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두 심문이 동시에 이루어지도록 해놓았는지 조지 자신도 명확한 설명은하기 어려웠다. 억지로라도 말하라면, 아마이저 사건을 둘러싼 다른 용의자에 비해 이 젊은 부부에게 보다 짙은 혐의를 둘 이유는 아직 없었지만, 그에게는 자신의 예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비록 그들에게 거짓이 없다고 해도 그는 그들을 부당하게 다룰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겠습니다만." 그는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당신은 결혼한 다음 시아버지를 만나본 적이 있었습니까?" "아뇨, 한 번도." 그녀는 명백히 말했다. 그 잘라 말하는 투가 그녀의 마음가짐을 그대로 나타내 주고 있었다. "남편께서도?" "예, 남편도 아버지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한 번 편지를 쓴 일 외에는 -- 두 달 가량 전입니다만." "화해를 하기 위해서였나요?" "도움을 청했지요." 진은 내뱉듯 말하고는 입을 꼭 다물었다. "당신의 양해를 얻고 그랬나요?" "아뇨!" 그녀는 스스로의 감정을 구태여 감추려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과장을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돌렸다. "그래, 그 결과는?" "헛일이었어요. 멸시에 찬 말로 도움을 거절했지요." 그녀는 오히려 그렇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는 투였다. 레슬리가 그녀 몰래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함으로써 상처입은 그녀의 날카로운 자존심이 그로써 약간은 위안이 된 것 같았다. "그 뒤로는 아무런 내왕도?" "제가 아는 한은요. 하지만 단언할 수는 없어요." 조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아마이저의 유언장 내용을 알려주었다. 수사 전개상 그럴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어때요,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별로요." 그녀는 조용히 대답했다. "놀랄 게 뭐 있나요? 그분은 재산을 누군가에게 주어야 했고, 그렇다고 해서 버린 아들 외에는 이렇다 할 친척도 없었으니까요." "노리스 양을 유산 상속인으로 한다는 그의 계획을 당신은 전혀 몰랐던 모양이군요." "레슬리의 이름이 유언장에서 완전히 삭제되고,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졌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어요. 그이의 아버지가 그걸 분명히 통고해 왔었으니까요." 그녀는 왼손에 낀 가느다란 결혼반지를 오른쪽 손가락으로 뱅글뱅글 돌리며 말했다. 반지가 헐거워진 것이다. 검은 머리가 맴을 그리며 내리덮인 그녀의 뺨도 어지간히 여윈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임신과 이 가난한 살림살이와, 생계를 돕기 위한 허드렛일 같은 것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서 그럴까? 아니면, 무엇인가 걱정거리가 그녀의 육신을 좀먹고 있기 때문일까 ? 레슬리가 아버지에게 굴욕적인 편지를 썼을 때, 아마도 그는 자신의 힘으로는 벅찬, 무엇인가 중요하고 파괴적인 문제에 맞부딪쳐 있었을 것이다. 냉혹한 아버지 덕택에 그는 역설적으로 아내의 자존심을 더 이상 상하게는 하지 않았지만, 물론 그걸로 문제가 해결되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그것과 씨름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리라. 조지는 그때까지 그녀로부터 신뢰를 한몸에 받고 있었던 레슬리의 마음을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것 말고는 고생을 각오하고 집을 뛰쳐나올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그녀가 이곳에서 비참한 생활을 꾸려나가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 또한 몇 달 뒤에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고는 본의는 아니지만 아버지에게 무릎을 꿇을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 그의 태도는 그녀의 그것보다 한결 이치에 합당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선의의 행동에 그들의 결혼생활을 파멸시킬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협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조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말없이 문 앞까지 그를 따라나왔다. 무엇 하나 물어보려고도 하지 않았고, 덧붙이려고도 하지 않았다. 무엇인가 숨기는 건 없을까? 그는 의심을 해보았다. 필요하다면 그녀는 능히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만일 감추는 것이 있다면 금세 알게 될 것이다...... 계단은 어둡고 좁았으며, 집안에는 페인트 냄새가 감돌고 공기는 싸늘했다. 해크니스 부인의 부자연스러운 고상한 몸가짐도 경찰이 자주 드나들게 되면 오래 갈 것 같지가 않았다 -- 비록 사복을 입고 오더라도 말이다. 조지는 이 집에는 전화선이 가설되어 있지 않다는 것과, 공중전화 박스는 50미터 가량 떨어진 길모퉁이에 있다는 것도 눈여겨 두었다. 그는 일단 반대쪽으로 차를 달렸다가, 다음 골목에서 왼쪽으로 꼬부라져 한 바퀴 빙 돌아서는, 빨간 전화 박스가 보이는 가로수 그늘에 차를 멈추고 그쪽을 지켜보았다. 10분, 20분, 25분......그러나 진 아마이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에게 호감을 갖고, 그녀가 정직하기를 마음속으로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에 그는 몇 번인가 쓴 맛을 보기는 했지만, 그런데도 자신에게 좋은 인상을 준 사람들의 동기나 행동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를 경계할 마음은 내키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할 일은 다했다. 지금쯤 본서에 돌아와 그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그로코트 형사에게 전화를 걸기까지는 그녀를 완전히 믿지는 말아야 한다. 그 전화는 진이 정직하고 그녀의 증언이 믿을 만하다는 인상을 확실하게 굳혀 주었다. 듀크 가(街)의 큰 점포 뒤쪽에 있는, 먼지가 푹석거리는 창고에서 은밀히 불려나와 심문을 받은 레슬리 청년의 증언은 모든 점에서 아내와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편지를 우체통에 넣은 그는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공원을 잠시 서성거렸다. 하지만 집에 돌아왔을 때 교회의 시계가 아직 10시를 치지 않았으므로, 30분 가량밖에 나가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극히 설득력있는 이야기였을 뿐만 아니라 레슬리와 아내 사이에 이야기를 맞출 시간도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결과가 나오고 보니 조지는 오히려 좀더 의심해 보고 싶어졌다. 의심을 하자면 그럴 만한 여지가 있었다. 진이 신문을 보고 사건을 알았다고 경솔하게 말한 것처럼, 그날 낮 신문에는 데이켓 총경의 간추린 공식발표가 실려 있었다. 그것은 어젯밤 '즐거운 술집 하녀' 구내에서 아마이저가 머리에 상처를 입고 죽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는 간단한 내용으로, 데이켓 총경은 그것이 살인사건이라는 규정은 내리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럴 것이라는 암시는 충분했다. 따라서 의절당한 아들과 그의 성실한 아내는 신문을 보고 놀라는 것과 동시에 죄가 있든 없든, 지난밤의 자기들의 거동에 대한 심문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 자기들의 알리바이를 증명할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경찰조사를 받기전에 서둘러 말을 맞추어, 둘의 증언이 일치하도록 했다 -- 이런 추리도 가능한 것이다. 신문의 초판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간에서부터 조지가 진을 방문한 2시 반까지, 두 사람이 전화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충분했다. 조지는 그런 의혹을 몰아낼 만한 반증을 찾아보았지만 이렇다 할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진만큼 영리한 여자라면, 남편과 짜고 이야기를 사전에 맞추어 두는 것은 쉬운 일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여겨졌다. "레슬리의 태도는 어떻던가?" "별로 수상쩍은 면은 없었습니다. 물론 상당히 놀라는 기색이긴 했습니다만, 부자간의 사이가 남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쁘지는 않았다는 듯이 일부러 슬퍼하는 수작도 부리지 않더군요. 정말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을 겁니다 -- 대단히 내성적이고 입이 무거운 청년이라서." "겁을 먹고 있는 것 같지는 않던가?" "그렇게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세상의 달갑잖은 관심의 표적이 되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는 것 같더군요. 어쨌거나 그는 똑똑한 사람이어서 그가 아버지를 살해하더라도 얻는 것이 없다는 점이 자신에게 유리한 카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자네가 그런 말을 비쳤나?" "아뇨. 선배님은 그를 과소평가하시는 것 같군요." 그로코트는 피식 웃었다. "그는 우리가 이미 그 점을 익히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단지, 형세가 조금이라도 불리해지면 그 카드 뒤로 몸을 사리겠다는 기색을 엿볼 수는 있었지만 말입니다." "그가 일하고 있는 점포의 창고 담당자나 운전사들과의 사이는 어떤 것 같던가?" 조지는 캐물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고등교육을 받은 젊은이를 백안시하고, 특히 그 이단자가 자기들을 멀리하는 태도를 취하면 사소한 일로도 으르렁거리기 마련이다. "그게 뜻밖에도 원만합니다. 동료들은 그를 레스라는 애칭으로 부르는데, 모두가 그를 좋아하는 눈치가 뚜렷합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그들은 그에게 극히 동정적이었습니다. 아마도 그가 진실한 성격이기 때문일 겁니다. 동료들과 친해지려고 일부러 그들의 말투를 흉내내거나 하면 오히려 더 역겨워할 텐데......어떤 의미에서 그는 그만큼 똑똑한 거죠. 긍지가 높다고도 할 수 있지만, 여하튼 원만한 편입니다." 심증은 좋은 쪽으로 기운다고 생각하며 조지는 차를 세워 놓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레슬리 아마이저를 무혐의로 단정할 수는 없었다. 금전만을 살인의 동기로 생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자 상속인이 된 키티의 경우는 이미 상당한 재산을 지니고 있어, 돈 때문에 사람을 해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한편, 이 젊은 부부는 돈에 궁한 것은 확실하지만 아마이저의 죽음으로 무엇 하나 얻는 것이 없다. 오히려 아마이저가 살아 있다면 언젠가는 그 완고한 마음이 풀려 그들을 받아들일지도 모르므로, 그는 그들에게 상당한 잠재적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물며 손자라도 태어나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아마이저는 결코 태도를 바꾸는 법이 없는 인간이었다고 하는,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비록 아무런 소득이 없더라도, 격렬한 증오심이나 복수심으로 인한 발작적인 충동에 휩쓸려서 순간적인 살의로 사람을 해칠 수도 있다는 일반적인 사실도. 생각해 보면 아마이저에 대해 적의를 품고 있는 사람은 그 자신의 아들 외에 또 있다. 운전사 제복을 입고 있는 전과자 클레이턴은 쫓아내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더구나 그는 클레이턴에게 창피를 주고, 직업을 갖게 해준 것만도 감지덕지하게 생각하라고 윽박질렀다고 한다. 그건 그냥 지나가는 소리로 한 말이었을까? 아니면, 아마이저는 클레이턴의 태도 여하에 따라 중부 어느 군에서도 일자리를 얻지 못하도록 조치를 할 셈이었을까? 세상에는 그보다 더 하찮은 일로 살인을 하는 사람도 있다. 아들에 대한 아마이저의 앙갚음 때문에 탐내던 집을 손에 넣지 못한 버니 윌슨도 같은 경우이다. 오히려 그의 경우는 그 앙갚음이 직접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것보다 한층 더 그의 감정을 상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 밖에도 아마이저 때문에 사업을 망친 사람이나, 그에게 이용당하여 큰 손해를 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차 속에 막연히 앉아, 대책없이 수사범위가 광대하다는 것을 한탄해 봤자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조지는 머리를 흔들어 망상을 떨쳐 버리고 차를 달려 아마이저 에일의 본사로 갔다. 콘크리트와 크롬으로 된 그 빌딩은 강가의 깍아지른 언덕 위에 있었고, 공장은 철로 저쪽에 있었다. 공장은 오래 된 코마번 거리의 매연으로 찌들어 있었지만, 본사는 넓은 잔디밭에다가 아름다운 수목이 창가를 덮고, 테니스 코트에 현대적인 주차장까지 갖추고 있었다. 주차장에는 호화로운 새 차가 즐비했다. 그중에서 낡은 것이라고는 해밀턴 양의 라일리 정도여서, 그 위엄있는 겉모양과 광대한 규모가 한결 두드러져 보였다. 그녀는 운전에 능숙했다. 조지는 가끔 그녀가 핸들을 잡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녀의 여유 있으면서도 빈틈없는 운전 솜씨에 감탄하곤 했던 것이다. 여름철 주말에는 열댓 살 안팎의 소년을 서너 명 태우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소년원의 신입생들인데, 그녀는 거기에서 보호감찰의 일을 돕고 있는 것이다. 낡은 라일리를 소중히 다루는 그녀의 심성이, 과거 여러 해에 걸쳐 여러 건의 소년들의 잠재적인 비행을 사전에 막았다고 할 수 있다. 조지가 정면 현관의 홀로 들어섰을 때 막 나오던 레이몬드 셸레이를 우연히 만났다. 셸레이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며 말을 걸어 왔다. "나에게 볼일이 있으신 모양이군요. 잠깐 외출할 일이 있었습니다만, 당신의 용무를 끝낸 다음으로 하겠습니다." 그는 가방을 옆에 끼고, 은빛이 도는 회색 모자를 손에 들고 있었다. 길쭉한 얼굴에 윤곽이 뚜렷한 생김새였으나 피로의 기색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볼을 두서너 번 신경질적으로 씰룩거렸지만, 몸가짐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고, 귀족적인 관대함도 그대로였다. "오늘 아침 경찰관이 한 분 찾아왔기에 오늘은 더 이상 별일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요 -- 지금 막 노리스 양을 만나러 가려던 참이었습니다만 상관없습니다. 전화로 좀 늦겠다고 해두지요." "아닙니다. 나는 해밀턴 양에게 할 이야기가 있어서 찾아온 겁니다. 상관 말고 가보도록 하십시오." "아, 그렇습니까? 그럼, 그렇게 하지요. 아무튼 모처럼 오셨으니 루스 양의 방까지 안내해 드리지요." 그는 광택을 낸 난간에 가느다란 손가락을 올려놓으며 계단을 앞장서 올라갔다. "우리들에 대한 조사는 대충 끝난 게 아닌지요?" 그는 일그러진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당신이 어젯밤 해밀턴 양과 함께 그 가게를 나오는 것을 우연이지만 나 자신도 목격했는걸요." 조지는 미소를 돌려보내며 말했다. "나는 그때 홀에 있었지 뭡니까." "그거 다행이군요. 덕분에 우리의 입장은 대단히 유리하게 됐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하튼 빨리 해결이 되어야 할 텐데." 그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정말 반갑지 않은 사건입니다." "그야......더구나 살인사건이니......" 그 말에 셸레이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역시 살인사건이 분명하군요. 신문발표는 거기에 대해 모호했고, 오늘 아침에 온 경찰은 입이 무거워 이렇다 할 언급이 없었거든요." 그는 다시 계단을 올라가, 2층의 넓은 복도를 오른쪽으로 구부러졌다. "하지만 모든 점으로 판단해서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니 나로서는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처음에는 뭐가 뭔지 갈피를 잡기 어려웠습니다만, 차차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 보게 되었지요 -- 하지만 웬지 꿈이라도 꾸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아마이저 씨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그 기분 이해가 갑니다. 당신은 오래 전부터 아마이저 씨와 함께 일을 해왔으니까요. 당신과 해밀턴 양은 누구보다도 그를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만큼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은 더하겠지요." "그야 -- " 그는 막연히 대답을 얼버무렸을 뿐, 자기의 느낌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비록 그렇게 했다 하더라도 앨프리드 아마이저가 생전에 남긴 깊은 도랑에 새삼스럽게 놀라는 결과로 끝났을 것이다. 그는 비서실의 문을 가볍게 노크하고서 얼굴을 방안으로 들이밀며, "손님이 오셨어, 루스." 하고 말하고, 조지를 방안으로 들어가게 한 다음 그 자리를 떠났다. 그녀는 책상 뒤에서 조용히 일어섰다. 호리호리한 몸매를 검은 사무복으로 감싸고 있었다. 그 옷은 뜻하지 않게 상복과 같은 구실을 하고 있었다. 윤기가 도는 암갈색의 머리를 뒤로 묶고 있었다. 그녀는 20년 동안이나 아마이저를 섬겨 왔다. 그와 그의 가족에 관해 그녀는 속속들이 모르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극히 관대해지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그녀의 차분한 몸가짐은 평소와 다름없이 훌륭했지만, 얼굴은 심한 충격으로 굳은 표정을 띠고 있었다. 조지를 알아보고는 아름답고 검은 눈썹을 약간 찌푸리는 것 같았지만 상냥하게 그를 맞이하며, 하고 있던 일을 중단한다는 것을 명백히 드러내면서 책상을 떠나 조지 앞에 앉았다. "실은 아마이저의 집안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당신에게 몇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조지는 솔직히 말문을 열었다. "아마이저 씨의 신변에 관계되는 일이 이 사건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내가 말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이해가 가실 겁니다. 그래서 아마이저 씨와 그 아들에 관하여 공평한 입장에 있는 당신의 시각에서 부자간의 갈등의 내력과, 거기에 얽힌 여러 가지 사실을 상세하게 이야기해 주면 고맙겠습니다." 그녀는 뚜껑이 열린 담배 상자와 무거운 유리 재떨이를 두 사람의 중간에 옮겨놓고 나서, 질문에 답하기 전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사이에 조지는 그녀의 차분한 취향에 맞게 꾸며진 방안을 조용히 관찰했다. 명쾌한 글씨체로 된 문자판과 깔끔한 디자인의 검은 벽시계는 한눈에도 그녀의 취향을 잘 나타내 주고 있었고, 우아한 책상의 꾸밈새도 그녀의 주문이었을 것이다. 벽에 걸린 큰 액자 속의 사진 두 장과 책상 위에 세워놓은 작은 사진틀 속의 것은 모두가 소년원의 아이들을 찍은 것이다. 그 중 두 장은 그녀 자신이 여름 캠프에서 촬영한 것 같았고, 책상 위의 것은 소년원에서 개최된 파티의 사진으로, 그녀는 소년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자못 즐거워 보이는 그녀는 굳건한 품위를 갖추고는 있었지만, 반할 정도로 아름답고 또한 여성적이어서, 열댓 살 사춘기 소년들은 그녀의 담배에 불을 붙여 주거나, 그녀에게 안겨 춤을 출 때는 180cm나 키가 커진 느낌이 들 것 같았다. 유능한 여성이 20년간 이 사무실에 묻혀 지내온 것을 조지는 애석하게 생각했다. 한 다스나 아이를 낳아서는 돌보지 않는 부랑자의 가정에서 쓸어낸 못된 아이들을 주워다 돌보는 것보다, 그녀는 유망한 자신의 아이를 두서넛 낳아 양육해야 했었던 것은 아닐지. "두 분 모두에게 잘못은 있었습니다만 -- " 그녀는 생각을 지나치게 했는지 진부한 말을 불쑥 입 밖에 냈다가, 곧 그 명확치 못한 내용을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책임은 모두 아마이저 씨 자신에게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이저 씨는 사장으로서나 아버지로서 대단히 다루기 어려운 분이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제가 말씀드릴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분은 고집을 세운다기보다는, 천성이 남의 의견을 받아들일 줄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만사에 남들이 자기를 중심으로, 자기가 뜻하는 바대로 움직이는 것으로 믿었지요. 레슬리는 어릴 때부터 그런 아버지의 성격에 심한 영향을 받았어요. 하지만 아버지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한,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어릴 때는 이렇다 할 충돌은 없었습니다. 그림이라든가 그밖의 여러 가지 재능은 단지 아버지를 기쁘게 해주는 것일 뿐, 문젯거리가 되지는 않았지요. 그러던 중에 부인이 건강이 나빠져 자리에 눕게 되자, 저는 그 댁 사람들의 부탁으로 그 집으로 거처를 옮겼지요. 그 무렵에는 아직 본사 건물이 세워지기 전이어서 거의 모든 사무는 집에서 보았어요. 저는 그 집에서 기거하는 몇 년 동안 부자 관계가 원만해지도록 할 수 있는 한 노력을 했습니다만, 그때는 이미 레슬리를 다독거리기에는 시기가 늦었을 뿐 아니라 마음의 고랑도 상당히 깊어진 뒤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레슬리가 성장하고 스스로의 생활을 추구하게 되자 충돌이 시작되었습니다. 부자 관계가 파국에 이를 때까지 4~5년 동안 그들은 몇 번이고 돌발적인 충돌을 거듭했는데, 처음에는 아마이저 씨가 아들을 누를 수가 있었지요. 모든 힘이 아마이저 씨 손아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의 내용이 차차 중대해지면서 그렇게 만만치만은 않게 돌아갔습니다. 레슬리는 그림을 잘 그려서 그 길로 나가려고 발버둥쳤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걸 허락치 않고 막무가내로 회사에 끌어넣었습니다. 아마이저 씨는 누구든지 자기의 의도대로 따르게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즉, 레슬리를 키티 노리스와 결혼시켜 지금의 회사보다도 더 큰 규모의 맥주회사로 육성하는 것이 목표였던 거지요. 그런데 레슬리의 화가 지망을 둘러싼 갈등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그는 진을 알게 되었고, 더욱 격심한 갈등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는 이 회사에서 진을 알게 됐다면서요?" "그래요. 그들은 자유롭게 교제를 시작했고, 누구의 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곧 그 사실이 아마이저 씨의 귀에 들어가게 됐고, 아마이저 씨는 불같이 화를 냈지요. 그래서 서슬이 시퍼렇게 레슬리를 야단치고, 다시는 진을 만나서는 안되며, 만일 명령을 어기면 레슬리에 대한 장래의 법적인 권리를 일체 박탈하겠다고 한 겁니다. 저는 아마이저 씨가 진정으로 그런 것이 아니고, 다만 레슬리를 굴복시키기 위한 위협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아마이저 씨는 실제로 그것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는 완전히 갈라지고 만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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