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있으면 이 국(國) 모(某)가 목숨을 걸고 퇴로를 막겠습니다." 자수의 국 채주가 가슴을 펴며 호언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와 주신 국 채주님의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담청이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허허허! 감사는 무슨...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그럼 노부는 이만 본선(本船)으로 물러나겠습니다. 본선에서 군산까지 태부인의 후미를 지키겠습니다." 자수의 국 채주가 담청의 칭찬에 감읍(感泣)해 하며 포권을 했다. "아! 신임 호반영주께서는 무사하십니까?" 선실을 나서던 그가 문득 물었다. "기력이 탕진되었을 뿐입니다. 외상(外傷)도 빠른 속도로 아물고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어쨌든 파양호의 일전은 후련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쾌유(快癒)를 빈다고 전해 주십시오." 자수의 국 채주가 선실을 걸어나갔다. "배를 멈춰라!" 그가 고함을 질렀다. 정삼이 배를 멈추었다. "모 당주께서도 그만 돌아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저희도 뒤를 호위하겠습니다." 모윤중이 포권을 했다. "그럴 필요까지 없습니다. 한수에는 바쁜 일이 있을 텐데." " .... " 모윤중이 미간을 좁혔다. 채주가 못 온 일로 너무 시비를 건다고 그는 생각했다. "들었습니까?" 담청이 앞 뒤 없이 물었다. "무슨... " "저희 총채의 투함에는 이만 공자께서도 타고 있었습니다. 향과 함께 만로방의 수중에 떨어진 줄 압니다." "예? 공자님께서!" 모윤중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희 일은 신경 쓸 것도 없을 거예요. 모 당주께서는 급히 한수로 돌아가 이만 공자를 구할 방도를 찾아야 할 거예요." " .... " 모윤중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이만은 채주가 어렵사리 얻은 유일한 자식이다. 그가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후다닥 선실을 뛰어나갔다. 일이 이렇게 돌아갈 줄 담청은 정말 생각 못했었다. 소강의 채주 대 대강의 채주! 파양호의 일 이후, 장강의 대립 구도는 그 같은 형태로 굳어지는 느낌이었다. 소채(小寨)들의 반 대채(大寨)에 대한 노선(路線)이 바로 총채에 대한 충성을 의미함을 담청은 모르지 않았다. 장강의 율법은 아직 소강, 대강의 수채를 가리지 않고 동등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춘절의 만회 때 총채주를 누가 차지할 지는 보지 않아도 훤했다. 하지만 담청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언제 어떤 일이 불시에 벌어질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원강으로의 출행도 위무일이 회복되는 대로 진행시킬 생각이었다. 삐꺽! 자수의 국 채주와 한수의 내당당주 모윤중을 내리고 난 배가 다시 움직였다. 담청은 한수로 바쁘게 꼬리를 트는 투함을 보며 휘장이 쳐진 선실로 들어갔다. 휘장이 쳐진 선실에는 약재를 넣은 훈증(薰蒸)으로 가득했다. 창백한 얼굴, 눈과 입을 굳게 다문 채 시체처럼 누워 있는 자는 위무일이었다. 그의 의식은 아직도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담청은 위무일의 이마에 송글한 식은땀을 닦았다. 그리고 위무일의 곳곳에 그어진 상처가 아물고 있는 가를 확인했다. 창칼에 찢겨진 상처! 그 상처 하나 하나를 들출 때마다 담청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 그 상처의 대부분은 자신을 지키려다 입은 상처였다. 담청은 생각했다. '목숨을 받쳐 나를 지켜 줄 자는 과연 누가 있는가?' 총채주는 죽었고 익 오라버니는 떠났다. 위무일! 이제 유일하게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자였다. 담청은 위무일의 곁에서 일어나 선창에 섰다. 회한이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그녀가 낮은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횡당도(橫塘渡) 임수보(臨水步) 낭서래(郎西來) 첩동거(妾東去) 첩비창가인(妾非倡家人) 홍루대성부(紅樓大性婦) 취화오타랑(吹花誤唾郞) 감랑천금고(感郞千金顧) ........ 횡당 나루터, 물 따라 산책길 그대 서쪽 향해 오시고, 저는 동쪽 향해 가지요. 저를 창녀라 생각지 마십시오. 붉은 집 가문 좋은 규수랍니다. 꽃을 불다 잘못하여 그대에게 침이 튀겼는데 저를 감싸주는 자상한 마음씨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 담청은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 목이 메고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결국 그녀는 한 줄기 눈물을 쏟고 말았다. '더러운 계집, 너는 오라버니에게 진 빚을 평생 갚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 그녀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선창에 얼굴을 기대고 한동안 소리 없이 울었다. 하늘은 끝없이 높았고 수심은 알 수 없는 깊이로 푸르렀다. 한 떼의 백로(白鷺)가 '훠이' 그녀가 탄 배를 지나쳤다. 그제야 담청은 눈물을 닦았다. 그녀는 선창에서 얼굴을 떼지 않았다. '야반 도주... ' 담청은 문득 담향의 말을 떠올렸다. 지금의 심정으로는 솔직히 야반 도주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에 대해 잘 알았다. 그 같은 감정이 오래가지 못할 것임을... '손톱에 꽃물을 들이며 좋아하던 소녀는 어디 가고 이제 추악한 야심의 여자만 남았는가?' 담청은 스스로에게 조소를 흘렸다. '인간의 성품(性品)이 천성(天性)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면 이유는 있겠지.' 그녀는 자신을 변호할 말을 찾으려 했다. '그랬었지. 기녀인 어머니, 천대받던 유년(幼年)의 기억... '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바람아 나를 이해해 다오. 나는 그런 누추했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중얼거렸다. 휘-잉! 강바람이 세차게 선실문을 두들겼다. * * * "속가의 무공이라 해서 모두 가소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부 청명진인(淸明眞人)이 말했다. "백 년 내, 출현한 무공만 하더라도 최소한 세 개 정도의 무공은 우리 현문에서도 뼈를 깎는 적공(積功)이 있어야 이길 수 있다." 불현듯 누군가가 꺼낸 질문이었다. - 속가에 '무(武)'라 이름 붙일 수 있는 무공이 과연 있느냐? 사부는 그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백 년 내, 세 개의 무공이나? 그 무공이 무엇입니까?" 제자들은 입을 모아 물었다. "먼저 생사무영필(生死無影筆) 공합(孔蛤)의 진천필법(震天筆法)을 들 수 있다." "공합?" 제자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의문을 표했다.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팔 십 년 전에 출현한 인물이다. 네놈들이 모르는 것은 당연하지." "팔 십 년 전에 출현했다고 하더라도 현문의 무공과 견줄 만한 실력을 가졌다면 강호에 파다하게 이름이 알려졌을 것이 아닙니까?" 제자 한 명이 물었다. "원래 실력이 있는 자들은 자신의 이름을 강호에 남기지 않는다. 이름을 듣고 찾아오는 자들로 분주하기만 할 테니... 그리고 그는 강호인과는 단 두 번만 싸웠을 뿐이다." 사부가 호기심으로 눈빛을 반짝이고 있는 제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강북무림맹주(江北武林盟主) 제명일(濟明逸), 흑산왕(黑山王) 전호(全浩)!" 사부가 외는 이름에 제자들은 모두 귀를 곤두세웠다. 그들은 팔 십여년 전, 흑백(黑白) 양도(兩道)를 대표하던 강호의 태두(泰斗)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생사무영필 공합이 싸웠다던 두 명의 상대가... " 성질 급한 제자 한 명이 말했다. 사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명일! 전호! 그들은 모두 진천필법 아래 무릎을 꿇었지. 공합은 그 두 명의 강호 태두를 꺾은 후, 소림(少林)으로 향했다." "흥! 광오한 자이군요. 아무리 제명일과 전호를 꺾었다고 하나 어찌 소림에... " 제자 한 명이 코웃음 쳤다. "반드시 광오하다고만 할 수 없다. 소림 '법(法)' 자 배(配) 항렬 중에서는 그를 이긴 자가 아무도 없으니... 소림 전대 장문인이었던 법성선사(法性禪師)도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어." "법성선사까지? 그렇게 강했단 말입니까?" 제자들이 소리쳤다. "전전대 장경각주(藏經閣主) 무진상인(無盡上人)이 나서서야 그를 제압할 수 있었다고 하더군. 그것도 반 초식의 차이로..." "아!" 제자들이 탄성을 터뜨렸다. "생사무영필 공합은 소림에서의 패배 후, 그곳에서 바로 출가(出家)를 했다고 한다. 속가 무공의 한계를 느낀 것이었겠지. 그러므로 진천필법은 이제 강호 도상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사부가 무릎을 치며 말했다. 사부의 입가에 뜻 모를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보면 사부는 출가한 생사무영필 공합의 이후 행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다음은 누구입니까?" 제자들은 출가한 공합의 행적에 대한 궁금증을 뒤로하고 성급히 다음 고수를 물었다. "삼악오(三惡烏)!" "아!" 사부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제자들 중의 몇 명이 탄성을 질렀다. 삼악오도 강호인의 기억 속에 까마득한 이름이었으나 특이한 행적으로 아직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오십 년 전, 잠깐 강호를 소란케 한 자들이지. 자금성(紫禁城)에 침입 황제(皇帝)의 재보(財寶)를 털고 궁녀(宮女)를 겁간한 자들이야." "백오(白烏)! 적오(赤烏)! 황오(黃烏)! 자금성 뿐만 아니라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의 집만 골라 음행과 약탈을 일삼던 자들이 아닙니까? 금의위(錦衣衛)도 어쩔 수 없어 하던 자들... 결국 황제가 소림, 무당(武當)에 청해 잡도록 한 자들이지요. 혹자는 그들을 유협(遊俠)이라고까지 하던데... " 삼악오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바 있던 제자가 말했다. "유협이라? 그들이 노략질한 재물을 빈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추종자들과 호쾌하게 놀았기 때문에 혹자는 그렇게 말했겠지. 하지만 성진(成眞)에게 듣기로는 그들은 머리가 이상한 자들에 불과하다는 게야. 성진은 황제의 청을 받고 사부 법명대사(法明大師)를 따라 놈들을 추적했지." 소림의 현 장경각주 성진대사는 사부의 절친한 벗이다. 그리고 법명대사는 성진대사의 스승으로 전대 나한당주(羅漢堂主)였다. "소림, 무당의 추적대는 황산(黃山)에서 삼악오와 조우했는데 그때 법명대사는 그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게야. 스승인 법명대사와 삼악오의 대화를 듣던 성진은 삼악오는 결국 정사(正邪)를 구분하지 못하는 천치(天痴)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지. 삼악오가 자신들의 절기 흑살장(黑殺掌)을 익히다가 뇌에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닌가로 성진은 추정하더군." "삼악오! 놈들이야 어쨌든 사부님은 놈들의 절학인 흑살장을 현문의 무공과 비견할 속가의 세 비기 중 하나로 인정해 주시는군요." 제자 중 한 명이 말했다. "그렇다. 그놈들을 잡기 위해 소림은 십팔나한진(十八羅漢陣)을 펼쳤고 무당은 오행검진(五行劍陣)을 펼쳐야 했다. 그만하면 우리 현문의 무공과 견줄만 하다고 생각되지 않느냐?" 사부 청명진인의 말에 제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들도 소림, 무당에 잡혀 관부에 넘겨졌으니 죽음을 당했을 것은 분명한 일! 머리가 이상한 자들이었다고 하니 제자들을 두었을 리도 없을 것이고... 흑살장도 진천필법과 함께 강호 도상에서는 찾을 길이 없겠군요." 누군가가 말했다. "글쎄다. 내가 듣기로는 북진무사(北鎭撫司)에 인계되어 죽음을 기다리던 그들이 어느 날, 탈옥을 했다고 하던데. 하지만 그 이후, 그들의 소식을 들을 길이 없으니... 탈옥이 거짓 소문인지 아니면 그들이 탈옥은 했으나 소림, 무당에 워낙 혼이 나 강호상에 영원히 종적을 감추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부 청명진인이 제자들을 둘러보며 허리를 폈다. "나머지 한 명은... " "말할 필요가 있느냐?" " .... " 사부의 말에 제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요하의 물결을 타고 내려와 천하를 제패한 인물, 조양인! 정말 말할 필요가 없는 자였다. "사부님, 생사무영필과 삼악오, 조양인 중 사부님께서는 누가 가장 강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조양인!" 제자들의 물음에 사부는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들은 동시대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찌... " 제자들은 너무도 간단히 내던지는 사부 청명진인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삼악오를 처치하려 보낸 소림의 추적대 중에는 법화대사(法華大師)가 있었다. 삼악오를 처치하는데 가장 공을 세운 분이지. 그러니 법화대사는 삼악오 보다 한 수 위의 실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법화대사도 조양인에게는 패했다." 사부가 자르듯이 말했다. "법화대사?" 제자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소림 전대의 항렬인 '법' 자 항렬 중 법화대사라는 분이 있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었다. "법화대사라는 분이 누구입니까? 그리고 법화대사라는 분이 졌다고 어찌 조양인이... " 휙! 사부가 손을 들어 제자의 질문을 막았다. "법화대사! 속가에서의 이름은 생사무영필 공합! 홀연히 젊은 날의 호승지심이 치솟아 당시 명성을 떨치고 있던 조양인을 찾았다. 백 여세나 되었을 때의 일이었지. 결과는..." 사부가 말꼬리를 흐렸다. "소림에서 별반 알려지기를 원하는 일이 아니니 떠들지 마라!" 사부가 무릎을 탁 치며 소리쳤다. " .... " 제자들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찮게 여기던 속가의 무공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조양인의 이야기를 듣고 속가의 무공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했다. "모두 자세를 바로 하라!" 사부는 돌연히 튀어나온 이야기를 끝내고 앞서 했던 강론(講論)을 이어가려 했다. 그때였다. "만약 저희들이 조양인을 이기려면 몇 년의 공을 쌓아야 할까요?" 제자 한 명이 불쑥 물었다. 잔망스러운 질문! 그러나 제자들은 모두 귀를 세웠다. 궁금증을 느끼기는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이런 미련한 놈! 싸움을 배울 요량으로 여기를 찾았느냐?" 아니나 다를까 사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리고 공을 쌓는 일이 어디 세월의 흐름이라는 산술(算術)로 계산할 수 있는 일이더냐?" 사부가 질문을 던진 제자에게 섭선으로 머리를 후려쳤다. 질문을 던진 제자가 황망한 표정으로 쩔쩔매며 이마에 땀을 닦았다. "근기(根氣)와 노력에 기대 스스로를 닦을 생각은 않고 남과 비교부터 할 생각을 하다니... 그런 마음을 가진 놈들은 평생 가도 조양인을 이길 수 없다!" 사부가 모든 제자들에게 소리쳤다. 제자들이 머리를 떨구었다. 그들도 어찌 조양인을 꺾어 볼 생각을 하지 않았으랴? 사부는 풀 죽인 제자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한 가지만 알아라. 조양인의 무공은 결국 인간의 무공! 그 이상의 초월적인 힘을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현문의 무공은 검선(劍仙)을 지향한다. 종국에는 조양인이 따라올 수 없는 경지! 그 경지에 오르면 물론 조양인과 다툴 하찮은 생각도 들지 않을 것이다!" 사부는 그 말로 풀 죽은 제자들을 위로했다. "오늘은 네놈들의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니... 물러가라!" 사부가 섭선을 휙 저었다. 제자들이 모두 머리를 조아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땅! 땅! 땅! 때맞추어 청성산에 바람이 불며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양인... ' 천화인은 입술을 깨물었다. 백 년 내, 속가 제일의 고수라고 사부 청명진인이 인정해 주던 인물! '무일이 그의 무공을 이어 받다니... ' 천화인은 한숨을 쉬었다. 탕백기, 철기대, 보갑대, 사대행회를 종횡으로 쳐부수었다는 소문보다 그를 더 힘들게 하는 소문... 바로 위무일이 조양인의 무공을 이어 받았다는 소문이었다. '이미 무일은 나의 적수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 위무일은 천화인이 어릴 때부터 유난히 호승지심을 느꼈던 친구였다. 언제나 한 발 앞서 갔으므로... 그러나 청성산에 발을 들이며 그는 위무일을 더 이상 적수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죽마지우(竹馬之友) 위무일은 그가 걸어간 만큼의 크기로 또 그 만큼 걸어가고 있었다. '이길 수 있을까?' 청성파에 있을 때 사부는 유난히 그의 검법 실력이 두드러진데 대해 질책했다. 심신(心身)의 조화가 깨진다는 이유였다. 그런 만큼 그의 검술 실력이 뛰어났다는 뜻이다. '지금 청성파, 조양인의 무공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둘 다 설익은 상태가 분명할 터... 탕백기, 철기대, 보갑대, 사대행회... 만약 내가 그들을 상대로 싸웠다면... ' 천화인은 고개를 숙였다. 역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서문중은 아직 장강 어디에 있을 것이다. 놈을 공격 직접 위무일과 자신의 무공을 비교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군웅들이 어떻게 생각하랴? 승리를 한다고 하더라도 뒷 북이나 치고 있다고 조소할 것이 분명했다. '서두를 필요 없다. 언제나 부딪힐 날이 있겠지. 나는 원래의 계획대로 금사강, 통천하의 상류(上流)를 따라 나의 아성(牙城)을 구축해 갈 것이다.' 천화인은 고개를 들었다. 그때였다. "대공자!" 전방을 주시하던 황평이 그에게로 다가왔다. "이상한 일입니다. 채주께서 움직이지 않고 있군요." 황평이 아버지가 탄 배를 가리켰다. 천화인은 선수로 걸어갔다. 그는 아버지가 탄 배를 몰래 따르고 있었다.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뇌벽쌍불을 쫓아 보낼 수는 없고 기회를 보아 뇌벽쌍불을 쫓아 보내기 위해서였다. 천화인은 선수에 서 아버지가 탄 유선을 살폈다. 유선은 수강 분타의 배를 만난 후, 꿈쩍도 않았다. "어!" 황평이 소리쳤다. 유선에서 한 척의 배가 내려졌다. 작은 나룻배였다. 나룻배가 물에 닿자 사공 한 명이 노를 들고 나룻배에 뛰어내렸다. 그와 함께 두 명의 죽립인이 유선에서 나룻배로 휙 신형을 날리는 것이 보였다. 죽립 아래로 은염(銀髥)이 반짝이는 자들이었다. 천화인이 안광을 빛냈다. "황 당주! 저 배를 따라갑시다!" 그가 안색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뇌불(雷佛)의 안색도 어두웠고 벽불(霹佛)의 안색도 어두웠다. 은자를 쫓아 중원까지 왔다는 것도 기분 나쁜 일이다. 그런데 다 죽어 가는 애송이의 목까지 비틀어야 하다니... 천태림이 위무일이라는 다 죽어 가는 애송이를 죽여라 했을 때 벽불은 울컥 화부터 터뜨렸다. 아무리 사판승(事判僧)이라 하나 그래도 그들은 승려였다. 하지만 곧 이어진 천태림의 말은 그들을 유혹하기에 족했다. 대가치고는 엄청난 양의 은자였다. 뇌벽쌍불은 그 은자에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지옥(地獄)을 찾아서라도 불사(佛事)를 일으킬 은자를 구해 오겠다고 맹세한 그들이었다. '연(緣)이 그와 같으니 우리를 탓하지 마라. 스스로의 업(業)을 탓해야지.' 뇌불이 한숨을 쉬었다. 휘-휙! 나룻배에서 내린 뇌벽쌍불은 빠른 속도로 나루터를 향해 가고 있었다. 준마선(駿馬船)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반 시진 가량을 질주했을 때였다. "뇌벽쌍불!" 천둥 같은 목소리가 그들의 발걸음을 막았다. 뇌불과 벽불이 흠칫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중원에서 자신들의 별호를 들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신들을 부르는 자에게로 급히 시선을 돌렸다. 햇빛에 반짝이는 장검(長劍), 청의를 입은 약관의 청년이었다. 곤룡 천화인! 뇌벽쌍불은 천화인과는 면식이 없었다. 그들이 안색을 찌푸렸다. 한낱 애송이가 자신들의 별호를 함부로 부르다니... 좋은 뜻으로 찾아 온 것 같지도 않았다. "누구냐?" 벽불이 흉광을 쏟으며 물었다. 천화인은 검집을 툭툭 두드리며 입가에 냉소를 물었다. 스르릉! 그가 장검을 뽑았다. 검파(劍波)가 주위의 공기를 냉랭하게 얼렸다. '애사로운 놈이 아니군.' 뇌불이 벽불에게 조심하라는 신호를 주었다. 벽불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추(銅鎚)를 들었다. "무슨 일로 시비를 거는 게냐?" 뇌불이 항마저(降魔杵)를 들며 물었다. "뇌벽쌍불, 조용히 서역(西域)으로 돌아가시오. 그러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오." 천화인이 장검의 날을 만지며 말했다. "네놈이 누군데 감히 우리를 오라 가라 하느냐?" 벽불이 소리쳤다. "서역의 잡승(雜僧)들! 은자에 눈이 어두워 칼들 힘도 없는 자를 죽이려 갈 테지." 천화인이 씨익, 웃었다. 비아냥 조가 다분한 웃음이었다. 천화인은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왜 중도에 뇌벽쌍불을 하선(下船) 시켰는지... 장강을 위진하는 위무일의 명성! 아버지는 앞 뒤 가리지 못할 정도로 조급했을 것이다. "잡승? 감히 건방진 애송이 놈이!" 벽불이 노호를 터뜨렸다. 웅! 동추의 묵직한 추가 바람을 가르며 천화인을 짓이겨 왔다. 내력으로 상대하기 힘든 자들임을 알고 있었으나 천화인은 첫 출수부터 피해 가기는 싫었다. 쨍! 검과 동추가 부딪히며 불꽃을 튀겼다. 천화인은 벽불의 힘에 밀려 한 발자국 뒷걸음질을 쳤다. 파팟! 비틀거리는 그를 향해 뇌불이 항마저를 휘둘렀다. 천화인이 검미를 꿈틀거렸다. 그가 검을 절묘하게 휘두르며 항마저를 휘감아 갔다. 항마저가 돌연 꼬리를 틀며 벽불을 향했다. "이화접목!" 뇌불이 항마저를 회수하며 소리쳤다. "애송이 놈이 큰 소리를 친 것에는 이유가 있었구나! 현문의 무공을 익힌 놈이군!" 벽불이 안광을 붉혔다. "현문의 자들과는 아무런 은원(恩怨)이 없거늘... 정체를 밝혀라!" 그가 동추를 흔들며 소리쳤다. 천화인은 대답 대신 검으로 크게 원(圓)을 그렸다. 검 끝에 현현한 기운이 새벽 이슬처럼 반짝였다. 뇌불과 벽불이 서로에게 눈짓을 했다. 그들이 긴 호흡으로 내력을 끌어올렸다. 항마저와 동추도 초가을의 햇살 속에 선명한 빛을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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