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이 모두가 들으라고 소리쳤다. 투함에 있던 자들이 이만의 고함에 실소를 흘렸다. 이만이 농담으로 던지는 말은 위무일을 대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웅변했기 때문이다. "태부인은 어디 있습니까?" 무하 수채의 내당당주, 최안이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 "선실에 계시오. 따라오시오." 종우상이 그를 인도했다. "무일 형님은?" 이만이 물었다. "같이 계실 것이오." 종우상이 모두를 이끌고 선실로 향했다. 그가 몇 개의 다닥다닥한 선실을 지나 거실만한 크기의 선실 앞에 섰다. 선실은 굳게 닫혀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게지?" 담향이 야릇한 눈빛을 빛냈다. "태부인!" 종우상이 기척을 한 후, 선실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선실에는 담청과 황룡당주가 반상을 대하고 있었다. 적룡당주도 보였다. 황룡당주와 적룡당주는 무하를 눈앞에 두고 대책을 논하기 위해 주함(主艦)에 올라왔다가 회의를 파하고 잠시 망중한(忙中閑)을 즐기는 중이었다. 바둑은 난장으로 뒤얽혀 있었다. 그러나 명인(名人)이 봤다면 이미 담청의 승리를 낙점(落點)했을 것이다. 사실 담청의 기력(棋力)은 장강에서 알아주는 실력이라 황룡당주도 접바둑으로 상대하던 터였다. 엽광과 적룡당주는 선창에 서 무엇인가를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무공에 대해 논하는 중이었다. 위무일은 담청의 뒤에 앉아 있었다. 그는 잠을 자는 지 태사의에 몸을 파묻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담청이 바둑알을 놓으며 종우상에게 눈길을 돌렸다. "무하 수채의 최 당주가 태부인을 영접하기 위해 왔습니다." "영접을 위해 여기까지 오시다니... 최 당주에게 감사하다고 전해 주세요." 담청이 반상에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그녀는 최안의 인사도 받지 않았다. 문밖에 서 있던 최안이 되려 얼굴을 붉히며 무안해 했다. "가시지요. 태부인에 대한 인사는 무하 수채에서 드리면 될 것입니다." 종우상이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최안의 팔을 끌었다. 최안이 뭐 마려운 개처럼 어정거리며 선실을 나섰다. "언니, 기세가 많이 등등해지셨군요. 무일 오라버니를 등에 업으니 힘이 펄펄 나는 모양이지요?" 담향이 선실문에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 담청은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어머님과 오라버니는 별고 없겠지?" 그녀가 무심하게 물었다. "언니는 역시 성격이 좋군요. 손자, 조카의 생일도 몰라라 하는 어머니와 오라비의 안부를 묻다니... " 담향이 나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가 거론하는 어머니는 자신의 친모(親母)로 전임 상강 채주의 세 번째 여자였다. 담청의 결국 아미를 찌푸렸다. "태부인, 우리도 무하 수채에서 기다려야 하나요?" 한수의 소채주, 이만이 선실에 고개를 빼꼼 내밀며 간드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들어오세요." 담청이 비로소 바둑판을 치웠다. "무일, 형님은 주무시나?" 이만이 선실로 들어서며 위무일의 얼굴을 기웃거렸다. "용연향, 반상에 돌 떨어지는 소리... 모두 재미가 좋군요." 담향도 선실로 들어섰다. "마 공자께서도 오셨군요." 담청이 민강의 소채주, 마원에게 눈길을 돌렸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마원이 담청에게 포권으로 인사했다. "민강에서 이곳 먼 무하까지 웬일이세요?" "무일, 형님을 뵈러 왔습니다." 마원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가 위무일의 앞에 섰다. "원이냐?" 위무일이 눈을 감은 체 물었다. 그는 잠을 자지 않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형님." 마원이 위무일에게 읍을 했다. "외숙부(外叔父)님께 죄송하게 되었다. 먼저 찾았어야 했는데 하릴없이 바빴다." 위무일이 눈을 뜨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이 바쁜 줄은 아버님도 알고 계셨습니다. 단지... 무하와 원강으로 출행을 하느라 바빴을 줄은 몰랐다더군요." " .... " 위무일이 턱을 쓰다듬었다. "그 같은 말은 마(馬) 채주(寨主)께서 전후 사정을 몰라서 하신 말씀일 것이오. 소영주께서 어찌 부모의 원수를 잊었겠습니까? 소영주께서는 장강의 반도(叛徒)들을 먼저 처치한 후, 원수를 갚을 생각이십니다. 그러니 마 채주께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전해 주시오." 엽광이 우렁한 목소리로 위무일을 변호했다. "아버님은 형님을 뵈었으면 합니다. 언제쯤 민강으로 오실 생각입니까?" "원강과 무하의 일이 끝나면 바로 갈 것이다." "아버님께서는... " 마원이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말에 뜸을 들였다. 그러나 그는 끝내 입에 맴도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서둘러 주십시오. 저는 먼저 가 있겠습니다." 마원은 만나자마자 위무일에게 작별을 고했다. "벌써 가려구?" 이만이 그의 발길을 잡았다. "아버님의 말씀을 전했으니 떠나야지. 가는 길에 고모부(姑母夫)와 고모(姑母)의 묘소(墓所)도 들러 봐야 하고." 마원의 고모부와 고모는 물론 위무일의 아버지와 어머니다. 민강의 마 채주는 어머니의 동생이었다. "고작 그 이야기를 하려고 여기까지 왔다는 말이야? 무하와 원강에서 일어날 불구경도 해야지." 이만이 위무일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마원은 이만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담청에게 읍을 했다. 그가 엽광과 당주들에게 일일이 포권한 후, 선실을 나섰다. "나는 민강 사람들은 도저히 알 수가 없어. 입이 그렇게 아까운가? 말 한 마디 듣기가 저렇게 힘드니..." 이만이 투덜댔다. "소영주, 따라가 보십시오. 아무래도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민강에 오라는 말을 하기 위해 이곳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엽광이 우려의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을 하기 위해서 왔을 것이오. 단지 원이 직접 온 것을 보니 민강에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군." 위무일이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라니? 아! 그러고 보니 저번 춘절의 만회 이후, 마 채주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군요." 황룡당주가 말했다. "오라버니, 마 공자에게 연유를 물어 보세요. 아직 선상(船上)에 있을 것입니다." "급한 일이면 급하다고 말했을 것이다!" 위무일이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담청을 비롯한 중인들의 안색이 변했다. 위무일이 태사의에 다시 몸을 기댔다. "ㅉ! 민강의 과묵한 피는 무일, 형님에게도 흐르고 있었지." 호기심으로 귀를 곤두세우고 있던 이만이 쓴맛을 다셨다. "마 공자님도 괜찮군. 어쨌든 남자나 여자나 말이 적어야 해. 말 많은 자나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조잘거리는 여자를 보면 밥맛이 떨어지지." 담향이 권태로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말 많은 남자는 분명 나는 아닐 게고... 교언영색으로 조잘거리는 여자는 누구지?" 이만이 뜨끔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하! 그 여자였군. 무일, 형님이 데려고 온 그 여자! 담 누이 보다 말이 많아 보이지는 않던데." "호호호!" 담향이 짜랑하게 웃었다. "무일 오라버니, 오랜만이에요." 그녀가 위무일에게 다가서며 고개를 숙였다. 위무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 생각이 났는데 마 채주께서 오라버니를 찾는 이유는 아마 오라버니를 서둘러 혼인 시키기 위해서 일 거예요." 담향이 야릇한 눈길로 위무일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하!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야. 우리 아버님도 무일 형님에게 시집 보낼 딸이 없음을 한탄하셨어." 이만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공자, 담 소저, 우리 소영주와의 혼인에 관심을 보이는 곳이 어느 수채이던가요?" 엽광이 금방 관심을 표했다. "해해해! 여자가 있는 수채라면 모두 관심이 있겠지. 두 명이면 금상첨화(錦上添花)고. 한 명은 무일 형님, 다른 한 명은 화인 형님." 이만이 실실거렸다. 위무일은 선실을 걸어나갔다. "형님! 무일 형님, 어젯밤 꿈에 절세의 무공 초식을 얻었는데 조금 봐 주시겠습니까? 해해해! 몽인(夢刃)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이만이 위무일을 촐랑촐랑 따라가며 소리쳤다. 위무일이 우뚝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이만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이만의 표정이 불장난하다 들킨 아이처럼 해쓱해졌다. " ...내 칼은 물론 사람을 잡는 데만 사용되지 않지. 하지만 그것을 인정해 주는 사람은 너뿐인 것 같구나. 조용할 때 언제 한 번 찾아오너라. 네가 꿈속에서 창시(創始)했다는 몽인에 대해 논해 주겠다." 위무일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가 선미 쪽에 붙은 작은 선실로 향했다. 위무일의 발자국 소리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적룡당주가 입을 열었다. "위 공자의 마음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소. 군산을 떠날 때만 하더라도 괜찮아 보이더니 지금은 심기가 또 편치 않은 모양이오." "영주의 원수도 갚지 못했소. 그리고 호반영채를 불사른 흉수는 종적조차 모르고. 심기가 편하다는 것이 이상하지." 엽광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호호호! 무일 오라버니의 심기가 뒤틀려 있는 것이 어디 그 때문이겠어요?" 담향이 좌중을 둘러보며 눈빛을 빛냈다. "아무리 교언영색으로 맛있다는 것을 증명해도 무일 오라버니는 결국 느낄 수밖에 없지. 화중지병(畵中之餠)! 무일 오라버니의 성격으로서는 절대 풀 수 없는 벽(壁)이라고 생각지 않아요? 언니." 그녀가 알 수 없는 말로 담청을 바라보며 요요로운 미소를 입가에 담았다. 코를 찌르는 술냄새. 두툼한 차양으로 가려져 있어 선실은 암굴(暗窟)을 방불케 했다. 위무일은 차양을 걷었다. 나뒹구는 술병, 산고는 그 술병들 사이에 꼬부라져 있었다. 이만의 말에서 문득 산고를 이틀 동안이나 보지 못한 것을 느낀 위무일이었다. 그가 술병들을 치우고 산고를 침상에 눕혔다.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산고는 시체처럼 드러누워 꼼짝을 않았다. 발그레하던 얼굴도 핏기 하나 없었다. "구름 같은 배... 오랜만에 편안함 잠이었어. 하지만 도착하는 곳은 어디인가?" 위무일이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그는 산고가 먹다 남긴 술병을 들었다. 꿀꺽! 투함에 탄 후 처음으로 마시는 술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무엇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가 머리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 이제 장강에 오라버니를 거스를 사람은 없어요. 담청의 말이 그의 머릿속을 웅웅거렸다. "후후후... " 위무일은 실소를 흘렸다. '그 여자의 야심은 장강을 조용히 물러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 팟! 그가 수도(手刀)를 세웠다. '결국 이것에 모든 것을 의지할 수밖에 없단 말인가?' 휘-익! 위무일이 신경질적으로 수도를 뿌렸다. 손그림자가 선실을 붉게 갈랐다. 담청은 오랜만에 거울에 앉아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아직은 그런 대로 볼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위무일을 떠올렸다. 위무일이 그렇게 순순히 자신의 뜻을 따르리라고는 생각도 않았었다. 하지만 위무일은 아직까지 그녀의 곁에 있었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혼인을 하고 아이까지 가졌다. 그럴까 하고 지켜보던 위무일의 감정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어느 정도 확신하는 바가 있었다. 가벼운 흥분이 담청의 얼굴을 붉혔다. 그때였다. "언니!" 담향이 그녀를 부르며 선실로 들어섰다. "부르셨어요?" 그녀가 담청의 옆에 앉았다. 담청이 거울에서 시선을 떼고 담향을 바라보았다. "묻고 싶은 말이 있어서 불렀다." "무슨 말이에요?" 담향이 다리를 꼬며 물었다. "화중지병이라니? 무슨 뜻으로 한 말이냐?" "호호호! 정말 몰라서 묻는 거예요?" 담향이 긴 목을 드러내며 웃었다. "오라버니는 야반도주(夜半逃走)라도 하고 싶겠지. 하지만 언니는 태부인의 자리를 절대 놓치려 하지 않잖아. 그래서 무일 오라버니는 갑갑하죠. 장강의 물결에 얹혀 사는 한 동도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으니... 밤중에 월장(越牆)을 해서 언니를 만나는 것이 고작일까? 호호호!" " .... " 담청이 아미를 찌푸렸다. "근자에 무일 오라버니의 심경이 별반 좋지 못하다고 들었어. 언니는 빨리 자신이 화중지병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할 거예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또 훌쩍 떠나 버릴 걸. 무일 오라버니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잖아." 담향이 요기롭게 눈빛을 반짝였다. "오라버니가 아직 나에게 마음이 있다니... 고마운 이야기구나." 담청이 피식 웃었다. "고마움이야 당연히 느껴야지. 한 번 배신한 여자, 그리고 지금은 아이까지 달고 있잖아. 그런 것을 보면 정말 이상해. 나 같으면 절대 미련을 가지지 않을 텐데. 하긴 남자들은 미련스럽게 옛 여자를 잊지 못한다고 했으니... " 담향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는 나보다 오라버니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많구나." 담청이 한숨을 쉬었다. "당연하지. 언니는 무일 오라버니도 쳐다보고 총채주도 쳐다보았지만 내가 쳐다본 사람은 무일 오라버니 혼자였잖아." "그랬었느냐?" 담청이 씁쓸하게 물었다.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 하는 것은 죽어서도 바뀌지 않겠군." 담향이 눈을 흘겼다. "가릉강의 도신행이라는 자와는 잘되어 가느냐?" 담청이 돌연 말을 돌렸다. "잘되어 갔지. 무일 오라버니가 오기 전까지는... 하지만 이제 끝이야. 무일 오라버니가 돌아왔으니!" 담향이 내뱉듯이 말했다. 담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말을 하겠어. 도신행이라는 자와의 관계에 대해 불문에 붙여 주기를 바래. 그럼 무일 오라버니와 통정(通情)을 나눈다고 하더라도 눈감아 주겠어. 나는 무일 오라버니에게 청혼을 할 생각이야." 담향이 거침없이 말했다. "말이 지나치구나." 담청이 아미를 찌푸렸다. "호호호! 얼마나 좋은 일이야? 자매(姉妹)가 서로의 아픈 곳을 돕겠다는데... " 담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할 말은 없겠지?" 그녀가 물었다. 담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언니를 믿겠어. 나는 곧 무일 오라버니를 찾아볼 생각이야." 담향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녀가 선실을 걸어나갔다. 담청은 다시 거울을 보고 앉았다. 담향으로부터 위무일의 마음이 자신의 곁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그녀의 마음은 적이 넉넉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 사실은 확인하기 위해 담향을 불렀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곧 안색을 찌푸렸다. 위무일의 피곤해 하는 기색과 더불어 화중지병이라는 말이 아직 그녀의 마음에 걸렸다. '수룡채에서의 만남은 시작이었을 뿐인데... 너무 쉽게 행동했다.' 담청이 쓸쓸한 미소를 흘렸다. 삼사 년 동안 황폐화 되고 황폐해 졌을 위무일의 마음! 그녀에 대한 증오와 불안, 애정이 난마처럼 뒤섞여 자고 나면 다른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녀는 위무일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대처해야 했었다고 생각했다. 담향이라면 아마 밤중에 침상을 스며들어서라도 위로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럴 수가 없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원래 무일 오라버니의 여자는 천박하게 행동하지 말아야 할 여자였기 때문이다. '지켜보는 도리밖에... ' 담청은 가는 한숨을 쉬었다. 자주 바뀌는 마음이니 다시 바뀌지 않을 리는 없다. 그리고 만약 위무일의 마음이 자신의 곁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면 그녀는 위무일을 붙잡아 둘 자신도 있었다. 강호인들은 마타룡의 무위에만 관심을 가질 뿐 그의 속마음은 모른다. 그의 가슴이 얼마나 약한가를... 한 때의 좌절을 견디지 못해 장강을 떠나기까지 했던 그였다. '나라면 물론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원한 것을 얻기 전에는... 그러고 보니 남자들은 모두 달아나는데 일가견이 있군. 익 오라버니도 무일 오라버니도... ' 담청이 실소를 흘렸다. 파파팟! 무하 수채의 영기가 눈앞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그녀가 위무일에게 눈길을 돌렸다. 위무일은 역시 자신의 무심한 눈빛 속에 모든 감정을 숨기고 있었다. '칼... ' 달라진 것이 있다면 허리에 매여진 귀두도(鬼頭刀)뿐! 은백색으로 빛나는 넓적한 도신(刀身), 회자수( 子手)의 칼을 연상시키는 귀두도는 당장이라도 피를 볼 듯 했다. 엽광이 투함을 샅샅이 뒤져 찾아낸 칼로 처음에는 쇳덩이보다 못했는데 그의 손에 의해 다듬어진 칼이었다. '어울리지 않군.' 담청은 위무일의 허리에 달랑거리는 귀두도가 어색하게 보였다. 좀 더 날렵하고 세련된 칼을 선물하리라 생각했다. 그녀가 이런저런 생각으로 위무일을 흘깃거릴 때였다. "엽 선주!" 위무일이 엽광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소영주!" 엽광이 쌍수도를 철컥이며 달려왔다. "이제 아버님은 없소." 위무일이 무하 수채에 눈길을 둔 채 말했다. " .... " 엽광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놀라기는 담청도 마찬가지였다. "알겠습니다. 영주!" 엽광이 깊게 머리를 숙였다. "해골선단 소속 무사들이 모두 몇 명이요?" "군산에서도 몇 명 합류를 해서 이제 십 여명은 족히 됩니다." "무하 수채에서 피를 볼지도 모르겠소." " .... " 엽광이 안색을 찌푸렸다. "정말 홍 채주의 목을 칠 생각이십니까?" 그가 침을 삼키며 물었다. "호반영채는 자신의 뜻과 다른 자들은 동반으로 생각지 않소." 위무일이 귀두도의 날을 만지며 중얼거렸다. 그는 산고의 선실에서 담청의 말을 되씹었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어쨌든 장강에서는 그를 거스를 사람이 없어야 했다. * * * 투두두두두! "워! 워!" 한 떼의 인마(人馬)가 무창분회에 들어섰다. "총사, 오셨습니까?" 무창분회의 대청(大廳)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다섯 명의 사내가 말에서 훌쩍 뛰어내리는 중년인을 향해 모여들었다. 중년인은 서문중이었다. "부회주들께서 모두 모이셨군요. 부회주를 보내라는 명을 내린 적은 없는데 회주들께서 부회주들을 이번 일에 다 참가시킨 것을 보면 마타룡이 무섭긴 무서웠던 모양입니다. 허허허!" 서문중이 그를 둘러싼 자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다섯 명의 사내는 탕백기주와 각 행회의 부회주들이었다. "자! 올라갑시다. 철기대(鐵騎隊)와 보갑대(步甲隊)의 대주들께서도 수하들의 여장을 풀게 한 후, 이곳으로 오시오." 서문중이 선두에 선 두 명의 중년인에게 명을 내린 후, 탕백기주 등과 함께 대청에 올랐다. "수로연맹의 움직임은 어떻소?" 그가 대청에 자리를 잡으며 물었다. "총사의 지시대로 모두 우회로(迂廻路)를 택해 야행(夜行)을 했기 때문에 아직 우리의 일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놈들이 이번 일을 예측이나 하고 있겠습니까?" 견갑(肩胛)을 걸친 팔척 거한이 말했다. 그가 바로 만로방 정예 중의 정예, 탕백기를 이끄는 여맹(呂猛)이라는 자였다. "어디쯤에서 마타룡을 척살할 생각이십니까?" 여맹의 곁에 앉은 자가 어눌한 한어로 물었다. 백색 피부, 호갑(護甲)으로 전신을 무장한 사내의 덩치는 여맹에 버금갔다. 그는 천축인(天竺人)으로 황사로의 부회주를 맡고 있는 자였다. "지금쯤 무하에 도착했겠지. 무하의 홍 채주가 아무리 날뛰어 보아야 마타룡의 마수를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오. 무하를 치고 득의양양하게 원강으로 향하겠지. 그때를 노립시다." "무하의 지원 요청은 모른 척 하실 것입니까?" 탕백기주 여맹이 물었다. "홍 채주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무하는 가지 않을 것이오. 마타룡이 분란을 일으킨 후에 놈을 쳐야 채주들도 더욱 고마움을 알겠지. 껄껄껄!" 서문중이 양피지(羊皮紙)를 흔들며 웃었다. "이제 놈을 처치하는 일만 남았군요. 놈을 어떻게 처치할 생각이십니까?" 깡마른 몸매에 강퍅한 인상, 뒤늦게 대청에 오르는 자는 만로방의 일 기(一旗), 이 당(二堂), 삼 대(三隊), 사 회(四會) 중 보갑대의 대장(隊長)을 맡고 있는 유성(兪成)이라는 자였다. "사대행회와 보갑대, 철기대, 탕백기까지 동원되었소. 군산을 친다고 해도 넉넉한 머릿수지. 그런데 무슨... 단번에 쓸어버립시다." 매눈을 번뜩이는 사내가 말했다. 그는 율아간(律阿刊)이라는 여진인으로 북풍로의 부회주였다. 주황은 황사로와 북풍로의 부회주는 현지 사정에 밝은 이족(異族)으로 임명했다. "그렇게 쉽게 죽일 수 있는 자 같았으면 부회주를 그 먼 요서 벌판에서 이곳까지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오." 서문중이 웃으며 손에 쥐고 있던 양피지를 쫙 펼쳤다. 양피지에 그려진 것은 지도(地圖)였다. "여기 있는 분 중 몇 분은 다시 보기 힘들지도 모르오." 서문중이 각 회와 대의 작의 영기를 지도에 놓으며 중얼거렸다. 부회주와 대주들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여기 있는 분들 중 마타룡과 싸워 본 분은 탕백기주만이 유일할 것이오. 나도 놈을 겪어 보지는 못했지." 서문중이 각 영기를 놓고 손을 털었다. "싸워 보지 못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요. 방주를 모시고 신야(新野)로 향하던 중이었소. 마타룡의 급습을 듣고 급히 말머리를 돌렸으나 이미 개봉 총단은 불에 타 잿더미가 되어 있더군." 탕백기주 여맹이 실소를 흘렸다. 삽시간에 대청에 살벌한 바람이 불었다. "그렇다고 놈을 너무 어렵게 대할 필요는 없고... 자! 이쪽을 봅시다." 서문중이 좌중의 시선을 양피지로 모았다. 그가 각 대주들과 머리를 맞대고 마타룡을 척살할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서문중의 계책은 수하 한 명의 움직임까지 고려할 정도로 치밀해 각 대주들과 부회주들이 혀를 찰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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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중의 설명은 한 시진 가깝게 이어졌다. "어떻소?" 화톳불만이 반짝일 때가 되어서야 서문중이 양피지를 접었다. 서문중의 계책을 머리 속에 담느라 여념이 없던 각 대주들과 부회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