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1 - 10편 (10/20)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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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1 - 10편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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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광필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하는 것이 한치의 착오도 없었다.
연산군은 칼을 도로 집어넣으며 감탄하였다. "참으로 열사로다" 연산군은 그를 마침내 아산으로 귀양보냈다.
이때 법령이 준엄하여 귀양간 사람은 자유롭게 행동할 수가 없었다.
정광필은 빗자루를 들고 관청의 문을 지키는 일을 하면서 싫어하거나 괴로워하는 빛이 없었다.
중종 즉위년(1506)에 함경도 관찰사로서 찬성이 되었다가 얼마 안 가서 정승이 되었다.
동왕 14년 겨울에 공이 북문의 변고(기묘사화)를 혼자 당하여, 벽력 같은 임금의 위엄을 범하여 가면서 형벌을 완화하도록 간청하였다.
그 때문에 사림이 어육이 되는 화를 면할 수 있었다.
기묘사화의 하루 전 새벽에 남곤이 해진 갓과 거친 베옷을 착용하고 발에는 짚신을 신고 정광필의 집에 와서 문지기를 불러 말하였다. "급히 들어가서 손이 왔다고 말하여라" 문지기가 남곤임을 알고 들어와서 고하였다. "손이 문 앞에 당도하였기에 그 얼굴을 보니 남 판서입니다.
그런데 의복과 갓이 초라하여 천인처럼 보입니다" 정광필이 나가서 보니 과연 남곤이었다. "공이 어찌하여 이런 모습이오?" 이상히 여긴 정광필이 묻자, 남곤이 그런 차림을 하고 온 까닭을 다 말하였다. "이 신진사류들을 만일 한 사람이라도 남겨 두면 그 해독이 한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주상께서 반드시 공을 불러 의논할 것이니, 공은 주상의 뜻을 힘써 따라서 그들을 남김없이 제거하도록 하십시오.
그런 뒤에야 국가의 형세가 안정될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가 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위협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달래기도 하였다.
정광필은 정색을 하며 말하였다. "그대가 재상으로 천인의 복장을 하고 거리를 지나서 왔으니, 아주 놀랄 만한 일이오.
또한 사림을 해치기를 도모하는 것은 본디 내 의사가 아닌데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는 거요" 남곤이 크게 노하여 소매를 떨치고 일어났다.
그날 밤 2고에 임금이 신무문을 열고 여러 재신들을 불러들였다.
정광필은 수상으로 부름을 받고 궁궐에 들어가 왕을 대할 적에 눈물을 흘리며 극진히 간하였다. "젊은 선비들이 시의를 알지 못하고 망령되게 옛일을 인용하여 오늘날에 시행하려 하였을 뿐이지 어찌 다른 뜻이 있겠습니까.
너그러이 용서해 주소서" 말할 적마다 눈물이 흘러 옷자락을 적시니, 임금이 벌떡 일어나 내전으로 들어갔다.
정광필은 왕을 따라가서 어의 자락을 끌어당기고 머리를 조아렸는데, 계속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공은 또 남곤 등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공들이 성주를 보필하면서 어찌 유자광의 일을 행하려 하는가" 정광필은 정승 신용개와 친밀한 금란지교였다.
주상이 정광필에게 물었다. "경에게 벗이 있소?" 정광필이 대답하였다. "신은 다른 벗이 없고 오직 신용개 한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후일 신용개가 왕에게 들어가 대할 적에 임금이 또 그에게 물으니 신용개가 대답하였다. "정광필이 곧 신의 벗입니다" "두 사람은 지기지우라 할 만하다" 기묘사화 때에는 신용개가 이미 죽고 없었으므로 정광필이 탄식하였다. "만일 신공이 있었으면 반드시 이 화를 진정할 수 있었을 것인데, 그가 일찍 죽어서 나로 하여금 혼자 담당하게 하였다" 당초 현량과를 설치하려 할 때에 정광필이 홀로 불가하다고 하였다. "현량과의 명목이 좋기는 하나, 삼대(하, 은, 주) 이후에는 진실로 시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종이 듣지 않고 시행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온 조정이 그 현량과 파하기를 청하되, 정광필이 홀로 파하는 것이 불가하다고 아뢰자 임금이 물었다. "경의 소견이 매양 시의와 서로 반대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신이 당초에 굳이 불가하다고 말하였는데, 지금 이미 현량과를 설치하여 홍패(대과의 합격증서)를 주고 벼슬을 제수하였으니 어찌 파할 수 있겠습니까.
과거를 설치하고 파하는 것은 국가의 정령이니 이처럼 전도되게 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임금은 끝내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어 정광필은 정승의 직에서 파면되었다.
중종 22년(1527) 남곤이 죽자, 다시 정승이 되었다.
김안로가 정권을 잡자, 정광필을 죄를 얽어서 죽이려는 속셈으로, "정광필이 일찍이 희릉총호사(희릉은 인종의 어머니 장경왕후의 능임)가 되어 선후(장경왕후)를 좋지 못한 곳에 장사지냈다"고 얽어 죄를 만들어 중형에 처하기를 청하자 임금이 김해로 귀양 보내도록 명했다.
정광필이 이보다 앞서 이미 벌을 받아 파직되어 회덕현에 돌아가 있었는데, 뜻밖에 의금부 도사가 급히 달려왔다.
집안 식구들이 모두 놀라 눈물을 흘렸지만, 정광필은 바야흐로 손님과 육박(쌍륙) 놀이를 하면서 호로를 그치지 않았다.
육박놀이를 마치자, 유배의 명을 반포하니,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성상의 은혜가 지극하십니다"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자 코고는 소리가 우레와 같았다.
이튿날 행장을 꾸려 길을 떠날 적에도 말이나 얼굴빛에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정광필이 젊을 적에 꿈에 시를 지었다.
비방이 산더미처럼 쌓였으되 마침내 용서받았으니 이승에서는 임금 은혜 보답할 길 없구나 높은 재 열 번 넘으니 두 줄기 눈물이요 큰 강 세 번 건너니 홀로 혼이 끊어지네 아득히 높은 산에는 검은 구름 피어오르고 망망한 큰 들판에는 항아리 쏟듯 비가 오네 저물녘에 바닷가 동쪽 성 밖에 투숙하니 초가집은 쓸쓸하고 대나무로 문 만들었네 비가 오는 가운데 유배지에 당도해 보니 그 정경들이 모두 꿈에 지은 시의 내용과 같았다.
유배지에서는 화가 조석 사이에 박두해 있어 자제들은 다 공의 배소에 문안을 오고 오직 부인이 집에 있어 울부짖으며 여종을 시켜 원계채에게 소식을 탐문하게 하였다.
원계채는 곧 연혼한 처지이다.
원계채는 알아볼 방법이 없어서 점쟁이 김효명을 불러 점을 쳤다. "아직 10여 년의 복록이 있으니 조정 의논이 준엄하기는 하나, 마침내는 반드시 무사할 것이다" 점쟁이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어떤 사람이 와서 고하였다. "처벌을 주장하는 대간의 논의가 이미 오래되었다" 그 여종이 점쟁이를 붙들고 가슴을 치며 부르짖었다. "일이 이미 이와 같은데 네 말은 무슨 뜻인가?" "나의 술법대로 추산해 보면 이런 이치는 만에 하나도 없는데, 벌써 이렇게 되었으니, 난달 어찌하겠는가" 감효명은 재빨리 달아났다.
조금 뒤에 어떤 사람이 와서 고하였다. "대간의 계청이 윤허를 받았는데, 대간이 이미 흩어진 뒤에 '죽음에서 감형하라'는 전교가 특별히 내렸습니다" 중종 32년(1537)에 김안로가 세력을 잃자 임금이 공을 영중 추부사로 불렀다.
하인이 저보(관보)를 가지고 급히 달려 밤중에 배소에 이르렀는데, 발이 부르트고 입이 말라서 쓰러진 채 말을 하지 못하였다.
자제들이 두려워하며 주머니를 뒤져서 글을 보니 기쁜 소식이었다.
곧바로 아뢰니, 공은 다만 "그러냐?"라고 할 뿐, 그대로 코를 골며 달게 잤다.
이튿날 아침에 그 글을 보고 도성으로 돌아오니, 도성 사람이 이마에 손을 얹고 반기며 기대하였다.
정광필은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어, 식사할 적마다 그 남은 밥상을 오직 손자 유길과 증손자 지연에게만 주어 먹게 하고 다른 자제들은 끼지 못하게 하였다.
가까운 친척 조카인 이헌국이 문안을 드리자, 공이 바야흐로 식사를 마치며 자세히 살펴보고 그에게 거두어 주었다.
여종이 눈짓을 하며 말했다. "이분도 정승이 될 것인가" 과연 뒤에 그도 정승의 지위에 이르렀다. "젊어서 사직을 기울게 하였다"라고 시문을 고쳐 단 심정 심정(1471-1531)의 본관은 풍산이고, 자는 정지, 호는 소요당이다.
진사시에 합격하고 연산군 8년(1502)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중종반정 때에 정국공신 3등에 책록되어 화산부원군에 봉해졌으며, 대배하여 좌상에 이르렀다.
기묘사화(1519) 뒤에 소요정에 물러나 있을 적에 시를 지어 판에 새겨 정자 문미에 걸었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젊어서 사직을 붙들었고 백수에 강호에 누웠도다 어느 날 밤 꿈에, 젊은 협객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심정의 머리카락을 꺼두르고 죄목을 열거하며 꾸짖었다. "네가 사화를 일으켜 착한 선비들을 거의 다 죽여서 종묘 사직이 쓰러질 뻔하였는데, 네가 어찌 감히 '사직을 붙들었다'느니 '강호에 누웠다'는 등의 말로 시를 지어 건단 말인가.
네가 만일 '부'자와 '와'자를 빨리 고치지 않으면 내가 네 목을 벨 것이다" 심정이 엎드려 사죄하면서 말하였다. "'부'자는 '위태롭다'는 '위'자로, '와'자는 '엎드려 숨어 있다'는 '칩'자로 고치는 것이 어떻겠소?" 젊은 협객은 안 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무슨 글자로 고쳐야 하는지 그것을 가르쳐 주기 바라오" "'부'자는 '기울어져 망하다'는 '경'자로 고치고, '와'자는 '더럽히다'는 '오'자로 고치라" "명령대로 따르겠소" 심정은 협객이 말한 그대로 고쳐 놓았다.
심정의 5세손 노가 지은 '소요정감고시'의 한 연구에 옛 한은 바닷물도 씻기 어렵고 새 시름은 술로 풀려 한다 하였으니, 대개 선조(심정을 말함)의 허물을 생각하면서 한탄의 뜻을 담은 것이다.
꿈을 빙자하여 형의 재산을 빼앗은 심의 심의(1475-?)는 좌상 심정의 아우이다.
자는 의지이고 호는 대관재이며, 문장에 능하였다.
중종 2년(1507)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문과에 급제하였는데, 벼슬은 이조 좌랑에 그쳤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바보로 자처하며 자기 재능을 숨기고 삶으로써 화를 면하였다.
한번은 형 심정의 집에 이르러 쥐구멍을 보고 손가락질하며 형에게 말하였다. "형이 훗날 이 쥐구멍으로 나가려 하여도 잘 안 될 것이니, 오늘 시험삼아 나가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심정이 대답하지 않았다.
뒤에 심정이 복성군 옥사에 연루되어 죽음을 당하자, 심의가 와서 울며 말하였다. "쥐구멍이 저기 있는데 형은 어디로 갔습니까" 심정이 비록 남을 시기하고 해치기는 했으나, 형제간의 우애는 천성으로 지극하였다.
심정이 한번은 남곤과 조그마한 정자에서 무슨 일을 상의하고 있는데, 심의가 창문을 밀어젖히며 말하였다. "두 소인이로다" 남곤이 크게 노하여 얼굴빛이 변하였으나 심정은 태연히 말하였다. "내 아우가 본디 천치이니, 공은 용서하시오" 심의는 형이 지위가 높고 권세가 성대하여 전지와 동산을 많이 지닌 것을 보고 마음으로 매우 좋지 않게 여겨 꾀를 내어 속임수로 뺏으려 하였다.
하루는 심의가 새벽에 일어나서 울며 말하였다. "꿈에 부모님을 뵈었는데,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작은 아들이어서 아무 데에 있는 전지와 아무 종을 너에게 주려 하였는데 미처 조치하지 못하고 죽었으니 이 일이 가슴에 맺혔구나' 하시므로 제가 돌아가신 아버님 때문에 슬피 웁니다" "부모님이 너를 생각함이 지극하셨는데, 내가 어찌 이 재산들을 아껴 지하의 부모님 영혼을 위로하지 않겠느냐" 심정이 크게 감동하여 즉석에서 문서를 만들어 심의에게 주었다.
심정이 뒤에 심의에게 속임을 당한 것을 알고 심의의 뜻을 시험하고자 하여 또한 새벽에 일어나서 거짓 슬퍼하는 체하면서 말하였다. "꿈에 아버님께서 말씀하기를 '전지와 집, 노비를 너에게 모두 부쳐 주려 하였는데, 미처 조치하지 못하고 세상을 마쳤다' 하시니, 내가 이 때문에 슬피 운다" "봄꿈을 어찌 다 믿을 수 있겠습니까" 심의가 말하자 심정은 크게 웃을 따름이었다.
심의가 서경덕, 성세창과 벗이 되었는데, 성세창은 그의 이웃에 살고 있었다.
심의가 그의 정원에서 세 필의 명주를 볕에 바래는 것을 보고 몰래 가져가자, 성세창의 여종이 소리를 쳤다. "심 좌랑이 명주를 다 가져갔습니다" 성세창의 부인이 재빨리 다른 명주 세 필을 보내면서 말하였다. "그것은 웃옷을 만들려 하던 것이니, 이것으로 바꿉시다" "이미 웃옷감을 얻고 또 속옷감마저 얻었으니, 부인이 내 마음을 압니다" 심의가 짐짓 사례하고, 대여섯 몫으로 갈라 길가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중국 사신을 경탄케 한 시단의 노장 이행 이행(1478-1534)의 본관은 덕수이고, 자는 택지, 호는 용재이다.
연산군 10년(1504)에 문과에 급제하고 중종 26년(1530)에 좌상에 이르렀다.
이행은 신장이 10척이고 얼굴이 네모지고 얼굴에 수염이 더부룩하였는데 시문에 뛰어났다.
남산 아래 청학동에 집을 짓고 자호를 '청학도인'이라 하였다.
복숭아나무와 버드나무를 심어 놓고 퇴청하고 나서는 지팡이를 짚고 거니는데 그 쓸쓸한 모습이 마치 시골 늙은이와도 같았다.
어느 날 의정부의 아전인 녹사가 어둠을 이용하여 기별을 전할 적에 어떤 사람 하나가 짚신을 신고 허름한 옷차림으로 어린 동자를 거느리고 청학동 어귀에서 나오므로, 말을 타고 지나면서 물었다. "정승이 있는가?" "기별을 전하려는 것이냐? 내가 여기에 왔노라" 녹사는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말에서 떨어졌다.
이행이 한번은 중국 사신을 영접하는 원접사가 되었다.
중국 사신이 이행의 못생긴 모습을 보고 예를 잘 갖추지 않다가 그가 화답한 시를 보고서야 비로소 깊이 감복하였다.
그가 자기 부사에게 편지를 써서 주며 당부하였다. "이 사람은 시단의 노장이니, 절대로 가벼이 시를 짓지 말라" 김안로가 모함하여 함종으로 귀양보내어 유배지에서 죽으니, 나이 57세였다.
시호는 문헌이다.
고양이 덕분에 죽음을 면한 장순손 장순손(1457-1534)의 본관은 인동이고 자는 자호이다.
성종 16년(1485)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문과에 급제하였다.
젊을 때에 얼굴 모양이 돼지 머리와 닮아서 동류들이 그를 '저두'라고 놀렸다.
연산군이 성주 기생을 귀여워하였는데, 하루는 종묘 제사를 마치고, 궁중에 음복을 올릴 적에 돼지 머리를 바쳤다.
성주 기생이 보고 피식 웃자, 연산군이 그 웃는 까닭을 물었다. "성주에 사는 장순손은 얼굴 모양이 돼지 머리 같아서 사람들이 모두 장저두라고 부릅니다.
그 생각이 나서 웃었던 것입니다" 연산군은 벌컥 화를 냈다. "장순손은 반드시 네 사랑하는 지아비였을 것이다.
속히 '저두(장순손)'를 목베어 바쳐라" 장순손은 그때 벼슬에서 물러나 집에서 쉬고 있었다.
잡아오라는 임금의 명을 받아 길을 떠나 함창 공검지 아래에 이르자 갈림길에서 한 고양이가 길 앞을 뛰어넘었다.
장순손이 자기를 잡아가는 의금부 도사에게 청하였다. "내가 평소 과거에 응시하러 갈 적에 고양이가 길 앞을 건너가면 반드시 과거시험에 합격하였소.
오늘 또 갈림길에서 고양이를 보았는데, 이 길로 해서 가면 매우 빠른 길이니 이 길로 가겠소" 도사가 그 청을 들어주었다.
이때 선전관이 또 연산군의 명령을 받들고 저두 장순손의 목베는 것을 재촉하기 위한 일로 내려왔는데, 선전관은 큰길로 내려오고, 도사와 장순손은 갈림길로 가서 상주에 이르렀다.
도사가 상주에서 비밀히 중종반정 소식을 듣고 천천히 길을 가서 조령에 이르렀을 때, 이미 중종이 즉위하였다.
장순손은 죽음을 면하고 여러 벼슬을 거쳐 병조 판서까지 되었다.
이후, 감안로와 같은 동아리가 되어 대간의 탄핵을 받아 벼슬이 삭탈되었다가 얼마 뒤에 다시 우상에 등용되어 영상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숙이다.
신인에게 시를 받아 장원급제한 김안로 김안로(1481-1537)의 본관은 연안이고 자는 이숙, 호는 보락당이다.
연산군 7년(1501)에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하고 중종 원년(1506)에 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젊은 시절에 관동에 유람을 갔었는데, 어떤 신인이 나타나 시를 읊조렸다.
봄은 우임금 구주 산천 밖에 무르녹고 음악은 순임금 조정 금수 사이에 연주된다 신인은 이어서 말하였다. "이것은 곧 네가 후일 출세할 길을 얻는다는 말이다" 이듬해에 정시에 들어가니, 연산군이 율시 여섯 편을 내어 시험을 치렀는데 '봄날에 이원의 제자들이 침향정 가에서 악보를 본다'란 제목으로, 압운은 '간'자였다" 김안로는 그 신인에게서 들은 시구가 합치된다고 생각하고 곧 그 글귀를 사용하여 써서 제출하였다.
고시관인 강혼이 대단히 칭찬하고 그를 뽑아 장원으로 삼았다.
모재 김안국이 시험관으로 참여하는 참시관이 되어 그 글을 보고 말하였다. "이 시구는 귀신의 말이지 사람이 지은 시가 아니다" 김안로에게 그 까닭을 묻자 그는 사실대로 설명했다.
사람들은 김안국의 시를 보는 눈에 감탄하였다.
김안로가 소싯적에 중국 점쟁이에게 운명을 점쳐 보았다.
그 점쟁이가 이렇게 말했다. "아주 귀하게 되기는 하나 다만 갈자 지명에서 죽게 될 것이다" 김안로는 중종 32년(1537)에 문정왕후의 폐위를 도모하다가 배척을 받아 진위현 갈현에 이르러 사사되었으니 과연 그 말이 맞았다.
산골짜기 노파와 농부들까지도 우러러보았던 조광조 조광조(1482-1519)의 본관은 한양이고, 자는 효직, 호는 정암이다.
17세에 아버지 원강이 어천 찰방이 되었는데, 이때 한훤당 김굉필이 희천에 귀양와 있었다.
조광조가 그를 좇아 노닐면서 학문하는 큰 방법을 터득하였다.
김굉필이 햇볕에 꿩을 말려 제사에 쓰려고 뜰에 두었는데, 지키던 자의 부주의로 고양이에게 도둑을 맞고 말았다.
김굉필이 몹시 화를 내며 지키던 자를 꾸짖자 옆에 있던 조광조가 말하였다. "조상을 받드는 성의는 비록 간절하시나, 군자는 말씨와 기색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김굉필이 조광조의 손을 잡고 사과하였다. "나도 몹시 성을 내고는 곧바로 뉘우쳤는데, 네 말이 또 이러하니 나도 모르게 부끄럽고 감복되는구나.
그리고 네가 나의 스승이요 내가 네 스승이 아니다" 그 뒤 중종 5년(1510)에 진사시에 장원으로 합격하고 문과에 급제하였다.
중종 14년에 대사헌이 되어 반열에 나아가는데 백관들이 그 위의와 풍채를 바라보고는 모두 감탄하여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대사헌에 임명된 지 사흘 만에 사람들이 예법을 지켜 남자와 여자가 길을 달리하여 다니었으니, 온 세상이 그를 우러르고 복종함이 이와 같았다.
그해 10월에 기묘사화가 일어나 능주에 유배되고 12월 20일에 사사되었다.
그가 38세로 목숨이 끊어질 때에 절명시를 지었다.
나라 근심을 내 집처럼 근심하고 임금을 아버지처럼 사랑했네 하늘의 해가 이 충심을 비추어 환하게 아래의 땅 굽어보리 정암이 사사될 적에 그의 아우 숭조가 급히 달려가서 길옆에서 우는데 어떤 노파가 산골짜기로부터 슬피 울며 와서 물었다. "대인은 어찌하여 우십니까?" "나는 형님을 잃었으므로 울지만 노파는 어찌하여 우는고" "조정에서 조광조를 죽였다 하니, 현인이 죽었으므로 백성들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웁니다" 황해도 강령군에서 세 사람이 들에서 같이 김을 매다가, 한 사람이 말했다. "가뭄이 심하여 금년에는 곡식이 제대로 익지 않을 것이다.
근년에 조광조가 아주 청렴 간명하여 각도의 주군이 소환 당하는 편지가 전혀 어졌는데, 이 때문에 고을에 고함치고 호통치는 아전이 아주 없어졌다.
그런데 지금 듣건대 조광조가 유배되었다가 이미 죽었다 하니, 가뭄이 드는 이 천재는 아마도 조광조 같은 현인이 죽은 연유에서 생기는 듯하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서울에 올라와서 이 말을 전하니, 곧바로 그 사람을 잡아와서 극형을 가해 죽였다.
같이 김매던 사람은 '고발하지 않은 죄'를 받았으며, 고발한 사람에게는 무명을 상으로 내렸다.
영상에 추증되고 시호는 문정이며 문묘에 종사되었다. "사람과 귀신의 길이 다르다"며 귀신을 물리친 성수침 성수침(1493-1564)의 본관은 창녕이고, 자는 중옥, 호는 청송이다.
풍채와 자품이 화기롭고 순수하며 학문과 행실이 순진하고 모든 것을 두루 갖추었다.
대신이 세속을 떠나 고상하게 사는 그의 청덕을 천거하여 여러 차례 벼슬을 제수하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사대부들이 당세의 운둔한 현인인 일민(학문과 덕행이 있으면서도 세상에 나타나지 않고 파묻혀 사는 사람)을 논할 적에 성수침을 으뜸으로 삼았다.
벼슬은 적성현감에 이르렀다.
백악산 밑에 살 적에 황혼 무렵 혼자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물체가 집의 한쪽 구석에 와 서 있었다.
그 물체는 몸에 검은 무명 이불을 둘렀는데 그 길이가 발꿈치에 이르고, 풀어헤친 머리카락이 땅에 드리워서 바람에 따라 들쭉날쭉하고, 어지러운 머리카락 사이에 옥고리 같은 두 눈이 번쩍번쩍 빛나 두려움을 느끼게 하였다.
성수침이 물었다. "너는 누구냐?" 묵묵히 있으며 대답하지 않자, 성수침이 다시 말하였다. "앞으로 오너라" 마침내 그 물체가 창 앞에 가까이 왔는데,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네가 만일 도적이라면 우리 집에는 물건이 없고 네가 만일 귀신이라면 사람과 귀신의 길이 다르니 속히 가거라" 그가 말을 마치자, 그 물체가 바람소리를 일으키며 가 버렸다.
72세에 죽으니 좌상에 추증하였다.
시호는 문정이다.
부서진 배에다 선량한 선비를 비유한 최수성 최수성(1487-1521)의 본관은 강릉이고 자는 가진, 호는 원정이다.
19세에 속세를 떠나 멀리 유람하며 좋은 산수를 두루 구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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