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신했다가 다시 깨어났으니 자연 그 사이의 일은 알수가 없을 것이다.그렇다면 혹시 지 금의 나를 오해하게 되지는 않을까?) 백리운은 이미 세속의 인연을 끊어버리기로 작정한 사람이었으니 누가 자신을 다소 오해한다고 해도 별로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허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혹시 그녀는 원래 깨끗한 청백지신이었는지도 모른다.그렇다면 자연 이렇게 자신을 안고 있는 나를 의심하고 괴로워할지도 모르니,나는 역시 사실대로 그 녀에게 말해줘야 하지 않을까?) 백리운은 그런 생각을 한후 ,발걸음을 백의소녀가 가르쳐준대로 북쪽으로 옮 기며 다소 무심한 듯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낭자!당신은 정신이 들자마자 내가 이렇게 안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으니 아 마도 무척 이상하게 생각되었을 것이오.혹시 나를 이상하게 오해하게 되었을지 도 모르오.그러나,내가 지금 분명하게 말할 수가 있는 것은 나는 결코 당신에 게 그 어떠한 불의한 짓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오.] [......] 백의소녀는 그의 말을 들었을텐데도 묵묵히 가만히 있었다. 다만,그녀의 곱게 내리닫힌 두 개의 눈꺼풀이 문득 가느다란 떨림을 보이는 것이 느껴질 뿐이었다. 백리운은 그녀가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말을 이었다. [나는 만화교의 무리들이 호송하는 가마속에서 당신을 구했소.헌데,나는 마차 도 없고 말도 없고 했기 때문에 부득이 당신을 이렇게 옮겨가고 있는 것이오. 내 말을 이해하겠소?] [......] 백의소녀는 역시 말이 없었다. 백리운은 이것을 보고는 그녀가 자신의 말을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는 아무래도 좀더 자세히 설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말을 계속했다. [당신도 지금 기억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원래 당신은 만화교의 인물들 에게 결박당한채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는 중이었소.그러던 것을 나의 일행이 우연히 만화교의 인물들을 제거하게 되었는데,그들은 당신도 한통속으로 보는 것 같아서 부득이 내가 나서서 당신을 구하게 되었던 것이오.이제 당신은 안 전하니 안심을 해도 좋을 것이오.] 그때, 느닷없이 풋 하는 가벼운 웃음소리가 백리운의 귓전에 들려왔다. 급히 고개를 숙여서 바라보니,바로 백의소녀가 입술을 가볍게 깨물며 미미한 웃음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백리운은 이것을 보고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물었다. [아니,왜 웃는 것이오?] 백의소녀는 그제서야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예요.헌데 당신은......당신은 정말로 아무런 사심도 없이 나를 구한 것 인가요?] 백리운은 그녀가 느닷없이 그런 질문을 하자 다소 어이가 없고 기분이 나쁘기 도 했지만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이오.나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바라는 바가 없을 뿐만 아니라,이제 당신 이 말한 번성이란 곳에 도착하면 아무말없이 떠나갈 참이오.] 그말에, 백의소녀는 문득 눈꺼풀을 들어올려 백리운의 삿갓쓴 얼굴을 바라보더니 다시 물었다. [하지만 제가 그 말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죠?] 백리운은 이와같은 말을 듣고나자 내심 더욱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보아하니 백의소녀의 입가에는 이순간 역시 미미한 웃음기가 감돌고 있는 것 이 아닌가? 백리운은 다소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그녀의 이러한 태도를 보고는 한편으로 는 저으기 부담이 줄어드는 것을 느낄수가 있었다. 이 백의소녀는 비록 자신의 말을 믿을 수가 없다고 겉으로는 말하면서도 실은 여유가 만만한 것이, 전혀 마음의 충격을 받아서 두렵고 당혹한 태도와는 거리가 먼 것임을 알 수 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곧 기실 그녀가 그의 말을 거의 믿고 있다는 표현이었으므로,백리운은 이제는 그녀를 번성에 데려다 주기만 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백리운은 그저 전면만을 바라보며 묵묵히 걸음을 계속했다. 헌데 이때, 백의소녀가 그것을 보고 다시 물었다. [왜 당신은 대답을 하지 않죠?] [......] 백리운은 묵묵히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대꾸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란 말이오?] 이때 백의소녀는 입가의 웃음기가 다소 사라져 있었다. 그녀는 백리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은 최소한 나의 의문에 대해 어느정도의 변명을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요?] 백리운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는 없소.] 그는 이 백의소녀가 생긴 것 같지 않게 매우 당돌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느닷없는 상황에 대해서 놀라고 당황해하기는커녕 마치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 고 히히덕거리려고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백리운은 다소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내가 번성에서 당신을 내려놓고 사라지면 자연 알게 될 텐데 무슨 변명할 필 요가 있겠소?] 그 말에 백의소녀는 다소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이에, 백리운은 다시 묵묵히 계속해서 걷기 시작했다. 어느새, 사위에는 어두운 땅거미가 몰려오기 시작하고,저멀리 아득한 곳에 평원이 끝 나는 지점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문득, 백의소녀가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당신은 나와 헤어지면 어디로 가려고 하죠?] 백리운은 걸음을 옮기면서 고개만 돌려 그녀를 돌아보며 대꾸했다. [그건 뭣 때문에 물어보시오?] 백의소녀의 얼굴에 다소 부드러운 기운이 흘렀다. [제가 그런 것을 물어보면 안되나요?] 백리운은 다소 귀찮은 기분이 들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될 것은 없지만,이제 곧 헤어질 처진데 알 필요가 없지 않소?] [......] 백리운이 다시 묵묵히걸음을 옮기자 백의소녀는 다소 새침한 표정을 지었으 나,이윽고 잠시 후에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당신은 아까 저를 믿고 구했는데,저의 어느면이 그렇게 믿음성이 있어 보였 죠?] 백리운은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 걸음을 옮기며 대답했다. [사실 나도 당신을 전적으로 믿은 것은 아니었지만,어쩐지 그냥 당신을 구하고 싶었소.] 백의소녀는 눈빛을 반짝 빛내며 물었다. [어나,그건 어째서였을까요?] 백리운은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르겠소.] 허나, 실상 백리운은 그것이 바로 자신의 현실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백의소녀는 잠시 후 다시 물었다. [당신은 혹시 우리집에 가볼 생각은 없나요?] 백리운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이윽고 대답했다. [나는 소림사에 가볼 생각이오.] 백리운은 일단 세속의 인연을 끊는다고 생각하자 황종의의 편지에 관한 경각심 도 다소 누그러져서 그냥 대답해버린 것이었다. 백의소녀는 일시 눈을 동그랗게 떠보였다. [소림사요?그럼 당신은 머리를 깎고 중이 되려는 것이란 말인가요?] 여러 가지 사연이 있기는 했지만 백리운은 다소 귀찮은 생각에 그저 고개를 끄덕여 대답해버렸다. [그렇소.] 백의소녀는 눈을 동그랗게 뜬채 다시 물었다. [그럼 다른 사찰도 많은 데 왜 하필이면 소림사인가요?] 백리운은 그녀가 자꾸만 물어오는 바람에 귀찮은 생각이 들어서 대강 대답해 주었다. [소림사에는 아는 사람의 심부름으로 가는 길이었는데,이번에 그길로 그냥 눌 러앉아 버릴 생각이오.] 백의소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당신은......나이는 별로 많은 것 같지 않은데,왜 하필이면 승려가 되려고 하 죠?] 백리운은 문득 탄식을 하며 대답했다. [그것은 아마 내가 못났기 때문일 것이오.] 백의소녀는 그 말에 일시 눈을 휘둥그래 떴다. [그게 정말인가요?] 백리운은 자신이 어리석다고 말한 것이었는데,백의소녀는 그것을 용모가 못난 것으로 잘못 알아듣고는 순간 백리운의 죽립을 들어보았다. 그리고는, 그 추악한 용모에 일시 놀란 듯 아 하는 짧은 탄성을 발했다. 백리운은 그것을 보고 내심 씁쓸한 기분이 끊임없이 솟아올라 문득 자학하는 듯한 심사가 되어 그녀에게 물었다. [어떻소?당신은 이렇게 못생긴 사람을 본 적이 있소?] 백의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본적이 없어요.당신은......당신은 아마도 누군가가 당신에게 시집을 오 려하지 않을 것이기에 중이 되려는 것인가요?] 백리운은 내심 고소(苦笑)하며 대답했다. [그렇소.당신이라면 나에게 시집을 오려고 하겠소?] 백의소녀는 그말에 문득 안면에 다소의 홍조를 떠올렸으나 고개를 저었다. [나는 감히......그럴수가 없을 거예요.다만,나는 당신같은 사람을 오늘 처음 보았어요.] 백리운은 조소하듯 웃으며 대꾸했다. [나와 같은 얼굴은 아마도 천하에서 가장 못난 얼굴이겠지.] 백의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내 말은 그게 아니예요.나는 원래 어디가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곤 했었 는데,당신은 오히려 나를 무시하고......또 나를 경멸하는 것 같았어요.나는 나를 이렇게 대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어요.] 이때는 사방이 어둠속에 젖어들어서 물체가 희미하게 보일 때였다. 그러나, 백의소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실로 눈부신 것이어서,마치 어두운 가운데 한떨기 백련화가 피어오른 것 같았다. 백리운은 그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내심 그녀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 각했다. 아마 천하의 모든 남자들은 그러한 그녀의 아름다운 용모에는 정신없이 혹하 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백리운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것도 사람나름일 것이오.말하자면 이빨이 모두 빠진 사람은 아무리 맛있는 암소갈비를 구워준다고 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과 마찬가지요.] 백의소녀는 그의 비유가 재미있다고 생각했는지 웃으며 물었다. [그럼 당신은 이빨 빠진 노인이고 나는 암소갈비인가요?] 백리운은 문득 가볍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이 백의소녀는 남다르게 묘한분위기가 있는 것 같았다. 얼핏 보기에는 세상사에 대해서 훤하게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또 한편으로 는순진무구한 점이 있었다. 백리운은 문득 그녀의 그러한 순진한 마음에 접하게 되자,기분이 다소 가벼워 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백리운은 웃으며 대꾸했다. [하지만 그 암소갈비는 보통의 암소갈비가 아니어서 이빨 빠진 노인을 증오하 게 될것이오.] 백의소녀는 웃으며 다시 물었다. [그 말은,만약 당신의 얼굴이 잘 생겼다면 반드시 나에게 호감을 느꼈을 것이 라는 말인가요?] 백리운은 그녀의 그러한 질문에 문득 생각해보았다. 사실 그의 얼굴이 달라진다고 해도 특별히 이 백의소녀에게 지대한 관심이 생 길 것같지는 않았다. 그것은 그가 심옥산등에게서 받은 타격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백리운은 문득 그녀를 놀려주고 싶은 생각이 나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내가 이 맛좋은 암소갈비를 먹게 생겼는데,무엇 때문에 다른 사람에 게 양보를 하겠소?] 말과 함께, 백리운은 장난삼아 그녀를 한 번 힘주어 안아보았다. 그것은 백의소녀가 다시 한 번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때 웬걸,백의소녀는 웃지도 않고 순간 입을 다문채 얼굴만 발갛게 달아오르 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백리운은얼른 손의 힘을 풀며 무뚝뚝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돌보지 않는 천하에서 가장 추악한 사람이니 차라 리 그 암소갈비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오.] 백의소년느 그 말을 듣고 다소 상기된 안색으로 대꾸했다. [당신이 아무리 추악하다고 해도 반드시 아무도 당신을 돌보지 않을거라는 생 각은 틀린 것일 거예요.] 허나, 백리운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묵묵했다. 그는 이 대화가 어딘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고는 귀찮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 이었다. ...... 백리운은 묵묵히 계속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때, 잠시 침묵을 지키던 백의소녀가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참,중요한 것을 묻지 않았군요!당신의 이름은 뭐죠?] 백이운은 다소 씁쓸하게 웃었다. [사람의 이름이 뭐가 중요할 것이 있겠소?] 백의소녀는 대꾸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이름을 중요시하는 것이 아닌가요?] 백리운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렇지 않소.] 이에, 백의소녀는 마치 떼를 쓰듯 말했다. [그러지 말고 어서 말해줘요.내 이름은 보보라고 불러요.] -보보, 이 백의소녀의 이름은 그 용모만큼이나 아름답고 깜찍스러운 것이었다. 백리운은 이미 그녀가 먼저 이름을 말했기 때문에 더이상 말하지 않을 수가 없 어서 할수없이 대답했다. [나는 백리운이오.] [백리운......아주 좋은 이름이군요?] 백리운은 백의소녀 보보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척 만척하고 계속 고개를 전 면으로 돌리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때 어느새 그들은 평원을 지나서 하나의 준령앞에 이르러 있었다. 관도는 그 준령의 가운데에 있는 작은 계곡으로 나 있었는데,그 계곡을 따라 서 하나의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문득 전면에 불빛이 휘황한 하나의 거대한 성이 나타났다. 보보가 그것을 보고 문득 소리쳤다. [바로 번성이예요.] 백리운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역시 빠르게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보보는 그런 백리운의 굳은 표정을 보고는 문득 물었다. [당신은 정말 나를 저곳에 내려놓고 그냥 가버릴 건가요?] 백리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보보는 다시 물었다. [제가 저곳에서 무슨 변을 당해도요?] 백리운은 눈살을 다소 찌푸렸다.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보보를 다소 쏘아보며 말했다. [당신은 아까 저곳에 가면 무사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소?] 보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요,하지만 당신은......당신은 저를 너무 무시하는군요?] 보보는 백리운이 차갑게 대해준 것이 다소 서운한 듯 눈물까지 보였다. 백리운은 그런 것을 신경쓰고 싶지 않아서 계속해서 걸음을 옮겨갔다. 그리하여, 잠시 후에는 그들은 이윽고 번성의 거대한 성문앞에 이르게 되었다. 이 번성은 비록 양양성에는 비할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역시 번화하기로 소문 난 거성이었다. 성문안으로 가득찬 고루거각들과 사방에 휘황하게 빛을 발하는 오색의 무수한 궁등들,그리고 화려하게 옷을 차려입고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을 보게 되자 백 리운은 일시 정신이 다 없을 지경이었다. 백리운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보보를 바닥에 내려 놓았다. 보보의 몸은 마치 새털처럼 가벼워서 바닥에 내려놓으면 금방이라도 그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았는데, 의외에도 그녀는 전혀 피로한 기색도 없이 곧장 경쾌하게 몸을 세우는 것이었 다. 희미하게 비치는 불빛하래 서 있는 그녀의 아름다운 용모는 가히 천상의 신녀 처럼 눈부신 것이었다. 백리운은 그녀를 잠시 주시하다가 곧 말했다. [자,이제 나의 할일은 끝났으니 나는 그만 가보록 하겠소.] 말을 마치자, 백리운은 다시 성밖으로 몸을 돌렸다. 헌데, 그 순간 손목에 뭔가 부드럽게 휘감기는 느낌이 있어서 돌아보니,어느새 보보 가 다가와서 손목을 잡고 안으로 끌고 있었다. [아이 정말로 그냥 가려고 하네?그러지 말고 우리 어디가서 함께 저녁식사라 도 하기로 해요 응?] 보보의 체력은 이미 완전히 회복된 것 같았고,그녀의 그런 표정은 매우 친근 해보였다. 백리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가야하오.] 그는 다시 보보와 같은 여자에게 신경을 쓰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보보는 그것을 보고 더욱 매달렸다. [중이 되는 것이 뭐가 그리 급한가요?] 백리운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빨리 심부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소.] 백리운으로서는 한시라도 빨리 이 귀찮은 일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허나, 보보는 잠시 눈빛을 굴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사실 나는 주루에 가서 식사를 하면서 일단 집으로 사람을 보내야 해요.그런 데 거기까지 가는동안 사고가 나면 어쩌죠?그러니 제발 우리 주루까지만 함께 가도록 해요!] 백리운은 보보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도저히 거절할 수가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못이기는 척 그녀의 손에 이끌리고 말았다. [좋소,그럼 저녁을 먹고 헤어지기로 합시다.] 기실, 백리운은 길을 떠나기에 앞서서 마른음식들도 준비를 해야하고,또한 배가 고 파서 식사를 해야할 입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늦은 밤중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번성의 대로상에는 아직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보보는 그 번화한 길을 백리운의 손목을 잡고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가며 길을 안내했다. 그러다가 이윽고 그들이 들어간 곳은 만복루라는 이름의 주루겸 객점으로 사 용되는 이층건물이었다. * * * 때는 저녁식사도 거의 끝나가는 무렵이라,주루안에는 그다지 손님이 많지 않 았고 게다가 거의가 술손님들 뿐이었다. 백리운과 보보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무심코 그쪽으로 시선을 던지던 사람들은 일순 보보를 바라보고는 눈을 퉁방울처럼 부릅떴다. 그들로서는 이제껏 보보와 같이 지극하게 아름다운 소녀를 보지 못했었기 때 문이었다. 보보의 용모는 주루안에서도 마치 수백가지의 꽃들이 일제히 개화를 하는 것 처럼 눈부신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자연, 보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못했고 음탕함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허나 정작 당사자인 보보는 그러한 사람들의 시선을 거의 의식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즉시 좌우를 둘러보아 창가의 탁자가 비어있음을 발견하고는 곧장 백 리운의 손목을 잡고는 그쪽으로 이끌었다. 백리운은 실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불쾌하고도 짜증스러웠지만,그렇다고 기왕 에 들어온 판에 내색을 할 수도 없는지라 순순히 그녀의 앞에 앉았다. 그러자, 보보는 백리운을 행해 웃으며 물었다. [뭘 드시고 싶은가요?오늘 저녁식사는 보답하는 의미로 제가 대접해 드리겠어 요.] 백리운은 그녀의 태도가 너무나도 천연덕스러움에 내심 화를 내며 고개를 가 볍게 내저었다. [나는 별로 먹고 싶은 것이 없으니 알아서 시키시오.] 백리운은 내심 그녀가 왜 빨리 사람을 집으로 보내지 않는 것인지 궁금해졌 다. 세상의 모든 일이 짜증스러워진 백리운은 정말로 한시바삐 이 일에서 손을 떼 고 싶었다. 마치 그러한 그의 심사를 알기라도 하듯,보보는 그에게 가볍게 웃음을 보이더 니 이윽고 손짓을 하여 점원을 불렀다. 그런데, 백리운이 내심 우려하고 있던 일은 예상보다 빨리 터지고 말았다. 보보가 부른 것은 분명히 점원이었건만,잠시후에 그들의 탁자앞에 다가온 사 람은 점원이 아니라 두명의 우람하게 생긴 흑의대한이었던 것이다. 그 흑의대한들은 허리춤에 각각 날이 예리한 도를 하나씩 차고 있었는데,과연 그들의 앞에 이르자마자 본색을 드러냈다. 그들은 보보의 면전에 이르러 흉흉하게 웃으며 이렇게 물었다. [으흐흐!우리를 부르셨나?아니 그래 무슨 부탁을 하려는 게지?] 다른 한명의 흑의대한이 백리운의 모습을 둘러보며이렇게 말을 받았다. [그거야 뻔한 일이지.이 녀석이 시원치 않으니까 우리더러 오늘 밤 책임져 달 라는 말이 아닌가! 안 그래?] 백리운은 실로 이러한 자들을 만나게 되자 난감해졌다. 그는 무공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자들과 만나면 누구를 지켜주지도 못 할 뿐만 아니라 허망하게 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슬그머니 발을 뺄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백리운은 몸을 일으켜서 그들에게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이게 무슨 짓이오?당신들은 부끄러움도 모르오?] 흑의대한들은 뜻밖에도 왜소한 체격의 백리운이 당당하게 나오자 다소 의외인 듯 가볍게 흠칫하다가 다시 소리쳤다. [아니 뭐라구?이 육시럴 놈이!] 대한은 소리침과 동시에 백리운의 면전으로 달려드는 시늉을 했다. 이것은 한 번 상대의 동작을 떠 보자는 뜻이었다. 허나, 백리운은 강호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그러한 상대의 의도를 알 리가 없었다. 그는 상대가 다가드는 듯 하자 즉시 탁자를 짚고 몸을 날려 보보의 앞을 막아 서며 빠르게 소리쳤다. [어서 당신의 집으로 달아나도록 하시오.여긴 내게 맡기고......] 그러나, 그것은 백리운의 희망사항이었을 뿐 실제의 동작은 그대로 따라주지를 않았 다. 백리운은 미처 말끝을 다 맺지도 못하고 탁자의 모서리에 걸려서 벌렁 바닥에 넘어지며 순간 빌어먹을을 연발했던 것이다. 이것을 본 두명의 흑의대한은 대뜸 눈에 득의의 광망을 피워올렸다. 그들은 상대가 전혀 무공을 익히지 못한 애송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자 즉시 자 신감이 붙어서 백리운에게 바싹 다가들었다. [이 죽일 놈이!] 백리운은 급히 몸을 일으키려고 했으나,순간 어느새 자신의 멱살이 억센 힘에 의해 잡혀서 위로 들려지는 것을 느껴야 했다. 그는 한명의 흑의대한에게 멱살이 잡혀져 공중으로 들려진 것이었다. 흑의대한은 자신이 손쉽게 상대를 제압해버리자 즉시 기고만장하여 대소하며 백리운의 죽립을 벗겨버렸다. 그리고는, 상대의 얼굴이 의외에도 지독하게 추악한 것을 보자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쳤 다. [이 추악한 녀석아!그래,이 계집을 나에게 넘기겠느냐 아니면 죽음을 자초하겠 느냐?] 소리침과 동시에, 흑의대한은 백리운을 들지 않은 오른주먹을 휘둘러 별안간 탁자위를 후려쳤 다. 순간, 마치 마른벼락치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울려퍼짐과 동시에,흑의대한의 주먹에 의해 탁자 하나가 거의 박살이 나서 흩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흑의대한들의 체구에 걸맞는 괴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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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의대한은 이어,그 주먹을 허공에 두어번 붕붕 휘둘러 보인 다음에 백리운의 면전에 들이대는 것이었다. 그것은 만일 순순히 말을 듣지 않으면 백리운의 머리를 탁자와 똑같이 만들겠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