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비질로써 도(道)라도 터득하고 있는 것일까? 한동안 청포문사를 지켜보던 북궁후는 적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 무심(無心) 상태에서 뻗쳐나오는 칼날처럼 예리한 기운! 보통 고수가 아니다!' 이때 마당을 쓸던 청포문사가 무심결인 듯 고개를 들다가 북궁후 를 발견하고는 흠칫하였다. 그는 잠시 멀거니 북궁후의 등장을 이 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더니 돌연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몸 을 떨었다. 그의 얼굴에 하나 가득 경악이 떠올라 있었다. '이럴 수가! 환공장문도진(幻空掌門圖陣)에 사상(四象)을 베푼 노 부의 진식이 오십 년만에 깨져 버리다니!' 그는 자신도 모르게 들고 있던 대나무비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꽤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북궁후가 빙그레 미소짓더니 입을 열었다. "천경유사 제갈우! 그대의 한 가지 약속을 이행받고자 왔소." 청포문사의 몸이 석고처럼 굳었다. 그는 잠시 복잡한 표정을 떠올 리더니 이내 자세를 바로하고 북궁후를 마주보았다. "당신은 누구요?" "은이령주!" "으음!" 청포문사의 입에서 묵직한 신음성이 터져나왔다. ■ 검 2권 제17장 천하를 밝히리라! -6 ━━━━━━━━━━━━━━━━━━━━━━━━━━━━━━━━━━━ ⑥ -천경유사 제갈우. 천하대석학(天下大碩學)이면서 또한 검의 달인(達人)이기도 하였 다. 그는 수십 년간 천하를 종횡하면서, 독불(獨不) 백리천악, 그 리고 무절교조(武絶敎祖) 등과 함께 무림삼주(武林三柱)로 명성을 떨쳐 왔는데 오십 년 전 천기신군의 출현(出現)과 함께 신비스럽 게 무림에서 실종되었던 것이다. 헌데 그가 천기신궁의 옥일령주(玉一令主)였단 말인가? 북궁후는 모옥 안을 바라보며 물었다. "들어가도 되겠소?" 천경유사는 기이한 미소를 흘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들어오시오." 북궁후가 천천히 걸어왔다. 그가 막 문 앞으로 한 걸음을 들여놓 자 돌연 천경유사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하였다. 북궁후는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천경유사가 의미심장한 빛이 흐르는 눈매로 그를 쓸어보며 말했다. "노부는 분명 과거 천기신군과 약조한 적이 있소. 은기령패를 대 하면 그의 부탁을 한 가지 들어주기로." 그의 말투는 다소 거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북궁후는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천경유사의 말투에서 뭔가 일이 틀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천경유사가 눈을 번뜩였다. "또한 노부는 평생 신의를 목숨처럼 여겨온 사람이오. 허나 그대 는 노부가 천기신궁의 인물이 아님을 먼저 명심해 두기 바라오." 북궁후는 더욱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천경유사가 싸늘하게 웃었다. "자, 이제 노부가 약속을 지켰으니 그대와 나는 무관한 존재요!" 북궁후는 한동안 그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반문했다. "무슨 말씀이오? 당신이 언제 나의 부탁을 들어줬단 말이오?" "흐흐, 귀하께선 노부의 모옥에 들어오겠다고 하지 않았소? 해서 노부는 허락했으며, 귀하는 이미 이 안에 들어와 있소!" 북궁후는 아연해졌다. 그는 이제야 천경유사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얼굴에 은은히 분노가 서렸다. "흥! 그런 억지를 부리다니!" 천경유사는 득의의 미소를 흘리며 북궁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그만 돌아가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는 축객령을 내리고 있었다. 헌데 문득 그의 눈이 크게 떠지더니 돌연 경악과 낭패감으로 일그 러지고 있었다. "으... 으, 금기령패!" 그는 주춤거리면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북궁후의 손에 는 어느새 또 한 개의 황금령패가 쥐어져 있었다. 북궁후의 입가 에 냉엄한 미소가 머금어졌다. "천경유사! 금기령패와는 또 어떤 약조가 있소?" 천경유사의 이마에 식은땀이 솟고 있었다. 북궁후의 품에서 금기 령패까지 나올 줄이야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는 낭패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그것 역시.... 한 가지 그의 명령을 들어주도록 되어 있소." 북궁후의 눈가에 차가운 한기가 어렸다. "설사 죽음을 명하더라도?" 천경유사는 멈칫하더니 이를 악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 후의 복종을 요구하더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시인하던 그는 잠시 망설이는 것 같더니 돌연 섬 뜩한 표정을 지었다. "허나 금기령패는 천기신군의 신물이다. 그가 가져오지 않은 이상 노부는 복종할 수 없다!" 그의 말은 매우 단호했다. 북궁후의 입꼬리에 희미한 미소가 스쳐 갔다. '흥! 보기보다 꼿꼿한 인물이군. 하긴 범속한 자라면 다룰 맛도 없지!' 하지만 그는 내심과는 달리 차가운 한광을 뿌리며 노기를 번뜩였 다. "만일 내가 검으로써 당신을 꺾는다면?" 천경유사의 표정이 괴상하게 변했다. 그는 혹시 자신이 잘못듣지 는 않았나 생각했다. '속칭 검조(劍祖)라 불리우는 내게 감히 검으로 도전하겠다고?' 그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떠올렸다. 그는 혹시나 하여 새삼 북궁후 를 살펴보았으나 특별한 기세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백면 서생에 불과해 보였는데 그것이 문득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그는 비로소 생각을 정리한 모양이었다. 이내 자세를 고쳐잡고 고 요한 눈길로 북궁후를 응시하더니 오른손을 내밀었다. 순간, 모옥에서 돌연 ㅆ!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방문이 덜컹 열리 면서 한 자루의 흑검(黑劍)이 새처럼 날아와 그의 손에 쥐어지는 것이 아닌가! 북궁후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한 동작으로 도인섭물(導引攝物)을 펼쳐 방 안에 있던 검을 끌어오다니! 과연....' 이때 천경유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좋을 대로 하시기를." 북궁후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단 삼 초에 당신을 꺾겠소." 천경유사의 눈썹이 곤두섰다. "광오하군!" 천경유사는 검은 광채가 은은히 머물고 있는 흑검을 머리 위로 세 워 들었다. 북궁후는 허리에 매달린 뭉툭한 검을 뽑으며 말했다. 그것은 시뻘건 녹이 잔뜩 슬어 도대체 검인지 아니면 쇠꼬챙이인 지 분간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일전에 화령에게 제련을 부탁 했다가 거절당했던 적이 있던 바로 그 웅검(雄劍)이었다. "삼 초만에 당신의 그 생각은 뒤집히고 말 거요." 그의 검을 본 순간 천경유사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저 따위 검으로 노부를?' 그는 지독한 모욕이라고 느꼈으나 천하대석학답게 워낙 수양이 깊 었는지라 감히 경시하지 않았다. 이내 노련한 검수답게 자신의 검 을 가슴 앞에 세웠다. ■ 검 2권 제17장 천하를 밝히리라! -7 ━━━━━━━━━━━━━━━━━━━━━━━━━━━━━━━━━━━ ⑦ 짧은 침묵이 흘렀다. 섬뜩한 독벌레의 울음소리만이 간간이 들려 오고 있었다. 이때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던 두 사람 사이에서 돌연 거문고의 현 이 끊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음향이 터지면서 북궁후의 옷자락이 번뜩였다. 북궁후의 손에 들린 웅검에서 새하얀 검기(劍氣)가 치솟더니 일순 간에 어망(漁網)처럼 확 퍼지며 천경유사의 몸을 뒤덮었다. 그 순간 천경유사의 몸은 그림자처럼 허공을 회전했다. 그의 검 끝에서 불꽃이 퉁기며 부챗살같은 검기가 주위 십여 장을 차단하 였다. 헌데 꽈지직! 하는 파열음과 함께 천경유사는 열여덟 개의 불기둥 이 자신의 호신검막을 뚫고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대경실색하여서는 급히 불사이검식(不死二劍式)의 수비초식 인 불사무원(不死無元)을 연달아 펼쳤다. 그러자 검신에서 돌연 회오리치듯이 쏟아져 나온 시퍼런 검기가 순식간에 열여덟 개의 불기둥을 휘감으면서 방향을 오른쪽으로 홱 꺾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쩌러렁! 하는 뇌성이 울리면서 두 사람의 검경은 한쪽에 있던 모 옥 쪽으로 성난 파도처럼 밀려갔다. 요란한 폭발음이 터지면서 모옥이 물기둥처럼 치솟아오르는가 싶 더니 이내 폭삭 주저앉고 말았다. 이때 북궁후는 표표히 예의 자리에 내려서고 있었고 천경유사는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잿더미가 되어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모옥을 바라보고 있었다. '단 삼 초의 대결이었지만... 내 평생에 이토록 무서운 적수를 만 나본 적이 없다!' 그는 내심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기 위해 소매를 들다가 돌연 대경실색하 고 말았다. "헉! 이, 이럴 수가!" 놀랍게도 자신의 소매에는 불에 그을린 듯한 열여덟 개의 구멍이 여기저기 뚫려 있지 않은가! 그것도 곡지혈(曲池穴)과 소부혈(少府穴) 등, 양 팔의 치명적인 중요 대혈이 있는 곳에 말이다. 천경유사는 절망적인 시선으로 북궁후를 쳐다봤다. 북궁후는 태연 한 얼굴로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입가엔 매력적이고도 신비한 위 엄을 담은 미소가 어려 있었다. 천경유사는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단... 한 가지만... 묻겠소!" 허나 그의 질문이 나오기도 전에 북궁후의 담담한 음성이 흘러나 왔다. "나는 천기무적검경(天機無敵劍經) 중 검류(劍流)와 검기(劍氣)를 약간 응용해 보았소." "으으!" 천경유사가 비틀거리더니 북궁후 앞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검조라 불리운 천경유사가 마침내 무릎을 꿇은 것이었다. 천경유사가 참담하게 입을 열었다. "내게 내릴 명령은?" "당분간 내 부친이 되어 주시오." "부친?" 천경유사의 눈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 너무나 뜻밖의 말이었던 것이다. "후후!" 북궁후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며 하늘을 보았다. '이것으로... 내 주위에 펼쳐질 놈들의 포석을 사전에 끊어 놓는 안배는 끝났다!' 그만이 알고 있는 깊은 뜻이 담긴 말이리라. 남극(南極)의 하늘은 짙푸르렀다. 무성한 나무들이 야심차게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 검 2권 제18장 천마전(天魔殿) 백십팔관문! ━━━━━━━━━━━━━━━━━━━━━━━━━━━━━━━━━━━ ① 위치를 알 수 없는 깊숙한 밀실(密室)이었다. 밀실 안에는 숨막힐 듯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한 명의 노인이 밀실 안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늙은 원숭이같이 추괴한 용모에 몸에는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금포를 입고 있었다. 번쩍이는 금포는 바닥까지 끌리고 있었다. 그는 바로 곤륜산 망우곡에 머물며 여의괴노라는 이름으로 신분을 감추고 있던 투령문의 문주 투령신옹 추린이 아닌가! 승소진과 북궁후도 일면식이 있는 희대의 괴물로서 북궁후에게 불 길한 예감을 주었던 바로 그 인물! 그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헌데 주름살 투성이인 그의 얼굴엔 이상한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다. 이때 밖에서 은밀하고도 빠른 음성이 들려왔다. "주상(主上)! 그가 왔습니다." "오!" 추린은 걸음을 멈추며 짧은 격동음을 발했다. "하온데...." 갑자기 밖의 음성은 말끝을 흐리며 더듬거렸다. 추린은 한 가닥 불길한 기색을 떠올렸다. 그는 자신의 불안을 떨쳐 버리기라도 할 듯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무슨 일이냐?"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크와하하하!" 하늘이 무너질 듯한 굉렬한 웃음과 동시에. "사부, 내가 왔소!" 꽝! 소리가 들리며 밀실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그리고 한 명의 청년이 마치 제 집처럼 거침없이 들어왔다. 약 십칠 세 가량 되었을까? 훤칠한 체격에 제법 준수한 얼굴의 미 공자였다. 이 청년이 투령신옹의 제자란 말인가? 마치 돌아온 탕아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청년의 창백한 미남형의 얼굴은 술기운에 잔뜩 젖어 있었다. 준미 한 눈매는 힘없이 풀어져 있었다. 헌데 기이하게도 그의 몸에서는 사악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딱히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는데 뭔가 불길한 징조를 보여주는 그런 기운이었다. 청년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는 순간 추린의 눈이 부릅뜨여졌다. "이, 이럴 수가!" 그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지더니 온몸에 세찬 경련을 일으켰 다. 청년의 모습이 그에게 꽤 큰 충격을 준 것 같았다. 그의 입에 서 분노에 떨리는 음성이 더듬거리며 흘러나왔다. "이 놈... 십 년간이나 무공을 가르쳐... 대명(大命)을 짐지어... 소뢰음사(少雷音寺)로 보냈더니...." 그는 잡아먹을 듯이 청년을 노려보고 있었다. 청년이 초점 풀린 눈으로 그를 힐끗 바라보더니 갑자기 광소를 터뜨렸다. "와하하하! 마검(魔劍), 마검 말이오?" 그는 돌연 웃음을 뚝 멈추더니 히죽 웃었다. "사부의 명대로 마검을 가져왔소!" 그는 자신의 허리에 찬 한 자루 묵검(墨劍)을 힘주어 쥐었다. 묵검을 쏘아보는 추린의 얼굴에 터질 듯한 기쁨의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추린과 청년의 눈이 허공에서 부딪치며 기광을 뿜었다. 강철판이 라도 뚫을 듯 강렬한 눈빛들이었다. 문득 청년은 계속 추린을 주 시하면서 한 손으로 천천히 검을 뽑아들었다. 격탕노도 속을 헤엄쳐 오는 거대한 흑룡(黑龍)의 울음이련가? 먹물을 뿜어낼 듯 칙칙한 흑광이 감도는 검신은 보는 이의 혼백을 통째로 빨아들일 듯 강렬한 마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마검! 난세(亂世)를 부른다는 악마의 검이 마침내 세상에 출현한 것인가? 한동안 넋을 빼앗긴 듯이 마검을 바라보고 있던 추린이 퍼뜩 정신 이 들었는지 주름살을 활짝 피면서 히죽 웃었다. "오, 기아(奇兒)! 네가 마침내 이 사부의 숙원을 풀어주었구나!" 그는 자애로운 미소를 흘리며 손을 내밀었다. "어서, 어서 그 검을 다오." 청년의 눈에 두 줄기 한기(寒氣)가 치달았다. "이 검을 달란 말이오?" "그렇다. 기아, 그, 그것은...." "왜?" 청년의 짤막한 반문에 추린은 일순 할 말을 잊고 당황의 빛을 떠 올렸다. 청년이 빙그레 웃었다. "이 마검은 나, 사마기(司馬奇)가 죽음을 무릅쓰고 이역(異域)만 리를 달려가 간신히 구해 온 것인데 왜 사부를 주어야 한단 말이 오?" 추린은 벼락을 맞은 듯 격렬히 몸을 떨었다. 그는 얼굴이 잿빛이 되어 버럭 소리쳤다. "사마기! 네, 네가 사부를 배신하겠다는 것이냐?" 그의 음성이 격하게 떨리고 있었다. 청년은 바로 천마협 사마기였 다. 헌데 그가 바로 추린의 제자였단 말인가? 사마기는 그를 힐끗 보더니. "배신? 아니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사부는 너무 늙었소. 해서 좀 쉬게 해드리려는 것뿐이오." 순간 추린은 보았다. 야심(野心)! 섬뜩한 핏빛의 야심이 사마기의 그 눈꼬리에 감춰져 있는 것을! ■ 검 2권 제18장 천마전(天魔殿) 백십팔관문! -2 ━━━━━━━━━━━━━━━━━━━━━━━━━━━━━━━━━━━ ② '으으, 저 놈이 어느새!' 그는 가슴 한구석에 차가운 비수날이 스미는 듯한 섬뜩함에 으스 스 몸을 떨었다. '마검, 저 마검의 저주 때문이란 말인가?' 사마기는 마검을 검집에 꽂으며 무심한 듯 내뱉았다. "사부는 너무 늙었소! 너무 재는 게 많단 말이오!" "으, 네놈이?" 추린은 눈을 부릅떴다. "머리란 알맞게 써야지. 너무 굴리다간 오히려 시기를 잃기 쉽 지." 사마기는 거만하게 말했다. 도대체 이 무례는 하늘같은 사부 앞에 서 될 법이나 한 것인가? 돌연 추린은 분기탱천해 문 밖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여봐라!" 얼마나 분노했는지 내장이 다 짓뭉개져 쏟아져 나올 듯한 목청이 었다. 검은 그림자가 번뜩이는 순간 세 명의 흑포인이 귀신같이 나타났다. "어서 저 놈을...." 그들에게 주살명령을 내리려던 추린이 돌연 말을 끝맺지 못하고 어이없는 빛을 흘렸다. 그들은 모두 사마기를 향해 부복하고 있었 다. 그리고 일제히 한 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주상!" "존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추린의 얼굴이 휴지처럼 구겨지고 있었다. '아아, 이런 빌어먹을!' 그는 그만 분노를 참지 못하고 울컥 한 모금의 선혈을 토해내더니 주춤거리면서 뒤로 물러섰다. "와하하... 핫핫! 사부의 은령궁은 이미 내가 접수했소!" 사마기가 앙천대소를 터뜨리며 천천히 몸을 돌려 석실 밖으로 나 가고 있었다. 문득 그는 문 앞에서 고개를 홱 돌려 추린을 노려보 았다. "왜냐고 묻지 않소?" 순간 추린은 입가의 피를 소매를 닦으며 홀린 듯 따라 물었다. "대체, 왜?" "흐흐흐, 천하(天下)를 얻기 위해서요." 사마기는 옆구리의 검집을 매만지며 음산하게 내뱉았다. "나는 이 마검 한자루로 천하를 내 손아귀에 넣겠소. 반드시!" 그는 말을 마침과 동시에 차갑게 몸을 돌려 문 밖으로 사라졌다. 추린은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마치 한 차례 광란의 폭 풍에 시달리고 난 듯 온몸의 기운이 탈진되었다. 그는 왜소한 몸 을 웅크리면서 처참하게 중얼거렸다. "양호우환이라더니... 내,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단 말인가?" 어느새 세 명의 흑포인들은 사마기를 따라 그림자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텅 빈 밀실. 추린의 음울하게 꺼진 눈빛만이 어둠처럼 깔리고 있었다. ■ 검 2권 제18장 천마전(天魔殿) 백십팔관문! -3 ━━━━━━━━━━━━━━━━━━━━━━━━━━━━━━━━━━━ ③ 호북성(湖北省) 의창(宜昌). 의창은 삼국지연의의 옛 싸움터로서도 유명하며 근교에는 촉의 유 비가 오의 육손과 싸운 효정과 관우가 오의 여몽에게 참수된 당양 (當陽) 등 많은 명승이 남아 있는 곳이다. 특히 당나라 시대에 시인 백거이, 송대에 소구(蘇 ), 소식(蘇軾) 등이 방문함에 따라 삼유동(三遊洞)이라는 이름의 명승지가 있는 데 부근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절강의 조화는 절경이다. 근교(近郊)에 있는 강릉(江陵)에는 삼국시대 관우가 살았던 초 (楚)의 기남성(紀南城) 터가 남아 있다. 특히 관우를 모신 관제 묘, 철녀사(鐵女寺) 등이 있다. 이 유서 깊은 의창에 또 하나의 명소(名所)가 있었다. <금린대전장(金麟大錢莊).> 화중이북(和中以北)의 막강한 상권(商圈)을 장악하고 있는 중원 최대의 전장이었다. 천하(天下)의 반(半)을 살 황금(黃金)이 금린 대전장에 있다고 했다. 특히 철저한 신용거래로 천하 재계거물(財 界巨物)들을 단골로 확보하고 있었다. - 장주 재옹(財翁) 금명철(金明鐵). 이 이름은 강북 일대를 휘어잡고 있었다. 허나 정작 그에 대해 아 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의 신분내력이 무엇인지, 그가 어떻게 저 어마어마한 황금을 모았는지, 실제 그가 지닌 재물이 얼마나 되는지, 그에 대한 모든 것은 철저한 신비에 가려져 있었다. 다만 소문에 의하면 그는 신인(神人)의 경지에 이른 무공의 소유 자로 그 실력은 천하를 십분(十分)할 정도라고 했다. 때는 정오,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양자강의 푸른 물결 이 파도치는 강변이었다. 단단한 바위를 깎아 만든 방파제가 십여 리에 걸쳐 펼쳐져 있었다. 헌데 그 방파제에서 내륙 쪽으로 십여 장 떨어진 곳에 일 장 높이의 담벽이 온통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장원이 보이고 있었다. 말이 장원이지 하나의 궁궐을 연상케 할 정도로 웅장하였는데 바 로 이곳이 세인들이 말하는 의창의 최후의 명소인 금린대전장이었 다. 금린대전장 내의 화려한 내청(內廳)에는 호피가 깔린 호화스런 태 사의가 있었다. 그리고 태사의에는 한 인물이 의연한 기개로 앉아 있었다. 헌데 그는 바로 북궁후가 아닌가. 그의 옆에는 천예궁이 날아갈 듯한 우아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그들의 좌우에는 승소진, 천낭중, 화령이 우뚝 서 있었다. 전면에는 이십여 명의 갈포인(葛袍人)들이 낮게 부복해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개를 보이고 있었는데 일견하여 대단한 무예를 지닌 고수들 같았다. 그들은 바로 철기령의 인물들 이었다. 그들의 맨앞에서는 지금 비대한 체구의 노인이 포권한 채 북궁후 를 향해 입을 열고 있었다. 혈색 좋은 붉은 얼굴, 가슴까지 드리 운 은빛 수염, 눈빛은 투명하리만큼 깊고 맑았다. 일신의 공력이 상당한 경지에 이른 고수같았다. 노인은 바로 금린대전장의 장주 금명철이었다. 그렇다면 그 또한 철기령의 일원이었단 말인가? 지금 북궁후는 천하에서 가장 정통한 소식망인 철기령으로부터 강 호정세를 보고받고 있는 중이었다. ■ 검 2권 제18장 천마전(天魔殿) 백십팔관문! -4 ━━━━━━━━━━━━━━━━━━━━━━━━━━━━━━━━━━━ ④ 당금 강호(江湖)는 쥐죽은 듯 고요했다. 천하를 떠들썩하게 만들 던 만류교, 혈륜마성은 물론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자라나던 수 만 방파들까지 활동을 중지한 것이었다. 그것은 실로 괴이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중원은 일시에 불안한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헌데 그 와중에도 천하의 두 곳에서 신 비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황산(黃山)과 대별산(大別山)에서 어마어마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험산준악의 거봉들을 구비쳐 수십 리에 걸친 엄청난 규모의 축조 공사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왜? 무엇 때문에? 아무도 몰랐다. 단지 뭔가 불길한 것이 시작되고 있었고, 이제 그 종착지를 향해 치달려가고 있다는 것만 을 짐작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대역사(大役事)는 강호를 극도의 긴장 속에 몰아넣었다. 이때 알 수 없는 불안 속에서 전전긍긍하던 무림인들이 환성을 지 를 만한 일이 생겼는데 그것은 바로 소림삼천불(少林三天佛)이 마 침내 백 년 폐관을 마치고 출관하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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