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황(卍皇) 1 - 49편 (49/50)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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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황(卍皇) 1 - 49편 (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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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허공에서 맹렬한 회전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자천릉은 시선을 주희빈에게 힐끗 돌렸다. "그대는 이곳에서 나가라! 그렇지 않으면 나 자천릉은 그대를 형 이전의 십왕 가운데 하나로 간주할 것이며 나는 당신을 죽이지 않을 수 없다." 이때 주희빈의 표정은 얼빠진 어린아이처럼 멍하였다. '이럴 수가, 십왕 중의 일 인인 나 주희빈이 단지 벽을 무너뜨린 반탄력 에 의해 밀려나다니!' 자천릉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 경이가 스쳐가고 있었다.
그의 입 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하하하, 이 우형은 그만 돌아가겠네.
허나 내가 돌아가는 것은 다른 사 람보다는 오랫동안 지켜보았던 사람으로서 아우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그냥 돌아가는 것일세." 주희빈은 몸을 날려 사라졌다.
그가 사라짐과 동시였다.
휘리리릭! 더욱 회전이 빨라진 매화꽃잎은 주위의 공기마저 빨아올리며 극렬한 와 류를 형성하기 시작했고 어디서인지 알 수 없지만 매화 꽃잎 하나하나가 서서히 모여들어 그 와류에 휩싸이며 대회오리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콰아아! 사막의 용권풍처럼 지상의 모든 것을 쓸어버릴 듯이 그 범위가 급격하게 확장되어 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엄청난 양의 매화꽃잎들 이 날아오며 시야까지 가려갔다.
더불어 사이한 음성이 회오리 중앙으로 부터 흘러나왔다. "흐흐흐, 세 번째 해후인가? 우리의 운명과 인연은 너무도 질긴 편이군." "훗! 이제 그 인연도 끝나겠군.
당신을 죽이기로 이미 결심했으니까." 자천릉은 입가에 싸늘한 조소를 머금고 어깨를 으쓱하였다.
그것은 질기 디 질긴 인연이기에 앞서 차라리 지겨운 악연이었다.
자천릉과 꽃바람은 벌써 세 번째의 대면이었다.
자천릉의 눈은 냉소에 가까운 웃음을 머금고 있었으며 그것은 살기보다 더욱 섬뜩한 예기를 토하고 있었다.
콰아아! 갑자기 꽃바람의 대와류가 폭장을 하며 순식간에 자천릉의 전신을 회오 리 안으로 끌어넣었다.
그 순간 자천릉의 우수가 섬전처럼 허공에서 춤 을 추었다.
자천릉의 벽력같은 일갈이 터졌다. "소소미미술예환기!" 카아아아! 일만 개의 작은 금환들이 회오리 속으로 폭사해 나갔다.
지상에서 가장 신비한 기병 소소미미술예환.
모든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 는 만황의 능력이 창조시킨 기예 소소미미술예환기.
그것이 마침내 그 화려한 폭발을 한 것이다.
파파파파! 일시에 금환이 수천만 가닥의 광선처럼 빛을 발했고, 놀랍게도 그 금환 들은 그 많은 양의 매화 하나하나를 엄청난 속도로 박살을 내었다.
한 순간 걷잡을 수 없이 강렬해져 가던 대와류의 회오리가 멈칫하였다.
허나 그것도 잠시 자천릉의 반격은 오히려 화약에 불을 붙이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고오오! 와류는 중심부위가 수십 장으로 팽창하여 순식간에 자천릉의 전신을 휘 감고 안으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힘은 마치 대해의 심연 속에 흐르 고 있는 와류처럼 자천릉을 끌어당겼다.
자천릉의 혈포가 미친 듯 광란하며 찢겨져 나갔고 자천릉의 몸은 회오리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허나 그의 몸은 결코 회오리에 휘감겨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지는 않았다.
아니 그 순간에 있어 오히려 자천릉의 안광은 예리한 섬광을 토해내고 있었다. '저 곳이다!' 그의 시선이 꽂혀 있는 곳은 기이하게도 대와류의 중심에서 약 삼사 장 밖에 또 하나의 무형의 기류가 거의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매화꽃의 한 무리를 회오리치게 하고 있는 곳이었다.
자천릉은 그것을 본 순간 그의 초상감각이 그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
이때 자천릉의 혈포가 걷잡을 수 없이 순식간에 찢어져 나가기 시작했 다.
초상감각이 그에게 그 어떤 직감과 확신을 심어주는 그 짧은 시간에 도 그의 몸은 회오리의 중심으로 이 장이나 끌려들어 갔던 것이다.
또한 끌려 갈수록 대와류의 힘도 엄청나게 강해져 자천릉의 전신을 파괴시킬 듯 짓눌러 올 뿐만 아니라 그의 몸을 허공으로 빨아올리고 있었다. '위험하다!' 자천릉의 감각은 지금까지 그가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위기의식을 느끼게 만들었다.
바로 그 순간 그의 초상감각이 작렬하기 시작했다.
자천릉의 우수가 완전히 감각에 의존한 채 허공을 휘젓는 순간 소소미 미술예환은 자천릉이 판단 내린 매화의 한 무리가 회오리치고 있는 곳을 향해 섬광처럼 쏘아나갔다.
동시에 소소미미술예환은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며 그것을 꼬듯이 휘어감 았다.
팽! 소소미미술예환이 팽팽해지는 순간 돌연 위로 빨려 오르던 자천릉의 몸 이 거짓말처럼 허공에서 정지되었다.
자천릉은 그 짧은 순간을 빌어 소소미미술예환이 휘어감은 무형체를 정 면으로 응시하며 대갈성을 토했다. "가랏! 지상최강의 병장기 혈왕사!" 자천릉의 찢겨진 옷이 마치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순식간에 터져 나 갔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 핏빛 광선이 수천 줄기로 한꺼번에 뇌전처럼 쏘아나갔다.
마침내 지상에서 가장 강하고 가장 강렬한 독을 머금고 있는 죽음의 핏 빛 모래 혈왕사가 펼쳐진 것이다.
카아악! 악마의 괴음을 토한 혈왕사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무형의 회오리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관통하고 전면의 석벽마저 뚫어버렸다.
꽝! 석벽은 먼지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 순간 피분수가 흡사 바람에 쏠리듯 폭사하였다.
바로 소소미미술예환이 감고 있던 무형의 물체로 부터 혈왕사가 쏘아나 간 방향으로 끔찍하도록 많은 양의 피분수가 뿜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엄청난 대회오리의 와류가 소리없이 잦아들어 가면서 그토록 팽 팽하게 무형체를 휘어감고 있던 소소미미술예환도 힘없이 풀어졌다.
쿵! 둔중한 소리와 함께 허공 속에서 핏빛의 인영이 드러나며 바닥에 엎어졌 다.
그것은 사람이라기보다 이미 한덩어리의 고깃덩이에 가까웠다.
피범 벅이 된 인영은 미미하게 꿈틀거리며 사이한 음성을 흘려냈다. "자천릉...
너는 역시 대단한 놈이구나.
나...
꽃바람을...." "천만에, 나 자천릉으로 하여금 혈왕사를 쓰게 만든 그대 꽃바람이야말로 대단한 인물이오." 자천릉의 어조에는 진심으로 상대에 대한 감탄이 어려 있었다. "흐흐흐...
죽는 마당이지만 칭찬이라 듣기 싫지는 않군.
자륭극이 아들 하나는 정말 잘 뒀군.
친구 잘 있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던 내가...
그대의 도움을 받은 보답으로...
내 죽음을 그대 아들에게 주었으니...
내 가 먼저 죽는다 한들 결코...
우정을 배반한 것은...
아닐세." 꿈틀거리던 혈인의 음성은 종내 미약하게 흐트러졌고 가늘게 미동을 하 던 것도 완전히 굳어졌다.
영원한 불사신과 같았던 꽃바람은 이렇게 최후를 맞이하고 있었다.
자천릉은 호적수 하나가 사라졌다는 허무함이 마음 어느 구석엔가 남으 면서 강렬한 의혹으로 미간을 깊게 모았다. '이 사람이 남긴 말에는 분명 아버지를 알고 있었다는 것과 아버님이 살 아 있어 마치 얼굴을 대하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사공숙부에 이어 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말을 듣게 된 것이 두 번째가 되 는 셈이다!' 밀려드는 의혹은 그로서는 풀 수 없는 하나의 숙제로 남을 수밖에 없었 다.
그는 천성이 그러하듯 모든 것을 떨어버린 듯한 표정으로 발길을 돌려 다시금 윗층의 계단을 밟아갔다.
스르르르.
처참한 시신은 소리없이 떨어지는 매화꽃 속에 파묻혀 그 추한 모습을 감추었다. ② 그때 곤륜칠층봉소석탑의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던 흑나비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자천릉의 배후에 해당하는 불에 탄 잿더미 사이에서 한 쌍의 눈초리가 독기를 품은 채 소리 죽여 자천릉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 보였던 것이다.
눈초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여왕접 칠치요시 희설기였다.
망월적 형제와 함께 곤륜칠층봉소석탑에 불을 놓던 중 자천릉의 등장을 눈치채고 한 옆에 숨어 독수를 펼칠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크ㅋ! 떠나야 할 사람이 머물러 있을 필요는 없지." 흑나비가 기묘한 뇌까림을 흘리며 소리없이 희설기가 있는 쪽으로 신형 을 쏘아갔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는 기이한 독백이었다. "어디로 갈꺼나...
어디로 갈꺼나...
고향을 찾아서 어디로 갈꺼나...." 한 줄기 모래바람의 울음처럼 삭막한 애수에 젖은 노랫가락이 들려왔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드는 자천릉의 시야에 불길에 잠긴 허공 상 으로 아직 끊어지지 않고 있는 몇 가닥의 십만철로 위를 노래를 부르고 재주를 넘으며 오가고 있는 그림자가 비쳐지고 있었다.
달빛을 반사하는 귀면탈을 쓴 사내였다.
헌데 사내의 노랫소리가 한 소절 끊어질 때마다 십만철로가 엿가락처럼 끊어지며 불길 속으로 떨어져내리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지금 그 달빛같은 사내는 가냘프게 매달린 마지막 한 올의 십만 철로 위로 내려서며 뭉툭한 검으로 십만철로를 내리치고 있는 참이었다. "달밤에 춤추는 미친 놈이라." 자천릉의 입에서 싸늘한 음성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그의 허리에서 천뢰 금부가 끌러졌다 싶은 순간 그대로 풍차같은 회전을 일으키면서 십만철 로 위의 사내를 후려쳐 가고 있었다. "큭!" 무섭게 회전하는 천뢰금부가 막 사내의 몸을 적중시켰다고 느낀 찰나 사 내의 신형이 짧은 비명과 함께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헌데 놀랍게도 사내의 신형이 빙글 회전을 일으키며 흡사 곡예사가 재주 를 넘듯 다시 십만철로 위로 내려서고 있었다.
바로 그때 포물선을 그리고 되돌아오는 천뢰금부를 받아쥔 자천릉이 그 대로 지면을 박차고 날아 올랐다. "알고 보니 대곤륜의 동맥을 끊어버린 자가 바로 그대, 귀신흉내를 내는 어릿광대였군." 번쩍! 슈파아앗! 자천릉이 양손에 천뢰금부와 벽은월을 나눠든 채 귀면탈을 쓴 사내를 맹 렬하게 찍어갔다. "후후, 만황 자천릉인가? 나 달그림자 만나 보고 싶었다.
같은 육천마을 출신으로 그렇게 위대한 이름을 탄생시킨 그대를!" 귀면탈을 쓴 사내의 손이 기기묘묘한 바람의 연속원을 만들어 자천릉의 공세를 덮어 씌워오고 있었다.
허나 자천릉의 쌍도끼가 그 가공할 잠력을 격출하는 바람의 연속원들을 가르고 내리꽂혔다. "가라!" 꽈꽈꽉! 달빛을 반사하던 사내의 귀면탈과 사내의 얼굴이 한꺼번에 한 쌍의 도끼 에 의해 쪼개졌다.
잇달아 처절한 비명과 함께 난도질당한 사내의 몸이 십만철로 아래의 무서운 화염이 이글거리는 나락으로 아득하게 추락해 가고 있었다.
달그림자.
바람의 아들로 불리우며 유리유사하라는 신비의 단체를 이끌 고 대막의 신으로 군림하다가 자신의 고향 중원의 천재촌으로 돌아오던 그.
천하칠패쟁비록에 곤오풍우, 천세미륵, 자륭극 등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기록되던 이 시대의 또 하나의 신비무인이 그렇게 지옥 같은 불길 속으로 추락해 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 시각, 달바람과 자천릉이 싸우고 있을 때 불길에 휩싸인 대곤륜산맥 을 등지며 한 사내가 떠나고 있었다. "릉! 당신을 노리던 어둠 속의 생쥐들은 제가 모두 제거했어요.
이제 더 이상 당신이 곤오풍우를 찾아가는 길을 가로막을 자는 없을 거예요.
물 론 가로 막힐 당신도 아니지만." 어둠 속에 어둠보다 짙은 흑의를 입고 한 송이 붉은 장미를 가슴에 꽂은 그 사내, 그는 바로 흑나비였다. "내가 평범한 여자였다면...
그래서 한 번 돌아봐 주지도 않는 당신을 지 겹게 쫓아다닐 자격이라도 있었다면 저는 결코 당신 곁을 떠나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아! 무슨 말인가? 설마 흑나비가 여인이었단 말인가? 혼자서 십왕 중 삼 인을 장난이라도 하듯 죽여버렸던 가공할 고수, 어쩌 면 자천릉보다 더 강할지도 모른다는 추측까지 낳게 했던 그 무서운 문 둥이 고수 흑나비가 여인이라니! 실로 충격적이도록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소녀는 떠납니다.
하루하루 남은 목숨을 손가락으로 헤아리며 희망도 꿈도 없이 무의미하게 살아가야 할 소녀의 삶은 당신께 아무런 보탬도 드릴 수 없기에...
그리고...
스스로 부끄러워 떠나지 않으면 안될 만큼 당신을 사랑하기에...." 꽃잎이 흩어지고 있었다.
흑나비의 가슴에 잃어버릴 수 없는 한 조각 꿈 처럼 언제나 꽂혀져 있던 붉은 장미 한 송이가 산산이 흩어져 어둠 속으 로 내려앉았다.
천형을 안고 태어난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도 결국 회생할 수 없었던, 그러나 그 시한부 생명의 끝에서 운명처럼 한 사내를 만나버린 비운의 여인은 그렇게 꽃잎을 밟으며 어둠 속으로 묻혀지고 있었다. ③ 뚜벅! 뚜벅! 자천릉의 걸음은 무심한 보폭으로 사층을 거쳐 오층에 이르고 있었다. "훗! 십팔만사천백와마루의 모든 것이 변해 있건만 너는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구나." 문득 자천릉은 감회를 느낀 듯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어디, 다시 한 번 볼까?" 보랏빛 융단이 부드럽게 깔려있는 드넓은 석실의 한복판에 자단이 덮인 석대와 그 위에 올려진 지독히도 두꺼운 양피 책자가 있었다.
바로 <오 천년무림문헌통고>였다.
자천릉은 천천히 다가가 오천년무림문헌통고를 뒤척이다 부편(副篇) <천하칠패쟁비록>을 넘겨보며 나직이 실소를 터뜨 렸다. "후후, 여전히 아버님에 대해 기록해 놓은 부분은 찢어져 있군." 천하칠패쟁비록의 제일 끝에 붙어 있는 한 장은 찢겨진 채 그대로 있었 다. <허나...
우리가 천년관부제일고수라는 자륭극을 맨 위에 두는 것은 그 가...
그가....> 자천릉은 그 찢겨진 부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군.
하지만." 자천릉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굳이 타인의 말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지.
나는 곤오풍우 그 자 만 죽이면 되는 것이니까!." 자천릉의 걸음은 오층을 가로질러 육층을 향한 석계를 오르기 시작했다.
육층, 오천 년 무림사가 탄생시킨 초유의 거인이라는 곤오풍우와의 첫 만남이 있었던 곳, 그리고 새하얀 융단을 적시던 피눈물과 울음보다 더 처절했던 한 사내의 통한의 웃음이 있던 바로 그곳으로! 헌데 한 순간 육층의 실내를 둘러보던 자천릉의 눈에 기광이 일었다. "이상하군.
왜 그자가 보이지 않지? 약속을 잊었던가?" 곤오풍우는 분명 말하지 않았던가. - 백마와 십왕을 먼저 죽여라.
그리고 나를 죽이러 와라! 언제든지! 헌데 그렇게 외쳤던 곤오풍우는 없었다.
단지 텅빈 공간만이 자천릉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응, 저것은?" 자천릉이 불현듯 탄성을 터뜨렸다.
텅빈 육층 실내의 중앙에는 찢겨진 양피지 한 장이 누렇게 바랜 채 덩그러니 놓여있지 않은가? 자천릉은 천천히 양피지를 집어들며 시선을 가져갔다.
헌데 다음 순간 양피지 위를 훑어보던 자천릉의 전신에 폭풍같은 전율이 피어나며 그의 입에서 경악에 찬 부르짖음이 튀어나왔다. "그, 그럴 리가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찌...
어찌 아버님과 곤오풍 우가 동일인물일 수 있단 말인가?" 무슨 말인가? 만세제일신마 곤오풍우와 천년관부 제일고수라는 자륭극이 동일인물이란 말인가! "뭔가 이상하기는 하지만 믿을 수는 없다.
어찌 그토록 자애로우신 아버 님과 곤오풍우가 동일인물일 수 있을 것인가!" 자천릉이 조금 냉정을 되찾은 듯 다시 양피지 위로 시선을 가져갔다.
찢 겨진 양피지.
바로 오천년무림문헌통고 부편 천하칠패쟁비록의 제일 끝 장 후미에는 다음과 같은 엄청난 글귀가 적혀 있었다. <허나...
우리가 천년관부제일고수라는 자륭극을 맨 위에 두는 것은 그가 만세제일신마 곤오풍우와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 증거 로써는 대명건국과 연왕반정, 삼십 년의 시차를 두고 일어난 그 두 가지 사건을 들 수 있다.
중원의 한 구석에서 대명건국의 기치가 마악 들어 올려졌을 때 천하각처 에서는 숨을 죽이고 있던 중원무인의 자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벌떼처 럼 일어섰다.
또한 연왕반정이 잉태되던 그날 밤, 마찬가지로 강호 전역 에서는 엄청난 격동의 파고가 출렁였다.
이 두 사건이 벌어지던 때 천하 구석구석에 퍼져 있던 무인들, 곧 하오 문의 잡배에서 은거기인 고수들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심지어는 십팔만 사천백와마루의 초마인들까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흡사 잘 조련된 어떤 한 단체에 소속된 무인들처럼.
대명건국과 연왕반정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면의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 다.> 그것은 분명 사실이었다.
이민족 원의 지배 속에 압제받던 중화의 자존 심을 한꺼번에 폭발시켜주는 분출구가 되었던 대명건국, 그리고 그 회복 된 자존심이 불과 삼십 년만에 치정(治政)의 과오로 다시 무너질 뻔한 위기에 감행된 연왕반정, 그 두 개의 사건에 집약된 중화인들의 열망과 성원은 천하 무인들이라고 해서 결코 예외가 될 수 없었다.
허나 문제의 핵심은 그들 무인들의 움직임이 너무도 일시에, 너무도 일 사불란하게 이루어졌다는데 있었으니. <허면, 여기에서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어떻게 그 많은 무인들이 그토록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겠는가? 대답은 당연하다.
누군가 그 배후에서 명령을 내린 것이다.
모든 무인들을 말 한 마디로 움직일 수 있는 그 누군가가.
그렇다면 천하에서 과연 누가 그 무인들을 따르게 하고 명령을 내릴 수 있겠는가! 소림의 천세미륵 자장대사는 아니다.
그는 불문의 제자로서 불문의 제자 가 도가, 유가, 선가는 물론 이단의 사가(邪家)들까지 포함된 천하각파의 인물들을 명령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허면, 꽃바람? 모습도 보이지 않는 자가 천하를 명령한다는 것은 비현실 적인 상상이다.
그렇다면 천년관부의 제일고수 자륭극? 불가하다.
관부의 고수가 강호의 무인들에게 명령을 하는데는 한계가 있는 법이 아닌가.
따라서 결론은 당연히 한 인물, 만세제일신마 곤오풍우로 모아진다.
자륭극이라는 안개에 쌓인 신비무인이 연왕반정을 막후에서 주재했다는 것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인 터, 그렇다면 진정한 마지막 결론은 무엇인 가? 대명건국과 연왕반정을 이룰 때 무인들을 함께 움직일 수 있었던 인물의 이름은 곤오풍우.
연왕반정을 막후에서 주재한 이름은 자륭극.
그 둘의 이름은 또한 하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끝으로 천하칠패의 우열을 논하면서 자륭극이란 이름을 머리에 둔 것은 자륭극의 소꼽친구인 연왕이 그를 자륭극이라 부른다는 점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곤오풍우보다는 자륭극이 본명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참고로 십팔만사천백와마루의 율법에는 신분이나 이름을 숨기는 것을 관 여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규정되고 있음을 알려 둔다.> 정녕 무섭고도 경악스러운 사실이었다.
자륭극과 곤오풍우가 동일인물이 었다니! "그래...
모든 것을 인정한다고 치자.
하지만 곤오풍우는 분명 왼팔이 없 었다.
아버님에 의해 잘려졌다고 하면서." 자천릉의 표정은 무섭도록 냉정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분명 곤오풍우는 자천릉 앞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자륭극의 여왕은산에 의해 자신의 좌수 가 잘려 나갔다고.
헌데 이때 맑고 담담한 한 줄기 음성이 자천릉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것 이 아닌가? "하하하, 릉아야! 내가 살고 있는 땅, 우리 중원인들이 세운 나라, 대명을 위해서라면 좌수를 베는 것만으로 어찌 족하다고 하겠느냐?" 자천릉의 표정이 굳었다. '곤오풍우!' 그는 홱 고개를 돌렸다.
육층의 창가.
그 옛날 곤오풍우가 서 있었던 자리.
오늘 이 시각에도 역 시 유난히 어깨가 넓어 보이면서 한쪽 팔이 헐렁한 백포를 입은 사내가 서 있었다.
자천릉의 눈빛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아니다! 이 음성은 틀리다! 곤오풍의 육중한 음성이 아니라 한없이 맑고 자애로운 정을 담고 있는 음성, 바로 아버지의 음성 이다!' 백포의 사내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하하하, 이놈! 릉아야.
이 아비의 목소리도 잊었느냐?" 자천릉이 세차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음성은 맞소.
허나 얼굴은 틀리오!" 돌아선 백포사내는 분명히 곤오풍우의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우두둑! 하는 소리가 들리며 곤오풍우의 얼굴 뼈마디가 급속히 자리를 바꾸며 근육의 형태가 위치를 옮기기 시작했다. "놈! 이러면 되겠느냐?" 자천릉의 눈이 휩뜨여졌다. "아버님이! 이, 이럴 수가, 곤오풍우와 아버님은 동일인물이란 말인가!" 자천릉의 얼굴에서 급속도로 체온이 식어 가며 잇달아 충격과 불신, 경 악과 회의, 그리고 기쁨과 의혹 등 여러 가지의 감정이 복잡하게 뒤엉키 며 떠오르기 시작했다.
보라.
순식간에 뼈와 근육이 자리를 바꾸며 떠오르는 한 사람의 얼굴은 선비처럼 청수하고 탈속한 자륭극의 얼굴이었으니! 이때 자륭극의 고개가 천천히 끄덕여지고 있었다. "그렇다.
이 아비가 바로 곤오풍우이자 자륭극이니라." 명백한 확인의 그 한 마디에 자천릉의 얼굴은 또 한 번 굳어지고 있었 다.
정녕 소름끼치는 일이었다.
자천릉이 무엇 때문에 그 많은 고수들과 싸우며 십팔만사천백와마루의 백마와 십왕을 모조리 베고 천하를 쓸었던 가? 해란주의 이방십칠인의 부탁이 있었다고도 하나 무엇보다도 그것은 곤오풍우에게 자신의 부친 자륭극이 죽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헌데 자 륭극과 곤오풍우가 동일인물이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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