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어르신네들이 여기서 이틀이나 기다린 보답을 해야지." 스팟! 지주개의 손이 움직였다. 그의 손에 감겨있는 새끼줄 같은 것이 복청양의 안면을 노리고 길게 날아오고 있었다. 이제 보니 그것은 정말로 새끼줄이었다. 새끼줄 끝에 새까만 돌멩이를 매단 것이다. 무기라면 참으로 별난 것이었다. "이러지들 마시오." 침중하게 소리치며 복청양이 한 걸음 옆으로 움직였다. 그는 그 동작으로 새끼줄 공격을 피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새끼줄은 교묘하게 방향을 틀며 여전히 그의 안면을 노리고 있었다. 지주개는 새끼줄을 채찍과 같은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핫!" 복청양은 몸을 굽히며 새끼줄 아래로 파고 들어갔다. 상대의 병기가 기니 접근하여 싸우려는 것이다. 그때 뒤에서 날카로운 경풍이 일었다. 복청양은 돌아보지 않고도 그것이 당랑개의 공격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당랑개는 손에 타구봉을 들고 있었는데 그것으로 복청양의 등을 노려왔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도 인사들은 상대의 등을 공격하는 것을 상당히 꺼려한다. 아마도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이 그 이유이리라. 하지만 이들은 처음부터 그런 관례 같은 것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복청양의 신형이 좌로 이동했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삼절묵창이 들려 있었다. 그 역시 이들이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깨닫고 서둘러 무기를 꺼내 든 것이다. 어둠 속에서 세 사람이 어우러지고 있었다. 이충개는 언제나 둘이 함께 붙어다니는 만큼 연수합격에 능란했다. 지주개는 먼 곳에서 공격하고, 당랑개는 가까운 거리에서 지근전을 펼쳤는데 그 호흡이 기가 막히게 맞아 들어갔다. 반면에 복청양의 쇄금십팔창법은 원래 수비를 위주로 하는 수법이었다. 그는 능숙하게 열여섯 개의 창영을 만들어내며 두 사람의 연환공격에 대항하고 있었다. "대단하구나!" 당랑개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그의 타구봉이 단순한 봉법에서 패고, 후려치고, 걸고, 무찌르는 여러 가지 수법으로 변화했다. 개방의 절기인 타구봉법(打狗棒法)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타구봉이 위력을 떨치자 거기에 맞춰 지주개의 새끼줄은 허공에 거미줄처럼 촘촘한 그물막을 만들고 있었다. 복청양이 당랑개의 공격을 피해 신형을 솟구치기를 기다리며 서서히 덮어 누르자는 것이었다. 복청양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삼절묵창이 수시로 길이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그는 복가장의 창법에다 천산오조의 절기를 한데 섞어 사용했는데 창법이 워낙 변화무쌍하여 빈틈을 찾기 어려웠다. 순식간에 오십여 초가 지났다. '이대로 무한정 시간을 끌 수는 없다.' 복청양은 상대를 해치지 않으면 오늘 이 싸움을 끝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돌연 삼절묵창이 여섯 자 길이로 늘어나며 당랑개의 하반신을 쓸었다. 그러자 당랑개가 코웃음을 치며 타구봉을 내려 막았다. 그 바람에 당랑개의 신형이 다소 낮추어졌다. 그 순간 복청양이 땅을 걷어찼다. "어?" 당랑개의 입에서 놀라움의 탄성이 터져나왔다. 복청양이 땅을 걷어차자 흙먼지가 안개처럼 퍼지면서 때마침 허리를 숙이던 당랑개의 눈을 덮친 것이다. 당랑개는 자기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그 순간적인 공백을 이용하여 복청양이 외마디 장소성을 지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걸렸다!" 지주개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그려졌다. 그토록 고대하던 제물이 제 발로 사지로 뛰어든 격이 아닌가! 지주개는 공중에서 새끼줄을 교묘하게 얽으며 복청양의 몸을 휘어 감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그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던 복청양의 삼절묵창이 빠르게 움직였다. 복청양은 창으로 허공을 세 번 찌르고 있었는데 그것은 아무런 목적도 없는 공연한 창질 같았다. 하지만 그 세 차례의 창질이 지주개의 새끼줄이 움직일 방향을 사전에 봉쇄하고 있었다. '오냐, 그렇다면!' 지주개는 이를 악물고 새끼줄을 흔들어 복청양의 삼절묵창을 감아 버리려 했다. 하나 삼절묵창이 새끼줄에 감겨드는 순간 돌연 그 길이가 두 자로 줄어들었다. "헛?" 지주개의 입에서 헛바람이 새어나왔다. 잔뜩 힘을 준 공격이 그만 허공을 후려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삼절묵창이 지주개의 얼굴로 날아왔다. 복청양이 창을 던진 것이다. "어이구!" 지주개는 그만 체면도 잊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휘익 삼절묵창이 그의 뒤통수를 스치고 날아갔고 그와 동시에 다른 물체가 그를 타넘었다. 복청양이 삼절묵창을 따라 절묘한 신법으로 지주개의 저지선을 돌파한 것이다. "잡아라!" 당랑개가 기겁하여 타구봉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지주개는 놀라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어엇?" "어쿠!" 두 사람은 그만 서로를 비키지 못하고 그대로 충돌하고 말았다. 당랑개가 다행히 달리는 기세를 늦추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큰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둘이 꼴사나운 모습으로 바닥에 나뒹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하…… 두 분, 이만 작별을 고해야겠소." 복청양이 낭랑하게 웃으며 삼절묵창을 회수하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저, 저런 교활한……." 화급히 복청양의 뒤를 쫓아가려던 당랑개가 멈칫했다. 지주개가 넋나간 얼굴로 멍청하게 서 있었던 것이다. "너 왜 그러냐?" "난…… 난 모르겠다." 지주개가 중얼거렸다. "뭐를 말이냐?" "방금 그자가 왜 나를 죽이지 않았을까? 그자는 천노살성인데……." 조금 전, 복청양이 지주개의 등을 타넘을 때 아래로 일장만 갈겼더라도 지주개는 그야말로 배 터진 거미꼴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복청양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게 지주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설마 복청양 같은 고수가 그런 천재일우의 기회를 모르고 지나쳤단 말인가? "별 걸 다 신경쓰는구나. 그거야 달아나느라고 정신이 없어서 그랬겠지." "그랬을까? 정말로 그랬을까?" "그럼 뭐 저 잔인한 놈이 우리의 사정을 봐주었겠느냐? 잔말 말고 어서 뒤나 쫓자. 우리 둘이 함께 손을 쓰고도 저자를 놓쳤다는 소문이 강호에 퍼진다면 우리는 이후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다." "참, 그렇다. 서두르자." 지주개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활개치며 신형을 날리기 시작했다. 똥똥한 몸집과는 달리 그의 몸쓰는 수법은 무척이나 날렵한 것이었다. 산길을 따라가면 필경 저들이 곧 쫓아올 것이기 때문에 복청양은 길이 없는 곳으로만 골라 달렸다. 그 덕분에 그의 옷은 여기저기가 찢어지고 살이 긁혀 피가 흘렀다. "나 이거 무슨 고생인지 모르겠군." 한참을 달리던 복청양은 문득 걸음을 멈추며 쓴웃음을 머금었다. 무조건 달아나다 보니 이제는 자신이 왜 달아나야 하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렇게 매번 쫓겨야 한단 말인가?' 생각하면 억울한 일이지만 이제 와서 그런 걸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노릇이었다. 부엉부엉 어디선가 밤부엉이가 울었다. 찬바람이 얼굴에 와닿는다. 차가운 밤공기는 이슬을 머금고 있어서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이제 보니, 여기는?' 복청양은 그제야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텅 빈 공지였다. 그런데 여기저기에 불쑥불쑥 솟은 것들이 보였다. 그것들은 마치 땅속에서 솟아나온 혹처럼 보였는데 한두 개가 아니라 곳곳에 비슷한 형태가 흩어져 있었다. "공동묘지로구나." 복청양은 잠시 생각한 뒤에야 그 땅에서 솟아나온 혹 같은 것들이 무덤이라는 걸 알아보았다. 그는 어이없게도 공동묘지의 한복판에 와 있었던 것이다. '설마 귀신이 나올 리야 없지만 아무튼 기분 나쁜 곳이다.' 복청양은 몸을 날려 공동묘지를 벗어나려고 했다. 그때 멀리서 두 개의 그림자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그림자 하나는 키가 크고 하나는 똥똥하다. "빨리도 쫓아왔군." 두 걸인. 힘써 피한다고 했는데 어느새 여기까지 뒤쫓아온 것이다. '다시 만나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경신술을 사용하여 달아나면 단박에 눈에 뜨일 것이다. 어쩔까 망설이던 복청양은 주변에 있는 가장 큰 무덤 뒤로 숨어들었다. 그 무덤은 다른 무덤들보다 두 배는 컸기 때문에 뒤에 납작 엎드리자 겉으로는 전혀 표시가 나지 않았다. 당랑개와 지주개가 공동묘지로 들어서고 있었다. "분명히 여기로 온 것 같은데……." 지주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복청양이 산속에 남긴 흔적을 더듬어 여기까지 쫓아왔지만 그만 이 황량한 공동묘지에서 종적을 놓치고 만 것이다. "혹시 네가 잘못 짚은 거 아니냐?" "그럴 리가 없다. 그자는 분명 이리로 왔다. 내가 실수할 리가 없다." "이것아, 누가 들으면 네가 평생 실수 한 번 안한 줄 알겠다. 허구한 날 실수를 밥먹듯 하는 놈이……." 두 걸인은 아무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겠는지 사방을 뒤지며 찾기 시작했지만 다행히도 복청양이 숨은 무덤 뒤로는 오지 않았다. "안 되겠다. 그 녀석은 벌써 달아난 모양이다." 이윽고 당랑개가 말했다. "하긴 이 밤중에 줄행랑놓은 놈을 뒤쫓는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 이래 봐야 헛수고다." "그럼 어떻게 하지?" "별수없다. 다시 돌아가서 그자가 지나갈 길목을 지키는 수밖에." "언제까지? 그렇다고 한 번 혼난 놈이 다시 걸려 들겠느냐?" "그럼 다른 뾰족한 수라도 있느냐? 너나 나나 머리를 쓰는 데는 영 젬병이니……." 당랑개가 투덜댄다. "가자. 여기는 기분 나쁜 곳이다. 이러다가 정말로 귀신이라도 나오면 어쩔 셈이냐?" "어? 너도 귀신을 무서워 하느냐?" "그럼, 귀신 무섭지 않다는 놈도 있다더냐? 잔말 말고 어서 가자. 나는 여기 더 있고 싶지 않다." 당랑개가 몸을 날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같이 가자는 고함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지주개도 그 뒤를 따라가는 모양이었다. 긴 침묵이 이어졌다. 복청양은 얼른 무덤 뒤에서 나오고 싶었지만 행여 두 걸인이 어디에 숨어 있지는 않을까 싶어서 얼마 동안 더 그러고 있었다. 하지만 한참을 더 동정을 살펴도 아무런 기척도 들려오지 않았다. '다행이로군.' 복청양은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살려 주시오…… 살려……." 그것은 아주 가는 소리였다. 이곳이 괴괴한 침묵이 감도는 공동묘지가 아니었다면 쉽게 알아듣기 어려운 소리이기도 했다. 복청양의 머리털이 쭈뼛 솟았다. 그는 절대로 귀신의 존재를 믿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밤의 공동묘지에서 난데없는 소리가 들려왔으니 꺼림칙한 생각이 왈칵 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도대체 누가? 여기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다는 말인가?' 복청양은 혹여 잘못 들었는가 싶어 청각을 곤두세웠다.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나 단념하고 그 자리를 뜨려 할 때 다시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발…… 거기 누구 없소……." '틀림없다.' 복청양은 자신의 귀가 잘못 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한 번이면 몰라도 두 번씩이나 착각할 리는 없다. "누구요?" 그의 목소리가 조금 떨려 나왔다. 대답이 없었다. "누구요? 누가 있소?" 다시 한 번 목청을 돋우어 소리쳤다. 그러면서 복청양은 모든 신경을 귀로 모으고 있었다. "여기요! 여기…… 제발 살려 주시오……." 소리는 그의 앞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땅 밑에서 들리는 것인지도 몰랐다. '무덤 속이다!' 복청양의 눈이 빛을 냈다. 살아있는 사람, 분명 생명을 가진 목소리가 바로 눈앞의 무덤 속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복청양은 무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무덤은 상당히 큰 편이었다. 그러나 위에 덮인 잔디는 엉성했고 흙은 단단하게 다져져 있지 않아 부슬부슬했다. '만든 지 얼마 안 되는 무덤이다. 어쩌면 오늘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거기 누구 없소? 여기 사람이 있소. 살려 주시오……." 무덤 속에서 다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소리는 극히 가는 것이 점차 기력이 떨어져가는 모양이었다. 복청양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공력을 돋우어 무덤을 향해 힘껏 일장을 갈겼다. 펑 흙이 우수수 흩어졌다. 그의 진력이 담긴 장력이 어디 범상한 것인가! 무덤의 옆구리에 대번에 구멍이 움푹 파였다. 그러나 복청양은 손길을 멈추지 않고 힘을 조절해가며 연속으로 십장을 갈겼다. 무덤 주위가 대번에 폐허처럼 어수선해지면서 마침내 관이 모습을 나타냈다. 나무로 만든 관이었다. 까만 칠이 되어있는 것이 고가의 제품인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도 쓰지 못하고 거적에 말려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생각한다면 상당한 부자의 무덤이 틀림없었다. 복청양은 관 위의 흙을 쓸어낸 뒤에 손바닥으로 가볍게 관뚜껑을 두드렸다. "그 안에 사람이 있소?" "어이구!" 이제는 확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시오? 제발 살려 주시오. 난 살아 있소. 산 사람이란 말이오!" 관이 말을 하고 있었다. 이 깊은 밤중에 공동묘지에서……. < 제1권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