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소설]천중행 - 검 - 34편 (34/46)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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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소설]천중행 - 검 - 34편 (3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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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스름한 달이 서천에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때는 삼경(三更)을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청해성(靑海省)과 감숙성(甘簫省)의 경계지역인 험준한 산중소로 (山中小路)였다.
조용한 밤바람이 새벽의 찬공기를 몰아오고 있을 뿐 깊은 산중은 적막했다.
헌데 문득 한 인영이 윤기 빛나는 흑의(黑衣)를 나부끼며 이 산중 소로에 나타났다.
누구나 첫눈에 매료되고 말 출중한 용모를 가지 고 무심한 듯한 표정에 희미하게 떠올라 있는 신비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는 북궁후였다.
그는 유유자적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으나 실상 그의 발은 땅에 닿지도 않았으며 한걸음에 수십 장 거리를 미끄러지듯 나아가고 있었다.
이때 산중(山中)의 적막을 깨는 규칙적인 말발굽소리가 들려왔다.
북궁후의 눈썹이 가볍게 꿈틀거렸다. '이 야심한 시각에 누가 산중을?' 잠시 후, 눈 앞의 소로 사이로 한 필의 백마가 나타났다.
잡털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미끈한 백색의 천리준구(千里俊駒)였 다.
마상(馬上)에는 새하얀 백의를 입은 사내가 타고 있었는데 뜻 밖에도 그는 뛰어난 용모를 가진 미서생이었다.
약 십칠 세 가량 되었을까? 희디흰 피부에 정성들여 세공한 듯 뚜렷하고 섬세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흰 천으로 이마를 질끈 동여맨 청수함 속에 는 미려(美麗)함까지 엿보이고 있었다.
서늘한 두 눈은 언뜻 남장여인을 보는 것처럼 고혹적인 느낌까지 주고 있었다.
천중귀인(天中貴人)이란 찬사를 듣고 있는 북궁후보 다 더욱 뛰어난 용모였다.
달밤에 유람이라도 나온 듯한 백의서생과 마치 산보를 하듯이 유 유자적 걷고 있는 두 사람의 거리는 점차 가까워졌다.
이때 백마를 타고 오던 백의서생이 북궁후를 발견한 듯 행마의 속 도를 늦추었다.
그는 이 야심한 밤에 산중을 걸어오고 있는 북궁후의 존재가 뜻밖 이라는 듯 기광을 번뜩였는데 그속에는 일종의 기이한 호기심도 섞여 있었다.
언뜻 고개를 든 북궁후와 백의서생의 시선이 오 장여의 거리를 두 고 서로 마주쳤다.
순간적으로 상대방의 용모에 대한 무한한 감탄 의 빛이 두 사람의 눈에 동시에 어렸다.
허나 그것도 잠시 그들은 즉시 고개를 돌렸다.
불필요한 인연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기실 한밤중에 산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다는 것은 꺼림직한 일임에는 분명했다.
특히 무림이라는 이곳은 더욱 그러하지 않겠는가! 그들이 다가오는 곳에서 중간어림에는 우측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 었는데 놀랍게도 두 사람의 행보는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우연하게도 갈림길로 나란히 꺾어 들었다.
자연 두 사람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상대의 빼어난 용모에 호감이 가기는 했지만 인간이라는 것 이 원체 표리부동한지라 자연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백의서생은 백마를 조심스럽게 몰고 있 었고 북궁후 역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창백한 달빛이 두 사람의 어깨 위로 부서져 내렸다.
두 사람은 침 묵 속에서 소로를 따라 능선을 넘어가고 있었다.
헌데 막 능선에 발을 내딛던 북궁후의 눈가에 싸늘한 한광이 번뜩 였다.
그는 전면에 위치한 능선 아래에서 음침한 살기를 느낀 것이다.
그 살기는 의외로 짙어 꽤 많은 인원이 잠복해 있다는 것을 짐작 할 수 있었다. '저 백의서생을 노리는 것일까? 아니면 나를?' 이때 백의서생도 살기를 감지했음인지 돌연 낯을 찌푸리더니 고삐 를 당겨 말을 멈추고는 차갑게 소리쳤다. "누구냐?"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십여 명의 흑의복면인들이 능선 아래에 서 불쑥 솟아오르더니 두 사람의 전면에 내려섰다.
그들을 본 북궁후의 눈에 살기가 피어올랐다.
그들의 가슴에는 모두 만류교의 독문표시인 핏빛 뱀의 모양이 수 놓아져 있었던 것이다. '내가 천마봉에서 뇌소천과 헤어진 것이 불과 한 시진 전, 헌데 이들의 이목이 이토록 빠르고 영민하단 말인가?' 그는 백의서생을 의식하였다. '아니, 어쩌면 나를 노린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는 힐끗 백의서생을 쳐다봤다.
그의 얼굴에는 짙은 의혹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나는 이제 처음 강호에 나온 몸이고, 누구와도 원한을 맺은 일이 없다.
허면?' 백의서생도 북궁후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 흑의서생을 노리는 것이겠군!' 그것을 확신하자 그는 다시 고삐를 흔들었다.
그는 불필요한 무림 인들의 분쟁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흑의복면인들 가까이 접근하면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본인에게는 볼일이 없을 것 같은데?" 허나 흑의복면인들은 석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백의서생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의 눈에 언뜻 노기가 떠올랐다.
상대방이 자신의 말에 아무런 반응이 없자 몹시 자존심이 상한 것 같았다.
북궁후가 문득 빙그레 웃으며 한발 나섰다. "그들은 아마 나를 상대하려는 모양이오." 그는 흑의복면인들을 쏘아보았다. "내게만 볼 일이 있는 거라면 그는 상관없을테니 비켜주는 것이 어떨는지." 그의 말투는 부드러웠으나 그속에는 차가운 위엄이 실려 있었다.
이때 동중북(東中北)의 방위에 서 있던 독수리눈의 복면인이 음침 하게 내뱉았다. "흐흐, 일단 우리의 모습을 본 자는 아무도 살아남지 못한다!" 북궁후의 눈매가 꿈틀하였다. "네놈은?" "흐흐, 본좌는 만류교의 은사당주(銀蛇堂主)다!" 그러고 보니 유독 그의 가슴에 그려진 뱀만은 은빛이었다.
그의 몸에서는 담담한 가운데 상대를 위압하는 기운이 뻗쳐나오고 있었 다. ■ 검 3권 제23장 검마(劍魔)의 부정(父情) -8 ━━━━━━━━━━━━━━━━━━━━━━━━━━━━━━━━━━━ ⑧ 북궁후의 입꼬리에 냉소가 걸렸다. "나를 기다렸느냐?" "흐흐, 천하에 본교의 이목을 속이고 갈 수 있는 곳은 없다!" "고마운 호위꾼들이군!" "자신하지 마라, 애송이! 흐흐 네 주위엔 이미 본교의 천라지망이 펼쳐져 있다!" "그런가?" 북궁후는 무관심한 듯 내뱉았다. "빠르군!" 그 한마디가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쳐라!" 흑의복면인들이 일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들은 일종의 검진(劍陣)을 펼치려는 것 같았다.
북궁후는 마상에 앉아있는 백의서생에게 고개를 돌렸다. "형장은 손해를 보기 전에 어서 이곳을 빠져 나가시오." 백의서생이 기이한 빛이 감도는 눈으로 북궁후를 내려다 보더니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허나 저들은 결코 나를 보내줄 것 같지 않구려." 그는 이 위기 앞에서 자못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이때 사사삭! 하 는 소음이 들리면서 두 사람을 에워싸고 있던 흑의복면인들의 신 형이 뿌옇게 흐려지고 있었다.
북궁후는 고개를 갸웃하였다. '특이한 검진이로군.
하지만 일각이 지나면 즉시 파해할 수 있 다.' 그는 천천히 허리의 천패검을 뽑으려 하였다.
이때 묵묵히 흑의복면인들의 검진을 지켜보던 백의서생의 서늘한 눈에서 차가운 한광이 뿜어졌다.
그는 품 속에서 조그만 물체를 꺼냈다.
백옥(白玉)으로 만들어진 기다란 소뿔(牛角) 형태의 얄팍한 검이었다. "내 가능한한 강호시비에 말려들지 않으려 했거늘!" 번쩍! 하는 순간 백의서생의 신형은 말 위에서 솟구쳐 순식간에 검진의 중앙으로 파고 들었다.
쐐애애액! 그의 손에 들려있던 우각검(牛角劍)에서 시퍼런 검기가 일직선으 로 한 명의 복면인을 향해 폭사되어갔다.
그 일검은 너무나 빨라 흑의인들의 진세가 미처 제구실을 하기도 전에 뿌연 그림자를 ㅉ아 꿰뚫고 있었다. ■ 검 3권 제23장 검마(劍魔)의 부정(父情) -9 ━━━━━━━━━━━━━━━━━━━━━━━━━━━━━━━━━━━ ⑨ "크흑!" 핏줄기가 푹! 솟으면서 그 복면인은 왼쪽 가슴을 움켜쥐고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 순간 뿌옇게 변해가던 흑의인들의 점차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 었다. "이럴 수가!" 그들 중 누군가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나왔다.
한 명이 빠져버리자 막 발동을 하려던 검진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 이다.
헌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져 있던 흑의인이 퉁기듯이 벌떡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이미 즉사를 면치 못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던 북궁후의 눈에 놀람의 빛이 떠오 르더니 그것은 이내 감탄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는 필시 그가 펼치려는 검진의 덕택이리라.
대단하구나.
채 발 동도 하지 않은 검진의 위력이 검기를 파해할 정도라니!' 복면인은 급히 진열에 복귀하려는 듯이 몸을 뒤로 빼고 있었다.
이때 출수를 하고 허공에 떠 있던 백의서생이 발끈하는 표정이더 니 돌연 우각검이 재차 예의 복면인을 향해 섬전같은 검기를 내려 치고 있었다.
서걱! 하는 소음과 함께 복면인의 오른팔이 피보라를 뿌리며 허공 으로 날아올랐다.
백의서생이 그의 팔을 노린 것이 아니라 복면인이 부지불식간에 오른팔을 들어 막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헌데 복면인의 오른팔을 날려버린 검기가 돌연 살아있는 생명체처 럼 우측으로 꺾이더니 그대로 복면인의 목을 노리고 베어가지 않 는가! 대경실색을 한 복면인은 이번에는 자신의 왼팔을 들어 검기를 막 고 있었다.
그의 왼팔이 뭉턱 잘리며 내동댕이 쳐지고 있었다.
양쪽 팔 부위에서 피분수를 뿜으면서도 복면인은 조금도 고통스러 워 하거나 두려움의 표정없이 입을 벌렸다.
그러자 좌측에서 불쑥 손이 나오더니 그의 입에 한 자루의 검을 물려주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그의 신형이 뿌옇게 흐려지면서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 다.
복면인은 검을 입에 문 채 검진에 복귀한 것이었다.
여전히 허공 에 떠 있던 백의서생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지독한 놈들이구나!' 백의서생은 등줄기에 한기가 솟아 올랐다.
복면인이 복귀를 하자 진세는 급변했다.
주위로는 시퍼런 칼날들이 휘몰아 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수 천 개의 칼날이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점차 두 사람 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때 북궁후는 골몰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전혀 이 위기를 의식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주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칼날들을 지그시 관망하고 있었다.
갑자기 처절한 말울음소리에 북궁후는 번뜩 정신이 들었다.
그의 시야에 전신이 갈가리 찢겨져 나가는 백마의 모습이 들어왔 다.
백마는 순식간에 시뻘건 고깃덩이로 변하여 검풍의 회오리를 타고 하늘로 날아 오르고 있었다.
그 순간 북궁후는 번개같이 머리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이때 백의서생의 전음이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형장! 소제가 홍문을 공격할 때 형장께선 중궁을 공격해 주시오.
그것이 바로 광도십이진을 파해하는 방법이오!) 백의서생이 지척지간에 내려서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몹시 당황한 것 같았다.
그 모습이 강호경험이 전혀 없는 초출을 보는 것 같아 북궁후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떠올렸다. "이것은 광도십이진이 아니오.
형장의 말대로 공격했다가는 개죽 음을 면치 못할 것이오." 그는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백의서생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 검진을 살폈다.
이윽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놀람을 감추지 못했 다. '과연, 천하는 넓구나! 광세제일의 기재(奇才)임을 자처하던 내가 아니던가! 헌데....' 그는 문득 섬뜩한 느낌이 들었는지 북궁후를 경계의 눈빛으로 보 고 있었다.
북궁후 역시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광도십이진(曠道十二陣)이라면 오백 년 전 귀곡자가 소림사의 백 팔나한진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절세의 검진이었다.
더구나 귀곡 자가 미처 응용해 보기도 전에 원인모르게 실종되어 무림의 기록 에서조차 말소되었던 신비의 괴진(怪陣)이 아닌가! 그것을 단번에 알아본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안목이었다.
헌데 지금 만류교 인물들이 펼치는 광도십이진에는 경이롭게도 또 다른 절진이 가미되어 있었던 것이다.
북궁후가 아니면 누구도 눈치챌 수 없는 절묘함이었다.
이때 북궁후가 막 뽑으려던 천패검을 도로 넣으며 의미심장한 미 소를 흘렸다. "형장께서 도와주고 싶다면 사문(死門)으로 뛰어 드시오!" '사문이라고?' 백의서생은 아연했다.
그건 죽음으로 뛰어 들라는 말과 진배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 검 3권 제24장 죽음의 천라지망(天羅之網) ━━━━━━━━━━━━━━━━━━━━━━━━━━━━━━━━━━━ ① 헌데 백의서생은 뜻밖에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의외로 북궁후 에게서 신뢰감을 느낀 것 같았다. "알겠소!" 백의가 희끗 하는 것 같더니 그는 쏜살같이 동북쪽 방위로 뛰어들 었다.
그곳은 다른 곳보다 더욱 강력한 칼날이 휘몰아치고 있었는 데 놀랍게도 그가 뛰어들자 눈 앞이 확 밝아지면서 한 명의 흑의 복면인이 억! 하는 소리를 내면서 황급히 우측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백의서생은 우각검을 수평으 로 후려쳤다. "크아악!" 흑의복면인의 수급이 댕강 떨어져 나갔다.
그러자 그토록 무섭게 몰아치던 칼날들이 거짓말처럼 눈 앞에서 사라졌다.
허공에 떠 있는 백의서생의 시야에 경악의 눈빛으로 주춤거리면서 뒤로 물러서고 있는 흑의복면인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검진이 깨어지고 난 후의 그들의 모습은 마치 비루먹은 강아지 새 끼들 같았다.
백의서생의 얼굴에 대뜸 분노의 빛이 떠올랐다. "이 버러지 같은 것들 때문에...." 그는 불현듯 난도질당해 고깃조각으로 변해버린 자신의 애마(愛 馬)가 머리속에 떠올랐던 것이다.
짤막한 기합성과 함께 우각검이 허공에서 호선을 그렸다. "피, 피해라!" 쐐애애액! 수십 줄기의 검기가 폭풍처럼 흑의복면인들을 휩쓸어갔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흑의복면인들의 머리와 팔, 다리 등이 풀잎 처럼 베어져 날아가고 있었다.
장내는 채 숨 한 번 몰아쉴 시간도 지나지 않아 피바다로 변했으 며 절단된 사지와 육신들이 나뒹굴었다.
백의서생이 소리없이 북궁후의 옆에 내려섰다.
그의 얼굴은 아직 도 분노가 가시지 않았는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가 비스듬히 들고 있는 우각검에서는 핏물이 뚝뚝 떨어져 내리 고 있었다.
한동안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을 보던 백의서생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더니 북궁후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제 기분이 좀 풀렸소?" 북궁후가 빙긋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백의서생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 사내는...!' 북궁후는 너무나 태평스러웠다.
백의서생은 피식 웃고 말았다.
허나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내 북궁후를 보았다. "우리는 당분간 함께 행동할 수밖에 없을 것 같구료." "그럴 것 같소." 북궁후가 고개를 서쪽으로 돌렸다. "왜냐하면 두번째 손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오." 백의서생은 섬뜩한 느낌이 들어 서쪽을 보았다.
깡마른 체구에 회색의 장포를 입은 괴인들, 네 명의 회색장포인들 은 십여 장 정도 떨어진 서쪽의 한 고목나무의 나뭇가지 위에 앉 아 있었다.
위아래의 가지 위에 유령처럼 앉아 있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네 마리의 회색박쥐가 달라붙어 있는 것 같았다.
갈대숲처럼 나부끼는 억센 잿빛 머리칼, 흩날리는 머리칼 속의 얼 굴은 밀납처럼 파리했다.
움푹 꺼진 두 동공에서는 이글거리는 녹화(綠火)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곳에 앉아 지금까지 벌어졌던 모든일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한줄기의 바람이 불어오자 북궁후는 문득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
그것은 역한 비린내였다.
생선비린내같기도 했고, 시체가 썩으면 서 내뿜는 악취같기도 했다.
다시 그들을 휘감고 맴돌던 바람이 이쪽으로 불어오자 북궁후는 좀더 구체적인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의 얼굴에 긴장의 빛이 떠올랐다. "저들은 독강시(毒 屍)인 것 같소." "독강시?" 백의서생의 얼굴이 핼쑥하게 변했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주춤 한 걸음 뒤로 물러서고 있었는데 뜻밖 에도 그의 눈에는 일종의 호기심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그때였다. "흐흐, 그래도 눈은 제대로 박혔구나!" 회색장포인들의 머리 위에서 음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검 3권 제24장 죽음의 천라지망(天羅之網) -2 ━━━━━━━━━━━━━━━━━━━━━━━━━━━━━━━━━━━ ② 회색장포인들의 머리 위 다섯 자 정도 되는 높이에 한 명의 괴인 이 진짜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작달막하고 오동통한 체구의 그는 마치 솔방울을 보는 것 같았는 데 붉은 머리칼이 아래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 길이는 그의 키 를 넘는 것 같아 괴상한 느낌을 주고 있었는데 그는 눈동자까지 새빨간 적안(赤眼)이었다.
그는 날렵하게 몸을 돌려 가지 위에 걸터앉았다.
가지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은 인간이 아닌 야생동물 을 연상케 했다. "네가 바로 천마봉에서 뇌소천을 구해간 그놈이렸다?" 그는 북궁후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이한 일이군.
어떻게 너같이 젓비린내도 가시지 않은 애송이가 내 사제들의 걸작품을 송두리째 날려버렸을까?" 북궁후는 그가 나아이신(羅阿二神)과 백팔마정환혼강시를 언급하 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갑자기 가슴 한구석이 섬뜩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때 적발괴인은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더니 마침내 해답을 찾은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내 판단이 틀리지 않다면 그것은 뇌소천의 작품임에 분 명하다." 그는 북궁후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네놈도 예사놈은 아니구나.
네놈 때문에 본교에 비상령이 내렸으니 말이다." 북궁후가 빙그레 미소했다. "아, 이제야 당신이 기억났소.
당신은 바로 적염수라(赤髥修羅) 기역(奇易)이 아니오?" 적발괴인의 낯빛이 굳어졌다. "네놈이 노부를 알다니!" "강시( 屍) 다루는 귀신 적염수라를 모를 사람이 있을까?" 적발괴인의 눈에 살기가 돌기 시작했다.
북궁후가 계속 말했다. "헌데 실망이군.
당신이 만류교의 졸개가 되었다니...." - 적염수라 기역.
칠십 년 전의 흑도거마(黑道巨魔)였다.
백골교(白骨敎)의 전대교주(前代敎主)이며 백골마공(白骨魔功)의 유일한 전승자(傳承者)이기도 했는데 천하의 강시들을 다루는 데 는 그를 능가할 인물이 없었다.
뇌소천에게 죽음을 당했던 나아이신(羅阿二神)은 바로 그의 사제 들이었다.
헌데 역대 전 무림을 통틀어 가장 사악한 강시박사(疆屍博士)라 불리우는 그가 만류교의 주구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이때 북궁후는 번개같이 염두를 굴리고 있었다. '저 활마독강시(活魔毒 屍)들이 발동되면 상황은 매우 불리해진 다! 방법은 단 하나!' 그는 이미 천마봉에서 백팔마정환혼강시를 상대해본 경험을 십분 되살리고 있었다.
더구나 상대는 나아이신보다 더욱 무서운 존재 가 아닌가.
그렇다면 필경 활마독강시의 위력 또한 백팔마정환혼강시보다 월 등할 것이 분명했다.
이때 적염수라가 막 뭐라고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가라!" 돌연 북궁후의 몸에서 섬전같은 빛줄기가 치뻗었다.
쾌(快)! 그뿐이었다.
그가 언제 검을 뽑았는지, 어떻게 검을 날렸 는지, 아무도 보지 못했다.
백의서생은 다만 그의 벼락치는 듯한 외침만 들었을 뿐이었다. "크아아아악!" 적염수라가 처절한 비명과 함께 펄쩍 뛰어올랐다.
허나 그는 뛰어올랐을 뿐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나무에 대롱거 리며 매달려 있었다.
그의 목에는 한 개의 검이 깊숙이 박혀 있었는데 검은 그의 목을 뚫고 뒤로 삐죽이 나와 나무에 박혀 있었던 것이다.
실로 눈 깜짝할 순간의 일이었다.
백의서생의 얼굴에는 경악이 가득하였다.
적염수라같은 인물이 단 일초에 죽어가니 어찌 놀랍지 않으랴! 적염수라는 독강시에게 명령도 내리기 전에 북궁후의 일초에 숨통 이 끊어지고 만 것이었다.
북궁후가 손을 흔들자 적염수라의 목에 박혀 있던 검이 슉! 빠져 나오더니 새처럼 날아왔다.
적염수라의 몸이 흔들하더니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하였다. ■ 검 3권 제24장 죽음의 천라지망(天羅之網) -3 ━━━━━━━━━━━━━━━━━━━━━━━━━━━━━━━━━━━ ③ 북궁후는 검을 거두며 나직이 웃었다. "저자가 저 괴물들을 발동시키면 일이 귀찮게 되지 않겠소?" 그 말투는 너무나 자연스러워 이제 방금 절대고수 한 명을 죽인 사람같지가 않았다.
백의서생은 돌연 온몸에 소름이 쭉 끼쳤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소." 북궁후가 독강시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독강시들은 여전히 가지 위에 유령처럼 앉아 있었다. "저들은...
이 세상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는 것들이지." 북궁후가 손을 흔들었다.
그의 손이 붉게 변하더니 시뻘건 불덩이 가 독강시들에게 쏘아져 갔다.
화르륵! 불덩이는 삽시간에 독강시들의 몸을 뒤덮었다.
시커먼 연기가 확 퍼지면서 살을 태우는 악취가 코를 찔렀다.
그 러나 연기가 사라지고 나타난 독강시들의 모습은 백의서생을 놀라 게 하였다.
독강시들은 단지 머리털과 의복만을 태웠을 뿐 전신은 멀쩡하였던 것이다. "흥!" 북궁후가 냉소를 터뜨렸다. "태양파라신공!" 이번에는 시퍼런 섬광덩어리가 쏜살같이 독강시들을 덮쳐갔다.
파아아! 방원 십여 장이 대번에 가공할 화기에 휩싸이며 그 가운데 독강시 들이 가루로 흩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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