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장풍파랑 - 33편 (33/61)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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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장풍파랑 - 33편 (3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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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채는 가부를 결정할 권한은 없으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소.
그리고 마타룡...
각 채주들의 마음이 우리에게 기울어졌다고 칩시다.
하지만 춘절의 만회 때, 마타룡이 회의 석상에 버티고 있으면...
간이 적은 수채들은 감히 우리를 지지하지 못할 것이오." "그렇소.
정말 그렇소.
총채는 별 문제는 아니나 마타룡은 정말 문제지." 도연오가 한숨을 쉬었다.
그가 술잔을 기울이며 은근한 눈길로 천태림을 바라보았다. "천 채주, 정말 자신이 있소?" "묻는 바가 무엇입니까?" "곤룡이 마타룡을 과연 이길 수 있는 가를 묻는 것이오." " .... " 천태림이 눈살을 찌푸렸다.
피로 물든 파양호를 보라! 홧김에 이길 수 있다고 말했으나 자신할 수 없었다.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역시 마타룡과의 정면 충돌은 위험한 승부였다. "물론 이길 수는 있겠지.
하지만 위험 부담이 너무 크오.
화인, 그놈에게 모든 것을 기대고 있는데... " 도연오가 천태림의 마음을 이해해 주었다.
도연오는 눈을 감았다.
그가 수염을 쓸며 생각에 잠겼다.
그 사이, 천태림은 연거푸 세 잔의 술을 마셨다.
마타룡! 놈의 존재는 언제나 무거운 짐이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도연오가 눈을 번쩍 떴다. "내 입에서 이 같은 말이 나오리라고는 나도 생각지 못했지만... " ㅊ! 그는 각 수채가 적힌 연명부를 펼쳤다.
그가 붓에 먹을 듬뿍 먹여 연명부 위에 꽂듯이 들었다.
먹물 방울이 연명부에 뚝뚝 떨어졌지만 도연오는 붓끝을 놀리지 않았다. "이왕 여기까지 온 것!" 도연오가 느닷없이 소리치며 붓을 놀렸다.
탁! 그가 서탁이 부서져라 붓을 놓았다.
천태림이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가 이미 뇌벽쌍불로 시도하려 했던 것...
살(殺)! 도연오가 연명부에 적은 단 한 자였다.
도연오가 눈을 뜨며 연명부를 꽉 움켜쥐었다.
천태림이 그에게 술을 권했다.
그들이 묵언으로 서너 차례 술잔을 돌렸다.
술병에 담긴 송자주가 찰랑찰랑 바닥을 보일 때였다. "마타룡, 그놈은 백 년 내 제일고수라는 조양인의 비전을 이어받았소.
놈을 처치할 자가 있겠소?" 천태림이 무겁게 물었다.
그는 더 이상 마타룡을 상대할 만한 자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도연오는 달랐다.
도연오는 대안 없이 말을 꺼내는 자는 아니었다.
죽이자고 했을 때는 죽일 수 있는 자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똑! 똑! 도연오가 손끝으로 서탁을 쳤다. "은형문주(隱形門主)!" 그가 내뱉듯이 말했다. "은형문주?" 천태림이 눈을 번쩍 떴다. - 은형문! 오백 년을 비전으로 계승해 온 살수문(殺手門).
문도는 언제나 후계자를 제외한 한 명! 은형문에 의해 죽은 자들이 누구라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
죽은 자는 말을 하지 않고 은형문의 후예들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소.
은형문주! 그가 아니면 당금(當今)에 누가 마타룡을 죽일 수 있겠소." 도연오가 안광을 번뜩였다. "은형문주라면 일을 맡길만 하지.
하지만...
은형문의 후예는 근 이삼십 년 사이 강호에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소.
어쩌면 절맥(絶脈)이 되었는지도 모르지." 천태림이 아쉬움을 표했다. "아니외다.
내가 들은 소문이 있소.
강서와 절강의 관제묘에 은형문의 표기(標旗)가 걸렸다고 하오.
표기를 걸었다는 것은 살인(殺人) 청부(請負)를 받겠다는 뜻이지요.
은형문주는 다시 살수행(殺手行)을 시작했소." "정말이오?" 천태림이 다급히 물었다. "그럼 누가 은형문의 표기로 장난이라도 쳤단 말입니까? 나는 아직 강호에 은형문을 상대로 장난을 칠 간 큰 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소." " .... " 천태림은 혀가 바짝 타는 모양이었다.
꿀꺽! 꿀꺽! 그가 연이어 술잔을 비웠다. "은형문주에게 청부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오?" 천태림은 당장이라도 살인을 청부할 생각이었다. "나에게 맡겨 주시오.
청부를 하는 방법은 내가 들은 바 있소." 도연오가 소매를 휘적 저으며 수염을 쓸었다. "도 채주께서 그런 일까지...
그저 고마울 따름이오." 천태림은 도연오의 호의에 감읍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일이 뜻대로 풀린다면 먼저 공을 받을 사람은 도 채주가 될 것이오." 그가 도연오의 술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 "손바닥을 뒤바꾸듯 말을 바꾸는 것이 세상 인심이오.
내가 천 채주의 말을 어떻게 믿겠소? 허허허!" 도연오가 술잔을 들며 말했다.
천태림의 안색이 변했다. "도 채주께서는 나와 몇 십년을 사귀었으면서도 아직 나를 모르오? 나는 은혜를 모르는 자가 아니오!"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껄껄껄! 알고 있소.
알고 있어.
괜히 해 본 소리니 귀에 담지 마시오.
단지...
우리 아이가 화인, 그놈에게 마음이 있는 듯 하던데." 도연오가 눈을 가늘게 뜨며 입가에 미소를 담았다. "하하하! 그 이야기였소.
일전에 말씀을 듣고도 마음이 바빠 깊게 생각하지 못했소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지.
당장 매파를 보내리다." 천태림이 호탕하게 웃으며 좋아라 했다. "화인, 그놈의 생각은 어떻소? 우리 아이에게 마음이나 있는지?" "신경 쓸 것 없소! 그놈은 이제껏 내 말을 거역해 본 적이 없소이다.
자! 술이나 듭시다.
이제야 마음껏 술에 취하겠군." 천태림이 도연오에게 건배(乾杯)를 청했다.
도연오와 술잔을 들이키던 그가 문득 생각난다는 듯이 시비를 쳐다보았다.
그가 눈살을 찌푸리며 도연오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하! 걱정하지 마시오.
저 아이는 듣지를 못하오.
이런 자리에 시중을 들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들었소.
몇 마디의 말은 알아들을 수 있지.
입 모양을 보고... " "아무렴! 역시 도 채주요." 천태림이 도연오에게 찬탄을 터뜨렸다.
평소라면 별스런 짓거리를 다하는 종자라고 속으로 욕했겠지만 오늘은 정말 도연오를 온갖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다 동원해서라도 칭찬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 * * 천화인은 척추 하부에서 일어난 화기(火氣)를 천천히 운행(運行)했다.
미저골에서 후두부까지 서른여섯번의 흡(吸)으로 양화(陽火)를 상승시키고 두정에서 하복부까지 스물네번의 호(呼)로 음화(陰火)를 하강시켰다.
구장춘 진인이 구결(口訣)로 전한 소주천(小周天) 행법! 한 번의 주천이 끝나면 화기는 꺼지고 원래 고요의 자리로 되돌아오게 되어 있다.
그리고 단전에 기가 모인다.
그러나 천화인은 벌써 몇 번의 소주천으로도 기를 생각만큼 응집시킬 수 없었다.
내력은 청성산에서 하산할 때보다 약해져 있었고 기의 운행도 자연스럽지 못했다. '뇌벽쌍불과의 일전에서 입은 부상이 의외로 큰가?' 결국 천화인은 좌정(坐定)을 풀었다.
그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뇌벽쌍불과의 싸움에서 입은 휴유증으로 내력이 손상을 받았다면 별 큰 걱정은 아니다.
하지만 세간행(世間行)에서 생긴 탁기(濁氣)로 인해 내력이 손상을 받았다면 문제는 컸다.
원정(元精)을 보(保) 하기 위해 탁한 음식도 가려먹었고 운기조식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력이 손상을 받았다면...
사부와 사형제들이 갈 곳이 없어 깊은 산속을 찾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시 세간에서는 청정한 몸과 마음을 지켜 내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사부님 말씀대로 진검(眞劍)을 얻기 위해서는 세상을 버려야 하는가?' 천화인이 검미를 꿈틀거렸다. '다시 입산한다고 하더라도 사문에서 나를 받아 주지도 않을 것이고...
버릴 수 없다.
하산을 하며 품은 꿈!'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화인은 천천히 선실을 나섰다.
이맘때면 삼협에서 부는 바람은 언제나 동풍(東風)이다.
서릉협에 주둔한 촉한의 유비 군(軍)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린 바로 그 바람! "으샤! 으샤!" 황평이 구령을 외쳤고 수하들은 삼협의 거센 물살에 맞서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천화인은 뱃전에 섰다.
휘-잉! 무산에서 부는 바람은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변해 가는 계절을 실감했다. '무엇이 문제를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었는가?' 천화인은 뱃전에 팔을 기대고 생각에 잠겼다.
이제 진지하게 작금의 일을 생각할 때였다. '무일!' 천화인은 쓴웃음을 흘렸다.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모든 문제는 역시 그 친구에게 있었다. '피해 간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 쉭! 천화인이 검을 뽑았다. "결국 이 판의 끝은 자네와 나의 한 판 승부가 되겠군." 그가 검을 수평으로 세우며 중얼거렸다.
물빛과 달빛에 어우러진 검이 묘한 빛깔로 천화인의 호승지심을 부채질했다.
제 16 장.
삼악오(三惡烏).
형양(衡陽)의 회안봉(回雁峯)을 첫머리로 하여 팔백 여리를 굽이쳐 치솟은 산! 축융봉(祝融峯)을 필두로 자개(紫蓋), 천주(天柱), 연화(蓮花)등 일흔 두 개의 봉우리들이 하늘을 받들고 있는 산은 중원 오악 중 남악으로 불리는 형산이다.
구향구배(九向九背)! 운봉무쇄(雲封霧鎖)! 형산을 논하는 단 두 구절.
구향구배는 상강이 굽이굽이 형산을 휘감아 돌기 때문에 붙여진 말이고 운봉무쇄는 산 위가 언제나 혼돈과도 같은 안개로 싸여 있기 때문에 붙여진 말이다.
웅장함도 화려함도 없기에 더욱 정취가 있는 산, 형산은 상강의 물줄기를 따라 굽이쳐 흐르다 장사악에 이르러 돌연 줄달음을 멈춘다.
장사악에서 동북 방향으로 이삼십 여리를 이르면 심처가 있다.
음풍곡! 밤낮 없이 차가운 바람이 부는 곳.
심처라 초부(樵夫)들도 발을 잘 들이지 않는 곳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십 여명의 무사들이 외인의 발길을 막아 이제 완전히 금역(禁域)이 된 곳이다.
장사악 인근의 촌로(村老)들은 음풍곡에 자금성 고관(高官)의 산장(山莊)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외인의 발길을 막고 있다고...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된 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일절 음풍곡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관리 나부랭이는 형산에 간혹 출몰하는 호랑이 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으스스한 한기가 추위를 불러왔다.
뚝! 뚝!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산고는 눈을 떴다.
이끼 낀 천장, 그녀가 있는 곳은 동굴이었다.
끊임없는 발열(發熱), 의식을 잃기를 몇 차례나 하며 도착한 곳이 결국 이곳인 모양이었다.
그녀의 전신은 아직도 땀으로 끈적했다.
그러나 더 이상의 발열은 없었다.
몸도 개운했다.
그녀는 사지를 꿈틀거려 보았다.
통증은 아직 느껴졌지만 다행스럽게 손과 발은 그녀의 뜻을 순순히 따라 주었다.
잘려 나간 곳은 없었다.
산고는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났다.
혼몽 중에 그녀를 인도하던 자들의 지껄이는 소리를 몇 마디 들었었다.
만로방 소속의 무사들이었다.
그렇다면 잡혀 있다는 이야기...
그녀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그녀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뇌옥(牢獄)인가?' 산고는 동굴 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쇠창살도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에 있겠지.'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의 처지에 대해 생각하려 않았다.
그녀가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산공은 무사한지?' 산고의 걱정은 역시 위무일이었다. "해해해!" 그러나 그녀는 이내 헤픈 웃음을 흘렸다.
위무일을 떠올리는 순간, 비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가슴을 후벼파고 있었다. "흥! 제깟 놈이야 죽든 말든!" 그녀가 혼자말로 투덜댔다.
산고는 머리를 무릎 사이에 박고 꼼짝을 않았다.
오싹한 한기가 그녀의 살에 소름을 돋게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산고는 문득 주위가 소란함을 느꼈다.
원래 시끄러웠는데 자신이 딴 생각에 팔려 듣지 못했음이 분명했다.
짐승의 포효, 비명, 히히닥거리는 웃음소리...
산고는 무릎 사이에서 얼굴을 들었다.
그녀가 천천히 동굴을 걸어나갔다.
동굴 밖은 장방형의 넓은 분지였다.
분지에서 제법 공을 들인 듯한 서너 채의 목채가 서 있었다.
산고가 아미를 찡그렸다.
목채 사이의 광경은 한 마디로 가관이었다. "살려 주시오! 살려 줘!"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고함을 지르는 자는 이만이었다.
이만의 머리는 어이없게도 호랑이의 입 속에 들어가 있었다.
흉폭한 눈빛, 아직 야성(野性)이 길들어지지 않은 호랑이가 분명했다. "커-왕!" 호랑이는 이만의 머리통을 씹지 못해 안달이었다.
호랑이가 이만의 머리통을 한 입에 아작 깨물지 못하는 것은 이만의 머리통이 돌처럼 단단해서가 아니었다. "우해해해! 히히히!" 괴소를 터뜨리며 좋아라 하는 호호백발(晧晧白髮)의 적의 노인! 호랑이가 입을 다물지 못하는 것은 그가 두 손으로 호랑이의 아가리를 턱 받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호랑이의 날카로운 이빨이 이만의 머리통을 씹으려 치면 호랑이의 입을 찢어져라 벌렸다. "아이고! 왜 하필이면 내 머리통이야? 내 머리는 텅텅 비어 맛있는 뇌수(腦髓)도 없다구?" 이만은 그 와중에도 쉴새 없이 조잘댔다.
하지만 바지 가랑이가 축축한 것을 보면 이미 제 정신이 아닌 모양이었다. "히히히! 이 바보 같은 고양이는 고기를 줘도 못 먹는군! 비켜라!" 적의 노인이 아가리를 잡은 채 호랑이를 냅다 던졌다. "카 - 항!" 호랑이가 땅바닥을 뒹굴며 비명을 질렀다.
집 만한 호랑이를 돌멩이 내던지듯 던지는 완력! "낄낄낄! 네놈이 못 먹는다면 내가 먹어 주마!" "아얏!" 이만이 머리를 감싸쥔 채 바동거렸다.
어처구니없게도 적의 노인은 이만의 머리를 물어뜯고 있었다.
이만이 깡충깡충 뛰었다.
적의 노인이 이만의 머리를 새처럼 쪼며 머리칼을 뜯었다. "크-흥!" 악에 받친 호랑이가 적의 노인의 뒤를 덮쳤다.
적의 노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쉭! 그가 장영을 내뻗었다. "캉!" 검은 손그림자가 번뜩이는 순간, 호랑이는 다시 땅을 곤두박질 쳤다.
그러나 그 정도로 어디 산중왕(山中王)의 기세가 꺾이랴? 호랑이는 더욱 흉폭스럽게 달려들었다. "캉!" "크- 헝!" 그렇게 두들겨 맞고도 달려드는 것을 보면 산중왕 호랑이도 짐승임에는 분명한 모양이었다. "이놈의 고양이가!" 호랑이가 지치지 않고 달려들자 적의 노인이 노화를 터뜨렸다.
그가 이만의 머리통을 놓고 벌떡 일어섰다.
이만은 남은 오줌을 마저 바지 가랑이에 흘리며 꼬르륵 쓰러졌다.
적의 노인이 호랑이에게 달려들었다.
퍽! 퍽! 퍽! 적의 노인이 장권(掌拳)으로 호랑이를 난타했다.
소의 목뼈도 한 입에 으스러뜨리는 이빨, 거목(巨木)을 일순간에 넘어뜨리는 발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호랑이는 마른날에 아낙네들의 방망이에 이불이 맞듯 적의 노인에게 펑펑 두들겨 맞을 뿐이었다. "캉!" 산림(山林)을 오시 하던 산중왕의 눈빛이 결국 두려움으로 흔들렸다.
호랑이가 꼬리를 빼고 달아났다. "모처럼 놀러 와서 어디로 가?" 적의 노인이 호랑이를 따라 갔다.
그가 호랑이의 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적의 노인과 호랑이가 한바탕 뒤엉켰다.
그러나 곧 호랑이는 적의 노인에 깔려 가쁜 숨을 허덕였다. "이랴!" 적의 노인이 호랑이의 귀를 잡고 말을 타는 시늉을 했다. "커-헝!" 호랑이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형산은 항상 먹이를 찾아 헤매야 하는 곳이다.
음풍곡에서 실려 오는 푸짐한 고기 냄새에 끌려 정신없이 찾아온 것이 호랑이에게는 일생 일대의 불운(不運)이었다. "이랴! 이랴!" 적의 노인은 더욱 신이나 호랑이의 귀를 말고삐처럼 당겼다.
산고는 그 같은 장면에 우습기도 하고 기가 차기도 해 말문을 열지 못했다.
그녀가 시선을 돌렸다.
목채의 그늘 한 편에는 담향이 앉아 있었다.
그녀의 표정도 해쓱했다.
역시 호호백발의 황의(黃衣) 노인! 그는 긴장대로 마치 신기한 물건을 건드리듯 담향의 이곳 저곳을 쿡쿡 쑤시고 있었다.
황의 노인이 장대로 젖가슴을 찔러도 저항 한 번 않았다.
담향은 이만에 비하면 자신의 처지가 백 배 낫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장방형의 분지 중앙에는 백의(白衣) 노인이 앉아 있었다. "이게 아냐! 이게 아냐!" 그는 땅바닥에 무엇인가를 그리며 혼자말로 중얼댔다. "별 놈의 늙은이들이 다 있군!" 산고가 피식 웃었다.
그녀의 조소는 백의 노인의 귀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백의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백미를 꿈틀대며 산고를 쏘아보았다. "흥!" 산고도 지지 않고 독살스럽게 백의 노인을 노려보았다. "감히!" 백의 노인이 성큼성큼 산고를 향해 걸어왔다.
산고가 고양이처럼 몸을 낮추며 수도를 세웠다.
휙! 그녀가 선수로 백의 노인을 공격했다.
백의 노인이 완보(緩步)로 슬쩍 몸을 비키며 장영을 뿌렸다.
타닥! 장권이 부딪히자 산고는 눈에 불똥이 튀었다.
그녀가 이를 악물고 수도로 백의 노인의 목을 찔렀다.
백의 노인이 우뚝 선 자세에서 금나수(擒拿手)를 펼쳤다.
산고가 아미를 찌푸렸다.
백의 노인은 너무도 쉽게 산고의 맥문(脈門)을 제압했다.
산고의 입이 딱 벌어졌다.
날카로운 경기가 그녀의 심맥을 토막토막 끊어 놓을 듯 밀려들었다. "이 더러운 늙은이! 놔!" 산고가 고함을 질렀다.
백의 노인이 한광을 쏟았다.
그가 내력을 더욱 돋구었다.
산고의 표정이 해쓱해졌다.
전신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다.
고통이 너무 커 소리 내어 악을 지르지 못할 뿐 백의 노인을 쏘아보는 눈빛은 더욱 독기로 가득했다.
백의 노인의 눈빛이 이채로 반짝였다.
분근착골(分筋錯骨)에 비길 바는 아니지만 그가 쏟는 투살기(透殺氣)도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다.
웬만한 자라면 살려 달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야 정상이었다.
백의 노인이 맹수처럼 이를 드러냈다.
그가 내력을 배가했다.
전신이 개미에게 뜯기는 듯한 통증, 요혈은 불침을 놓는 듯 했다. "해해해!" 산고가 느닷없이 웃었다.
백의 노인이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산고는 백회혈(百會穴)에 둔중한 통증을 느꼈다.
망치로 때리는 듯한 통증이었다.
그녀가 선 자세에서 까뭇 의식을 잃었다.
뚝! 뚝! 동굴의 천장에서는 물방울이 쉬지 않고 떨어졌다.
산고는 물방울 소리에 눈을 떴다.
동굴에 들어오는 빛의 양은 적어졌지만 아직도 낮이었다.
한 시진쯤 의식을 잃었을까? "괘...
괜찮소?" 이만이 엉금엉금 기어왔다.
산고는 이를 악물었다. "미...
미친 늙은이들이오.
어디서 저런 늙은이들이... " 이만이 탄식을 터뜨렸다.
잠깐 사이에 이만은 폭삭 늙은 듯 했다.
그녀의 뒤에는 담향이 앉아 있었다.
그녀의 표정도 불안으로 가득했다.
산고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파양호의 일만 해도 그녀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알지 못하는 늙은이에게 희롱까지 당하다니...
화가 복받쳐 눈물이 쏟아질 지경이었다.
그녀가 후다닥 동굴을 뛰어나갔다. "참으시오! 놈들은 미친 늙은이들이오! 사정을 봐 주는 자들이 아니란 말이오! 죽을 지도 모르오!" 이만이 다급히 소리쳤다.
죽을 지도 모른다니...
산고는 차라리 죽었으면 했다.
그녀가 독기를 가득 담은 눈으로 좌우를 살폈다.
백의 노인과 황의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분지에 있는 자는 적의 노인 뿐.
그는 아직도 호랑이를 상대로 희희닥거리고 있었다.
산고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녀가 다짜고짜 적의 노인을 육박했다.
적의 노인이 흉흉하게 달려드는 산고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아하! 네년도 이놈과 놀고 싶은 모양이구나.
가랏!" 적의 노인이 호랑이를 풀었다.
호랑이는 갑자기 얻은 자유에 잠시 당황한 듯 산림(山林)과 산고를 번갈아 바라보며 주춤거렸다.
호랑이가 산고를 덮쳐 갔다.
달려드는 적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 호랑이의 본능적 야성이었다.
산고는 상대가 호랑이든 사람이든 개의치 않았다.
분을 풀 상대만 필요할 뿐! "크-항!" 산고와 호랑이가 뒤엉켰다.
호랑이는 산고가 만만하게 보였던 모양이었다.
날카로운 이빨, 바람을 가르는 발톱...
놈은 비로소 산중왕의 위세를 보였다.
산고가 호랑이의 공격을 피해 이리저리 뛰었다.
칼만 있으면 호랑이 하나 정도 어쩌지 못할 그녀는 아니었다.
그러나 칼도 없었고 아직 몸도 완전히 쾌유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용맹분투로 호랑이에게 맞섰다. "카-항!" 호랑이의 울음소리는 산림을 뒤흔들고 분지는 흙먼지로 가득했다. "뭐야?" 주위가 소요하자 황의 노인이 부스스한 얼굴로 목채에서 걸어나왔다. "호오!" 그가 찬탄의 눈으로 호랑이와 싸우는 산고를 바라보았다.
처음에 이리저리 쫓겨다니던 산고는 이제 호랑이를 상대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발톱에 이리저리 찢겨 전신은 혈흔으로 가득했으나 뼈가 드러날 정도의 상처는 없었다.
호랑이는 오른쪽 앞발을 절룩거렸다.
산고의 발길질에 뼈가 상한 모양이었다. "또 저 계집인가?" 백의 노인도 밖으로 걸어나왔다. "잘하지?" 적의 노인이 헤벌쭉 웃으며 물었다.
백의 노인과 황의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잘한다는 것은 잘 싸운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실 호랑이를 상대하는 강호인들은 부지기수다.
이만도 적의 노인이 일방적인 편을 들지 않았다면 호랑이를 상대하지 못할 바도 아니었다.
세 명의 노인들이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은 산고의 투혼(鬪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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