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즐거운 여자 - 엘리스 피터스 - 2편 (2/23)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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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즐거운 여자 - 엘리스 피터스 - 2편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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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6살부터 60살까지로 생각했는데." 하고 그는 어리벙벙한 투로 말끝을 흐렸다. "아니야.
18살부터 65살까지야.
네 마음가짐은 기특하지만, 우리가 아이들의 피를 뽑는 것은 허락되어 있지 않아.
성장에 지장이 있으니까.
자, 집에 가서 2년 뒤에나 와요.
단, 그때도 부모의 허락이 있어야 하지만." 젊은 간호사가 낄낄 웃었다.
키티조차도 윤기나는 긴 머리칼에 가려진 저쪽에서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그를 비웃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의 굴욕감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정말로 헌혈의 최소 나이가 16살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정말인가요? 그전에는 16살로 알았는데?" 그녀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거 안됐네.
내가 이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줄곧 18살이었어.
하지만 뭐 기분나빠 할 것 없어 -- 어리다는 건 조만간 시간이 해결해 줄 테니까." 그는 이젠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키티는 침대 위에서 간호사의 어깨너머로 고개를 내밀어, 풀이 죽어 문 쪽으로 걸어가는 도미니크를 바라보았다.
도미니크는 너무도 부끄러워서 그녀에게 작별의 인사말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키티가 그의 등뒤에서 호소하듯 말을 걸었다. "그냥 가지 말아요! 내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요.
차로 바래다 줄께!" 어린아이가 응석을 부리는 듯한 말투였다.
일부러 그에게 응석을 부려, 그의 자존심을 회복시켜 줌으로써 굴욕감을 거두어 주려고 했던 것이다.
발길을 돌린 그의 눈에 생기가 되살아났다.
그녀가 생각한 것이 적중한 것이다. "이리로 와서 나와 이야기를 하지 않을래요? 피뽑는 걸 잊고 싶으니까." 그녀가 그렇게까지 채혈에 겁을 먹을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키티와 같은 여성에게는 그런 독선이 허용되어도 좋았다. "원하신다면 그러지요." 그는 다소 자신을 되찾으며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수간호사 같은 나이먹은 간호사가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이렇게 협조적인 아이를 쫓아내는 것도 뭣하니까." 도미니크는 당신 같은 여자야 내 알 바 아니라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행동은 잠깐 어린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건지는 모르지만, 그에게는 뼈저린 모욕이었다.
하지만 키티가 불러주었으므로 이미 그까짓 수간호사의 말 같은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자, 이리로 와요." 젊은 간호사가 키티의 침대 곁에 의자를 끌어다 놓으며 말했다. "여기에 앉아 말동무 해드려요.
이따가 맛있는 홍차를 갖다 드릴 테니." 도미니크는 의자에 앉았다.
키티는 점차 자기의 피로 채워져 가는 병에서 애써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는 그녀가 정말로 피를 뽑는 것에 겁을 집어먹어서 그러는 것은 아닌 성싶었다.
그녀는 킥킥 웃음을 참느라고 애쓰고 있었다.
간호사의 모습이 뒤로 돌아갔을 때 재빨리 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 사람들이 내 피를 말릴 생각인가 봐요." 이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확 뒤바뀌었다.
모든 것이 우스꽝스러웠으며, 각기 맡은 일로 바람개비처럼 돌아가는 간호사들이 다소 과장되게 생각해서 그녀를 죽이려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는 마음이 느긋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녀에게 이끌려 웃음을 띄우면서 아까부터 마음에 걸렸던 이야기를 했다. "나는 정말 16살부터는 헌혈을 해도 되는 나이로 알고 있었습니다." "알 만해요.
나는 나이 제한 같은 게 있는 줄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일리는 있는 것 같네요.
그런데 아직도 끝나지 않았나? 내가 직접 보기가 겁이 나는데." 그 역시 그걸 확인해 보는 것은 꺼림칙했다.
그녀의 상아색 팔에서 그녀의 피가 천천히 빨려 나간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 "조금 남은 것 같습니다." 그는 건성으로 말했다. "아, 이제 끝난 모양입니다.
홍차를 갖고 오는군요." 그 홍차는 대단히 진하고 단데다가, 연유를 넣어 탁한 적갈색을 띠고 있었다.
두 사람만 남자 키티는 상체를 일으켜 새롭게 붕대를 감은 팔을 갑갑한 듯 구부리고서 찻잔을 입으로 갖고 가 한 모금 맛을 보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나도 이렇게 단 건 좋아하지 않지만, 당신은 금방 피를 뽑은 뒤니까 이런 게 몸에 좋지 않을까요? 기운을 복돋우기 위해서." "난 전혀 내 몸에서 무엇을 빼앗겼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키티는 의외라는 듯이 붕대를 보고 나서, "저 병에 든 것이 대체 뭔지 이상할 정도예요.
그쪽은 혹시 맥주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요?" 하고 그의 멍해진 시선을 알아차리고서 급히 이렇게 덧붙였다.
그는 더욱더 당혹감을 느끼며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키티라는 여자를 점점 알 수가 없어졌다.
사실 그는 그녀에 관해서 거의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알고 있는 거라고는 그녀가 대단히 매력적이라는 것과, 전에 보트 클럽의 테라스에서 목격한, 이해하기 어려운 광경뿐이었다.
그녀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 "인사가 늦었지만, 내 이름은 키티 노리스.
별로 대단한 이름은 아니지만, 노리스 맥주의 딸이랍니다." 마치 자기 자신은 벌써 익숙해졌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의심스러울지도 모를, 타고난 가벼운 신체적 결함을 설명하는 듯한 말투였다. "아, 그러세요?" 도미니크는 일단 그렇게 대꾸를 하고는, 갑자기 착잡한 심정이 되었다.
도대체 내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 이상한 일이다.
맥주회사의 여자상속인인 캐서린 노리스라면 자주 지방신문의 사교란에 오르내리고 있으니만큼, 가끔은 그녀의 사진을 보았을 것이 아닌가? 물론 그 사진들은 그녀를 충실하게 촬영한 것이 못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야 내가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곧 알아보았을 텐데......아마이저스 에일사(社)의 독점판매조직 외에, 이 군(郡)의 술집 간판 중 거의 3분의 1은 그녀의 이름을 내걸고 있었다.
더구나 그녀는 아마이저스의 아들과 약혼했다는 소문도 들은 것 같은데......? 도미니크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으나, 그가 신문 스크랩을 만드는 습관에 지방 사교계의 결혼이나 약혼 같은 기사는 들어 있지 않았고, 또 두 회사의 합병이 어떤 사정으로 유산되었다는 보도도 그의 기억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런 사실만으로 충분했고, 그 전후 사정 같은 건 알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내가 멍청해서 몰랐습니다.
나는 도미니크 펠스라고 합니다." 그는 어른스럽게 말했다. "자, 건배해요, 도미니크!" 그녀는 그 달착지근한 홍차 잔을 들어올렸다. "그전에는 헌혈한 다음에 기운을 차리게 하기 위해 스타우트(영국제 검은 맥주)를 마시게 했다나 봐요.
셸레이 아저씨에게서 들은 적이 있거든요.
어쩐지 속은 것 같네." "그건 노리스의 스타우트가 아닌가요?" 도미니크가 엉거주춤하게 농담을 해봤다.
그런데 그게 대성공을 거두어, 그녀는 배꼽이 빠지게 웃었다. "어머, 세상에! 두손들었어요." 그녀는 박차듯 침대에서 내려와 손목 근처까지 흘러내린 붕대를 거칠게 풀어 내동댕이쳤다.
그는 그녀를 따라 밖으로 나가며 이젠 됐다고 중얼거렸다.
전용 버스가 도착하고, 헌혈 지원자들이 줄을 이어 교정에 내려서고 있었다.
9월달도 하순으로 접어들어, 밤의 장막은 벌써 짙어져 있었고, 더구나 건조한 냉기가 주위에 감돌고 있었다.
그녀는 커먼 기어에 올라타고는 아마 열심히 -- 하지만 무관심하게 -- 손을 흔들고 자기 갈 길을 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혼자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 버스에 흔들리며 집으로 가게 되겠지.
그리고는 그녀와는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키티는 차에 올라타자 운전석에서 손을 뻗어, 반대쪽 문을 열고는 쾌활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까지 모시면 되지요?" 그녀는 그녀의 호의를 어찌하면 될지 잠시 망설였다.
혹시 그녀에게 실례가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비록 그렇다고 해도 사양하고 싶지는 않았다. "고맙습니다." 그는 거기에서 꼴깍 침을 삼켰다. "하지만 버스 정류장은 바로 저기에 있는걸요." "어머나, 정류장에서 먹고 자고 하나 봐?" 키티는 일부러 딴전을 폈다. "아니, 거기서 버스를 타는 겁니다." "자, 어서 타고, 집주소를 말해 줘요.
그렇게 서 있기만 하니, 내 차가 마음에 들지 않는 투네.
이런 차 타본 적 없어요?" 그는 그녀와 나란히 앉았다.
플라스틱 커버를 씌운 시트에서 금빛 구름이 -- 영광의 구름이 -- 피어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옆에 앉은 여인은 천상의 여신처럼 우아하고, 차는 너무나 훌륭했다.
키티는 시동을 걸고서 관목 쪽으로 후진을 했다.
전용 버스가 앞을 막고 서 있어서 그대로는 차를 돌릴 수가 없었다.
관목 숲이 차 뒤쪽의 어둠 속에 검게 웅크리고 있었다.
그녀는 후진등을 켜고서 공간의 넓이를 확인한 다음, 도미니크의 활기 넘치는 자부심과 그녀에 대한 기대에 응하듯 단숨에 차를 돌려, 전용 버스 뒤를 스치듯 빠져 나와서는 화살처럼 교문 쪽을 바라보고 달렸다.
차는 하워드 가(街)를 질주하다가 교통신호 앞에서 속도를 늦추었다. "그쪽 주소 가르쳐 주지 않을 거예요?" 키티가 말했다.
그는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억제하기 어려운 기쁨에서 굳은 혀놀림으로 자기 집 주소를 말했다. "코마퍼드는 곧장 가면 별로 멀지도 않겠네.
우리 돌아가기로 해요." 그녀는 방향지시등을 켜고서, 아름다운 손짓으로 뒤차로 하여금 앞으로 가라고 신호를 했다.
그 차의 운전사는 커먼 기어의 뒷바퀴 쪽을 가리키며 뭐라고 큰소리를 지르며 지나갔다.
그 의미를 알 수가 없었던 도미니크는 키티에게 편든다는 생각에서 상대방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키티는 알겠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늘 그렇다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후진등을 껐다. "난 늘 이 모양이야.
이번에 차를 살 때는 자동점멸장치가 달린 걸로 사야지.
그쪽 아버지에게 이런 이야기 하지 말아요.
나는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늘 조심해요.
기억력이 둔한 편은 아닌데도, 자동차에 대한 거라면 묘하게도 늘 잘 잊거든.
후진등만 그러는 게 아니고, 휘발유도 그래요.
휘발유를 떨어뜨린 적이 일년에 몇 번이나 있는지는 부끄러워 이야기도 못할 지경이라고요." "휘발유 표시기가 달려 있을 텐데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계기판 위를 여기저기 두리번거렸다. "아, 그건 예비 탱크의 표시기예요.
나는 그걸로 바뀌었을 때 정확히 1갤런 남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붉은 등이 켜져도 안심을 하거든요." "그게 뭐 나쁩니까?" 도미니크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장단점이 있지요.
먼 거리를 갈 때는 확실히 도움이 돼요 -- 다음 주유소까지 어느 정도의 거리가 되는지는 모르더라도 기름이 떨어지면 예비 탱크의 것을 쓰다가, 처음 나타나는 주유소에서 꼭 탱크를 채우게 되니까.
하지만 쇼핑이나 다른 일로 시내를 돌아다닐 때는 예비 탱크로 전환되고서도 여기저기에 얼마든지 주유소가 있으니까 안심을 해버린다니까요.
그러다가 그만 하이 가(街) 한복판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되거나, 골프장으로 가는 산속에서 서버리곤 하는 거예요.
여러 번 애를 먹고도 버릇을 고치지 못해 나 스스로도 정나미가 떨어진답니다.
그전 차에는 휘발유 표시기가 달려 있었지만, 그때부터 통 그걸 보는 걸 잊곤 해서 표시기 같은 거 있으나마나예요.
정말 그러고도 차를 몰고 다니니......" "하지만 운전은 아주 잘하시는데요." 도미니크는 그녀를 위로했다.
그녀의 자학적인 말투가 굳게 닫혔던 그의 마음의 문을 열었던 것이다. "어머, 정말?" "정말입니다.
운전이 능숙하세요." "어머 -- 그런가? 하여간 듣기 좋으네.
이런 차 좋아하나요?" 차에 관해서라면 그가 좋아하는 화제이기도 했고, 더구나 키티의 차에 관한 이야기여서 그는 갑자기 말수가 늘었다.
그들은 코마퍼드까지 가면서 여러 가지 스포츠 카에 관해서 알고 있는 바를 모두 이야기했다.
마침내 그녀가 그의 집 앞에서 차를 세웠을 때, 그는 눈에 익은 주위의 풍경을 알아보고는 전기에라도 감전된 듯 퍼뜩 제정신이 들었다.
그녀와 지낸 즐겁고 자유스러웠던 얼마 동안의 시간이 마치 한 순간의 꿈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그녀를 다시 만난 작은 기적을 감사해야 했다.
그는 허전한 마음으로 천천히 차에서 내려, 이 굉장한 체험을 시시하게 끝내지 않기 위한 그럴듯한 말을 생각하면서 그녀의 창가에 엉거주춤 섰다. "일부러 바래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오히려 내가 감사를 해야지 -- 그쪽과 함께 드라이브를 할 수 있어서 즐거웠으니까.
그쪽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피도 나누어주고 싶은 기분이 드는걸요." "기분상한 일은 없습니까?" 고작 그런 말이 나왔다.
키티의 옷소매에 붕대의 실오라기가 한 가닥 붙어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손가락 사이에 끼고서 창밖으로 버렸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의미도 없이 웃었다. "아주 좋은 기분.
혹시 나 혈압이 높은 건 아닌지 모르겠네.
피를 뽑으니 아주 개운해졌거든요." 잠시 이야기가 끊어졌다.
엷은 레이스의 커튼이 쳐진 창으로부터 불빛이 새어나와 그녀의 입술 언저리를 비치고 있었다.
눈이나 이마는 어두운 그늘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꼭 다문 입술, 그 양끝으로 야무지게 패인 작은 골, 얼마나 촉촉하고 야무진 입매인가.
그건 아주 똑똑하고, 그러면서도 상처받기 쉬운, 슬픈 그림자가 드리운 입이기도 했다.
그 입매가 천천히 흐트러지며 작별의 미소로 바뀌는 것을 보기만 하고도 도미니크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환희의 핵이 불덩어리처럼 커졌다. "그럼, 조심해 가십시오." "안녕.
다음 헌혈 때 또 만나요." 키티는 쾌활하게 말하고는, 손가락을 눈썹 위에 대고서 손을 흔들려고 한 것인지 고개를 까딱하려고 한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몸짓을 남기고 차를 몰기 시작했다.
그는 숨을 죽이고 눈을 깜빡거리지도 않은 채 차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맥박이 귓속에서 우레처럼 쿵쾅거리고, 치통보다도 예리하고 격한 무엇인가가 가슴속을 치밀고 올라왔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녀가 예고한 것보다도 빨리, 또한 판이한 상황에서 다시 만났다.
그리고 그때 문제가 된 피는 그의 피도, 그녀의 피도 아니었으며 -- 또한 엄청난 양의 피가 흐른 뒤였다.
제 2 장 새로 단장하여 문을 연 앨프리드 아마이저의 술집 '더 졸리 바 메이드'(즐거운 술집 하녀)는 9월말에 개장했다.
그것은 B 거리 곁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코마퍼드에서는 반 마일, 코마번에서는 1마일 이상 떨어져 있었다.
얼핏 보기에 너무 외진 것 같았으나, 돈벌이라면 이름난 수완가인 아마이저의 사업이어서 그가 그 술집을 성공으로 이끌 것이라는 점을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 술집을 누가 경영하게 되는지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 중 몇몇은, 여러 해 전부터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우회도로에 관한 비밀정보를 그가 알아낸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서, 그것이 실현되면 그 새로운 호텔 옆으로 아스팔트 도로가 뚫리게 되는 것이 틀림없다고 수군거렸다.
그가 그 건물을 사들여 자기 밑의 건축업체와 설계사, 실내장식업자를 총동원해서 개축에 손댄 것이 7개월 전이었다.
따라서 개업 축하의 밤에는 그 결과를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군 경찰 범죄 수사과의 부장형사인 조지 펠스는 근무가 끝난 뒤 그런 호기심에서 그곳에 들렀다.
그는 오래 전부터 네모 길쭉한 창이 아름다운 그 낡은 석조건물에 늘 감탄의 눈길을 보내면서도, 그것이 자꾸 퇴락하여 그림의 소재로밖에 쓸모가 없는 비경제적인 폐옥으로 변해 가는 것을 언짢게 생각해 왔었다.
당시에는 늙은 여인 두 명이 살고 있었는데, 옛날의 자매들에게 흔히 있었던 것처럼 얼마 안되는 사이를 두고 자매들이 세상을 뜨고 나서 그 집은 1년 가까이 빈 집으로 방치되어 있었다.
그 뒤 그녀들과 먼 인척관계에 있는 유산 상속자가 그 집을 인수하여 팔기로 했다.
엄청나게 크고, 더구나 낡을 대로 낡은 그 건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과연 살 사람이 있겠느냐는 것이었는데 -- 결국은 살 사람이 나섰다.
군(郡) 내에서는 물론이고, 인근의 여러 개의 군을 무대로 싼 부동산을 사들이기로 유명한 앨프리드 아마이저가 바로 그 사람이었다.
하지만 조지는 새로 만든 찬란한 튜더 왕조식 문을 밀고 홀의 우아한 거울벽과 검은 오크재(材)의 대들보, 조각이 된 긴 나무 의자, 구리빛 유리의 샹들리에 등을 보았을 때까지도 미심쩍은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 개축공사에는 적어도 1만 파운드가 들어갔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마이저는 과연 어떻게 그 자금을 회수하려는 것일까? 이 건물을 통째로 시내 번화가로 옮긴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그것은 아마이저의 그 유별난 수완으로도 바랄 수 없는 일이다.
어쨌거나 비록 오늘밤처럼 손님으로 법석대는 호황이 매일 저녁 계속된다고 해도 -- 그런 요행은 도저히 바랄 수 없는 일이지만 -- 이 술집을 운영하기 위한 비용이 매상을 초과하지는 않을는지.
오늘밤은 확실히 호황을 보이고 있다.
램프에 불이 켜지고, 벽난로에는 장작이 수북이 쌓였다.
예스러운 정취를 살린 왼쪽의 대중 술청에는 주로 코마번의 보헤미안족들이, 그것도 대부분 젊은 층들이 들끓고 있었다.
멋진 턱수염과 모헤어(羊毛) 스웨터가 그 방의 분위기를, 뭐라고 할까, 산양과도 같은 감촉과 퀴퀴한 냄새로 채우고 있었다.
홀의 오른쪽에 있는 두 개의 작은 라운지 바에는 발판이 달리고 비단천으로 싸인 18세기풍의 고급 의자며 보기에도 푹신한 소파가 놓여 있고, 다소 점잖은 축의 군(郡) 내의 젊은이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식당과 살롱 바로 마실 것을 나르기 위해 분주하게 오가는 흰 옷의 보이들의 수를 보건대 상당한 매상이 올라갈 것이 틀림없었다.
보이들의 대부분은 이 부근에서는 보지 못했던 얼굴인 것으로 보아, 아마도 모집되어 온 외부 사람들이 틀림없었다.
눈에 띄는 얼굴 중 조지가 알 만한 사람은 코마번에 있는 화이트 하우스의 베니 영감이 고작이었다.
아마도 이 지방 사정에 정통하다는 것 때문에 고용되었을 것이다.
지방의 유지는 물론, 꼬리표가 붙은 불량배들까지 모조리 알고 있는 사람을 고용한다는 것은 충분히 수지가 맞는 일이리라.
살롱 바의 손님은 이 지방 유지도 아니거니와 보헤미안족도 아닌 잡다한 계층의 남녀들이었다.
이 엄청난 크기의 방은 완전히 개조가 되어, 완벽한 튜더 왕조풍으로 구석구석 꾸며져 있었다.
천장의 통나무 서까래는 유난히 낮게 천정을 떠받치고, 다양한 모양의 구리로 된 샹들리에는 거리낌없는 광채를 내뿜으며 한 줄로 매달려 있었다.
아마이저는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것이 당장에 손에 넣기 어려운 것이라면 특별히 그것을 만들게 했다.
비록 그것이 돈이 들고 황당무계하게 시대착오적인 것이라 해도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이곳의 손님들은 적어도 진솔한 데가 있었다.
대부분은 농부, 장사꾼, 여행자, 노동자 등이며, 개중에는 이러한 술친구들 틈에 끼고 싶어하는 노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조지는 끈기 있게 사람들 틈을 헤집고 들어가 저쪽 바로 가서 맥주를 주문했다.
영국 왕실의 깃털 장식 같은 리본을 머리에 달고 긴 핑크색 손톱을 한 금발의 아가씨가 맥주를 그의 앞에 놓고는, 만들어 붙인 듯한 미소를 띠고서 오늘밤은 아마이저 씨의 특별봉사로서 무엇이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얘기를 생색내듯 말했다.
그래서 아직 초저녁인데도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구나 -- 그는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실 것이 무료라는 말을 듣자, 그는 맥주 한 잔으로 그만두기로 했다.
만일 그가 이런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호기심을 채우는 일을 다른 날 저녁으로 연기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일단 이곳에 발을 들여놓았을 뿐이지만 주위의 광경이 흥미진진한 것만은 틀림없었다.
시의회 의원의 거의 과반수가 이 집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군의 대의원들 모습도 간혹 눈에 띄었다.
아마이저가 살짝 손가락 하나만 까딱거려도 별의별 사람들이 달려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 중 몇 사람이나 진심으로 아마이저를 존경하고 있을까 ? 그가 가장 깊숙한 구석 쪽으로 걸음을 옮겨 가려는데 묵직한 손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것은 놋쇠처럼 단단하고 자신에 차 있으며, 역시 놋쇠가 울리는 듯한 목소리가 귓전에 와닿았다. "오늘 저녁엔 축하를 해주러 온 거요, 아니면 경고를 하러 온 거요?" 호랑이도 제말 하면 나타난다는 건 빈말이 아니다. "천만에요!" 조지는 맥주를 공짜로 마시게 선심을 쓴 당사자를 어깨너머로 뒤돌아보고는 미소를 흘렸다. "비번이라서 잠깐 들러본 것인데, 공짜로 술을 대접받을 줄은 몰랐는걸요.
하여간 축하드립니다." 아마이저는 위스키 잔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는 잔을 번쩍 들더니 한 모금 마셨다.
키는 크지 않아 평균치를 밑돌았고, 어깨가 위로 올라가 있어서 목을 움츠린 듯이 보였고, 큼직한 머리가 앞쪽으로 기우뚱한 것이 그 뚱뚱한 몸집과 함께 황소를 연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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