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않으면, 방주께서 친히가서 형편을 보아 대책을 강구하는 것도 더욱 좋지요." 석파천은 아름다운 정당과 한 바에 있는 것이 기분이 좋기는 했으나 여간 겸연쩍지 않았다. 마음만 불안했고 동방화촉 이후에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르고 있는 터였을 뿐만 아니라 정당의 천 오라버니가 나타나게 된다면 혼례를 올 린 것도 그만 허사가 될 것이고 더욱더 쌍방의 처지가 곤란해질 것이 라고 생각했다. 마침 패해석이 찾아와 주었으니 이 기회에 이곳을 떠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대뜸 응낙을 했다. "그렇다면 돌아가 보기로 하지요. 그들에게 어떤 오해가 있는지 모르 지만 모든 것을 그들에게 설명하면 되겠죠." 그는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할아버지, 그리고 띵땅, 미안하지만 나는 가봐야겠소." 정불삼은 머리를 긁적긁적했다. "그것 좋지 않은데? 설산파의 녀석들이 방해를 한다면 내가 가서 쫓 아보내지. 어찌 되었든 간에 내가 그들의 두 제자를 죽였으니 백 늙은 이와는 원한을 맺게 된 셈이지. 몇 사람 더 죽인다 한들 결과는 마찬 가지가 아니겠는가?" 정불삼은 손만년, 저만춘 두 사람을 죽였는데 설산파는 를 수치로 알고서 강호에 알리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석청과 민유 부부만이 그 사실을 들어 알고 있으나 다른 사람에게 이 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강호에서는 모르고 있었다. 패해석은 정불삼의 그와 같은 말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설산파의 세력이 막강하고 또 그들의 사도의 무공이 고강하며 중원 각문파와는 교분이 있으니 우리들이 무단히 그와 같은 강적을 만들 필 요가 없다. 장락방에는 커다란 일을 코앞에 두고 있는 지금 또 다른 변고가 있어서는 안 되지!' 이와 같은 생각과 더불어 그는 입을 열었다. "방주께서 친히 설산파의 인물을 만나보신다면 더없이 좋을 것같소이 다. 정 셋째 나으리에게 저희들 방파의 조그만 일로 폐를 끼치고 싶지 는 않소이다. 우리가 일을 처리한 후 다시 찾아와 뵙는 것이 어떻겠소 이까?" 그는 결코 잔치 술을 마시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석파천이 총타에 돌아간 이후 그에게 권해 혼인을 맺게 되는 것을 취 소시킬 작정이었던 것이다. 정불삼은 노해 부르짖었다. "터무니없는 소리! 나는 간다면 꼭 가고 마오. 이 어르신의 왕림은 불가피하게 되었소. 장락방의 그 일은 정 셋째가 간섭하기로 작정을 했소이다." 정당은 방안에서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설산파에서 크게 따지러 온 것을 보면 자기의 풍류남아인 남편이 화 만자의 아름다움에 경박하고도 거치른 태도를 취했기 때문에 그들이 따지러 온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십중팔구 그녀를 강제로 어떻게 하려다가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진 것 이지 결코 진 향주 말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었다. 그렇지 않으면 은자까지 주고 연와탕까지 먹일 리가 없을 것 같았다. 더구나 오늘밤은 동방화촉을 밝히는 날인데 석파천이 화만자를 만나 러 간다고 하니 여간 불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할아버지와 패해석은 이제 그와 같은 일로 첨예하게 맞서고 있지 않은가! 그녀는 대뜸 마당으로 뛰어나오며 말했다. "할아버지, 천 오라버니께서 총타로 돌아가 대사를 해결하겠다는데 우리들로서는 사사로운 정으로 그의 일을 그르칠 수는 없다고 생각해 요. 할아버지와 제가 천 오라버니를 따라가서 설산파에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 있는지 보기로 하죠!" 석파천은 화촉동방에서 겸연쩍게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것이 초조했을 뿐이지 실제에 있어서 그녀와 함께 있기를 원했다. 그녀가 그렇게 말하자 크게 기뻐서 웃으며 말했다. "매우 좋소. 띵땅, 당신도 나와 함께 갑시다. 할아버지도 같이 가시 지요!" 그가 이와 같이 말하자 패해석 등은 달리 이의를 표명할 수가 없었 다. 그들은 냇가에 이르게 되었고, 장락방의 고수들이 타고 온 큰 배를 타고 총타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패해석은 배에서 석파천에게 말했다. "방주, 정 셋째 나으리에게 결코 손을 써서 설산파의 사람들을 해치 지 않도록 권유하시죠. 원수를 많이 만들게 된다면 방의 일에 지장이 있소이다." 석파천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야 그렇지요. 왜 이유없이 사람을 죽여야 합니까? 그것은 옳지 못 한 행동이오." 어느덧 그들 일행은 장락방 총타에 이르게 되었다. 정당은 진지한 어 조로 말했다. "천 오라버니, 나는 당신의 방으로 가서 남자 옷을 입고 화용월태의 화 소저를 만나겠어요." 석파천은 크게 흥미를 느끼는 듯 물었다. "어째서 옷을 바꿔 입는단 말이오?" 정당은 웃으며 말했다. "나는 화만자라는 아가씨에게 내가 당신의 아내가 된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요. 그래야 말하기가 편리할 것 같아요." 석파천은 그녀가 당신의 아내라는 말을 할 때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부끄러움과 의기양양한 표정을 대하게 되자 가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좋소! 그렇다면 같이 가서 옷을 바꿔 입고 오도록 합시다." 정불삼이 말했다. "나도 가서 좀 옷차림을 바꿔야겠군. 나는 귀방의 소두령으로 변장을 해도 괜찮겠죠?" 패해석은 설산파의 사람들에게 자기들 가운데 정불삼과 정당이 끼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게 하고 싶었다. 그들이 변장을 하고 싶다고 하자 패해석은 썩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 어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 "정 셋째 나으리께선 좋으실대로 하십시오." 정불삼과 정당 두 사람은 석파천을 따라 그의 침실로 들어섰다. 그들이 문을 밀치고 들어서자 시검이 아직도 자고 있었으나 문소리를 듣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으며, 정불삼 조손(祖孫)을 대하게 되자 크 게 놀라워했다. 석파천은 일시 그녀에게 설명하기도 힘들어 단순히 분부를 했다. "시검 누나. 이 두 분에게 옷가지를 좀 갖다주구료. 그리고...... 좀 도와주도록 하시오." 그는 시검이 이것저것 묻는다면 혼례를 올렸다는 말을 하기가 거북해 서 그 말만 하고는 재빨리 화청으로 빠져나오고 말았다. 밥 한 끼 먹을 시간이 되어 진충지가 화청 밖에 이르러 낭랑히 말했 다. "방주에게 알립니다. 뭇형제들이 호맹당(虎猛堂)에서 방주님이 납시 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때 정당이 휘장을 들치며 걸어나왔다. "됐어요. 이제 가봐요." 석파천은 갑자기 눈앞에 준수하기 이를 데 없는 젊은이가 나타난 것 을 보고 약간 어리둥절해졌다. 정당은 이때 청삼을 걸치고 있었으며 머리 위로 서생건(書生巾)을 쓰 고 있었고 손에는 한 자루의 섭선을 들고 있었다. 석파천은 풍류라는 말과 점잖고 의젓하다는 말은 잘 몰랐으나 그녀의 그와 같은 옷차림은 조금전의 새색시 차림보다도 더욱더 매력적인 데 가 있다고 생각했다. 정불삼은 거치른 무명 베옷에 경장을 하고 있었는데 얼굴에는 엷은 먹물까지 칠해놓고 있었으며 발에는 짚신을 신고 있었다. 그의 왼쪽 어깨는 높고 오른쪽 어깨는 나직햇으며 걸음을 옮길때 다 리를 절룩거려 그 모습이 매우 초라해 보였다. 석파천은 얼핏 볼 때 거의 그의 신분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인지라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할아버지, 모양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진충지는 나직이 물었다. "방주, 무기를 가져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석파천은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물었다. "무기를 왜 가져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충지는 그가 또 뚱딴지 같은 반대 말을 한다고 생각하고 재빨리 말 했다. "예, 알겠습니다." 그는 앞장을 서서 걸었다. 네 사람은 호맹당 앞에 이르게 되었다. 진충지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호맹당 안에 수십 명이 앉아 있다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서며 일제 히 외쳤다. "방주께 인사드립니다!" 석파천은 대청문이 열리면서 그토록 넓은 대청 안에 드러나게 되고 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고함을 치자 생각지 못했던 일인지라 그만 깜짝 놀랐다. 그는 여러 사람들이 허리를 굽히고 절을 하는 것을 보고 인사를 하는 줄 알았으나 어떻게 인사를 받아야 할지 몰라 멍하니 서서 어찌할 바 를 몰랐다. 사방의 타자 위에 커다란 촛불이 켜져 있었고 수십 명의 크고 작은 사내들이 양쪽으로 늘어 서 있었다. 안쪽 한복판에 호피(虎皮)교의가 하나 놓여 있었다. 대청에는 한가닥 엄숙한 기운이 감돌고 있어 한번도 세상의 큰일을 당해보지 못한 시골 소년은 그만 위엄에 압도되고 말았으며 감히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그는 두 눈으로 패해석을 바라보며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 하고 구원 을 바란다는 눈치를 보냈다. 그는 패해석의 지시를 받아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패해석은 얼른 문가로 다가가 석파천의 손을 부축하며 나직이 말했 다. "방주, 우리가 먼저 자리에 앉아야 합니다. 그런 후에 설산파의 친구 들을 들어오도록 해야 합니다." 석파천은 그가 하자는대로 해야 할 형편인지라 패해석의 부축하에 호 피 의자 앞으로 다가갔다. 패해석이 나직이 말했다. "앉으시지요." 석파천은 망연했다. "내가......이 자리에 앉아야 한단 말이오?" 그는 마음속으로는 여간 두렵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도 모르 게 정당을 바라보았다. 정당이 자기 손을 붙잡고 대청에서 도망쳐 주었으면 하는 심정이었 다. 될 수 있으면 멀리 도망쳐서 깊은 산속에서 살면서 다시 이곳으로 돌 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심정이기도 했다. 그런데 정당은 그에게 방그레 웃어 보였다. 석파천은 그녀의 눈초리에서 따뜻한 감을 느끼고 그녀가 용기를 북돋 아주고 있다는 생강에 새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편으로 그는 고마움을 느꼈고 위안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는 한복 판에 있는 호피교의에 턱 버티고 앉게 되었다. 석파천이 자리에 앉자 정불삼과 정당은 호피교의 뒤에 서게 되었고 수십 명이나 되는 늘어서 있는 사내들도 일일이 자리를 찾아 앉았다.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 앉자 패해석은 입을 열었다. "여러 형제들, 방주께서는 요 며칠간 병을 심하게 앓았소. 그러나 착 한 사람은 하늘이 돕는다고 이제 거의 완쾌되었으나 아직도 정신이 완 전히 회복된 상태는 아니오. 원래 방주께서는 며칠 더 편안히 휴식을 해야 폐방의 일을 처리할 수 있으나 설산파의 친구들이 반드시 당장에 만나봐야 한다는 것이었소." 그는 여러 사람을 돌아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들은 마치 방주께서 죽을 병이나 든 것처럼 서두르는 것이었소. 허허허...... 방주의 내공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후한데 그까짓 병으로 어찌 쓰러지겠느냔 말이오. 자, 그러니 여러분들은 방주님을 모시고 설산파의 친구들을 대하는데 차질이 없도록 해주시오......" 여러 사람들은 큰소리로 대답을 했다. "예......" 패해석은 고개를 돌리고 석파천에게 말했다. "방주님, 이제 설산파의 친구들을 들어오라고 하는 것이 어떻겠소?" 석파천은 잠시 생각을 해보고 응했다. 그로서는 좋다 안 좋다하고 말 하기가 거북했던 것이다. 패해석은 여러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좌석의 위치를 새로 정해야겠소. 서쪽의 형제들은 동쪽으로 옮기시 오." 그들은 그의 명령대로 자리를 바꾸었다. 모두 동쪽켠에 가 앉게 된 것이다. 패해석은 시중을 들고 있던 방의 제자들에게 서쪽에 아홉 개의 의자 를 갖다 놓도록 했다. "미 향주, 손님들을 모시고 들어오도록 하시오." 미횡야는 즉시 대답했다. 얼마후 대전 밖에서 요란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네 명의 제자들 이 대문을 활짝 열었다. 미횡야는 옆으로 비켜서서는 낭랑히 말했다. "방주께 알립니다. 설산파의 여러 친구들이 도착했습니다." 패해석은 나직이 말했다. "우리들이 나가서 영접을 하지요." 그는 가볍게 석파천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석파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그는 주저주저하며 몸을 일으켜 패해석을 따라 대청 입구쪽으로 갔 다. 설산파의 아홉 명은 대청 안으로 들어서게 되었는데 하나같이 하얀 장삼을 걸치고 있었다. 앞장을 선 한 사람은 체구가 우람하면서도 다부진 모습인데 나이가 사십 이삼 세쯤 되어 보였다. 그는 석파천과 일 장쯤 되는 곳에 이르더니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두 눈으로 석파천을 쏘아보았다. 두 눈에서 형형한 안광이 크게 빛나는 것이 석파천의 마음속을 꿰뚫 어 보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석파천은 그에게 씨익 미소를 지어보임 으로써 인사를 대신했다. 이때 패해석은 말했다. "방주께 알립니다. 이 분은 서쪽 천하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으며 검 법에 있어 무상의 절예를 쌓고 있는 기한서북 백만검 백 대협이옵니 다." 석파천은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 헤벌쭉 웃었다. 그는 백만검의 등뒤에 있는 화만자만을 겨우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 리하여 그는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화 여협, 또 왔구료." 그 말이 떨어지자 설산파 아홉 명의 대한들은 대뜸 안색이 홱 변하고 말았다. 화만자는 더욱더 겸연쩍어했으며 싸늘이 코웃음치고는 고개를 돌렸 다. 백만검은 설산파 장문인 위덕선생 백자재의 큰아들이었다. 그들 사형 제는 하나같이 만자 돌림이었다. 그의 이름이 만검으로 불리워지는 것을 보면 검법이 자기의 사형제들 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백자재는 아들의 무공에 대해서 매우 만족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이름을 붙인 것이었다. 백만검과 풍화신룡 봉만리는 강호에서 설 산쌍걸이라 일컬어졌다. 이번에 그가 친히 나서지 않았더라면 패해석이 야밤에 정불삼의 집으 로 가서 석파천을 모셔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백만검은 바깥 객청에서 석파천을 만나보자고 두 시간이나 기다리게 되자 속으로 여간 울화가 치밀지 않았다. 그런데 겨우 호맹당으로 들어서게 되었을 때 패해석의 소개가 있었으 나 방주가 자기한테는 익히 명성을 들었다는 그 흔한 인사 조차 한마 디 없는 반면에 대뜸 자기의 화 사매에게 인삿말을 건네는 것을 보게 되자 그만 노화가 치밀었다. '저 모양을 보건데 십중팔구 그 녀석일 것 같구나! 강호에는 장락방 의 석 방주가 음탕하다고 소문이 났는데 저 녀석의 행동을 보니 틀림 없는 말이다. 나는 안중에도 두지 않고 음탕한 눈으로 화 사매에게 관 심을 보이지 않는가?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도 서슴없이 저런 행 동을 취하니 화 사매가 이곳에서 사로잡히게 되었을 때 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었겠지?' 그는 내심 노화가 치밀었으나 신분을 생각하여 간신히 분노를 억제했 다. 그는 곁눈질로 석파천을 노려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얼굴에 는 비웃는 표정이 역력했다. 석파천은 다시 물었다. "화 소저, 다리에 입은 상처는 좋아졌소? 아직도 아프시오?" 그와 같은 질문에 화만자는 그만 얼굴이 새빨개지고 말았다. 다른 여 덟 명의 설산파 제자들은 일제히 검자루를 잡았다. 패해석은 재빨리 말했다. "여러분, 멀리서 오시느라고 피곤하실 텐데 자리에 앉으십시오. 폐방 주는 최근 몸이 불편해서 본래 손님을 만나지 않았으나 여러분들의 얼 굴을 보아 병이 든 몸인데도 이렇게 나오신 것이외다. 여러분들을 오 래 기다리게 한 점 정말 죄송하오이다." 백만검은 싸늘히 코웃음을 치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는 서쪽 첫번째 의자에 턱 앉게 되었고 경만종은 그 다음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가만균, 왕만인 등이 차례로 앉았고, 화만자는 가장 말석에 앉게 되었다. 장락방의 몇 사람들은 히히덕거리고 있었는데 매우 의기양양한 표정 들이었다. '방주님은 입을 열자마자 저 사람들의 덕을 보는군. 당신의 사매의 다리에 관심을 가지는데 기한서북이란 당신도 어쩌지 못하는군!' 패해석은 석파천과 원 위치로 돌아가 앉게 되었다. 그러자 하인과 하 녀들이 준비해 두었던 차를 올렸다. 패해석은 두 손을 맞잡고 말했다. "폐방의 형제들은 오래전부터 설산파의 위덕선생과, 설산쌍걸, 그리 고 여러 친구들의 위명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폐방이 강남에 있었기 때문에 가까지 하지를 못했구료. 오늘 이렇게 찾아와 주시니 정말 영 광스럽소이다." 백만검은 두 손을 마주잡고 반례를 했다. "패 의원께서는 죽은 사람의 목숨도 구할 수 있는 신기한 의술을 지 니고 계시고 또 오행육합장은 천하무적이라는 명성을 익히 들어왔소이 다. 더군다나 귀방의 여러 형제들은 모두 뛰어난 호걸들이시죠. 정말 이 자리에서 처음 만나지만 반갑기 그지없는 심정입니다." 그는 패해석과 장락방의 제자들을 몇 마디 칭찬했으나 석파천에 대해 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었다. 패해석은 모른 척하고 겸손을 부렸다. "과분하신 말씀! 여러분들께서는 진강에 오신 지 며칠이나 되었습니 까? 금산(金山)과 초산(焦山)을 구경하셨는지요? 만일 그곳에 가보지 않았다면 훗날 폐의 방주께서 여러분들을 성 안의 큰주루로 초대하여 진강의 여러 곳을 안내해 드리도록 안배하겠소이다." 그는 그저 인삿말만을 했을 뿐 설산파의 제자들이 찾아온 이유를 묻 지 않았다. 끝내 백만검이 먼저 참을 수 없어 낭랑히 입을 열고 물었다. "강호에서는 귀방의 석 방주의 무공이 뛰어나다고 하던데 석 방주의 무공은 어느 문파의 재간인지요?" 장락방의 사람들은 움찔했다. '방주는 자기 자신의 문파에 대해서 한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다. 간 혹 그런 얘기가 나오면 슬쩍 말머리를 돌리고 빙그레 웃을 뿐 대답하 지 않았다. 패 선생은 그가 전임 동방(東方)방주의 사질이라고 했으나 무공은 전혀 다른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가 실토할런지도 모르 겠구나?' 이때 석파천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건......그건......나의 무공을 묻는 것인가요?......나는 전혀 무공을 모르는 사람이외다......" 백만검은 그와 같은 말을 듣고 마음속에 삼 푼쯤 가지고 있던 의심도 즉시 해소되고 말았다. 곧이어 그는 싸늘히 냉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흐흐흐......장락방에는 인재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는데 석 방주께 서는 무공을 모르면서 어찌 영웅호걸들을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입니 까? 그 말을 어린애도 믿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아마도 석 방주는 사 문의 내력을 말 못할 사정이 있는가 본데 어떠한 연고인지요?" 석파천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린애들이라도 믿지 않는다니, 누가 어린애란 말입니까? 띵땅 그녀 는......어린애가 아니란 말입니다. 나도 그녀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 았구요. 이미 말했지만 나는 그녀의 천 오라버니가 아닙니다." 그는 백만검을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으나 정당의 옷자락에서 풍기는 향기를 맡고 있었고 온 신경은 그녀에게만 쏠려 있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뚱딴지 같은 대답을 하게 된 것이었다. 백만검은 그가 띵땅이니 하는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 수가 없었 다. 다만 도둑놈이 제발 저리다고 일부러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이고 있다 고 생각하고 안색을 굳히며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석 방주, 우리 솔직히 털어놓고 이야기 합시다. 귀하는 능소성에서 배운 무공을 깡그리 잊어버리지는 않았겠지요?" 그 말이 떨어지자 장락방의 무리들은 얼굴빛이 움직였다. 뭇사람들은 서역의 능소성이 설산파 사도가 거주하는 곳인데 백만검 이 그와 같이 말하는 것을 보면 방주가 설산파의 문하에서 무공을 배 웠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설산파가 기세등등해서 찾아온 것은 바로 그들 문파의 일에 관계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가지게 되었다. 석파천은 망연히 말했다. "능소성? 그곳이 어디지요? 나는 한번도 무공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만약 내가 무공을 배운 적이 있다면 어째서 전혀 무공을 할 줄 모르겠 습니까?" 이 몇 마디의 말은 장락방의 제자들도 믿을 수 없는 대답이었다. 능소성이라면 무림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었 다. 장락방의 방주인 그가 한번도 듣지 못했고 또 무공을 배우지 못했 다니 그와 같은 거짓말이 어떻게 있을 수 있으냐 하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방주가 그와 같이 다른 수작을 하는 데는 깊은 뜻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백만검 등은 그의 몇 마디의 말을 듣고 크게 모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설산파를 전혀 안중에 두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왕만인은 참을 수 없다는 듯 큰소리로 말했다. "석 방주, 너무나 안하무인인 말씀이오. 석 방주의 눈에는 설산파의 문하제자가 한푼어치의 값어치도 없는 모양이구료." 석파천은 그가 노기를 가득 띤 것을 보고 자기의 말이 잘못되었는가 보다고 판단했다. "아니오. 그런 것이 아니오. 내가 어찌 설산파의 모든 사람을 한푼의 값어치도 없다고 생각하겠소. 마치.....마치......." 그는 마천애에서 거주할 때 일 년 열두 달 동안 몇 번 정도는 사연객 을 따라 마을로 내려가서 쌀을 사고 소금을 사 왔다. 따라서 그는 값 어치 있는 물건일수록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설산파 의 사람들에게 호감을 살 수 있는 말을 몇 마디 하여 왕만인의 화를 누그러뜨리고 싶었으나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설산파의 제자들 가운데 경만종과 가만균, 왕만인 등을 후감집 에서 한번 본 적이 있었으나 그들의 이름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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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중에서도 화만자만은 비교적 낯이 익어서 그나마도 더듬거리 며 입을 열게 되었다. "당신들은 마치 화 만자 여협처럼 매우 값어치가 있으며......많은 은자가 나가는 값어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