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록]천객 - 4 - 11편 (11/17)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본문 바로가기

[야설록]천객 - 4 - 11편 (11/17)

💬 0 👁 3
☰ 목록
책갈피와 음성 읽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일도는 정확했으며 새삼스럽게 그 결과를 확인한다는 것은 그를 모욕하는 것이나 같았다. '당신은 너무 방심했소…….' 섬전도는 몸을 숙여 복청양을 안아 들고는 걸음을 옮겼다.
패마도 백아아도 이제는 그의 관심 밖이었다. * * * "이제 깨어났나?" 만리추종이 웃고 있었다. "사흘 만이로군.
난 자네가 죽는 줄 알았네." "여기가 어디요?" 복청양이 물었다. "어디겠나, 운유애지.
산기슭에 쓰러져 있는 자네를 업고 오느라고 죽을 뻔했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어떻게 내가……." 그러나 복청양은 그 대답을 듣지 못했다.
만리추종이 대답을 하기 전에 다시 의식을 잃은 것이다.
복청양은 눈을 떴다.
아무도 없었다.
만리추종도 없었고 다른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짙은 어둠만이 사방을 지배하고 있을 뿐이었다.
복청양은 다시 눈을 감았고 깊이 잠이 들었다.
편안했다. * * * 복청양은 천품신성과 마주앉아 있었다.
그가 운유애에 들어온 지 꼭 열흘 만이었다.
그 동안 그는 시중을 들어주는 동자들 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만리추종을 한 번 본 것 같았으나 그것이 꿈이었는지 생시였는지도 불분명하다.
동자들은 그가 무슨 질문을 해도 웃기만 할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웃음이 그다지 밝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복청양은 질문하는 것을 포기해 버렸다.
지금은 질문을 할 때가 아니었다.
하지만 복청양은 한 가지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그가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는 다시 기회가 오기 마련이다.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기회는 반드시 온다.
그리고 그가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을 때 천품신성이 그를 불렀고 이처럼 마주앉아 있는 것이다. "몸은 좀 어떠냐?" 천품신성이 물었다. "견딜 만합니다." 복청양이 대답했다.
사실 그는 놀랍도록 빠르게 회복해가고 있었다.
좌우쌍마에게서 입은 검상은 전부 가벼운 것인지라 거의 치유되었고 단황과의 싸움에서 받은 내상도 어지간히 회복되었다.
그것은 상처를 치료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와 동자들이 끊임없이 달여준 약 덕분이었다.
동자들은 그 약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복청양은 그것이 천품신성의 정성이 담겨있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천품신성은 아마도 그를 치료하기 위하여 그 동안 모은 영약들을 아낌없이 사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복청양은 새삼스럽게 천품신성에게 고맙다는 인사는 하지 않았다.
말은 필요없었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없다.
다만 서로의 진심이 통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다행이구나." 천품신성이 복청양을 돌아보았다.
복청양은 운유애를 떠날 때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사람은 그대로였으나 눈빛이 다르다.
얼굴이 수척한 것이야 그 동안의 고생이 심했던 까닭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일신에서 풍기는 기도는 지난날의 그것이 아니었다. '많이 자랐구나.' 천품신성은 복청양이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휴화산(休火山)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비록 잠들어 있지만 일단 터지기 시작하면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폭발력을 지닌 휴화산.
복청양은 가슴속에 불길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느냐? 어디 한 번 들어보자." "별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복청양이 입을 열었다.
그는 단심백결회로 가서 겪은 일을 숨김없이 이야기했다.
백아아가 그를 구하려다가 패마에게 죽임을 당한 것까지.
그 당시 그는 반혼수상태였으나 백아아의 죽음만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랬구나……." 천품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복청양의 이야기에 별달리 토를 달지 않았다. "마지막에 너를 구한 자가 누구인 것 같더냐?"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자에게 패마가 죽었습니다." "알겠다." 천품신성은 깊은 생각에 잠겼으나 무엇을 생각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너는 단황을 죽이고 싶으냐?" "그렇습니다." 복청양이 짧게 말했다. "가능하면 그를 죽이겠습니다.
아니, 반드시 그를 죽이겠습니다." "얘야, 너의 몸에 살기가 너무 짙어졌구나." 천품신성이 탄식했다.
그는 깊은 눈으로 복청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너를 나무라지는 않겠다.
상황이 어쩔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으니…… 그리고 너를 위해서도 약간의 살기는 키우는 것이 좋다." 말을 멈춘 천품신성이 조금 힘이 드는지 숨을 몰아쉬었다. "너는 단황을 직접 보았다.
다시 싸우면 그를 이길 수 있겠느냐?" "현재로써는 불가능합니다." 복청양이 말했다. "그는 강합니다.
그 동안 생각해 왔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한 자입니다.
하지만 파천일해라면 그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파천일해…… 나도 한동안 그렇게 생각했었다." 천품신성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어렵게 되었다.
그 동안 우리가 기대해 왔던 것들이 모두 무너져 버렸다.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을 만큼 철저하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복청양이 다급히 물었다.
그는 천품신성의 말속에 뭔가 그가 알지 못하는 의미가 숨어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따라오너라." 천품신성이 사륜거를 굴렸다.
그가 초막을 나오자 대기하고 있던 동자들이 즉각 다가왔다.
그러나 복청양은 그들을 저지하고 대신 사륜거를 밀었다. "어디로 가야 합니까?" "저기다." 천품신성이 손가락을 뻗어 우측에 외따로 떨어진 초막을 가리켰다.
그 초막은 평소 은조가 거처로 사용하던 것이었다.
복청양은 그리로 사륜거를 밀고 갔다. "문을 열어라." 천품신성이 말했다.
문을 여는 복청양의 손이 조금 떨렸다.
그는 어쩐지 이 문을 열면 뭔가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그 동안 운유애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어두운 분위기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리라.
삐이걱 문이 열렸다.
초막 안은 어두웠다.
창문을 모두 두꺼운 천으로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초막 안은 단촐하여 집기라고는 나무로 만든 의자와 나무침상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나무침상 위에 한 사람이 누워 있었다.
은조였다.
은조는 놀랍게도 면사를 벗고 있었다.
그녀는 자는 듯이 눈을 감고 있었는데 거기에 나타난 건 기품있는 중년부인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은조는 복청양이 다가가도 눈을 뜨지 않았다. "은조……." 복청양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으며 몹시 말라 있었다.
목 외에 다른 부분은 이불 속에 들어있어 알 길이 없었다.
복청양은 감히 그 이불을 들추지 못하고 다시 낮은 목소리로 은조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역시 대답이 없다.
은조는 잠이 든 것 같았다.
깊은 꿈속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복청양은 은조가 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뭔가 잘못 되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뭔가 잘못 되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것이 운유애를 어둡게 짓누르고 있는 그림자의 정체일 것이다.
복청양은 몸을 돌렸다.
입구에 천품신성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천품신성은 사륜거에서 내려와 냇가의 바위에 앉아 있었다.
따뜻한 겨울 햇살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그의 모습은 거룩하도록 장엄해 보였다.
그의 몸에서 일종의 광휘가 일어 사방을 비추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복청양은 조심조심 천품신성에게로 다가갔다.
그러자 천품신성이 얼굴을 돌려 그를 보았다.
그의 입가에 조용한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복청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은조가 어찌하여 저렇게 되었습니까?" "내 실수다." 천품신성이 무겁게 탄식했다. "처음부터 내 욕심이 과했던 것이다.
애당초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무리하게 밀고 나가다가 저리 된 것이다.
후후…… 나는 내가 생에 대한 욕심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생에 대한 미련이 많은 못난 위인이었다.
그리고 그 욕심이 은조를 저리 만든 것이다." 복청양은 천품신성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잠자코 있었다.
지금은 그가 끼여들 때가 아니었다. "은조는 무리하게 파천일해를 익히다가 저리 되었다.
애당초 파천일해는 그 아이에게는 무리였다.
저 아이의 공력으로는 파천일해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작은 독에 많은 물을 담고자 하는 것이어서 결국은 독이 깨어지고 만다.
나는 진작에 그걸 깨달았어야 했다.
하지만 깨달음이 너무 늦어 은조를 저 꼴로 만들고 말았다." 천품신성이 어두운 눈으로 흐르는 물을 보고 있었다.
그의 눈 속에는 깊은 회한의 빛이 담겨 있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한 나의 말을 이해하겠느냐.
은조가 저 지경이 되었으니 파천일해를 시전할 방법이 없다.
단황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사라졌다는 말이다.
그리고 단심백결회도 무너졌으니 우리는 빈손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졌다." "그럼." 복청양이 숨을 헐떡였다.
천품신성이 무심하게 한 말은 그에게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은조가 영영 깨어나지 못한단 말입니까?" "그렇다." 천품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은조가 겪은 주화입마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나는 최선을 다하여 간신히 그 아이의 목숨은 살렸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시키지는 못했다.
어쩌면 영영 깨어나지 못할지도 모르고 설사 깨어난다고 하더라도 폐인이 되는 것을 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일이 모두 허사란 말입니까? 앞으로 모든 일이 지마와 단황의 뜻대로 되어가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만약 정말로 다른 방법이 없다면 저 혼자서라도 싸우겠습니다.
그들의 손에 의해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우리가 이대로 주저앉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선 저 자신부터 용납이 되지를 않습니다.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습니다.
어르신, 어르신이라면 반드시 무슨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얘야, 나는 신이 아니란다." 천품신성이 복청양의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듯 조용하게 말했다. "나도 사람이다.
따라서 할 수 있는 일과 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
난 전능이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잘 찾아보면 비록 실낱 같은 가능성이기는 하지만 희망은 있다." "그게 무엇입니까?" "우선 만리추종과 장경신을 무당산으로 보냈다.
지금 백도의 남은 힘이라면 무당파가 전부라 할 수 있다.
비록 그 힘이 크지는 않지만 무당파의 소진도장과 장경신이 힘을 합친다면 상당한 세력을 끌어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백도는 중심을 잃고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 잠재력은 결코 무시하지 못한다.
어떤 계기만 마련되면 흩어진 백도를 다시 하나로 모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합니다.
단심백결회도 무너진 마당에 그들만의 힘으로는 저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렇다." 천품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최선을 다하고 부족한 점은 네가 메워야만 한다." "제가요?" "청양아, 너는 이 일에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느냐?" 천품신성의 눈이 빛났다.
그는 무서운 광채를 발하며 복청양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것은 이제까지의 무기력한 노인의 눈이 아니었다.
불길을 담은 사자의 눈이었다.
복청양이 잠시 침묵했다. "그러겠습니다." "무릇 소아(小我)를 버리면 대아(大我)를 찾는 법이다.
지금까지 나는 이 일을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이 일은 하늘의 이치를 거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계획이 허사로 돌아간 지금, 나는 이 일을 결행하지 않을 수 없구나." "그 일이라는 게 대체……." "역리다!" 천품신성이 부르짖었다. "순리(順理)가 통하지 않으니 역리(逆理)로 세상을 바꿔 보자는 것이다.
이 일은 지금까지 아무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러나 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그 성공할 가능성은 손톱만큼밖에 없으며 어쩌면 너는 이 일로 인해 죽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열에 아홉은 죽을 것이다.
그래도 해보겠느냐?" "하겠습니다." 이번의 대답은 아무런 주저도 없었다.
그만큼 복청양의 의지가 확실하다는 뜻일 게다.
천품신성이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 만족감은 어딘지 서글퍼 보였다.
구구궁 육중한 소리를 내며 거대한 바위가 옆으로 밀려나갔다.
이처럼 거대한 바위를 움직이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니 아마도 기관장치가 되어있는 모양이었다.
천품신성은 복청양을 데리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안은 좁고 어두웠으며 구불구불했다.
천품신성의 사륜거로는 도저히 통과할 수 없는 길이었다.
그래서 입구를 조금 지나자 복청양은 천품신성을 업고 걸어야만 했다.
몇 구비인가 돌아가자 마침내 저쪽에서 환한 빛이 비췄다.
빛은 앞으로 갈수록 점점 밝아졌다.
동굴의 끝이 나타나고 있었으며 그 끝은 다른 쪽의 외부와 연결이 되어 있었다.
마침내 복청양은 밖으로 나왔다.
그곳은 이쪽 계곡과는 아주 다른 곳이었다.
작은 호수가 있었으며 호수 곁에 까만 돌로 쌓은 단이 있었다.
단은 모두 아홉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만든 지가 오래 된 것 같았다. "이곳에 오게 될지는 몰랐구나." 복청양의 등에 업힌 채로 천품신성이 말했다. "나를 내려놓거라." 복청양은 천품신성을 단 아래에 내려놓았다.
천품신성은 힘이 드는지 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그는 감회어린 표정으로 아홉 층의 단을 보고 있었다. "이곳은 천금단(天禁亶)이라고 한다." 천품신성이 말했다. "내가 천금단을 만든 것은 지금부터 꼭 십 년 전이었다.
그러나 천금단을 쌓으면서도 나는 이곳을 사용하지 않게 되기를 간절하게 소망했다.
그러나 이제는 어쩔 수 없구나." 천품신성이 옆자리를 가리켰다.
앉으라는 뜻일 게다.
복청양은 아무 말없이 천품신성의 곁에 몸을 앉혔다. "너는 시간이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잠시 침묵을 지키던 천품신성이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그는 복청양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흔히 시간은 흘러간다고 한다.
그리고 한 번 흘러간 시간은 다시 잡지 못한다고 하지.
그것은 옳은 말이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고 일단 흘러간 시간은 다시 돌이키지 못하는 것이 하늘의 이치다.
아무도 이 이치를 거역하지는 못한다." 천품신성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 동안 복청양은 조용하게 고여있는 호수를 보고 있었다.
호수의 표면은 잔잔했으며 아무런 파문도 일지 않았다.
마치 호수 전체가 잠들어 있으며 바람도 이곳만은 침범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러나 시간은 꼭 그렇게 흘러가는 것만은 아니다.
오늘은 어제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내일은 오늘의 연장이다.
이처럼 어제와 오늘과 내일은 서로 연관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한 줄에 꿰인 구슬처럼 하나로 연결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접점이 존재한다.
만일 어떤 힘이 있어 시간의 접점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그는 내일로도 갈 수 있고 어제로도 갈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역행한다는 뜻이다.
내 말을 이해하겠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그럴 게다." 천품신성은 복청양이 자신의 말을 얼른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나무라지 않았다. "이는 하늘의 오묘한 이치이니 굳이 이해하려고 할 것은 없다.
다만 시간의 접점을 찾을 수만 있다면 원하는 대로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다는 정도로만 이해하면 된다.
시간의 접점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찾는 일은 지난하다.
그러나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내가 이 천금단을 쌓은 것은 바로 그 시간의 접점을 찾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그렇다." 천품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 나는 금기로 되어있는 반천역시대법(反天逆時大法)을 시전하여 시간의 접점을 연 뒤 너를 거기로 띄워 보낼 작정이다.
그러면 너는 네가 원하는 다른 시간대로 들어가게 된다.
허황된 얘기처럼 들리겠으나 본래 인간의 몸에는 무한한 잠재력이 들어 있다.
또한 인간의 몸은 이 우주와 너무나 닮아 있다.
우주의 힘이 인간의 몸 속에 내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만일 시간의 흐름과 하늘의 이치를 제대로 알아 그 잠재력을 극대화시킨다면 시간의 접점을 여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어르신네……." "아무 말 말거라." 천품신성이 손을 저어 복청양의 말을 막았다. "하나 이는 하늘의 이치를 거역하는 일이라 당연히 시전하는 사람의 생기(生氣)를 크게 감소시킨다.
내가 지금까지 이 일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생에 미련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무엇을 망설이겠느냐.
숱한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이 늙은 목숨 하나 던져 그들을 구할 수만 있다면 그것 또한 보람있는 일이 아니겠느냐." "어르신, 하지만 그건……." "내 말을 잘 들어라." 천품신성의 얼굴이 갑자기 엄숙해졌다.
그는 엄숙한 얼굴로 복청양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앞으로 이레 뒤에 나는 시간의 접점을 열어 거기로 너를 띄워 보낼 것이다.
물론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성공할 가능성은 극히 적으며 어쩌면 너는 이 일로 인해 목적을 이루지도 못하고 죽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나는 그 일을 할 것이다.
이유는 그 방법만이 단황을 막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청양아, 네가 가는 시간은 이십 년 전의 과거다.
은조가 알아온 바로는 단황이 십마를 만난 건 지금부터 꼭 이십 년 전이다.
이십 년 전 유월 열이레에 단황은 백마사 부근에서 십마를 처음 만났다고 한다.
너는 바로 그 시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단황을 찾아서 그를 죽여라.
그가 십마를 만나지 못하게 해라.
만일 단황이 십마를 만나지 못한다면 역사는 바뀔 것이다.
이는 과거를 바꾸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뒤바꾸려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알 듯합니다." "단황은 무서운 자다.
그러나 그의 능력은 모두 십마가 키운 것이다.
이십 년 전, 십마를 만나기 전의 단황이라면 그다지 대단치 않을 것이므로 지금의 네 능력으로도 충분히 처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단황으로 인해 파생된 현재의 사태는 막을 수가 있다.
하지만 이 일을 함에 있어 꼭 명심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시간의 접점을 언제까지나 열어둘 수는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네가 과거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꼭 사흘이다.
사흘 이내에 너는 단황을 찾아서 그를 해치워야만 한다.
사흘째 되는 날 나는 너를 불러들일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는 영원히 시간의 미아가 되어 목숨을 잃을 것이기 때문에 이는 어쩔 수가 없다.
사흘이다.
알겠느냐?" "사흘……." 사흘이란 지극히 짧은 시간이다.
이처럼 막중한 일을 하는데 있어 사흘은 눈 한 번 깜빡일 시간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단황이 십마를 만나는 시간과 장소를 알고 있으니 그것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염려 마십시오.
사흘 안에 반드시 해낼 것입니다." "너라면 그 일을 해내리라 믿는다." 천품신성이 손을 뻗어 복청양의 몸을 잡았다.
업으라는 뜻이다.
복청양은 천품신성을 업고 몸을 일으켰다. "준비해야 할 일이 많다." 천품신성이 복청양의 등 뒤에서 말했다. "앞으로 이레 동안 나는 외인을 일체 만나지 않을 것인즉 그렇게 알아라." "알겠습니다." "하늘이 도운다면 우리는 이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말은 혼잣말 같았다.
그것은 차라리 자기 자신에게 다짐하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이레가 지났다.
그 동안 천품신성은 일체 외인을 만나지 않았으며 자신의 초막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그가 그곳에서 무슨 일을 하였는가는 하늘만이 알 것이다.
이레째 되는 밤이었다.
복청양은 천금단 위에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그는 천품신성이 일러주는 대로 두 손을 가슴 위에 모으고 두 눈을 감았다.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을 텅 비우는 데에만 열중했다.
아홉 층의 단에는 각 단마다 아홉 개씩의 횃불이 켜져 있었다.
도합 여든하나의 횃불이 밝혀져 있는 것이다.
복청양의 앞에는 단촐한 제상이 마련되었고 그 위에는 간단한 제수와 날카로운 비수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두 개의 굵은 초가 일렁이며 타고 있었다.
천품신성은 하얀 학창의를 걸친 채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산통(算筒)을 흔들고 있었다.
그는 마치 신선처럼 보였는데 그 어느 때보다도 엄숙한 모습이었다.
달이 밝다. "천지신명이시여……." 천품신성이 문득 산통을 뒤집어엎더니 무릎을 꿇은 채로 두 팔을 활짝 벌려 하늘을 향했다.
그는 끊임없이 주문을 외우고 있었는데 그 주문은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 같았다.
그러자 그토록 밝던 달이 돌연 구름 속으로 사라지며 짙은 암흑이 찾아왔다.
암흑은 너무나 갑자기 덮쳐서 마치 지구의 종말이 온 것 같았다.
천품신성의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팔이 떨리고 다리가 떨리고 전신이 떨렸다.
그는 전신을 마치 학질 걸린 사람처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얼굴은 극도로 붉어져서 술에 잔뜩 취한 사람 같았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주문이 점점 빨라진다.
우우우우 우우우 어디선가 괴기어린 귀곡성(鬼哭聲)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 한 줄 댓글 0
비회원 · 이 글에 하루 1개만 등록 가능
HTML/스크립트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댓글은 최대 120자이며 페이지를 이동하지 않고 바로 등록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Copyright © webstoryboard.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