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앞으로도 같이 얼굴을 맞댈 자들이다. 동도를 씻을 수 없는 원수로 만든 셈이었다. " .... " 위무일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죽일 필요가 있었는가? 물론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 이준, 주원의 목을 자르는 것으로 무하의 일을 끝낼 참이었다. 그 정도면 장강에 마타룡의 귀환을 알리는 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담청! 그녀가 홍관연을 살려두리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의 귀두도는 참을 수 없는 살의(殺意)로 꿈틀거렸다. 순간적으로 그의 귀두도가 담청의 장식품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귀두도는 그래서 홍관연의 목을 갈랐다. 담청에게 끄달리는 자신의 마음에 대한 보상 심리로 홍관연의 목을 벴다고 생각하자 위무일의 마음은 더욱 씁쓸했다. "ㅉ! 어차피 한 명 정도는 본때를 보여줬어야 할 일이니... 홍 채주는 자신이 그 본때에 걸려들었음을 한탄해야겠지요. 그런데 채주들을 상대하는데 홍운산수까지 꼭 펼쳐야 했습니까?" "일전에 흉수가 벽부의 잔당일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기억하오?" "기억합니다." "그들이 철경을 노리고 호반영채를 불태웠다면 아직도 철경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겠지." "물론입니다." "그래서 철경을 내가 가졌음을 알리려 했소. 이번에 알려졌으니 철경에 관심이 있는 자는 나를 찾겠지." "철경이 영주의 손에 있는 것이 분명하군요." 엽광이 안광을 빛냈다. 위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조양인의 비급이 영주의 손에... " 엽광이 풀리지 않는 의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언젠가 알 때가 있을 것이오. 다만... 철경은 우연히 내 손에 들어온 것이 아니오." 휙! 위무일이 비운축영(飛雲逐影)으로 치솟아 투함으로 뛰어들었다. * * * 끼익! 다행히 선실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그녀는 선실로 들어서며 자물쇠를 걸었다. 교교한 월광(月光)이 선창으로 쏟아져 선실을 희미하게 비췄다. 한 개의 침상과 궤안이 전부인 좁은 선실이었다. 휙! 그녀는 선창으로 다가가 장막을 쳤다. 선실은 이내 깜깜해졌다. 삐꺽! 삐꺽! 들리는 것은 투함이 물결에 흔들리는 소리뿐... 그녀는 야안공(夜眼公)을 익히지 않았다. 그러나 달빛 속에 선실의 정경을 익혀둔지라 능숙하게 침상을 찾았다. 그녀가 고양이처럼 살짝 침상이 엉덩이를 걸쳤다. "오라버니, 그만 눈을 뜨세요." 그녀가 속삭였다. 침상에는 한 사내가 반드시 몸을 눕힌 채 누워 있었다. 위무일이었다. 그는 여인의 속삭임에도 꿈쩍을 않았다. 물론 위무일 같은 고수가 인기척에 잠을 깨지 않았을 리는 없었다. "실망하셨나요? 언니가 아니라서... 호호호!" 여인이 교소를 터뜨렸다. 그녀는 담향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고 있었죠. 오라버니와 언니가 옛날부터 사귀고 있었다는 것을... " 담향의 눈빛이 요기롭게 반짝였다. "어쩌면 백 오라버니도 알고 있었을 줄 모르죠. 아니 바보가 아닌 이상 틀림없이 알고 있었을 거예요. 내가 알 정도였는데. 오라버니를 의식해 일부러 관계를 모른 척 했을 거예요." 백 오라버니는 물론 전임 총채주, 백승명이다. "그렇게 따지면 백 오라버니와 언니는 정말 어울리는 한 쌍이지요. 의동생의 여자를 모른 척 차지한 남자! 그리고... 언니는 오라버니와 사귀면서도 항상 백 오라버니를 꿈꾸었을 거예요. 그래서 오라버니와 사귀는 것을 모두에게 비밀로 했겠죠." 담향이 침상에 오르며 위무일의 이불 속에 발을 넣었다. "기녀의 몸에서 난 천한 신분... 백 오라버니가 오르지 못할 나무로 보이지 않았다면 언니는 어쩌면 무일 오라버니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그녀가 이불 속에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어때요. 제 말이 틀렸나요?" 담향이 위무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위무일의 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그렇게 사랑은 무서운 거예요. 장강의 인의군자(仁義君子)로 알려진 백 오라버니가 의리를 외면할 정도로... 그리고 이미 한 번의 쓴맛을 경험했으면서도 떠나지 않는 남자가 있는 것을 보면... 그 여자는 이미 아이까지 있는데. 여자의 곁에 머무는 남자의 마음은 무엇이라 변명해도 크게 다르지 않죠." 담향이 가는 한숨을 쉬었다. "궁금하지 않으세요? 제자 어떻게 오라버니와 언니의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지... 저는 어릴 때부터 오라버니를 좋아했어요. 항상 눈길은 오라버니를 따라 다녔죠. 호호호!" 그녀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오늘 문득 무하 수채에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요. 오라버니는 무엇을 하기 위해 무하에 왔을까?" 그녀의 눈빛이 다시 요기롭게 빛났다. "오라버니는 혹씨 총채의 섭정(攝政)을 꿈꾸고 계신 것은 아닌가요? 그렇게 된다면 언니와도 자유롭게 만날 수 있겠지." 위무일이 번쩍 눈을 떴다. "장막을 걷어라." 그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담향이 침상에서 일어나 장막을 걷었다. 달빛이 다시 선창으로 쏟아져 선실을 비췄다. "저를 호반영채의 안주인으로 앉히는 것을... 생각해 보지 않았나요? 물론 이해해 줄 수 있지요. ...총채와 호반영채를 오가며 언니와 만난다고 하더라도... " 아무리 남녀의 상사에 대해 거리낌이 없는 그녀였지만 그말 만은 하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위무일이 담향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그가 담향의 가는 목을 잡았다. 담향이 위무일의 억센 손에 끌려 침상으로 쓰러졌다. '헉!' 담향이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위무일이 그녀의 젖가슴을 거칠게 움켜쥐었기 때문이다. 위무일은 한 손으로 담향의 젖가슴을 만지며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옷을 벗겼다. 달빛 속에 그녀의 어깨가 드러나고 젖가슴이 드러나고 배꼽과 그 아래로 이어진 뽀얀 둔덕이 드러났다. 위무일이 거칠게 담향의 치마끈을 잡아갈 때였다. 담향이 위무일의 손을 잡았다. 위무일은 그녀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담향의 저항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겹겹이 둘러싼 치마가 벗겨지고 마침내 그녀는 달빛 속에 알몸을 드러냈다. 위무일은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신(裸身)을 샅샅이 훑는 위무일의 눈길에 담향이 눈을 감았다. 위무일의 손이 담향의 부드러운 굴곡을 타고 흘렀다. 그의 손이 수풀을 지나 화구(火口)로 스며들자 담향은 도톰한 엉덩이를 파르르 떨었다. 화구 속으로 잠적한 위무일의 손은 좀체 나올 줄을 몰랐다. 다른 한 손만 부지런히 담향의 젖가슴, 여기저기를 누비며 그녀의 하얀 살결에 붉은 화인을 만들었다. 위무일은 정사(情事) 경험이 많지 않다. 그러나 그는 서둘지 않았다. 일다경이 흘렀을까? "음.... " 담향의 입에서 교성이 터졌다. 화구 속에 숨어 들어간 위무일의 손을 거세게 압박하던 그녀의 가랑이도 느슨하게 힘이 풀렸다. 위무일의 손놀림은 점차 거칠어 지고 빨라졌다. 담향이 터져나오는 신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가랑이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먹이 드나들 정도의 여백으로 벌려진 상태였다. 어느 순간, 위무일의 손이 뚝 멈추었다. 그가 땀과 애액으로 끈적한 손을 담향의 구릉에 닦았다. 그리고 그는 옷을 벗었다. 옷을 침상 한 편에 곱게 벗은 후, 위무일은 담향의 몸에 자신의 몸을 포갰다. 담향이 아미를 꿈틀댔다. 아직 위무일이 삽신(揷身)을 하지 않았는데도 담향의 쾌감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토록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위무일이 담향을 한치의 틈도 없이 옭아맸다. 그가 허리를 밀어붙이며 담청의 비부(秘部) 속을 천천히 전진했다. "으응... " 담향은 치솟는 열기로 머리 속이 폭발할 지경이었다. 그녀가 위무일의 목을 거세게 끌어안으며 매달렸다. 위무일이 허리를 꿈틀대며 풍랑을 일으켰다. 그라고 해서 젊은 날의 대화가 별 달랐으랴? 여자를 기쁘게 해 줄 방중(房中)의 기술 한두 가지쯤은 알고 있는 그였다. 그러나 위무일은 단조로운 진퇴만을 반복했다. 체위(體位)도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담향의 영육(靈肉)은 이미 다른 세계를 걷고 있었다. 좋아하던 사람의 몸이 자신의 빈 곳을 채우고 꿈틀되고 있다는 사실, 그 사실만으로 그녀의 흥분은 최고조였다. 그런 것을 보면 최고의 방중술은 사랑이 분명 한 터! "으응... 응... 흑! 흑! 흑!" 담향의 교성은 한 시진을 넘기자 흐느끼는 소리로 바뀌었다. 위무일은 담향의 얼굴이 눈물로 젖고, 도톰한 엉덩이가 애액으로 젖고, 젖가슴이 그의 땀방울로 번들거릴 때까지 처음의 자세 그대로 담향을 공격했다. 위무일은 침상에 기대 옷을 걸치는 담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 화인. 정사의 흔적을 그녀의 옷은 쉽게 감추어 주었다. 헝클어진 머리칼을 곱게 쓰다듬자 담향은 처음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머리를 틀어 올려야 하나요?" 담향이 머리를 매만지며 물었다. 위무일은 대답 대신 침상에 누웠다. "다시 묻겠어요. 저는 호반영채의 안주인의 자격이 있나요?" " .... " 위무일은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갑자기 공허함이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는 그 공허함을 떨치기 위해 담향의 치마 속에 다시 손을 넣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살결이 그를 반겼다. 담향이 아미를 찌푸렸다. "어머니와 오라버니께 청해 매파(媒婆)를 보내도록 하겠어요." 그녀가 엉덩이를 빼며 말했다. 위무일이 담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첩이라도 좋다면!" 담향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누구예요?" 그녀가 독살스럽게 물었다. " ..... " "설마 언니를... 언니와 함께 야반도주라도 할 생각 인가요?" 담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원래 혼인을 결심한 여자가 있다." 위무일이 무심하게 말했다. "누구에요?" "때가 되면 알 것이다." " .... " 담향이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떨구었다. "언제쯤 알 수 있을까요?" 그녀가 풀 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곧!" 위무일은 눈을 감았다. 선창 밖으로 뿌연 물안개가 꿈틀대며 피어오르고 있었다. 제 10 장. 파양호( 陽湖). 투함은 역풍(逆風)을 받아 빠른 속력을 내지 못했다. 사공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를 저어야 했다. 종우상과 정필이 교대로 야간 당직(當職)을 섰다. 천지를 구분할 수 없는 안개! 해가 뜨면 곧 사라질 물안개였다. "좌우의 배들과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해라!" 종우상이 조타수(操舵手)에게 소리쳤다. 당직으로 하룻밤을 꼬박 세운 후라 어깨가 뻐근했다. 그가 어깨를 두드리며 선수로 향했다. ㅊ! ㅊ! 투함은 파양호를 지나고 있었다. 원강은 총채에 잠시 들렀다가 가기로 했다. 무하 수채에서 일어난 불시의 사태에 채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담청의 생각 때문이었다. 종우상은 선수에 발을 올렸다. 뿌연 물안개 속으로 가는 빛줄기가 보이는 듯도 했다. 종우상은 길게 숨을 들이셨다. 근 몇 년간 그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집법당주! 수룡왕이 맡긴 법장(法杖)으로 장강의 율법(律法)을 지켜야 할 자가 그였다. 그러나 힘의 푯대 위에 나부끼는 법장과 율법! 종우상은 법장을 가지고 다니지 않은지 오래였다. 무하 수채에서는 장강의 율법을 말할 틈도 없었다. '소주인이 총채주가 되면 모든 것이 끝나는가? 소주인이 실질적으로 총채주의 권한을 행사하기까지의 세월은 최소한 이십 년! 그 동안 어차피 태부인이 총채를 책임져야 하겠지.' 물안개가 점차 옅어져 갔다. '하지만 태부인으로는 총채를 이끌기 힘들다.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인가? ....마타룡!' 종우상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나 무하 수채에서 보았듯이 태부인은 그를 감당할 능력이 없다. 그래도 태부인은 그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떻게 될 것인가? 너무도 뻔한 결과! 종우상의 눈에 힘의 축이 호반영채로 기우는 것이 보였다. '두 명의 상전을 모셔야 할 날도 멀지 않았겠군.' 그가 실소를 흘렸다. 그는 그 같은 예측이 자신만의 예측으로 끝나기를 바랄 따름이었다. 실질적은 권능은 호반영채가 가지고 총채는 얼굴만 내미는 상황을 그는 원하지 않았다. 마타룡이 무부(武夫) 이상의 야심을 가지지 않으면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 같은 기대는 가지지 않는 것이 좋을 듯... 마타룡은 젊다. 그를 견제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마당에서 마타룡이 권력의 맛을 쉽게 포기할까? '상황이 그 같이 흘러갈 가능성을 주 전주나 태부인은 염려하지 않고 있을까?' 종우상은 최소한 주숙예는 예측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주숙예도 그도 이미 비슷한 경험을 치렀기 때문이다. 수룡왕이 죽고 전임 총채주가 총채주의 자리에 갓 올랐던 잠깐의 동안 그 같은 일이 일어났었다. 그때 실질적으로 총채의 일을 처리한 자는 단심호였다. '단심호 어른은 충정으로만 뭉쳤던 분! 하지만 마타룡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마타룡을 총채의 곁에 두려함은... 소주인! 소주인을 총채주에 앉혀야 할 절박함 때문!' 그가 미간을 좁혔다. '반드시 채주들에게만 잘못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태부인의 야심이 없었다면 장강은 평온을 찾고 있을 지도 모르지.' 그는 알고 있었다. 태부인의 무하 출행이 만로방과의 관계 때문만이 아니라 소주인의 총채주 옹립을 위한 포석 때문임을... 종우상은 그 태부인의 야심에 합류하는 총채 당주 급 이상의 자들 생각이 옳은가에 대해 다시 회의했다. '금 사강의 천 공자! 그가 총채주가 된다면 수로연맹은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인가? 물론 혼란이야 있겠지. 그러나 그 혼란은 길어야 이삼 년... 천 공자라면 그 혼란을 더 단축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뱃전을 손끝으로 툭툭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백씨가 아닌 자가 총채주가 됨으로써 일어날 혼란을 총채에서는 과장되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종우상은 판단했다. '수룡왕과 전임 총채주가 살아 계시다면 소주인과 천 공자 중 누구를 총채주의 자리에 앉힐까?' 아무래도 무게는 천 공자 쪽으로 더욱 실렸다. 수룡왕과 전임 총채주는 대의(大義)를 아는 사람이다. '천 공자를 후임으로 임명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소주인에게 매달리는 이유는... ' 종우상이 눈을 감았다. 당주 급 이상의 자들이 소주인을 총채주에 옹립시키기 위해 조력(助力)하는 이유는 실상 수룡왕과 전임 총채주에 대한 충정 때문이다. 종우상이 아는 한 아마 장능은 실제로 그런 마음으로 태부인을 조력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자들의 마음도 그렇게 붉은가? 종우상은 장담하지 못했다. '천 공자가 총채주가 되면서 일으킬 총채 내부의 파란! 나는 그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지금이 가장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가 쓴웃음을 흘렸다. 천화인에게 머리를 숙이고 천화인이 일으키는 변화의 바람만 맞으면 된다면 굳이 천화인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천화인의 뒤에는 금사강의 노물(老物)이 있다. 그리고 그를 총채주에 앉히는데 일조한 대강의 채주들... 천화인이 총채주가 된다면 총채의 수하들은 그들이 일으킬 바람까지 고스란히 짊어져야 할 판국이었다. '장강을 누비던 총채의 수하들이 일개 수채의 채주들에게까지 눈치를 보아야 할 상황... ' 종우상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그런 누추한 일들에 휘말려 들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그런 생각 때문에 소주인을 총채주에 앉히는데 열을 올리고 있는지는 그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어쨌든 그 같은 생각 때문에 소주인을 총채주에 앉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마타룡의 행로도 당분간 모른척 하려 했다. '주 전주도 마타룡은 차선의 선택이라고 했다. 소주인이 총채주의 자리에 오른 후면 또 달라지는 것이 있겠지. 태부인과 주 전주에게 생각이 있을 것이다.' 종우상이 어깨를 폈다. 빛살은 제법 밝아 이제 시야(視野)는 삼 장여 정도로 가뭇하게 열렸다. 그가 새벽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좌우를 두리번거릴 때였다. ㅊ! ㅊ! 먼저 그의 귓가에 울린 것은 노 젓는 소리였다. '이 새벽에 누가... ' 종우상이 미간을 좁혔다. 그가 전면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고개를 뺐다. 좌측 투함에 탄 황룡당주도 선수를 오르는 게 보였다. ㅊ! ㅊ! ㅊ! 노 젓는 소리는 점차 커졌다. 한 두 척의 배가 아니었다. "종 당주! 그곳에서는 보입니까? 누구요?" 황룡당주가 고함을 치며 종우상에게 물었다. 종우상이 고개를 저으며 눈을 더욱 부릅떴다. 순간, 그가 미간을 좁혔다. 물안개 속으로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작고 날렵한 배였다. '비익선(飛翊船)!' 승선(乘船) 할 수 있는 인원은 고작해야 십 명! 그러나 빠르기는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배였다. 종우상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낄 때였다. 비익선들이 일제히 노를 멈추고 날개형으로 도열했다. 순식간에 형체를 잃은 물안개로 드러나기 시작한 비익선의 수는 무려 이십 여척에 가까웠다. 일에 대한 반사는 역시 칼을 들고 전장(戰場)을 뛰어다닌 황룡당주가 빨랐다. "적이다! 일어나라!" 그의 고함이 짜랑하게 파양호를 울렸다. "적이다!" 종우상도 고함을 질렀다. 그가 고함을 치며 허겁지겁 선실을 향해 달려갔다. 담청에게 위험을 알려야 했다. 그때였다. 피핑! 핑! 핑! 쇠뇌 날아가는 소리가 날카롭게 파양호를 울렸다. 그와 동시에 흩어져 가는 물안개 속에 불꽃들이 춤을 추며 투함으로 달려들었다. 쾅! 쾅! 쾅! "으악!" "악!" 투함에 불꽃이 일며 수하들의 비명이 요란했다. 투함은 불길에 휩싸인 채 비익선을 들이박으려 선수를 꿈틀댔다. 그러나 이십 여척의 비익선은 투함의 움직임을 따라 진퇴를 거듭하며 거리를 허용하지 않았다. 피핑! 핑! 달려드는 투함을 반기는 것은 현란한 불꽃뿐! 우직끈! 적룡당의 무사들이 탄 배의 돛이 불길이 휩싸인 채 쓰러졌다. "배를 강안(江岸)으로 대라!" 화염(火焰)을 견디지 못한 종우상이 결국 후퇴를 명했다. 투함이 삐꺽거리며 선수를 틀었다. 그 뒤를 거머리 떼처럼 비익선들이 달려들며 신화전(神火箭)을 쏟아 부었다. 비익선의 뒤에는 쾌선이 한 척 떠 있었다. 선수에 선 자는 만로방의 총사 서문중과 탕백기주 여맹이었다. "성능이 어떨까를 걱정했는데 쓸만하군. 껄껄껄!" 서문중이 신화전을 들고 호탕하게 웃었다. "어쨌든 대단하십니다. 물안개가 걷힐 시간을 정확히 예측하지 못했다면 기습의 효과도 반으로 떨어졌을 것입니다." 탕백기주 여맹이 찬사를 보냈다. "껄껄! 이 정도도 예측하지 못한대서야 어찌 총사라고 할 수 있겠소? 자! 우리도 슬슬 움직여 봅시다." 서문중이 화신전을 들었다. 쾌선이 비익선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애석한 것은 놈들이 너무 일찍 움직였다는 것이오. 갈대가 말라 있을 때라면 화계(火計)로 놈들을 모두 불태웠을 텐데. 어쨌든 보갑대의 피해는 면하기 힘들 것 같소." 서문중이 혀를 찼다. 그들이 비익선의 꼬리를 십 여장 정도 따라붙었을 때였다. 활! 활! 활! 불길 속에 투함이 기우뚱거렸다. "여 기주, 신화전을 날리는 것은 보갑대에게 맡기고 비익선에 탄 자들에게는 겸도와 장창을 준비하라 하시오." "알겠습니다!" 여맹이 쾌선의 망루(望樓)에 선 자를 향해 깃발을 흔들었다. 여맹의 신호를 받은 수하가 제 키만한 깃발을 펄럭였다. 차장! 창! 비익선에 탄 자들이 일제히 신화전을 날리던 연노를 놓고 장창과 겸도를 잡아갔다. 피핑! 핑! 그러나 신화전의 불꽃 세례는 멈추지 않았다. 신화전이 날라오는 것은 이번에는 갈대 숲 사이였다. "철기대!" 서문중이 소리쳤다. 여맹이 신호를 보내고 망루에 선 수하가 다른 깃발을 흔들었다. 투두두두두! 어디서 나타났는지 한 떼의 기마가 아슬한 햇발 속에 흙먼지를 일으켰다. 만로방 철기대 소속의 무사들이었다. 그들이 투함이 불타고 있는 강둑을 따라 천천히 포진했다. "요로는 각 행회가 막고 있을 터고... 자!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 봅시다." 서문중이 화신전을 힘차게 들었다. 투함은 크게 한 번 기울더니 옆으로 서서히 쓰러지기 시작했다. 호변에 닿기도 전이었다. 호변까지의 거리는 칠팔 장여... 그러나 화염에 휩싸여 더 이상 투함에 머물래야 머물 수도 없었다. 하지만 투함에 탄 무사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화룡대! 그들은 담청을 둘러싸고 기우는 투함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다른 투함의 사정은 달랐다. 첨벙! 첨벙! 황룡당, 적룡당의 무사들은 파양호에 몸을 던져 각개 약진으로 호변을 전진해 가고 있었다. 피핑! 핑! "으악!" "악!" 그들 머리 위로 새까맣게 쇠뇌가 달려들고 있었다. 담청이 이를 악물었다. 강둑에 도열한 적들과 갈대 숲의 매복을 알고 있었지만 투함에서 뛰어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여기를 벗어나도록 해요." 그녀가 종우상과 정필에게 명을 내렸다. "태부인께서 내릴 것이다. 저쪽에서 대열을 갖추어라!" 정필이 화룡대의 수하들에게 수심의 한 곳을 가리켰다. 첨벙! 첨벙! 삼십 여명의 화룡대 무사들이 일제히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한 가지 다행한 일이 있다면 장강 수채의 수하들은 모두 수중 공부에는 일가견이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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