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직한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들던 그의 눈에 문득 의혹의 빛이 떠올랐다. 그의 시선은 북서쪽에 있는 하나의 작은 봉우리에 고정 되어 있었다. 가시처럼 뾰족뾰족하게 솟은 예봉(銳鋒)들이 모여 또하나의 봉우 리를 이루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예봉들 사이로 희미한 광채가 흐 르고 있지 않은가. 거봉들의 그림자에 둘러싸여 단 한점의 빛도 없는 그곳에 광채가 흐르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번쩍! 하는 순간 북궁후의 신형은 그쪽을 향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고 있었다. 쉭! 하는 바람이 일면서 북궁후는 하나의 예봉 위에 깃털처럼 내려섰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태고적부터 단 한점의 빛도 받지 못한 듯 주위는 마치 유계(幽界)와 같은 어둠속에 잠겨 있었다. 북궁후는 빛이 새어나오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은 예봉과 예봉 사이의 협곡(峽谷)이었는데 빛은 바로 그 깊 은 무저의 암흑 속에서 발산되고 있었다. 북궁후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는 것 같더니 그는 그대로 쏜살 같이 협곡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백여 장 정도 내려갔을까? 북궁후의 신형이 우뚝 멈추더니 한바퀴 회전하면서 허공에서 우뚝 멈추어 섰다. 한쪽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곳은 석벽이었는데 두꺼운 빙설이 깔려 있었고 예의 빛은 바로 그 빙설에서 발산되고 있었던 것이다. 헌데 빙설을 바라보고 있던 북궁후의 눈에 기광이 번뜩였다. 빙설이 워낙 두텁게 깔려 그 형 체를 자세히 알아볼 수는 없었으나 기이한 형태의 조각상(彫刻像) 이 희미하게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확인한순간 북궁후는 갑자기 뭔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 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대뜸 내공을 돋궈 빙벽을 향해 일장을 후 려쳤다. 순간 쩡! 하는 음향과 함께 거대한 크기의 얼음덩이가 떨 어져 나갔다. "아, 아니!" 북궁후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나왔다. 얼음덩이가 떨어져 나가고 시커먼 석벽이 나타났는데 그곳에는 삼 장여 크기의 거대한 악마 상(惡魔像)이 새겨져 있지 않은가! 한동안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던 북궁후는 급히 품 안에서 묵옥악마상을 꺼내어 비교해 보았다. 그의 눈이 크게 떠졌다. 석벽에 조각되어 있는 악마상은 북궁후가 갖고 있는 묵옥악마상과 똑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북궁후의 전신이 세차게 떨리면서 격동에 가득찬 탄성이 터져나왔 다. "여, 여기가 바로 천외선부다!" 북궁후는 기쁨과 감격에 젖은 시선으로 악마상을 바라보고 있었 다. 그는 마침내 천외선부의 출구를 찾아낸 것이었다. 그의 시야에 오른쪽에 돌출되어 있는 하나의 비석모양의 바위가 들어왔다. 바위에는 깨알같은 글씨들이 쓰여져 있었다.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세치 깊이로 새겨진 글씨였다. <통한지비(桶恨之碑).> 그 글을 읽은 순간 갑자기 북궁후는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그는 스윽 몸을 움직여 바위쪽으로 접근하였다. 조심스럽게 열장 (熱掌)으로 주위 얼음을 녹여가며 바위에 새겨진 글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 검 3권 제30장 죽음의 성(城)! -8 ━━━━━━━━━━━━━━━━━━━━━━━━━━━━━━━━━━━ ⑧ <본좌는 천외선부를 건립한 태천무선로(太天武仙老)다.> "태천무선로!" 북궁후의 얼굴이 흥분으로 달아올랐다. 그는 마침내 천 년의 세월 을 뛰어넘어 천외선부의 개파조사(開派祖師)를 만나고 있는 것이 다. <... 본좌는 이 글을 새기며 치솟는 비통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수 없다. 본좌가 혈륜마성의 주인인 혈륜천마군(血輪天魔君)과 천하 무림을 놓고 싸운 것이 아흔아홉 번! 허나 우리는 끝내 승부를 가 리지 못했다. 헌데 어느 날 혈륜천마군은 본좌에게 뜻밖의 제안을 내놓았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의 세력에 금제(禁制)를 가하자는 것이었다. - 첫째, 금제를 만들되 각기 일맥(一脈)만은 남겨놓는다. 둘째, 세 개의 금약(禁約)을 만들어 한 개씩 나누어 가진 후 나머 지 한 개는 강호에 흘려보낸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 먼 후대(後代)의 후손들 중, 세 개의 금약을 모두 얻은 자가 있어 그가 먼저 천외선부를 연다면 혈륜마성은 영 원히 봉문(封門)하고 혈륜마성을 먼저 연다면 천외선부는 영원히 강호에 나서지 않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결과는 하늘에 맡기자는 것이었다. 이에 본 좌는 다소 의심이 들었으나 그 역시 일대의 종사(宗師)임을 자처 하고 있는 터라 믿고 동의했다.> 이것은 이미 극마문에서 천도모모에게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비사 (秘事)가 아니었던가? 허나 직접 대면하게 되자 새삼 감회가 새로 웠다. 북궁후는 잔잔히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계속 바위에 새겨진 글을 읽어 나갔다. <금약이란 물론 묵옥악마상이다. 우리는 지닌 바 최대의 지혜를 동원해 서로의 문파에 금제를 가했다. 헌데 혈륜마성에 금제를 가 하고 천외선부로 돌아온 노부는 경악하고 말았다. 애초 그와 약속한 것은 백 년 안에 묵옥악마상이 모이지 않으면 백 년 후에는 금제가 저절로 풀리게 하는 것이었다. 헌데 묵옥악마상이 모이기 전에는 백 년이 흘러도 금제에서 벗어 날 수 없게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더구나 그는 악독한 간계까지 펼쳐놓아 노부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는 천외선부의 금제 안에 수미만상대라법진(須彌萬象大羅法陣) 을 펼쳐 놓았던 것이다.> "수미만상대라법진!" 북궁후는 그만 가슴이 철렁하고 말았다. 그가 천기무고에서 읽은 귀원총요(歸元總要)라는 무림고서(武林古 書)에 의하면 이것은 일종의 진법(陳法)이었다. 허나 여타 진법과는 차원이 다른 괴진(怪陣)으로서 일단 발동이 되면 마치 살아 있는 식인귀(食人鬼)처럼 갇혀 있는 생명체의 정 기(精氣)를 모조리 흡수하는 것이었다. 결국 이 진법에 갇히게 되면 목내이(미이라)처럼 말라비틀어져 종 래에는 백골밖에 남지 않는다. 고대(古代)의 제석천(帝釋天)이 인세(人世)를 어지럽히는 악귀나 찰(惡鬼羅刹)을 모두 이곳에 가두어 고사(枯死)시켰다고 하는 전 설 속의 기진(奇陣)이었던 것이다. <... 결국 세 개의 묵옥악마상으로 금제를 풀기 전에는 수미만상 대라법진을 파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허나 본좌는 자업자득임을 느끼고 땅을 치고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본좌 역시 혈륜마성의 마인들이 영원히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도 록 수미만상대라법진을 펼쳐 놓았던 것이다. 아아!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이 무수한 인명을 희생시켰다. 본좌는 웅검을 부러뜨리며 맹세했다. 혈륜천마군을 이 하늘 아래 서 없애 버리겠노라고! 허나 본좌는 알고 있다. 그 역시 본좌를 죽이러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것을! 나는 죽이고.... 죽으러 가는 것이다.> "아... 진정 통한의 비석이로군." 북궁후는 침울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바위에 휘갈겨진 지력(指力)의 필체에는 구구절절이 비통한 절규 가 깃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 뼈저린 한이 가슴에 깊숙이 스미는 것은 왜일까? 글은 계속되 었다. <후인이여! 본래 영웅검은 자검(雌劒)과 웅검(雄劒)으로 나누어져 있다. 자검은 본좌의 사랑하는 내자(內子)가 지니고 있다. 후인이여, 부디 본부의 금제를 풀어 자검을 취하고 외로운 고혼 (孤魂)들을 위로해 주기 바란다.> ■ 검 3권 제30장 죽음의 성(城)! -9 ━━━━━━━━━━━━━━━━━━━━━━━━━━━━━━━━━━━ ⑨ 북궁후는 나직한 탄성을 터뜨렸다. "아, 영웅검이 두 자루였단 말인가?" 그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격동을 느꼈다. "영웅검, 완성하리라! 그리고 천년고혼들의 한(恨)을 풀겠다." 이 순간 그의 전신에선 대자연의 기(氣)가 무색할 가공할 기도가 뿜어지고 있었다. 잠시 후, 북궁후는 거대한 악마상을 세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무 엇을 보았는지 돌연 그의 눈이 빛났다. 천(天)! 악마상의 정수리 뿔이 솟아 있는 부위에는 기묘한 형태로 천 자가 음각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이거로군!' 그는 음각된 획(劃) 속에 교묘히 세 개의 묵옥악마상을 끼워 넣었 다. 철컥! 하는 쇳소리가 들리는가 싶자 돌연 대설산 전체를 허물 어뜨릴 듯한 엄청난 굉음과 함께 악마상의 입이 쫘악 벌어지는 것 이 아닌가! 그 입 안으로 엄청난 크기의 동굴이 나타났다. 북궁후는 서슴없이 동굴 안으로 몸을 날렸다. 헌데 막 동굴 안으로 들어온 북궁후는 발밑이 허전함을 느꼈다. 동굴은 밑으로 뚫려 있었던 것이다. 북궁후는 재빨리 몸을 가누면서 천천히 낙하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시커먼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이 보이고 있었 다. 그리고 그 빛에 의해 바닥이 보이고 있었는데 빛은 오른쪽으 로 뚫려진 동굴 안에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북궁후는 가볍게 착지하면서 오른쪽 동굴로 뛰어들었다. "오!" 폐부 깊숙이 울려나오는 한마디 경탄성이 북궁후의 입에서 터졌 다. 그가 들어온 곳에는 절경(絶景)이 펼쳐져 있었다. 천하에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 또 있을까? 까마득한 하늘에는 다섯 개의 오색(五色)의 태양이 떠 있었다. 아니 그것은 태양이 아니라 거대한 다섯 개의 야광체(夜光體)였다. 그리고 그 아래로는 새로 운 별천지가 펼쳐져 있었다. 전설 속의 무릉도원(武陵桃源)일까? 그 어떤 말로도 이 아름다운 경치를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이곳은 인간계(人間界)와 격리된 또 하나의 선계(仙界)인 것 같았 다. 그윽한 향기를 발하는 아름다운 화초(花草)와 수목(樹木)들이 도처에 만발해 있었다. 서편 절벽에서 폭포수가 비단폭을 드리운 듯 쏟아지고 있었으며, 수목과 화림(花林) 사이로 미인(美人)의 눈물보다도 더 맑은 듯한 계류가 흐르고 있었다. 북궁후는 마침내 천외선부에 들어온 것이었다. 그는 한동안 홀린 듯 이 아름다운 절경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그의 얼굴은 서 서히 굳어졌다. 아름다운 자연(自然)이었다. 헌데 대자연과 더불어 생존(生存)해 야 할 인간(人間)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질식할 것 같은 정적 만이 흐르고 있었다. 사람의 넋을 빼앗을 만한 절경이되 그곳이 침묵이 흐르는 곳임을 상상해본 일이 있는가? 자연은 잎을 피우고 열매를 맺되 소리를 내지 않았다. 계류는 흐 르고 있으되 소리가 나지 않았다. 새들은 날고 있으되 울지 않고 있었다. 북궁후는 천외선부 안을 거닐기 시작했다. 웅장화려한 건축물들이 었다. 신(神)의 걸작품임을 의심할 수 없는 갖가지 신비로운 조각 들과 화수림은 한 폭의 그림같았다. 허나 북궁후의 얼굴은 점점 굳어갈 뿐이었다. 태양보다 더 밝게 빛나던 그의 눈은 암울하게 그늘져 있었다. 사람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살아 있는 생명체의 정기를 흡수하여 성장하는 수미만상대라법진의 숙주(宿主)가 되어 모두 사라졌는 가? 북궁후는 착잡한 심정으로 천외선부 깊숙이 들어갔다. 헌데 그의 발에 채여 구르는 것이 있었다. 뼈의 조각들이었다. 그것은 북궁후의 발길에 채이자 즉시 가루로 변해 흩어지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 갈수록 백골은 점점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이곳에 있던 수많은 식솔들은 모두 죽음을 당한 것 이었다. 이것은 정녕 허무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낡디 낡은 전각이었다. 사방에 시커먼 그물같은 거미줄이 걸려 있 었다. 전각의 규모는 크고 화려했으나 오랜 세월에 낡고 피폐해 있었다. 북궁후는 안으로 들어섰다. 드넓은 전각의 중앙에 들어선 순간 그 의 눈에 잔잔한 파문이 일어났다. 맞은편 거대한 석단(石壇) 위에는 두 개의 거대한 조각상이 있었 다. 그것은 용과 봉황의 조각상이었는데 지금 당장이라도 살아서 꿈틀거리며 승천할 듯 생생하였다. 황금빛 봉황의 입에는 한 자루 백검(白劒)이 물려 있었다. 길이는 두자 반 정도 될까? 검신은 투명하고 은은한 백광을 발하고 있었 다. 검자루에는 한 개의 푸른 구슬이 박혀 있었다. 일견키에도 비 범한 검기(劒氣)가 뿜어지는 검(劒)이었다. 북궁후는 그 앞으로 다가갔다. ■ 검 3권 제30장 죽음의 성(城)! -10 ━━━━━━━━━━━━━━━━━━━━━━━━━━━━━━━━━━━ ⑩ 석단에는 수북이 먼지가 앉아 있었다. 헌데 석단을 내려다 보고 있는 북궁후의 눈에 은은한 놀람의 빛이 떠오르고 있지 않은가. 석단의 중앙에는 섬세한 필체로 글씨가 쓰여져 있었는데 괴이쩍게 도 글씨가 쓰여진 곳에는 먼지가 없었던 것이다. '아아! 이것은 이 글을 쓴 사람의 공력이 아직까지 남아 있기 때 문이다! 진정 놀랍구나! 그 오랜 세월동안 지력(指力)이 남아 있 다니... 그는 필시 혼신의 공력을 이 글 속에 남겼으리라.' 북궁후는 내심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헌데... 누가 여기에 글을?" 북궁후는 의혹을 느끼며 글을 읽어갔다. <왜 안오시나... 왜? 모두 죽어가고 있다.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헌데 그분께선 왜 안오시나... 혈륜천마군에게 속은 것일 까... 아아! 이대로 본 천외선부의 역사가 끝나려나....> 구구절절이 애끓는 안타까움을 품고 있는 글이었다. 북궁후의 검 미가 가볍게 물결쳤다. "아! 이것은 태천무선로의 내자의 글이다!" 잔잔한 서글픔같은 것이 가슴에 전해져 왔다. 태천무선로의 통한 과는 또다른 느낌인 것이다. "그녀는 이곳 천외선부의 조사전(祖師殿)에서 태천무선로가 돌아 오기를 기원했었구나!" 애닯은 여심(女心)이었다. 북궁후는 용봉의 조각 앞에 경건히 구 배(九拜)를 올렸다. 천외선부의 고혼들을 위로함이었다. 잠시 후, 그는 손에 정심한 내공을 돋구어 봉황의 입에 물린 백검 을 잡았다. 그의 손이 대뜸 금광에 휩싸였다. 용트림같은 기음(奇音)이 터지 면서 적막한 공기를 가르며 예리한 백광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마침내 자검(雌劍)이 북궁후의 손에 들어온 것이다. "신검(神劒)이다. 검신에 영기(靈氣)가 흐르고 있지 않은가!" 북궁후는 희열에 들뜬 탄성을 터뜨렸다. 찬란한 보광(寶光)이 전 각 안에 물결치고 있었다. 헌데 이때였다. 우르르릉! 돌연 전각이 무너질 듯이 흔들리는 것이 아닌가! 순간 북궁후는 급히 자검을 갈무리하고 전각을 빠져나왔다. 그 순간 북궁후는 지옥을 보았다. 천지를 밝히던 야광체는 사라지고 없었으며 하늘은 온통 시커먼 구름같은 기류에 뒤덮혀 있었다. 아름다운 화초(花草)와 수목(樹木)들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었으며 비단폭을 드리운 듯 쏟아지던 폭포수에서는 시커먼 흑류 가 흐르고 있었다. 미인의 눈물보다 더 맑은 듯한 계류는 핏빛으 로 변해 있었다. 신비로운 조각들과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들은 귀기로운 골격만을 남긴 채 귀풍에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유계(幽界)에 들어온 것 같았다. 우우우웅! 하늘을 뒤덮고 있던 기류가 회오리를 치더니 그 중심에 길게 찢어 진 틈새가 나타났다. 헌데 그 틈새를 본 북궁후는 가슴이 섬뜩하였다. 그것은 마치 사람의 눈처럼 그를 내려다 보고 있었던 것이다. 북궁후는 뇌리에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맙소사! 수미만상대라법진이 깨어났다!' 살아 있는 생명체의 정기를 흡수하여 성장하는 식인귀(食人鬼)라 불리우는 괴진(怪陣)이 천 년만에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북궁후는 순간 두려움보다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천외선부의 모든 생명체의 정기를 흡수한 수미만상대라법진에 대한 분노였다.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숙주가 되었을까? 수십, 수백, 아니 어쩌면 수천 명이 될지도 모르고 그속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도 있었을 것이다. 북궁후는 온몸의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자웅쌍검(雌雄雙 劍)을 빼들었다. 고오오오! 검은 기류 속에 길게 찢어진 틈새가 마치 뱀눈처럼 껌벅이는 것 같더니 무시무시한 흡입력이 북궁후의 주위 십여 장 안을 빨아들 였다. 부서진 조각들과 전각들이 솟구치고 있었다. 땅거죽들이 벗겨지면서 맹렬한 속도로 길게 찢어진 틈새 사이로 흡수되고 있었다. 북궁후의 입에서 노호가 터지면서 그의 신형이 틈새를 향해 그대 로 폭사되었다. "만조신검(萬造神劍)!" 하나의 검식에 일만 가지의 조화를 부린다는 천혜검경의 제사초 만조신검이 폭발하고 있었다. 자웅쌍검이 교차되면서 수천 가닥의 섬광이 하늘을 뒤덮었다. 시커먼 기류들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가고 있었다. 그 사이로 마치 수미만상대라법진의 피와 살처럼 부서진 전각의 조각과 흙먼지들이 폭우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꽈르르릉! 지축이 뒤흔들리면서 땅이 갈라지고 있었다. 수미만상대라법진의 최후의 비명처럼 땅과 하늘, 그리고 석벽들이 갈라지면서 그 잔재 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그때 북궁후의 신형은 빠른 속도로 자 신이 들어왔던 동굴 안으로 몸을 날리고 있었다. 천외선부는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천 년의 신비를 간직한 천외석 부는 수미만상대라법진과 함께 그 종말을 고하고 있었다. ■ 검 3권 제30장 죽음의 성(城)! -11 ━━━━━━━━━━━━━━━━━━━━━━━━━━━━━━━━━━━ ⑪ 탑리목하(塔里木河). 신강성 천산남로에 있는 강(江)이었다. 상원(上源)은 천산산맥 및 합라하림 산맥에서 발원하는 아극소강(阿克蘇江)을 비롯한 여러 강으로 나뉘었으며 탑격납극(塔格納克) 사막의 북변을 지나 동방 으로 향하고 다시 동남으로 꺾이어 흘러들어간다. 유역은 공기가 건조하고 특히 사막지대가 많아 수량이 작다. 헌데 이곳에서 동북쪽으로 하나의 거대한 사막이 있는데 세인들은 그곳을 혈륜사(血輪沙)라고 불렀다. 혈륜사! 바로 저주의 성(城)인 혈륜마성이 웅크리고 있는 열사의 땅이었다. 위이이잉! 혈륜사의 열사(熱沙) 위에는 뜨거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헌데 이때 까마득한 지평선 저 쪽에 한 개의 인영이 나타났다. 그 는 순식간에 사막을 가로 지르면서 날아왔다. 바로 북궁후였다. 북궁후는 단 한 번도 땅을 밟지 않고 그대로 서쪽의 모래능선을 향해 쏘아가고 있었다. 휙! 하는 소음과 함께 북궁후는 능선 위에 가볍게 내려섰다. 그의 시선은 지평선 동쪽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또하나의 거대한 모래산이 있었다. 그 산은 너무나 높아 마치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것 같았다. '저곳이 바로 천궁사(天宮沙)라는 모래산이로군.' 천궁사는 사막의 용권풍(龍拳風)에도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고 태 고적부터 혈륜사를 지켜온 신비스러운 모래산이었다. '저 천궁사의 뒤쪽이 바로 혈륜마성이 잠들어 있는 혈륜사인가?' 그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떠올랐다. '만일 혈륜마성이 열렸다면... 그때는 나의 힘으로도 어찌할 수가 없다. 부디....' 그는 한가닥의 기대를 갖고 재차 몸을 날리고 있었다. 쐐애액! 그는 대붕처럼 날아오르더니 기다란 포물선을 그리면서 천궁사로 날아갔다. 헌데 날아가던 도중에 북궁후는 천궁사 뒤쪽에서 들려 오는 은은한 뇌성에 안색이 홱 변했다. '천기신군이 출구를 찾았단 말인가! 아니 어쩌면 이미 마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다급해졌다. 다음 순간 그는 지금보다 두 배의 속도로 천궁 사로 폭사되어 갔다. 삽시간에 천궁사의 산정에 착지한 북궁후는 재빨리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의 얼굴에 경악이 떠오르고 있었다. 자욱한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하나의 거대한 성채가 희미 하게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시커먼 흑빛으로 만들어진 성(城)이 었다. 성벽에는 수많은 악귀나찰들의 상(像)이 조각되어 있었고 뾰족뾰족한 성안의 전각(殿閣)들은 마치 유계의 염왕전(閻王殿)을 보는 것 같았다. 성루(城樓)에는 귀마유귀(鬼魔幽鬼)의 역만다라상(逆曼茶羅像)이 창칼을 들고 있었는데 그것은 괴이쩍게도 모래바람속에서도 한눈 에 보이고 있었다. 북궁후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이는 곧 혈륜마성에 펼쳐져 있던 금제가 파괴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혈륜마성이 마침내 천 년의 잠에서 깨어난 것이었다. "아아, 혈륜마성이 열리다니!" 북궁후의 눈에 절망이 스쳤다. 아수라(阿修羅)의 귀두상(鬼頭像)이 새겨진 거대한 성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그것은 마치 아수라귀가 천하를 삼켜버리기 위해 송 곳니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았다. 북궁후의 신형이 휘청거렸다. "천기신군! 그래도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있었거늘... 당신이 혈 륜마성을 열다니!" 북궁후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는 선 채로 두 눈에서 노여움에 가득한 화염을 이글거리면서 미 끄러지듯이 혈륜마성을 향해 날아왔다. 그의 전신에서는 섬칫한 살기가 구름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이 한 몸을 바쳐서라도... 막으리라!" 그는 성 안에 남아있을 마인들을 모조리 제거하기로 결심한 것이 다. 허나 과연 몇 명이나 남아있을 것인지! 한 줄기 삭풍이 불어왔다. ■ 검 3권 제30장 죽음의 성(城)! -12 ━━━━━━━━━━━━━━━━━━━━━━━━━━━━━━━━━━━ ⑫ 혈륜마성의 드넓은 광장(廣場)이었다. 삭풍은 이곳에도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헌데 언제부터인가? 한 명의 백삼노인이 넋을 놓은 채 광장의 복 판에 우뚝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휘날리는 백발(白髮), 단전까지 늘어진 백염에 삭풍이 맴돌고 있 었다. 그는 바로 천기신군 모용선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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