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장풍파랑 - 50편 (50/61)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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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장풍파랑 - 50편 (5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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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무일은 시종일관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고 장능도 이제는 침묵만 지켰다.
장능의 얼굴은 세상의 번뇌를 모두 지고 있는 듯했다.
위무일의 고집을 이미 겪은 그였다.
장능이 마침내 침묵을 깼다. "소영주의 생각이 그러하다면……" 소영주…… 장능은 절대 위무일을 영주라 부를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더 이상 가타부타 하지 않겠소.
소영주의 말이 전혀 틀린 말이라고는 생각지 않으니……" 장능이 허탈하게 말했다. "장 숙부, 숙부의 기대대로 행동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자신의 뜻이 비록 옳다고 하더라도 위무일은 미안했다.
장능은 오로지 충정 하나로 장강의 물길을 오간 노신(老臣)이다.
마음을 가볍게 해주어야 하는데…… "괜찮소.
누구에게나 다 자신의 생각은 있는 법이니……" 위무일의 마음이 전혀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일까.
쌍십절의 만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불 같은 노화를 터뜨리던 그는 결국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앞서 한 말만 책임져 주시오.
추운객 어른이 돌아가시면 추운객 어른을 대신해서 후견인이 되겠다던 말……" "물론입니다.
흥악은 승명 형님의 아들입니다." "됐소, 됐어." 장능은 한숨을 쉬었다.
꿀꺽! 꿀꺽! 그가 주발에 담긴 술을 단숨에 비웠다.
취하기로 작정을 하고 왔는지 그는 술잔을 주발로 고집했다. "한잔 드시오." 장능이 수염으로 흐르는 술을 닦으며 주발에 술을 채웠다.
위무일도 주발에 든 술을 단숨에 비웠다. "소영주께 마지막으로 드릴 부탁이 있소." 장능이 자세를 고쳐 잡으며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담 대주를 찾아 주시오." "익?" "그렇소.
마타룡이 떠난다고 하니 옥룡이라도 불러들여야 총채의 서까래가 견디지 않겠소?" "익은 어디에 있습니까?" "찾아 주시겠소?" 장능은 약속부터 받아 내고자 했다. "장 숙부의 부탁이 아니라도 만날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두 분은 장강에서 가장 친했던 사이가 아닙니까? 곤룡보다 더 가까웠지요." 위무일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담 대주에 대한 소문은 들었을 것입니다." "술을 많이 마신다고 들었소.
원래 술을 그렇게 가까이 하는 친구는 아니었는데……" "세상을 살다 보면 술을 가까이 할 날이 어디 한두 번이겠소? 그 이상으로 좋지 않소." "장강에서 모습을 감춘 지 오래인 줄 압니다." 위무일도 담익에게 어떤 사정이 있음을 모르지는 않았다. "담 대주는 지금 무산에 있소이다." "무산에는 무슨 일로……" "산귀, 산매(山魅)…… 들어 본 적이 있소?" 장능의 말에 위무일이 실소를 흘렸다.
산공! 영남의 사람들이 산매를 부르는 말로, 바로 그에게 붙여진 이름이었다. "순무당주 모삼풍이 담 대주를 직접 만났소.
산귀! 그는 그렇게 변해 있었다고 하오." 장능이 술잔을 입으로 가져 갔다.
위무일은 미간을 좁혔다.
장능의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 말을 이리저리 돌리기 싫어하는 장능이었다. "사람을 육시하고 그 간을 씹어 먹는다면 믿겠소?" 술잔을 잡아 가던 위무일의 손이 굳었다.
무심하던 그의 눈빛이 이채로 반짝였다. "나도 믿지 않았소.
하지만 모삼풍이 직접 보았다고 하오.
그가 데려간 순무당의 수하들이 갈가리 찢겨진 채 우둑우둑 씹히는 것을…… 총채 내에서도 쉬쉬하는 비밀이오." 장능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태부인은 알고 있소?" 위무일이 술잔을 들며 물었다. "알고 있소." "그런데……" "나도 이유를 모르겠소.
왜 남도 아닌 친오라비를 그대로 두고 있는지.
담 대주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게 하고 있소." "알 수 없군.
지금 누구보다 익이 필요할 텐데." 위무일이 술잔을 비우며 중얼거렸다. "찾아가 주시오.
소영주는 담 대주의 가장 친한 벗이 아니오? 소영주의 얼굴을 보면 제정신을 차릴 수도 있을 것이오.
그리고…… 모삼풍도 당해 내지 못했소.
그가 달려들면 누가 그를 이길 수 있겠소.
그를 감당할 자는 장강에 곤룡과 소영주뿐이오." 장능이 어깨를 펴며 한숨을 쉬었다. "알겠습니다.
백부를 만난 후, 곧장 익을 찾아보겠습니다." "고맙소.
담 대주는 지금 무산과 금후봉 사이에 있는 호출에 있다고 하오." 장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위무일에게 포권을 한 후 소옥을 나섰다.
영채를 내려가는 그의 등이 유난히 왜소해 보였다.
위무일을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는 장능에게 뭔가 위로의 말을 던지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그가 장능을 위해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엽광은 개방의 분타주를 만나고 돌아왔다.
개방 분타주는 수십 년간 종적을 감춘 노물들을 찾는 일이라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도 벽부의 흉명은 오래 전부터 듣고 있었던지라 벽부의 잔당을 찾는 일에 쾌히 동의했다.
악양 분타주는 개방 총타에 야효를 비롯한 두 괴인의 용모파기와 함께 벽부의 잔당들을 찾는 일을 요청했다.
시일은 조금 걸릴 것이다.
하지만 위물일은 용모파기와 야효의 정체까지 밝혀진 이상 벽부의 잔당들이 개방 동도들의 눈을 벗어나지 못하리라 확신했다.
현장에 떨어진 머리칼 하나로 흉수를 찾아 내는 그들이었다.
엽광이 개방 분타에서 돌아오던 그 다음날 위무일은 행장을 꾸렸다.
추운객과 담익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위무일을 보내는 산고의 표정은 어딘지 불안했다.
그녀에게 위무일은 언제나 훌쩍 떠나 버릴 사람으로 보였다.
같이 가야 한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이미 위무일은 호변을 걷고 있었다. * * * 위무일은 나루터로 향하는 배의 진로를 바꾸게 했다.
그는 사공에게 군산의 으슥한 한곳을 가리켰다.
총채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수심이 낮아 배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지점에서 위무일은 동정호로 뛰어들었다.
가을의 강물은 찼다.
그는 가슴께까지 오는 물을 헤치고 군산에 발을 디뎠다.
멀리 총채의 전각들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는 총채를 등지고 작은 나무숲을 헤쳤다.
그가 가는 곳은 청류동이다.
사람 만나는 것을 유달리 싫어했던 추운객! 추운객은 군산에 올 때에도 사람을 꺼려해 총채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총채를 등진 작은 구릉에 동부를 파고 그곳에서 지냈다.
그 동부가 청류동이다.
반 식경 가량 수풀 사이를 헤쳐 나가자 청류동이 보였다.
위무일은 발걸음을 멈추고 옷깃을 여몄다.
부모를 남겨 두고 훌쩍 떠났던 장강…… 한소리 들을 각오도 단단히 했다.
그가 발걸음을 늦추며 청류동으로 걸어갔다.
동부의 입구는 소슬한 바람 속에 낙엽만 무성했다.
위무일은 미간을 좁혔다.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무일은 안색을 찌푸리며 청류동에 들어섰다.
사선으로 내리쬐는 빛살! 청류동의 내부가 그의 눈에 흐릿하게 들어왔다.
서너 사람이 겨우 누울 크기의 작은 동부…… 조촐한 식기(食器)와 다기(茶器)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바닥에는 먼지가 수북했다.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았단 말인가? 이상한 일이군.' 위무일은 주위를 살피며 고개를 갸웃 거렸다.
이전의 만회 때, 추운객은 장강 동도들에게 이번 춘절의 만회까지 청류동을 지키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아직도 모습을 보이지 않다니…… 그것도 장강이 한참 어수선한 이 마당에…… 주위가 시끄럽지 않아도 추운객이 약속을 소홀히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백부 추운객은 매사에 빈틈이 없는 사람이었다.
일상에서도 그는 수도승(修道僧)과 같은 엄격한 생활을 지켰다.
그런 까닭에 위무일은 추운객의 장기 출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뭔가 문제가 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어릴 때부터 추운객을 지켜보고 큰 그로서는 추운객의 행적이 수상쩍기 그지없었다. '급한 일로 어디를 갔다면 반드시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위무일은 다시 한 번 동부를 찬찬히 살피기로 했다.
그때였다.
위무일은 인기척에 퍼뜩 고개를 돌렸다. "누구냐?" 그가 밖으로 뛰쳐 나갔다.
동부 밖에는 어수룩한 차림의 청년 하나가 기름종이에 만두를 싸 들고 오고 있었다.
청년은 비호같이 달려드는 위무일에 놀라 만두를 뚝 떨어뜨렸다. "누, 누구…… 십니까?" 위무일의 기세에 질린 청년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금사강의 수하냐?" 눈앞의 청년은 금사강 수체의 무복(武服)을 입고 있었다. "마…… 맞습니다." 청년이 어눌하게 말했다. "여기는 무슨 일로?" "채주께서 명을 내리셨습니다.
추운객 어르신이 나타나면 찾는다는 연락을 전하라고……" "언제부터 기다렸느냐?" "족히 두세 달은 될 것입니다." "누구 찾아온 자는 없더냐?" "아무도 없었습니다." "자리를 비운 적은?" "보시다시피 음식을 구하러 갈 때를 제외하고는……" 청년이 땅바닥에 떨어진 만두를 가리켰다. "너는 저 동부에서 지냈느냐?" "제가 어찌 추운객 어르신의 거소에…… 저는 저기에서 지냅니다." 청년이 가리킨 곳은 청류동에서 삼 장여 떨어진 띳집이었다.
그는 위무일의 위세가 예사롭지 않음을 알고 묻는 말에 꼬박꼬박 답했다. "알았다.
너는 네 볼일을 봐라." 위무일은 금사강의 수하에게 등을 돌렸다.
그가 청류동을 바라보며 코끝을 매만졌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그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생각할수록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일찍 추운객을 찾아뵙지 못함을 후회했다.
일찍 찾아더라면 행방이라도 수소문했을 텐데…… 생각하니 담청도 이상했다.
어수선한 수로연맹.
도움이나 자문을 구하기 위해 몇 번은 청류동을 찾았을 만했다.
당연히 추운객의 장기 부재를 알아챘을 것이다.
그런데 찾을 생각도 않았고 자신에 대해서는 '지금 청류동에 없다'라는 말이 전부였다.
마음의 조바심이 점점 커졌다.
위무일은 청류동의 입구에 서서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가 단기내경을 운행하며 시력(視力)을 돋우었다.
동부의 내부가 대낮처럼 훤해졌다.
그는 동부의 끝에서부터 시작해 개미가 지나간 흔적조차 놓치지 않고 찾았다.
식기와 다기에 쌓인 먼지는 사람의 손길이 오래 전부터 닿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몇 개의 발자국…… 그 발자국에도 먼지는 쌓여 있었다.
그 발자국의 주인은 금사강의 천 채주라고 위무일은 단정했다.
동부의 끝 벽면(壁面)에서부터 청류동을 샅샅이 훑어 가던 위무일의 눈빛이 이채로 빛을 뿌렸다.
반들반들한 바닥…… 추운객은 원래 노숙(露宿)으로 밤을 새던 사람이라 청류동을 반듯하게 만들었을 리 없다.
그저 밤이슬만 피하면 그만일 정도…… 그래서 바닥이 모두 우둘투둘한데 그곳만은 유난히 매끄러웠다.
마치 누군가가 긁어 낸 듯한…… 반들반들한 흔적은 그곳만이 아니었다.
날카로운 물체로 긁어 낸 듯한 흔적은 동부 입구까지 점점이 이어져 있었다. '무엇 때문에?' 위무일은 청류동의 입구에서 허리를 폈다.
순간, 그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머리가 아찔했다. '핏자국! 누군가가 핏자국을 지우기 위해……' 위무일은 다시 후닥닥 동부로 뛰어 들어갔다.
반들반들하게 지워진 자리를 핏자국을 지우기 위한 흔적이 분명한 듯했다. '누군가 왔다.
백부님을 노리고…… 주황, 아니면…… 벽부의 잔당! 그들이 지난날의 원한을 품고……' 생각이 그곳까지 미치자 위무일의 표정이 해쓱해졌다.
그가 또다시 동부로 뛰어들었다.
위무일은 안력을 돋우며 동부 벽면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나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날고 뛰는 벽부의 잔당들이라 하나 일격에 추운객을 주살할 실력자는 없다.
최소한 동부에 싸움의 흔적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 그러나 동부에서는 칼끝이 경미하게 스친 흔적도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위무일은 머리를 싸맸다.
그는 동부의 입구에 서서 생각을 정리하려 애썼다. '청류동에서 누군가 피를 흘렸다.
백부의 피일 수도 있고 암습자의 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위무일은 생각을 하나하나 정리해 갔다. '만약 그 피가 백부의 피라면…… 싸움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실력차가 워낙 컸다든가, 아니면 자객…… 백부를 단 한 순간에 제압할 고수는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그렇다면 자객! 아니다.
백부님은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는 분…… 강호에 전설적으로 회자(膾炙)되는 은형문의 살수라 하더라도 저 피는 백부의 피가 아니라는 이야기……' 그는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저 피가 적의 피라면…… 핏자국을 지운 자는 분명 백부님은 아닐 것이다.
당신의 집에서 벌어진 일, 저렇게 공들여 지울 필요가 없지.
평생을 칼바람 속에 산 그분이 핏자국이 흉해 조각칼로 지우려고 애썼다고는 더 더욱 생각할 수 없고…… 암습자들이 지웠을까? 싸움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유치하다.
종적을 남기는 것이 그토록 염려스러웠다면 최소한 산화액(酸化液) 같은 것을 미리 준비했을 텐데, 칼로 흔적을 지우는 유치한 짓거리를 벌이다니…… 강호의 파락호도 아닌 추운객을 암습하려 했으면서……' 위무일의 생각은 다시 벽에 부딪히고 있었다. '생각을 다시 하자.
누군가가 이곳에서 큰 부상을 당했다.
그 부상자는 누구에게 끌려서든 혼자서든 핏자국을 떨어뜨리며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생각을 멈추었다.
부상자가 누구냐에 따라 생각 또한 천차만별이었다.
위무일은 그 생각들을 더 이상 밟아 나가지 않았다.
미궁(迷宮)에 빠진 일을 푸는 데 가장 위험한 적은 생각의 단정(斷定)에 의지하는 일이다.
먼저 필요한 일은 찾을 수 있는 모든 증거를 찾는 일…… 위무일은 모든 생각을 접고 동부로 들어가 처음부터 차근차근 주위를 살폈다.
핏자국을 지운 흔적은 동부의 입구에서 살짝 우측으로 이어져 있었다.
위무일은 동부를 나서 우측 수풀 속을 뒤졌다.
싸움이 계속 이어졌다면 나무에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그는 한 시진 이상 수풀 속을 뒤졌다.
그러나 역시 아무런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위무일은 갑갑했다.
추운객과 적들의 흔적을 찾는 일은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는 엽광을 부르리라 마음먹었다.
엽광은 강호 경험이 풍부한 자다.
그보다 일을 더 쉽게 풀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가 맥빠진 표정으로 청류동을 걸어나갈 때였다.
위무일은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금사강의 수하인 청년을 향해 재빨리 신형을 날렸다.
청년은 만두를 땅바닥에 떨어뜨려 할 수 없이 건량을 볶고 있었다.
한참 왕성한 혈기의 나이.
불 앞이라 더욱 더운지 그는 웃통을 벗고 불을 지피고 있었다.
위무일의 시선은 청년의 가슴을 쫓았다.
비상(飛翔)하는 학(鶴)이 새겨진 옥패…… "말하라!" 위무일이 한광을 쏟으며 소리쳤다.
청년은 화들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무, 무엇을……?" 그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물었다.
휙! 위무일은 옥패를 낚아챘다. "이것을 어디서 얻었느냐?" 그가 옥패를 내밀며 물었다. "아! 그…… 그것은…… 후…… 훔친 것이 아닙니다.
주…… 주웠습니다.
저번에 비가 엄청나게 와 띳집이 엉망이 되었죠.
그…… 그래서 새로 집을 만들던 중에…… 옥패도 흙에 파묻혀 있었던 모양인데 비에 씨…… 씻겨…… 드러난 것을……" 청년이 두서없이 중얼거렸다. "주운 곳은?" "바로 저기입니다." 청년은 위무일이 뒤졌던 수풀 한곳을 가리켰다. "앞장서라." 위무일이 소리쳤다.
학이 그려진 옥패는 무소유(無所有)로 평생을 살아 온 추운객이 유일하게 집착하던 물건이었다.
수룡왕은 그 옥패를 이승을 떠나던 한 여인이 추운객을 위해 마지막으로 남겼던 증표라 했다.
어쨌든 추운객은 그 옥패를 한시도 몸에서 떼지 않았다.
만약 옥패를 잃어다는 것을 알았다면 만사 제치고 그것부터 찾았을 추운객이었다.
그런데 그 옥패가 아무 곳에서나 뒹굴고 있었다는 것은 오히려 추운객에게 큰일이 있었다는 증거! 위무일의 걱정과 불안은 배로 늘어나 있었다.
그는 옥패가 떨어졌던 주변을 훑고 또 훑었다.
하지만 역시 별다른 흔적을 찾을 길이 없었다.
그러나 위무일은 이번에는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쨍! 그와 함께 주위를 수색하던 천 채주의 수하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는 물러나라!" 위무일이 청년을 제자리로 돌아가게 했다.
그가 옥패가 떨어졌던 주변의 흙을 비룡도로 찔렀다.
아무래도 불길한 예감을 누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굴꾼들은 쇠지팡이 한 자루로 옛 무덤을 찾아 도굴을 한다고 한다.
위무일은 도굴꾼을 흉내내고 있었다.
옥패가 이 근처에 떨어져 있었다는 것은 무엇인가 또 다른 것이 이 근처에 있다는 뜻! 위무일은 칼 끝에 느껴지는 감촉으로 그 무엇을 찾으려 했다.
자신의 불길한 예감이 빗나가기를 바라며…… 그는 옥패가 떨어져 있던 곳에서부터 원형을 그리며 비룡도를 찔러갔다.
그가 삼사 장여 떨어져 있던 곳까지 찔러 갔을 때였다.
위무일은 비룡도를 찔러 가던 손은 흠칫 멈추었다.
비룡도가 파고드는 땅은 부엽토(腐葉土)가 쌓인 것같이 물렀다.
다른 곳과 달리 땅도 조금 가라앉아 있었고 풀도 듬성듬성했다.
비룡도를 땅에 박는 그의 손길이 조심스러워졌다.
어느 순간, 위무일은 땅에 비룡도를 박고 석상처럼 섰다.
가슴이 심하게 요동쳤다.
칼 끝에 툭, 하고 느껴지는 감촉! 분명 돌은 아니었다.
위무일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퍽! 퍽! 퍽! 그가 칼로 황급히 흙을 뒤졌다.
누렇게 변색된 채 드러나는 옷, 손가락 뼈…… 비룡도에선 느껴지는 감촉은 사람의 뼈가 맞았다.
그가 비룡도를 내던지고 손으로 시신을 들어 냈다.
일 다경이 지났을까.
변색된 마의에 뼈와 머리칼만 남은 시신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시신이 형체를 보일수록 위무일의 얼굴은 기묘하게 뒤틀리고 있었다.
시신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을 때 위무일은 결국 털썩 무릎을 꿇고 말았다.
마의에 허리에 감은 작은 쇠사슬…… 마의는 추운객이 즐겨입던 옷이고 작은 쇠사슬은 잦은 여정에 이런저런 물건들을 걸어두기 위해 허리띠 대신 매던 것이었다.
불길한 그의 예감이 불행히도 맞아떨어진 순간이었다.
위무일은 무릎을 꿇고 앉은 채 망연한 표정만 지었다.
휘잉! 가을바람이 낙엽을 이리저리 날리며 시신을 덮었다. '누가……?' 위무일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이를 드러냈다.
추운객! 수룡왕과 함께 그를 아버지와 같은 애정으로 아껴 주던 분……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폭풍에 위무일은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었다. "백부……" 위무일의 눈에서 비로소 눈물이 흘렀다.
그가 눈물을 뚝뚝 떨구며 추운객의 이곳저곳을 살폈다.
혹시 추운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키, 머리칼…… 앙상한 뼈로 남은 자는 추운객이 분명했다.
사인(死因)은 좌측 가슴에 비수가 꽂혀 절명한 것으로 보였다.
좌측 늑골(肋骨)이 뚝 동강나 있었다.
위무일은 휘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부, 조금만 기다리시오.
이 원한은 천 배, 만 배로 갚아 줄 것이오." 그가 넋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그는 추운객의 시신을 세세히 살핀 후 자신의 장포로 감쌌다.
그리고 자신만 아는 은밀한 곳에 추운객의 시신을 묻고 청류동으로 돌아왔다.
수룡왕, 추운객, 아버지인 단심호…… 장감삼협으로 불려지며 천하를 위진하던 인물들이었다.
강호에 그분들의 적수를 꼽는다면 누가 있을까? 세외 비처에 자리잡은 구대문파(九大門派)의 문도라 불리는 자들, 당문(唐門)을 비롯한 사대, 팔대 세가의 가주(家主)들…… 하지만 근자에 그들은 강호의 일에 끼여든 적이 없다.
오히려 강호에 뛰어드는 것을 청명(淸名)을 흐리게 한다고까지 생각하고 있는 터…… 그들은 아니다.
적수는 누구인가? 장감삼협 중에서 가장 뛰어난 무공을 지녔다고 평해지는 추운객을 일격에 처치한 자는…… 그것도 비도 하나로 좌측 늑골을 꿰뚫었다.
주황! 아니다.
벽부의 잔당?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철경은 그도 익혔다.
자신이 추운객을 상대로 칼을 뽑았다면…… 솔직히 돌아가신 백부님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이길 자신은 충분히 있다.
그러나 비도 하나로 일격에 추운객을 이긴다는 것은 그로서도 불가능했다.
역시 정상적인 싸움으로는 추운객을 그렇게 눕히기는 힘들다는 뜻! '암습……' 위무일은 자객을 떠올렸다.
온갖 위장으로 백부에게 접근, 좌측 늑골에 비도를 쑤셔 박은 자객…… 가능한 일인가? 위무일은 고개를 저었다.
백부 추운객은 한시라도 무사로서의 긴장을 놓지 않는 사람이다.
수룡왕이나 아버지가 등뒤에 서는 것도 싫어했을 정도다.
외인에게 옆구리를 보인다는 것은 더욱 상상할 수 없었다.
암습을 당할 위치에서 변을 당했다면 백에 열 정도는 자객의 짓으로 의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청류동은 자객이 피습할 장소로도 전혀 적합하지 않았다.
누구인가? 추운객이라는 절대고수의 곁에 고양이처럼 다가가 등도 아닌 좌측 가슴에 칼을 쑤셔 박은 자…… 그 절대의 고수를 때려눕히고도 뒷수습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허둥지둥 달아나던 자는…… 누구인가? 누구인가…… 위무일의 혀는 바짝바짝 말라 갔다.
끝없이 밀려드는 이상한 생각이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리고 청류동에 새벽이 밝아 올 때쯤 위무일은 암습자에 대한 형상을 완전히 그리고 있었다.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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