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즐거운 여자 - 엘리스 피터스 - 8편 (8/23)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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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즐거운 여자 - 엘리스 피터스 - 8편 (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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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리가 잘못했다고 순순히 무릎을 꿇었다면 그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텐데, 그는 결연히 집을 뛰쳐나가 진을 데리고 가서 그 길로 그녀와 결혼을 해버린 겁니다." "만일 그가 단순히 아버지에 대한 반항의 수단으로써 그렇게 했다면, 무모한 결혼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조지가 말했다.
그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렇지는 않습니다.
레슬리는 아버지에게서 부당한 압력을 받음으로써, 문제의 소재와 그 중요성을 똑똑히 파악한 거지요.
똑똑한 청년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자기에게 미치는 화가 아무리 큰 것이라 해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겁니다.
그는 그 이튿날 이 회사 사장실로 성큼성큼 걸어들어와 책상 앞에 꼿꼿이 서서 결혼했다는 폭탄선언을 아버지에게 내던졌습니다.
아마도 그가 그때까지 당한 속박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그 길밖에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한편, 아마이저 씨는 그때까지도 자기의 명령 하나로 그런 결혼은 쉽게 깨뜨릴 수 있을 것으로 마음을 놓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그런 방심이 완전히 빗나간 것을 알고 아마도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레슬리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아버지의 명령에 따를 수 없다고 말했던 거예요.
그 순간 아마이저 씨는 마치 자기의 귀를 의심하는 표정으로 멍하니 레슬리를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곧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자, 벌컥 화를 내며 이렇게 호통쳤습니다.
좋다.
그렇게 그 여자가 소중하다면 당장 데리고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그 말에 레슬리는 각오했다는 듯이 계단을 달려 내려가 진의 팔을 잡고 나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잠시 동안 그녀는 자기의 하숙집에 머물고, 레슬리는 호텔에 묵으면서 결혼해서 살 집을 물색했습니다.
레슬리는 자기의 소지품을 가지러 꼭 한 번 집에 갔었습니다만, 제가 아는 한 다시는 아마이저 씨를 만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간신히 셋방을 얻기는 했지만, 다음에는 일자리가 문제였습니다 -- 자격증이나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죠.
그가 옥스퍼드에서 공부한 거라고는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었으니까.
결국 그는 육체노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고비만 잘 넘긴다면 앞으로 어떤 고난에도 대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돼요." "그래, 아마이저 씨는 그 뒤 아들을 용서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나요?" 조지가 물었다. "네.
아마이저 씨의 명령을 무시한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모독이었던 것이지요.
그분이 아흔 살이 넘은 할아버지라도 된다면 정에 약해져서 화해를 할지는 모르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그때 아무도 아마이저 씨를 설득하려 하지 않았던가요, 해밀턴 양?" 그녀는 그 질문에 일그러진 미소를 보였다.
아무도라는 말에 그녀도 포함된다는 것을 민감하게 알아차린 것이다. "설득이야 했지요.
레이 셸레이는 몇 주 동안이나 그 일로 골치를 썩혔고, 키티 노리스도 열심히 설득을 했습니다.
그녀는 마치 자기에게 책임이 있는 것처럼 몹시 안타까워했어요.
하지만 저는 가만히 일이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았을 뿐입니다.
혹시 아마이저 씨가 아들을 용서할 마음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한 가닥 희망에서였지요.
만일 그렇다면 섣불리 설득을 하는 것이 오히려 그분의 고집만 북돋우는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두 달 전쯤에 레슬리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를 본 적은 없습니까?" 조지가 질문의 방향을 돌렸다.
아름답게 균형이 잡힌 검은 눈이 그의 기색을 살폈다. "레슬리가 당신에게 그런 말을 털어놓던가요?" "아닙니다.
레슬리의 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나는 아직 레슬리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조용하게 목소리를 가다듬어 대답했다. "네, 읽었습니다.
당신도 그 내용을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조금도 비굴한 구석이라고는 없었지요.
그런 식으로 헤어진 아버지에게 편지를 쓴다는 것은 일종의 항복일 수도 있겠지만, 그 편지는 당당했습니다.
진이 임신을 했고, 레슬리는 아버지로서 져야 할 책임을 다할 수 있을지 상당히 불안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마이저 씨에게 그들이 집을 가질 수 있게 내버려두라는 요구를 했던 것입니다 -- 아마이저 씨가 그들이 기대를 걸었던 집을 가로채 버렸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말씀드리면 알아들으실지 모르겠네요." "네, 그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게속하시지요." "아마이저 씨는 자기 아들의 요구에 대하여 마치 장사꾼의 편지처럼 냉담하고 경멸에 찬 답장을 보냈습니다.
일단 부자지간의 인연은 끊어진 것이니까, 레슬리의 가정적인 문제는 독자적인 책임 아래 있으며, 자기가 관여할 바가 아니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화해 같은 건 생각지도 말라는 의도가 명백한 문장이었지요.
더구나 아마이저 씨는 레슬리가 그 별채를 탐내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만일 그 집에 그렇게 흥미가 있다면 그 집을 사고 난 뒤에 생긴 기념품을 하나 보내주마 -- 단, 그건 마지막 선물이라고 -- 화가 지망인 너에게는 제격인 선물이지, 하고......그 선물이라는 것은 그 집이 선술집이었을 때의 낡은 간판입니다." "'즐거운 여자'라는 거 말입니까?" "어머, 그런 상호였던가요? 전 거기까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 그리고 보니 이해가 가는군요.
아마이저 씨가 그것을 이리로 가져와서 아래층에서 포장할 때 얼핏 보았는데, 웃고 있는 여자의 상반신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 집 다락방에 있었다는데, 두꺼운 판자가 먼지투성이더군요.
아마이저 씨는 답장을 보낸 이튿날, 회사 차에 그것을 실려 레슬리의 셋방으로 보냈습니다." 진은 아마이저의 그 냉혹한 편지에 대해 잠깐 비쳤을 뿐, 그 선물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것은 뭐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선물은 그들에 대한 모욕임과 동시에 편지의 내용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 너희들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물론이고 죽고 난 뒤라 하더라도 이것밖에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 그리고 그 '즐거운 여자'의 집에서 너희들 손에 들어갈 것이라고는 그전에도 그 뒤에도 이것이 전부일 것이다.
그러니 신주단지 모시듯 하라 -- 고. "레슬리는 그 뒤 다시는 편지를 쓰지 않았다는 거군요.
전화도?" "네, 제가 아는 한은 전혀.
만일 그 뒤에 편지나 전화를 걸었다면 대개는 제가 알게 되었을 겁니다." 역시 그렇군 -- 조지는 어떤 가능성이 차츰 흐려져 가는 것을 느꼈다.
왜냐하면 비록 레슬리가 만나자고 했다 해도 아마이저가 쾌히 그것을 승낙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고, 가령 그가 아들을 만날 생각이 들었다고 해도 기분이 좋아서 샴페인을 대접하거나 개조된 댄스 홀을 구경시키는 둥, 환대를 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각도를 달리해서 생각하면 그것은 짓궂은 아마이저다운 행동일 수도 있다.
돈이 탄생시킨 기적을 레슬리에게 자랑함으로써 상처에 소금을 문지르듯 그를 괴롭히는 수법이 그것이다.
직접적으로 화를 내는 대신 그러한 음성적이고 야만적인 잔혹행위는 승리와 성공에 도취된 밤의 행사로서 어쩌면 아마이저가 해볼 만한 일이기도 한 것이다. '돈과 야망이 풍부하면 그 별채를 얼마만큼 훌륭하게 개조할 수 있는지 놈에게 실컷 보여줄 테다' -- 더구나 아마이저는 그런 비슷한 소리를 하며 크게 웃었다고 하지 않던가. "해밀턴 양, 혹시 최근의 레슬리 사진을 갖고 있는 것 없습니까?" 조지는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것이 과연 어떤 좋은 목적을 위해 필요한 건지, 만일 그것을 거절한다면 불가피한 사태의 발생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는 것인지를 신중히 저울질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그녀는 아무 말없이 책상 뒤쪽으로 가서 서랍을 열고 명함 크기의 인물사진 한 장을 꺼내어, 입가에 굳은 미소를 지으며 그걸 조지에게 건네주었다.
그 사진은 상당히 오랫동안 틀에 넣어져 있었는지, 흰 배경이 햇빛에 다소 변색이 되고, 모서리만이 반 인치 가량 원래의 흰색으로 남아 있었다.
더구나 그것은 두 조각으로 찢겼던 것을 풀과 셀로판 테이프로 정성들여 붙인 흔적이 역력했다.
그 찢긴 부분은 민첩하고 어딘가 무뚝뚝해 보이는 청년의 머리 부분에 칼자국처럼 흔적을 남겨 놓았다.
조지는 사진으로부터 시선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살며시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아마이저 씨의 쓰레기통에서 주워 붙여둔 겁니다.
왜 그랬는지 저 자신도 잘 모르겠습니다.
레슬리와 저는 특별히 친한 사이도 아니고 -- 하지만 저는 그가 어릴 때부터 곁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모습이 담긴 마지막 물건이 그런 식으로 버려지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말씀드린다면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이 가실 거예요." 그녀는 곧 말을 이었다. "이건 2년 전의 사진인데, 아마이저 씨가 사무실에 갖고 있었던 것은 이것뿐입니다.
하지만 집에는 남아 있는 사진이 없을 거예요." 조지도 그러리라고 생각했다.
레슬리는 어릴 때부터 많은 사진을 찍혔을 것이다.
귀여운 유아시절, 아장아장 걷던 눈이 큰 아기, 진지한 얼굴의 국민학생, 열의가 대단한 스포츠맨, 수줍음을 잘 타는 청년 -- 그 많은 레슬리의 사진이 아마이저 씨의 벽난로 속에서 몇 시간이고 푸른 연기를 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곧 이걸 돌려 드리려 찾아오겠습니다." 조지는 그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밖으로 나와서 차로 돌아가는 동안에도 사진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레슬리 아마이저는 아버지와 닮은 데가 하나도 없었다.
키가 훨씬 크고 몸집이 날씬해서 군살이 없다.
아버지에 비해 한결 밝은 색깔의 머리가 넓은 이마에 알맞게 곱슬거리고, 눈은 기백에 넘치는 청년의 야성적인 빛을 담고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덜 익은 애송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누구라도 그의 얼굴을 보면, 그가 아버지의 의도를 배반하고 정면으로 도전할 만한 적수가 못 된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 분명했다.
그의 사진은 대부분 재가 되었겠지만, 청년 레슬리는 현재 살아있다 -- 투우는 땅을 박차고 최후의 돌격을 감행한 것이다.
4시 정각에 도미니크는 버스 정류장에 가기 위해 힐 가(街)를 걸어가고 있었다.
도중에 경찰서 앞을 지나가게 되므로, 자전거를 타지 않고 학교에 가는 날에는 그곳에 들러보는 것이 그의 습관이었다.
아버지가 근무를 끝내고 퇴근할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한 가닥 희망을 걸고 말이다.
때로는 행운을 잡을 때도 있었다.
그날 길가에서 아들을 만나게 된 조지는 일단 본서에 들러 보고서를 제출하고 함께 집에 가기로 했다. "도중에 잠시 들를 곳이 있으니, 잠시 기다리거라.
별로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게다." "그걸로 오늘의 일은 끝나나요?" 도미니크의 불안한 시선이 아버지의 기색을 살펴 그 마음속의 움직임을 읽으려고 했다.
만일 어떤 확증을 잡은 거라면 -- 즉, 키티가 완전히 사건의 권외에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는지?-- 물론 곧이곧대로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들은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가장인 조지의 일에 관한 가족 사이의 규범을 만들고, 신성한 그 불문율에 의해 엄한 규제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는 오늘도 이미 한 번 그것을 범할 뻔했다가 주의를 받은 참이었다.
그것은 '묻지 말라'는 규범이었다.
만일 자발적으로 정보를 알려준 경우에는 그것을 들을 수 있고, 협력을 요청받는다면 의견을 말하는 것은 허용되지만, 질문은 일체 금지되어 있었다.
그리고 어떤 사건의 수사에 관련된 사항은 고해와 마찬가지로 신성한 것이어서, 그것에 관해 침묵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도미니크는 초조감을 억누르고 순순히 기다렸다.
가슴이 설레었다. "아니, 그건 알 수 없구나.
여기서 어떤 결과가 얻어지느냐에 달렸지." 조지는 '즐거운 술집 하녀'의 텅 빈 주차장으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 "어쨌든 만나보아야 할 상대가 이곳에 있다면, 결과야 어떻든 5분 내에 끝날 거다." 하지만 실제로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터너는 커튼을 내린 대중 술청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물고는 경마의 성적표를 살펴보는 데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레슬리 아마이저의 사진을 보이자 단번에 알아보았다. "어, 이 사람입니다.
아마이저 씨를 만나러 온 그 젊은 친구는 틀림없는 이 사람입니다.
아마이저 씨가 나올 때까지는 현관의 돌계단 위에 서 있었는데, 처음 걸어 들어올 때 밝은 곳에서 그 사람을 보았었습니다.
물론 복장은 다르지만, 틀림없는 이 청년입니다.
지금 본다고 해도 알 수 있습니다." "맹세할 수 있나?" "네, 언제든 증인이 되지요, 형사님.
그 사람은 대충 5분 전 10시쯤에 왔는데, 아마이저 씨는 그를 만나러 밖으로 나오셨던 겁니다.
내가 두 사람을 본 것은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좋아, 고맙네.
그 정도면 충분해." 조지는 사진을 주머니에 집어넣고서 씁쓸한 생각을 십어삼키며 차로 돌아왔다.
10시에는 집에 돌아와 있었다고? 그렇다면 자네는 어떻게 같은 시각에 두 장소에 있을 수 있는가?-- 늘 나를 당황케 하는 문제를 풀어줄 수 있느냐 이거야.
자, 그 비결을 알려주겠나 ? 제 6 장 레슬리 아마이저는 능란한 거짓말쟁이가 못 되었다.
사진에서 시선을 들어 다시 조지의 얼굴을 올려다보는 그의 눈에는 공포와 함께, 그것과 거의 같은 만큼의 안도의 빛이 감돌았다.
진은 그의 곁으로 다가와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그녀를 감싸듯이 어깨에 손을 두르려 했지만, 곧 그 손을 내려놓았다.
그녀를 꽉 껴안아 주려고 했지만, 조지가 거기에 있다는 사실과 궁지에 몰린 자신의 번민, 또는 그녀의 차가운 태도 중 어떤 것이 그 충동을 가로막았던 것이다. "이렇게 된 바에야 모든 것을 있었던 그대로 털어놓는 것이 좋을 걸세." 조지는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겠지? 부인,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될 때까지 숨기지 않고 처음부터 정직하게 이야기를 했어야 했습니다." "잠깐!" 레슬리의 코끝이 신경질적으로 경련했다. "진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아내는 시간 감각이 둔한 사람입니다.
그냥 막연히 내가 10시쯤 돌아온 것으로 생각했을 뿐이지요." "그런데도 시간과 상세한 이야기 줄거리까지 딱 들어맞는 것은 어찌된 일이지? 미리 사전에 둘이서 이야기를 맞추어 두었다는 것은 뻔한 일이 아닌가?" "아니, 그건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건 진이 잘못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러면 자네는 부인을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가 않아 일부러 부인의 증언에 말을 맞추었다는 건가? 그런 속 들여다보이는 소리는 하지 말게.
자네는 부인과 1마일이나 떨어진 곳에서 증언을 했다는 것을 잊었는가? 제기랄, 자네의 말을 들을수록 자네를 교수형에 처하고 싶어지는걸." "아아, 난 왜 이렇게 이야기가 서투를까!" 레슬리는 절망적인 표정이 되어 의자에 몸을 내던졌다. "아냐, 나는 오히려 자네가 그걸 깨달아 준 것만도 고맙네.
자, 그럼, 우리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어 보세.
정직하게 말해 줘야 하네." 진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뒤로 물러서며, "저는 커피를 끓여 오지요." 하고 조용히 말하고, 임시로 만든 그 모양뿐인 부엌 쪽으로 갔다.
하지만 조지는 그녀가 문을 조금 열어놓은 채로 나가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가 내심 남편에 대해서 어떤 불만을 품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만일 이 형사가 남편을 고문이라도 하다시피 해서 불리한 자백을 얻어내려 한다면 곧장 달려올 것이 틀림없다. "자, 이번에는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 주게.
자네가 실제로 집에 돌아온 시간은 몇 시였지?" "11시 10분경으로 생각합니다." 레슬리는 힘이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분명히 그 술집에 가서 아버지를 불러냈지만, 진은 그런 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건 정말입니다.
진은 단지 시간적으로 40분 가량의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고 적당히 얼버무렸을 겁니다.
내가 어디를 다녀왔는지, 그녀에게는 일언반구 말을 해주지 않았으니까요." 조지는 쉽게 그 말을 믿을 수가 있었다.
이 젊은 부부가 서로 주고받은 시선 속에도, 그리고 서로 거북해 하고 주저하는 행동에서도 그것이 엿보였다.
그들은 서로가 멀리 떨어져 버린 것을 깨닫고, 또한 그 거리가 엄청나다는 것에 겁을 먹은 것 같았다.
대가 센 진은 지금 문 저쪽에서 귀를 세우고, 아마도 남편으로 선택한 남자에 대한 회의에 마음을 졸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과연 그는 인생의 고난을 견뎌낼 용기가 있을 것인가......조금 전에 알게 된,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었다는 저주스러운 그 사실은 어떤 유전적인 결함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그들은 지금까지 이미 몇 번이나 심하게 다투고,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주었을 것이라고 조지는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그들의 공동의 적이며, 그들은 그에게 대항하기 위해 긴밀한 동맹을 맺고 있는 것이다.
억지로 말을 만들어 하자면, 그는 그들을 결속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부인에게 그걸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되는걸.
다른 사람을 통하는 것보다 자네 자신에게서 듣는 것이 확실하고, 또 부인으로서도 모르는 것보다는 마음이 편할 테니까." "아, 그것도 그렇군요." 그는 어정쩡하게 대답을 했다.
어떤 길로 발을 들여놓을지 망설여진다는 투였다.
하지만 그는 곧 그들 부부 자신의 문제에 대해 설교를 당한 수치를 깨물어 십으며 말문을 열었다. "실은 편지를 부치러 나갔다가 곧장 그 술집으로 가서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아버지가 나올 때까지 현관에서 기다린 거죠.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만나지 않아서 -- 연락을 부탁한 보이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습니다 -- 오늘 아침에서야 이 사건을 알고는, 나만 잠자코 있으면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생각이었습니다만, 어쨌거나 진이 나를 감싸 주려 했다고 해서 진을 추궁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네 부인에게 혐의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닐세.
그래, 왜 아버지에게 만나자고 했지? 또 도움을 청하려고?" "천만에요." 레슬리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것에는 질린 지 오래입니다.
나는 아버지가 내게서 훔쳐간 것을 되찾으러 갔었던 겁니다.
만일 그것을 되찾을 수 없는 경우에는 최소한 화풀이라도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그제야 엔진이 걸려 달릴 채비가 된 것 같았다.
조지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한마디의 의견도 꺼내지 않고 묵묵히 귀를 기울였다.
레슬리는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는 편지를 썼던 일, 거기에 대한 대답, 레슬리의 패배와 아버지의 전리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냉혹하고 모욕적인 낡은 간판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물론 조지는 그 이야기를 두 번째로 듣는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약 2주일 전,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버지가 갑자기 변덕을 부린 겁니다.
어느날 밤 내가 집에 돌아오고 얼마 안 있어 레이 셸레이 영감님이 기쁜 소식을 갖고 흐뭇한 표정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분은 그 동안의 가정불화 중에도 나를 위해 여러 가지로 애쓴, 나에게 잘 대해 주시는 노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말을 전하면 분명히 내가 기뻐할 거라고 생각하고 찾아왔었던 거지요.
그분의 이야기에 의하면, 아버지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조용히 반성해 본 결과, 나를 완전히 용서할 기분은 아니지만 그런 모욕적인 선물을 보낸 것은 비열하고 지나친 처사로 생각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일을 철회하고 싶은데, 그렇다고 아버지로서 아들 앞에서 자기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도 뭣하니, 그 역할을 셸레이에게 부탁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그분은 그 간판을 되돌려받으면서, 미안한 마음의 표시로 500파운드를 나에게 주라는 의뢰를 받고 찾아왔었던 겁니다.
단, 아버지는 그것이 우리에 대한 최후의 도움이라는 것을 통고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당장 가난에 허덕이는 것을 볼 수 없어 돈을 보내지만, 다시는 도움이 없을 것이니 자기 힘으로 해결해 나가라는 말이었죠." 진은 커피를 날라와 말없이 탁자 위에 놓았다.
하지만 남편이 이야기에 열중한 나머지 팔꿈치 옆에 놓인 찻잔을 거들떠보지도 않자, 그녀는 남편의 뒤로 돌아가 거기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살며시 그의 팔에 손을 댔다.
완전한 남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레슬리는 흠칫 몸을 떨고, 순간 빈틈없고 예리한 눈으로 그녀를 돌아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곧 스스로를 비난하듯 일그러졌다.
두 사람 사이의 가벼운 경악이 팽팽한 활시위처럼 조명이 어두운 방안의 공기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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