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장풍파랑 - 21편 (21/61)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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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장풍파랑 - 21편 (2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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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물 속에서도 대열을 유지한 채 담청이 뛰어내리기를 기다렸다. "태부인께서 저쪽으로 오를 것이다.
황룡당, 적룡당의 무사들은 모두 저쪽으로 나아가라!" 종우상이 고함을 질렀다.
그는 황룡당, 적룡당, 무사들을 먼저 동원 담청이 뭍으로 오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 했다.
그러나 황룡당, 적룡당의 무사들은 빗발처럼 쏟아지는 쇠뇌를 피하느라 종우상의 명이 들릴 리 없었다.
황룡당주와 적룡당주만이 몇 명의 수하들을 이끌고 종우상이 가리키는 곳으로 자맥질 해 갈 뿐이었다. "크악!" "으악!" 그 사이, 파양호는 총채 수하들의 피로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만로방의 움직임에 너무 경솔했다.' 담청이 아미를 찌푸렸다. "태부인,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종우상이 그녀를 재촉했다. "부대주, 먼저 내려가시게.
태부인은 내가 모시겠다!" 그가 고함을 쳤다.
정필이 물 속으로 신형을 날렸다.
순간, 꽝! 선실문이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엽광이 두 개의 문짝을 들고 나타났다.
휙! 그가 문짝을 호반 위로 내던졌다. "영주, 오르십시오! 그리고 태부인도!" 엽광이 소리쳤다.
풍덩! 그가 먼저 물 속에 몸을 날려 문짝을 잡았다. "아남, 이 여자와 함께 저곳에 타라." 위무일이 담향을 가리키며 산고에게 말했다.
산고는 묵묵히 서 있기만 했다. "무엇 하는 게냐? 이러다가 타 죽겠다!" 이만이 창백한 안색으로 서 있는 담향의 손을 잡고 냅다 몸을 날렸다.
이만과 담향이 잠시 물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이만은 담향을 문짝에 기어오르게 한 후, 자맥질을 하며 문짝의 한 귀퉁이를 잡았다.
콰르르르...
투함이 물 속으로 쓰러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늦으면 같이 빨려 들어갑니다!" 종우상이 소리쳤다.
순간, 위무일이 담청과 산고를 각기 한 팔에 안았다.
휙! 그가 신형을 날렸다.
위무일은 두 명의 여자를 안고도 물살 하나 흔들리지 않은 채 문짝에 내리 섰다.
그러나 문짝은 곧 세 사람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꾸르륵 잠겼다.
첨벙! 위무일이 물 속으로 뛰어들고 엽광은 문짝을 받쳤다.
그 순간, 종우상도 파양호의 수심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빨리!" 종우상이 손짓으로 전진을 명했다.
콰르르르르...
투함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가라앉고 있었다.
정필의 화룡대가 산(山) 모양으로 담청을 호위하며 물살을 헤쳤다.
그들이 다급히 삼장 여를 헤엄쳐 갔을 때였다.
크르르...
투함이 용두(龍頭)만 남긴 채 마지막 비명을 질렀다. "으악!" "악!" 적룡당주 염정(廉正)은 수하들의 비명에 고개를 돌렸다.
아직 물 속을 허우적거리고 있던 수하들이 비익선에서 던지는 겸도와 장창에 수중 고혼(孤魂)이 되고 있었다.
염정의 머리 속에 단도의 일전이 떠올랐다.
그때 그는 묵룡당의 최고 향주로 일전에 참가했었다.
쫓겨다니기는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때는 머릿수에서는 그렇게 밀리지 않았었다.
그리고 퇴로까지 막은 매복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탕백기, 철기대, 그리고 갈대 숲에 숨어 있을 자들...
그에 비해 총채의 머릿수는 황룡당, 적룡당, 화룡대 모두 합쳐 백 여명도 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반수는 이미 유명을 달리 한 터였다. '살아 남는다면 장강 최고의 영예가 주어지겠군.' 적룡당주 염정이 입술을 깨물었다.
철벅! 철벅! 그의 앞에는 황룡당주가 네댓 명의 수하들을 이끌고 달려가고 있었다.
물은 이미 무릎까지밖에 닿지 않았다.
챙! 챙! 챙! 그가 서둘러 황룡당주를 뒤따르며 허공을 날아오는 쇠뇌를 쳐냈다.
파양호의 갈대 숲은 넓다.
풍부한 수량(水量)과 여름날의 햇발을 듬뿍 받았던 갈대는 밀림이었다.
먼저 그 갈대의 밀림 속으로 발을 들인 자는 황룡당주 조신환(趙新煥)이었다.
그가 수하들과 함께 자세를 낮추며 담청이 오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갈대 숲에 가려서 인지 더 이상 쇠뇌의 공격은 없었다.
그가 잠시 한숨을 쉬며 머리칼을 줄줄 타고 흐르는 물을 닦을 때였다.
파팍! 갈대가 갈라지며 한 무리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신갑(護身甲)을 착용한 십 여명의 무사들이었다.
조신환은 그들과 몇 번 싸워 본 적이 있었다.
만로방의 보갑대! "쳐라!" 보갑대의 조장쯤 되어 보이는 자가 고함을 질렀다.
그들이 갈대 숲을 질퍽이며 달려와 창칼을 번뜩였다.
조신환이 장도를 휘두르며 그들에게 맞서 갔다.
챙! 챙! 챙! 질퍽한 수렁, 조신환과 보갑대는 말 그대로 이전투구(泥田鬪狗)로 뒤섞였다. "이놈들이!" 적룡당주 염정이 합세했다. "크악!" "칵!" 재수없게 두 당의 당주가 담청을 기다리던 곳에 매복해 있던 보갑대의 수하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만로방의 첫 희생자들이었다. "별 것 아닌 놈들이... " 염정이 쓰러져 있는 보갑대의 시신을 발로 찼다.
그때였다.
핑! 핑! 핑!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쇠뇌가 다시 허공을 덮었다.
조신환과 염정이 황급히 산개했다. "억!" 새떼처럼 날아들던 쇠뇌는 결국 적룡당의 수하 한 명을 꿰뚫고 난 후에야 멈춰졌다. "젠장!" 염정이 이를 갈았다.
만로방이 어떻게 공격해 올지 이 한 번의 공격으로 염정은 눈치챘다.
갈대 숲에는 보갑대가 숨어 호시탐탐 기습을 노리고 철기대는 강둑 높은 곳에서 갈대가 움직이는 곳에 쇠뇌를 집중적으로 퍼부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갈대 숲을 뚫고 강둑에 포진하고 있는 철기대를 무너뜨려 활로(活路)를 찾아야 했다. "퇘!" 염정이 침을 뱉으며 파양호로 고개를 돌렸다.
호변과는 단 몇 장의 거리...
비익선도 바짝 뒤쫓고 있었다.
하지만 물살을 가르고 있는 태부인과 화룡대의 움직임은 굼뜨기 그지없었다.
비익선이 호변에 포진하기 전에 서둘러 갈대 숲을 빠져나가야 할 판국인데도... "저! 꾸물거리는 꼴들하고.
담 대주가 근자에 술에 취해 화룡대의 훈련을 게을리 하더니...
기회가 있다면 화룡대에 대해 단단히 따져야겠소!" 염정이 조신환에게 내뱉듯이 말했다.
파양호의 물결은 햇발 속에 사금(砂金)처럼 반짝였다.
철벅! 종우상이 일부러 크게 물소리를 냈다.
빨리 가자는 신호였다.
사실 대열이 꾸물대는 이유는 위무일 때문이었다.
그는 담청과 산고, 담향을 실은 문짝이 빨리 뭍으로 오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위무일을 재촉할 수 없었다.
모든 생명의 반은 이미 위무일이 지고 있었다. "서둘러야 합니다.
비익선의 놈들까지 뭍으로 합류하면 갈대 숲을 빠져나가기가 정말 힘들 것입니다." 정필이 종우상에게 말했다.
물론 정필의 말은 위무일이 들으라고 한 말이다.
그러나 위무일은 행보를 서둘지 않았다.
ㅊ! ㅊ! 비익선은 점점 거리를 좁혀 왔다.
뭍까지의 거리는 이 장여, 비익선까지는 삼사 장! 찰칵! 비익선에 탄 자들이 노(弩)에 화신전 대신 쇠뇌를 장착할 때였다.
위무일이 담청과 산고, 담향을 실은 문짝을 세차게 밀었다. "앗!" 담향이 쓰러질 듯 몸을 기우뚱거렸다.
문짝은 뇌전을 방불케 하는 속도로 뭍으로 나아갔다.
순간, 위무일은 문짝을 밀어젖힌 힘의 반동을 이용 잉어처럼 치솟았다.
허공에서 몇 방울의 물이 빛살을 받아 화려하게 반짝였다.
그리고 위무일의 신형은 물방울이 파양호로 떨어지기도 전에 수심 속에 사라지고 없었다. "영주!" 엽광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물 속으로 빠져들어간 위무일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파문(波紋)만이 그가 물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증명할 따름이었다. "태부인!" 담청을 태운 문짝이 뭍으로 도착하고 황룡당주와 적룡당주가 그녀를 맞을 때였다.
ㅊ! 비익선의 배후에서 물기둥이 치솟았다.
그와 함께 햇발과 더불어 찬란하게 쏟아지는 빛살! "크악!" "악!" 튀는 물방울, 치솟는 피, 번쩍이는 도광이 장면의 화려함을 더했다.
불시에 위무일의 공격을 받은 자들은 겸도와 장창으로 위무일에 맞서갔다.
그러나 그들의 출수는 당랑거철(螳螂拒轍)에 불과했다.
좁은 비익선, 귀두도의 널찍한 도신, 한 번의 출수에 두 개의 머리통이 하늘로 치솟았다.
비익선의 일전은 너무도 간단했다.
파양호의 물이 붉게 물들며 시신들이 물 속으로 하나, 둘 가라앉았다.
찰랑! 찰랑! 흔들리는 비익선 속, 위무일은 한가롭게 귀두도에 묻은 피를 털었다.
찰라지간에 벌어진 일! 미세한 물방울은 아직도 허공에서 반짝였다 서문중은 머리칼이 곤두섰다. "이놈이!" 그가 긴 대롱을 장치한 특이하게 생긴 노를 당겼다.
따닥! 탁! 콩 볶는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것은 흑두(黑豆)처럼 생긴 구슬이었다.
연주노(連珠努)! 신화전과 함께 서문중이 공방에서 공을 들여 만든 기병(奇兵)으로 한 번에 여섯 일곱 개의 구슬이 나가도록 만들어진 병기였다.
쇠뇌 정도는 간단히 쳐 낼 수 있는 위무일이었다.
그러나 연주노에서 쏟아지는 구슬은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
연주노를 발사한 자는 서문중 뿐만이 아니었다.
따닥! 탁! 타닥! 서문중을 따라 쾌선에 도열한 자들이 연주노를 쏘았다.
묵빛을 자랑하며 달려드는 구슬...
첨벙! 위무일의 신형이 다시 파양호의 수심 속으로 사라졌다.
초가을의 하늘은 푸르렀고 물 빛깔도 푸르렀다.
배 밑바닥을 아무리 살핀다고 하더라도 마타룡의 기습을 막아내기가 용이하지 않았다.
그리고 물은 타룡의 본향(本鄕)! "여 기주, 비익선을 뭍으로 전진하게 하시오! 노리는 목표는 마타룡이 아니라 저기에 있는 놈들! 삼로(三路)의 보갑대에게도 집결 공격을 명하시오!" 서문중이 담청 등을 가리키며 여맹에게 고함을 쳤다. "전진을 명하라!" 탕백기주 여맹이 소리쳤다.
망루의 깃발이 초가을의 햇살 아래 다급히 흔들렸다.
파팟! 비익선이 얼음을 타듯 호반에 미끄러지며 뭍으로 전진했다. "크악!" "카악!" 그 사이, 또 한 척의 비익선이 뒤집어지고 있었다.
서문중이 발을 굴렀다.
역공(逆攻)은 정말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크악!" "악!" 또 한 척의 비익선이 뒤집어졌다.
그러나 반 무릎을 꿇고 담청을 호위하고 있는 황룡당주 조신환과 적룡당주 염정은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아직 비익선의 수는 많았다.
그들은 쏜살 같은 속도로 뭍으로 진격해 오고 있었다.
종우상과 정필의 화룡대가 옷에 묻은 물을 털며 다가왔다. "산개 하시오!" 조신환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니나 다를까 철기대들이 군집되어 있는 총채의 대형을 향해 빗발치듯 쇠뇌를 쏟아 부었다.
다행히 철기대는 화신전을 모두 사용한 모양이었다. "크악!" 정필이 다급히 화룡대를 좌우로 분산시켰으나 쇠뇌에 서너 명의 수하들을 잃는 것을 면치 못했다. "종 당주, 우측의 화룡대는 종 당주께서 맡아 주시오!" 정필이 머리를 낮추며 소리쳤다.
종우상이 머리를 끄덕이며 우측의 화룡대를 호변을 따라 길게 배치시켰다.
담청을 둘러싸고 좌측은 정필, 우측은 종우상, 중앙은 조신환과 염정이 포진했다.
엽광과 호반영채의 수하들은 담청을 둘러쌌다.
그들이 비익선과의 한 판 승부를 생각하며 호반으로 신경을 곤두세울 때였다.
사삭! 싹! 갈대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히 들렸다.
갈대는 마치 여러 마리의 대망(大 )이 다가오는 듯 물결처럼 갈라지고 있었다.
갈대에는 총 사로(四路)의 보갑대가 숨어 있었다.
그들은 이합집산(離合集散)을 자유로이 할 수 있는 편재로 짜여져 있었고 집결 공격을 하는 자들은 삼로의 보갑대였다.
보갑대들은 비익선이 뭍에 닿는 시간과 맞추기 위해 속도를 조절하며 전진했다.
피핑! 핑! 그 틈을 노리고 또 한 차례 철기대들이 쇠뇌를 퍼부었다.
타닥! 탁! 탁! 서문중이 탄 쾌선에서도 연주노로 철기대의 시위를 화답했다.
당주들과 정필은 쇠뇌와 구슬을 피하며 대형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크악!" "칵!" 위무일은 네 번째, 비익선을 공격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비익선에서의 반격이 만만치 않았다.
수심은 가슴 어림까지 낮아져 있었다.
공격을 받은 자들이 물 속으로 뛰어들며 겸도와 장창을 번뜩였다.
챙! 챙! 챙! 위무일이 물살을 휘저으며 그들을 쓸어갔다.
그가 공격하고 있는 비익선에 탄 자들을 상대로 귀두도를 휘두르는 동안 나머지 비익선들은 죽어라 뭍으로 나아갔다.
수심은 낮아져 이제 웬만하면 비익선에서 뛰어내려 위무일을 공격할 만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철저히 위무일을 외면했다.
비익선에 탄 자들은 만로방의 정예, 탕백기다.
그들은 마타룡의 악명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고 지금 또 그의 무공을 직접 보고 있는 중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위무일과 감히 정면 충돌을 벌일 생각이 없었다.
서문중의 지시대로 서둘러 담청 등을 공격해 혼전을 벌이는 길만이 마타룡은 쉽게 포획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아악!" 위무일의 귀두도가 저항하던 자의 마지막 목을 치는 순간, 나머지 비익선들은 파양호의 뻘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역시 만로방에게 친숙한 것은 물보다 땅이다.
그들은 땅에 발을 디디는 것만으로도 용기백배했다.
첨벙! 첨벙! 첨벙! 비익선에 내린 탕백기 소속의 무사들이 쏜살 같이 뛰었다. "조 당주, 염 당주, 정면을 부탁하오!" 종우상이 정필에게 눈짓을 하며 소리쳤다.
그가 정필과 함께 배후로 밀려드는 백 여명의 탕백기의 수하들을 맡았다. "온다!" 염정도 고함을 쳤다.
파팍! 팟! 갈대 숲을 전진하던 보갑대 삼로의 수하들이 갈대를 무더기로 베어 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삼 사십 여명은 족히 되는 숫자였다. "쳐라!" 조신환이 앞으로 뛰어나가며 고함을 질렀다.
머릿수도 적었지만 상대하기는 역시 탕백기보다 보갑대가 편했다.
조신환은 서둘러 보갑대를 꿰뚫어 담청을 갈대 숲으로 숨기려 했다. "크악!" 선두를 달려오던 보갑대원 한 명이 조신환의 칼에 가슴이 쪼개지며 피를 뿌렸다.
때를 같이 하며 종우상, 정필이 이끄는 화룡대가 탕백기와 어우러졌다.
챙! 챙! 챙! "크악!" "악!" 칼 부딪히는 소리와 비명, 독려를 외치는 고함! 질퍽이는 뻘은 삽시간에 핏물로 번지며 발등을 물들였다.
태양이 이제 찬연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 투명하고 맑은 아침 햇발 속에 드러나는 광경은 선명(鮮明)한 아침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정필은 눈을 깜빡거렸다.
갑자기 내리쬐는 빛줄기 탓도 있었지만 얼굴을 흐르는 피 탓도 있었다.
얼굴에 흐르는 피가 자신의 피인지 아니면 적에게서 뿌려진 피인지 정필은 확인할 수 없었다.
위무일과 싸울 때에는 그저 우습게만 보였던 탕백기였다.
그러나 땅에 발을 디디고 오와 열을 갖춘 순간, 탕백기는 역시 만로방의 최정예였다.
철벽(鐵壁)! 그들은 위무일에게 당한 것을 분풀이 하듯 화룡대를 몰아쳤다.
화룡대가 후미를 맡지 않고 황룡당, 적룡당이 맡았다면 승부는 이미 가늠 났을 것이다.
그와 종우상이 용전분투(勇戰奮鬪) 했고 엽광과 산고라는 여자, 이만이 전후로 날뛰며 지원을 했기 때문에 대열이 무너지는 것은 막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단순간의 싸움에 화룡대의 수하들은 이미 반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대열을 지켜라!" 정필이 고함을 치며 다시 적을 쓸어 갔다.
순간, 묵직한 힘이 그의 장도를 짓눌러 왔다.
정필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의 장도를 짓누르는 칼은 구환도(九環刀)였고 구환도에 실린 힘은 그의 손목을 저리게 했다.
구환도를 든 자는 팔척 장신의 거한이었다.
유건(兪建)! 친형인 보갑대주 유성보다 탕백기주 여맹과 더 닮아보이는 사내의 이름이었다.
직책은 탕백기의 부대주.
만약 유성이 형이 아니라면 보갑대주의 자리는 그의 것이라는 게 만로방의 중평(衆評)이었다.
물론 그 같은 평은 유건의 무공 실력을 두고 말한 평이다.
카칵! 정필은 유건의 구환도에 맞서 장도를 비틀었다.
쨍! 그들이 다시 칼을 부딪히며 서로를 밀어붙였다.
칼을 십 자로 엇갈린 채 정필과 유건은 서로의 거리를 좁혔다.
정필의 어깨가 흔들리고 유건의 이마에는 심줄이 돋았다. "으핫!" 유건이 한 발자국 더 다가서며 고함을 질렀다.
사십 대 초반, 한참 완력이 절정으로 치닫는 나이...
유건의 완력에 밀려 정필의 허리가 점차 뒤로 기울어졌다.
정필이 오른발을 반보 빼며 힘을 지탱하는 허리의 중심이 무너지는 것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유건은 정필이 발을 빼 힘의 중심이 이동할 틈을 주지 않았다. "핫!" 그가 몸의 힘까지 실어 정필의 장도를 밀어붙였다.
땅은 질퍽한 뻘.
어이없게도 정필의 오른발이 유건의 힘에 밀려 주르르 미끄러졌다.
정필이 다급히 신형을 세우려 했다.
그러나 더욱 불행하게도 정필은 뜨끔한 통증에 이마를 찌푸려야 했다.
난전으로 뻘에 묻혀 있던 칼이 미끄러져 가던 그의 발뒤꿈치를 사정없이 후벼판 것이다.
정필의 신형이 오른쪽으로 기우뚱 기울었다.
들리는 것은 비명, 악에 받친 고함, 칼 부딪히는 소리...
유건은 상대의 약점에 사정을 봐 주는 자도 아니었고 지금은 봐 줄 상황도 아니었다.
파파팟! 유건의 구환도가 바람을 일으켰다.
챙! 챙! 정필의 장도가 다급히 구환도를 맞서 갔으나 이미 흐트러진 그의 신형은 숭숭한 허점들을 감추지 못했다. "정 부대주!" 엽광이 고함을 쳤다.
그가 정필을 도우기 위해 신형을 날릴 때였다.
쉭! 구환도가 정필의 심장을 득날 같이 파고들고 있었다.
정필은 가슴에 화끈한 통증을 느끼며 반사적으로 구환도를 움켜쥐었다.
그의 가슴에서 피가 분수처럼 치솟으며 구환도를 타고 흘러내렸다.
정필의 눈이 희미하게 흐려져 갔다.
흐릿한 시야 속에 위무일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고 그 뒤로 쾌선에서 서너 척의 비익선이 내려지는 것도 보였다.
그의 눈동자에 잡힌 물상(物像)은 그것이 끝이었다.
정필의 눈이 감겼다. "흥!" 유건은 꼬리에 불붙은 소처럼 돌진해 오는 엽광을 보며 냉소를 터뜨렸다.
정필을 죽이고 승리감에 도취된 그였다.
그가 정필의 심장에서 구환도를 빼 엽광을 상대하려 했다.
그러나 구환도는 쉽게 뽑혀지지 않았다.
정필의 영혼은 이미 염왕전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육신만은 아직도 뜨거운 피로 살아 구환도를 놓아주지 않았다.
유건의 머리칼이 곤두섰다.
한 두 번 실랑이를 더 하면 손가락이 끊겨서라도 구환도를 놓을 정필이었다.
그러나 엽광의 칼은 그에게 실랑이를 벌일 틈을 주지 않았다.
파팟! 엽광이 칼 그림자를 난무하며 유건을 쓸어 갔다. "헉!" 유건이 헛신음을 토해 내며 구환도를 놓았다.
그가 다급히 뒷걸음질을 치며 엽광의 공세를 비켜갔다.
철벅! 정필이 질퍽한 뻘에 얼굴을 파묻었다. "개 자식!" 엽광이 핏대를 세우며 노호를 터뜨렸다.
그가 얼굴을 아귀처럼 일그러뜨리며 유건을 공격했다.
적수공권의 유건은 독 안에 든 쥐처럼 엽광의 칼을 피해 허둥지둥 날뛰었다.
그 사이, 세 가닥의 도풍(刀風)이 엽광을 노렸다.
유건을 응원하러 나선 탕백기의 수하들이었다.
챙! 챙! 엽광이 세 가닥 도풍을 끊어 내며 좌측에서 공격하던 자의 목줄기를 노렸다. "크억!" 좌측에서 협공하던 탕백기 수하의 목젖이 활짝 열렸다. "크헉! 헉! 허억!" 작자가 목줄기를 잡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엽광의 칼은 작자의 목뼈까지 할퀴고 지나간 후라 반고(盤古)가 와서 호흡을 불어넣어 준다고 하더라도 작자가 살아날 리는 없었다.
작자의 신형이 '철퍼덕' 갈대 위를 굴렀다.
그 사이, 유건은 간신히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엽광, 네놈의 소문은 진작부터 들었다.
어디 그 소문이 실력과 같음을 보겠다!" 유건이 곁에 선 수하의 칼을 뺏어 들며 소리쳤다.
파팟! 그가 수하들과 함께 연수로 엽광을 공격했다. "우라질 놈!" 엽광이 수하까지 앞세운 채 공격해 오는 유건에게 화를 내며 쌍수도를 번뜩였다.
그때였다. "엽 선주, 뒤는 우리가 맡겠소.
태부인을 부탁하오!" 조신환이 염정과 함께 고함을 치며 달려왔다. "태부인을 갈대 숲으로 피하게 해 주시오!" 염정이 유건을 쓸어 가며 고함을 질렀다.
엽광이 퍼뜩 고개를 돌렸다.
삼로의 보갑대는 조신환과 염정이 몸을 뺄 수 있을 정도로 허물어지고 있었다.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적을 휘몰아쳐 가는 여자! '산고... ' 블덩이로 쏟아지는 공격이었다.
삼로의 보갑대는 산고의 칼끝에 이리저리 흩날렸다.
소채주 답게 이만도 담향도 만만치 않았다. "달아날 이유가 어디 있소?" 엽광이 후미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크악!" "칵!" 그와 동시에 후미에서 비명이 터졌다.
위무일이 달려들고 있었다.
유건의 표정이 해쓱해졌다. "대형을 밀집(密集)시켜라!" 그가 대형의 중앙으로 달려가며 다급히 소리쳤다.
쉬쉭! 쉭! 수십 자루의 겸도를 위무일에게 던지며 탕백기의 수하들이 간격을 좁혔다. "대형을 유지하고 움직이지 마라!" 다급한 목소리는 파양호에서도 들렸다.
쏜살 같이 물살을 가르는 세 척의 비익선! 고함을 지른 자는 쾌선에서 비익선을 타고 내린 탕백기주 여맹이었다.
위무일은 여맹이 합류하기 전에 먼저 탕백기의 대열을 허물어뜨리려 했다.
쐐액! 그가 일도양단의 기세로 탕백기의 후미 중앙을 공격했다.
챙! 챙! 챙! 역시 탕백기는 만로방의 정예 중의 정예들이었다.
그들이 부동(不動)의 자세로 수십 자루의 창칼을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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