헤어진 후로 쭉 그의 소식이 들려오기만을 기 다리고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뒤로 하후태세의 모습을 보 았다는 사람이 없었다. 사마결은 몇 번이나 사람을 풀어 그의 행방을 수소문했고 자 신이 직접 나서서 찾기도 했으나 그는 마치 땅속으로 꺼진 듯 오리무중이었다. 그런데 그가 한낮 여인을 지키는 호화(호화)의 무리에 속해 있을 줄이야... 신주홍안이 제아무리 천하에서 제일 아름다운 일대기녀(일대 기녀)라고는 하나 사마결이 보기엔 한낮 여인에 불과했다. 그 런 여인때문에 하후태세같은 강호의 쾌남아가 자신의 뜻을 꺾 고 그 밑에 들어가 있다는 것이 사마결로서는 당체 이해가 되 지 않는 일이었다. 그것은 하후태세 개인을 위해서도, 또 강호무림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하후태세의 얼굴은 철갑을 씌운 듯 무표정해서 그가 지금 무 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사마결은 한동안 그를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다가 무거운 한 숨을 토해냈다. "우리는 화접의가 무슨 흉계를 꾸민다는걸 우연히 알고 그의 뒤를 따라왔었소. 그런데 이곳에서 하후형을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소. 아뭏든 하후형이 이렇게 건장해 있는 모 습을 보니 반갑구료." 하후태세는 여전히 아무런 말이 없었다. 사마결은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신주홍안은 저 위에 있소?" 처음으로 하후태세의 얼굴에 어떤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날 카로운 눈으로 사마결을 바라보다가 짤막하게 말했다. "그렇소." 사마결은 다시 물었다. "그녀를 만나볼 수 있겠소?" 하후태세의 음성은 칼로 자르듯 단호했다. "안되오." 그의 음성이 너무나 냉랭했기 때문에 사마결은 더 이상 물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할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우린 이만 가야겠군." 바로 그때였다. "그들을 안으로 들어오게 하세요." 이층누각에서 예의 그 영롱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 음성을 듣자 하후태세의 몸이 움찔거렸다. 그의 눈에 잠 시 복잡한 빛이 어른거렸다. 하나 그는 아무 말없이 옆으로 몸 을 비켰다. 사마결은 막상 그가 이층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몸을 비켜주 자 오히려 어리둥절해졌다. 그가 신주홍안을 만나려고 했던 이유는 도데체 하후태세가 무엇때문에 그녀의 곁에 머물게 되었는지 그 내막을 알기 위해 서였다. 하나 그녀를 만나리라고는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왜 냐하면 무림에 알려진 바로는 그녀는 외인(외인)을 만나는 것 을 극도로 싫어해서 아주 친한 사이외에는 자신의 근처에도 얼 씬거리지 못하게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사마결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조자건을 돌아보며 히죽 웃었 다. "이거 횡재했군. 오늘 천하제일미녀를 보게 되다니 아무래도 눈복이 터진 모양이오." 그는 조금 흥분된 표정이었다. 아무리 사마결이라 할지라도 강호에 전설처럼 떠돌고 있는 미모의 소유자를 만나게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들뜨는 모양이었다. 하나 어찌된 일인지 조자건의 표정은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는데 사마결이 어깨를 툭 치자 그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려. 어서 올라갑시다." 이어 그는 사마결이 말할 사이도 없이 먼저 이층으로 성큼성 큼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사마결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허허거리다가 하후태세를 슬쩍 돌아보고는 자신도 그의 뒤를 따라 이층으로 올라갔다. 하후태세는 무표정한 얼굴로 두 사람의 등을 뚫어지게 주시 하고 있었다. 하나 그의 두 눈만은 어둠속에서 무섭게 번쩍이고 있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모두 열 일곱 계단이었다. 계단을 모두 올라가자 한 줄기 난초향(난초향)같기도 하고 매향(매향)같기도 한 그윽한 향기가 흘러나왔다. 그 향기를 맡 자 전신이 상쾌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층은 의외로 단촐하고 소박했다. 별다른 장식도 되어 있지 않았고 가구도 그리 많지 않았다. 한쪽 구석에 있는 탁자위에는 작은 호롱불이 빛나고 있을 뿐 으로 다른 집기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천하제일의 미녀가 기거하는 곳 치고는 너무도 조촐해 보여 서 오히려 기거하는 사람의 고아한 풍미를 알 수 있을 정도였 다. 중앙에는 두꺼운 휘장이 쳐져 있었는데 휘장 너머로 한 명의 여인이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아쉽게도 여인의 모습은 휘장에 가려 제대로 볼 수가 없었 다. 사마결은 한동안 안력을 돋구어 휘장뒤의 여인을 뚫어지게 주시했으나 휘장이 특수한 천잠사(천잠사)로 짠 것임을 알고는 안광을 거두었다. "두 분은 자리에 앉으세요." 휘장안의 여인은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사마결은 그녀의 음성이 마음에 들었다. 그 차분하면서도 냉 정한 음성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는 한동안 그 음성의 여운을 음미했으나 고개를 돌려 보니 조자건은 전혀 아무런 감흥도 없 는 듯 벌써 탁자옆에 놓인 의자에 털썩 앉아 있었다. 사마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신도 조자건의 옆자리에 가서 앉았다. 휘장안의 여인은 그들이 앉기를 기다려 다시 입을 열었다. "두 분이 저를 보자고 하신 이유는 하후대협(하후대협)때문 입니까?" 사마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솔직히 하후태세는 이대로 썩어 지내기에는 아까운 인물이오. 그는 무림을 위해서 커다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재 목인데 귀하의 밑에 묶여 있는 다는건...." 사마결은 말꼬리를 흐렸다. 원래는 너무 하지 않느냐고 말하 려고 했으나 아직 초면인 상대에게 너무 실례가 되는게 아닌가 하여 망설여 졌던 것이다. 그의 평지풍파객이란 외호를 생각한다면 이것은 평상시의 그 라면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그만큼 신주홍안이라는 외호가 주 는 위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휘장안의 여인, 신주홍안은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건 사마대협께서 잘못 생각하고 계신 거에요." 사마결은 움찔했다. "잘못 생각하다니..." "나는 그를 붙잡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에게 호화단을 해체 하고 무림으로 나가라고 여러 번 권하기까지 했었어요." 사마결은 자신도 모르게 불쑥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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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그가...." 신주홍안의 음성은 물흐르듯 고요하기 조차 했다. "그는 절대로 내 곁을 떠나지 않으려 해요. 그에게 호화단을 해체하고 내 곁에서 떠나라고 강요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