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객행(김용) - 10편 (10/82)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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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객행(김용) - 10편 (1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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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객은 나무 뒤에서 이와 같은 광경을 똑똑히 보고 있었다.
비쩍 마른 사내가 이리저리 칼을 휘두르는데 그 기세의 날렵한 것이 팔목의 힘만 이용한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즉 검술을 칼에다 응용한 것이었 다.
그러나 사연객은 그가 어떤 초식을 펼치고 있는지 그 이름을 알 수가 없었다.
한자루 무겁기 이를 데 없는 귀두도가 그의 손에서 휘둘러지 게 되었을 때 아무런 무게도 없는 것처럼 날렵했다.
거기다가 칼날은 나이 어린 거지의 머리 위를 스칠 듯하면서 지나쳐 가곤 했는데 그때 마다 한웅큼의 머리카락을 잘라내곤 했다.
그러나 나이 어린 거지는 매우 꿋꿋했다.
가슴을 편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칼을 칼빛을 번쩍번쩍 빛내며 뱀처럼 허공을 누비며 왼쪽에서 한 칼 질, 오른쪽에서 한 칼질등 그 나이 어린 거지의 머리 위에서 맴돌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졌다.
설흔 두번을 휘두르게 되었을때 비쩍 마른 사내는 호통을 내질렀다. "받아랏!" 그는 귀두도를 머리 위에서부터 아래로 곧장 내려쳤다.
쫙,하는 소리 와 함께 나이어린 거지의 오른쪽 소맷자락을 한조가 찢어냈다.
곧이어 그는 다시 그의 왼쪽 소맷자락을 찢어내었다.
그런가 하면 잇 달아 왼쪽과 오른쪽 바짓가랑이를 찢었다.
이어 비쩍 마른 사내는 칼을 거두면서 칼자루로 대비노인의 가슴팍과 배사이에 위치한 단중혈(檀中穴)을 향해 세차게 칼자루로 후려쳤다.
곧이어 그는 껄껄 웃었다. "하하하! 이녀석, 정말 대단하구나.
알아모실 수밖에 없군." 사연객은 그가 검대신 칼을 사용했으며 삼십 육초를 잇달아 펼쳐내는 데 전혀 반푼어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자 속으로 갈채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초식을 거두면서 칼자루로 대비노인의 사혈을 치는 것을 보고 속으로 외쳤다. '저자의 수법이 악랄하구나!' 이때 나이 어린 거지의 덥수룩한 머리카락도 그의 서른 두번째 칼질 에 제 모양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 되고 말았다.
그야말로 밤 송이 같은 머리가 되었다.
그는 사실 대비노인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버텨왔던 것이 다.
한편으로는 깜짝 놀라 움직일래야 움직일 수 없게 된것도 사실이었 다.
그는 자기의 머리카락을 만져보았다.
아니, 자기의 머리통이 제대로 있는지 만져보았다고 해야 정확하리라.
자기의 머리통이 여전히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 다.
도사와 추악한 사내는 일제히 갈채를 보냈다. "미(米) 향주.
정말 훌륭한 검법이오!" 비쩍 마른 사내는 웃으며 말했다. "이 소형제의 의리와 용기를 가상히 여겨 오늘 우리들은 한번쯤 양보 를 합시다.
두분 형제들! 이제 돌아갑시다." 도사와 추악한 얼굴의 사내는 대비노인이 칼자루에 얻어맞은 후 겨우 한가닥의 숨만 붙어 있는 것을 보고 곧 죽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무기를 찾아들고는 걸음을 옮겼다.
추악한 얼굴을 가진 사내의 걸음이 휘청거리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상당한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
비쩍 마른 사내는 오른손을 들어 나무 위에 대고 밀었다.
뚝뚝,하는 소리가 나면서 한 자 정도 깊이 박혀진 장검이 장력에 의 해 뽑혀졌는데 이때 대비노인의 어깻죽지에서 선혈이 왈칵 뿜어나오게 되었다.
비쩍 마른 사내는 그대로 뽑아든 검을 왼손의 검집에 꽂고 길게 소리 내 웃더니 사연객을 쳐다보지도 않고 걸음을 옮겨놓았다.
사연객은 속으로 생각했다. '알고보니 저 비쩍 마른 사내의 성이 미씨였구나.
장락방의 향주라고 했겠다? 그가 몇 수의 재간을 보인 것은 나 보라고 펼쳐보인 것이겠 지.
검법이 날렵하고 매서운 점을 겸비하고 있기는 하지만 현소장의 석청 부부보다도 못한데 나의 앞에서 위세를 보이겠다니, 흐흐흐!' 평소 그의 성질대로라면 미가가 그와 같은 재간을 보이게 되었을 때 반드시 모습을 나타내어 버릇을 가르치려고 했을 것이다.
상대방에서 만약 조금이라도 불경스러운 태도를 보인다면 대뜸 죽이 고 말았을 것이었지만 지금 그는 현철령의 일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아 더 쓸데없는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다만 싸늘한 안광으로 구경만 하고 있었을 뿐 나서지 않았던 것이다.
세 사람이 물러가는 것을 보고 나이 어린 거지는 대비노인에게 말했 다. "백부님, 제가 상처를 치료해 드리지요." 그는 비쩍 마른 사내가 찢어버린 자기의 옷조각을 들고 대비노인의 어깻죽지에 난 상처를 싸매 주려고 했다.
대비노인은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아니, 필요없다! 나의 주머니에 흙으로 빚은 사람이 있으니 너에게 주겠다." 그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그는 갑자기 고개를 힘없이 떨구었다.
그 대로 숨져버리고 만 것이었으며 그의 우람한 체구가 천천히 나무뿌리 쪽으로 미끄러지면서 주저앉았고 곧이어 땅에 너부러지고 말았다.
나이 어린 거지는 놀라 부르짖었다. "백부님! 백부님!" 그는 대비노인을 부축하려고 했다.
그러나 대비노인은 몸을 옴크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때 사연객이 가까이 다가와서 물었다. "그가 죽을 때 무슨 말을 했지?" 나이 어린 거지는 말했다. "그는, 그는 주머니에 있는 흙으로 빚은 사람을 나에게 준다고 했어 요." 사연객은 속으로 생각했다. '대비노인은 무림의 일대 괴걸로 무공의 조예는 나와 비슷한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이 사람의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이라면 중요한 물건인 지도 모른다.' 그는 자부심이 무척 강한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결코 죽은 사람 의 몸에서 어떤 물건을 가져갈 사람은 아니었다.
설사 대비노인의 몸에 희세의 기보를 지니고 있다 해도 그는 쳐다보 지도 않고 떠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너에게 준 것이라면 네가 가지도록 해라." 나이 어린 거지는 물었다. "그가 준 것이니 내가 가져간다 하더라도 도둑놈은 아니겠지요?" 사연객은 웃으면서 말했다. "물론 아니지." 나이 어린 거지는 손을 뻗어 대비노인의 주머니를 더듬었다.
곧이어 그는 나무로 만든 상자를 꺼냈다.
주머니 안에는 몇 덩이의 은자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예닐곱개의 가 시가 돋아 있는 암기와 몇 통의 서신도 들어있었다.
그리고 한 장의 그림을 그려놓은 지도도 있었다.
사연객은 그 편지에 무슨 글이 씌여져 있을까 하는 호기심을 품게 되 었다.
또 그 그림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는 호기심도 느꼈으나 자기가 손을 대기만 한다면 무림고인의 신분을 잃게 되는 행위라고 생 각하여 궁금증을 참고 움직이지 않았다.
나이 어린 거지는 나무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나무상자 안에는 솜으로 받쳐놓고 있었는데 나란히 세 줄의 흙으로 만든 사람 모형이 있었다.
한 줄마다 여섯 명이니 모두 열여덟명이었다.
이 인형이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고 하나같이 벌거숭이의 남자 들이었다.
그들의 살갗 위에 하얀 백악(白堊)을 묻혀 놓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곳곳에 줄기줄기 붉은 줄을 그어 놓았는데 붉은 줄에는 무수한 검은 점이 찍혀져 있었다.
모두 맥락(脈絡)과 혈도의 방위(方位)였다.
사연객은 그 장난감 같은 인형의 몸에 그려져 있는 것이 내공의 도보 (圖譜)라는 것을 즉시 알 수 있었다. '대비 늙은이가 죽을 때 인정을 쓰지 않았다고 해도 이 꼬마 녀석은 그의 시체에서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거야말로 그 늙은이가 괜 히 선심을 쓴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때 나이 어린 거지는 많은 흙으로 빚은 사람들을 보자 매우 좋아하 며 말했다. "정말 재미있군요.
그런데 왜 옷을 입지 않았는지 모르겠네요.
어머 니에게 옷을 만들어서 입혀 달라고 해야지.
그러면 더욱 보기 좋을 거 야." 사연객은 속으로 생각했다. '대비 늙은이는 나와 화목하지 못했지만 명성이 쟁쟁한 인물이었다.
그를 짐승 밥이 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는 말했다. "너는 너의 늙은 친구가 죽었는데 묻어주지 않을 셈이냐?" "묻어야죠.
하지만 어떻게 묻지요?" 사연객은 담담히 말했다. "너에게 기운이 있다면 구덩이를 파서 묻어주고 기운이 없다면 흙이 나 돌들을 그 위에 쌓아두면 된다." 나이 어린 거지는 말했다. "곡괭이가 없으니 구덩이를 팔 수가 없겠군요." 그는 흙과 돌들 그리고 나뭇가지등으로 대비노인의 몸을 덮어주었다.
나이가 어리고 힘이 작은 그는 간신히 시체를 덮게 되었을 때 온몸이 땀으로 젖게 되었다.
사연객은 옆에서 보고만 있었다.
간신히 그의 작업이 끝나자 사연객은 말했다. "가자!" 나이 어린 거지는 말했다. "어디를 가요? 나는 매우 피곤해요.
당신을 따라가지 않겠어요." 사연객은 물었다. "너는 왜 나를 따라가려고 하지 않지?" 나이 어린 거지는 말했다. "나는 어머니와 아황을 찾아갈래요." 사연객은 속으로 약간 놀랐다. '이 녀석은 나에게 부탁할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나를 따라가 지 않는다고 하는구나.
억지로 끌고 갈 수도 없지 않은가?' 그는 잠시 생각한 후 결정했다. '그렇다.
옛날 나는 현철령을 가지고 온 사람에게 무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맹세를 한 적이 있으나 속이지 않겠다는 말은 한 적이 없다.
그러니 이번에는 그를 속여야지.' 이와 같이 작정한 그는 말했다. "얘야, 나를 따라가자.
내 너를 도와 네 어머니와 아황을 찾도록하 마." 나이 어린 거지는 매우 기뻐했다. "좋아요! 따라가지요.
당신의 재간이 매우 대단하시니 저의 어머니와 아황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사연객은 속으로 생각했다. '더 말해보았자 소용이 없다.
다행이 그가 정식으로 부탁한 것이 아 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의 어머니와 그 개를 찾으려 고 또 얼마나 골치 아픈 일을 겪어야 할 지 모른다.' 이와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는 나이어린 거지의 오른손을 붙잡고 말했 다. "빨리 가자." 나이어린 거지는 대답을 했다. "예" 한데 그 순간 그의 몸은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그는 자기의 의사와 는 관계없이 달리 사연객에게 붙잡혀서 나는 듯 앞으로 달려갔다.
바 람을 타고 날아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 그는 재미있다는 듯 연신 부르짖었다. "재미있어요! 재미있어요!" 차가운 바람이 얼굴에 스치고 나무들이 재빨리 뒤로 사라져 가는 것 을 보고 그는 감탄해마지 않았다. "백부님! 백부님! 나를 끌고 이렇게 빨리 달릴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 지 못했어요!"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약간 존경의 빛이 서려 있었다.
날이 어두워졌다.
그들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었는지 모르지만 깊은 산골짜기에 이르렀다.
이때서야 사연객은 그의 손을 놓았다.
나이 어 린 거지는 두 발이 시큰거려 몸을 두어 번 휘청거리다가 대뜸 땅바닥 에 주저앉고 말았다.
잠시 앉아 있다가 그는 발바닥이 아프기 시작하 는 것을 느꼈다.
한참 후에 보니 두발이 부어 올라있지 않은가! "백부님, 저의 발이 부어 올랐어요." 사연객은 말했다. "네가 만약 나에게 치료를 해주십사 하고 부탁을 한다면 나는 즉시 너에게 두 발이 부어 오른 상처의 고통을 치료해 주겠다." 나이 어린 거지는 말했다. "알아서 저를 치료해 주신다면야 뭐라고 말할 수 없이 고마운 노릇이 겠지요.
하지만 부탁을 하지는 않겠어요." 사연객은 눈살을 찌푸렸다. "너는 정말 한번도 남에게 부탁해본적이 없느냐?" 나이 어린 거지는 말했다. "당신이 만약에 나를 치료해 줄 있다면 내가 부탁하지 않다러도 치료 를 해주었을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을 때 제가 새삼스럽게 부탁해 도 소용없지 않겠어요?" 사연객은 말했다. "왜 소용이 없다는 거냐?" 나이 어린 거지는 말했다. "당신께서 치료해주지 않는다면 제가 괴로운 끝에 아프다고 한바탕 울음을 터뜨릴지도 모르죠."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사연객을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따라서 만약에 당신께서 치료를 하시지 못할 때 오히려 당신의 마음 을 더욱 괴롭게 해드리지 않겠어요?" 사연객은 코웃음을 쳤다. "흥! 나는 마음 속으로 괴로워한 적이 없다.
어린 거지야.
바로 이곳 에서 자도록 해라."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꼬마가 다른 사람에게 구걸을 하지 않는 것을 보아 거지라 부르 는 것은 이치에 닿지 않는구나." 소년은 한 그루 나무에 의지하고 있었다.
발도 아프고 반나절동안 달 려 오느라고 지쳐있었다.
잠시후 그는 곤히 잠이 들고 말았다.
배고픔도 잊은 채 잠을 자고 있었다.
사연객은 나무 위로 올라가 편 안히 잠을 잤다.
이날 밤 사연객은 야밤에 한 마리의 야수가 나타나 소년을 물어 뜯었 으면 하고 바랐다.
그렇게 된다면 자연히 자신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데 이날 밤 토끼 한 마리도 나타나는 것을 볼 수 가 없었다.
이튿날 아침 사연객은 생각했다. '나는 저 애를 마천애(摩天涯)로 데려가야 되겠다.
그가 만약 매우 수월한 일을 부탁한다면 그의 운수가 좋을 것이고 그렇지 않을 때는 어찌 되었든 간에 그의 목숨을 빼앗아야 겠다.' 그는 헤벌쭉 웃으면서 다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이런 꼬마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데서야 어떻게 나 마천거사가 사 람 축에 낄 수 있겠어?' 그는 소년의 손을 잡고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소년은 처음 몇 걸음 옮기게 되었을 때 발바닥을 수만 개의 조그만 바늘이 찌르는 것 같아 참을 수 없이 어이쿠, 하는 고통에 찬 소리를 내질렀다.
사연객은 물었다. "왜 그러느냐?" 그는 소년이 '잠시 쉬었다가 갑시다' 하는 말을 해주길 기다렸다.
그런데 소년은 뜻밖의 말을 했다. "아무 것도 아니에요.
발바닥이 어딘가 좀 아픈 것 같으나 역시 앞으 로 가도록 해요." 사연객은 어쩌는 수가 없었다.
차츰 노기가 끓어올라 그를 붙잡고는 나는 듯 걸음을 옮겼다.
사연객은 쉬지 않고 남쪽으로 달려갔다.
고을을 지나게 되었을때 그는 밥가게나 반점에서 뜨겁게 데운 고기와 음식들을 집어들고 달려가면서 씹었다.
소년은 그가 남겨주면 좀 먹고 그렇지 않으면 달라고 하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엿새 째 되는 날, 그들은 험준한 산속을 달려가게 되었다.
소년은 무공을 몰랐다.
사연객이 부축해 주는데 따라 억지로 버티는 것에 불과했다.
사연객은 그가 부탁해 오기를 기다렸으나 시종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중에 그는 그 소년의 굳굳한 태도에 탄복하는 마 음마저 우러났다.
다시 하루를 달려갔다.
산길은 점점 험악해지고 가파로와졌다.
소년은 더이상 걸음을 옮길 수가 없게 되었다.
사연객은 부득이 그를 등에 업고 벼랑의 절벽을 이리저리 몸을 날려 올라갔다.
소년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아슬아슬한 순간에 그는 눈을 감고 아예 주위를 쳐다보려고 하지 않았다.
이날 정오 무렵 사연객은 한자루 붓대처럼 솟아있는 산봉우리 아래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산봉우리에서 드리워진 하나의 쇠사슬을 붙잡고 위로 올라갔다.
그 산의 봉우리는 민숭민숭하여 손발을 놓을 곳도 없 었다.
그 쇠사슬이 아니라면 사연객의 무공이 아무리 높다해도 좀처럼 기어 오를 수 없는 것 같았다.
산봉우리 위에 이르자 사연객은 소년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곳이 마천애다.
나의 아호는 마천거사라고 하지.
바로 이곳의 이 름에서 얻어진 것이다.
그럼 이제부터 너는 이 곳에서 머물도록해라." 소년은 사방을 두리번 거렸다.
봉우리의 지세가 매우 넓고 험했다.
그는 몸 주위에 연기와 안개같이 피어오르는 구름송이들이 감돌고 있 는 것을 보고 놀라 입을 열었다. "당신은 저를 도와 어머니와 아황을 찾아주신다고 하지 않았어요?" 사연객은 냉랭히 말했다. "세상이 이토록 넓은데 너의 어머니가 어딜 간 줄 알고 찾겠느냐? 우 린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어쩌면 너의 어머니가 아황을 데리고 너 를 만나보러 올지도 모르지." 소년은 나이가 어리고 철이 없었으나 사연객이 자기를 속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와 같이 험한 곳을 어머니와 아황이 기어오를 수 있 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시 그는 멍해져서 한마디 말도 하지 못 했다.
사연객은 말했다. "언젠가 네가 산 아래로 내려가고 싶을 때 나에게 한마디 부탁만 하 면 나는 즉시 너를 산 아래로 내려다 주마."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녀석에게 음식을 주지 않는다면 끝내 나에게 입을 벌리고 부탁 할 것이 아니겠는가?' 소년의 어머니는 그에 대해서 매우 냉랭했으나 한번도 그를 속인적은 없었다.
그는 처음으로 남에게 기만을 당하게 되자 눈에 눈물을 글썽 이게 되었다.
그는 흘러 내리려는 눈물을 애써 참았다.
이때 사연객은 동굴 안에서 이 광경을 살펴만 보고 있었다.
잠시후 동굴 안에서는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올랐다.
바로 음식을 만들 고 있는 것이었다.
잠시 후에는 향긋한 향내가 물씬물씬 풍겼다.
소년은 배고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 동굴은 매우 오래된 커다란 동굴이었다.
사연객은 일부러 아궁이와 솥을 동굴 입구쪽에 가져다 놓고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그는 소년이 자기에게 부탁하게끔 만들자는 속셈이었다.
그런데 소년 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서로 의지해서 살아온 터라 남의 것과 자기 것을 구분할 줄 몰랐다.
음식이 있으면 먹고 없으면 먹지 않고 남에게 빌어먹는다는 생각은 갖지 않았다.
그는 돌로 만든 식탁 위에 한 쟁반의 고기와 밥이 놓여 있는 것을 보 고 스스로 젓가락과 그릇을 가져와 밥을 뜨고 젓가락으로 찬을 집어 먹었다.
사연객은 어리둥절해졌다. '저녀석은 배짱이 두둑하구나.
그러나 그는 나에게 만두를 사준 적이 있고 대추와 술과 밥을 대접한 적이 있지 않은가? 만약 그에게 나의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한다면 도리어 의리없는 사내가 되고 말 것이다.' 그는 소년이 하는 짓을 무시했다.
이들 두사람은 서로 마주 앉은채 아무 말도 없이 밥만 퍼먹었다.
소년은 습관이 되어 있어서 밥을 먹은 후 스스로 자기 그르을 씻고 젓가락도 씻었다.
심지어 솥을 씻기도 했고 나무를 해오기도 했다.
이 것은 평소 그의 어머니와 함께 살 대 길들인 습관이었다.
한번은 그가 나뭇짐을 해가지고 동굴 안으로 돌아가려 했을 때 갑자 기 숲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마침 한마리의 조그만 노루가 튀어나왔다.
소년은 대뜸들고 있던 도끼로 노루의 머리를 내리찍어 잡았다.
그런 후 개울가에 가서 깨끗 이 씻고 살을 발라서는 동굴로 가져와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말린 후 두다리의 고기를 짓이겨서 솥에 삶았다.
사연객은 노루고기를 삶은 고 깃국의 구수한 향기를 맡고 숫가락으로 그 국물을 떠서 맛을 보았다.
그는 그 맛에 홀딱 반하고 말았다.
한편으로 그는 속으로 여간 고뇌하지 않았다.
노루고기로 만들어진 국은 맛이 매우 좋았다.
자기가 만든 그 어떤 음식보다도 훌륭한 것이 었다.
나이 어린 소년에게 그와 같은 재간이 있는 것을 보면 자기가 먹을 복이 터진 셈인지도 모른다.
사냥을 할 줄 알고 음식을 만들 줄 아니까 그가 자기에게 산 아래로 데려다 달라고 말을 하지 않는 이상 굶겨서 부탁을 받아내기는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같이 그들은 마천애에서 며칠을 보냈다.
소년은 허드렛일을 하고, 덫을 놓고, 딱총으로 날짐승을 잡는데 그 재간이 제법이었다.
그는 매일같이 신선한 음식을 만들어 사연객과 함 께 먹었다가.
다 먹지 못한 고기는 바람에 말려 저장해 두었다.
그의 요리 솜씨가 독특했기때문에 산골에서 만든 초라한것이라고 하나 독특 한 별미가 있었다.
사연객은 그 음식맛에 반해서 음식을 어떻게 만들 줄 알았느냐고 물 어보았다.
소년은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이라 대답했다.
사연객은 게속 질문을 한 결과 그 소년의 어머니가 음식솜씨가 뛰어나나 성격이 거칠 고 괴팍할 뿐만 아니라 게을러서 열 끼의 밥 가운데 아홉끼의 밥은 아 들더러 지어서 먹게 한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만약에 음식솜씨가 좋을 때, 또 그녀의 기분이 좋을 때는 옆에서 잘 가르쳐주고, 기분이 나쁠 때는 욕지거리를 하고 때린다는 것이었다.
사연객은 그들 모자 두사람이 그토록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솜씨 를 지닌 것을 보면 매우 총명한 사람인데 남편에게 버림을 받자 괴팍 하고 포악한 성질을 부리게 되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연객은 소년이 자기와 이야기하는 횟수가 줄어들자 속으로 약간 걱 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가 전에 결심한 맹세를 서둘러 실천하 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심복지환이 될 것 같았다.
어느 날엔가 소년이 사연객의 원수가 되는 사람의 교사를 받아 사연 객의 무공을 제거하거나 불구의 몸이 되도록 하라는 부탁을 하면 어떻 게 할까 걱정이었다.
그가 사연객을 보고 한평생 마천애에서 내려가지 말라고 한다면 사연 객은 그야말로 산속에 갇혀서 한평생을 보내야 할 형편이었다.
더군다나 소년이 그의 어머니와 아황을 찾아달라고 사연객에게 부탁 하면 매우 골치가 아프게 된다.
이렇게 된 이상 총명하고 지혜가 많은 사연객도 뾰족한 방법을 강구 할 수가 없었다.
사연객은 뒷짐을 진채 숲속에서 산보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소년 이 바위 곁에 앉아 싱글벙글거리며 돌 위에 한무더기의 물건을 쌓아 놓고 있을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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