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두두두두! 산고가 달리는 말 위에 오르며 협도를 난무했다. 해는 중천을 훨씬 지나고 있었다. 이른 새벽부터 시작된 싸움! 위무일조차 기력이 탕진되어 허덕이는 마당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산고 스스로도 몰랐다. 탕백기와 보갑대가 그녀를 향해 칼을 휘두러기 시작한 때는 그녀가 이미 포위망 속으로 뛰어든 후였다. 그녀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창칼을 게의치 않았다. 그녀의 협도는 오로지 앞을 가로막는 적들에게로 향하였고 그녀의 시선이 붙박힌 곳은 위무일 뿐이었다. 위무일도 그제야 산고를 발견했다. "크악!" "악!" 그가 만로방 수하들의 목을 치며 산고에게 나아갔다. 위무일과 산고의 눈빛이 마주쳤다. 산고가 씩 웃었다. "하!" 그녀가 비월로 말과 함께 솟구치며 위무일에게 손을 내밀었다. 위무일이 말을 따라 달리며 산고의 손을 잡았다. 휙! 위무일이 산고의 손을 잡고 말등에 뛰어오를 때였다. 퍽! 둔중한 소리와 함께 산고가 이마를 찌푸렸다. 유성추(流星鎚)! 그녀의 등을 가격한 물체였다. 산고가 위무일을 끌어올림과 동시에 말에서 떨어졌다. 그녀가 신형을 축 늘어뜨린 채 강둑을 굴렀다. "아남!" 위무일이 말고삐를 잡으며 소리쳤다. 그러나 산고는 갈대 숲에 몸을 눕힌 채 일어설 줄을 몰랐다. 위무일이 말에서 뛰어내리려 했다. "영주! 유성추를 맞고 살 여자는 없습니다! 빨리 달아나십시오! 해야 할 일이 태산입니다!" 엽광이 소리쳤다. 이세명의 철기대는 서둘러 엽광에게서 말머리를 돌리고 있었다. 위무일을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위무일이 잠시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고 허둥거릴 때였다. 챙! 챙! 챙! 칼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한 떼의 인마가 전면에서 밀려오고 있었다. 싸움을 벌이며 후퇴를 거듭하는 자는 담청이었다. 달아나는 그녀를 반긴 자들은 황사로의 무사들이었다. 위무일은 더 이상 우물거릴 틈이 없었다. 그가 산고의 창백한 얼굴에서 시선을 뗐다. "하!" 그가 거칠게 말을 몰았다. "영주! 살아나셔야 합니다!" 엽광이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철기대를 비롯한 만로방의 모든 무사들은 위무일을 추적했고 일로(一路)의 보갑대만이 엽광을 잡기 위해 다가왔다. 원래 보갑대 한 개 로의 인원은 삼십 여명 쯤은 된다. 그러나 거듭되는 싸움으로 일로의 숫자는 십 여명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엽광은 그들을 이길지도 의문이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산고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는 햇살만이 가득했다. "그렇게 죽었다고 서러워 마라! 영주께서 오늘의 일을 잊지 않는 한 영원히 너를 가슴에 품고 다닐 것이다." 그가 탄식을 터뜨리며 쌍수도를 고쳐 잡았다. 황사로의 부대주는 천축인이다. 원래 그는 천산(天山)을 오가며 교역을 하던 상인(商人)이었다. 상단을 이끌고 중원을 오가던 중 만로방의 눈에 들었다. 지리에 밝았고 몇 가지 무공까지 익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황사로의 부대주가 된 것이다. 천산은 험로(險路)다. 상인으로 오갈 때도 뼈와 살을 자르는 싸움이야 없었으랴만... 이런 싸움은 처음이었다. 특히 마타룡! 서문중이 매복을 지시한 곳에서 그는 모든 싸움을 지켜보았었다. 절로 치가 떨렸다. 그런데 그 자가 지금 그의 앞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더 이상 생각을 하고 말 것도 없었다. 이국(異國) 땅에서 벌어놓은 재보(財寶)도 써 보지 못하고 죽기는 싫었다. 손이 먼저 말고삐를 당겨 말머리를 돌렸다. 자신의 수하들 중에는 몇 명 철없는 애송이도 있었던가 보다. 그들이 박차를 가하며 마타룡을 맞서 갔다. 결과는 너무도 뻔한 일! "크악!" "칵!" 수하들의 피가 그의 공포를 더욱 부채질했다. '색목인(色目人) 놈들은 허우대만 컸지 별 볼일 없다.'라는 평을 스스로가 확인시켜 준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말머리를 돌리자 수하들도 길을 열었다. 투두두두두! 마타룡과 그가 쫓던 여자가 쏜살 같이 지나갔다. 곧이어 철기대가 햇빛을 번쩍이며 달려왔다. 비로소 그는 싸움에 합류하려 했다. 그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철기대주 이세명과 말머리를 나란히 했다. 순간, "더러운 놈!" 이세명의 쌍창이 번뜩였다. '이럴 수가!' 이세명의 쌍창이 노리는 곳은 바로 자신의 목이었다. "컥!" 목에 격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 통증은 금방 지워졌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통증조차 잊게 했다. 그의 목은 허공을 나는 순간, 이미 아득한 유부를 달렸다. 그러나 그의 몸은 아직도 말고삐를 잡고 이세명과 정답게 달리고 있었다. 서문중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미시(未時) 말이나 신시(申時) 초쯤 되었을까? 해뜰 무렵에 시작 반나절 이상을 꼬박 싸웠었다. 그러나 결국 마타룡은 포위망을 벗어나 사라졌다. 허탈했다. 그리고... 마타룡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안심이 되어서 일까? 한 편으로는 묘한 안도감이 그의 가슴을 근질거렸다. 그 같은 감정은 수하들이 더 할 것이다. "안됐소!" 이만이라는 애송이가 말했다. "원래 뱀과 같은 족속들은 제대로 죽이지 않는다면 반드시 복수하러 온다구. 이불 밑을 슬금슬금 파고 들어와 그곳을 꽉 물지. 용도 따지고 보면 뱀이잖아. 그렇지? 누이!" 이만이 담향을 바라보며 조잘댔다. "시끄럽다!" 퍽! 퍽! 수하들이 이만을 발로 차며 분풀이를 대신했다. 발길질에 힘이 넘치는 것을 보니 수하들도 마타룡의 얼굴이 보이지 않자 절로 힘이 나는 모양이었다. "아이고! 아이고! 만로방과의 화해 때, 포로에 대한 약조(約條)는 왜 맺지 않았는고?" 이만이 쌍코피를 흘리며 땅을 쳤다. "놈은 지금 북풍로의 매복과 한 판을 벌이고 있을 것입니다. 서둘러 가야 합니다." 보갑대주 유성이 말했다. 탕백기는 이미 추적의 대열에 합류해 있었다. 서문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강둑을 따라 걷던 서문중이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내려가 보아라." 그가 곁에 선 수하에게 말했다. 화신전이 가리키는 곳은 갈대 숲에 쓰러져 있는 여자였다. 산고... "유성추를 정통으로 맞았습니다. 살아 있을 리 없습니다." 유성이 말했다. "방금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소." 서문중이 손을 저었다. 수하가 뽀르르 강둑을 타고 내려갔다. "살아 있습니다!" 산고의 손을 잡고 맥박을 재던 수하가 소리쳤다. "저 계집을 낭의(浪醫)에게 맡기시오." 서문중이 발걸음을 빨리 하며 말했다. "살려서 무엇 하시려구요?" 유성이 물었다. "갈대 숲에서 싸우는 것을 보지 못했소? 마타룡은 저놈들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더군." 서문중이 이만과 담향을 가리켰다. "그런데 저 계집에 대해서는 제법 관심을 기울이더군. 방금 그 급박한 순간에서도 저 계집 때문에 주춤거리는 것을 보지 못했소? 가치를 따지면 이놈들 보다 저 계집을 잡는 것이 나을 것이오." 서문중이 가라앉는 목소리로 말했다. 담향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알겠습니다." 유성이 한숨을 쉬었다. 그는 서문중의 마음을 짐작했다. 서문중은 마타룡을 놓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후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런 생각은 서문중 스스로가 '천라지망'이라 자부했던 계책이 틀어졌음을 시인하는 꼴이었다. '총사, 이 일은 총사의 잘못이 아니오. 놈이 워낙 강했소.' 유성은 그 같은 말로 서문중을 위로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입을 굳게 닫았다. 상처를 확인까지 해 줄 필요는 없었다. 서문중과 유성이 침묵을 지켜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 * * 위무일은 소나무의 껍질을 귀두도로 쭉 벗겼다. 소나무의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위무일은 그 속살을 뜯어 들고 나무에 몸을 기댔다. 소나무의 속살은 귀두도에서 닦인 피로 점점이 붉었다. 그러나 위무일은 개의치 않았다. 그가 소나무의 속살을 질겅질겅 씹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인지 목이 탔다. "크억!" 그가 억지로 침을 삼키려 했다. 그러나 나무 껍질을 씹어도 목에서 올라오는 것은 피비린내 뿐이었다. 몸은 천근, 만근으로 무거웠다. 북풍로와의 싸움으로 기력은 이미 바닥을 보인 상태였다. 잠깐의 휴식으로 얼마 만큼의 힘이 모일지... 구릉 아래로 분주히 수풀을 뒤지는 만로방의 무사들이 보였다. 그를 찾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어둠이 내리기까지만 버틸 수 있다면... ' 그러나 초가을의 햇살은 아직 길어 그런 희망을 가지기가 쉽지 않았다. "크억!" 목은 갈증으로 불타는 듯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그를 괴롭히는 것은 공허함이었다. 어디서부터 온 공허함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 그 공허함은 그의 가슴을 끝없이 저리게 했다. 휘-잉! 산바람이 불었다. 그가 허리띠를 넉넉히 풀고 웃옷을 열었다. 타는 갈증 속에서도 피로가 견딜 수 없는 수마(睡魔)를 몰고 왔다. 전신의 통증과 공허함, 갈증, 피로, 그 모든 것이 그의 생각을 정지시켰다. 탁! 타닥! 발걸음 소리... 위무일이 나무에 기댄 자세에서 힘겹게 귀두도를 잡았다. "물이 보이지 않아요."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의 곁에 앉은 여자는 담청이었다. 위무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눈을 스르르 감았다. 담청이 그녀의 겉옷을 벗었다. 찌직! 그녀가 옷을 찢어 위무일의 상처를 치료했다. "큭!" 위무일은 계속 갈증을 호소했다. 정신은 이미 가뭇한 모양이었다. 담청이 위무일의 상처를 감싸던 손을 멈추었다. 바짝 말라 들어가는 위무일의 입술... 한 방울의 침이라도 삼키기 위해 위무일은 무의식(無意識) 중에도 계속 꺽꺽거렸다. 담청이 입술을 깨물었다.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녀가 속옷을 풀었다. 파란 핏줄이 선명하게 보이는 뽀얀 젖가슴... 그녀는 한 손으로 위무일의 머리를 감싸고 다른 한 손으로 풍만한 젖가슴을 들었다. 그녀가 위무일의 입을 벌리며 그녀의 수밀도(水蜜桃)를 갖다 댔다. 순간, 그녀는 어깨를 가늘게 떨었다. 야릇한 감촉! 아무리 상황이 상황이라지만 이질적인 촉감은 그녀의 가슴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담청은 눈을 감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녀의 젖가슴에서 유액(乳液)이 솟구치며 위무일의 혀를 적셨다. 굳어 있던 혀가 풀리며 위무일은 정신없이 담청의 유액을 핥았다. 그리고 종내 위무일은 담청의 젖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담청은 조심스럽게 좌우 젖가슴을 번갈아 위무일의 입에 갖다 댔다. 휘-잉! 산바람은 쉴새없이 불고 담청의 유실에서는 더 이상 유액이 솟구치지 않았다. 그러나 위무일은 담청의 수밀도에서 입을 떼지 않고 젖을 더 보챘다. 담청의 눈에 뿌연 수막이 어렸다. 한 때의 정인(情人)은 그녀의 수밀도에서 한 방울의 젖이라도 더 얻기 위해 바둥거리고 있었다. 이 이상한 장면이 견딜 수 없는 서글픔으로 담청의 눈에 물기를 뿌렸다.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담청이 눈물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엽광은 적을 껴안고 떼굴떼굴 굴렀다. 몇 번을 엎치닥거린 후에 엽광은 적의 배에 걸텨 앉았다. "컥!" 그의 쌍수도가 사정없이 적의 심장을 후벼팠다. 핏줄기가 솟구치며 그의 얼굴을 적셨다. "오라!" 그가 휘청 일어서며 소리쳤다. 희미한 시야 속에 세 개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엽광은 눈에 묻은 피를 닦으며 아귀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쌍수도를 들려 했지만 어깨뼈가 나갔는지 아니면 힘이 모두 소진되어서인지 칼이 들려지지 않았다. "오라! 오합지졸(烏合之卒)들!" 적에게 외치는 고함만은 아직 엽광이었다. 보갑대의 무사들이 품(品) 자 형으로 서는 것이 보였다. 엽광은 자세를 바로잡으려 했다. 그러나 몸은 자꾸 기우뚱거렸다. 하늘이 빙빙 돌고 있었다. 보갑대의 무사들은 이제 더 이상 서둘지 않았다. 그들은 엽광이 제풀에 쓰러지리라 확신했다. 그들은 섣불리 달려들다 맹호(猛虎)가 휘두르는 최후의 일격에 재수 없이 얻어맞을 생각은 없었다. 그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며 꾸물거렸다. 엽광이 무엇이라 주절댔다. 욕설 같기도 하고 스스로를 한탄하는 말 같기도 했다. "카악!" 엽광이 갑자기 맹수처럼 포효(咆哮)했다. 그가 쌍수도를 질질 끌며 적들을 향해 뛰어갔다. 한 명의 적이라도 더 죽일 심산이었다. 그러나 그의 다리는 그의 뜻을 따라주지 않았다. 움푹한 구덩이에 발이 빠지자 그의 몸이 주책없이 털썩 허물어졌다. 보갑대 무사들이 서로에게 눈짓을 했다. 그들이 엽광을 향해 달려들었다. 순간, 팟!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엽광을 향해 달려가던 수하 한 명이 입을 딱 벌렸다. 그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풀썩 쓰러졌다. 그의 이마에는 뒤통수를 뚫고 들어온 삐죽한 단검(短劍)의 날이 보였다. "누구냐?" 보갑대 수하들이 놀라 고개를 돌렸다. 파팟! 두 자루의 단도가 그들이 고개를 돌리는 때를 같이하여 그들의 이마에 탁 꽂혔다. 만로방의 수하들이 '끄르럭' 풀밭을 뒹굴었다. 엽광은 눈을 비볐다. 죽립(竹笠)을 쓴 십 여명의 무사들! 피로에 치쳐 무뎌질 대로 무뎌진 감각이었지만 엽광은 죽립인(竹笠人)들의 가공할 기도를 느낄 수 있었다. 단검을 든 죽립인이 엽광을 향해 걸어왔다. 만로방의 수하들에게 단검을 날린 자인 모양이었다. "태부인은?" 단검을 든 죽립인이 물었다. 삼십 대 초반, 아니면 중반 정도의 목소리였다. "누구냐? 정체부터 밝혀라!" 엽광이 카랑하게 말했다. "대명천지에 죽립을 쓰고 다니는 것을 모르느냐? 정체는 밝힐 수 없다. 하지만 나쁜 일로 그 여자를 찾지는 않는다. 상황을 보아 하니 시급을 요하는 터... " 죽립인이 앞을 보기 위해 뚫어놓은 죽립 사이로 안광을 빛냈다. 엽광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만로방의 수하들을 처치한 자들이다. 그리고 상황은 더 나빠질 것도 없었다. "저리로 갔다. 칼 부딪치는 소리가 끊긴 곳은 구릉 저편이다." 엽광이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손짓을 했다. 죽립인이 단검을 매만지며 엽광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그가 단검의 날을 세웠다. 그때였다. "가자!" 창창한 목소리가 단검을 든 죽립인을 불렀다. 엽광 앞에 선 죽립인이 슬며시 단검을 소매에 넣었다. 그가 죽립을 고쳐 쓰며 고함을 지른 죽립인을 향해 걸어갔다. 털썩! 기력이 다한 엽광이 풀밭을 굴렀다. 타타타타탁! 죽립인들은 뛰기 시작했다. "엽광이라는 놈입니다. 골치 아픈 놈이지요." 단검을 들었던 죽립인이 그를 부른 죽립인에게 말했다. "알고 있다." "죽이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요?" 창창한 목소리의 죽립인이 죽립을 살짝 들었다. 그가 단검을 들었던 죽립인을 향해 씩 웃었다. "진정으로 하는 말이냐? 네 마음도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을 텐데... " "엽광은 다릅니다!" 단검을 들었던 죽립이 냉랭하게 소리쳤다. "죽이지 않기를 잘했군. 엽광이라는 자는 자네가 두려워 하는 자가 아닌가? 그런 자라면 더욱 예우를 갖춰 죽여야겠지? 핫하하! 서두르자!" 창창한 목소리의 죽립인이 호탕하게 웃으며 발걸음을 빨리했다. "도대체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왜 수로연맹과 만로방의 싸움에 끼어들어야 하는지?" 단검을 들었던 자가 투덜댔다. " .... " 창창한 목소리의 죽립인은 아무 말도 않았다. 그의 발걸음이 속도를 더해 갔다. 담청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죽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장강에 수 놓았던 그녀의 야심은 둘째 문제였다. 그녀에게는 젖먹이가 있다. 만로방의 수하들은 마침내 구릉을 조심스럽게 기어오르고 있었다. 절대의 위기에 처하자 그녀의 머리 속은 아들에 대한 걱정 뿐이었다. "오라버니!" 담청이 위무일의 몸을 세차게 흔들었다. 위무일이 안색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는 눈을 뜨지 않았다. "오라버니, 적이에요!" 담청이 위무일을 다시 거칠게 흔들었다. 위무일이 긴 숨을 들이키며 눈을 떴다. 걱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담청의 얼굴이 먼저 들어왔다. 그리고 우글거리는 만로방의 수하들... 위무일은 다시 눈을 감고 단기내경을 운행(運行)했다. 전신에 찢어지는 고통이 찾아들었다. 위무일은 어금니를 악다물고 운기를 계속했다. 실낱 같은 잠력이 흩어졌다 모였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위무일은 귀두도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휘청 흔들렸다. "오라버니, 저는 죽을 수 없어요." 담청이 그렁한 눈으로 말했다. "만약 오라버니가 죽는다면 투항을 해서라도 목숨을 부지할 생각이에요!" 그녀가 위무일에게 싸움을 걸 듯 소리쳤다. 위무일이 담담한 미소를 흘렸다. 죽음이라는 의미는 그에게 담청을 감싸안을 용기와 관용을 동시에 베풀었다. 그가 담청의 머리를 감싸안았다. "나에게 죄책감을 느낄 필요 없다. 산다는 것은 지고(至高)의 선(善)이지." 쉭! 그가 귀두도를 세웠다. "으핫!" 위무일이 괴성을 질렀다. 수풀을 뒤지던 만로방의 수하들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위무일이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만로방 수하들의 표정이 경직되었다. "아!" 구릉을 내려가던 위무일이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는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그를 바짝 뒤따르던 담청에게 얼굴을 돌렸다. "네가 살겠다고 한 이상 아마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한 가지 부탁을 하고자 한다." " .... " "산고! 남만족의 여자로 이름이 아마 아남일 것이다. 그 아이의 시신을 찾아 적당한 곳에 묻어다오." 위무일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끼라고는 없는 웃음이었다. " .... " 담청이 아미를 좁혔다. 순간, "핫!" 위무일이 적들을 향해 질풍처럼 치달았다. 챙! 챙! 챙! 챙! 그가 구릉을 올라오던 적들을 쓸며 평지(平地)로 나아갔다. 구릉보다 싸우기가 더 불리한 곳이었다. 그러나 위무일은 자신의 힘의 한계를 알고 있었다. 엽광과 달리 그는 한 명의 적이라도 더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저 호쾌하게 죽기만을 바랄 따름... 챙! 챙! 챙! "크악!" "악!" 위무일은 비틀거리며 무려 반 식경 이상을 싸웠다. 담청의 적절한 도움이 없었다면 벌써 피를 뿌렸을 것이다. 팟! 날카로운 경기가 위무일의 옆구리를 찔러왔다. 위무일은 아득해져 가는 정신 속에 그가 마지막으로 싸워야 할 자가 누군지 알았다. 바람을 가르며 위맹하게 짓쳐오는 칼! 그 자 정도면 마지막 상대로서 어느 정도 위안을 삼을만 했다. 위무일이 여력을 모아 귀두도를 번뜩였다. 쐐액! 칼바람이 옷자락을 펄럭이며 날아갔다. 쩡! 적의 칼이 동강나며 뭉클한 감각이 손 끝에 닿았다. 가슴이 동강난 채 쓰러지고 있는 자는 보갑대주 유성이었다. 위무일이 피가 툭툭 떨어지는 귀두도를 가슴에 세웠다. 그가 씩 웃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신형이 뻣뻣이 굳었다. 그가 유성과 동시에 풀썩 쓰러졌다. 전신은 상처 투성이에 피로 물들어 있었고 실오라기 같은 잠력도 모두 소진시킨 후였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었다. 머리 속이 백색(白色)으로 텅 비어 갔다. 까마득한 의식의 저편에서 누군가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날렵한 인영, 눈에 익은 자였다. 아주 편안한 느낌! 위무일은 그가 누군가를 생각했다. 그가 상대를 자세히 보기 위해 미간을 모았다. 그 순간, 그의 의식은 암흑(暗黑)으로 뚝 떨어졌다. " .... " 순식간에 정적이 찾아들었다. 누구 하나 쓰러진 위무일에게 달려드는 자가 없었다. 그토록 날뛰던 마타룡이 설마 저렇게 허무하게 쓰러졌으랴라고 모두들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나 귀두도를 휘두를 것 같아 만로방의 수하들은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여맹이 미간을 좁혔다. 그가 위무일을 향해 걸어갈 때였다. 땡그랑! 담청이 손에 든 비도를 내던졌다. 그녀는 위무일의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녀가 고개를 떨구었다. "아!" 수하들 중에 누군가가 탄성을 터뜨렸다. 비로소 그들은 싸움이 끝났음을 확인했다. 마타룡은 분명 쓰러진 것이다. 그러나 환호를 지르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여맹이 흘깃 서문중을 바라보았다. 서문중이 화신전을 든 손으로 이마를 비볐다. 그가 무뚝뚝하게 입을 열었다. "마타룡을 사로잡아 오라는 말은 듣지 못했소." 서문중이 먼 곳으로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여맹이 고개를 끄덕였다. 숨이 끊긴 것을 확인하기 전에는 불안을 느끼기는 그도 마찬가지였다. "목을 잘라라!" 여맹이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그때였다. 파파팟! "크악" "윽!" 수십 자루의 단도가 장대비처럼 쏟아지며 수하들의 미간을 꿰뚫었다. 서문중과 여맹이 놀라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구릉을 넘어 쏜살 같이 달려오는 자들... 십 여명의 죽립인들이었다. 죽립인들의 무공은 하나 같이 고강했다. 파팟! 팟! 죽립인들이 휘두르는 칼에 수하들의 가을 바람에 가랑잎처럼 휘날렸다. 여맹이 황급히 달려갔다. 죽립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일단 잡은 새부터 요리할 생각이었다. 그가 일도양단으로 위무일의 목을 노렸다. 칼은 쏜살 같이 떨어지고 담청의 눈에 절망의 빛이 어렸다. "엇!" 위무일을 향해 칼을 날리던 여맹이 돌연 비명을 질렀다. 삼 장을 단숨에 날아 그의 정수리를 갈라오는 자! 위무일의 목이야 베겠지만 그의 목숨도 작자의 손에 성하지를 못할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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