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의 시간이 소리없이 흘렀을 즈음, 북궁후와 형태려의 앞에 무 수한 인영들이 소리없이 나타났다. 그들을 보자 형태려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나타난 인물들은 아유라와 유유궁의 정예들이었다. "흥!" 아유라는 형태려를 향해 싸늘한 멸시의 조소를 날리며 북궁후에게 눈길을 돌렸다. 북궁후는 아직도 형태려의 발을 베고 누운 자세였 다. "저곳이 그들의 본거지인 듯 하니 그대가 알아서 하시오." 아유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죽은 장로들의 처소를 뒤져본 순간 약간의 수확이 있 었어요, 그건 나중에 알려 드리죠!" 북궁후는 빙긋 웃었다. "왜? 지금 알려주면 내가 어디론가 도망칠 것 같은가?" 북궁후는 벌써 두번째로 아유라의 심중을 눈치채고 있었다. 이때 아유라는 유유궁의 정예를 이끌고 장원을 향해 접근해 가고 있었다. 살기어린 대갈이 야공에 울려퍼졌다. "적이다!" "막아라!" 장원으로부터 경악성이 울려터지는 것을 시작으로 혈화(血花)는 피어오르고 있었다. 창졸간에 기습을 당한 장원의 수하들은 영문 도 모른 채 피를 뿌리며 뒹굴었다. ■ 검 3권 제28장 뜨거운 여인! -3 ━━━━━━━━━━━━━━━━━━━━━━━━━━━━━━━━━━━ ③ 아유라의 푸른 눈은 시퍼런 살기를 토하며 장원 이곳저곳을 휩쓸 고 있었다. 그녀의 신형이 번뜩일 때면 어김없이 임자잃은 목이 허공으로 솟 구쳐 올랐다. "이 계집이!" 아유라의 옆에서 한 검사가 욕설을 터뜨리며 아유라의 허리로 섬 뜩한 일검을 쫙 뻗쳤다. "없어져라!" 아유라의 입에서 호통이 튀어 나오며 번쩍 섬광이 허공을 갈랐다. "우와악!" 검사는 허공에 피를 뿌리며 지면을 나뒹굴었다. 임자잃은 목이 허 무하게 허공을 돌아 떨어져 내렸다. 실로 창졸간에 장원은 손 쓸 사이도 없이 유린되고 있었다. 이때 북궁후는 아예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었다. 반면 북궁후에 게 베개를 제공하고 있는 형태려의 몰골은 가관이었다. 눈은 찢어져라 부릅떠져 있으며 안면은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 다. 그리고 전신은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켰다. 형태려의 눈에 장 원의 한곳에서 불길이 확 번지는 것이 보였다. "아악!" 장원의 어디선가 허망한 비명성이 들려오기도 하였다. '으으!' 형태려는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렸다. "아함! 지금쯤 끝났겠군!" 북궁후가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어 그는 신기한 듯 형태려를 올려다 보았다. "아직도 그러고 있소? 무척 힘들텐데...." 안됐다는 표정으로 북궁후는 형태려를 향해 혀를 찼다. "쯧쯧, 고생이 무척 심하구료. 이제는 좀 쉬도록 하시오." 북궁후는 형태려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으욱!' 형태려는 신음을 지르며 땅바닥에 쓰러졌다. 몸이 뻣뻣이 굳어 있기에 넘어지는 모양도 선 자세 그대로 처박힘 을 면할 수 없었다. 이때 아유라가 수하를 이끌고 나타났다. 아유라는 북궁후를 향해 생긋 웃었다. "끝냈어요, 이제 궁으로 돌아가요!" 북궁후는 아유라의 말을 귓전으로 들으며 고개를 돌렸다. '후후, 피묻은 옷이나 갈아입고 웃지, 꼭 나찰같군!' 그것도 모르고 아유라는 계속 웃고 있었다. 이윽고 유유궁의 인물 들과 북궁후는 장내를 빠져 나갔다. 헌데 일행 중에서 가장 편하게 길을 가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바 로 칠장로 형태려였다. 그는 지금 누워서 길을 가고 있었다. 한 가지 불쌍한 것은 그의 다리가 발꽁무니에 묶여있고 그의 등이 땅에 닿아 있다는 것이다. 그것만 제외하면 형태려는 가장 편한 자세로 길을 가는 것이다. 헌데도 형태려의 얼굴은 별로 만족스런 기색이 아니었다. ■ 검 3권 제28장 뜨거운 여인! -4 ━━━━━━━━━━━━━━━━━━━━━━━━━━━━━━━━━━━ ④ 정실, 극히 화려하게 꾸며진 실내였다. 또한 곳곳에서 불어나오는 그윽한 방향(芳香)은 이곳이 여인의 거 처임을 느낄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실내의 한쪽을 가리고 있는 분홍빛 휘장은 밤의 유혹을 살 며시 얘기해 주는 듯, 가볍게 팔랑이고 있었다. 실내의 중앙, 분홍빛 융단이 깔린 바닥의 태사의에는 북궁후와 아 유라가 그린 듯 마주보고 있었다. 아유라의 이국적인 용모는 이 순간 불빛 속에서 하늘거리는 아름 다움을 뿌리고 있었다. 허나 북궁후는 차분히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런 아유라의 자태를 정시하고 있었다. "형태려를 심문한 결과 무엇을 알아냈소?" 더할 수 없이 딱딱한 음색의 말에 아유라는 아미를 찌푸렸다. "당신은 언제나 그런 말만 할줄 아나요. 조금 더 부드럽고 다정하 게 말할 수 없나요?" 북궁후는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아유라, 그대는 놈들의 일부를 처단했다고 딴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 북궁후의 말에 아유라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알았어요, 그들을 조종한 인물은 서문규라는 늙은이래요!" 아유라는 말을 마치고 고개를 홱 돌렸다. '어떻게 된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나봐!' 아유라의 입술은 평소보다 두 배나 삐죽 튀어 나왔다. 허나 이때 북궁후는 눈을 빛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서문규라면 바로 육십 년 전 천하를 뒤엎을 모계를 꾸미다 천기신 군에 패해 새외변방으로 도주했던 서문유허의 부친이 아닌가! '역시 그랬군. 서문규는 대막을 잠식한 후 중원의 서문유허를 도 울 생각이었군. 후후후,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허사가 되었으니!' 북궁후는 소리없이 씨익 웃었다. 이때 아유라가 배를 움켜쥔 채 잔뜩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응?' 북궁후는 의아한 시선으로 아유라를 바라보았다. "아, 아!" 아유라는 괴로운 신음성을 지르며 더욱 얼굴을 찡그렸다. '이번엔 무슨 수작을... 정녕 아프단 말인가?' 북궁후는 반신반의하며 아유라에게 다가섰다. "아유라, 어디가 아픈 것이오?" 북궁후의 음성이 약간은 부드러워졌다. "아, 아, 여기가!" 아유라는 배를 움켜쥔 채 힘겹게 말했다. 불빛에 비친 그녀의 얼 굴이 약간은 창백해진 듯도 하였다. '정말인 모양이군!' 북궁후는 내심 단정을 하고 아유라를 자세히 살폈다. "이곳이 아프단 말이오?" 북궁후는 아유라의 배에 자신의 손을 가져다 대였다. 순간 약간 떨리는 듯한 아유라의 몸이 북궁후의 손에 느껴졌다. 따뜻했다. 그리고 더없이 부드러웠다. 북궁후가 고개를 갸웃하며 아유라의 몸에서 손을 떼었다. "훗!" 북궁후의 귓볼에 아유라의 살풋한 숨결과 함께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런!' 북궁후는 그제야 자신이 속았음을 깨달았다. "이제 당신은 저에게 잡힌 포로예요!" 북궁후가 놀랄 사이도 없이 아유라의 미끈한 팔이 그의 몸을 감았 다. 손목을 미끄러져 내리는 아유라의 금라화의 소매 가로 드러나 는 그녀의 살결이 눈부시도록 희다. 북궁후는 당황하여 급히 뭔가 말을 하려고 하였다. 허나 북궁후는 뜨겁고 부드러우며 또한 달콤한 아유라의 입술에 소리를 지를 자 유마저 잃어 버렸다. 아유라는 놀랍도록 능숙하게 북궁후를 유도했다. '음!' 북궁후는 뜨겁게 함락당할 위기에 처한 자신을 느끼며 내심 침음 을 흘렸다. "호호호, 이제는 결코 양보하지 않겠어요!" 아유라가 나직이 외쳤다. 북궁후는 지금 걷잡을 수 없이 달아오르 고 있었다. 조금 정신을 차리려고 하면 아유라의 뜨거운 입김이 사정없이 엄 습했고 몸을 뒤척이면 그녀의 미끈한 팔이 귀신같이 북궁후를 얽 어맸다. "아, 아유라!" 북궁후가 그녀를 밀어냈다. "흥! 이제는 안놓쳐요!" 아유라는 일언지하에 북궁후의 간청을 묵살했다. "허어!" 북궁후의 입가에 고소가 맺혔다. 그녀가 대담한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후후, 할 수 없군!' 급기야 북궁후는 내심 비명(?)을 지르며 아유라에게 굴복했다. 북궁후의 내심에 아유라에 대한 정이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 다. 여인의 대담한 공세에 불현듯 사랑을 느꼈다 할까? 북궁후의 손에 의해 아유라의 금라하의가 벗겨져 나갔다. "흑!" 아유라는 기쁜 듯한 신음을 토했다. 북궁후의 태도가 돌연 거칠고 적극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북궁후의 손은 거침없이 아유라의 성채 곳곳을 파고 들었다. "이, 이러면 안되는데, 안되는데!" 아유라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달뜬 음성을 연신 토하고 있었다. 마침내 거칠 것 없는 북궁후의 손은 아유라의 모든 것을 떼어냈 다. '음!' 북궁후는 내심 마른침을 삼켰다. 아유라의 나신은 북궁후에게 거 세고 황홀한 충격이었다. ■ 검 3권 제28장 뜨거운 여인! -5 ━━━━━━━━━━━━━━━━━━━━━━━━━━━━━━━━━━━ ⑤ '이, 이토록 뛰어날 줄이야!' 북궁후는 아예 넋을 잃었다. 우유로 빚어 만든 듯 희고 매끄러운 살결, 그리고 풍염하게 완급을 이룬 적나라한 굴곡의 현란함, 청 초함과 풍만함을 함께 간직한 이국여인의 몸매는 정녕 보는 이의 심혼(心魂)을 뒤흔들 정도였다. "뭘... 봐요!" 아유라의 기어드는 목소리에 북궁후는 흠칫 고소를 터뜨렸다. "훗!" 북궁후의 옷이 흘러 내렸다. 그리고 그의 몸이, 아니 전신의 모든 것이 아유라를 향해 접근해 갔다. 북궁후의 손은 거칠게 혹은 부드럽게 아유라의 온몸 구석구석을 유영했다. 아유라의 전신은 잔 경련을 일으키며 더욱더 북궁후의 몸에 밀착되었다. 나직한 신음성이 두 사람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오고 사면에쳐진 분홍빛 휘장이 열기에 의해 펄럭였다. 북궁후는 아유라의 몸을 번쩍 안아 들었다. 두 사람의 나신이 불 빛을 빨아들이며 빛났다. 북궁후는 아유라의 몸을 안은 채 한쪽의 휘장을 옆으로 밀어냈다. 휘장의 안쪽에는 넓은 침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북궁후는 아유라의 나신을 침상 위에 내려 놓았다. 동시에 그는 맹수처럼 아유라에게 돌진했다. 북궁후가 파도라면 아유라는 거친 파도를 마주한 해석(海石)이었 다. 거친 파도가 뜨겁게 부딪힐 때마다 해석은 조금씩 무너져 나 갔다. 허나 그것은 아픔이 아니라 극고의 환희와 희열이었다. 그리고... 파도는 갈수록 뜨겁고 맹렬하게 해석의 깊숙한 곳으로 밀려 들었다. 그럴 때마다 해석(海石)은 몸부림치며 고통과 희열 의 신음성을 토해냈다. 허나 그 신음성도 이내 광란하는 파도 소 리에 묻혀 버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 파도는 갑자기 뜨거운 용암이 되어 해석의 내부로 쏘 아져 들어갔다. "아!" 긴 여운, 마치 억겁처럼 긴 여운이 가늘게 떨리며 울려나왔다. 그리고 정적, 땀에 젖은 정적이 아직도 뜨거운 열기를 담은 채 깔 렸다. 북궁후와 아유라는 서로의 몸을 감싼 채 아직도 식지 않은 열정을 달래고 있었다. 북궁후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아유라의 푸르디 푸른 눈에 하얀 이 슬이 맺혀 있었다. '고, 고마워요! 당신을 처음 본 순간부터,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 려 왔는지 몰라요!' 아유라는 그래서 울고 있는가? 아유라의 가슴으로 터질 듯한 행복 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북궁후의 손이 아유라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눈에 맺힌 이슬을 닦았다. "아유라, 울고 있소?" 음성은 포근했다. 아유라는 살며시 고개를 흔들었다. 아유라의 머 리결이 북궁후의 가슴을 간지럽혔다. 두 사람에게는 후회할 그 무엇도, 잃어버린 그 무엇도 없었다. 다 만 한 줄기 바람이 스쳐갔을 뿐이라고 느껴졌다. 문득 북궁후의 안색이 굳어갔다. '이제, 대막유유궁은 서문규의 세력권에서 벗어났다. 후후, 서문 유허! 이제 너의 부친은 더 이상 너를 도울 수 없다!' 북궁후의 눈에 결연의 빛이 스쳤다. '이제 중원으로 돌아가 천외선부를 여는 일만 남았다! 천외선부! 그곳으로 가는 것을 모든 무림인들이 알게 될 것이다. 후후, 바로 나에 의해!' 알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북궁후는 스스로 천외선부로 들어가는 것을 천하에 공포하겠다는 뜻이 아닌가! 그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 가? 밤! 대초원의 밤이 소리없이 깊어가고 있었다. ■ 검 3권 제28장 뜨거운 여인! -6 ━━━━━━━━━━━━━━━━━━━━━━━━━━━━━━━━━━━ ⑥ 하남성(河南省), 하남성의 명물은 무엇보다도 중원삼대절경으로 손꼽히고 있는 동정호(洞庭湖)에 있었다. 중원천하를 잇는 수륙양로의 중심지이며 그 빼어난 절경으로 많은 시인묵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 바로 이 동정호인 것이다. 동정호, 수많은 유람선들이 마치 그림인 양 떠 있었다. 그중 유독 세인의 눈길을 끄는 한 척의 호화유람선이 있었다. 말이 유람선이지, 그 배의 크기는 실로 엄청났다. 화려하기는 황후장상의 유람선을 능가했으며, 거기에다 은은히 고 귀한 위엄까지 배어있으니 이 어찌 세인들의 눈길을 끌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갑판에는 한 인영이 해풍(海風)에 몸을 맡긴 채 흑발을 휘날리고 있었다. 그의 기태는 정녕 놀라웠다. 노호하는 파도조차 그의 기세에 눌려 잔잔해진 듯 호면은 고요하 기 이를데 없었다. 마치 천인을 방불케 하는 용모, 바로 북궁후가 아닌가? 문득 북궁후의 눈에서 이채가 번뜩였다. '오는군!' 그의 눈은 고요히 해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눈이 머무르는 호면에는 경이롭게도 마치 평지를 걷듯이 다 섯 사람이 호면을 밟으며 미끄러지듯 북궁후의 배로 다가오고 있 지 않은가! 파도를 밟으며 다가오고 있는 다섯 사람의 복장은 가지각색이었으 나 한결같이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채 미끄러지듯 다가오고 있어 그들의 무공이 이미 신인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었 다. '음!' 파도 위를 나란히 밟으며 다가오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는 북궁후 의 눈에 감탄의 빛이 떠올랐다. '과연 천기신군이라 불리우는 백부님의 능력은 놀랍다! 저같은 자 들을 어찌 굴복시킬 수가 있었단 말인가?' 순식간에 다섯 사람은 북궁후의 앞에 내려섰다. 그들 중 누구의 발에도 한점 물기가 묻어 있지 않았다. "끌끌끌, 누가 불도에 여념이 없는 이 늙은 중놈을 불러냈소?" 괴이한 행색의 혈포가사를 걸친 대머리 승인이 입을 열었다. 대략 일백여 세? 전신이 먹빛처럼 검은 그의 체구는 마치 거대한 산악을 방불케 하는 것이었다. 북궁후의 담담한 눈이 그의 전신을 훑었다. 그 태도는 고요하기 이를데 없는 가운데 상대를 억압하는 무형의 기도가 넘치는 것이 었다. '이같은 젊은이가 당금의 무림에 있었다니... 혹시!' 괴승의 눈가에 기광이 번뜩였다. 북궁후가 괴승을 직시하였다. "그대가 독불이라 불리는 백리공이시오?" 그는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허나 그의 눈빛은 마치 번갯불이 번 쩍이는 듯 괴승의 뇌리를 강력하게 파고들고 있었다. 괴승의 눈에 감탄의 빛이 어리고 있었다. '아아! 영웅이다. 대자연의 기개! 아니 대자연, 그 자체다!' 괴승은 바로 독불 백리천악이었다. - 독불 백리천악. 천경유사 제갈우와 더불어 무림삼주로 불리우던 전대의 고인. 그의 성격은 괴팍하기 이를데 없어 정사의 구별이 없는 인물이었 다. 헌데 그는 천기신궁의 비밀세력인 옥삼령주이기도 했다. ■ 검 3권 제28장 뜨거운 여인! -7 ━━━━━━━━━━━━━━━━━━━━━━━━━━━━━━━━━━━ ⑦ 북궁후의 입에서 담담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나는 이번에 천기신군 대신 천기신궁을 맡은 북궁후라 하오." "오! 귀공이 바로 북궁공자이시오?" 백리천악의 바로 옆에 서 있던 육순노인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푸른 가죽옷을 입은 노인의 눈에는 일순 경이의 빛이 스쳐가고 있 었다. 북궁후는 그들의 다소 과장된 듯한 언행에 내심 실소를 흘리고 있 었다. 육순노인이 급히 포권을 하였다. "본인은 남해(南海) 천해신(天海神)입니다. 동일령주(銅一令主)를 맡고 있지요. 주상을 뵈옵니다." 남해 천해신이 정중히 허리를 접었다. 북궁후의 손에는 어느새 금 기령패가 들려 있었다. 금기령패는 중원의 또 하나의 하늘이라는 천기신궁의 무상의 권위 를 나타내는 영패가 아닌가? 그는 다섯 사람중에 누구보다도 제 일 먼저 예를 취하고 있었다. - 남해 천해신. 수공(水攻)에 관한한 그를 능가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천해신은 유구한 세월을 명문대파로 군림해 온 남해파의 지존이었 다. 헌데 그가 천기신궁의 동기령주라니 누가 이 일을 믿을 수 있 을 것인가? 북궁후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훗!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지니고 있는 사람... 이 사람이 동기 령주 중 제일령주인 이유를 알겠다!' 그의 내심에는 천해신에 대한 평가가 내려지고 있었다. 기실 천해 신은 대뜸 북궁후의 능력을 꿰뚫어 보고 그를 천기신궁의 금기령 주로 인정한 것이었다. "본인은 천금전(千金殿)의 전주, 금명산(金明算)으로서 동이령주 입니다. 주군을 뵈옵니다." 천해신이 서슴치 않고 북궁후를 인정하자 나머지 삼 인도 예를 취 하기 시작했다. 기실 네 명의 동기령주 중 천해신의 안목과 지혜가 가장 뛰어났고 그 천해신이 북궁후를 인정하자 모두 북궁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비대한 금포장년인은 강북의 금린대전장과 쌍벽을 이루는 강남 천 금전의 전주였다. 그는 강북의 상권을 쥐고 있는 금린대전장의 재옹 금명철의 친형 이기도 했다. 그 양대 재왕(財王) 모두 천기신궁의 비밀수하들이니 어찌 놀랍지 않은가! 깡마른 중년인이 허리를 접었다. "본인은 백마성(白馬城)의 하후걸(夏侯傑)입니다. 주군을 뵙게 되 어 무한한 영광이옵니다." 냉막해 보이기만 하는 그의 눈이 북궁후를 훔쳐보며 감탄에 젖어 들고 있었다. ■ 검 3권 제28장 뜨거운 여인! -8 ━━━━━━━━━━━━━━━━━━━━━━━━━━━━━━━━━━━ ⑧ - 백마성주 하후걸. 이 이름이 어찌 유명하지 않으랴! 사천과 난주(蘭州)의 패권을 쥐 고 있는 거상(巨商)이자, 초절정고수인 것이다. 백마성은 일종의 마시장(馬市場)이었으며 천하의 말(馬)들이 그의 손을 거치지 않고는 매매될 수가 없었다. "동정어옹(洞庭魚翁)이 인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낚싯대를 둘러메고 있는 초로의 갈포노인이 허리를 숙 였다. 동정어옹이라면 북궁후로서도 생소한 이름었다. 강호에 전 혀 알려지지 않은 은거이인(隱居異人)인 것이다. 허나 그가 천기신궁의 동기령주로 꼽혔다함은 이미 그 무공이 어 느 정도인지 짐작할 만한 것이 아닌가! 네 명의 동기령주가 인사를 마치자 북궁후의 눈이 마지막으로 백 리천악을 향했다. 백리천악은 연신 허리에 차고 있던 거대한 술병 의 술만을 들이키고 있을 뿐 북궁후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 다. '후후, 나를 상전으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뜻이군!' 북궁후의 입가에 냉소가 맺혔다. '금기령패로 그를 굴복시킬 수는 있다. 허나 이런 인물은 결코 힘 이나 권력으로 승복시켜서는 안된다.' 북궁후는 미소를 머금고 백리천악을 직시했다. "백리공, 이제 그대만이 남았소." 북궁후의 음성은 부드러웠다. 허나 기이하게도 백리천악의 귀에는 천둥처럼 울려퍼지고 있었다. '헉!' 백리천악은 심신이 격탕되어옴을 느끼고 해연히 놀랐다. 그가 누 구인데 단 한소리 나지막한 음성에 기혈이 흔들린단 말인가? 그는 놀란 눈으로 북궁후를 바라보다 일순 눈을 부릅떴다. 북궁후의 입가에 형용할 수 없는 묘한 미소가 떠오르고 있는데 기 이한 마력이 그 미소로부터 잔잔히 퍼져나오고 있지 않은가? - 마혼소(魔魂笑). 단 한 번의 미소에 심신이 지옥의 유황불을 헤맨다는 무서운 절대 마소(絶代魔笑)였다. 북궁후는 익히기만 했지 아직 단 한 번도 펼치지 않았던 그 가공 할 마혼소를 지금 펼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대의 힘이 필요하오." 북궁후가 잔잔히 입을 열었다. 백리천악의 몸이 진동되었다. 그는 대뜸 북궁후가 일종의 섭혼공(攝魂功)으로서 자신을 시험하 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 평생 처음 대하는 섭혼공이다!' 그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내공을 전력으로 끌어올려 그의 미소에 대항하려고 하였다. 허나 진기를 모으기는커녕 오히려 온몸의 힘이 점점 빠져나가는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백리천악은 마침내 자신이 그 미소를 견뎌낼 수 없음을 느꼈다. 그의 얼굴에 낭패감이 떠올랐다. 북궁후가 펼치고 있는 것은 진정한 마혼소보다도 더욱 가공할 위 력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었다. 마혼소의 가공할 힘에 그의 선천적인 위엄이 자연스럽게 가미되어 무서운 위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만!" 백리천악이 외쳤다. 그는 애초 북궁후의 나이어림에 경시하는 마 음을 지니고 있었으나 이 순간만큼은 북궁후를 다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마혼소 한 가지만 해도 그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인데 여기에 또다 른 무공을 펼친다면 그로서는 낭패를 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잘못 생각했다. 과거의 금기령주인 천기신군을 능가하는 인물이다!' 백리천악의 눈에 경악이 떠오르고 있었다. 사람은 한 가지만 보아 도 열 가지를 짐작할 수 있는 법. 백리천악은 완전히 북궁후에게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옥삼령주, 독불 백리천악 주상을 뵈옵니다!" 백리천악이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누구보다도 깊은 각도였다. 백 리천악은 단순하며 강직한 성품을 지니고 있어 이같이 한 번 심복 되면 철저히 따르는 성품인 것이다. ■ 검 3권 제28장 뜨거운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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