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뒤에는 두 명의 괴인들이 역시 경악의 표정으로 몸을 떨고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혈륜십마존중 나머지 이마존인 심마존(心 魔尊)과 음마존(音魔尊)이었다. "...없다!" 모용선학은 언제부터인지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아무도 없다... 모두 죽었다!" 이토록 허탈할 수 있는 것일까? "이곳은 죽음의 성... 살아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럴 수 가... 아아! 이럴 수가!" 천기신군은 완전히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혈륜마성은 이미 죽음 의 성으로 변해 있었다. 그의 전면에는 흩어진 백골들만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천기신군이 무엇을 위해 지난 세월을 보냈는가? 천기신군의 신형은 폭풍에 휩싸인 버들가지처럼 걷잡을 수 없는 경련을 일으켰다. "이... 이건 말도 안된다! 이럴 수가!" 천기신군은 허공을 우러르며 비통하게 외치고 있었다. 이때 심마 존이 참혹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대사형! 삼 년 전 우리가 이곳을 탈출할 때 이곳에는 삼천 명에 이르는 가족들이 있었소. 헌데 그들이 모두 죽은 것으로 보아 그 동안 억제시켜왔던 수미만상대라법진이 발동했던 모양이오!" 천기신군이 허망한 눈빛으로 심마존을 보았다. "수미만상대라법진이라고...?" 심마존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이곳을 탈출할 때 수미만상대라법진의 발동을 억제하고 있던 삼십육장로의 희생으로 겨우 나올 수 있었는데... 그들이 죽 음을 당하자 진법이 발동한 모양이오." 천기신군의 눈빛이 이상하게 변했다. "그래? 그렇다면 너희는 죄값을 치루어야 겠구나?" 심마존이 흠칫하였다. 그 순간 천기신군의 눈에서 흉폭한 살광이 뿜어져 나왔다. "헉!" 음마존과 심마존이 기겁을 하여 뒤로 물러서려는 순간이었다. "배신자는 가랏!" 천기신군의 손가락에서 다섯 가닥의 섬광이 치뻗었다. "으아악!" 처절한 비명이 터지면서 두 사람의 신형이 펄쩍 뛰어올랐다.그들 의 등 뒤로 퍼억! 하면서 핏줄기가 터져 나왔다. 그들은 가슴을 부여안은 채 경악과 불신이 가득한 눈으로 천기신군을 바라보면서 그 자리에 폭삭 주저앉았다. 전율스럽게도 천기신군은 단 일초에 혈륜십마존중 가장 강력한 무 공을 가지고 있던 심마존과 음마존을 즉사시킨 것이었다. 이때 돌연 주위로 사나운 광풍이 휘몰아치더니 시커먼 기류가 하 늘을 뒤덮었다. 기류 사이로 길게 찢어진 틈새가 나타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사람의 눈처럼 천기신군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천기신군의 시선이 틈새로 향했다. "바로 너였느냐? 네가 바로 일천 년 혈륜마성의 한(恨)을 무용지 물로 만들었구나...." 그는 마치 다정한 친구에게 속삭이듯이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의 입에서 잔혹한 일갈이 터져나왔다. "죽어버렸!" 그의 쌍장이 맹렬한 속도로 허공의 틈새를 향해 치뻗어졌다. 펑! 하는 가죽북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시뻘건 혈운덩어리가 쏘아져 나가더니 틈새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 순간 천지개벽이 일어나는 듯한 폭발이 틈새 사이에서 들려왔 다. 틈새 사이로 시퍼런 수백 줄기의 섬광이 작렬을 하는 것 같더 니 하늘을 뒤덮고 있던 검은 먹구름이 순식간에 흩어져 버렸다. 경악스럽게도 천기신군은 일장에 괴진(怪陣) 수미만상대라법진을 산산조각내 버린 것이었다. 허망한 일이었다. 일천 년 동안 혈륜마성의 마인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괴진이 순식간에 한줌의 연기로 사라지고 있었다. 이때 부드 러운 음성이 그의 비통한 심정을 뚫고 조용히 들려왔다. "백부님." 망연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천기신군이 움찔하였다. '왔는가! 역시 너였구나! 기다리고 있었다!' 귀에 익은 음성이었다. 천기신군은 뒤돌아보지 않아도 그 음성의 주인이 누구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천기신군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평정을 되찾고 있었다. 천기신군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차분하게 말했다. "후아야! 오랜만이구나." 천기신군의 등 뒤에 물처럼 고요히 서 있는 그는 바로 북궁후였 다. 북궁후는 조용히 말했다. "백부님... 아니 천기신군!" 천기신군의 눈빛이 흔들렸다. 문득 천기신군의 얼굴에 잔잔한 웃 음이 피어올랐다. "후아야!" "어쩌면 나는 오늘을 기다리며 너를 키워왔는지도 모르겠다!" 북궁후의 눈빛이 흔들렸다. "자신 있는가?" 천기신군의 눈빛이 흔들렸다. "자신은 없소. 다만 확신이 있을 뿐이오!" 바람은 완전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막다른 길목이었고 더 이상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두 하늘(天)의 만남이었지만 그 중 하나는 반드시 깨어져야 하는 하늘이었다. ■ 검 3권 제30장 죽음의 성(城)! -13 ━━━━━━━━━━━━━━━━━━━━━━━━━━━━━━━━━━━ ⑬ 문득 천기신군의 입가에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조심해라! 노부의 검은 매우 무정(無情)하니까!" 대답은 없었다. 바로 그 순간 천기신군의 신형이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돌아섰다. 물고기 비늘같은 새하얀 검광이 폭우처럼 북궁 후의 전신을 휩쓸어왔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사대전설신병중 하나인 마검(魔劍)이 들려 있 었다. 마검은 이 순간 한줄기 빛살처럼 쇄도해 오고 있었다. 그 빠름, 그 독랄한 기세를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북궁후의 눈에 한 줄기 광채가 치솟았을 때 그의 몸은 이미 수십 가닥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파파파팟! 허공을 찢는 파공음, 천기신군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떠오른 것 도 바로 그 순간이었다. '베었다! 후아야, 네가 나를 실망시키는구나!' 마검(魔劍)이 처절한 묵광을 뿌리고 있었다. 허나 다음 순간 천기 신군의 입가에 떠올랐던 미소는 나타날 때보다 수 배의 빠르기로 사라졌다. 당연히 피를 토하고 거꾸러져야 할 그가 여전히 그 자리에 태산처 럼 버티고 서 있지 않은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한 모습으로.... '이, 이럴 수가, 내가 허공을 베었단 말인가?' 천기신군의 눈빛이 일순 물결치듯 흔들렸다. 북궁후는 그런 그를 쳐다보며 조용히 미소했다. "신군, 오늘 당신은 반드시 죽어야 하오. 이건 피할 수도 거역할 수도 없는 하늘의 뜻이오!" '하늘의 뜻이라고?' 천기신군의 안색이 가볍게 변했다. 이상하게도 북궁후의 음성에서 두려움을 느낀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천의(天意)라는 말에 두려 움을 느꼈는지도 몰랐다. "허허허!" 허나 다음 순간, 천기신군의 신형이 벼락치듯 퉁겨나가며 한꺼번 에 칠십이검을 펼쳐냈다. 그러자 삽시간에 천지가 어둠으로 뒤덮 이는가 하더니, 은은한 뇌음을 울리며 수천 수만 갈래의 검광이 미친 듯이 휘몰아치는 게 아닌가! 지축이 뒤집히는 듯 시꺼먼 흙 먼지가 돌풍처럼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허나 북궁후는 태산처럼 버티고 선 채 티끌만큼의 미동도 없었다. 헌데 이 무슨 괴변이란 말인가? 그토록 무섭게 휘몰아치던 검기의 폭풍도 정작 북궁후의 몸 근처 에 이르러서는 흔적도 없이 사그라지는 것이 아닌가! 천기신군의 놀람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허나 그의 마 검은 최후최대의 힘을 가지고 더욱 무서운 기세로 움직이고 있었 다. 어찌 인간의 몸에서 이렇듯 가공할 검공(劒功)이 펼쳐질 수 있으 되 또한 그 엄청난 공세 속에서도 한잎 깃털처럼 조용히 서있는 북궁후의 모습을 또한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나, 나는 꿈을 꾸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도저히 이럴 수가 없 다!' 흔들리고 있었다. 이미 천기신군은 자신이 무슨 초식을 어떻게 펼 쳤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는 오로지 북궁후를 향해 검을 휘두 를 뿐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이미 북궁후가 시전하고 있는 천혜검경의 환상속에 빠져 있 는 것이었다. 문득 북궁후의 입가에 한줄기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어느새 그 의 양손에는 자웅쌍검이 쥐어져 있었다. "신군! 잘 가시오!" 북궁후의 입에서 무심한 음성이 흘러나오면서 한줄기 창백한 빛줄 기가 천기신군의 정수리를 향해 무섭게 폭사되었다. 그 빠름을 형용할 말은 없었다. 그러나 천기신군은 분명히 보았 다. 그리고 피하고 싶었다. 허나 그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치 온몸이 보이지 않은 사슬에 묶인 듯 꼼짝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퍼어억! 빛줄기는 그대로 천기신군의 정수리를 관통하고 뒤로 날아가고 있 었다. 그리고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을 대효웅(大梟雄)의 꿈은 깨 어지고 있었다. 천기신군은 피와 뇌수가 뒤엉켜 흘러내리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천 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그는 문득 주춤하는 것 같더니 맹렬하게 바닥으로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퍽! 그의 생명을 잃은 육신이 지면 위로 쓰러지는 소리는 곧 이 땅 위 에 시작되었던 대혈겁이 막을 내리는 소리이기도 했다. 북궁후는 이미 혈륜마성의 성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멀어져 가는 북궁후의 입에서 쓸쓸한 음성이 흘러나와 허공에 흐르고 있었다. "모든 것은 일장춘몽(一場春夢)...." 자고 나니 꿈인데.... 검(劍)이 홀로 피(血)를 흘린다. 한 세상, 꿈과 같은 것이거늘, 어이 그 삶을 노곤하게 하리오. 옛 사람, 지금 사람, 흘러가는 물같으되.... 밝은 달을 우러르긴 매 한 가지, 바라거니와, 시름 겨워 마소서.... - 大尾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