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장풍파랑 - 11편 (11/61)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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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장풍파랑 - 11편 (1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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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탕백기는 호반영채와의 일전에서 시원한 결과를 가지고 오지 못했었다.
그러나 그나마 탕백기가 있었기 때문에 만로방은 좌충우돌하는 호반영채의 공세를 막아냄이 가능했다. "탕백기를 움직일 지는 아직 나도 잘 모르겠다.
마타룡! 역시 무서운 놈이지.
서문중(西門中)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그놈을 죽이라는 명을 내려놓았다.
우리 만로방 전체의 힘이 필요하면 사용해도 좋다고 했다." 한 명의 적을 죽이기 위해 만로방의 전체 힘을 쏟는다.
남들이 들으면 웃을지 모르지만 문회는 직접 마타룡을 겪어 본지라 방주의 마음을 십분 이해했다. "지금쯤 방안(方案)을 보고할 때가 되었는데...
궁금하면 네놈이 먼저 서문중에게 물어 보려무나.
마타룡을 어떻게 죽일지." "알겠습니다." 문회가 머리를 숙였다.
그가 양인전(良人殿)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문회!" 주황이 그를 불렀다. "무슨 특별한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일찍 오너라.
모처럼 여기까지 왔으니 아무리 바쁘더라도 술 한 잔은 해야지." 휙! 주황의 손에서 방금 그가 만든 우골침이 날았다.
우수수! 우골침에 나뭇잎이 가을바람의 낙엽처럼 떨어졌다. "그렇게 하지요.
양인전에서 서문중을 만나고 곧 돌아오겠습니다." 문회가 재차 읍을 하며 양인전으로 향했다.
수두(水痘)로 얽은 얼굴, 툭 튀어나온 배, 정말 봐 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중년인이었다. "아이고! 어서 오시오.
문 회주! 어찌 이렇게 먼길을... " 양인전을 들어서는 문회를 중년인이 반갑게 맞았다.
서문중! 만로방의 총사(總師)를 맡고 잊는 자였다. - 장강 총채에는 와룡전주 주숙예가 있고 만로방에는 총사 서문중이 있다.
총채주가 공석임에도 불구하고 수로연맹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주숙예가 있었기 때문이고 호반영채에 의해 서까래까지 불탔던 만로방이 또 다시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서문중의 공 때문이다.
세간에 오르내리는 서문중에 대한 평이었다. "오랜만이오.
서문 총사!" 문회도 서문중에게 포권으로 인사했다. "방금 나간 젊은 자는 누구요? 태감(太監)인 듯 하던데... " 서문중이 권하는 의자에 앉으며 문회가 물었다. "아하! 보고 계셨군요.
맞소이다.
그 자는 병장국(兵仗局) 소속의 명하(名下)요." 병장국은 환관(宦官)들이 맡고 있는 이십사(二十四) 아문(衙門) 중 팔국(八局)의 하나로 칼, 창, 갑옷, 투구, 활, 화살 등을 제조하는 곳이다.
그리고 명하는 맨 처음 궁전으로 들어가 실력 있는 환관 밑에 배치된 환관을 일컫는 말이다. "화약을 논하러 왔겠군요?" "그렇소." 문회의 물음에 서문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明)은 화기(火器)를 신기(神器)라 하여 매우 중요시했다.
따라서 화기만은 환관이 취급하도록 했고 전쟁 시 화약군은 환관이 통솔했다.
그 화약을 취급하는 화약국(火藥局)도 병장국의 소속이었다. "수로연맹과의 일전은 점차 다가오고...
그들의 선단에 대응할 유일한 방법은 화약밖에 없는데 이런저런 방법으로도 원하는 양을 구하기가 힘드니 결국 병장국의 환관을 불렀소이다." "어떻게 말씀은 잘 되었습니까?" "단도의 대접전 때 사용한 화약이 아직 불씨로 남아 있다며 생색만 잔뜩 늘여 놓고 가더군요." "지금은 환관의 세상인데 누가 감히 트집을 잡는 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트집이 잡히면 귀찮기는 하겠지요.
그러나 원하는 만큼의 은을 주겠다고 했으니 좋은 소식이 올 것입니다.
자! 차나 드시지요." 서문중이 시비가 내미는 차를 문회에게 권했다. "그건 그렇고 문 회주께서는 어쩐 일로 여기까지... " "영안, 삼명, 남창분회! 모두 잿더미가 되었소이다." 문회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마타룡 때문에 오셨군요.
방주는 만나 보셨습니까?" "방주께서는 총사에게 놈을 죽일 방법을 맡겼다고 하더군요.
마타룡을 처치할 방법이 궁금하면 총사에게 물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껄껄껄! 궁금할 일이 무엇 있습니까? 조만간 귀로 듣게 될 터인데...
먼저 한 패의 살수(殺手)들을 보냈습니다." "살수?" "묵회(默會), 놈들을 보냈습니다." "묵회!" 문회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묵회라면 환관들의 전횡을 반대하던 고리 따분한 유생(儒生)들이나 척살하던 자들 아니오? 그런 자들로 어찌 마타룡을...
방주께서도 알고 계시오?" "알고 있습니다.
방주께서 지시한 일입니다." "방주께서? 흑사회를 이끌 때 방주도 그들과 몇 번의 안면이 있은지라 그들의 실력을 잘 알고 있을 텐데." "사정이 조금 있었지요.
동창(東廠)의 양(陽) 차보(次補)로부터 묵회를 없애 달라는 요구가 있었습니다.
이제 환관의 세상 아닙니까? 서창(西廠)까지 생겼으니 묵회, 놈들은 귀찮기만 할 따름이지요.
자칫 입을 나불거려 태감들의 죄를 까발릴 경우 곤란할 일들만 생길 테니까요." "그래서 묵회의 살인멸구(殺人滅口)를 우리 만로방에?" 서문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왜 묵회 놈들을 마타룡에게 보낸다는 말이오?" "방주께서는 그들과 같이 한 때 흑도(黑道)의 의리를 나누신 분! 직접 그들을 처치하기에는 마음이 내키지 않으셨겠지요." "나도 묵회 놈들은 잘 알고 있소.
권력에 기생(寄生)하는 버러지 같은 놈들! 살수의 이름도 아까운 놈들이지.
의리까지 논할 안면도 없소." 문회가 냉소를 터뜨렸다.
권력에 줄을 잡기 위해 애써기는 만로방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주황, 문회는 흑사회에 있을 때부터 최소한 무사로서의 자존심은 지키려 했다.
따라서 그들은 닭모가지 비틀 힘조차 없는 유생들에게 칼을 휘두르는 묵회를 인간 취급도 하지 않은 터였다. "방주께서는 생각보다 심기가 깊은 분입니다.
지금은 버젓이 만로방이라는 현판을 내걸고 활동하고 계시지만 어쨌든 이 만로방의 뿌리는 흑도가 아닙니까? 자신의 칼로 묵회를 쳐 다른 흑도인(黑道人)들의 눈총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언젠가 흑도의 힘을 빌려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다행히 마타룡이 묵회를 처치해 준다고 하니... " 서문중의 번드러한 입에 미소가 번졌다.
그가 차를 한 모금 삼킨 후, 계속 말을 이었다. "이점(利點)은 그 뿐만 아닙니다.
사실 그 바닥에서는 아직 마타룡이라는 애송이에 대해 잘 모릅니다.
물론 그래서 묵회가 은자 몇 관에 덥석 살인청부(殺人請負)를 수락했습니다만...
하지만 묵회가 마타룡에게 박살나고 나면 흑도인들의 눈길은 달라질 것입니다.
마타룡을 경계의 눈으로 보겠지요.
그것만하더라도 큰 수확이 아닙니까?" "음... " 문회가 매부리코를 매만졌다.
사람을 부리는 자와 부림을 받는 자의 안목(眼目) 차이를 그는 실감하고 있었다. "커흠! 어쨌든 그 일은 그 일이고...
나는 총사에게 마타룡을 처치할 진짜 방법을 듣고 싶소." 문회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방주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하셨으니...
물론 탕백기는 움직여야겠지요.
그리고 공방에서 만들고 있는 물건도 한 번 써 볼 생각입니다.
아! 잊을 뻔 했군요.
통첩을 보낼 생각이었습니다만 이왕 오셨으니 말씀드리겠습니다.
남뇌로에서도 서둘러 오륙십 명의 정예들을 무창분회로 보내 주기 바랍니다." "무창분회?" "원강과 무하로부터 다급한 전갈이 왔습니다.
장강 총채의 놈들이 원강과 무하가 우리와 교류하는 것을 문제 삼아 선단을 이끌고 온다는군요.
원강과 무하의 채주들은 다른 일은 걱정할 일이 없는데 그 선단에 마타룡이 타고 있지 않을까는 걱정되는 모양입니다." "총채의 선단이 언제쯤 원강으로 떠난다고 합니까?" 문회가 흉광을 쏟으며 물었다. "날짜까지는 아는 바가 없고 한두 달 뒤가 아니겠소?" "그럼 여기서 한가하게 노닥거리고 있을 때가 아니군." 문회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총사, 수고를 해 주시오.
나는 방주를 뵙고 곧 가리다." 그가 서문중에게 포권을 하며 양인전을 나섰다.
서문중이 그를 배웅했다. "혹시 이 번 타룡의 사냥으로 수로연맹과 전면전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오?" 문회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듣자 하니 마타룡이라는 놈은 채주들로부터 별 환대를 받고 있지 못하다더군요.
태부인이라는 여자도 마찬가지고...
죽여도 별 문제는 없을 듯 한데 그러나 전면전에 대한 가능성의 준비는 해 두어야겠지요." "내가 괜한 말을 꺼낸 듯 싶소.
총사께서 어련히 알아서 준비를 했겠소.
어쨌든 총사께서 이만큼 준비를 하는 것을 보면 마타룡도 이 번에는 살아나지 못할 것 같소.
생각하면 애석한 일이지.
비록 적이지만 젊은 나이에 그만한 무공을 얻기가 힘든데...
잘만 컸으면 조양인의 명성도 우습게 여길 놈이었어." 문회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개천에서는 용이 자라지 못합니다.
자리가 좁아서가 아니라 미꾸라지들이 가만히 있지 않으니까요." 서문중이 고소를 흘렸다. "그럼 총사께서는 마타룡을 죽이려는 우리가 미꾸라지란 말입니까?" "내가 어찌 감히 그런 생각을...
저는 수로연맹에서 마타룡이 별 환대를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 서문중이 실언(失言)을 깨닫고 자신의 말을 수로연맹으로 선회(旋回)시켰다.
문회가 미간을 좁히며 하늘을 우러렀다. "다른 것은 몰라도 강호가 개천이라는 말은 맞소.
온갖 추악한 잡탕물이 흘러드는...
십 여세부터 방주를 따라다니며 느낀 것이오.
그렇게 따진다면 우리는 미꾸라지가 맞을지도 모르지.
진창에 살만한 놈이 미꾸라지밖에 더 있겠소? 그러나 진창은 역시 미꾸라지의 소굴! 진창에서 미꾸라지가 아니려는 놈은 다 죽어야지! 그것이 싫으면 제 살 곳을 찾아 떠나던가!" 그가 냉랭하게 중얼거렸다.
제 6 장.
해륭도(海隆島). "정말 그놈이 가진 것이 맞소?" "물론이오." "저 번에도 허탕만 치지 않았소? 나는 철경이 단심호에게 전해졌는가도 솔직히 의심이 가오." "조양인이 돌아가시기 전까지의 근 몇 년간 그 분을 배알한 사람은 아무도 없소.
있다면 단심호뿐!" "한 번 만났다는 사실만으로 단심호가 철경을 넘겨받았다고 어떻게 장담을 하오? 조양인께서 철경을 없애 버릴 수도 있었겠지." "아시다시피 조양인의 말년은 오로지 철경에 매달린 시간이었소.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남긴 물건을 아무렇게나 버릴 리는 없지 않소?" "왕(王) 형(兄)의 말대로 단심호가 철경을 넘겨받았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그는 왜 철경을 익히지 않았는지... " "그 점이 사실 나도 궁금하기는 하오.
단심호가 철경을 익혔다면 강호의 판도가 달라졌겠지.
단심호가 철경을 익히지 않은 이유는 내가 생각하기에 이미 그는 자신이 익힌 무공에 손이 굳어 철경을 익히기가 힘들었기 때문은 아닌지..." "이유가 될 수 없소.
아무리 손이 굳었다지만 곁에 둔 철경의 유혹을 누가 뿌리칠 수 있겠소? 그리고 놈의 집을 샅샅이 뒤졌지만 철경의 흔적이라고는 어디에도 없었소.
철경을 익힌 흔적조차... " "나는 단심호가 철경을 익히지 않은 이유는 잘 모르오.
그러나 마타룡이 철경을 익혔다는 것은 장담하오.
생각하니 단심호는 철경을 아들에게 넘겨줌으로써 만족한 것 같소." "마타룡이 철경을 가졌다고 장담하는 이유는?" "간단하오.
단심호도 그만한 무공을 지니지는 못했소.
수룡왕, 추운객도...
마타룡의 무공은 어디로부터 왔소? 설마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 ..... " "우리가 왜 아직까지 그 생각을 못했는지.
놈이 가진 것이 틀림없소.
다른 자들이 손을 쓰기 전에 서둘러야 하오." "만약 마타룡이 철경의 무공을 익혔다면 우리 둘만으로 놈을 상대할 수 있겠소?" "전(全) 형(兄)과 나의 연수(聯手) 합격(合擊)을 받아 낼 자가 강호에 몇 명이나 되겠소? 사실 조금 걱정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머릿수가 늘면 돌아오는 양도 줄어들 것이 아니오." "맞는 말이오." "놈은 지금 군산에 있다고 하오.
철경을 얻으러 가시겠습니까?" "당연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줄기의 신형이 허공을 갈랐다. * * * 적해도의 물 빛깔은 유난히 붉었다.
적갈색 해초 때문만은 아니었다.
콸콸콸! 붉은 염료처럼 쏟아지는 피.
목 잃은 시신들이 파도에 쓸려 다니며 바다를 더욱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크악!" "악!" 또 다시 울리는 처참한 비명! 목이 날고 뒤 이어 분수(噴水)처럼 핏줄기를 흩날리며 몸뚱이가 절애를 곤두박질 쳤다.
총박일랑(總薄一郞)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가 몸을 떨자 검은 수실로 새겨 놓은 가슴의 바다뱀도 따라서 몸을 떨었다.
해륭도! 편주(片舟)를 타고 대양(大洋)을 건너와 적해도에 발을 들인 자들! 반월형으로 포진한 그들은 적해도에 세워진 목채를 향해 산보를 하듯 전진했다.
망루(望樓)가 불타고 목채도 간단히 무너졌다.
해륭도에서 온 자들은 하나 하나가 전신을 방불케 했다.
총박일랑은 싸움을 독려했으나 이미 적들의 무위에 수하들은 싸울 의지를 잃고 있었다.
결국 그는 토끼 몰리듯 몰려 수하들과 함께 절애 끝에 서 있었다.
총박일랑이 절망에 찬 눈빛으로 뒤를 둘러보았다.
수십 장의 절애, 그 아래에는 삐죽삐죽한 돌들이 파도에 거세게 씻기고 있었다. '뛰어 내릴까?' 불가능한 일이었다.
삐죽한 돌들은 파도에 씻기는 시신들을 삽시간에 걸레짝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하들의 눈길이 그에게 쏠렸다.
항복을 바라는 눈길이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백기(白旗)를 들 수 있었으면 그가 먼저 들었을 것이다.
그는 알고 있었다.
해륭도에서 온 자들은 먼길을 오게 한 대가를 언제나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는 것을...
분노가 풀릴 때까지 그들은 일체의 항복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언제쯤 칼을 멈출 것인가?' 화가 풀리지 않는다면 해룡도에서 온 자들은 그들을 다 죽일 수도 있었다.
사실 개미 하나 없이 전멸 당한 수채들도 몇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총박일랑은 더욱 초조해졌다. '싸워야 한다!' 총박일랑이 반월도(半月刀)를 움켜쥐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싸워야겠다는 생각만 앞설 뿐 투지(鬪志)를 잃기는 그도 수하들과 마찬가지였다. "칵!" "크악!" 도살(屠殺)은 쉬지 않고 계속 되었다.
해륭도의 무사들이 던진 투삭에 걸린 수하 한 명이 낚시 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바둥거렸다.
바둥거림도 잠시 그 수하는 해륭도 무사의 완력에 개처럼 질질 끌려갔다.
해륭도에서 온 자들이 투삭에 나포(拿捕)되어 온 수하의 무릎을 꿇게 했다.
그들이 수하를 둘러쌌다.
그 자의 눈이 하얗게 질렸다.
파파파파팟! 수십 자루의 칼이 그의 전신을 파고들었다. " ..... " 고슴도치처럼 전신에 칼이 박힌 수하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가 피를 흘리며 서서히 몸을 기울였다.
휙! 한 자루의 칼이 쓰러지는 그의 목을 날렸다.
수하의 머리는 떼굴떼굴 굴러 바다로 떨어졌고 목 잃은 시신은 총박일랑 앞으로 던져졌다.
총박일랑은 아직도 몸을 꿈틀대고 있는 목 잃은 수하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안도의 한숨이었다.
이제 총박일랑은 항복을 할 수 있었다.
방금 항복을 요구하는 해륭도의 의식이 끝났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수하들이 반 이상 죽은 후였다.
총박일랑이 칼을 두 손에 받혔다.
그가 다급히 앞으로 뛰어나가 무릎을 꿇었다.
해륭도의 무사들 틈에서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이십 대 후반에 까칠한 수염을 기른 미남자였다.
그가 앞으로 나서자 해륭도의 무사들은 우르르 뒤로 물러섰다.
그들이 오와 열을 맞추며 청년 뒤에 시립했다.
그들은 싸울 때보다 싸움이 끝났을 때가 더 정연했다. "한어를 아느냐?" 청년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알고 있습니다." 총박일랑이 더욱 깊게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한어를 안다니 다행이구나." 청년이 나무 깔판에 앉으며 말했다.
해륭도의 무사들은 청년을 위해 앉을 것은 물론 차양까지 미리 준비해 두고 있었다. "네놈은 이곳의 부도주 총박일랑이라는 놈이겠지?" 청년이 차양의 그늘 아래서 섭선을 흔들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총박일랑이 머리를 처박았다. "네 상전인 무전해랑은 보이지 않더구나?" "하자드라는 놈의 배를 타고 남해로 떠났습니다." "하자드? 그 욕심 많은 대식국인 말이냐?" "그렇습니다." "하자드라는 놈은 나도 몇 번 본 적이 있지.
그런데 이상한 일이구나.
명색이 해적의 수괴라는 놈이 자신의 배를 두고 남의 배를 타다니... " "물길이 너무 사나워 하자드의 배를 빌려 탔습니다.
소주인을 구하러 떠났으나 도주께서도 그곳에서 결국...
얼마 전에 들은 소식입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게냐? 죽었다는 말이냐?" 청년이 한 쪽 눈을 찌푸렸다. "그렇습니다.
영남에 산공과 산고라는 이물(異物)들이 있습니다.
그놈들의 칼에 소도주는 물론 도주도... " 총박일랑이 황망히 대답했다.
적해도주가 산공의 칼에 죽었다는 소문은 이제 자자했다.
색욕을 풀기 위해 삼본장선에 끌려가던 여자들이 배를 탈출하며 입으로 전한 소문이었다. "흐흠! 산공, 산고라...
적해도주를 죽일 정도면 만만한 놈은 아닐텐데 어찌 내가 놈들을 모르고 있었지? ...바다를 끼고 사는 놈이라면 언젠가는 만나겠지." 청년이 섭선으로 손바닥을 탁 치며 산공에 대한 의문을 접었다. "사실 그 때문에 통첩은 신경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도주가 돌아가신 일로 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총박일랑이 변명했다. "이놈 봐라! 우리가 통첩을 보낸 사실을 잊고 있었다니...
네깟 놈들의 도주가 죽은 것이 무엇 대단하다고 통첩을 보낸 일을 잊었단 말이냐?" 탁! 탁! 탁! 청년이 총박일랑의 훤한 이마를 섭선으로 내리쳤다. "죄송합니다.
죽여주십시오." 총박일랑이 벌벌 기었다.
그의 이마는 섭선의 자국을 따라 굵은 혈흔히 맺혀 있었다.
그리고 그 혈흔에는 이내 핏방울이 솟았다. "다음 번에는 이 같은 일이 없겠지?" "물론입니다.
물론입니다." 총박일랑이 머리를 조아렸다. "조심해라!" 딱! 섭선이 다시 총박일랑의 훤한 이마에 내리꽂혔다.
이번에는 눈에 불이 튈 정도였다.
이마에서 샘물처럼 피가 솟았다.
뇌수가 터지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먼길을 오너라고 피곤하다." 청년이 다리를 쭉 폈다. "무엇들 하는 게냐? 공자와 해륭도에서 온 귀빈들을 위해 주연을 준비하지 않고?" 총박일랑이 눈가를 흐르는 피를 닦으며 소리쳤다.
적해도의 수하들이 황망히 움직였다. "통첩을 버리지는 않았겠지?" 청년이 권태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입니다." "상납(上納)은 통첩에 적힌 대로 하면 된다.
그 약속만 지킨다면 네놈들을 귀찮게 할 자들은 없을 게야."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해륭도의 무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아직도 불타고 있는 목채를 향해 걸어갔다.
훌떡 벗은 상체(上體)에는 땀과 섞인 피가 대양의 뜨거운 햇살에 번들거렸다.
매부리코 중년인과 민대머리 청년! 매부리코 중년인의 이마에는 흉칙한 낙인(烙印)이 선명했다.
중형(重刑)을 치른 자임이 분명했다.
섬칫함을 느끼게 하기는 민대머리 청년도 마찬가지였다.
청년의 전신은 더 이상 새길 여백이 없을 정도의 상처로 가득했다.
그가 눈을 닦았다.
이마에서 흐르는 피가 그의 시야를 계속 흐리게 하고 있었다.
매부리코도 어깨를 들썩였다.
뼈가 드러날 정도의 상처...
매부리코 중년인은 방패로도 쓰일 수 있게 만든 륜(輪)과 단극(短戟)을 사용했다.
민대머리 청년이 사용하는 것은 기형도(奇形刀)였다.
칼등이 톱니바퀴처럼 들쭉날쭉한 병기.
이마에서 흐르는 피는 눈을 가리고 입술을 적셨다. "퉤!" 민대머리 청년이 침을 뱉었다.
파팟! 그가 기형도를 휘두르며 허리를 낮췄다.
매부리코 중년인도 단극을 내밀었다.
그들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재차 육박을 시도했다. "와!" "와!" 나무 그늘에서 마조패를 돌리던 자, 술을 마시던 자, 뜨거운 백사장에서 태양을 쪼이던 자, 낚싯대를 드리운 자, 각양각색의 자세로 일전을 지켜보던 자들이 고함을 질렀다.
챙! 매부리코가 단극으로 민대머리의 기형도를 툭툭 치며 좌측을 돌았다.
민대머리 청년의 오른쪽 눈이 피로 인해 시야가 흐린 점을 매부리코는 최대한 활용하려 했다.
반대로 민대머리는 매부리코의 왼쪽 어깨에 난 자상(刺傷)을 최대한 활용하려 했기 때문에 그들은 쳇바퀴 돌 듯 맴돌며 해변(海邊)으로 점차 다가갔다.
철벅! 철벅! 매부리코 중년인과 민대머리 청년이 동시에 몸을 기우뚱거렸다.
물살은 거세고 파도가 실어 나르는 모래의 양의 엄청났다.
그리고 그들은 모래밭에서 벌써 두 시진 째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하체에 힘이 제대로 남아 있을 리 없었다.
민대머리가 얼굴을 아귀(餓鬼)처럼 일그러뜨렸다. "으핫!" 그가 선수(選手)로 매부리코를 찍어 갔다.
덜렁거리는 어깨로 륜은 더 이상 쓸모가 없었다.
매부리코가 뿌리듯 륜을 날리고 단극을 찔렀다. "헛!" 민대머리 청년이 불시에 날아오는 륜에 놀라 철판교(鐵板橋)로 휘청 몸을 눕혔다.
순간, 파도가 민대머리의 다리를 세차게 때리며 그의 중심을 허물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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