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노부의 이백 년 내력의 진원(眞元)을 한데 모은 천지 원정내단(天地元精內丹)이다. 천지원정내단을 복용한 후 영천정유의 신효(神 )를 접하면 능히 사갑자(四甲子) 이상의 내공을 얻으리라. 노부가 평생에 익힌 절기는 모두 천하무적(天下無敵)이었다. 허나 그 중 노부가 말년에 심혈을 기울여 집대성(集大成)한 세 가 지 절기만을 남긴다. 까닭은 훗날 그대에게 또 다른 복연(福緣)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허나 그대가 범인이라면 노부의 무학을 익히지 못할 것이다. 또한 이미 타종의 무학을 접한 몸이어도 익힐 수 없다. 노부는 모든 인 연을 그저 하늘에 맡길 뿐이다.> 천연(天緣), 하늘의 인연이란 이런 것을 일컫는 것인가? 원래 북궁후가 자신의 체질에 상심하여 일체의 무공을 익히지 않 았던 것이 오히려 천운(天運)을 만났음이니.... 천령무황이 남긴 무공은 과연 범인의 몸으로는 익힐 수 없는 것이 었다. 천하 만종기학(萬宗奇學)에 달통한 자만이 오의를 깨달을 수 있 다. 허나 그중 단 한 가지도 익히지 않은 몸이어야 함이니 이것이 어찌 단순한 우연일 수 있겠는가? 그야말로 하늘의 치밀한 안배인 것이다. 돌연 천령무황의 좌화한 유체가 빙글 돌더니 푹 꺼져 버렸다. 동 시에 좌대 위로 검은 옥함 하나가 쑥 올라왔다. 북궁후는 경건한 신색으로 옥함을 열었다. 먼저 나온 것은 세 가지 광세기예(廣世奇藝)가 적힌 빛깔 바랜 누 런 양피지였다. 북궁후는 격동을 금치 못하며 그것을 읽어 내려갔다. ■ 검 1권 제7장 신지(神智)를 깨닫거든 도(刀)를 들어라! -6 ━━━━━━━━━━━━━━━━━━━━━━━━━━━━━━━━━━━ ⑥ - 천령참마극선강(天靈斬魔極善 ). 극고(極高)의 내공심결(內功心訣)로서 천령무황의 절정무공을 익 히기 위한 기초 심공(心功)이다. 십 성에 이르면 능히 바람을 차고 날 수 있으며 도검(刀劍)으로도 몸에 흠집조차 낼 수 없음은 물론, 한서불침지체(寒暑不侵之體)가 된다. 하니 노화순청의 경지에 이르면 어떠하겠는가? 실로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최상승의 내공심법이었다. 또한 일반 내공심법과 달라 한 번 운기할 때마다 다른 내공법의 운기보다 두 세 배에 달하는 공력증진의 효과가 있다. - 천뢰수(天雷手). 손이 한 번 허공에 번뜩일 때마다 뇌성(雷聲)이 일며, 수만 가닥 의 뇌전(雷電)이 질풍노도(疾風怒濤)처럼 일어난다. 아무도 감당해 낼 수 없는 엄청난 기세가 천공을 뒤덮어 방원 수 백 장 안에 남아 있을 것이 없다. 실로 가공할 수공(手功)이었다. - 천령영허무기보(天靈英虛無氣步). 어떤 장소, 어떤 시각, 어떤 자세에서도 펼칠 수 있는 신법(身法) 으로서 이 경공신법의 특징은 빛보다 더 빠른 쾌에 있다. 게다가 허공에서 백여덟(百八) 방위를 밟으며 상대를 멋대로 유린할 수 있다. 본시 신법은 모든 무공의 기초라 할 수 있었는데 과연 천령영허무 기보만 제대로 연성한다고 해도 천하에 적수를 만나기 힘들 것 같 았다. 북궁후의 얼굴은 말할 수 없이 격동되었다. 천령무황이 남긴 무공 들은 실로 추측불허의 지고(至高)한 경지의 무학이었다. '천령무황, 그분은 과연 무학의 끝에 도달하신 분이었구나.' 잠시 후 그는 검은 옥함 속에서 얇은 밀랍에 싸인 한 알의 신단 (神丹)을 꺼내 들었다. 옥함 속에는 또한 한 가지 기물(奇物)이 들어 있었다. 한자루 백 옥빛 섭선이 그것이었다. 첫눈에 보기에도 신태(神態)가 어린 범 상치 않은 물건이었다. 북궁후는 섭선을 매만지며 격동에 차 중얼거렸다. "이것은 만년온옥(萬年溫玉)과 희귀조인 금령조(金翎鳥)의 깃털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내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것이 천령무황의 독문병기(獨門兵器)였을까? 그렇다면 천령무 황께서는 선공(扇功) 또한 남기셨을텐데...?" 허나 그 어디에도 천령무황의 섭선기공은 남겨져 있지 않았다. 그 는 의혹을 금할 수 없었으나 섭선을 품 속에 갈무리 했다. ■ 검 1권 제7장 신지(神智)를 깨닫거든 도(刀)를 들어라! -7 ━━━━━━━━━━━━━━━━━━━━━━━━━━━━━━━━━━━ ⑦ 어슴푸레한 어둠이 깔린 동굴 속이었다. 이곳은 천연적인 종유석(鐘乳石)과 석순(石筍)들이 자라나 장관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원래는 단 한 점의 빛조차 들어올 수 없어 어둡기 그지 없을 것이 나 기이하게도 동굴은 영롱한 빛에 휩싸여 있었다. 그것은 바로 천정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온갖 종유석들에게서 뿜어지는 광채였다. 동굴의 중앙에는 넓이 일 장 가량의 샘이 있었다. 놀랍게도 샘 안에 가득 차 있는 것은 뽀얀 우유빛 유액(乳液)이었 는데, 그것은 바로 무수한 종유석에서 백 년에 한 방울씩 응결된 다는 영천정유였다. 영천정유 한 방울이면 죽은 사람도 살린다 했다. 실로 전설적인 신비의 효험을 가진 진귀한 영액(靈液)이 바로 영천정유인 것이 다. 헌데 그런 영천정유가 아예 연못을 이루고 있을 정도이니 실 로 가공스럽지 않은가. 언제부터인가 한 인물이 그 속에 좌정해 있었다. 바로 북궁후였다. 그는 이미 사흘째 영천정유 속에서 운공조식에 들어 있었다. 전라(全裸)의 몸, 균형 잡힌 미끈한 나신은 마치 훌륭한 걸작품 (傑作品)을 보는 듯했다. 그의 전신에서는 은은한 자색(紫色) 광채가 점점 짙어지고 있었 다. 또한 쉬지 않고 경련이 일고 있었다. 지금 그의 내부에 있는 십이중루(十二重樓)는 노도(怒濤)같이 솟 구치는 거센 진기 흐름에 터질 듯한 압력을 받고 있었다. 이것은 바로 만년학정련과 천년삼실 등 그의 몸 속에 잠재되어 있 던 무수한 영약(靈藥)의 신효(神效)가 한꺼번에 발동되어 그 자신 의 진기로 화하고 있는 현상이었다. 게다가 천령무황이 남긴 원정내단을 복용해 이미 사갑자의 내공을 얻은 그가 아니던가. 그때문인지 체내에서 용솟음치던 진기는 마 침내 단전에서 솟은 청량지기(淸良之氣)와 합류해 위로 솟구쳐 오 르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전신의 자색기운은 더욱 짙어져 그의 몸에서 반 자 가 량이나 뻗어나 하나의 막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한 덩이 자색 구름을 보는 듯했다. 허나 이 순간 북궁후는 극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장강노도같은 진력이 전신 삼십육혈(三十六穴)을 거꾸로 뚫어갈 때마다 끔찍한 고통이 전신을 엄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임독양맥(任督兩脈)을 거슬러 진기를 인도하는 운공방법은 천 령참마극선강의 독특한 운기에 의한 것으로 완성되면 음양(陰陽) 의 조화를 이루어 내공수위가 크게 비약하게 된다. 돌연 미미한 음향과 함께 북궁후의 몸이 한 차례 격렬한 떨림을 일으켰다. 임독양맥의 타동이었다. 그는 무림인이라면 실로 꿈에도 바라지 못하는 경지를 한순간에 이룩한 것이다. 잠시 후 북궁후의 전신에서 또다시 놀라운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 했다. 뽀얀 우유빛 영천정유가 그의 전신 모공(毛孔) 속으로 서서 히 스며들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후, 그의 전신을 휩싸고 있던 자색기류가 안개처럼 흩어졌 다. 동시에 드러나는 북궁후의 나신은 실로 눈이 부실 정도로 투 명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이윽고 북궁후의 눈이 뜨여졌다. 순간 그의 두 눈에서는 비수처럼 차갑고도 부드러운 안광이 쏟아 져 나왔다. 북궁후의 입에서는 기쁨에 찬 탄성이 울려 나왔다. "아, 마침내 성공했다." 이내 북궁후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번에는 천령무황의 무학을 전개해 보겠다." 그의 뇌리로 무수한 무공의 진결(珍訣)들이 떠올랐다. 그는 먼저 천령마황의 내공심법인 천령참마극선강을 운기했다. 동시에 그의 우수(右手)가 가볍게 허공에 그어졌다. 그저 손으로 장난처럼 한 번 허공을 그었을 뿐이었다. 공기의 파 동도 없었고 아무런 음향도 들리지 않았다. 허나 바로 그 순간 투명한 백광이 거대한 도의 형태가 되어 허공에 작렬했다. 헌데 놀랍게도 아무런 조짐도 없이 푸른 불꽃이 퉁기며 십 장밖의 종유석들이 칼로 벤 듯 나란히 베어져 나가지 않는가! 그 베어진 단면은 실로 천하의 명검으로 베어진 듯 깨끗하기 이를데 없었다. 북궁후의 눈은 찬연한 신광을 발했다. "으음... 단지 오성의 공력을 운기했을 뿐인데 마치 검으로 베어 낸 듯한 위력을 보이다니!" 북궁후는 스스로도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다시 우수 가 뒤집히듯 허공을 그어댔다. "천뢰수!" 은은한 뇌성(雷聲)과 함께 허공에 번갯불 치듯 뇌전이 형성되었 다. 그 뇌전의 형상은 무섭게 회오리 치기 시작하더니 이내 한쪽 의 석벽을 향해 치달려 갔다. 가공할 기세였다. 유연하면서도 날 카로운 경력이 질풍처럼 허공을 난자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십여 장 밖의 종유석들이 미세한 경풍(輕風) 속에 가루로 화해 버린 것은 그야말로 찰나지간의 일, 뿐이랴! 종유석을 가루로 만 들어버린 경력은 계속 밀려나가 어느새 뒷쪽의 석벽에 뇌전의 형 상을 아로새겨 놓고 있었다. 실로 놀라운 위력이었다. 허나 그 놀라운 광경을 대하고도 북궁후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 며 설레설레 머리를 흔들었다. "틀렸다! 이것은 일초에 칠십이변(七十二變)의 변화를 완성해야 한다. 헌데 오십칠변(五十七變)을 일으켰을 뿐이다." 북궁후는 자신의 성취가 못내 아쉽다는 태도였다. 허나 지금의 그 가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천령무황이 남긴 광세절기 천뢰수, 강호의 최절정고수라 해도 이 정도 경지에 이르려면 오십 년을 참오해야 할 것이다. 헌데 지금 의 북궁후는 난생 처음으로 무공을 펼친 것이 아니겠는가. 아아...! ■ 검 1권 제7장 신지(神智)를 깨닫거든 도(刀)를 들어라! -8 ━━━━━━━━━━━━━━━━━━━━━━━━━━━━━━━━━━━ ⑧ 시간은 시위를 떠난 살같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세월여류(歲月如流)라, 세월의 흐름처럼 무심한 것이 또 어디 있 으랴! 북궁후는 시간을 잊었다. 그는 천령무황이 남긴 심오하고 난해막측한 무공에 깊숙이 심취해 그야말로 시간의 흐름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얼마쯤의 시간이 흘렀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세월의 흐름에 따라 마침내 소야 북궁후는 이미 소 년으로서의 껍질을 벗고 어느덧 당당한 절대종사로 탈바꿈하고 있 었는데.... 과연 어느 정도의 세월이 흐른 것일까? 천령동의 모든 종유석들이 북궁후의 연습상대가 되어 모조리 가루가 되어 버렸을 무렵 그의 신체도 엄청난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변화된 것은 비단 신체만이 아니었다. 늠름하고도 장엄무비한 기도(氣道), 특히 깊숙한 정열과 무형의 위엄을 갈무리한 두 눈은 무한한 신비로움 속에 광막한 황야(荒 野)를 포용한 듯 잔잔히 일렁이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결코 십오 세 소년의 모습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기태였다. 그렇다! 이렇게 하늘(天)과 땅(地), 그리고 세월(歲月)이 힘을 합 쳐 잠룡(潛龍)을 깨운 것이었다. ■ 검 1권 제8장 강호(江湖)에 부는 바람(風)! ━━━━━━━━━━━━━━━━━━━━━━━━━━━━━━━━━━━ ① 태호(太湖), 황혼(黃昏)의 붉은 노을이 잔잔한 태호의 호면에 불길처럼 퍼져 흐르고 있었다. 석양 무렵의 한가로운 호반은 전체가 노을빛으로 물들어 있어 실로 서정적인 정취(情趣)를 자아내고 있었는데 그 호반에 위치해 있는 귀래거(歸來去)라는 주루의 열려진 창으로 역 시 붉은 노을이 흘러들고 있었다. 늦여름 저녁의 서늘한 바람은 감미로움과 함께 엷은 향수(鄕愁)를 느끼게 한다. 언제부터인지 예의 귀거래의 창가에 극히 무심한 표정을 지닌 백 의미서생(白衣美書生)이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듯 창백하게까지 느껴지는 희디 흰 피 부와 섬세한 이목구비, 백의미서생의 용모는 실로 준미하기 그지 없었다. 특히 취기가 오른 때문인지 아니면 노을이 비쳐들어 그렇게 보이 는 것인지 불그레하게 물들어 있는 옆 얼굴은 실로 같은 사내가 보더라도 혼(魂)을 뒤흔들어 놓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전신에서 은은히 풍겨나오는 탈속한 듯한 기태는 어찌보면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는 듯한 느낌이면서 동시에 주루 전체를 은 연중에 장악하는 놀라운 것이었다. 그렇다! 백의미서생은 바로 북궁후였다.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일까? 어딘지 그늘이 깔려 있는 표정이었다. 허나 그것도 일순, 이내 그의 전신에서 가만히 있어도 주변을 장 악하는 듯한 기세가 소리없이 솟아났다. 동시에 백옥빛 술잔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무공을 익히기 위해 내 생명(生命)이 일년 육개월이나 단축 되는 것을 감수했다! 이제 남은 생(生)은 육개월, 내 마지막 생의 불꽃을 활화산처럼 터트릴 것이다!' 찰랑거리는 암청빛 술잔을 응시하는 북궁후의 눈이 진정 불꽃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이때, 매우 기세 좋은 발자국 소리와 함께 한 명의 청년(靑年)이 이층 주루로 올라왔다. 당당한 체격에 남아다운 기상이 물씬 풍기 는 인물이었다. 각진 얼굴에 먹물을 찍어 힘껏 일획을 그은 듯 귀밑까지 치달아간 짙은 검미, 그 밑에 깊숙이 이글거리는 야망(野望)을 감춘 용안 (龍眼). 여기에 펄럭이는 검은 장포를 걸치고 있었으며 허리에는 기이한 형태의 흑검(黑劍)을 비껴차고 있었다. 예의 흑검은 한눈 에 보기에도 결코 범상치 않아 보였다. 무형 중에 강렬한 인상을 풍기는 흑포청년의 옆에는 한 명의 미소 녀(美少女)가 조용히 함께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가뿐한 푸른 경장차림이었는데 특이하게도 이국적(異國的)인 분위 기를 풍기는 소녀였다. 보석처럼 빛나는 푸른 벽안(碧眼)에, 도도하면서도 요염한 느낌을 주는 꽃잎을 베어문 듯한 붉은 입술. 게다가 머리결은 그 피부와 대조적으로 너무도 짙은 흑색인지라 실로 독특한 아름다움을 풍기 고 있었다. 먼 길을 온 듯 몸에 황토 먼지가 앉아 있는 예의 일남일녀(男女) 는 누가 보아도 진정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아! 저 쪽에 빈 자리가 있군. 라매(羅妹)!" 청년은 호쾌한 표정으로 주위를 돌아보다 주루 한쪽을 가리켰다. 이때였다. 문득 그의 입가에 떠올라 있던 부드러운 미소가 돌연 굳어졌다. 그의 입가에 버릇처럼 떠올라 있던 미소가 한순간 얼음 처럼 싸늘하게 스러져 버린 이유는 바로 북궁후와 시선이 부딪친 때문이었다. "......!" 두 사내의 무심한 눈빛이 허공에서 뒤얽혔다. '놀라운 기재다! 다만 야심이 너무 짙어 신기(神氣)를 흐리고 있 을 뿐...!' '과연 천하는 넓군! 저토록 뛰어난 인재가 감춰져 있었다니!' 영웅(英雄)만이 영웅을 알아본다든가? 이 순간 두 명의 사내는 서 로 상대의 뛰어난 기도에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라매라고 불리운 소녀 역시 흑포청년의 태도가 이상함을 느끼고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려 북궁후를 발견하고는 해연히 놀라 는 눈치였다. 잠시 후, 청년과 소녀는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문득 북궁후의 눈 깊은 곳에서 이채(異彩)가 솟아났다. '알 수 없군. 저들이 누구이기에 저들이 들어서면서 이곳 주위로 수상한 자들이 모여들고 있단 말인가?' 북궁후의 시선은 무심결인 듯 남의경장 소녀를 향했다. '저 소녀는 중원인이 아니다. 또한 보통 소녀가 아니다.' 이때 흑포청년의 호쾌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하, 라매, 이제 곧 내 친구들이 몰려올 것이오. 모두 멋진 놈 들이니 기대해 보시오." "호호, 사마오라버니의 지기(知己)라니 벌써 기대가 큰데요!" 소녀는 눈을 반짝이며 매혹적인 미소를 머금었다. 이때 한 명의 준미한 미공자가 황망히 층계를 달려 올라왔다. 화 려한 차림에 비범한 기질을 엿보이는 젊은이였다. 헌데 어쩐지 그 의 얼굴에서는 당황한 빛이 엿보이고 있었다. 그는 주청 안을 두리번거렸다. 이어 흑포청년을 발견한순간 그의 안색은 일시에 환해졌다. "아! 사마형! 진정 오랜만이오!" 그는 황급히 달려가 흑포청년의 손을 덥썩 잡았다. "하하, 갈형(葛兄), 내 라매를 소개하지. 유유홍일신(柔柔紅一神) 아유라(阿柔羅), 이 이름은 갈형도 들었을 것이오." 순간 갈형이라 불린 공자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의 놀람은 실로 대단한 듯했다. "이, 이 소저가 대막유유궁의 소궁주이신?" 한쪽에서 우연히 듣게 된 북궁후 역시 이 순간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막유유궁!' - 대막유유궁(大漠幽幽宮). ■ 검 1권 제8장 강호(江湖)에 부는 바람(風)! -2 ━━━━━━━━━━━━━━━━━━━━━━━━━━━━━━━━━━━ ② 대막의 십팔 개 대소문파(大小門派)를 통일시켜 대막의 패자(覇 者)로 군림하고 있는 신비문파이다. 허나 이것은 전설로만 전해진 것일 뿐, 대막유유궁이 실제로 존재 하는지, 어디에 존재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대막유유궁은 지금껏 한 번도 중원에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유유홍일신 아유라, 중원에서 청년기협(靑年奇俠)치고 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전설의 대막유유궁의 소궁주(小宮主)로서 그 아름다움은 둘째치고 대막유유궁 역사 이래 최고의 성취를 이뤘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 문이다. '음...! 대막유유궁이 드디어 중원에 나왔단 말인가?' 북궁후는 내심 무거운 신음을 흘려내고 있었다. 잠시 후, 주루에 다시 세 명의 젊은이들이 나타났다. 새로 아유라 일행의 식탁에 합류한 이남일녀(二男一女)는 한결같 이 젊고 영기발랄한 기질이 엿보이는 인물들이었다. 이때 한쪽에 혼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북궁후는 내심 크게 흥미를 느낀 듯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저들은 군림오패(君臨五覇)의 후예들인 소위 군림오공자(君臨五 公子)들이다.' 군림오패란 강북(江北)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종리세가(鐘里世家) 와 철기보(鐵騎堡), 하북전장(河北全莊)과 은하산장(銀河山莊), 그리고 죽가채(竹家寨) 등을 칭하는 말이었다. 이들 오대세가(五大世家)는 강북 일대의 전 상권을 장악한채 강호 전체에 막강한 영향력을 구가해 오고 있는 문파였다. 그리고 군림오공자는 바로 그 오대세가의 후예들로서, 각기 모두 용모가 출중하고 일신에 뛰어난 무공을 지녔다고 알려져 있었다. 때문에 천하인들은 이들 군림오공자를 놓고 서슴치 않고 당금무림 의 후기지수들로 손꼽고 있었다. - 천마협(天魔俠) 사마기(司馬奇). - 천상옥룡(天上玉龍) 두우중(斗宇重). - 강북일미(江北一美) 담옥주(潭玉珠). - 천기수재(天機秀才) 갈천상(葛天上). - 매화신검(梅花神劍) 종리천(鐘理天). 사실 북궁후는 천기신궁의 수많은 기인괴걸들과 함께 지내며 강호 무림인들에 대해 적지 않게 들은 바 있었다. 때문에 군림오패는 물론이고 군림오공자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때 나직하면서도 심각한 음성이 북궁후의 귀로 파고 들었다. 두번째로 주루에 들어섰던 천기수재 갈천상의 음성이었다. "사마형, 이곳 주위에 정체불명의 인물들이 몰리고 있소!" 허나 사마기는 일순 눈을 번뜩였을 뿐 담담히 술을 들이키며 말했 다. "알고 있소. 그들은 나를 노리고 있는 것이오." 순간 일행의 안색이 확 변했다. 너무도 놀라운 내용이 실로 아무 렇지도 않게 흘러나온 것이다. "사마형을 노리고 있단 말이오?" 사마기는 냉소하며 허리의 검을 툭! 쳐보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다는 태연한 음성이었다. "후후!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날 노리는 것이 아니고 내가 지니고 있는 이 검을 노리는 것이지." "검을?" 일행이 모두 의혹의 빛을 떠올렸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었기 때문이다. 헌데 이때 어디선가 까마귀 울음같은 음성이 그들 의 고막으로 파고 들었다. "클클클, 애송이! 눈치 한 번 빠르구나!" 그 음성은 실로 괴이해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바로 옆에서 들려오 는 듯했다. 갈천상의 낯빛이 홱 변했다. "도대체 누가 이토록 가까이 접근...?" 황급히 음성이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갈천상의 눈이 다음 순간 자신도 모르게 부릅떠졌다. 동시에 경악성이 그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혈영천군(血影天君)!" 이층으로 오르는 층계 옆의 난간 위, 언제 나타났는지 모르게 핏 빛의 혈포(血袍)를 걸친 괴인(怪人)이 비스듬히 기대 서 있었다. 흡사 붉은 독수리를 연상케 하는 강인해 보이는 얼굴에 창백하기 이를데 없는 미간(眉間)에는 하나의 붉은 반점이 찍혀 있어 전체 적으로 섬뜩한 느낌을 주는 용모였다. ■ 검 1권 제8장 강호(江湖)에 부는 바람(風)! -3 ━━━━━━━━━━━━━━━━━━━━━━━━━━━━━━━━━━━ ③ - 혈영천군. 칠십 년 전에 은거한 전대(前代)의 마성(魔星). 그의 무공은 실로 추측불허의 경지라고 전해지고 있었다. 특히 그 의 잔인악랄한 성품과 손속은 칠십 년 전, 중원천하를 공포속으로 몰아 넣었는데.... 순식간에 군림오공자의 안색이 긴장의 빛을 떠올린 채 굳어들었 다. 뿐이랴! 소리없이 나타난 인물이 바로 칠십 년 전의 마성 혈영천 군이라는 것을 알게 된 주루 안의 주객들은 일제히 공포의 빛을 떠올리고 있었다. 다음 순간 주청을 가득 메우고 있던 주객들은 숨조차 크게 내쉬지 못한 채 슬금슬금 주루를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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