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위에 놓아둔 것은 바로 대비노인이 그에게 준 열여덟개의 흙으 로 빚은 인형이었다. 소년은 그 인형들을 동쪽에 하나 놓고 서쪽에 하 나 놓기도 했으며 때로는 그것들을 줄지어서 싸움을 시키기도 하는 등 자기혼자서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사연객은 그 광경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과거 대비노인이 나와 북망산(北邙山)에서 무공을 겨루게 되었을 때 그의 장법이 강맹하고 금나수법의 변화가 신속민첩한 것을 볼 수 있었 다. 반시진을 싸운 후에야 나의 공학공(拱鶴功)에 한 수를 지게 되어 어려움을 알고 물러선 사람이 아니던가? 그는 내공도 고강했지만 외공 (外功)에는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 흙으로 빚은 인 형의 몸에 표기되어 있는 내공 요결을 매우 천박하여 남의 비웃음을 받기 쉽겠다.'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는 한 개의 인형을 들어올려 살펴 보았 다. 흙으로 빚은 인형의 몸에는 용천(涌泉), 연곡(然谷), 조해(照海), 태계(太谿), 수천(水泉), 태종(太鍾), 복유(復溜), 교신(交信) 등의 혈도가 그려져 있었고, 발을 따라 위로 올라가 배에 이르는 횡골(橫 骨), 태혁(太赫), 기혈(氣穴), 사만(四滿), 중주(中注), 맹유(盲兪), 상곡(商曲)을 지나 혀밑의 염천혈(廉泉穴)에서 끝나는 순환도가 표시 되어 있었다. 이 일련의 경맥은 바로 족소음신경(足少陰腎經)이라고 했다. 족소음신경의 경맥을 따라서 발바닥에서 인후까지 한줄기의 붉은 줄 이 그려져 있었다. 사연객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것은 내공(內功)을 수련하는 일반적인 법문(法門)이 아닌가? 각 문파의 입문하는 공부는 모두 이와 대동소이하다. 뭐가 중요하다고 인 형까지 만들어가지고 다녔지? 아,그렇구나. 대비늙은이는 평생동안 외 공(外功)만을 익혔으며 젊었을 때는 강호를 주름잡은 적도 있지만 결 국 나와 겨루어 패배하자 그 원인을 분석한 끝에 자기가 내공이 없어 서 패했다고 여기고는 열 여덟개의 흙인형을 지니고 다니면서 내공을 익혀 내외공을 겸비한 고수가 되려고 했구나. 나한테 패배한 것이 가 슴에 한이 맺했던 게로구나. 그러나 내공을 어찌 일조일석에 익힐 수 있겠는가? 대비늙은이는 이미 나이가 칠십이 넘었는데 늘그막에 익혀 서 무슨 소용이 있다고 그런 쓸데없는 짓을 했담. 저세상에 가서 실컷 익히라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는 껄껄 웃고 말았다. "하하하!" 소년은 그 웃음소리를 듣자 덩달아 따라 웃으면서 말했다. "헤헤헤! 백부님, 이 인형들에게는 수염이 있으니 어린애들이 아닌데 어째서 옷을 입지 않는지 정말 웃기네요." 사연객은 말했다. "그렇구나. 정말 우스꽝스럽다." 사연객은 열 여덟개의 흙인형을 하나하나 관찰했다. 그중 열 두개의 인형에는 각기 경맥을 표시해 놓고 있었다. 즉 수태음폐경(手太陰肺 經), 수양명대장경(手陽明大腸經), 족양명위경(足陽明胃經), 족태음비 경(足太陰脾經), 수소음심경(手少陰心經), 수태양소장경(手太陽少腸 經), 족태양방광경(足太陽膀胱經), 족소음신경(足少陰腎經), 수궐음심 포경(手厥陰心包經), 수소양삼초경(手少陽三焦經), 족소양담경(足少陽 膽經), 족궐음간경(足厥陰肝經) 등은 바로 정경십이맥(正經十二脈)이 었다. 나머지 여섯 개의 인형에는 임맥(任脈)과 독맥(督脈), 음잡(陰雜), 양유(陽維), 음교(陰橋), 양교(陽橋) 등의 육맥(六脈)이 그려져 있었 다. 기경팔맥(奇經八脈) 중에서 가장 난해한 것 이 충맥(衝脈)과 대맥 (帶脈)인 데 그것은 빠져 있었다. 사연객은 생각했다. '이건 소림파의 내공같다. 대비늙은이가 보물처럼 몸에 숨기고 다녔 건만 빠뜨린 부분이 있으니 있으나마나지. 그가 내공을 배우려고 했다 면 이런 흙인형을 지니고 다닐 필요도 없이 내공을 전문적으로 가르치 는 문파의 아무 제자나 붙잡고 몇달만 익혔어도 많은 진전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름을 떨친 그가 남에게 고개를 숙여 내공을 배우기 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체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테니까 말이 다.' 사연객은 다시 북망산에서의 결투를 회상해보았다. 그당시 사연객이 일초를 이기기는 했지만 운이 따랐던 것이다. '그당시 대비 늙은이가 내공의 기초를 쌓지 못했기에 망정이지 소년 시절부터 내공을 익혔다면 나는 삼백초도 견디지 못하고 그 에게 얻어 맞고 벼랑 아래로 떨어져 죽었을 것이다. 흐흐! 죽길 잘했지, 죽길 잘 했다구!' 그는 얼굴에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서성거리다가 돌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옳지. 저녀석이 인형을 가지고 놀고있으니 이 기회에 저녀석에게 인 형에 그려져 있는 내공을 가르쳐주자. 일부러 주화입마(走火入魔)하도 록 엉터리로 가르치면 내공이 심장으로 침입해 들어가 죽게 될것이다. 나는 옛날에 현철령을 지니고 온 사람에게 손가락도 대지 않겠다고 맹 세했다. 하지만 스스로 내공을 연마하다가 죽는 것은 내가 죽인 것이 아니다. 그것 참 묘안이로구나.' 사연객은 일을 처리할 때 언제나 기분내키는대로 했다. 비록 자기가 한 말을 반드시 지켰고, '신(信)' 이라는 한 자를 지극히 중시했으나 인의도덕은 그에게 있어서는 한푼의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그는 즉시 족소음신경이 그려져 있는 흙인형을 들고 말했다. "꼬마야. 너는 이 검은 점과 붉은 선이 무엇인지 아느냐?" 소년은 잠시 생각해 본더니 대답했다. "이 흙으로 된 사람들이 병들어서 그런 거예요." 사연객은 물었다. "왜 병들었다고 하느냐?" 소년은 대답했다. "내가 작년에 병을 앓을 대 온몸에 붉은 점이 돋았거든요." 사연객은 실소하며 말했다. "그것을 마진(麻疹)이라고 하지. 이 흙인형에 그려져 있는 붉은 선과 검은 점들은 마진이 아니고 무공을 배우는 비결이란다. 너는 내가 너 를 업고 봉우리 위로 날아오는 것을 보았지? 그게 바로 무공이야. 훌 륭하지 않더냐?" 이 말은 소년에게 무공을 배우고 싶은 마음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 내뱉은 말이었다. 그는 갑자기 두발로 땅을 박차며 몸을 곧장 허공으 로 뽑아 올렸다. 그는 휙, 하니 한 그루의 소나무 위로 올라섰고 왼발로 나뭇가지를 디디고 서있다가 몸을 다시 퉁기듯 허공으로 두둥실 솟구쳐 올랐다가 다시 나뭇가지에 내려섰다가 재차 몸을 솟구쳤다. 이와 같이 세번을 반복하자 마침 공교롭게도 두마리의 참새가 하늘을 날아갔다. 사연객은 자기의 재주를 과시할 겸 두 손을 뻗쳐 두마리의 참새를 낚 아채고 그제서야 천천히 땅 위로 내려섰다. 소년은 손뼉을 치며 웃었다. "정말 훌륭한 재간이예요. 정말 멋져요." 사연객은 손바닥을 펼쳤다. 그러자 두 마리의 참새가 날개짓을 하며 날아오르려고 했으나 손바닥 위에서 맴돌뿐 하늘로 날아가지를 못했 다. 사연객이 내공으로 두 마리의 참새를 빨아당겼기 때문이었다. 소년은 그의 손바닥이 펼쳐져 있는데도 두 마리의 참새가 날개를 퍼 득거릴 뿐 시종 날아가지 못하는 것을 보자 큰 소리로 외쳤다. "아! 재미있어요!" 사연객은 웃으며 말했다. "네가 한번 시험해보아라." 그는 두마리의 참새를 소년의 손바닥에 쥐어 주었다. 그 소년은 감히 손바닥을 펼치지 못했다. 사연객은 웃으며 말했다. "그 흙인형의 몸에 그려져 있는 그림은 바로 무공을 익히는 법문이 다. 네가 목숨을 걸고 그 늙은이를 도와주자 그 늙은이는 마음 속으로 고 마워서 그 인형들을 너에게 선물한 것이다. 이것들은 장난감이 아 니고 매우 귀중한 것이다. 네가 흙인형의 몸에 그려져 있는 붉은 선과 검은 점의 법도(法道)를 익히면 참새들은 너의 손바닥에서 날아가지 못하게 된다." 그 소년은 웃으며 말했다. "그것 참재밌네요. 저는 꼭 배우고 말 거에요. 그런데 어떻게 배우지 요?" 그는 손바닥을 펼쳤다. 그러자 두마리의 참새는 퍼드득거리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사연객은 껄껄 웃었다. "으하하하!" 그 소년도 덩달아 입을 헤 벌리고 웃었다. 사연객은 정색하고 입을 열었다. "재미있지? 네가 나에게 그 재간을 가르쳐 달라고 하면 나는 가르쳐 주겠다. 배우고 나면 정말 재미가 무궁하단다. 네가 산을 올라가고 내 려가는 것도 자유자재란다. 내가 들고 다닐 필요도 없게 된다." 소년은 크게 부러워하는 빛을 드러냈다. 사연객은 그 소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소년의 입에서 '가르쳐주세요' 하는 부탁의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너무 흥분하고 초조해서 자 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일각의 시간은 족히 흘러갔으리라. 그 소년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내가 당신에게 부탁을 한다면 당신은 나를 즉시 패줄 거에요. 그러 니 나는 배우지 않을래요." 사연객은 달래듯 말했다. "부탁을 해도 나는 절대로 너를 때리지 않아. 너는 나를 따라온 지 오래되었지만 내가 언제 너를 때렸니?" 그 소년은 말했다. "때린 적은 없어요. 그러나 나는 부탁하지 않을래요." 그가 모친에게 당한 고통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그는 입을 벌리고 부탁을 하기만 하면 모친에게 두들겨 맞았다. 모친은 그를 때리고 나 면 혼자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곤 했으며 며칠동안 우울해하며 혼자 다 ㅇ과 같이 중얼거렸던 것이다. "양심도 없는 것 같으니! 나는 네가 나에게 부탁 하기를 밤낮으로 기 다렸다. 줄곧 몇 년동안 기다려 왔지만 시종 너는 찾아오지 않았다. 하기야 나보다 못난 그 계집년에게 갔으니 어떻게 나를 찾아와 부탁을 하겠느냐?" 그 소년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 소년 을 보며 욕을 했다. "너는 이제서야 부탁을 해? 이미 때는 늦었다. 옛날에는 어째서 부탁 을 하지 않았지?" 그러면서 어머니는 몽둥이로 사정없이 그의 몸과 머리통을 가리지않 고 구타했다. 그 고통은 실로 견딜 수가 없었다. 몇 번 그와같이 죽도 록 매를 얻어맞자 소년은 팔구세가 된 뒤로는 어머니에게 절대로 부탁 을 하지 않았다. 그가 사연객과 함께 마천애에서 사는 환경은 어머니 와 살 때와 별 차이가 없었고 무의식중에 사연객을 어머니처럼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사연객의 얼굴엔 푸른 빛이 번쩍였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조금전에 네가 입을 벌리고 부탁을 하여 내 한평생의 심원을 풀어주 었다면 나는 자연히 너에게 무림을 주름잡을 수 있는 재주를 전수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너 스스로 죽음을 자초했으 니 죽어도 나를 탓하지 말아라.' 이렇게 생각하면서 사연객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네가 나에게 부탁을 하지않았지만 나는 너에게 가르쳐주겠 다." 그는 족소음신경이 그려져 있는 흙인형을 들고 모든 혈도의 명칭과 사람의 몸에 있는 방위를 상세히 설명하며 가르쳐주었다. 그 소년은 우둔하지 않았다. 듣는대로 기억하려고 노력했으며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즉시 질문을 했다. 사연객은 조금도 자기가 아는 바를 아끼거나 숨기지 않고 가르쳤으며 다시 내식(內息)을 운행하는 법을 전수하여 소년이 스스로 익힐 수 있 도록 했다. 반년이 지나자 소년은 내공의 진기를 족소음신경의 경로를 따라 운행 시킬 수 있게 되었다. 사연객은 그의 진전이 매우 신속한 것을 보고 매우 훌륭한 자질을 지 니고 있으나 빠르면 빠를수록 빨리 죽게 된다고 생각하며 회심의 미소 를 흘렸다. 그런 후 그는 다시 수소음신경의 혈도 경로를 설명하고 가르쳤을 뿐 아니라 차례로 흙으로 빚은 인형에 설명된 혈도를 가르키며 운기행공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와같이 그는 소년에게 차례로 혈도의 경맥을 설명하였다. 이 년이란 세월이 흐르자 소년은 이미 족궐음간경,수궐음심포경, 족 태음비경, 수태음폐경등 육음경맥(六陰經脈)을 모조리 연마하는데 성 공할 수 있었고 곧이어 음유와 음교의 두 혈도에 내공을 운행시키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이와 같이 시일이 흐르는 사이에 소년은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하 루에 세번 내공을 연마하는 외에 대체로 짐승들을 잡아 음식을 만드는 것으로 여가를 보냈다. 그는 사연객이 그에게 무공을 전수한 이유가 바로 그를 죽게 만들기 위함임을 모르고 있었다. 다만 최근에 내공을 연마할 때 전신이 싸늘 히 추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 고통을 견딜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사연객에게 물었다. 사 연객은 시치미를 떼고 무공을 연마할 때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라고만 말했다. 그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열심히 내공을 연마했으며 사연객이 그에 게 가르쳐준 내공의 심법이 완전히 전도된 것임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 다. 자고로 내공을 연마하는 것은 몸을 튼튼히 하고 병을 고치겠다는 생 각에서뿐만 아니라 상승무공의 기틀을 닦겠다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따라서 반드시 수(水)와 화(火)가 서로 도와야 하며 음양이 배합을 이 루어야 하는 것이었다. 족소음신경을 연마한 수 족소양담경을 연마해야 하는데 이렇게 해야 음양이 조화를 이루어 소음(少陰)과 소양(少陽)이 융화되어 체력이 강 해지게 되는 것이다. 사연객은 그에게 소음, 궐음, 태음, 음유, 음교의 경맥을 익히도록 하면서 소양과 양명 등 양(陽)에 속하는 경맥은 전혀 가르쳐주지 않았 다. 이와 같이 수년이란 세월이 흐르자 소년의 몸안의 음기는 크게 성하 고 양기는 쇠퇴하게 되었다. 음한 기운이 축적됨에 따라 이미 위험한 경지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이때 내공이 조금이라도 차질을 일을키게 된다면 즉시 구원할 수 없 는 상태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사연객은 그가 여러가지 음한 기운의 침습을 받고도 아직까지 목숨을 잃지 않는 것을 보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생각해본 그는 이윽고 그 이유를 깨달았다. 소년이 멍청해 보이며 세상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 마음 속에 전혀 잡념이 없었기 때문에 주화입마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만약 다른 사 람이라면 이 수년중 칠정육욕의 침입과 훼방에 의해 터무니없는 공상 을 하게 되었을 것이고 이미 죽은지 오래 되었으리라. 사연객은 생각했다. '이 개잡종이 산속에서 대자연을 벗하니까 마음 속에 번뇌가 없어서 주화입마가 되지 않는구나. 하산을 시켜 속세의 맛을 보여주면 며칠 못가 뒈질 것이다. 특히 여자 맛을 보게 해야 효과가 좋을텐데. 하지 만 무림의 인물을 만나게 되면 놈이 숨이 붙어 있는한 그를 조종하여 나를 제압할지도 모른다. 안되지. 그건 너무 위험해.' 그는 위와 같은 모험을 할수 없다고 판단하고 생각을 고쳐 먹었다. '나는 그에게 다시 구양(九陽)의 여러 경맥을 가르쳐주어야겠다. 하 지만 결코 음양조화의 방법은 가르쳐주지 말아야지. 그의 내공진기의 양기가 상당한 경지에까지 축적된다면 그때 음양은 조화를 이루지 못 하고 서로 상극하게 될 것이며 한쪽이 완전히 고갈되는 상태에 이를 때까지 용호상박의 충돌을 빚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시종 마음 속으로 잡념을 일으키지 않는다 해도 약간 차질이 생긴다든가 훼방을 놓기만 하면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그는 양교맥의 연마법을 소년에게 가르쳤다. 이번에는 소양, 양명, 태양, 양유, 그리고 양교로 이르는 차례를 밟지 않고 가장 어려운 양 교맥으로부터 시작했다. 음양이 모두 통하는 임독(任督)의 두 경맥은 그 소년의 지금 공력으 로선 연마할 수 없을 것이고 또 사연객의 뜻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가르쳐 주지않고 무시해버렸다. 소년은 요결에 따라 내공을 연마하게 되었는데 진전은 매우 느렸지만 성격이 굳굳한 탓으로 일년 남짓한 세월에 양교맥을 연마하는데 성공 할 수 있었다. 그 후에 그는 일맥을 따라 일맥의 혈도를 익혀갔다. 이 수년간 마천애에 준비해 둔 소금이나, 쌀,술,간장 등이 다 떨어지 게 될 때면 사연객은 소년을 데리고 산아래로 물건을 사러가기도 했 다. 그는 소년 혼자 마천애에 내버려둘 수가 없었던 것이다. 혹시나 어떤 사람이 빈틈을 타고 들어와 그를 인질로 삼아 잡아간다면 자기 목숨을 상대방의 손에 쥐어주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매년 마천애에서 수차 고을 쪽으로 내려가기는 했지만 조 그만 고을에서 물건을 구입하는대로 지체하지 않고 돌아오곤 했다. 소년은 날로 몸이 우람해지게 되었고 옷차림과 신발 등도 점차 큰 것 을 사야 했다. 소년은 이미 십팔구세가 되었으며 체구도 우람해졌다. 사연객보다도 머리 반이 더 컸을 정도였다. 사연객은 매일 그에게 무공을 전수하는 외에 농담같은 것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행히 소년은 어릴 적부터 어머니와 함께 살았으나 어 머니 역시 그를 얼음과 같이 차갑게 대했기 때문에 습관이 되어 아무 렇지않게 여겼다. 그의 어머니는 종종 그를 때리고 욕했으나 소년은 웃지도 않았고 성 을 내지도 않았다. 마천애에서 세월을 보내는 동안 그는 짐승들을 사냥하는 것 외에 내 공의 연마에만 정성을 쏟고 있었다. 전혀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이다. 이와 같이 총총히 몇 년이 흘러가게 되었다. 여러 양에 속하는 경맥 으로 완벽하리만치 내공을 운행할 수 있었다. 사연객은 서른 살때 충격을 받아 이 마천애에 은거하게 된 사람이었 다. 본래 그는 강호에 좀처럼 나가지 않는 사람이었으나 이 몇 년간은 소 년을 데리고 있었기 때문에 잠시도 소년의 곁을 떠 날 수 없어서 더욱 강호에 나가지 못했다. 그는 열심히 자기 문파의 재간을 익히는 외에 일로(一路)의 검법과 장법을 창안하였다. 이날 사연객은 아침 일찍 일어났다. 그는 소년이 마천애 동쪽의 둥근 바위에 앉아 떠오르는 햇살을 향해 내공을 연마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소년의 오른쪽 머리 위에 하얀 기운이 모락 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것은 바로 내공이 상당한 경지에 도달한 증거였다. 사연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석, 이제 너는 한발을 지옥의 대문안으로 들여놓은 셈이다.' 그는 이와같은 내공을 연마하게 된다면 반드시 한시진이 지난 후에야 수련이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즉시 경공신법을 펼쳐 마천애 뒤에 있는 소나무 밭으로 갔다. 이때 아직도 아침 이슬이 채 마르지 않아서 숲속은 맑고 고요했다. 사연객은 깊이 숨을 들여마셨다가 곧 내뱉았다. 별아간 그는 왼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그리고 오른손을 벼락같이 후려치면서 손짓에 따라 몸을 움직여 십여 그루의 커다란 나무 사이에서 이리저리 몸을 날렸 다. 갈수록 그의 몸놀림이 재빨라지고 두 손으로 후려치는 소리가 가 볍게 휙, 휙, 일었다. 그는 두손을 휘둘러 연신 나무를 향하여 후려치면서 발걸음을 더욱 빨리 놀리고 있었는데 반면에 손놀림은 갈수록 느려졌다. 발걸음이 빨 라지면서 손놀림이 느려지게 되자 세차면서 급격한 기운이 사라지고 느릿하면서도 매서운 맛이 남았다. 이것이야 말로 무공의 최고 경지라 고 할 수 있었다. 사연객은 흥이 나서 벼락같이 길게 휘파람을 내불며 펑, 펑, 하는 이 장으로 소나무를 후려쳤다. 곧이어 그는 우수수 소나무잎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장법을 전개해서 수천수만을 헤아리는 소나무잎을 하늘로 치솟 아 오르도록 후려쳤다. 소나무 잎들이 끊임없이 아래로 떨어졌으나 그의 휘몰아치는 장풍은 시종 솔잎이 땅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고 있었다. 소나무 잎은 끝이 뾰족하고 무게가 있어 보통 나뭇잎만큼은 바람을 타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장력으로 수천수만의 솔잎을 자기의 장풍 에 따라 허공에서 나부끼도록 만들었다. 내력은 형체도 실체도 없는 것이었지만 은연중 응결된 양상을 보였 다. 이때 수천수만을 헤아리는 솔잎들은 한 무더기의 파란 그림자를 이루 어, 허공에서 맴돌며 오락가락하는 사연객의 몸을 완전히 뒤덮고 있었 다. 사연객은 자기가 수년간 애써 연마한 내공이 어떤 경지에 도달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끊임없이 내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솔잎들이 좀더 빨리 움직이게 하면서 그 솔잎들이 퍼져 있는 범위를 확대시켜나갔다. 녹색의 솔잎으로 이루어진 원이 점차 바깥쪽으로 움직이도록 만든 것 이다. 그 테두리가 넓어지면 내공으로 솔잎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종을 하기 란 매우 어려웠다. 따라서 그 테두리가 넓어지자 바깥쪽의 솔잎이 떨 어졌다. 사연객은 이때 숨을 길게 들여마시며 내력을 끌어올려 벼락같이 쏟아 냈다. 떨어지는 솔잎은 더이상 없었다. 그는 속으로 기뻐하며 연신 내력을 끌어올렸다. 손짓 발짓하는 사이에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상쾌한 기분이 들게 되고 의(意)와 신(神)이 하나로 뭉쳐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는 점차 무아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다. 한참후 그는 자기의 체내에 축적된 내력이 모조리 소모된 것을 느꼈 다. 이와 같은 상태하에서 다시 공력을 돋운다면 몸에 손실을 가져오기 마련이었다. 그는 즉시 내력을 서서히 갈무리했다. 솔잎들은 천천히 아래로 떨어 졌다. 따라서 그의 몸 주위에 한 청색의 둥근 원이 이루어지게 되었 다. 사연객은 환히 웃으며 만족한 빛을 띄었다. 갑자기 그는 안색이 홱 변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전후 좌우에 아홉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 를 에워싸고 아무 말도하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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