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헌원신공(天地憲元神功)! 바로 천지간에 음양의 조화(造化)를 가장 정심하게 순화(純化)시 킨 무공기예였다. 그 위력은 물론 빙백신공을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다. 허나 불행하게도 그녀는 자신의 천수가 다했음을 느끼고는 죽으면서 이러한 유언을 남겼다. <... 후대 궁주는 천지헌원신공을 익혀 천외유협이 나오거든 그를 제압한 후 천선회령단(天旋廻靈丹)을 복용시켜라! 단, 천지헌원신공을 익히기 위해서는 정순한 내공을 지닌 남녀가 함께 음양신단을 나누어 복용한 후 음양교합을 해야 십이 성 성취 를 이룰 수 있다!> 노옥정이 들려주는 빙궁의 비사는 그것으로 끝나고 있었다. 북궁후는 내심 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으로 처절한 무림 애사(武林愛事)가 아닌가! 노옥정이 더듬거리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음양신단이 완성된 것은 바로 한달 전이었어요. 때문에 나 는...." 그녀는 말을 맺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북궁후가 짓궂은 미소를 흘렸다. "후후, 그래서 신랑감을 구하러 나왔단 말씀이오?" 노옥정이 고개를 떨구었다. 북궁후는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 아닌가. 이 무림이라는 곳은 진정 기문괴사 가 거미줄처럼 얽히고 ㅅ힌다는 것을 북궁후는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문득 주령령의 얼굴이 떠올랐다. '연화공주가 알면 내 얼굴을 할퀴려 들겠군. 그녀와 정혼한 처지 이면서 벌써 세 여인을 취하게 되었으니....' 허나 이 순간 그는 사태의 심각성을 짙게 느끼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 이것도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면 우선 이 소녀의 죽음을 두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는 노옥정을 바라보았다. 터질 듯 달아오른 얼굴에 구슬같은 땀 이 맺혀 흐르고 있었다. 북궁후는 가슴 속에 진한 연민이 솟아오 름을 느꼈다. 그는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아!" 노옥정은 기다렸다는 듯이 수줍음과 기쁨에 달뜬 신음을 토하며 그의 품 속으로 무너져 왔다. 북궁후는 그녀를 품 속에 깊숙이 끌 어안았다. 그녀의 작은 몸은 불덩어리처럼 뜨거웠다. 헌데 문득 그녀는 고개를 들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공자께선... 소녀를 어찌 생각하시나요?" 북궁후는 그녀가 말하는 의미를 깨닫고 내심 탄식했다. 그는 부드 럽게 그녀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나의 마음은... 소저와 똑같소." "아!" 노옥정의 눈에 한없는 감사와 기쁨의 빛이 일렁거렸다. 그녀는 다시 그의 품 속으로 파고 들었다. ■ 검 3권 제26장 빙궁(氷宮)의 정사(情事)! -5 ━━━━━━━━━━━━━━━━━━━━━━━━━━━━━━━━━━━ ⑤ 그녀는 스스로 옷을 벗기 시작했다. 터질 듯 팽팽한 가슴, 잘룩한 버들허리, 그 아래로 깜짝 놀랄만큼 확산된 풍만한 둔부의 곡선, 그리고 알맞게 살이 오른 매끄러운 아랫배와 촉촉히 젖어 있는 신비의 밀림(密林). 실로 흠 잡을 데 없는 완벽한 여체였다. 북궁후의 눈빛은 담담하고도 무심한 듯 했지만 그의 가슴은 점차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대리석처럼 늘씬하게 뻗어내린 여인의 두 다리가 앞으로 내디딜 때마다 수초 사이의 은밀한 밀궁이 살짝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노옥정은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 채 북궁후를 그윽히 응시했다. 북궁후 역시 천천히 옷을 벗어 내렸다. 건장한 상체가 드러나고, 이어 군살하나 없는 미끈한 북궁후의 몸이 드러났다. 무심코 북궁후의 전신에 눈을 주던 노옥정의 몸이 움츠러 들었다. 청백의 몸을 유지하고 있는 소녀로서 이런 모습을 언제 보았겠는 가. 그녀는 눈을 돌리려 했으나 마치 북궁후의 몸에 고정된 듯 움 직여지지 않았다. 야릇한 공포가 그녀의 동공을 치달렸다. 알 수 없는 두려움과 기묘한 흥분에 그녀의 눈이 좁혀졌다. 북궁후가 나직이 웃으며 다가왔다. 그의 체취를 느끼자 숨이 턱까지 차올랐으나 황홀했다. 그녀의 전 신은 사정없이 떨고 있었다. 북궁후의 숨결이 뜨거워졌다. 북궁후의 눈에서 일렁이는 열기는 이내 노옥정의 가슴으로 옮겨왔 다. 그녀의 얼굴은 뜨겁게 달아올랐고 숨결은 야릇한 체취를 풍기 며 파도처럼 출렁이고 있었다. "대... 시간이 없어요" 노옥정이 북궁후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용기를 내서 입을 열었 다. 북궁후의 손에 힘이 쥐어졌다. 그녀는 전신이 으스러지는 고 통과 희열을 함께 느끼며 정신이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들의 몸이 서서히 기울어졌다. 달뜬 신음이 노옥정의 입가로 흘 렀다. 노옥정이 그의 품 속에서 얼굴을 들지 못한 채 더듬거리고 있었다. "음양신단을 복용한 후에 화합하며 익혀야 하는 천지헌원신공의 무공구결을... 제가... 알고 있어요." 그녀의 음성은 모기울음처럼 기어들었다. 북궁후의 입가에 신비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의 말은 곧 그 녀가 춘풍을 유도해야 한다는 말인 것이다. 북궁후가 나직이 웃음을 터뜨리자 노옥정의 얼굴이 타는 듯 붉어 졌다. 그녀는 곱게 눈을 흘겼다. 허나 천지헌원신공을 익혀 빙궁의 염원을 풀어야 하는 그녀로서는 지금 체면을 생각할 입장이 아니었다. 북궁후가 담담히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무너지듯 그의 가 슴 위로 엎어졌다. 북궁후의 손이 그녀를 가볍게 끌어당겼다. 꿈 틀거리는 팽팽한 가슴이 그의 가슴을 압박했다. 노옥정은 정신이 아찔했다. 북궁후는 잔잔히 불꽃이 피어오르는 눈으로 그녀의 하얀 이마에 구슬처럼 맺히는 땀방울을 응시할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노옥정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춘풍을 유도해야 했다. 그녀의 숨결은 더욱 거칠어졌다. 북궁후의 두 손이 그녀의 발갛게 상기된 가슴을 쓸어가자 노옥정의 붉은 입술 사이로 숨막히는 듯 한 신음이 흘러 나왔다. "으음!" 그녀의 몸이 약간 비틀렸다. 격동이 밀려들고 있었다. 열풍이 휘 몰아치고 있었다. 거친 해일이 두 사람을 할퀴고 있었다. 고통 속에서 마침내 북궁후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한치의 빈틈도 없이 밀착되어 일렁이기 시작했다. 잔잔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그들은 거친 파도에 휩쓸리고 있었 다. 이때 노옥정은 선천빙모가 완성한 천지헌원신공의 구결을 운 용하고 있었다. 빈틈없이 밀착된 두 사람의 몸을 감싸고 현란한 서광이 일렁였다. 서광에 감싸인 두 사람은 전혀 추하게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환상 처럼 아름다웠다. "아아!" 노옥정의 입에서 신음이 터지고 그녀의 희고 은어처럼 매끄러운 나신이 급격히 경직되어 갔다. 이어 뜨거운 열풍은 더욱 격렬히 몰아치기 시작했다. ■ 검 3권 제26장 빙궁(氷宮)의 정사(情事)! -6 ━━━━━━━━━━━━━━━━━━━━━━━━━━━━━━━━━━━ ⑥ 하나의 거대한 석실이었다. 대략 백여 평 정도 될까? 천정에는 주 먹만한 야광주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야광주는 흡사 흐르는 은 하(銀河)인 듯 아름답고 황홀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바닥은 은은히 비취빛 도는 청옥(靑玉)으로 깔려 있었다. "아! 이곳은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는군요!" 맑고 청아한 여인의 음성이 석실에 울려퍼졌다. 노옥정은 북궁후의 왼팔에 매달려 주위를 둘러보며 연신 탄성을 발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꿈을 꾸는 듯 아름다왔다. 사랑을 하고 비로소 여인이 되었기 때문일까? 하늘의 별보다도, 지상의 꽃보다도 아름다운 행복감이 그녀의 작 은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시선은 줄곧 북궁 후의 얼굴을 쫓으며 달콤한 미소를 머금었다. 북궁후는 가끔 그녀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보내곤 했다. 장마철에 줄기차게 쏟아지는 폭우는 지겹다. 허나 메마른 땅을 적 시듯, 북궁후가 가끔씩 보여주는 사랑의 미소와 눈빛은 그녀의 가 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이 사내의 이름은 백 번을 되뇌어도 그녀 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마치 연인과 유람이라도 나온 듯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 보며 연신 탄성을 발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세 개의 석실을 발견하였다. 그중 마지막 석실이 바로 지금 들어와 있는 곳이었다. 이때 북궁후의 시선이 이채를 번뜩였다. 맞은편에 한자높이의 단상이 있었다. 헌데 그곳에는 뜻밖에도 한 개의 관이 놓여 있었다. 그것은 금빛의 광석(鑛石)으로 만들어진 금관(金棺)이었는데 장엄 한 빛을 뿌리면서 신비롭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금관의 머리쪽에는 한자 떨어진 곳에 하나의 옥대(玉臺)가 놓여 있었다. 마치 제왕(帝王)의 어인(御印)이 놓여 있는 옥대인 듯 화려하고 위엄이 있었다. 노옥정도 그것을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저게 뭐죠? 어느 왕조(王朝)의 능(陵)일까요?" 북궁후는 금관에 시선을 모으며 말했다.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우리가 거쳐온 기관매복의 무서움으로 보아 저기 안치된 인물은 결코 범상치 않은 인물같소." 그는 노옥정의 손을 잡고 앞으로 다가갔다. 헌데 이때 우르릉! 하 면서 돌연 북궁후의 허리에 매달려 있던 반검이 진동을 일으키고 있지 않은가! 북궁후의 표정이 기이하게 변했다. 그 반검은 바로 일전에 화령에게 제련을 부탁했다가 거절당했던 바로 그 웅검(雄劍)이었던 것이다. 이때 어느새 금관 주위로 다가간 노옥정이 무엇을 보았는지 호기 심어린 눈망울로 입을 열었다. "후랑! 이게 뭘까요?" 그녀는 옥좌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북궁후는 의아해 하며 다가갔다. 헌데 옥대로 다가갈수록 그의 반 검은 더욱 격렬한 진동을 일으키고 있지 않은가. 참으로 신비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북궁후는 알 수 없는 긴장과 흥분에 숨을 죽였다. 뭔가 가슴 밑바 닥에서 치밀어 오르고 있는 느낌이었다. 사방 석자 크기의 옥대의 중앙에는 기이한 물체가 꽂혀 있었다. 뜻밖에도 그것은 한 조각의 부러진 검극(劍極)이었다. 검극의 길이는 반 자 정도였는데 은은한 보광을 발산하고 있어 예 사롭지 않아 보였다. 노옥정은 신기한 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보세요, 후랑! 여기엔 검이 꽂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검이 어디론가 부러져 나간 것 같아요!" 그녀는 북궁후는 보았다. "보통 검이 아닌 것 같아요. 반쪽의 검은 어디로 갔을까요?" 그녀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검극을 내려다보는 북궁후의 표정 이 딱딱하게 경직되어 있었던 것이다. 잠시 의아한 시선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노옥정은 미세한 진 동음을 듣고는 무심코 그의 허리로 시선을 옮겼다. 순간 그녀의 눈은 더 이상 벌어질 수 없을 만큼 크게 떠졌다. "후, 후랑! 후랑의 검이!" 북궁후가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알고 있소." 북궁후는 진동하고 있는 반검을 꺼냈다. 이어 옥대 위의 검 끝에 맞추었다. 그것은 거짓말처럼 한짝을 이루고 있었다. 동시에 반검 은 진동을 멈추고 있었다. 북궁후의 몸이 한 차례 경련을 일으켰다. '영웅지검(英雄之劒)! 바로 그 전설의 신검이 완성된 것이란 말인 가!' 그의 가슴 밑바닥에서 격동이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그는 노옥정에게 말했다. "정매, 잠깐 물러나 있으시오." 노옥정은 영문도 모른 채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북궁후는 양손 장심을 모아 검을 쥐었다. 이어 본신의 무궁한 내력을 검신에 주 입시키기 시작했다. 서서히 그의 몸 주위로 뜨거운 열기가 격탕치면서 잠시 후 그의 몸은 희뿌연 백무(白霧)에 휩싸였다. 그 순간 그가 잡고 있던 검이 손잡이로부터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검에서 기이한 음향이 흘러나왔다. 우우우우. 그것은 마치 깊은 잠에서 깨어나 승천을 하기 위해 토해내는 용의 울음같기도 했다. 검신은 순식간에 전체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것은 맞대고 있 던 검극으로 번져 가고 있었다. 마침내 검극까지 뒤덮는 순간 돌연 철컥! 하는 아주 미세한 금속 성이 울리면서 검이 붙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동시에 검신에 거미줄같은 균열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사이로 눈 부신 광채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 검 3권 제26장 빙궁(氷宮)의 정사(情事)! -7 ━━━━━━━━━━━━━━━━━━━━━━━━━━━━━━━━━━━ ⑦ 후두둑! 하면서 검신이 부서져 내리고 시퍼런 광채가 사방으로 확 뿜어졌다. 북궁후의 눈이 크게 떠졌다. 마치 허물을 벗는 뱀처럼 검신이 부서져 내리고 그곳에는 새로운 또 하나의 시퍼런 검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눈부신 광채가 석실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마침내 영웅검은 그 실체를 드러냈다. 그 광경을 숨 죽이며 지켜보던 노옥정은 터질 듯한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북궁후가 절세의 기연을 만났다고 판 단한 것이었다. 그녀는 북궁후를 바라보았다. 영웅검과 그 보광(寶光)에 휩싸여 있는 북궁후의 모습은 속세의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마치 선계의 천군(天君)을 보는 것처럼 눈부신 후광(後光)과 위엄 에 가득차 있었다. 이때 북궁후의 몸을 감싸고 있던 서기가 흐려지면서 석실전체를 뒤덮고 있던 보광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동시에 북궁후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의 전신은 물에 젖은 듯 흠 뻑 땀에 젖어 있었다. 그의 표정은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이 잔잔하였다. 그러나 그의 내심은 감격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 었다. '영웅검... 드디어 천 년의 잠에서 깨어나 웅비(雄飛)를 시작하려 는가!' 영웅검은 그 현란한 광채를 숨기고 잔잔한 서기만을 뿌리고 있었 다. "영웅검... 내 이제 너와 더불어 천하(天下)를 밝히리라!" 북궁후의 나직하고도 힘찬 음성이 석실을 메아리쳤다. 노옥정은 눈을 가늘게 뜨고 벅찬 감동을 억제하면서 가만히 북궁 후를 지켜보고 있었다. 헌데 이때 딱! 하는 소음과 함께 옥대가 돌연 좌우로 쫙 갈라지는 것이 아닌가! 북궁후는 의혹의 빛으로 옥대를 내려다 보았다. '양피지!' 갈라진 옥대 안에는 한 장의 양피지가 놓여 있었다. 북궁후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천검(天劒)이 뽑히는 날... 하늘을 가리던 마기(魔氣)가 소멸되 리라!> 누가 남긴 것인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다만 희미하게 바랜 필체 가 뜨거운 무혼(武魂)을 품고 있는 듯했다. <인연 있는 자여! 그대가 천고의 신물(信物) 영웅검을 완성함을 경하하노라! 부디 만사(萬邪)의 극기(極氣)를 제압하여 천의(天意)를 행해주기 를 바라노라! 여기 한 가지 검경(劒經)을 남겨 영웅검의 신위를 더하고자 하니, 정심(精心)하여 정진(正進)하라!> ■ 검 3권 제26장 빙궁(氷宮)의 정사(情事)! -8 ━━━━━━━━━━━━━━━━━━━━━━━━━━━━━━━━━━━ ⑧ 북궁후는 빠르게 수록되어 있는 검경의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한동안 심취한 듯이 읽어내려가던 북궁후의 몸에 세찬 경련이 일 어났다. <정혜검경(正慧劒經).> 이것은 일반 무림의 검결처럼 격식을 갖춘 검초(劒招)가 아니었 다. 검의 기운 검기(劒氣), 검의 흐름 검류(劒流), 검의 정기 검 정(劒精) 등, 검 자체에 대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한 지고한 검도 이론(劍道理論)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웬만큼 검도(劍道)에 대한 깨달음이 없는 자는 해독하기조 차 어려운 고심(苦深)한 것이었다. '일반 무림의 검도와는 차원이 다르다!' 일순 북궁후는 지금껏 자부해 왔던 자신의 모든 검공(劒功)들에 대해 허무함을 느꼈다. 천기비고에서 익혔던 그 수많은 정사양도(正邪兩道)의 고심막측하 고 신기절륜한 무학들! 천령무황과 극마문에서 얻었던 고금무적 (古今無敵)의 천단이십사기까지! 모두 허무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정혜검경은 이미 일반 무론(武 論)의 정점(頂點)에 도달해 있었으며 나아가 새로운 차원으로 한 발을 내딛고 있었다. 그곳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곳이었다. 어쩌면 소위 무림인들 이 말하는 입신(入神)의 문턱인지도 모른다. 북궁후는 문득 맹렬한 투지가 솟아올랐다. 이 비급을 만든 사람은 과연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수천 년 무림사에 그 누구도 오르지 못했던 그 정점의 너머에는 과연 무엇이 있었을까? 이제 북궁후가 그것을 알게 되리라. 정혜검경을 만든 이에 이어 두번째로 그 차원에 북궁후가 일보(一步)를 들여놓으리라. 그리고 그는 보게 될 것이다. 신(神)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지, 아 니면 악(惡)이 기다리고 있는지, 그것도 아니면 또다른 무상(無 上)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북궁후는 해연히 깨닫는 것이 있었다. 고개를 들어 허공을 바라보 는 그의 눈에는 마치 득도한 고승의 그것과 같은 서광(瑞光)이 어 리고 있었다. '무(武)! 이것은 영원한 불가사의다! 무에 대해 완성이란 없는 것 이며, 무에 대한 자만처럼 어리석은 일은 또 없다!' 그는 무도(武道)에 또다시 한발을 내딛고 있었다. 이때 노옥정이 감격의 탄성을 터뜨리며 그의 품안에 가만히 안겨 왔다. "후랑... 기뻐요." 북궁후가 잔잔한 미소를 흘리며 그녀의 허리를 안았다. "자, 이제 우리는 속히 이곳을 벗어나야 하지 않겠소?" 노옥정은 그윽한 시선으로 그를 올려다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돌연 딱! 하는 소음과 함께 입을 벌리고 있던 옥대가 닫혔 다. 북궁후와 노옥정이 의아한 표정으로 옥대를 보는 순간 돌연 우르릉! 소리와 함께 석실이 무너질 듯이 진동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북궁후는 노옥정을 끌어안고 급히 한쪽으로 몸을 날렸다. 우측 석벽이 돌가루와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요란하게 흔들리고 있 었다. 그리고 바닥이 기우뚱! 하는 것 같더니 돌연 석벽이 반으로 쫙 갈 라지는 것이 아닌가! 노옥정과 북궁후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르르릉! 반으로 갈라진 석벽이 좌우로 천천히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희미한 빛줄기가 흘러들어오고 있었는데 그 빛 줄기 속에 위로 향해 있는 계단이 보이고 있었다. 노옥정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빛줄기는 바로 달빛이었던 것이다. 북궁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옥대를 보았다. "저 옥대가 바로 기관의 중추였던가?" 석벽은 완전히 입을 벌리고 우뚝 멈추어 섰다. 밖에서 서늘한 바 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이곳을 벗어날 수 있는 출구임에 분명했 다. 노옥정이 환하게 웃으며 북궁후를 올려다보았다. "어서 나가요." 북궁후가 빙그레 웃었다. "그럽시다." 헌데 돌연 막 몸을 날리려는 노옥정의 허리를 북궁후가 갑자기 낚 아채어 끌어당기는 것이 아닌가! 동시에 그녀를 안고 맹렬한 속도 로 우측으로 튀어나가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꽝! 하는 폭음과 함께 두 사람이 서 있던 자리에 시 퍼런 섬광이 내리꽂히고 있었다. 북궁후는 우측의 벽을 타고 올라 빙글 도약하더니 삼 장 뒤로 몸 을 내려서고 있었다. 노옥정의 입이 벌어졌다. 두 사람이 있던 자리에는 한자 깊이로 웅덩이가 파여 있었고 그곳 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북궁후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노옥정의 시선이 열려진 석문쪽으로 향했다. 핏빛의 안개덩어리가 빠르게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노옥정의 안색이 흑빛이 되었다. "환마!" 문 앞을 가로막고 흐르고 있는 안개 속에서 이상한 물기에 젖은 눈동자가 보이고 있었다. 북궁후는 낭패한 기색을 떠올렸다. 기관이 작동되어 문이 열리자 환마가 뛰어들어온 것이었다. ■ 검 3권 제26장 빙궁(氷宮)의 정사(情事)! -9 ━━━━━━━━━━━━━━━━━━━━━━━━━━━━━━━━━━━ ⑨ 환마는 북궁후가 느닷없이 사라지자 일순 당황했으나 원체 강호에 굴러먹은 경험이 많았는지라 떠나지 않고 석상군 주위를 맴돌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흐흐흐흐흐." 환마의 음침한 소성이 들리면서 붉은 안개가 흔들거렸다. 순간 북궁후는 그가 재차 출수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아 니나 다를까 북궁후가 팽이처럼 몸을 돌리며 튕겨나가는 순간 그 가 있던 자리의 뒤쪽 석벽에서 폭음이 일어났다. 신속한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모면한 북궁후는 구석진 곳으로 내려 서고 있었는데, 어깨부위가 뜨끔한 것을 느끼면서 돌아본 그의 안 색은 굳어 있었다. 그의 어깨는 길게 옷자락이 갈라져 있었고 그 사이로 선혈이 내비 치고 있었던 것이다. 북궁후는 내심 한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헌데 이때 갑자기 환마의 나직한 신음이 들리면서 안개가 흐트러지더니 환마의 실체가 드러 났다. 그는 뜻밖에도 손목을 감싸쥐면서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북궁후는 의아한 기색으로 그를 보더니 느끼는 게 있었는지 그의 일격을 받은 석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 경이롭게도 환마의 검기에 정면으로 격중당한 석벽에는 아무런 상 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다만 약간의 긁힌 듯한 흔적과 함께 시커먼 연기만이 피어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북궁후는 대뜸 석벽의 재질이 심상치 않은 물질임을 느끼고는 돌 연 그 어떤 희망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뿌드득! 하는 이빨가는 소리와 함께 환마가 몸을 돌렸다. 열려진 석벽을 중간에 두고 두 사람은 대치했다. 환마는 이때 섣 불리 공격을 못하고 있었다. 그도 역시 석벽의 재질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낀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마주한 채 서로의 헛점을 찾아 눈을 번뜩였다. 이때 노 옥정의 다급한 전음이 북궁후의 고막을 때렸다. (석벽이 닫히고 있어요!) 북궁후가 그 소리를 듣고 흠칫하는 순간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환마 의 신형이 쏜살같이 덮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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