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객행(김용) - 13편 (13/82)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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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객행(김용) - 13편 (1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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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파른 절벽을 타고 뛰어내리면서 이와 같이 기분 좋은 방향으 로 생각을 했으나 역시 울화가 치미는 것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곧 소년이 적의 수중에 돌아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이렇게 된다면 차후로 무궁한 화근이 들이닥칠 것 같아 그는 여간 번 뇌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내력이 회복되는 즉시 장락방으 로 달려가 뒤엎어 버리면 될 것이었다.
스스로 개잡종이라고 하는 소년의 얼굴을 대면하지 않으면 그들이 자 기를 어떻게 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그는 소년이 장 락방의 교사를 받아 자기에게 무리한 요구를 해올까봐 두려웠다.
군자는 원한을 갚는데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다고 했으며 소년의 팔음팔양(八陰八陽) 경맥에 내공을 운행하는 일은 이제 막바지에 도 달했다.
그 소년은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소년이 죽은 후에 그가 다시 장락방을 찾아가서 원한을 갚아도 나쁠 것은 없다는 생각이었다.
지금은 안전을 기해야 한다고 속으로 생각했 던 것이다.
패해석은 사연객이 갑자기 물러가자 크게 의혹을 느꼈다.
그는 사연 객과 석 방주의 교분이 두터운데 어찌해서 미 향주에게 살수를 펼쳤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여러가지 면에 이상한 점이 있었으나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혹시 사연 객이 자기네의 계책을 알아낸 것이 아닐까? 사연객이 석 방주와 무슨 이야기를 나눈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어 삽시간에 그는 마음이 무거워지고 말았다.
오랫동안 생각이 잠겨서 요모조모 궁리를 해보았으나 여전히 짐작되 는 일이 없었다.
그는 몸을 돌려 미 향주를 부축하고 두 손을 그의 등뒤에 있는 혼문 (魂問)과 백호(魄戶) 두 요혈에 갖다대고 내력을 주입시켜 주었다.
잠 시후 미 향주는 눈을 뜨고 나직히 말했다. "패 선생께서 목숨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패해석은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미 형제는 안심하고 잠시 쉬도록 하시구료.
아직 몸을 움직이는 것 은 무리이니 절대 스스로 운기할 생각은 하지 마시오." 조금전 사연객의 문승무위라는 일 초는 미 향주의 목숨을 빼앗는 동 시에 패해석에게 공격을 가하려는 살수였던 것이다.
패해석이 만약에 손을 뻗쳐 미 향주의 몸을 막았더라면 미 향주는 전 후에서 격사된 두 줄기의 내력에 즉시 목숨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그 래서 백전 노장인 패해석은 왼쪽 무릎으로 그의 아랫배를 슬쩍 걷어차 올려 등뒤로 날아가 떨어지게 했고 일 장을 격출하여 사연객의 내력을 거의 해소시켜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다행히 그 때 사연객은 내력이 일성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패해석의 일 초가 지극히 묘하다 하더라도 미 향주는 목숨 을 건지기 어려웠을 것이었다.
패해석은 이때 미 향주를 가만히 땅 위에 내려놓고 두 손을 들어 그 의 가슴팍과 아랫배를 안마해주었다.
이때 갑자기 기쁨에 넘쳐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다. "방주가 여기에 계시다! 방주가 여기에 계시다!" 패해석은 그 말에 크게 기뻤다. "미 형제, 당신은 이제 위험에서 벗어났소.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나는 방주에게 가 보아야 겠소." 그는 재빨리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달려갔다. '다행스런 일이다.
만약에 방주를 찾지 못했다면 본방은 이대로 풍지 박산이 나고 말았을 것이며 눈앞에 다다른 커다란 화를 그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가 일 마장쯤 달려갔을 때였다.
전면에 커다란 바위 위에 한사람이 앉아 있는 옆모습이 보였다.
바로 장락방 의 방주인 석파천(石破天)이 아닌가! 운 향주 등 일곱 사람이 그의 앞에 공손히 서 있었다.
패해석은 나는 듯이 그의 앞으로 달려갔다.
이때 햇살이 바로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어 바위에 앉아 있는 사람의 얼굴 모습이 뚜렷하게 보였다.
짙은 눈썹에 커다란 눈망울, 그리고 길 고 네모진 얼굴, 바로 석파천이 아니고 누구겠는가? 패해석은 기쁨을 금치 못하고 크게 부르짖었다. "방주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그러나 의외로 석 방주의 얼굴에는 고통스럽기 이를 데 없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왼쪽 뺨에는 푸른 기운이 은연중 감돌고 있었고, 오른쪽 얼굴은 술 취한 사람처럼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패해석은 내공이 지극히 높았고 또 병을 앓아온 터여서 의술에 뛰어 난 조예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그와 같은 상황을 보고 뭐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 고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심후한 내공을 연마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상하지 않는가? 이는 반드시 사연객이 전수한 것 일게다.
아차! 큰일이다.
우리들이 마천애 위로 달려온 것을 보자 방 주님께서 한참 무공을 연마하시다가 깜짝 놀라서 부작용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큰일이다.' 삽시간에 그는 모든 의문을 풀게 되었다.
방주는 반년동안 실종되었 으며 곳곳에 수소문해도 찾지 못했는데 알고보니 바로 이 곳에서 심후 한 무공을 연마하고 있었던 거라고 생각했다.
무공이 고강하면 고강할수록 장락방에 대해서는 유리한 일이라 정말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사연객이 자기네들에게 방주와의 대면을 거절한 것은 바로 자기네들 의 방주가 긴요한 고비에 이르러 있기 때문이었으리라고 판단했다.
내공을 연마하는 사람은 외부 사람의 방해를 받게 된다면 심기(心機) 가 혼란해지고 이로 인해서 주화입마(走火入魔)가 되는 수도 허다했 다.
그렇기 때문에 패해석은 사연객이 호의로 자기네들에게 거절한 것인 데 자기네들은 그의 행동에 반감을 사게 되었으니 정말 미안한 노릇이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그는 사연객이 어째서 그와같은 사실을 분명히 말하지 않았 을까 하는 의문도 느꼈다.
하지만 사연객은 본래 오만한 사람이었고, 자기네들이 갑자기 마천애 위로 올라오자 그는 불쾌하게 생각하고 사람까지 죽이려 들었을 것이 라고 자기 나름대로 해석을 했다.
이와 같은 생각과 더불어 그는 석파천의 얼굴에 떠오르는 푸르고 붉 은 빛은 반드시 음양의 두 기운이 서로 공격을 하기 때문일 것이며 잘 못하다가는 목숨이 위태로워진다고 판단을 했다.
즉시 그는 여러사람 들에게 물러서라고 손짓을 했다.
석 방주와 수십 장 정도 간격을 두게 되었을때 그는 나직히 그와 같 은 사실을 자기 동료들에게 설명했다.
뭇사람들은 그제서야 확연히 깨 닫고 놀람과 기쁨에 어쩔 줄을 몰랐다.
그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 으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방주께서는 주화입마가 되시지 않겠습니까?"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자책을 했다. "우리들이 경솔하게 뛰어올라와 방주님의 내공연마를 방해했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정말 큰 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패해석은 말했다. "미 향주는 사 선생에게 상처를 입게 되었소.
누구든지 빨리 먼저 가 서 미 향주를 돌보도록 하시오.
나는 방주님을 곁에서 지켜드리며 혹 시 위험한 상태가 되었을 때는 도움이 되어 드려야겠소." 그는 다시 설명을 덧붙였다. "다른 분들은 이곳에서 방주님은 신변을 보호하도록 합시다.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절대 떠드는 소리를 내서는 안되오.
만약에 적이 마천애 에 올라오면 기척도 없이 몰아 내야 하며 결코 방주님에게 방해가 되 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그들은 무학의 대가들이라 내공을 연마하게 되었을 때 외적의 침입을 받게 된다면 심신이 흩어지고 심하면 목숨마저 위태로워 진다는 사실 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잇달아 공손히 대답을 하면서 마천애 사방의 요소 요소를 지키게 되었다.
패해석은 그와 같은 명령을 내린 후 석 방주의 앞으로 다가갔다.
이때 석 방주의 얼굴 근육이 굳어지면서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런가 하면 입을 크게 벌리고 고함을 치려고 하는 것 같았으나 아무 소 리도 나오지 않았다.
틀림없이 내공이 운행되다가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목숨이 이미 경 각에 달리게 된 것이었다.
패해석은 깜짝 놀라서 앞으로 나아가 구원을 하려고 했으나 그가 어 떤 내공을 연마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순간에 음양감리(陰陽坎離)를 잘못 판단하고 손을 쓰게 된다면 주 화입마된 사람의 죽음을 가속화시키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이때 석 방주는 전신의 옷자락을 갈기갈기 찢었으며 살갗에는 곳곳에 핏줄이 생겨났다.
그의 머리 위는 하얀 안개와 같은 기체로 뒤덮여 있었으며, 그 기체 는 응결된 듯 흩어지지 않았다.
패해석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의 무공은 평범하고 내력이 강하지 않은데 그의 머리 위에 하얀 기운이 서려 있는 것을 보면 이제 지극히 높은 경지에 도달한 것이 분 명하다.
반년동안에 이와같은 신속한 진전을 보이다니 정말 놀랍구 나!' 별안간 그는 무엇이 타는 듯한 냄새를 맡게 되었다.
석 방주의 오른쪽 어깻죽지의 옷자락에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르고 있었다.
이것은 바로 무공을 연마하다가 주화입마된 현상이었 다.
패해석은 깜짝 놀라 손을 뻗쳐서 그의 오른손 팔굽의 청냉연(淸冷淵) 을 살짝 쥐며 잠시동안 진기의 운행을 쉬도록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의 손가락이 석파천의 팔굽에 닿게 되었을 때 얼음과 같이 차가운 한 기를 느끼고 그는 전신을 흠칫하고 말았다.
그는 감히 힘을 써서 항거할 수 없고 해서 손을 움츠렸다. '이것이 도대체 어떤 기이한 내공일까? 반쪽 몸은 차갑기 이를 데 없 고 반쪽 몸은 용광로처럼 뜨겁기 이를 데 없다니!" 그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갑자기 석파천은 몸이 빳빳하게 굳어지더니 바위 위에서 그대로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리고 몇 번 경련을 일으키더니 꼼짝도 하지 않았다.
패해석은 깜짝 놀라 황급히 부르짖었다. "방주! 방주!" 그는 급히 그의 코앞에다 손을 가져갔다.
다행히 숨은 아직도 가늘게 쉬고 있었으나 매우 미약했다.
곧 숨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그는 즉시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쳐 사람들을 부르는 한편 석 방주를 부축하여 바위에 기대게 하고 너무 다급한 나머지 가부좌를 틀고 방주 옆에 앉아서 왼손을 그의 심장 부위에 갖다 대고 오른손을 그의 등심 에 갖다 대고 운기행공을 하여 그의 심맥을 보호했다.
얼마후 일곱 사람이 차례로 급히 달려왔다.
방주의 얼굴이 갑자기 술에 취한 듯 붉어졌다가 갑자기 시퍼렇게 얼 어붙는 듯 하더니 온몸을 와들와들 떨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은 그만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그들은 두 눈에 의혹의 빛을 가득 띄우고 패해석을 바라보았다.
패해 석의 이마에는 비지와 같은 땀방울이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으며 전신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이 이미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참 후에야 패해석은 천천히 두 손을 떼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방주께서는 어떤 상승내공을 연마하시다가 주화입마된 것 같기도 한 데 본좌로서도 일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구료.
다행히 석 방주 로 하여금 난관을 뚫고 나가도록 도왔지만 차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 예측하기 힘드니 두고 봅시다."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말했다. "이번 일은 그야말로 심상치 않으니 여러 형제들이 함께 연구해서 방 책을 강구하도록 합시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만 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나같이 생각했 다. '패 의원마저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우리들이 무슨 방법을 강구할 수 있겠는가?' 삽시간에 그들은 어리벙벙해서는 패해석만 쳐다보았다.
미 향주는 한 사람의 부축을 받아 잣나무에 몸을 의지하고 앉아 있었 는데 여러 사람들이 아무 말이 없자 나직히 입을 열었다. "패, 패 선생, 패 선생의 고견은 어떠하신지요.
패 선생의 생각이 우 리들보다 고명한 것이 아니겠소?" 패해석은 석 방주를 한번 바라보고 나서 말했다. "관동(關東)의 사대문파(四大門波)는 중양절(重陽節) 날 본방의 총타 (總舵)로 찾아오겠다는 전갈을 보내 왔으니 시기적으로 촉박한 상태이 외다."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설명했다. "이 일은 본방이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고비가 되리라는 것은 여러 분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오.
관동 사대문파의 내력은 우리들이 샅샅 이 파악하고 있소.
그들의 연편(軟鞭), 철극(鐵戟), 한 자루의 귀두도 (鬼頭刀), 수십 자루의 비도(飛刀)로서는 장락방과 맞설 수 없는 것이 오.
사도(司徒) 방주의 일은 우리 집안의 일인데 무엇때문에 참견하는 것인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오." 그는 신중한 태도로 기침을 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일이 강호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면 매우 좋지 못 한 일이 일어날 것이외다.
이헴, 에헴.
진정으로 큰 일은 여러분들도 다 알다시피 협객도의 상선벌악령은 방주가 친히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외다.
그렇지 않을 때 모든 사람들이 액운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이외다." 운 향주는 입을 열었다. "패 선생의 말씀이 옳습니다.
장락방이 평소 어떻게 행동을 했는지 모두들 속으로 짐작들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형제들은 하나같이 시원시원한 행동을 좋아하며 위선자의 행동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말했다. "상대방에서 우리들에게 선한 일을 했다고 상을 주겠다는 말을 했으 나 상을 받을 만한 착한 일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악을 행한데 대해 벌을 주겠다고 한다면 이거야말로 어떻게 계산을 해야 할 지 모 르는 일이지요.
너무나 많은 악행을 저지른 것도 사실이니까요." 이어 그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했다. "이번 일은 방주가 친히 이끌어나가지 않는다면 정말 형세는 아무래 도, 아아!" 그는 끝내 말을 다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한숨으로 끝맺음하고 말았 다.
패해석은 입을 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일은 조금도 지체할 수 없소이다.
나의 의견으 로 말하자면 우리들은 급히 방주님을 총타로 모셔야한다고 생각하오.
방주께서 지금 앓고 계신 이 병은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외다.
만약에 하늘이 도와서 열흘이나 보름만에 원상을 회복한다면 그야말로 더 바 랄 게 없는 일이지요.
그렇지 않을지라도 방주께서 총타에 앉아 지휘 를 한다면 설사 몸이 회복되지 않았다러도 여러 사람들이 외적을 맞아 싸우게 되었을때 마음이 어느정도 안정될 것이 아니겠소?"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여러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들은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으시오?" 여러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패선생의 말씀이 옳습니다." 패해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들것을 만들어 방주와 미 향주 두분을 총타로 호 송하도록 합시다." 그들은 나뭇가지를 꺾고 등나무 줄기로 밧줄을 만들어 두 개의 들것 을 얽었다.
그들은 방주와 미 향주 두 사람을 들것에 눕히고 꼭꼭 묶어서 절벽을 내려갈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했다.
그를 여덟 사람이 차례로 들것을 떠맨 채 마천애에서 내려왔다.
사실 그 소년 개잡종은 이날 사연객이 전수한 구결에 따라 내공을 연 마했다.
오시에 이르게 되었을 때 수양명대장경(手陽明大腸經), 족양명위경 (足陽明胃經), 수태양소장경(手太陽少腸經), 족태양방광경(足太陽肪胱 經), 수소양삼초경(手少陽三焦經), 족소양담경(足少陽膽經) 등의 여섯 곳의 경맥에 갑자기 뜨거운 기운이 크게 일어났다.
그의 능력으로는 그 기운을 도저히 억제할 수 없었다.
동시에 각처의 태음(太陰), 소음(少陰), 궐음(厥陰)의 경맥 가운데 얼음과 같이 차가 운 기운이 침범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뜨거운 기운은 지극히 뜨겁고 싸늘한 기운은 지극히 싸늘했다.
그 두 기운이 서로 융화되지 못하고 있었다.
수년간 열심히 내공을 연마한 그는 공력이 크게 불어나게 되었으며 이날 오시 무렵에 충맥(衝脈)과 대맥(帶脈)을 제외한 팔음팔양(八陰八 陽)의 경맥이 별안간 격렬하게 부딛치게 된 것이었다.
그는 반시진 동 안 버티다가 그만 정신이 혼미해지고 말았다.
그 이후 그는 몽롱한 의식 속에서 전신이 마치 뜨거운 용광로 속에 빠진 듯한 느낌을 줄곧 받아야 했다.
그는 땀을 비오듯 쏟았으며 입술이 바짝 타들어가는 고통을 당했다.
그런가 하면 다시 얼음구덩이에 던져진 듯 전신의 혈액이 꽁꽁 얼어붙 은 것 같은 고통을 또 받아야 했다.
이와같은 뜨거운 기운에 이어 차 가운 기운이 되풀이하여 엄습해왔다.
눈앞에는 수시로 여러 모양의 사람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는데 그들 가운데 여자도 있었고 남자도 있었으며, 추악한 사람도 있었고 아름다운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에게 말을 걸고 있었으나 한마디도 그의 귀 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큰소리로 울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전혀 입밖으로 소리를 낼 수 없으니 어찌하랴! 때로 눈앞에 빛이 보이는가 하면 때로는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눈앞이 캄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누군가 때때로 그에게 국이나 음식같은 것을 먹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때는 달콤한 맛을 느끼기도 하고 어떤 때는 시고 매운 맛이 코 를 찌르는 것을 느끼기도 했으나 뭐가 뭔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이와 같이 멍청하고도 흐릿한 의식속에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몰랐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는 갑자기 이마에 싸늘한 느낌을 받고 코로 은은한 향기를 맡게 되 자 천천히 눈을 떴다.
먼저 보인 것은 한자루의 붉은 촛불이었다.
촛불은 가늘게 춤을 추고 있었다.
곧이어 맑고 카랑카랑한 음성이 들렸다. "천(天) 오라버니, 이제야 정신을 차렸군요!" 그 음성은 매우 나직했으나 깊은 정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소년은 눈을 들어 음성이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소년에게 말을 건 상대는 십칠팔 세 정도 들어 보이는 소녀인데 몸에 엷은 녹색의 옷을 걸치고 있었다.
얼굴은 갸름한 것이 아름답기 이를데 없었고, 호수와 같이 맑은 눈동 자로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입가에는 엷은 웃음이 감돌 고 있었다.
그가 눈을 뜨는 것을 보고 소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어디가 괴로우시죠?" 소년은 머리속이 띵하기만 했다.
그는 다만 자기가 바위 위에서 내공을 연마하고 있다가 갑자기 전신 의 반쪽이 얼음같이 차가워지는 반면 다른 반쪽이 불과 같이 뜨거워지 는 것을 느끼고 놀람과 당황함 속에 정신을 잃어버린 기억밖에 떠오르 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하여 눈앞에 갑자기 연녹색의 의상을 입은 소녀가 나타난 것일까? 소년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나는, 나는......" 이와 같이 더듬거리는 순간, 그는 자기 자신이 푹신한 침대 위에 눕 혀져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의 몸 위에는 이불이 덮혀져 있었다.
소년은 이불을 걷어젖히고 일어나 앉으려고 했다.
몸을 움직이려는 그 순간 사지백해가 허물어지는 듯한 고통이 사지를 엄습해 왔다.
그는 양미간을 찌푸리며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토했다. "아악!" 소녀는 위로하듯 말했다. "막 정신을 차리게 되었으니까 움직이면 안되요.
정말 오라버니가 죽 지 않았으니 천지신명에게 감사를 드려야 될 거예요."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소년의 얼굴에 가볍게 입맞춤을 하더니 몸을 바로 세웠다.
소녀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소년은 소녀가 부끄러워하는 이 유를 짐작하지 못했다.
다만 그녀가 더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고 느꼈 을 뿐이다.
소년은 빙그레 웃으면서 더듬거리며 말했다. "나는,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이오?" 소녀는 방긋이 웃으며 막 입을 열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문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곧 왼손 식지를 입술 앞으로 갖다 세우고 조용히 하라는 시늉 을 하고 나직히 말했다. "쉿! 누가 오고 있어요.
저는 이만 가봐야겠어요." 그녀는 몸을 흔들하더니 창문으로 달려나갔다.
소년은 눈앞이 번쩍하게 되었을때 그녀가 사라진 것을 느꼈다.
곧이 어 지붕 위에서 가느다란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그 소리가 서서히 멀어져갔다.
소년은 모든 것이 망연하기만 했다. '그녀는 누구일까? 그녀는 또 다시 나를 만나보러 올까?' 그가 이와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문앞에서 기침소리가 두어 번 들 리더니 문이 열렸다.
이어 두 사람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한사람은 얼굴에 병색이 짙 은 노인이었고, 다른 한사람은 비쩍 마른 사람인데 얼굴이 눈에 익은 것이 어디서 본듯한 느낌이 어렴풋이 들었다.
노인은 소년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자 얼굴에 기쁜 빛을 띄우더니 한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방주, 좀 어떠십니까? 오늘은 안색이 퍽 좋아졌습니다." 소년은 그 말을 듣자 깜짝 놀라며 황급히 반문했다. "당신은, 나를 무어라고 불렀지요? 나는, 나는, 나는 지금 어디에 있 는 것인가요?" 노인의 얼굴에 한가닥 우수의 빛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러나 그 는 곧 얼굴 가득히 기쁜 빛을 띄우고서 말했다. "방주님께서는 이레 동안 앓고 계셨습니다.
이제서야 정신을 차리게 되셨으니 정말 기쁘게 한량 없습니다."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말했다. "방주님께서는 푹 주무시고 정신을 차리도록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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