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장풍파랑 - 14편 (14/61)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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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장풍파랑 - 14편 (1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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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무당주와 다투기까지 하고 순무당의 향주는 큰 부상까지 입었다고 합니다." 담청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위 공자도 총채에 가세했으니 대주만 전처럼 힘을 발휘해 준다면 될텐데.
마타룡, 옥룡, 좌우 두 용이 총채를 보좌하면 걸릴 것이 무엇 있겠습니까? 이 긴박한 순간에 저런 행동을 하다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주숙예가 섭선을 흔들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담청이 한숨을 쉬며 눈을 떴다. "오라버니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녀가 먼발치로 시선을 던지며 중얼거렸다. "다른 할 말씀은 없나요?" "특별히 드릴 말씀은 없고 단지 위 공자를 한 번 더 만나셨으면 합니다." " .... " "솔직히 위 공자의 마음을 알 수가 없습니다.
언제 총채를 떠날 줄 모르기에... " 주숙예가 포권으로 학익선을 받쳐들며 말했다. "위 공자의 근황(近況)은 어떠해요?" "영빈각에서 도통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저녁이면 각 당의 당주들이 돌아가며 주연(酒宴)을 베풉니다만 술을 마셔도 입조차 벙긋 않으니...
위 공자께서 돌연 마음을 바꾼다면 우리 일에 큰 타격을 받을 것입니다." "위 공자의 마음을 붙잡아 두라니...
나라고 별 수 있겠어요? 호호호!" 담청의 입에서 교소가 터졌다.
비웃음인지 쓴웃음인지 알 수 없지만 총채주가 사망한 후 주숙예로서는 처음 듣는 웃음이었다. "그러나 만나 보지요." 담청이 시원스럽게 말했다. "호반영채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십시오.
위 공자를 호반영주에 발을 묶어야 합니다.
총채 동도들에게도 위 공자를 호반영주라 부르라 지시했습니다.
호반영주라는 직책을 달아야 대소강의 채주들을 만나기도 편리하고... " 담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 공자께서 데려온 여자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예우는 잘 하고 있겠지요?" 그녀가 흘러가는 말투로 물었다. "영빈각에는 여자들이 기거할 만한 곳이 없어 향화각에 머물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낮에는 거의 위 공자의 곁을 떠나지 않지요.
저녁에는 늦게까지 물놀이를 하다가 젖은 몸으로 돌아와 잔다고 합니다." "무엇을 하던 여자라던가요?" "글세 도통 말을 않으니...
엽 선주께서는 그 여자를 산고라 부른답니다.
엽 선주의 말로는 영남의 오지에 있을 때부터 데리고 있던 여자라 하던데... " "알았어요." 담청이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위 공자를 만나 보겠어요.
주 전주께서는 출발에 소홀함이 없도록 준비해 주세요." 그녀가 손을 저었다.
주숙예가 읍을 하고 수룡채를 빠져나갔다.
텅빈 수룡채, 정적(靜寂)! - 옛날을 생각하면(念往昔)...
담청이 태사의에 더욱 깊게 몸을 파묻었다.
견딜 수 없는 공허감이 불시에 그녀를 엄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약한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아니었다. "누가 나를 어떻게 평할지...
하지만 개의치 않겠다.
나는 내가 불러야 할 노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 * * 위무일과 엽광이 머무는 곳은 영빈각이다.
향기로운 차, 두 명의 시비, 영빈각을 책임진 집사당 소속의 향주는 위무일을 대접하는데 소홀함이 없었다.
저녁이면 각 당의 당주들이 위무일을 위해 주연을 베풀었다.
그들은 위무일에게 경의감을 표했고 호반영주의 업적을 칭송했다.
하빈이 자신의 무례를 시인한 후였다.
수룡채로부터는 더 이상의 연락이 없었다.
무하로 출행을 앞두고 바쁜 모양이었다.
위무일은 의자에 앉아 동정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엽광은 침상에 앉아 골똘히 무슨 생각을 하는 중이었고 산고는 어제 밤에 잡아 그물에 넣어둔 잉어를 손질하기에 바빴다. "소영주!" 엽광이 위무일을 불렀다.
위무일이 엽광을 바라보았다. "저는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미친 자들이 떼로 뭉쳐 저지른 일이 아니라면 호반영채를 불지른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엽광이 몇날 며칠을 고심하는 일은 호반영채를 불지른 흉수를 찾는 일이었다. "강호에서 일어나는 분쟁은 은원(恩怨)에 얽힌 분쟁과 세력 다툼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요." " .... " 위무일이 엽광에게서 시선을 뗐다.
그가 다시 동정호로 시선을 돌렸다. "세력 다툼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면 당연히 영채를 불태움으로써 이득을 얻는 자가 나타나야 하는데 이 년이나 지난 지금에도 이득을 보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 .... " "물론 당연히 이득은 만로방이 보았지만 그들이 아니라는 것은 소영주께서도 인정하셨고... " 엽광은 내내 고민하던 생각들을 입에 담기는 대로 털어놓고 있었다. "은원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면 아무래도 영주와 관련이 있겠지요.
크게 나누어 영주께서 강북칠걸로 활약하실 때와 호반영주로 활동하실 때를 나누어 은원 관계를 추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 .... " "영주께 죄송한 말이지만 사실 강북칠걸로 활약하실 때 영주와 은원 관계를 맺은 자들은 대부분 녹림의 하류배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놈들이 감히 호반영채를 불질렀다고는 상상할 수 없고...
호반영주로 활약할 때는 만로방이 고작 아닙니까?" 엽광은 위무일이 듣건 말건 상관을 않았다.
산고가 곱게 뜬 잉어회를 접시에 담아 위무일에게 건넸다.
위무일이 잉어회를 한 점 씹으며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 사이에도 일은 있었지." "그 사이라니? 아! 벽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위무일은 풀뿌리를 씹듯 질겅질겅 잉어회를 씹기만 했다. "벽부는 조양인이 죽은 후, 잠시 활동을 재개했으나 아들놈들끼리의 내분으로 자멸하지 않았습니까? 잔당들은 그들에게 이를 갈던 강호 동도들의 손에 도살당했고... " " .... " "이후, 또 다른 자가 나타나 잔당들을 수습할 수는 있었겠지요.
하나 남은 잔당들이라 해 봐야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리고 제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했던 놈들이 삼사 십년 전의 원한 때문에 호반영채를 쳤다고는 저는 생각 할 수 없습니다." 엽광이 벽부가 흉수라는 가능성을 일축했다.
위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엽광의 말을 시인해서가 아니었다.
귀찮았다.
한동안 위무일은 뙤약볕에 또아리를 튼 뱀일 뿐이었다.
사실 은원 때문이 아니라도 벽부의 잔당들이 호반영채를 칠 이유는 있었다.
벽부가 눈에 불을 켜고 찾았을 물건, 철경! 하지만 철경 때문에 벽부가 호반영채를 불살랐다고는 위무일도 장담하지 않았다.
엽광의 말처럼 벽부는 흉수가 아닐 가능성이 흉수일 가능성 보다 훨씬 높았다.
생각하면 강호는 은원으로 얽히고 ㅅ힌 곳이다.
직접적으로 아버지와 원한 관계를 맺은 자도 기 백 명은 된다.
그 중의 태반은 원한을 잊지 못할 터...
누군가는 절세의 무공비급을 얻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다른 누구는 절대 권력을 등에 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일은 막역하게 추정할 수 있는 가능성일 뿐! 현재 눈에 보이는 가능성은 그 중에서 벽부가 가장 유력했다.
벽부가 흉수라면...
기다려 볼 일이다.
철경을 얻기 위해 호반영채를 불사를 정도로 담대한 짓거리를 벌인 자들이다.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위무일은 그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흉수가 벽부가 아니라면 더욱 세월에 기대야 할 것이다.
호반영채를 불사를 정도면 작은 세력이 아니다.
따라서 위무일은 흉수가 어떤 방법이던 반드시 세월에 흔적을 남기리라 확신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는 것!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진 흉수를 찾는 위무일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다른 방법은 엽광의 몫! "소영주, 무하, 원강의 일이 끝나고 나면 저는 흉수를 찾는데 매달릴 생각입니다.
먼저 호반영채 주위의 민가를 돌며 다시 수소문을 해 볼 생각입니다.
필경 한 두 명이 움직이지는 않았을 테니 어딘가에는 사람들의 눈에 들었겠지요." 위무일이 고소를 흘렸다.
그는 엽광의 말이 늦은 감이 있다고 생각했다.
벌써 나왔어야 할 말이었다.
아마 엽광은 흉수를 찾는 일을 그에게 기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꿈쩍을 않으니 엽광이 나설밖에... "놈들은 절애를 타고 올라 공격을 시작했을 것이오.
일부만 입구를 막았을 뿐! 유선이나 어선(漁船)을 가장하고 동정호의 밤을 기다렸을 것이오.
포구(浦口)를 뒤지거나 어부들에게 묻는 것이 민가를 수소문하는 것보다 빠르겠지." 위무일이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 .... " 엽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싸움의 흔적이 서편 누각 주위에 가장 많이 남아 있었다는 것을 그는 기억했다.
그가 안광을 빛내며 생각에 골몰할 때였다.
위무일이 단삼(單衫)을 걸쳤다. "어디로 가십니까?"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의 묘...
나는 그토록 군산을 많이 왔어도 아직 그곳에 가 본 일이 없소." 위무일이 영빈각을 걸어 나갔다.
오랜만의 외출이었다.
움직이기 싫었지만 우울을 청승처럼 몸에 두르고 앉아 있는 모습은 스스로도 보기 싫었다.
억지로라도 기분을 바꾸어 볼 생각이었다.
산고가 그를 따라나왔다.
위무일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따라오지 마라!" 그가 냉랭하게 소리쳤다.
울컥 치솟은 화였다.
산고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위무일이 화를 내는 이유를 알 수 없었고 그녀를 향해 화를 내는 것도 본 적이 없었다.
군산에 발을 들이며 시종 느낀 불안감이 현실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맴돌았다.
다 헤어진 어갑피, 거친 음식, 언제나 석상(石像)처럼 무심했던 산공...
그녀는 그곳이 그리웠다.
챙캉! 산고가 잉어회가 담긴 접시를 내던지는 것으로 자신의 화를 대신했다.
위무일은 한적한 군산의 포도를 걸었다.
막바지에 선 여름 햇살은 아직 따가웠다.
아황과 여영의 묘를 향해 걸어가던 그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가는 도중에 그는 아황과 여영의 묘를 감상할 흥취를 잃어버렸다.
심화(心火)를 참을 수 없어 나왔을 뿐이었다.
그가 발길을 되돌렸다.
위무일은 발길 닿는 데로 걸었다.
멀리 총채가 보이는 곳에 이르렀을 때였다.
들꽃이 주단(紬緞)처럼 깔린 한적한 곳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위무일은 까닭 모를 뭉클한 감회를 느꼈다.
그가 언덕을 올랐다.
위무일은 무릎을 꿇고 들꽃의 꽃봉오리를 매만졌다.
그가 팔베개를 하며 누웠다. '어디로 가는가?' 각루(刻漏:물시계)의 물은 영남에서는 흐르지 않았다.
그러나 장강을 들어서며 각루의 물은 빠른 속도로 흘렀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거꾸로 치닫는 물! 멈춰진 시간 속에서 부유하던 삼 년이 끝나자 마자 그를 기다리던 것은 세월의 역류였다.
위무일은 그 속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다. '나는 패배했다.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위무일은 꽃잎을 질겅질겅 씹었다. '인정해야 하는가? 인정한다면... ' 그가 풀밭을 뒤척였다. '그때는 왜 그렇게 쉽게 보냈을까?' 우두둑! 그가 손에 잡히는 풀을 뿌리째 뜯어냈다.
목이 탔다.
기댈 곳은 여전히 술이었다. "후후후... " 위무일은 실소를 흘렸다.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환몽(幻夢), 술, 그리고...
위무일이 점소이를 불렀다. "모자라면 시신을 뒤져라." 그가 점소이에게 서너 냥의 은자를 건넸다.
점소이가 무슨 말인 줄 몰라 머리를 갸우뚱거릴 때였다.
우르르! 주루의 천장이 무너져 내리며 백광(白光)이 위무일을 덮었다.
위무일이 좌수로 점소이를 밀치며 우수로 백광에 맞서 갔다.
백광의 정체는 두 자 반 크기의 엽도(葉刀)에서 번쩍이는 빛이었다.
살수! 위무일은 주루를 들어서면서부터 그를 따르고 있는 한 패의 살수들을 눈치챘다.
행동은 요란했지만 풋내가 풀풀 나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내버려두고 있었던 터였다. "큭!" 천장에서 위무일을 암습하던 자가 신형을 퍼덕거렸다.
위무일이 억센 손으로 그의 목덜미를 붙잡고 있었다.
촤ㅊ! 좌우 창문으로 두 가닥 신형이 득날 같이 날라 들었다.
우드득! 목덜미를 잡힌 자의 목뼈가 부러졌다.
위무일이 눈이 뒤집어진 작자를 우측으로 내던지며 좌측 창으로 달려드는 자와 맞섰다.
좌측의 살수가 엽도를 내지르기도 전에 위무일은 그 자의 가슴팍을 달라붙었다.
위무일이 엽도를 든 작자의 손목을 움켜쥐고 등뒤로 돌았다.
투둑! "크악!" 팔뼈가 부러지며 위무일에게 붙잡힌 자가 비명을 질렀다.
위무일이 작자의 손에서 떨어지는 엽도로 그대로 등을 쑤셨다.
그가 엽도에 뚫린 자를 방패처럼 세우고 우측 창을 넘어왔던 자를 향해 돌진했다.
파파팟! 표창이 전후 사방에서 날아왔다.
위무일이 제 칼에 찔려 아직도 바둥대는 자의 머리를 짚고 허공으로 신형을 날렸다.
퍽! 그가 철각(鐵脚)으로 우측 창을 뛰어들어왔던 자의 머리통을 박살내며 탁자 위에 섰다.
갑자기 살수들이 공세를 뚝 멈추었다.
찰라지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들은 위무일의 무공에 놀라 잠시 혼백(魂魄)이 나간 상태였다.
위무일이 천천히 주루를 걸어나갔다.
까만 면사포로 얼굴을 가린 십 여명의 살수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면사포에는 '묵(默)' 자라는 하얀 글자를 새긴 자들이었다.
묵회! 물론 위무일은 모르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누군지 상관하지 않았다. "죽여라!" 반원형으로 포진한 살수들의 대여섯 걸음 뒤에 서 있던 자가 소리쳤다.
그는 묵회의 회주였다.
살수들이 연수 합격으로 단 번에 상대의 목을 끊기 위해 자세를 낮추었다.
그들이 벌떼처럼 달려들 때였다. "크악!" "카악!" 촌각(寸刻)의 차이로 날렵한 인영(人影) 하나가 살수들의 좌익을 휩쓸어 가고 있었다.
산고였다.
그녀는 면박을 받았어도 위무일을 먼발치에서 따랐다.
떨어져 있으면 영원히 떨어질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었다.
산공에게 정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떨어져 산다는 것은 더 더욱 생각도 못했다.
산공은 그의 유일한 하늘이었기 때문이다. "악!" "으악!" 산고의 협도는 오늘 따라 더욱 무자비했다.
협도를 주르르 타고 흐르는 피가 삽시간에 그녀의 소매를 물들였다.
산고는 위무일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새초롬한 표정으로 살수들을 난도질하기에 여념이 없는 것을 보면 좀 전의 일로 단단히 삐진 모양이었다.
위무일이 쓴웃음을 지었다.
휙! 그가 소매를 펄럭이며 신형을 날렸다.
위무일이 노리는 자는 수괴였다.
두 명의 살수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위무일이 새가 날개짓을 하듯 그들을 후려쳤다.
퍽! 퍼퍽! 위무일의 양팔에 목을 가격 당한 자들이 피화살을 뿜으며 허공을 날았다.
위무일이 묵회주(默會主)를 향해 걸어갔다.
묵회주의 눈빛이 흔들렸다.
유생들의 목을 비트는 것으로 호구를 삼던 그가 어찌 감히 마타룡의 상대가 될 수 있으랴? 마타룡 앞에서는 그가 닭모가지 비틀 힘조차 없는 유생에 불과했다. '만로방 놈들을 믿고 너무 쉽게 일을 맡았다.' 묵회주가 뼈저린 통한에 가슴을 쳤다.
그러나 이미 일을 벌어진 후였고 발을 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스-윽! 그가 칼을 빼 들었다.
묵회주의 칼은 제법 무사 티가 나는 장도였다. "살수들인가?" 위무일이 땅에 떨어진 엽도를 주워들며 비로소 암습자의 정체를 물었다. " .... " 묵회주가 칼을 상단에 세웠다. "누구의 지시로 왔느냐?" "핫!" 묵회주가 대답 대신 필살일도(必殺一刀)로 장도를 내뻗었다.
전력을 실은 회심의 일초였다.
그의 장도는 기대대로 당장 적의 심장에 피를 볼 듯했다.
그러나 그의 칼은 적의 심장 한 뼘 근처에서 꼼짝을 않았다.
장도는 위무일을 손가락 사이에 걸려 있었다.
뚝! 위무일이 장도를 부러뜨렸다.
묵회주가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대학사(大學士)도 거유(巨儒)도 죽음 앞에서는 모두 담담하지 못했다.
공포와 절망! 그런 이유로 묵회주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어느 정도 죄책감을 덜 수 있었다.
고고한 척 해도 그가 처단하는 자들의 대부분은 결국 죽음 앞에 초연할 수 없는 범부(凡夫)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웃으며 그들을 죽여주었다.
그리고 맹세했다. '만약 내가 죽음 앞에 선다면 절대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묵회주는 자신의 맹세가 지켜질 것인가를 시험해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불행히도 지금 그 맹세를 지킬 기회가 생긴 것이다.
묵회주는 자신의 맹세를 되씹었다.
하지만 그 맹세는 머리 속에서만 의연히 자리할 뿐 그의 몸은 맹세를 따라 주지 않았다.
다리가 떨리고 때아닌 오열(惡熱)이 치솟았다. "누구의 지시로 왔느냐?" 위무일이 동강난 칼끝을 손바닥에 올리며 물었다. "만로방!" 묵회주가 엉겁결에 소리쳤다.
그의 말이 끝나자 마자 부러진 장도의 끝이 날았다.
퍽! 부러진 칼날이 묵회주의 미간 사이를 꿰뚫고 지나갔다.
묵회주의 목이 서서히 꺾였다.
털-썩! 그가 통나무가 쓰러지듯 땅바닥을 굴렀다.
위무일이 고개를 돌렸다.
산고는 벌써 일을 끝낸 후였다.
그녀는 물가로 가고 있었다.
협도에 묻은 피를 닦기 위해서였다.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위무일을 외면하고 있었다. " .... " 위무일이 머리를 긁적였다.
분명 예전에 몇 번 부른 듯 한데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산고가 쪼그리고 앉아 칼을 씻는 동안 비로소 위무일은 머리를 쳤다. '아남(娥南)!' 산고가 밝힌 그녀의 이름! 처음 만났을 때 몇 번 불러 보고 잊었던 이름이었다.
중원인에게 생소한 모남족의 이름이 아니었다면 아마 완전히 기억 속에 사라졌을 것이다. "아남!" 위무일이 산고를 불렀다. " ... " 그러나 산고는 이미 핏자국이 다 지워진 칼을 씻기만 했다. "아남!" 위무일이 다시 산고를 불렀다. " .... " 산고가 칼을 씻던 손을 뚝 멈추었다.
아마 그녀도 자신의 이름을 잊고 있던 모양이었다.
산고가 고개를 푹 숙였다.
몇 년만에 듣게 되는 자신의 이름에 감회가 유별났기 때문인지는 위무일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주루에 가서 술을 좀 가져오너라." 위무일이 호변을 거닐며 나룻배를 찾았다.
삐걱거리는 나룻배. "후후후... " 위무일은 실소를 흘렸다.
변한 것은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
야릇한 꿈, 술, 옷에 묻은 혈흔, 피냄새! 그가 엉덩이를 빼며 나룻배에 길게 몸을 눕혔다. "부어라!" 영남을 떠난 이후 취하도록 술을 마셔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취하고 싶었다.
산고가 굵은 대나무 잔에 술을 담아 그의 입에 부었다.
콸! 콸! 콸! 술은 물이었다.
오늘 같은 날이면 동정호의 물이 전부 술이라도 모자랄 듯했다.
술을 마실수록 정신이 맑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같은 생각은 위무일만의 생각.
술꾼들은 안다.
마셔도 취하지 않는 술이란 없음을...
사실 그는 취해 있었다. "아남!" 위무일이 산고를 불렀다.
산고가 움찔했다.
술은 그녀도 제법 마셨었다.
그러나 정작 술을 마실수록 취하지 않는 사람은 그녀였다.
이름을 부르며 친근감을 표시하는 위무일의 태도는 그녀를 긴장시키기에 족했다.
영남에서는 만 잔의 술을 마셔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그였다. "이리 오너라." 위무일이 산고의 손을 잡았다.
그가 산고를 와락 끌어 가슴에 눕혔다.
산고의 몸이 더욱 경직됐다.
남자의 체향 때문은 아니었다.
영남의 목채에서는 좁은 침상에서 매일 얽혀 잤었다.
그녀는 좋아했다.
잠들어 있는 산공의 품 속을 고양이처럼 파고 들어가 눕는 것을...
위무일이 그의 가슴팍에 어색하게 기대 있는 산고의 허리를 감았다. "돌아 가자." 그가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산고의 안색이 일시에 변했다.
그녀가 눈빛을 반짝이며 위무일을 바라보았다. "돌아 가자.
이 일이 끝나는 대로...
돌아갈 것이다." 위무일이 잠결에 든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산고의 안색이 다시 변했다.
일이 끝나면 돌아갈 것이라는 말은 그녀에게는 영원히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들렸다.
온 몸에 힘이 쭉 빠졌다.
그녀가 몸을 늘어뜨리며 위무일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중원에 오니 눈에 물기를 담을 일도 많았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산고는 예감했다.
산공도 떠날 것임을... - 화르르륵! 돼기 기름이 줄줄 흐르자 불길은 더욱 기세를 부렸다.
여기 저기 피어오르는 불길 위에는 쇠꼬챙이에 꿰인 통돼지가 기름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고 크다란 접시에는 돼지간으로 만든 탕(湯)이 부글거렸다.
모남족이 즐겨 먹는 향저(香猪)라는 통돼지구이와 주간탕(猪肝湯)이었다.
짝! 짝! 짝! 짝! 불길의 중앙에는 이십 여명의 남녀가 박수와 대나무 장단에 맞춰 군무(群舞)를 추었다.
마을은 구수한 향기로 가득했고 모두 즐거운 표정들이었다.
산고도 오라비와 홍서를 씹으며 축제를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른들의 춤사위를 따라 그녀의 어깨도 절로 들썩였다.
누가 혼인(婚姻)을 했는지는 기억에 없었다.
그러나 혼인일(婚姻日)이었다는 것은 분명 기억났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며 웃고 있었고 어머니는 주간탕에 향료를 넣고 불길을 조절하느라 바빴다.
짝! 짝! 짝! 짝! 장단은 더욱 빨라지고 군무를 추는 젊은 남녀들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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