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즐거운 여자 - 엘리스 피터스 - 10편 (10/23)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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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즐거운 여자 - 엘리스 피터스 - 10편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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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주근깨투성이고 머리는 밤색이어서 아버지의 눈으로도 핸섬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어머니를 닮았다고 해서 어머니처럼 아름다움을 지녀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조지로서는 지금 있는 그대로의 아내와 아들에게 충분히 만족을 느끼니까.
그는 어제 저녁 진과 레슬리 아마이저와 가졌던 대화 내용을 머릿속에서 정리하면서 데이켓 총경과 협의했다.
데이켓은 조지에 못지 않은 관심을 보이며, 술집 간판에 얽힌 묘한 비밀을 밝혀보겠다는 그의 요청을 쾌히 승낙했다.
피묻은 장갑-- 범인의 것으로 생각되는 지문이 달리 채취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범인은 장갑을 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 이나 옷의 행방을 쫓는 일, 개업식에 참석한 손님들을 차례로 만나보는 일은 오늘도 하루종일 계속될 것이다 -- 아니, 앞으로도 여러 날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의외의 방법으로 해서 수사일정을 단축시킬 수 있다면 그보다 기쁜 일도 없을 것이다.
조지는 외출하기 전에 건설국의 버니 윌슨에게 전화를 걸어 레슬리가 한 이야기를 확인해 보았다. "네, 맞습니다." 윌슨은 기꺼이 설명을 해주었다. "내가 레슬리의 부탁으로 그 간판을 차로 클렌머 화랑으로 실어다 주었지요.
그 양반은 믿을 만합니다.
적지 않은 그림도 수집해 두었고......아니, 나나 레슬리는 그 간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물론 보기는 보았지만 두드러지게 이렇다 할 물건도 아니었습니다 -- 그 판자 자체가 너무나 딱딱하고 무거워서 그 재질에 약간 호기심이 일기는 했습니다만.
그렇게 단단한 나무를 과연 벌레가 먹을 수도 있을까 하는......아니, 클렌머와 별로 친한 사이라고는 할 수 없지요.
우연히 그의 화랑에 들러 작은 그림을 두 점 산 것이 서로 알고 지내게 된 계기였으니까요.
그는 화랑을 연 지 5~6년이 되는데, 지긋한 나이에 호도껍질처럼 완고한데다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전형적인 골동품상 타입입니다." 조지는 애비 플레이스의 그 작은 화랑으로 들어가, 그가 그냥 그림을 구경하러 들어온 사람인지, 아니면 살 요량으로 서성거리는 손님인지 판단을 내리기까지 이야기를 걸지 않고 한구석에서 저울질하고 있는 그를 흘끔흘끔 관찰했다.
그리고 윌슨의 말이 이 클렌머라는 남자를 잘도 표현했다고 느끼고는 감탄했다.
이 부근은 튜더 왕조 초기에 형성된 거리의 일부였는데, 그에 어울리는 고풍스러운 화랑의 꾸밈새도 그럴듯했다.
예스러운 흑과 백을 기조로 한 겉치장은 이 거리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고, 내부에도 거대한 대들보가 천장을 가로질러 있어서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클렌머는 보통 키에 약간 허리가 구부정하고, 살갗은 머리칼과 마찬가지로 잿빛을 띠었으며, 깡마른 몸집은 나무뿌리나 힘줄처럼 강인한 무엇을 연상시켰다.
두터운 안경 때문인지 그의 눈은 겁날 만큼 크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푸르게 보였다.
그에게로 다가가 갑자기 그 푸른 섬광을 받으면 마치 전기에라도 감전된 것처럼 몸이 오그라들 것 같았다.
그의 목소리 역시 잿빛 살갗이나 머리카락에 어울리게, 쉬고 단조롭고, 또한 조심스러웠다.
아닌게아니라 물샐틈이 없어서, 조지가 신분을 밝히기 전에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으며, 고의로 숨기는 듯한 기색도 엿볼 수 없었다.
하지만 조지가 신분을 밝히자 태도에는 변화가 없었으나, 고분고분 입을 열기 시작했다.
문제의 간판을 자기가 보관하고 있으며, 그것이 '즐거운 술집'이라는 술집의 간판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대단히 귀중한 물건은 아니지만 상당한 가치는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건 간판으로 쓰이고 있었을 때 오랫동안 비바람에 시달려 몇 번이고 난폭하게 덧칠을 하고, 자주 수정이나 겉치장이 가해졌더군요.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 이건 직감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 그것은 코츠워스라는 이 지방 화가에 의해 그려진 18세기의 초상화가 밑그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코츠워스라고 해도 잘 모르시겠지만, 만일 그의 것이라면 귀중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상당한 흥미는 가질 만합니다.
수집가에 따라서는 몇백 파운드를 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는 거기에서 말을 끊고 종종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가더니, 사방 30cm짜리 액자에 든 유화를 들고 나왔다. "이게 코츠워스입니다." 그것은 귀족풍의 남자 초상화였는데, 자기가 그린 얼굴이겠지만 못생긴 얼굴이었다. "그런데 당신이 그 간판을 맡은 지는 한 2주일이 지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감정은 해보셨는지요? 아마이저 씨의 아들이 당신에게 감정을 의뢰한 건가요, 아니면 의견만 물었나요?" "의견을 물어 왔더군요.
하지만 나로서는 그분이 동의한다면 간판의 페인트를 벗겨, 내 추측이 맞는가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추측이 맞는다면 그걸 내가 250파운드에 사겠다고 아마이저 씨의 아드님께 얘기할 생각이었지요." "상당한 값이로군요.
당신이 그것을 여기에 받아두었다는 이야기나 상당한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의 아버지나 또는 아버지 회사의 관계자 누구에게라도 이야기한 적은 없나요?" 250파운드라면 적지 않은 액수다.
그만한 값을 매긴 것으로 보아 아마도 1,000파운드 이상은 받을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클렌머의 그런 계산에 생각이 미치자 조지는 실내가 온통 그의 푸른 눈동자 속에 잠겨드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노인은 잘라 말했다. "그건 윌슨 씨를 통해서 아마이저 씨 아드님의 소장품으로 맡은 것으로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것이 못 됩니다.
물론 경찰에서 협조를 당부한다면 몰라도 말입니다." 마치 실레된 질문을 나무라는 투 같아서 조지는 더 이상 묻는 것을 삼가기로 했다.
하지만 조지가 물어보지도 않은 그 간판의 값어치를 자진해서 말한 것은 속셈이 있음이 분명하다.
아마도 무지한 경찰관을 통하여 그가 매긴 값이 간판의 소유주에게 전해지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것이 직접 말하는 것보다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야기가 전달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밑질 건 없다.
이 영감은 보통내기가 아니야 -- 조지는 밖으로 나와, 헨리 7세풍의 낮은 진열장 속에 장식된 세 점의 평범한 근대화 앞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중얼거렸다.
생각해 보면 아마이저가 살해된 마당에 섣불리 입을 놀렸다가는 휘말릴지도 모른다는 조심성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아마이저가 죽기 전에 그 영감이, '당신이 아들에게 준 간판은 보통 물건이 아닙니다.' 하고 몰래 귀띔해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은 가시지 않았다.
아마도 클렌머는 아마이저가 500파운드를 주겠다고 하며 그것을 되찾으려고 했다는 사실은 몰랐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250파운드라는 값을 매길 수는 없을 테니까.
레슬리를 움직이기에는 그 차이가 너무 크지 않은가.
물론 영감은 실제로 그 값으로 사겠다고 제안한 것은 아니고, 단지 그랬으면 좋겠다는 의사표시를 했을 뿐이지만, 영감의 속셈은 충분히 짐작이 간다.
만일 영감이 아마이저에게 가담해서 레슬리를 궁지에 몰면 상당한 반대급부를 받을 수도 있고, 아마도 그 부호와 썩 괜찮은 거래를 약속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이저가 죽어 그런 가능성이 사라지자 영감은 스스로 거래에 나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지는 천천히 차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물론 이러한 추정은 모두 그 간판이 레슬리의 손에 들어가게 된 내력을 클렌머가 알고 있다는 가정 위에 세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보면 '즐거운 술집'이라는 술집의 간판이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으므로, 비록 윌슨에게서 자세한 설명을 듣지 않더라도 그건 아마이저가 무가치한 것으로 생각하고 아들에게 주었을 것이라는 짐작은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윌슨은 입이 가벼워 자초지종을 모두 털어놓았을지도 모른다.
조지는 자동차의 클러치를 밟으며 결론을 내렸다.
일이 이렇게 된 바에야 레슬리는 영감의 제안을 거절하고 간판을 되찾아와서, 누군가 다른 결백한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보라고 하는 게 좋을 것이다.
만일 레슬리가 남의 충고에 귀를 기울일 마음의 여유를 되찾고, 또 예기치 못한 사태의 급변이 그를 궁지에 몰아넣는 일이 없다면 내가 그에게 그런 충고를 해주기로 하자.
조지는 오전 내내 사무실에서 밀린 보고서를 작성하고, 오후가 되자 데이켓 총경과 함께 서장을 찾아갔다.
서장은 사건 해결을 재촉했다.
그것은 영국 중부지방에서 이름이 알려진 가족과 관계되는 사건이기도 하거니와, 가장 큰 이유는 서장은 주말에 사냥을 나가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방문은 결국 아무에게도 위안이 되지 못했다.
서장은 아직도 모든 사람을 군대식 계급제도의 틀에 끼워 생각하고 그렇게 다루었으며, 데이켓은 중대한 사건일수록 신중을 기하고 무뚝뚝하게 침묵을 지킴으로써 건방진 느낌마저 들게 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시간낭비야." 데이켓 총경은 코마번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혀를 찼다.
정확하게 제한속도를 지키는 그의 운전 태도도 그가 별로 복종적인 기분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네 아들은 절대로 경찰관 같은 걸 만들지 말게, 조지." "그놈 자신이 싫다고 합니다." 조지가 대꾸했다. "어떻게 된 셈인지 때로는 범인 편을 들기도 하지 뭡니까." "하기야 그 나이 또래에서는 모두가 반사회적인 기질을 갖기 마련이지." 데이켓은 쓰디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그건 단순히 궁지에 몰린 사람에 대한 소박한 동정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사회가 범죄를 낳게끔 돌아가니까 사회 자체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지요." 조지는 그것이 자기의 생각이면서도 도미니크에게 떠맡긴다는 내색은 하지 않았다.
실제로 수사과정에서 많은 애를 써서 마침내 범인을 검거하고서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서장에 대해서는 너무 신경쓸 필요 없습니다." 하고 조지는 달래듯 말했다. "우리가 이러고 있는 사이에도 돌발적인 사태의 진전으로 결정적인 단서가 잡혔을지도 모르니까요." 이윽고 그들이 교차로를 돌아 힐 가로 접어들었을 때, 경찰서 앞 공터에 웅성웅성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조지의 예감대로 무슨 일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경찰서는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거리 쪽에 있는데, 창 밑에는 작은 화단과 두 개의 벤치가 있고, 그 앞 콘크리트 포장이 된 빈터는 차 네 대가 설 만한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 빈터에 양철통이며 고철과 넝마 등을 가득 실은 두 바퀴짜리 짐마차가 세워져 있고, 그 위에 아이들 셋이 놀란 얼굴로 앉아 있었다.
아버지의 바지 밑자락을 잘라 걸치고, 다 떨어진 회색 재킷을 입은 형뻘 되는 아이가 털이 많고 살찐 조랑말의 고삐를 틀어잡고 있었다.
제복 차림의 경찰 하나가 구경꾼들을 정리하는 데 이골이 난 경험을 살려 군중의 접근을 능숙하게 막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데이켓은 차에서 내리며 소리질렀다.
경관이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로코트 형사가 머리가 이상해져서 이런 쓰레기를 모아들인 건가?" "아닙니다.
이건 진짜 쓰레기 장사가 끌고 온 겁니다.
무슨 중대한 정보를 갖고 왔다나요." "그래, 대낮에 거리마다 그걸 선전하고 다니며 사람들을 끌어모아 여기까지 행진을 한 모양이군." 데이켓은 투덜거리며 마차 위의 아이들을 흘끔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그가 야만인이라 취급해도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태연했다.
그들은 순수한 집시는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인디언 특유의 부드럽고 신비로운 얼굴 생김이나 물기가 있는 눈이며 늘씬한 골격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때투성이의 올리브색 살갗이나 야성적인 몸매, 거칠어 보이는 성격 같은 것에서 집시 혈통을 느낄 수가 있었다. "누구라고 했지, 저 개구쟁이들 애비가? 레이인가?" "아니, 클리비입니다." "아무려면 어때.
누가 누구와 결혼했는지, 어느 아이가 누구의 자식인지도 알 수가 없는 사람들인데." 그는 성큼성큼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가, 계단을 세 개씩 뛰어넘어 자기 방으로 갔다.
그곳에는 이미 그로코트 형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조지도 뒤따라 들어갔다. "자, 이야기를 들어보세.
저건 조 클리비의 마차라지?" 조는 클리비 일족 중에서는 무난한 사람이었다.
어쩌다가 순모 넝마를 줍거나 쇠붙이의 값이 후할 때는 술이 곤드레가 되어 유치장 신세를 지기도 하고, 자기 여편네를 집적거린 어느 쓰레기 인부를 때린 적은 있었지만, 전과라고 할 정도의 죄는 지은 일은 없다.
처자식을 잘 돌보고, 남에게 지나친 피해를 끼치지도 않으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려는 좋은 친구였다. "네, 맞습니다.
조는 지금 로키와 함께 아래층에 있습니다.
한 시간 전쯤에 아마이저 사건에 관한 증거를 입수했다며 나타났습니다." 조는 정기적으로 마차를 끌고 고물을 모으러 다니는, 코마번 변두리의 주택가에서는 제법 얼굴이 알려진 남자였다.
주민들은 자진해서 고물을 모아 두었다가 그가 오기를 기다렸는데, 잘못 버렸다가는 시의 청소과 직원들에게 싫은 소리를 듣거나, 쓰레기로 버리기에는 아까운 고물을 모아두면 깨끗이 가져가 주는 요긴한 존재였던 것이다.
물론 그가 그 고물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는 오늘 아침 우연히 해크니스 부인의 집이 있는 우중충한 골목길을 돌다가 무슨 쓸 만한 것은 없을까 해서 그 부인 댁의 쓰레기통을 열어보았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조의 눈으로 보아 멀쩡한 구두도 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 쓰레기통에는 구두는 없었지만 장갑이 있었다.
헌 것이기는 했지만 고급 가죽으로 만든 목이 긴 장갑이었는데, 안쪽에는 LA라고 자수가 놓인 테이프가 달려 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챙겼다.
그리고 일을 끝내고 변두리 선술집에서 맥주 한 잔을 들이키고 나서야 그것을 꺼내어 면밀히 살펴보았다.
오른쪽 장갑의 손바닥과 손가락 부분에 검붉은 얼룩이 있고, 그 부분의 감촉이 뻣뻣했다.
왼쪽 장갑에서도 여기저기 검붉은 반점이 보였다.
해크니스 부인은 그의 단골 중 하나였으므로 그녀의 2층에 누가 세들어 살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고, LA라는 머리글자가 누구를 가리키는지도 알 만했다.
그리고 동시에 장갑의 얼룩이 무엇이며, 그것이 왜 쓰레기통에 버려졌는가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 아니, 짐작이 갔다.
그는 또한 그걸 경찰에 알리는 것이 자기의 의무라는 것도 알았다.
우쭐해진 그는 경찰서로 오는 도중에 그럭저럭 술집을 네 군데나 들러서 그때마다 레슬리 아마이저가 아버지를 죽인 증거를 이 나 조 클리비가 경찰에 갖고 가는 길이라고 허풍을 떨었다.
그리하여 이 어마어마한 뉴스를 코마번 마을 사람들 중 아직 모르는 이가 있다면 아직 두 시간은 더 쏘다닐 판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라 여기까지 몰려온 겁니다.
그 친구가 곤드레만드레된 것은 아닙니다만 -- 이건 그 친구의 기준입니다 -- 상당히 취한 상태입니다.
만나보시겠습니까?" "내버려둬." 데이켓이 말했다. "내가 만나고 싶은 건 그 장갑과 -- 그리고 아마이저의 아들이야.
장갑이 별게 아닐지는 모르지만,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의 해명을 들을 필요가 있으니까.
아무튼 장갑부터 먼저 만나게 해주게." 그 장갑이 책상 위에 손바닥을 위로 하여 나란히 놓여졌다.
뻣뻣하게 얼룩진 부분은 핏자국이 분명했다. "이게 뭐겠나, 조지?" "크레오소트 냄새가 납니다만 -- " 조지는 손가락 언저리의 냄새를 맡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크레오소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음, 지붕에 칠하는 페인트 냄새도 나는걸.
아무튼 실험실로 보내서 존슨에게 조사해 보도록 해야지." "조를 유치장에서 하룻밤 재울 필요는 없겠지요?" 그로코트가 물었다. "그 친구를 재운다고? 그리고 그 지저분한 작은 악마들은 소년보호소에라도 맡긴다는 건가? 그랬다가는 보호소의 교관들이 나를 때려죽이려 할 거야.
그건 그렇고, 조지, 자네는 수고스럽지만 아마이저의 아들을 데려와 주게." 조지는 그 달갑지 않은 임무에 최선의 배려를 했다.
아무에게도 용건을 말하지 않고 은밀히 지배인실로 들어가, 소환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참고인으로 동행하는 것이라며 레슬리를 불러달라고 했다.
그런데도 창고에서 급히 온 레슬리는 조지의 모습을 본 순간 얼굴빛이 달라지며 몸이 굳었다.
하지만 지배인의 설명을 듣고는 조금은 안심이 되는 듯 안색을 되찾고, 눈을 반항적으로 번뜩이면서 마치 친한 친구에게 불려나가는 것처럼 가벼운 걸음걸이로 조지와 나란히 지배인실을 나왔다.
거기서부터는 점포 내를 가로지르거나 가운데 마당을 통과해야 했는데, 조지는 레슬리에게 비교적 호의를 지니고 있다는 하급직원들이 일하는 가운데 마당에 난 길을 선택했다.
물론 소문은 벌써 퍼진 모양인지 모두가 눈치를 채고 있었다.
그런데도 트럭 운전사 중 하나는 레슬리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며 미소를 보냈고, 포장반의 한 직원은 반쯤 담긴 담뱃갑을 내밀었다.
레슬리는 그것을 기뻐하기보다는 당혹스럽게 받아들였으나 미소로써 답례했다.
곁눈질로 보니 그의 입가에 맴돌던 짙은 주름의 그림자가 조금은 스러져 있었다.
조지 옆자리에 올라탄 레슬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그러는지 몇 번인가 긴 숨을 들이마셨다.
조지가 신호등 앞에서 속도를 늦추었을 때 그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펠스 씨, 부탁이 있습니다......될 수만 있다면 아내에게 들러 잠시라도 만나게 해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왜 그러지? 자네는 한 시간 정도면 아내에게 돌아갈 수가 있을 텐데." 조지는 애써 태평스럽게 말했다. "그래요?" "물론 그건 자네가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지.
그 해답은 자네만이 알겠지만." "그러면 오죽 좋겠습니까." 레슬리가 열띤 목소리로 말했다. "어떤 용건으로 나를 데려가는 건지 말해 줄 수는 없겠지요?" "글쎄......이해하겠지만, 이런 일은 미리 말해 주기가 어렵다네.
그런데 지금껏 미뤄 온 질문이 하나 있네......자네는 아버지를 살해했나?" "아뇨." 레슬리는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그렇다면 자네는 곧 집에 돌아가게 돼.
최악의 경우라도 좀 늦어질 뿐이지.
자네 부인은 우리가 만일 자네를 협박이라도 하면 용서해 줄지 그건 모르겠지만, 좀 늦게 돌려 보내는 건 용서해 줄 걸세." 레슬리는 그 말에 안심이 된 듯, 협박이라는 가설에 화를 내는 일도 잊은 것 같았다.
그는 마치 자기 앞을 가로막은 장벽이라도 뛰어넘듯 힘차게 경찰서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으나, 갑자기 자기 곁에 조지가 없는 것을 알고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지는 계단 아래에 서 있던 그래머 스쿨(시험에 붙은 학생 중 상위권에 드는 학생들에게 대학 진학 준비 교육을 시키는 중등학교) 제복을 입은 소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 아들이라네." 조지는 급히 레슬리 쪽으로 돌아오며 설명을 했다. "함께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해서 들렀지.
나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는걸.
이제 근무시간도 끝나갈 시간이고." "그거 안됐군요." 레슬리는 눈에 생기를 되찾으며 말했다. "나는 언제든 출두할 각오가 되어 있었는데......당신에게 시간 외의 일을 하게 하면 어쩌지요?" "바로 그거야!" 조지는 청년을 격려하듯 어깨를 두드렸다. "그런 기개라면 걱정없네.
정직해서 좋아.
자, 3층까지 걸어 올라가세.
납세자들은 아직 우리에게 엘리베이터를 사주지 않았거든." 도미니크는 아버지가 젊은 남자의 어깨에 손을 얹고 계단을 올라가 처음의 모퉁이를 구부러져 모습을 감추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제 사건이 해결되었다는 소문은 정말일까? 레슬리 아마이저는 범인 같아 보이지는 않던데 -- 하기야 살인범이라고 써붙이고 다니는 사람은 없지.
하지만......그는 도저히 범인 같지가 않다 ! 도미니크는 환경의 재물이 되어 밀리고 밀린 끝에 죄를 범하고는, 당연한 응징이라고는 하나 법률의 파수꾼에 의해 끌려가는 사람을 보면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자기 안에 무엇인가 어둡고 불안한, 비밀스러운 것이 있는 것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그 악마적인 것을 의식할 때마다 그는 몸서리가 쳐졌다.
그와 동시에 붙잡힌 사람에 대한 동정이 고개를 든다.
그것은 자신도 범죄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더 겁나는 것은 그에게 아주 소중한 사람도 그런 신세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키티! 그렇다고 이번 사건의 용의자가 지금 목격한 낡은 고급 윗저고리에 굳은 미소를 띤 불안한 눈초리의 청년이라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는 마음속에 밀려드는 안도의 파도를 외면하면서, 당번 순경의 친근하면서도 살피는 듯한 시선을 피해 9월의 해가 지기 시작하는 밖으로 나와 화단 옆 벤치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마침 그때 빨간 커먼 기어가 멋진 곡선을 그리며 고물상 마차 옆에 서더니, 키티의 늘씬한 다리가 운전석 문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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