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지켜보고 있던 소년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묶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군. 내가 아황의 부러진 다리를 묶어줄 때 보다 훨씬 잘 묶었소." 전비는 속으로 생각했다. '도적같은 방주. 이 악랄하고 음탕하기 이를데 없는 방주가 무슨 속 셈으로 나를 이렇게 대하는 것일까?' 그는 의아해 하는 중에 아황의 부러진 다리니 뭐니 하는 말을 듣자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소년에게 물었다. "아황이 누구요?" 소년은 씁쓸히 웃으며 대답했다. "아황은 바로 내가 키우던 개요. 그러나 아깝게도 어디론지 달아나고 말았다오." 전비는 크게 노해 부르짖었다. "당신이 나를 죽일테면 죽일 것이지 나, 전비를 짐승으로 취급하는 것이오? 사내대장부는 죽음보다도 모욕을 당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아 는 것이오. 죽일테면 어서 죽이시오. 감히 이 전비를 짐승 취급하다 니?" 소년은 당황하여 손을 내저으며 재빨리 말했다. "아니오, 아니오! 나는 다만 옛일을 생각하며 그렇게 말했을 뿐이지 형씨를 욕하려고 그런 것은 아니오. 내가 잘못했다면 사과드리리다." 그는 두 손을 마주잡고 흔들어보였다. 전비는 그의 내공이 매섭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라 그가 일부러 사과 를 한답시고 내력으로 자기를 해치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평소 거만하고 무례한 방주가 부하들에게 부드러운 얼굴로 한마디 건 네는 것도 볼 수 없는데 어찌 사과를 하겠는가 하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재빨리 몸을 옆으로 하여 절을 피하고 두 손을 맞잡은 채 방주 를 형형한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혹시 그가 무슨 악독한 수작을 부리 는 것이 아닌가 해서였다. 소년은 두 손을 맞잡아 보이고 말했다. "전 형, 아무쪼록 빨리 돌아가서 쉬도록 하시오. 나, 개잡종으로 말 하면 말을 잘 할 줄 몰라 실례된 점이 있었을 것이니 전 형이 형님의 아량으로 양해하시기 바라오." 전비는 깜짝 놀라 속으로 생각했다. '뭐? 개잡종이라고? 이건 또 말을 돌려서 나를 욕하는 것이 아닌가?' 시검은 속으로 생각했다. '도련님의 정신이 맑아지는가 했더니 다시 또 흐려지는구나.' 이때 소년은 멍한 시선으로 눈살을 찌푸린 채 무슨 생각에 잠겨 있었 다. 이를 본 시검은 재빨리 전비에게 돌아가라는 눈짓을 했다. 전비는 큰소리로 말했다. "이 석가 녀석아! 나는 네가 사장봐 주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죽일 테면 빨리 죽여라! 본래 나는 도망칠 수도 없고 해서 이미 모든 것을 체념했다. 나는 더이상 살고 싶지 않으니 빨리 죽여다오!" 소년은 의아하여 물었다. "당신은 정말 멍청하군요. 내가 어째서 당신을 죽인단 말이오? 우리 어머니께서 들려준 옛날 이야기에서는 언제나 나쁜 사람만이 사람을 죽였소.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외다. 더구나 팔이 부러졌지만 나보다 힘이 센 당신을 내가 어찌 죽일 수 있겠소?" 보다 못해 시검이 재빨리 그말을 받았다. "전 향주, 방주님께서는 이미 당신을 용서해주었는데 왜 빨리 가지 않고 우물쭈물 하는 거예요?" 전비는 왼손을 들어 머리를 만졌다. '도대체 이 꼬마 녀석의 정신이 이상해진 것일까? 아니면 내가 이상 해진 것일까?' 이때 시검이 발을 동동 구르며 재촉을 했다. "빨리 가세요! 빨리!" 그러면서 급히 그를 문밖으로 밀어냈다. 소년은 그 모양을 보자 껄껄 웃었다. "하하하! 저 사람은 정말 재미있군. 마치 내가 사람을 죽이기를 좋아 하는 아주 나쁜 사람인 것처럼 말하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로군." 시검은 방주의 시중을 든 이래 처음으로 그가 선심을 쓰는 것을 보았 다. 더군다나 전비는 방주를 암살하려고 했는데 뜻밖에도 방주가 그를 용 서해 주었으니 마음 속으로 여간 기쁘지 않았다. "방주님은 좋은 사람이죠. 참 좋은 사람이죠. 무척 좋은 사람이죠. 그렇기 때문에 남의 처를 빼앗고 그들 부부가 헤어지도록 만들었겠 죠?"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어조에는 서글픈 빛이 서려 있었다. 그런데 그 녀는 방주의 앞에서 너무나 방자한 말을 한 것같아 입을 다물었다. 소년은 의아하여 물었다. "당신은 내가 남의 처를 빼앗았다고 했는데 어떻게 빼앗았다는 것이 오? 또 빼앗아서 무엇에 썼다는 것이오?" 시검은 뾰루퉁해서 말했다. "좋은 사람의 입에서 그런 못된 말이 나올 수 있나요? 잠시 점잖아졌 다 했더니 순식간에 여우 꼬리를 드러내는군요......" 그녀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도련님, 좋은 사람인 척하려면 끝까지 그런척 하세요." 소년은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 물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내가 그의 처를 빼앗아 와서 어디에 써먹었다는 것인지 나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구료. 좀 가르쳐 주시 오." 이때 소년의 전신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정력이 용솟음치는 듯 했고 눈에서는 형형한 안광이 크게 빛나기 시작했다. 시검은 말 같지도 않은 그의 물음과 이상스런 표정에 놀라 몸이 섬칫 했다. 그녀는 연신 뒤로 물러서게 되었고 급기야는 방문 앞까지 가게 되었 다. 만약에 방주가 덮쳐들게 된다면 즉시 도망을 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가 정말로 강제수단을 쓰게 된다면 자기 자신이 독수에서 벗 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옛날에도 몇 차례 급한 상황에 처했으나 죽어버린다고 위협을 하여 겨우 순결을 지켰던 터였다. 이때 그녀는 그의 두 눈에 야수와 같은 안광이 빛나는 것을 보자 더 이상 조롱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도련님, 몸이 아직도 완쾌되지 않았으니 흥분을 가라앉히시고 좀 더 쉬도록 하세요." 소년은 말했다. "내가 좀더 쉬어서 몸이 완쾌되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하나요?" 시검은 그만 얼굴이 새빨개지고 말았다. 왼발을 뒤로 빼고 금방 달려 나갈 채비를 했다. 이때 소년은 중얼거리듯 다시 말했다. "도대체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군." 그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아! 시검 누나는 나를 매우 무서워하는 것 같군요." 이때 그는 두 손을 의자 등에 대고 있었는데 불끈 손바닥에 힘을 주 었다. 자단목으로 만들어 튼튼하기 이를 데 없는 의자가 그만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등걸이가 부서지고 말았다. 그러자 소년은 이상하다는 듯 말햇다. "무슨 의자가 이렇게 약하지? 밀가루로 빚어서 만들어놓은 것 같네" 사연객은 심보가 악랄하여 상승내공의 차례를 전도하여 그에게 전수 해 주었었다. 그리하여 소년의 공력이 어느정도 도달하게 되었을 때 음양이 서로 공격케 하여서 참혹한 죽음을 당하도록 만들었던 것이었 다. 자기의 손가락 하나 사용하지 않고 소년을 죽이려는 것이었다. 소년이 내공을 수련한 지 수 년이 되는 날 음양이 상충하여 죽게 될 순간에 공교롭게도 때마침 패해석이 나타나 절묘한 의술과 심후한 내 공으로 그의 심맥을 지켜주어 잠시 한가닥 숨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 던 것이다. 그런 연후에 그는 장락방 총단으로 옮겨지게 되었고, 매일 밤 찾아온 여인이 무림에서 진귀한 현빙벽화주(玄氷碧火酒)를 훔쳐와 그에게 끊 임없이 복용시켜 체내에 음양의 두 기운을 억제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이 약술은 매우 독한 것이었으며 또한 내공력을 크게 증가시 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날 공교롭게도 전비가 그의 전중혈을 후려침으로써 음양의 두 진력 이 하나로 융합되었으며, 또한 그 충격으로 인해 단전 내에 쌓였던 독 혈(毒血)을 토해냄으로써 수화(水火)가 상제(相濟)하게 되었던 것이 다. 이에 두 순음과 순양의 내공은 비단 그의 몸을 해치지 않았을 뿐 아 니라 오히려 천고이래로 한번도 없었던 괴이한 내력을 갖게 된 것이었 다. 자고로 무공을 연마하는 사람 가운데 이와 같은 험한 경로를 밟은 사 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 누구도 그와 같은 방법으로 절세의 내공을 터득할 수 있으리라고 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사연객이 갑자기 후회하게 되고 패해석이 아무리 그를 구해지려고 하 더라도 감히 강맹한 장력으로 소년의 가슴을 후려칠 엄두도 내지 못했 을 것이다. 이 기이한 내력은 공교롭게도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서 우연히 얻어지 게 된것이었다. 이 신공은 오랜 세월동안 내공을 수련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었기 때 문에 완전하게 융화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간혹가다가 체내에서 기혈이 끓어오르기도 하고 구역질을 느 끼게 하는가하면 이유없이 발광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도 있게 된 것이었다. 소년은 현재 자기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꿈인지 생시인지 자기 자신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이때 시검은 나직이 말했다. "도련님은 전향주의 목숨을 살려주고 또 뼈까지 이어주었으면서 어째 서 그를 짐승이라고 욕하는 것인가요? 그렇게 된다면 그는 다시 도련 님을 뼈에 사무치도록 미워하게 돼요." 말을 해놓고 그녀는 흠칫해졌다. 왜냐하면 그의 안색이 괴이하게 변 했으며 눈에 형형한 안광이 빛나면서 이상한 눈초리로 자기를 바라보 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금방이라도 자기에게 달려들 것 같지 않은가? 시검은 두려움으로 인해 더이상 머무를 수가 없어 즉시 물러나오고 말았다. 소년은 모든 것이 아리송하기만 해서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이상하군. 정말 이상하다.' 그러다가 탁자 위에 그 흙으로 빚은 인형을 담은 나무 상자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흙으로 빚은 인형이 이곳에 있었구나. 그렇다면 나는 꿈을 꾸고 있 는 것이 아니군." 그는 나무 상자의 뚜껑을 열고 그 인형들을 꺼내놓았다. 이때 그는 신공을 가까스로 연성하게 되어서 내력을 안으로 거두어 들이는 것을 몰랐다. 자기의 힘이 얼마나 센지도 모르고 있었다. 평소처럼 가볍게 나무상자 뚜껑을 열고 흙으로 빚어진 인형을 움켜잡 게 되었는데 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 인형 겉면에 발라놓았던 가 루와 흙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어이쿠!" 하는 소리와 함께 소년은 속으로 애석하다는 생각을 햇다. 그런데 겉 면의 흙과 가루가 떨어지자 인형의 안쪽에 다시 칠을 한 나무조각이 나타났다. 그는 아예 그 겉면에 발라놓은 흙들을 약간 벗겨보니 그 안에 있는 것도 사람의 모습을 어렴풋이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즉시 겉면에 발라 놓았던 흙들을 모조리 벗겨버리고 말았다. 나무조각의 몸에는 동백기름이 칠해져 있었으며 검은 줄이 잔뜩 그려 져 있었는데 혈도의 위치는 전혀 없었다. 나무조각은 어찌나 정교한지 생동감을 주었다. 그런데 이 나무조각의 인형은 입을 활짝 벌리고 크게 웃는 모양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두 손으로는 배를 움켜잡고 있었다. 매우 우스꽝스러운 모습인데 본래 그 위에 흙으로 발라 놓았던 모습 과는 전혀 달랐다. 소년은 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알고보니 흙으로 빚은 인형 안에 이와 같은 나무조각이 있었구나. 그런데 이 나무 조각들은 무엇을 하는 것일까?' 어찌되었든 그는 흙으로 빚은 인형의 몸에 있던 혈도 경맥을 모조리 외우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하나 그 흙들을 벗겨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흙으로 빚은 인형의 안에 각기 하나의 나무 인형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 흙 속에서 나온 나무조각들은 표정이 각기 달 랐다. 어떤 것은 기쁜 표정을 하고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울상을 짓고 있 었고 또 어떤 것은 크게 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목각은 인자한 얼굴을 하고 있기도 했다. 목각인형 자체의 운기행공을 하는 노선은 흙으로 빚은 인형의 몸에 그려져 있던 그림과는 전혀 달랐다. 소년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목각 인형들은 정말 재미있구나. 이 목각에 있느 노선을 따라 내 공을 연마해 보아야 겠다. 이 울상을 하고 있는 얼굴은 연마하지 말아 야지. 이와 같은 꼴은 보기 흉하니까. 그리고 입을 헤벌리고 바보처럼 웃는 것도 좋지 않으니 빙긋이 웃는 이 목각을 연마해야겠다.' 그는 가부좌를 틀고 단정히 앉았다. 미소 짓고 있는 목각인형을 탁자 위에다 놓고 단전의 진기를 살작 돋우자 즉시 나른한 감을 주는 기운 이 끌어올랐다. 그는 목각인형의 몸에 그려져 있는 선을 따라 내공의 기운을 각처의 혈도로 이끌었다. 그런데 그는 이 목각 인형들의 몸에 그려진 것이 바로 소림사의 선배 고승(高僧)이 창안한 나한복마신공(羅漢伏魔神功)이라는 것을 전혀 모 르고 있었다. 목각 인형은 바로 나한(羅漢)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신공은 불가내공(佛家內功)을 집대성시킨 것으로 심오하고 절묘하 기 이를 데 없었다. 제일보인 섭심귀원(攝心歸元)만 하더라도 모든 잡념을 떨쳐버려야 했 다. 모든 잡념을 떨쳐버리고 초연한 상태에 이른다는 것은 극히 어려워 십만 명 가운데 한 명 해낼까말까한 일이다. 총명하고 영리한 사람은 아무래도 생각하는 바가 많았고, 자질이 우 둔한 사람은 그 가운데 깃들여 있는 천갈래 만갈래의 오묘한 변화를 깨우치기가 힘들었다. 과거 이 신공을 창안한 고승은 세상에 총명하고도 순박한 자질을 두 루 갖추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불문에 자질이 매우 뛰어나고 물욕이 없는 인재가 없지 않아 있었다. 그들은 이와 같은 신공을 연마하게 된다면 무공에만 전념하게 되는데 이는 또 불도의 실증(實證)에 큰 방해가 되었다. 불가에서는 탐(貪), 진(嗔), 치(痴) 세 가지를 금기로 여긴다. 탐이라는 것은 바로 재물과 색을 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법열과 무 공에 탐하는 것도 탐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로 만들어진 목각인형 겉면에다가 흙을 바르고 칠 을 하여서는 소림 정통 내공의 입문요결을 그려놓은 것이었다. 후세의 사람들이 나무 나한을 보고 분수를 모르고 함부로 연마하다가 헛되이 목숨을 잃지 않도록 하거나 불도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막자 는 생각에서였다. 대비노인은 이 열여덟개의 흙으로 빚은 인형이 무림의 이보(異寶)라 는 것을 알고 온갖 심혈을 다해 손에 넣었다. 그러나 흙으로 빚은 사람의 몸에 그려진 요결이 평범하기 이를 데 없 어 오랜 세월을 두고 연구를 해보았지만 오묘한 점을 찾지 못했던 것 이다. 그는 이것이 무림의 이보임에는 틀림업삳고 생각하고 소중히 간직하 였다. 그는 죽을 때까지도 흙으로 빚은 인형이 파손되어야 목각인형이 나타 난다는 그 오묘한 이치를 몰랐던 것이다. 기실 대비노인뿐만 아니라 그 소림의 신승이후 이 인형을 간직했던 사람은 열한 명이나 되는데 이 열한 명들 가운데 한 명도 그 이치를 깨달은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전전긍긍하며 이 흙으로 빚은 인형들을 온갖 정성을 기울여 보호하고 생각하며 연구했으나 헛수고를 한 것에 불과했던 것 이다. 따라서 그들 열한명은 모두 한을 품고 이 세상을 등지게 되었고 커다란 의문을 품은 채 황토에 덮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소년은 자질이 뛰어날 뿐 아니라 나이도 어렸고 깊은 산골 에서 살았기 때문에 세상일에 전혀 물들지 않았다. 그야말로 순박하기 이를 데 없어 이 신공을 터득하기에 알맞은 인재 라 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그가 깨어난 그날 그와 같은 신공의 비결을 발견하게 된 것 도 천운이라 할 수 있었다. 설사 천성이 착해 세상의 더러운 일에 물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마 음 속에 생각하는 것이 많아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발견하여 그 신공을 연마한다 하더라도 별 도움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크게 해 를 입을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소년은 몸안에 수화(水火)가 조절되고 음양(陰陽)이 융합하게 되자 내공이 어느덧 놀라울 정도로 심후해졌다. 그와같은 내력을 목각 나한의 몸에 그려져 있는 선을 따라 운기행공 하자 제대로 유통되지 않던 혈도까지도 활짝 뚫리고 말았다. 그는 목각 나한의 선을 따라 운기행공을 세번 한 후 눈을 감고 나무 조각의 나한을 보지 않고 운기행공을 해보았다. 즉시 온몸이 상쾌해지 고 심신이 맑아지는 것이 아닌가? 소년은 목각 나한을 바꾸어 내공을 연마했다. 그는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내공연마에 전념했다. 하나의 목각 나한을 연성하면 또 다른 하나로 바꾸는 등 자기 외적 사물에 대해 전혀 보지도 듣지도 않고 새벽에서 정오까지 정오에서 저 녁까지 연마했다. 아니, 소년은 지칠 줄도 모르고 이튿날 날이 밝을 때까지 내공을 쌓 고 또 쌓았다. 시검은 처음 그가 자기에게 덮쳐들까 봐 방문 안쪽으로 고개만 삐죽 내밀고서 방안을 살펴보곤 했다. 그때마다 소년은 때로는 히히덕거리며 웃는가 하면 잠시 후에는 잔뜩 눈살을 찌푸리고 잇었다. 그녀는 또 소년의 정신이 흐려졌다고 생각하고 걱정이 되었다. 그리 하여 그녀는 살금살금 방안으로 들어와 그를 살펴보았다. 시검은 소년이 잠도 자지 않고 줄곧 앉아 내공을 연마하는 것을 보자 소년에 대한 두려움은 벌써 잊고 그저 걱정만 되었다. 잠시 살펴본 후 나가 두어 시진 자다가 다시 들어와 보곤 하는 것이었다. 패해석 역시 밖에서 몇 번이나 살펴보았다. 패해석은 그의 머리 위에 하얀 기운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그의 내공이 중요한 고비 에 이른 것을 알았다. 그는 부하들에게 방주의 방을 더욱 철통같이 지키도록 당부했을 뿐 아니라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소년이 열 여덟 개의 목각으로 된 나한의 몸에 그려진 복마신공을 모 조리 익히게 되었을 때는 사흘째 되는 새벽녘이었다. 그는 몸을 일으키고 길게 숨을 내쉰 후 목각 나한을 상자 안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기분이 상쾌하고 정신이 맑았을 뿐 아니라 진기를 이리저리 운행시켜 보았으나 조금도 막히는 곳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무림에서 희세에 보기 드문 나한복마신공으로 내공의 기초를 쌓게 되었다는 사실을 모 르고 잇었다. 본래 이와 같은 경지에 도달하려면 짧게는 오륙년 길게는 수십년이 걸려야 하며 결코 짧은 시일 안에 성취할 수 없다. 다만 그는 체내의 음양 두 기운이 융합하여 내공의 기틀을 쌓아놓은 터라 별 어려움 없 이 복마신공을 터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상류 만경창파의 커다란 호수에 물을 잔뜩 저장해 놓았다가 때 가 되어 수문을 열어서는 물을 내려보내는 형국과 마찬가지였다. 이제 그는 나한복마신공을 정상적인 흐름으로 이끌어 들이게 된 셈이 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때 그는 시검이 침대가에 엎드린 채 잠이 든 것을 보고 침대에서 내려섰다. 이미 중추절이 지나 있었고 팔월 하순의 날씨인지라 약간 쌀쌀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는 시검이 입고 있는 것이 엷은 것을 보고 침대 위의 이불을 끌어 당겨 그녀의 몸에 덮어주었다. 그는 창문앞으로 다가갔다. 청아한 향기가 화원에서 풍겨오는 것을 느끼며 그는 상쾌한 기분에 젖게 되었다. 갑자기 시검이 나직이 말했다. "도련님, 도련님, 죽이지 마세요." 소년은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당신은 어째서 자꾸 나를 도련님이라 부르는 것이오? 그리고 내가 누굴 죽였다고 죽이지 말라는 것이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시종 불안에 떨고 있는 터였다. 소년의 말소리 에 그녀는 정신을 번쩍 차리고 겁먹은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저는, 두려워요." 시검은 방주가 침대 위에 없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 다. 시검은 소년이 창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람과 기쁨에 충만된 음성으로 그에게 말햇다. "도련님, 일어나셨군요! 제가 그만 깜빡 잠이 들었었나 봐요." 그녀는 급히 일어났다. 그러자 그녀의 어깨에 덮혀있던 이부자락이 떨어져 내렸다. 그녀는 대경실색했다. 자신이 잠 속에 빠져있을 때 경박하기 이를 데 없는 주인이 자기의 몸을 더럽힌 줄 알고 자신의 옷매무새를 살펴보았 다. 그러나 옷매무새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말짱했다. 시검은 삽시간에 놀람과 의혹에 휩싸여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도련님, 도련님. 저는, 저는 무사하죠?" 소년은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보이는데요. 조금전 잠꼬대를 하면서 나보고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했는데 꿈 속에서 내가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보았소?" 시검은 그가 전혀 육체와는 관계없는 말을 하게 되자 마음이 약간 놓 였다. 그녀 자신의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을 보고 한편으로 그녀 는 여간 궁금하게 여기지 않았다. '내가 그를 오해한 것이 아닐까? 천지신명이시여. 정말 감사하옵니 다.'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녀는 대답을 했다. "그래요. 저는 방금 꿈을 꾸었는데 도련님이 두 손에 칼을 들고 마구 사람을 죽이고 있었어요. 땅바닥에 수없이 많이 시체들이 널려 있구 요. 하나같이, 아니예요. 아니예요." 그녀는 얼굴이 붉히면서 입을 다물었다. 낮에 보았던 사물을 밤에 꿈 꾸게 된다는 말이 있듯이 그녀는 이날 밤낮으로 본 소년의 침대 머리 의 열여덟개의 벌거숭이 목각 나한을 밤에 꿈으로 보게 되었던 것이 다. 그와 같은 사연을 차마 입에 올릴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소년은 다시 물었다. "하나같이 어떻게 되었다는 것이오?" 시검은 다시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모두..... 아이! 나도 몰라요." 소년은 의혹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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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검 누나, 나는 도대체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뭐가 뭔지 모 르겠소.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이야기 해줄 수 없소?" 시검은 미소지으며 말했다. "어머나! 한번 병을 앓고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