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광이 의자를 들고 요강의 하 채주 뒤로 갔다. 쿵! "채주들! 죄송합니다. 마땅한 자리가 없어서..." 그가 의자를 꽂듯이 놓으며 소리쳤다. 채주들이 미간을 좁히며 안색을 찌푸렸다. "영주! 이쪽으로 오십시오." 엽광이 위무일을 불렀다. 위무일은 움직이지 않았다. "깜박 잊었군. 영주께서는 원래 의자에 앉기를 싫어하시지. 이리 오너라!" 엽광이 이번에는 호반영채 수하들을 불렀다. "영주의 자리는 여기이니 우리는 이곳에서 시립한다!" 그가 소리쳤다. 엽광과 호반영채의 수하들이 빈의자를 두고 일자로 도열했다. "음... " 무하의 채주, 홍관연이 턱을 만지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하지만 불편하기는 엽광을 등 뒤에 붙인 채주들이 더했다. 성질 급하기로 장강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엽광이었다. 불시에 무슨 짓을 저지를지... 엽광은 채주들의 등뒤에 버티고 서 좌중을 오시(傲視)했다. 담청은 홍관연을 마주보고 있었고 파양호 계의 채주들은 총채의 당주들을 마주보고 있었다. 그리고 정필의 화룡대는 주원의 무하 수채 정예들과 눈을 마주치는 형국이라 분위기는 처음부터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였다. "험!" 홍관연이 이런 삭막한 분위기를 털어 내려는 듯 헛기침을 했다. 그가 좌중의 이목을 환기시키며 입을 열었다. "태부인, 무슨 일로 이곳을 찾으셨습니까?" 짐짓 느긋함을 가장한 물음이었다. 담청은 시비가 가져다주는 차에 먼저 입을 댔다. 그사이, 총채의 말문을 연 자는 집법당주, 종우상이었다. "근자에 홍 채주께서 만로방과 가깝게 지낸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연유로 그 같은 소문이 총채까지 들리게 되었는지 알기 위해 왔습니다." 종우상이 점잖게 말했다. "그 일 때문에 오셨다니... 음... " 홍관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 "만로방과의 화해를 먼저 청한 사람은 홍(洪) 모(某)가 아니라 바로 태부인이셨소." 그가 의자를 까딱거리며 말했다. 담청을 비롯한 총채 당주들이 눈살을 일제히 찌푸렸다.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까?" 종우상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말 그대로 이외다. 화해를 선언하지 않았다면 무하를 비롯한 우리 파양호 계의 수채들은 만로방과 계속 싸우고 있었을 것이오. 우리 파양호 계의 수채들이야 원래 대강(大江) 채주들의 뜻과 총채의 뜻에 질질 끌려 다녀야만 하는 처지니... " 홍관연이 고소를 흘렸다. "홍 채주께서는 그럼 만로방과의 대화해를 만로방과의 우의를 나누자는 뜻으로 이해했다는 말입니까?" "물론!" 홍관연이 짧게 대답했다. " .... " 종우상은 홍관연의 궤변(詭辯)에 말문이 막혀 잠깐 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담청이 나섰다. "대화해가 결정되기까지 논의가 물경 일 개월여 이상 계속된 것으로 압니다. 그 논의에 조금의 관심이라도 있었다면 대화해가 잠시 싸움을 쉬자는 뜻인지 아니면 만로방과 손을 잡자는 뜻인지 갈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른 채주분들도 화해를 홍 채주와 같은 뜻으로 이해하셨습니까?" 담청이 매섭게 물었다. " .... " 홍관연의 청에 의해 입을 억지로 맞춘 상태이기는 하나 채주들은 담청의 물음에 그렇다고 쉽게 답하지 못했다. "우리 파양호 계는 불행히도 목소리를 높일 만한 수채가 없소. 그러니 의견을 듣고 자시고 하는 것이 무슨 소용 있겠소? 종복(從僕)처럼 영이 떨어지면 따를 뿐!" 홍관연이 자신의 억지를 밀어 나갔다. "우리는 왜 파양호 수계가 이런 대우를 받고 있는지 모르겠소. 우리 수계가 얼마나 풍부한 산물(産物)을 취급하는지 태부인께서도 잘 아실 것이오. 그런데도 우리들은 저 촉도의 외진 민강이나 오랑캐의 땅을 굽이쳐 흐르는 금사강보다 더 천한 취급을 받고 있소!" 그가 고함을 지르며 다른 채주들의 격분을 끌어냈다. "수룡왕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각 수채는 동등(同等)하다. 만약 동등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먼저 자신에게 그 이유를 물어야 할 것이오." 종우상이 끊듯이 말했다. "동등함을 외치는 자들은 언제가 강한 자들이더군. 약한 자들이 동등함을 외치기는 얼마나 힘든지 종 당주는 모를 것이오." 홍관연이 빈정댔다. 종우상이 자신의 나약함을 외부의 탓으로만 돌리는 홍관연에게 한 마디 내뱉으려 할 때였다. 담청이 손을 들어 그의 입을 막았다. "좋아요. 홍 채주, 저는 홍 채주의 말대로 홍 채주가 대화해의 뜻을 잘못 이해해서 만로방과 연통했다는 사실을 믿겠어요. 말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생긴 약간의 오해이니 이제 만로방과는 손을 끊겠군요." " .... " 홍관연이 머뭇거리며 쉽게 답을 하지 못했다. "만로방과 손을 끊는 것을 믿어도 되겠습니까?" 담청이 찻잔을 들며 나직히 물었다. 목소리는 낮았으나 그녀의 말은 홍관연에게 엄청난 압박이었다. 홍관연이 다른 채주들의 눈치를 살폈다. 채주들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얼굴에 아무런 표정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홍관연은 갈등했다. 만로방과 손을 끊는다면 무하 수채는 별 볼일 없는 수채로 남을 것이다. 더해서 한 때 만로방과 손 잡은 경력이 있는 배덕자(背德者)의 낙인까지 찍힌 채... 만로방과의 관계를 계속 한다면 무하 수채는 놀랍게 발전할 것이다. 소금! 만로방과의 거래 물품 중에는 소금도 있었다. 소금은 단 일 년 사이에 만로방의 살림을 흥청거리게 하고 있었다. 홍관연은 그 엄청난 부를 뿌리치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대세는 아무리 생각해도 만로방 쪽이었다. 총채주의 부재, 총채와 각 수채 간의 분열! 이 모든 것을 고려할 때 홍관연은 만로방과 손을 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쉽게 담청의 물음에 답하지 못하는 것은 마타룡 때문에 다름 아니었다. 저 무심한 눈빛! 만약 만로방과 손을 끊지 않겠다면 어떤 행동을 취할까? 칼을 뽑게 될 험악한 상황까지 대비 채주들에게 협조를 당부했었다. 그러나 저들이 막상 그 같은 상황까지 가면 칼을 들고 그를 도와줄까? 장담이 힘들었다. "말씀해 주십시오." 담청의 재촉이 이어졌다. " .... " 그러나 홍관연의 입에서는 쉽게 확답이 떨어지지 않았다. "수 년간의 싸움, 만로방에 의해 죽음을 당한 동도들의 피가 장강을 물들일 정도였습니다. 총채주도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담청이 지긋이 입술을 깨물었다. 홍관연이 이미 싸늘하게 식은 찻잔을 잡았다. 그가 한 모금의 차를 마신 후, 비로소 입을 뗐다.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결국 홍관연이 택한 방법은 어물쩍 이 순간을 넘기는 방법뿐이었다. "생각은 무슨!" 엽광이 고함을 쳤다. "단도에 뿌려진 피! 전임 영주께서도 돌아가셨소! 뿐만 아니라 무하 수채의 수하들까지... 그 사실을 잊었소? 홍 채주!" 그의 눈에서 불이 튀었다. "엽 선주,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나서시오? 호반영채는 단심호 어른께서 수룡왕과의 개인적인 친분을 바탕으로 세워졌던 곳이오. 원래 수로연맹과 상관이 없었던 곳인데 단심호께서 돌아가신 마당이니 더 무슨 말을 할 게 있겠소. 그리고 우리는 호반영채를 초대한 적도 없소이다!" 무하 수채의 총관, 이준이 맞받아 고함을 쳤다. "뭣이?" 엽광의 눈에 살광이 흘렀다. "우리를 수로연맹의 동도로 생각지 않는다고? 말 잘했다. 동도가 아니라면 이렇게 구차하게 입만 놀리고 있을 필요가 없지!" 쩡! 그가 벼락 같이 쌍수도를 빼 들었다. 채주들이 도기(刀氣)에 놀라 황급히 등뒤로 고개를 돌렸다. 타타탁! 그 순간, 엽광은 이미 이준을 육박해 가고 있었다. "만로방의 더러운 개! 죽어라!" 팟! 엽광의 쌍수도가 이준을 쓸어갔다. 그의 쌍수도는 이준의 사지 하나 정도는 끊어 놓아야 화가 풀릴 듯했다. 이준이 꼼짝없이 한 팔을 쌍수도에 내줘야 할 때였다. 핑! 비표(匕 )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날아왔다. 쨍! 엽광이 회선풍(回旋風)으로 신형을 비틀며 비표를 쳐냈다. 하지만 그 틈에 이준은 수하들 사이로 몸을 숨길 수가 있었다. "어느 놈이냐?" 엽광이 씩씩거리며 고함을 쳤다. "엽 선주, 너무 심하지 않소?"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을 하는 자는 신강의 전 채주였다. 신강의 전 채주는 분화비폭(分花飛瀑)이라는 암기 수법으로 명성을 떨치는 자다. 엽광을 노리고 달려들었던 비표는 역시 그의 솜씨였다. "맞는 말이오. 호반영채를 수로연맹의 일부분이라 말할 수는 없지." 홍관연이 쾌재를 불렀다.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다르다. 채주들이 무하를 위해 나서 주겠다는 뜻!' 그가 분주히 머리를 굴렸다. 그때였다. "악!" 날카로운 비명! 홍관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총관 이준을 둘러싼 수하들이 동요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들이 무엇에 쫓기듯 우르르 비켜났다. '억!' 홍관연은 숨이 막혔다. 가슴에 피를 쏟으며 축 늘어진 이준... 이미 땅바닥을 뒹굴었어야 할 이준의 육신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그의 가슴에 불쑥 솟아 있는 손이었다. 핏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손! 그 손의 임자는 위무일이었다. 위무일이 이준의 등에서 손을 빼자 이준이 풀썩 쓰러졌다. " .... " 불시의 사태에 입을 여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네놈도 죽어라!" 고함을 지르며 비호처럼 움직이는 자는 엽광이었다. 그가 무하 수채 외당당주, 주원의 목을 노렸다. 팟! 칼바람 소리에 놀란 주원이 뒤늦게 칼을 빼 들었다. 챙! 그가 엽광의 쌍수도를 받아 내며 비틀거렸다. "동도로서 잘못을 뉘우쳤다면 목숨만은 살려주려 했다!" 엽광이 거칠게 주원을 휘몰아치며 소리쳤다. 애당초 주원은 엽광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팟! 엽광의 칼이 주원의 어깨를 가르며 피맛에 환호를 질렀다. 주원의 얼굴에 죽음의 그늘이 내렸다. "뭣들 하느냐?" 그는 수하들에게 다급히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가장 경황이 없는 자들은 무하 수채의 수졸들이었다. 놀란 토끼처럼 우르르 엽광과 주원을 둘러싸기는 했으나 칼을 뽑아야 할 지는 몰랐다. 그들이 홍관연을 바라보며 명을 기다렸다. 하지만 홍관연도 그들에게 명을 내릴 처지는 못되었다. 저벅! 저벅! 위무일 같은 고수가 발걸음 소리를 낼 리가 없다. 그러나 홍관연의 귀에는 그를 향해 다가오는 위무일을 발걸음 소리가 북소리 보다 터 크게 들렸다. 홍관연이 그의 애도(愛刀) 감산도(坎山刀)를 잡아갔다. 위무일은 지척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신강의 전 채주는 손을 슬며시 소매에 쑤셔박고 다른 채주들은 각기 자신의 칼을 잡았다. "죽어라!" 홍관연의 고함과 함께 다섯 자루의 칼, 세 개의 비표가 어지럽게 뒤섞였다. 챙! 챙! 챙! 챙! 챙! 고막을 찢는 쇳소리, 도광(刀光)과 불꽃이 난무하며 탁자와 의자가 순식간에 박살났다. 피아를 구분할 수 없는 도영(刀影) 속에 군웅들은 일순 붉게 치솟는 손그림자를 발견했다. 그와 동시에 북을 치는 듯한 둔중한 소리... 펑! 펑! 감강의 명 채주와 수강의 신 채주가 신형을 비틀거리며 도막(刀幕)밖으로 튕겨났다. 비표를 든 신강의 전 채주는 빳빳하게 굳어 있었고 요강의 하 채주도 선자리에서 비틀거렸다. 툭! 홍관연의 손에서 감산도가 떨어지는 소리였다. 그의 목에는 그의 목 굵기만한 귀두도가 달라붙어 있었다. "크악!" 비명은 주원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이었다. 모두 군웅들이 호흡을 들이킬 동안 벌어진 일! 요강 하 채주의 눈동자가 풀렸다. "웩!" 그가 한 사발의 피를 쏟았다. "홍운산수... " 그가 피를 닦으며 중얼거렸다. "맞소! 홍운산수이외다!" 신강의 전 채주도 넋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비표를 든 채 빳빳하게 굳어 있던 그의 손이 풀어지며 이제는 벌벌벌 떨렸다. 감강의 명 채주, 수강의 신채주도 망연해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너무 놀라 입을 타고 내리는 피가 가슴을 붉게 적시고 있는 것 조차 몰랐다. "그랬었군!" 총채의 황룡당주가 탄식을 터뜨렸다. "무일, 형님이 철경의 무공을 사용할 줄이야." 이만의 얼굴에는 어디에도 장난기가 보이지 않았다. "강하군. 강해... 내가 생각한 배 이상이야." 그가 담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 " 담향의 귀에는 이만의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위무일의 얼굴에 붙박여 있었다. 총채의 수하들을 비롯해 채주들은 비로소 마타룡이 그렇게 강할 수 있었던 이유를 확인했다. 사실 위무일이 철경을 익혔다는 사실은 그 외에는 아무도 몰랐다. 만로방은 몇 명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철경에 실린 무공을 견식한 후, 모두 명을 달리한 터였다. 물론 위무일의 무위에 가장 놀란 자는 홍관연이다. 홍관연은 위무일의 칼날 아래 태연한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담청의 입가에 찰나의 미소가 담겼다. 그녀가 이내 표정을 냉랭히 하며 위무일과 홍관연을 향해 다가갔다. "영주, 그만 칼을 거두세요." 담청이 위무일에게 청한 후 홍관연을 마주보고 섰다. "홍 채주, 이럴 의사는 영주도 없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사과 드리겠습니다." 그녀가 홍관연에게 정중히 머리를 숙였다. "이런 상황에서 같은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은 예의가 아닌 줄은 아나... 묻겠습니다! 만로방과 손을 끊겠다는 것을 믿어도 되겠습니까?" " .... " 홍관연은 이를 악물었다. 치욕스럽지만 담청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눈을 감고 입을 떼려 할 때였다. 팟! 먹물이 창호지에 쫙 뿌려지듯 핏물이 담청의 옷에 비스듬히 뿌려졌다. 퓨! 퓨! 퓨! 그와 동시에 홍관연의 목에서 붉은 수막이 치솟았다. 툭! 떨어져 내리는 홍관연의 목... 다행스럽게 그의 눈은 감은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 .... " 담청은 너무 놀라 피의 수막이 그녀의 옷을 더럽히고 있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털썩! 홍관연의 몸이 무너지자 비로소 담청의 아미가 치켜 올랐다. "무슨 짓이에요?" 그녀가 앙칼지게 소리쳤다. 그녀는 원래 위무일의 힘을 이용 채주들에게 총채의 위용을 과시할 뜻 이상은 없었다. 뜻한 대로 된다면 그런 후, 채주들을 달래 총채의 그늘에 감쌀 생각이었다. 하지만 위무일의 악랄한 출수로 인해 채주들의 반감만 더 살 형편이었다. "홍 채주가 만로방과 손을 잡은 것은 일 년이에요! 하지만 장강을 위해 일 한 것은 십 년이 넘어요. 목을 잘라야 할만큼 홍 채주가 잘못이 있나요?" 담청이 얼굴까지 붉히며 화를 냈다. "이전 호반영채의 역사(歷史)는 아버지의 역사! 나는... 호반영채는 영채와 뜻이 다른 자를 동도로 생각지 않는다." 위무일이 귀두도에 묻은 피를 닦았다. 그가 귀두도를 허리에 차고 발길을 옮겼다. 위무일이 내당을 나설 때였다. "멈춰라!" 최안이 그의 발길을 막았다. 비로소 무하 수채의 수하들이 위무일 주위를 둘러쌌다. "최 당주! 비키시오! 당신까지 죽이고 싶지는 않소!" 엽광이 소리쳤다. 최안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가 얼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홍 채주의 잘못은 나도 안다. 그러나 채주를 과연 죽이기까지 해야 했는지... 홍 채주는 호반영채에 죽임을 당할 만한 일을 벌였다. 그러나 그는 무하 수채의 채주다. 홍 채주는 죽일 수 있으나 무하 수채의 채주는 호반영채가 죽일 수 있는 자가 아니다. 그리고 채주가 죽고 외당당주, 총관이 죽었다. 이 치욕을 지고 살아날 용기는 나에게 없다!" 쩡! 최안이 칼을 빼 들었다. 무하 수채의 수하들도 일제히 창검(槍劍)을 번뜩이며 겹겹이 위무일과 엽광을 포위했다. 엽광이 난처한 표정으로 위무일을 바라보았다. 위무일이 귀두도를 까딱였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침묵이 흐르고 군웅들은 무하 수채에 질퍽하게 흐를 피를 연상했다. "어떻게 할까요? 태부인." 화룡대의 부대주, 정필이 호반영채를 도울까를 물었다. "내버려두세요!" 담청이 냉랭하게 소리쳤다. "채주, 오늘의 일은 전적으로 저의 책임입니다." 그녀가 신강의 전 채주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녀는 채주들을 위무하기에 바빴다. "태부인, 싸움이나 말려 주시오." 파양호 계의 채주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감강의 명 채주가 말했다. 최안의 눈은 한광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으나 쉽게 위무일을 공격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알았어요." 담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룡당주! 적룡당주!" 그녀가 눈짓을 했다. 두 당주들이 화룡대와 함께 포위망을 향해 달려갔다. 마타룡만 해도 감당하기 힘든 상대다. 무하 수채의 수하들이 우르르 달려오는 총채 수하들에 웅성댔다. 그들은 총채까지 나서 그들을 공격하는 줄 착각했다. 최안이 수하들의 동요를 눈치채고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가 칼을 곧추세우며 서둘러 일전을 벌이려 할 때였다. "최안!" 카랑한 목소리가 최안을 불렀다. "상 노야!" 최안이 금방 눈을 붉혔다. 내당에 돌연 모습을 나타낸 반백의 노인은 상확이었다. "수하들을 물러나게 하라." 상확이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최안이 미적거렸다. "무엇을 하는 게냐? 네놈이 저 살귀(殺鬼)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 한단 말이냐?" 상확이 위무일을 가리키며 고함을 질렀다. 최안이 분루(憤淚)를 삼키며 고개를 떨구었다. "소채주가 아직 계시지 않느냐? 네놈에게는 무하 수채를 지켜 나갈 책임이 있어." 상확이 중얼거렸다. 그가 목을 나뒹굴고 있는 홍관연에게 다가갔다. "채주, 누구를 원망하겠소. 당신의 명운이 그런데... " 상확이 떨어진 그의 목을 몸뚱이에 붙였다. "모두 돌아가시오!" 그가 손을 휙 저었다. "상 노야! 뭐라고 들일 말씀이 없습니다." 담청이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태부인, 우리는 당분간 수로연맹의 일에 손을 끊겠소이다." "수로연맹을 탈당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담청이 놀라 물었다. "장강의 물길은 끊이지 않고 이어져 있는데 어찌 우리가 수로연맹을 탈당하겠소? 동도들의 얼굴을 볼 낯이 없을 따름이오. 소채주께서 마타룡의 목을 벨 실력이 되는 날, 무하 수채는 장강에 모습을 보일 것이오." 상확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때까지 무하 수채가 장강에 행사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태부인께 맡기겠소. 수룡왕 어르신처럼 모든 일을 공평무사(公平無私)하게 처리해 주리라 믿소. 그만 가 주시오." 그가 홍관연을 보듬고 내당으로 걸어갔다. 담청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만 가시지요. 무하의 일은 이미 지난 일이니 이쯤하고 투함에서 채주들과 고견(高見)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제 더 이상 무슨 할 이야기가 있겠소. 나는 그만 돌아가겠소이다." 감강의 명 채주가 말했다. 다른 채주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위무일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투함을 향해 갔을 것이다. 채주들은 투함에서 다시 그의 얼굴을 볼 기분이 아니었다. "소집령은 무하의 일 때문에 내린 것만은 아니에요." 담청이 채주들을 붙잡고 늘어졌다. 그녀는 찜찜한 기분으로 채주들을 보낼 수 없었다. "호반영채의 뜻은 총채와 같소?" 요강의 하 채주가 느닷없이 물었다. "아마... 같을 거예요." 담청이 주저하며 말했다. 그녀는 하 채주의 물음의 진위를 알지 못했다. "그럼 우리 요강은 총채의 뜻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오. 나는 호반영채와 뜻을 달리할 용기가 없소. 허허허!" 하 채주가 자조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특별히 당부할 말씀이 계시다면 서신으로 뜻을 전해 주시오. 그대로 따르리다." 그가 담청에게 포권을 한 후, 휘적 무하 수채를 빠져나갔다. "홍운산수... 무하에는 안된 일이지만 수로연맹으로 보면 잘된 일인지도 모르지. 호반영주! 그로 인해 만로방에 대해서는 한 시름 들었으니... " 감강의 명 채주가 중얼거렸다. "노부도 이만 갈까 하오. 우리 감강도 요강의 신 채주와 생각이 다르지 않소. 춘절에 뵙겠소이다." 그가 포권을 했다. 수강의 신 채주, 신강의 전 채주도 포권을 했다. 휙! 그들이 장포를 휘날리며 삽시간에 무하 수채에서 사라졌다. '그렇군.' 담청은 하늘을 우러렀다. 만약 그녀가 채주들의 마음을 총채로 붙잡기 위해 왔다면 그녀는 그렇게 애 쓸 필요가 없었다. - 호반영채는 뜻이 다른 자를 동도로 생각하지 않는다. 위무일이 던진 한 마디! 그 말은 채주들의 머리 속에 홍운산수와 함께 깊이 뿌리 박혔을 것이다. 생각하면 주숙예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약한 자들은 힘의 그늘을 찾는다.' 담청이 이 말을 조금 더 깊게 생각했다면 그녀는 위무일을 비난하기 보다 호반영채와의 일체성(一體性)을 강조했을 것이다. 위로는 그 다음... 그러나 어쨌든 무하의 일은 이미 끝을 맺은 상태였다. 과정은 이상했지만 결말은 그녀가 만족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오라버니의 일 초식에 그 말 많던 채주들이 자신해서 무릎을 꿇었다.' 그녀가 자신의 옷에 묻은 피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너무 크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러나 어쨌든 지금은 잡아야 한다.' 담청이 입술을 깨물었다. "홍 채주를 죽여야 했습니까?" 엽광이 물었다. 그는 위무일의 동작에 반사적이다. 위무일이 홍관연의 목을 자르는 순간, 그도 주원의 목을 벴었다. 하지만 일이 끝난 지금 엽광은 무하를 난도질한 일이 마음에 걸렸다. 무하 수채는 어쨌든 같이 장강의 물밥을 먹던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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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앞으로도 같이 얼굴을 맞댈 자들이다. 동도를 씻을 수 없는 원수로 만든 셈이었다. " .... " 위무일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죽일 필요가 있었는가? 물론 죽일 생각까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