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록]천객 - 4 - 16편 (16/17)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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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록]천객 - 4 - 16편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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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무흔색투의 위로 올라섰고 그녀의 검은 머리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가만……." 여자가 무흔색투의 어깨를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여자의 얼굴이 기묘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온 얼굴을 열기로 물들인 채 열중하고 있었는데 혀의 움직임이 참으로 절묘했다. "으음, 좋구나……." 무흔색투는 온몸이 허공으로 두둥실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아래로 추락하려고 하면 여자가 어김없이 다시 끌어올렸다. "좋아……." 무흔색투는 행복했다.
이렇게 여자에게 빠져서 평생을 보내는 것이야말로 그가 소원하던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는 행복했다.
가슴에 인두로 지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기 전까지는. "호호호!" 여자가 열심히 허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무흔색투의 남성은 그녀의 몸 속으로 들어와 있었고 그것은 아직도 살아 있었다.
그러나 정작 쾌락에 겨워 있어야 할 그 남성의 주인은 이미 가슴에서 피를 철철 쏟으며 숨을 거둔 후였다. "아아……." 마침내 여자가 피 속에 전신을 묻으며 가쁜 숨을 터뜨렸다.
그녀의 전신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얼굴에는 피로감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만족감으로 젖어 있었다.
평생 이처럼 만족스런 정사를 치르는 것은 처음이었다. "운사(雲師), 끝난 거요?" 문 밖에서 굵은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제야 상체를 세운 여자는 몸 속에 여전히 무흔색투의 남성을 담은 채 신경질적으로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내 걱정은 하지 말라고 그랬잖아요!" 그녀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보다 풍사(風師), 이제는 당신 차례예요.
실수가 있어서는 안 돼요." "염려 마시오." 문 밖에서 목소리가 사라졌다.
가버린 모양이다. * * * 꽝! 우르릉 콰광! 꽝! 정의지성 전체가 흔들리며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정의지성의 한쪽 벽이 무너져 내렸으며 그 폭발에 휩쓸려 죽어간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폭발은 천수벽뢰가 화약을 제조하는 공방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그리고 놀란 사람들이 달려왔을 때 천수벽뢰는 이미 그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었다. * * * 만대모는 방금 삶아낸 싱싱한 인육을 입 속에 구겨넣고 있었다.
먹는 것은 그녀가 가장 즐기는 행위였다.
평소 같으면 그녀의 얼굴은 인육을 입에 넣을 때마다 희열로 붉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만은 그렇지 않았다. '빌어먹을.' 만대모는 얼굴을 우거지상으로 붉히며 꾸역꾸역 인육을 뱃속으로 밀어넣었다.
인육이 이에 씹힐 때마다 어쩐 일인지 방금 보고온 천수벽뢰의 처참한 모습이 눈에 어른거린다. '빌어먹을, 하필이면 이런 때에 그런 일이 생기다니.' 천수벽뢰가 누구인가! 화기의 달인이라고 자부하는 위인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위인이 하필이면 화약이 폭발하는 사고로 죽고 말다니.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것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가! '마주님도 안 계신데…….' 단황은 지금 화화궁에 가 있었다.
그는 거기서 장차 신부가 될 군성초를 데리고 돌아올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런 경사스러운 일을 코앞에 두고 이처럼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다니…….
천수벽뢰는 운이 어지간히도 없는 위인이었다.
하기야 따지고 보면 그 같은 사고는 미리 예비되어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화기라는 것은 언제나 예측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그런 화기를 옆에 끼고 사니 언젠가는 그런 화를 당할지 알았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그런 엄청난 사고가 일어났는데 어째서 적발수룡이나 무흔색투 같은 위인들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느냐는 점이었다. '보나마나 어느 계집의 배 위에서 세상 모르고 엎어져 있겠지.' 만대모는 무흔색투를 생각하자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무흔색투 같은 종자는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족속이었다.
도대체 색이 뭐가 좋다고 그렇게 깊이 빠져서 헤어날 줄 모른단 말인가! 무흔색투의 얼굴을 떠올리자 만대모는 더욱 힘차게 입 속으로 인육을 밀어넣었다.
이제는 인육을 씹는 것이 아니라 무흔색투를 씹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녀의 동작이 멎었다.
만대모는 눈을 홉뜨고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육을 부지런히 운반하던 손은 입가에서 멈춘 상태다. "으으……." 그녀의 입에서 괴상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는 의자에 앉은 채로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의 떨림이 어찌나 심한지 기어이 의자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다.
쿵! 만대모가 뒤로 벌렁 넘어졌다.
그러나 만대모는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녀의 비대한 몸이 바닥에 반듯이 누운 채로 마구 경련을 일으켰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떨림이 가라앉았다.
그녀의 얼굴이 점차 회색으로 변하더니 잿빛으로 변해갔고 이어 흙빛이 되었다. "꺼억, 꺽!" 짐승 같은 소리가 흘러나오더니 이제껏 그녀의 입으로 들어갔던 인육이 도로 게워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두 눈을 부릅뜬 채로 연신 입에서 인육을 게워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추악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만대모의 움직임이 정지했고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 * * 바로 그 시간.
쾌마는 한 사람과 마주서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 쾌마는 조금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떻게 그에게 도전하는 자가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인가! "지금이 적당한 시기라고 생각하오." 섬전도가 조용히 말했다.
그는 쾌마와 이 장의 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 "나는 그전부터 당신이 나보다 더 빠르다는 소문을 믿지 않았소.
그리고 지금 그 소문이 과연 사실인가 확인해 보고 싶소." "이건 미친 짓이네." 쾌마는 섬전도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이것은 가장 어리석은 짓이었다.
같은 편끼리 피를 흘리며 싸우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짓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건 용납될 수 없는 일이야.
마주가 만일 이 사실을 안다면 자네를 용서하지 않을 걸세." "그런 건 아무래도 좋소." 섬전도가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난 나보다 더 빠른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용납할 수 없소.
나보다 더 빠른 사람은 오직 하나뿐이오.
마주, 그분만이 그런 영예를 누릴 수 있소.
하지만 당신은 아니오.
당신은 나보다 빠를 수 없소."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게." 쾌마가 퉁명스럽게 말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어쨌든 나는 자네와 싸우고 싶지 않네.
누가 더 빠르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당신한테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지 모르나 내게는 목숨보다도 중요한 일이오." 섬전도가 반월도로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당신이 아무리 싫어도 우리는 싸워야 하오.
당신이 설사 검을 빼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출수할 것이오.
그리고 당신을 베겠소." "미친 짓!" 쾌마가 소리쳤다. "아무래도 좋소.
어차피 세상은 미쳐 돌아가고 있지 않소?" 섬전도가 움직였다.
그는 이 장의 거리를 단번에 도약하며 쾌마의 앞으로 다가들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반월도는 뽑아들지 않았다.
쾌마의 굵은 눈썹이 꿈틀했다.
그는 정말로 싸우고 싶지 않았다.
이런 식의 명예욕에는 이제 진절머리가 났다.
그러나 그가 뽑지 않는다면 섬전도는 틀림없이 그를 벨 것이다. "찻!" 쾌마가 움직였다.
그리고 그 순간 섬전도의 반월도가 뽑혔다. "당신은 훌륭했소." 섬전도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쾌마의 시신을 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당신은 불행히도 나를 상대함에 있어 살기를 가지지 못했소.
나를 반드시 죽이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단 말이오.
그게 당신이 패한 이유요." 섬전도는 반월도 끝에 매달린 한 방울의 피를 보았다.
쾌마는 아마도 아무런 고통도 없이 죽었을 것이다.
그게 그가 쾌마에게 베풀 수 있는 마지막 관용이었다. "일은 이미 시작된 것.
누구도 이 혈겁에서 피해갈 수는 없소." 반월도를 도집에 밀어넣은 섬전도가 몸을 날렸다.
쾌마도 죽었으니 이제는 지마의 차례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제 36 장 파천일해(破天一解) 지마는 어둠을 보고 있었다.
그것은 짙고 짙은 어둠이었다.
사실 지마는 이제껏 어둠과 벗하여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늘 어둠 속에 있었으며 그러기에 어둠은 그에게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은 다르다.
이 어둠은 그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뭔가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마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아있는 쇠마에게 말을 던졌다. "설마 그럴 리가……." 쇠마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연기도 안 나는 곰방대를 빨고 있었는데 주름진 얼굴이 더욱 늙어 보였다. "틀림없습니다." 지마가 완강하게 말을 이었다. "천수벽뢰의 사고는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장난을 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벌어졌는데도 적발수룡은 달려오지 않았고 무흔색투에게도 연락이 끊겼습니다.
그들에게도 무슨 일인가 일어난 것이 분명합니다." "자네가 너무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닌가? 천수벽뢰의 사고야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아직 연락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습니다." 지마가 고개를 저었다.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저의 느낌은 틀린 적이 없습니다.
분명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도 우리의 주변에서요.
그런데도 그게 뭔지를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게 기분 나쁩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나?" 쇠마가 비로소 정색을 하고 물었다.
지마에 대한 신뢰가 큰 만큼 그 역시 이번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가장 좋지 않은 것은 저들은 어둠 속에 숨어있는데 우리는 노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병법에서는 이걸 아주 금기로 여기지요.
게다가 마주마저 지금 마천성에 있지 않습니다.
물론 마주가 있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겠죠.
저들은 마주가 없는 틈을 노렸습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낼 방법이 없겠나?" "현재로써는 불가능합니다." 지마가 말했다. "지금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다시 그늘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저들과 동등한 입장이 되고 저들이 꼬리를 내밀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저들이 이미 행동을 개시한 이상 우리에게 과연 그럴 만한 시간의 여유를 줄는지 그게 의문입니다." "다시 그늘로 들어간다……." 쇠마가 재도 나오지 않는 곰방대를 손바닥에 가볍게 두드렸다. "하긴……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여태까지도 그늘 속에서 살았는데 이제 다시 그늘로 들어간다고 해서 뭐가 해롭겠나.
더구나 이번에는 그리 길지도 않을 테니……." "그렇습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뜻이 일치된 것이다. "쇠마 어른." 그때 밖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쾌마가 죽었습니다." 쾌마의 죽음을 알리는 음성, 그것은 암혼의 것이었다.
그러나 놀라운 소식을 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성은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하기야 암혼이 아닌가! 그는 아마도 옆에서 벼락이 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뭐라고?" 와장창! 방문이 부서져 나갔다.
쇠마가 앉은 채로 방문을 부수고 밖으로 나간 것이다. "쾌마가 죽었다고? 그게 정말이냐?" "그렇습니다." "이런…… 어느 놈이 감히……." 휙 쇠마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미처 말릴 사이도 없는 기쾌하기 그지없는 동작이었다. '쾌마마저…….' 지마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자신의 다리가 미미하게 떨리는 것을 알았다. "도대체 누가…… 누가 있어 이처럼 빠르게 손을 쓸 수가 있단 말인가……." "바로 나요." 지마는 서둘지 않고 천천히 밖으로 걸어나왔고 멀지 않은 곳에 남궁격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남궁격은 웃고 있었다.
지마는 웃고 있지 않았다. "너였느냐?" 지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너란 말이냐? 네가 이 모든 일을 꾸몄단 말이냐?" "그렇소." 남궁격이 말했다. "지마, 당신은 큰 실수를 저질렀소.
그건 바로 나를 살려준 것이오.
쓸데없이 인정을 베풀어 적을 살려주다니 당신답지 않았소." "그랬나……." 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비록 마주의 명이 있었지만 그때 너를 살려주어서는 안 되었지.
그게 내 실수였음은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너 혼자의 힘으로는 이런 일을 벌릴 리 없는데 도대체 누가 너를 돕고 있는 것이냐?" "누굴 것 같소?" "네가 여기에 나타날 수 있었던 걸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은 간다.
우리 주변의 인물이냐?" "그렇소.
그리고 당신이라면 내가 이처럼 직접 나타난 의미도 아마 알고 있을 거요." "그야 날 죽이겠다는 뜻이겠지.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정체를 노출시킬 리가 없을 테니까." "바로 맞았소." 남궁격이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 순간 지마의 발 밑이 갈라졌다. "헛!" 지마는 다급히 몸을 날렸다.
그러나 그는 몸을 날리는 순간 이미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땅속에서 튀어나온 차가운 빛은 그가 피한다고 해서 피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후두둑! 맑은 하늘에 물기가 번져갔다.
그것은 피였다.
지마의 피.
그 피를 흠뻑 뒤집어쓴 채 한 사나이가 냉막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자는 너무 방심했다." 그 사나이가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그는 방심하지 않았소.
그는 아마 당신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오.
다만 그가 몰랐던 것은 당신이 자신을 벨 거라는 것이었지." 남궁격은 두 쪽으로 양단되어 바닥에 널브러진 지마의 시신에서 눈길을 거두었다.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소? 호위로 데리고 있던 암혼이 자신을 베리라는 것을……." * * * 혈풍(血風)은 소리없이 일어났다.
정의지성을 지탱하고 있던 단황의 측근 삼백여 명이 불과 하룻밤 사이에 죽음을 당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친구에게 죽임을 당했으며 혹은 자신의 제자에게 혹은 자신이 사랑하던 여인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들은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무엇 때문에 죽는지 몰랐으며 그 이유를 모르기는 단황의 혼인을 축하하기 위해 정의지성에 모여든 숱한 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다만 하룻밤 사이에 정의지성을 휩쓴 그 이유없는 혈풍에 아연할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날이 밝자 정의지성은 다시 조용해졌다.
혈풍에 휩쓸린 사람들은 전부 죽었고 혈풍을 일으킨 사람들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정의지성은 예전 그대로였다.
그러나 정의지성이 분명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는 것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무런 흔적도 없이 정의지성을 휩쓴 혈풍.
그러나 그 피바람을 피해간 사람들도 있었다.
황금대장주 가개풍은 깊은 밤에 섬전도의 방문을 받았다.
그들은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다음날 날이 밝자 가개풍은 정의지성을 떠났다.
그는 다만 말 한 마리와 작은 마차 하나를 대동하고 있었다고 한다.
무독옹은 처음부터 정의지성에 있지도 않았다.
그는 은조에 의해 불타버린 만독화원을 재건하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었으며 따라서 외부의 일은 그의 관심 밖이었다.
정의지성이 무너지는 일 따위는 그가 알 바 아니었다.
동정화상은 분명 정의지성에 있었으나 그의 시체는 끝내 찾지 못했다.
그는 단황의 측근 중에서 혈풍을 피해간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쇠마는 신비하게 실종되었다.
당연히 선두에 서서 이 혼란을 수습해야 할 그의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새로운 날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날이 새로운 날의 시작이라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며칠 후 일단의 고수들을 이끌고 만리추종과 소진도장이 정의지성에 입성하기까지는. * * * 단황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표정만 보고 알아내기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기에 동정화상은 그럴 엄두도 내지 못하고 바닥에 납작 고개를 박고 있었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단황이 노하는 것이었다.
그가 분노를 터뜨리면 그건 아무도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단황은 마치 아무런 얘기도 듣지 못하였다는 듯이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모두 죽었단 말이냐?" 이윽고 그가 조용히 물었다.
나직하기 그지없는 음성이었으나 동정화상에게는 그게 천둥소리보다도 크게 울렸다. "그런 줄 압니다." 동정화상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행여 마주가 자기 혼자 살아온 걸 나무랄까 크게 두려워하고 있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단황은 그에게 책임을 추궁할 마음은 없는 것 같았다. "쇠마도, 지마도, 천수벽뢰까지 모두 죽었단 말이지?" "그런 줄로 압니다." 사실 동정화상은 일의 전말을 자세히 알고 있지 못했다.
그는 다만 정의지성에 괴변이 일어나자 눈치 빠르게 몸을 빼어 달아났을 뿐이다.
그러나 감히 마주의 앞에서 그런 사실을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모두 죽었다고…… 주동자가 누구냐?" "그게……." "모른단 말이냐?" 단황의 음성이 처음으로 높아졌다. "죄송합니다, 마주." 동정화상이 바닥에 머리를 쿵 소리가 나도록 찧었다.
그의 비대한 몸은 이미 진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어떤 자들의 소행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모든 것이 너무도 순식간에 이루어진지라…… 하지만 화를 면한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마주, 송구스러운 말씀입니다만 마천성은 지금 비어있는 것이나 같습니다.
마주께서 어서 돌아가셔야만 합니다." "감히 누군가가 얼굴도 내밀지 않고 내게 도전을 했단 말이지?" 단황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재미있구나.
후훗, 그자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제법 머리를 잘 썼어.
교활하게 내가 없는 틈을 이용하여 그런 일을 벌리다니.
그리고 일이 성사되자 재빨리 꽁지를 감추었단 말이지.
내가 돌아오는 것을 두려워했음인가?" "분명 그럴 것입니다, 마주.
비록 마천성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암습을 당하여 죽었지만 지금이라도 마주께서 명령만 내리시면 당장 달려올 고수들이 구름처럼 많습니다.
그자들은 그걸 두려워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내가 명을 내리면 당장 달려올 자들은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지.
하지만 그들은 모두 쓸모없는 자들이다.
누가 감히 지마나 쇠마의 역할을 대신하겠느냐?" 단황이 몸을 일으켰다. "마천성으로 갈 것이다." "지금 가시겠습니까?" 동정화상이 얼굴에 희색을 띠우며 단황을 우러러보았다. "그렇다.
감히 누가 나를 건드렸는지 그자들의 얼굴을 보아야겠다.
그자들이 누군지는 몰라도 머리가 조금이라도 돌아가는 자들이라면 내가 돌아갈지 알고 있겠지.
하지만 그들은 큰 실수를 하였다.
그들은 나를 건드리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나를 과소평가한 대가로 천하가 피로 젖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단황의 눈에서 불길이 일고 있었다.
그 불길은 천하를 태워버리고도 남을 만큼 뜨거웠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그럴 필요없소." "당신이 가는 곳이면 저도 갑니다.
그곳이 그 어떤 곳이든간에.
말리려 하지 마십시오." "난 여자의 도움은 필요없소." "당신도 저를 여자로 보십니까? 서운하군요.
전 비록 여자이지만 여자이기 이전에 당신의 분신이고 동반자입니다.
저를 떼어놓고 갈 생각일랑 아예 하지 마십시오." "후후, 당신은 나를 이길 자가 있다고 생각하시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럼 되었소.
이건 아무 것도 아니오.
천하를 경영하자면 앞으로 어려운 일이 많을 거요.
장차 닥쳐올 일에 비한다면 이 일은 아주 사소한 것이오.
나는 그저 산책을 나가는 것이니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시오.
당신은 아무 걱정 말고 여기 남아 혼례식 준비나 하시오.
그것이 당신이 할 일이오." "진정…… 그래도 되겠습니까?" "날 믿으시오.
난 단황이고 천하마주요.
비록 천하가 넓다고 하나 아직 나를 꺾을 자는 존재하지 않소.
지금뿐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히 그런 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오.
그러니 당신은 여기 남으시오.
그게 날 위하는 길이오." "당신의 뜻이 정 그러하다면 그러겠습니다." "고맙소." "부디…… 조심하십시오." "후후, 당신은 아직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구려.
이건 쥐새끼들을 잡으러 가는 것이오.
위험이란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소.
보름만 기다리면 사람을 보내 당신을 마천성으로 부르리다.
그때 당신은 마천성의 안주인이 되는 것이며 천하에서 가장 강한 남자의 여자가 되는 것이오." "천하에서 가장 강한 남자의 아내……." "그게 바로 당신이 원하던 일이 아니었소?" 단황이 출발하기 직전에 섬전도와 암혼이 화화궁에 도착했다.
그들은 단황에게 마천성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하고는 그의 뒤를 따라 마천성으로 향했다. * * * 휘이잉 휘잉 산정에 바람이 불고 있었다.
바람이 어찌나 심한지 굵은 나뭇가지가 척척 휜다.
그러나 나무 밑에 쭈그리고 앉아 곰방대를 빨고 있는 노인에게는 그까짓 바람은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이윽고 노인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노인은 산정을 향해 올라오는 한 사람을 보고 있었다. "너였구나." 노인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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