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객행(김용) - 24편 (24/82)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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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객행(김용) - 24편 (2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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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정말 내가 과거의 일을 잊어버린 것일까?" 그는 패해석을 바라보았다.
패해석은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정당을 바라보았다.
정당은 용용 죽겠지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는 다시 정불삼을 바라보았다.
정불삼은 오른손 식지와 중지 두 손가락을 앞으로 내밀어 보였다.
무공으로 사람을 죽이자는 뜻이었다.
진충지는 두 손으로 장검을 받쳐들고 석파천의 앞으로 나아가 건네주 며 나직이 말했다. "방주, 그들과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공으로 시비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긴 자가 옳은 것이고 진 자는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 다." 그는 백만검의 검법이 절묘하기는 했으나 내력이 방주보다 못하다고 판단했다.
증거가 확실하여 말로써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자 무공을 쓸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설사 방주가 진다 하더라도 장락방은 인원 수가 많으니 설산파의 제자들은 모조리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석파천은 장검을 받아들긴 했으나 속으로 얼떨떨하기만 했다.
백만검은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석중옥, 잘 들어라.
백만검은 본파의 장문인 위덕선생의 유시를 받 들어 오늘 문호를 정리하는 것이다.
이것은 설산파의 본분의 일이며 다른 사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만약 장락방의 총단에서 손을 쓰 기가 불편하다면 밖으로 나가 결정짓는 것이 어떤가?" 석파천은 아리송해서 말했다. "무엇을 결정......짓는다는 것이오?" 정당은 그의 등뒤에서 가만히 그를 떠밀며 나직이 말했다. "그와 무공을 겨뤄보세요.
당신의 무공은 그보다 강해요.
그를 죽여 버리면 끝나는 거예요." 석파천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말했다. "나는......나는 그를 죽이지 않겠소.
어째서 내가 그를 죽여야 한단 말이오? 백 대협은 나쁜 사람이 아니지 않소?" 그는 앞으로 두어 걸음 걸어 나아갔다.
백만검은 조금전 그가 두 소맷락을 휘두르자 왕만인이 중상을 입고 나가 떨어진 것을 보았던지라 능소성에서 떠나온 후 석파천에게 어떤 기우(奇遇)가 있어 심후한 내력을 쌓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다른 무공도 틀림없이 비범하리라 생각하고 조금도 소흘하게 생 각하지 않았다.
그는 장검을 흔들하며 매설쟁춘(梅雪爭春)이라는 일 초를 펼쳤다.
허와 실을 분간하기 어려운 검초인데 검끝과 검날을 함께 사용해서 검의 끝으로 눈송이를 뿌리는가 하면 검날은 매화나무 가지처럼 사면 팔방에서 석파천에게로 뻗쳐나도록 만들었다.
삽시간에 석파천은 눈앞이 희뿌연 광채로 뒤덮이는 것을 느꼈다.
어 느 것이 검의 끝이고 어느 것이 검날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당황한 그는 다시 두 소맷자락을 바깥쪽으로 어지럽게 휘둘렀다.
그 는 비록 심후한 내력을 지니고 있었으나 조금도 응용할 줄 몰랐다.
조금전 왕만인을 나가 떨어지게 만든 것은 우연의 일치에 불과했다.
이때 그가 마구 두 손을 휘둘러대는 바람에 그 힘이 흐트러져 약화되 는 추세를 띠게 되었다.
더군다나 백만검의 무공은 왕만인에게 비할 바가 아니었다.
쉭쉭, 하는 소리가 나면서 두 소맷자락은 백만검의 장검에 잘려서 너 울너울 땅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곧이어 석파천은 목뼈 있는 곳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어느덧 장검의 끝이 목을 겨누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백만검은 상대방의 고수들이 구름떼처럼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 다.
더군다나 패해석의 무공은 결코 자기의 무공에 못지 않다고 보았 다.
석파천의 등뒤에 있는 늙은이 또한 눈동자에 형형한 안광이 빛나는 것으로 보아 역시 무서운 인물인 것 같다고 판단했다.
이와 같은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상대방에게 숨돌릴 여유를 줄 수 없 다고 단정하고 일 초에 성공을 거두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일 초에 성공을 거두게 되자 즉시 두 걸음을 나서며 왼팔을 뻗 쳐 석파천을 겨드랑이에 끼고 팔에 힘을 주어서는 석파천의 허리에 있 는 두 곳 혈도를 눌러버렸다.
그런 연후에 그는 호통을 내질렀다. "여러 친구들! 오늘 실례가 많았소.
이후 찾아와서 사과를 드리리 다." 가만균은 사형이 성공하자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왕만인을 들쳐 업고 는 대문쪽으로 달려갔다.
진충지와 미횡야는 칼과 검을 일제히 뻗쳐내며 호통을 내질렀다. "방주를 내려놓아라!" 동시에 칼은 백만검의 어깻죽지로 떨어졌고, 검은 백만검의 다리쪽으 로 비스듬히 날아들고 있었다.
백만검은 장검을 휘둘렀다.
창, 하는 소리와 함께 상대방이 칼과 검 이 밀려나게 되었다.
선후의 차례가 있다 하겠으나 그 차이는 실날같은 차이밖에 되지 않 았다.
그는 적의 무기에 실린 내력이 결코 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속으 로 생각했다. '이 두 사람의 무공이 이토록 훌륭한데 장락방의 뭇고수들이 힘을 합 해 일제히 덤빈다면 우리 아홉 명은 목숨을 잃고 말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과 더불어 그는 몸을 흔들하더니 벽에 몸을 바싹 붙이 고는 호통을 내질렀다. "어느 사람이 먼저 달려들겠소? 일단 달려들기만 한다면 이 형제는 석중옥을 먼저 죽인 후 다시 여러분들과 끝까지 맞서보겠소!" 장락방의 군호들은 방주의 그토록 뛰어난 무공으로도 일 초에 상대방 에게 사로잡히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던 터라 그만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었다.
정당은 얼굴에 당황하고 다급한 표정을 짓고서 정불삼에게 손짓을 했 다.
그녀의 뜻은 할아버지에게 손을 써서 구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 불삼은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그의 생각은 전날 배 위에서 석파천이 수월히 자기의 일 장을 해소시 킨 것을 보면 그가 상대방에게 그토록 쉽게 잡힐 리가 없다는 것이었 다.
석파천이 그와 같이 잡힌 것은 어떤 의도가 있을 것이 틀림없으니 자 기가 나설 필요가 어디 있겠느냐고 그는 생각했다.
자기가 나서면 오히려 석파천의 일을 그르치게 될 것이니 잠자코 구 경이나 한 후 다시 방법을 강구하자고 작정을 한 것이었다.
정당은 할아버지가 싱글벙글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자 약간 마 음이 놓였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 적의 수중에 들어갔으니 역시 걱정은 되었다.
이때 가만균은 두 손을 문에 갖다대고 내력을 돋우어 바깥쪽으로 밀 고 있었다.
대문 밖에 걸어놓은 나무빗장이 그가 미는 바람에 우지직, 하는 소리 를 내었다.
대문이 금방 그의 힘에 의해 열릴 것만 같았다.
순간, 패해석은 비스 듬히 다가들며 말했다. "가 친구, 급히 서두를 것 업소.
소제가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 손님 을 전송하도록 하겠소." 이때 화만자는 호통을 내질렀다. "물러서요!" 그러면서 장검을 휘둘러 가만균의 뒤를 보호했다.
패해석은 대뜸 손 가락을 뻗쳐 검날을 움켜잡으려고 들었다.
화만자는 깜짝 놀랐다. '아니 이 사람은 검날을 두려워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와 같은 생각에 그녀는 일순 멈칫해졌다.
패해석의 손가락은 그 순간 어느덧 그녀의 검날에 거의 닿게 되었다.
그의 손바닥이 검날과 아직도 몇 치 정도 간격을 두게 되었을 때 별 안간 그는 손가락을 구부리고 지풍을 퉁겼다.
바람을 가르는 듯한 예리한 음향과 함께 화만자는 장검을 째그랑, 하 니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패해석은 오른손을 뻗치더니 일 장으로 그녀의 어깻죽지를 후려쳤다.
패해석의 이와 같은 행동은 민첩하기 이를 데 없었으며 초식의 변화 는 그야말로 신속하기가 전광석화와 같았다.
그의 솜씨는 백만검이 기둥에 여섯 송이의 검화를 남긴 데에 비해 조 금도 손색이 없었다.
정불삼은 내심 탄복을 금치 못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패 의원의 오행육합장은 무림에서 상당히 명성을 떨치고 있는데 과 연 실력이 뛰어나구나' 이때 패해석은 이리저리 몸을 어지럽게 날리고 있었다.
이쪽에서 일 지를 퉁기는가 하면 저쪽에서 일 자을 후려쳤다.
그가 한번 움직일 때마다 설산파의 제자들은 다투어 땅바닥에 쓰러졌 다.
설산파 제자들은 기껏해야 그와 삼사 초를 겨루고는 땅바닥에 쓰러져 서는 움직이질 못했다.
백만검은 그 모양을 보고 큰소리로 부르짖었 다. "훌륭한 솜씨로군! 훌륭한 오행육합장이외다.
이 백가는 훗날 반드시 찾아와 가르침을 받도록 하겠소!" 그는 별안간 몸을 날렸다.
와장창! 커다란 소리와 함께 지붕에 구멍이 뻥 뚫리면서 석파천을 겨드랑이에 낀 채 백만검의 몸이 그 구멍으로 달려갔다.
패해석은 노한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어째서 오늘 가르침을 받지 못하는가?" 그 역시 몸을 솟구쳤다.
지붕에 난 구멍으로 뒤쫓아 나간 것이다.
그 순간, 싸늘한 광채가 눈부시게 일었다.
마치 그의 머리 위로 수만 송이의 눈송이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몸을 허공에 띠운 그는 손에 무기를 갖지 않고 있어서 다급한 순간에 어떻게 해야 상대방의 공세를 해소시킬 수 있을지를 몰랐다.
그는 즉시 천근수의 수법을 써서는 아래로 뚝 떨어졌다.
이와 같은 수법은 보기에 평범하고 기이한 데가 없었으나 한 순간에 위로 솟구치 던 기세를 변화시켜 아래로 떨어진다는 것은 여간 훌륭한 솜씨가 아니 고서는 보일 수 없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실날같은 차질만 가져온다 하더라도 검에 찔려 상 처를 입게 되는 것이다.
대청에 있던 고수들은 그와 같은 모양을 보고 진심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백만검도 그 일 초를 펼친 덕으로 어느덧 석파천을 인질로 사로 잡은 채 지붕에서 떠나가고 있었다.
패해석은 땅바닥에 닿자마자 다시 몸을 솟구쳐서는 뒤쫓아 나갔다.
정당은 크게 초조해졌다.
그녀 역시 몸을 날려서는 지붕에 난 그 구멍으로 달려나가려고 했다.
정불삼은 그녀의 손녀딸을 붙잡고 나직이 말했다. "서두를 것 없다" 이때 펑펑, 와르릉, 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지붕에 난 구멍 에서 기왓장과 흙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설산파의 여덟 명 제자들 가운데 갑자기 비쩍 마르고 왜소한 사람이 급히 몸을 날렸다.
그 재빠름은 마치 살쾡이와 도 같았다.
그는 대뜸 이 지붕에 난 구멍으로 달려 나가는 것이었다.
진충지는 냅다 그에게 한 칼을 후려쳤으나 쩍,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의 신발바닥 한 조각을 베어냈을 뿐 한 치의 차이로 그의 발을 자르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군호들은 그만 어리벙벙해져서는 일순 움직일 줄 몰랐다.
설산파 제자들 가운데 백만검 외에도 그와 같은 고수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이 사람은 패해석에게 맞아서 쓰러진 후에도 몸을 날려 달아난 것이 었다.
미횡야는 혹시 나머지 일곱 사람이 다시 도망치게 될까봐 일일이 그 들의 혈도를 몇 군데 더 짚어버리고 말았다.
이 무렵 장락방에서는 이미 십여 명의 대한들이 손에 무기를 든 채 지붕에 난 구멍으로 달려나갔다.
그들은 가기 사방으로 흩어져서 백만검을 쫓을 생각이었다.
설산파의 제자들이 총단으로 들어와 자기네들의 방주를 사로잡아 갔 으니 만약 방주를 되찾아 오지 못한다면 장락방이 강호에서 무슨 행세 를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상대방의 고수들 일곱 명을 잡았다고 하나 칠십 명을 잡은들 방주가 사로잡힌 치욕을 씻을 수 있겠는가? 백만검과 이삼 초를 겨루기만 하면 다른 형제들이 포위 공격을 하여 방주를 구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큰 공을 세우는 것이라 모 두들 앞장을 서려고 야단들이었다.
그리하여 사방에서 피리소리가 크 게 이는 가운데 사방으로 추적해 나가는 장락방의 무리들이 점점 더 많아지게 되었다.
백만검은 단 일 초에 석파천을 사로잡으리라고 생각지 못했던 터였 다.
그런데 뜻밖에도 뜻을 이루게 된 그는 지붕에 난 구멍으로 나오자 마자 속으로 부르짖었다. '석가 녀석을 잡아서 다행이긴 하지만 사형제들이 붙잡혔으니 정말 부끄럽구나!' 손에 사람을 안고 있는 그는 자신의 실력을 좀처럼 발휘할 수가 없었 다. "멈추어라!" 고함소리를 들으며 사방을 돌아보니 서쪽 냇물 위로 하나의 둥근 다 리가 가로놓여 있었다.
이때 더 생각할 여지도 없는 그는 즉시 석파천을 안은 채 그 다리밑 의 교각에 몸을 꽉 붙여 숨었다.
얼마 후 장락방의 무리들이 냇물 남쪽으로 달려가는 기척을 들을 수 있었다.
칠팔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 돌다리를 밟고 건너가는 것이었다.
백만검은 몸을 찰싹 붙이고 머리를 굴렸다. '내가 만약에 적에게 발각된다면 이 녀석을 먼저 죽일 수밖에 없겠 군.' 이때 다시 한 떼의 장락방 무리들이 냇물을 따라 수색을 해오고 있었 다.
별안간 냇가의 풀더미 속에서 후다닥하는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달 려나와 동쪽으로 도망가는 것이 보였다.
백만검은 그 사람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그의 사제인 왕만익(王萬翼) 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속으로 여간 기뻐하지 않았다.
왕만익, 그의 경공신법은 설산파 제자 중에서도 으뜸가는 실력이었 다.
그야말로 그의 경공신법은 비호와도 같이 빨랐다.
본래 왕만익은 자기가 기척을 냄으로써 추적하는 사람들을 따돌릴 계 책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백만검에게 위험에서 벗어날 기회를 주려는 것이었 다.
아니나 다를까, 장락방의 군호들은 벌떼처럼 그쪽으로 달려갔다.
백만검은 속으로 생각했다. '장락방에는 견문이 뛰어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어찌 빈틈을 두어 내가 수월하게 도망칠 수 있도록 놓아주겠는가?' 이와 같은 생각에 그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노젓는 소리와 더불어 동쪽에서 세 척의 오봉선(烏蓬船)이 다리 쪽으로 흘러 내려오고 있었다.
두 척의 배는 과일과 채소들이 잔뜩 실려져 있었고 한 척의 배에는 볏단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아마도 시골 사람들이 아침 일찍이 진강성 안으로 물건을 팔려고 오 는 것 같았다.
세 척의 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리 밑을 지나갔다.
백만검은 크게 기뻐하며 마지막 한 척의 볏단을 실은 배가 옆을 지나 게 되었을 때 몸을 날려 석파천과 함께 볏짚더미 위로 떨어졌다.
백만검은 신법이 뛰어나고 볏단이 다리에 닿을 정도로 쌓여 있었기 때문에 배에 타고 있던 시골 사람들은 전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백만검은 석파천을 데리고 볏더미 속으로 몸을 숨겼다.
배가 나무 시장쪽에 이르러 정박을 하게 되었을 때 배를 타고온 시골 농사꾼들은 찻집으로 차를 마시러 가느라고 배를 텅 비우게 되었다.
백만검은 볏단 속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부근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석파천을 겨드랑이에 끼고서는 언덕 위로 올랐다.
서쪽 부둣가에 한 척의 오봉선이 매여 있는 것을 보고 그는 그 배 위 로 올랐다.
그는 한 덩이의 석 냥 쯤 되는 은자를 꺼내 갑판에다 던지며 말했다. "사공, 나의 이 친구가 갑자기 병에 걸리게 되었다네.
우리들을 빨리 양주(揚州)로 보내 주시게.
그 은자는 배삯으로 주는 것이네." 사공은 석 냥 쯤 되는 은자를 받게 되자 크게 기뻐서 연신 허리를 굽 신거리며 배를 띄웠다.
오봉선은 몇 번 구비를 틀더니 곧 운하로 들어서게 되고 곧장 북쪽으 로 나아가게 되었다.
백만검은 선실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는 이 일대가 바로 장락방의 세력 범위인 만치 조금이라도 어떤 기 척을 내게 된다면 장락방의 무리들이 달려오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요행히도 석중옥을 사로잡기는 했으나 일곱 명의 사제와 사매 는 그만 장락방의 무리들에게 잡히고 말았다.
어떻게 그들을 구할까?' 이와 같이 그는 한편으로는 기뻐하고 또 한편으로는 조바심을 냈다.
그는 혹시나 석파천이 혈도를 풀고도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것이 아닐 까 하는 생각이 들어 차 한잔 마실 시간이 흐르기 전에 손가락을 뻗쳐 서는 그의 혈도를 짚곤 했다.
오봉선이 장강으로 흘러들게 되었을 때 석파천의 몸에 있는 사오십 군데의 혈도가 모조리 짚혀지고 말았다.
백만검은 다시 사공을 불렀다. "사공, 하류로 무작정 배를 저어가도록 하게.
여기 다섯 냥의 은자가 있으니 받아두시게." 사공은 뜻밖의 횡재에 크게 기뻐했다. "손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러나 소인의 배는 너무나 적어 양 자강의 풍랑을 견디어 내기 힘들 것 같습니다.
언덕 쪽으로 배를 몰아 서 저어간다면 그런대로 간신히 뒤업어지는 액운은 면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백만검은 말했다. "그렇다면 남쪽 언덕 가깝게 배를 몰아 흘러 내려가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겠네." 그 배는 이십여 리를 나아가게 되었다.
백만검은 언덕 위에 한 채의 누런 담장이 들러져 있는 절간이 있는 것을 보더니 즉시 뱃머리에 서서는 휘파람을 휙하고 내불었다.
그러자 절간에서도 응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백만검은 말했다. "배를 언덕에 대시오!" 사공은 배를 언덕에 대고 삿대를 꽂았다.
언덕으로 건너갈 판대기를 놓으려고 했을 때 백만검은 이미 석파천을 끼고서 언더 위로 오르고 있었다.
백만검이 막 언덕 위로 오르자 절간 안에 있던 십여 명의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나왔다.
원래 설산파의 제이진이 접응차 이곳까지 와 있었던 것이었다.
그들은 백만검의 겨드랑이에 비단 옷을 입은 젊은이가 끼어 있는 것 을 보고 일제히 물었다. "백 사형, 이 사람은......" 백만검은 석파천을 땅바닥에 내팽개치며 분연히 외쳤다. "여러 사제들, 우형은 요행히 화근의 장본인을 잡아내는 데 성공했 네.
모두들 이 녀석을 알아보지 못하겠나?" 그들은 석파천을 바라보았다.
어렴풋하나마 과거 능소성에서 말썽을 부리던 소년 석중옥임을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분노가 극에 달해서 어떤 사람들은 발로 차고 어떤 사람들은 침을 뱉았다.
이때 나이가 지긋한 제자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 그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도록 하시게.
백 사형이 이번 일 을 성공하게 된 것을 정말 축하하오." 백만검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 녀석을 잡긴 했으나 일곱 명의 사매와 사제들이 저쪽 사람들에게 붙잡히게 되었으니 별로 득을 본 셈은 못 되는 것 같네." 그들은 그와 같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절간 안으로 들어갔다.
두 명의 설산파 제자가 석파천을 양쪽에서 휘어잡고는 따라 들어왔 다.
이곳은 황량한 토지묘였다.
화상도 없었고 절지기도 없었다.
설산파의 제자들은 이 토지묘가 황량한 곳에 위치해 있어 방해 할 사 람이 없다는 점을 참작하여 연락할 장소로 선택하게 되었던 것이다.
백만검이 절간 안으로 들어서게 되자 사제들은 즉시 음식을 차려 배 불리 먹도록 해주었다.
그런 연후에 취할 행동을 상의했다.
백만검은 이미 생각하고 있었던 계획을 털어놓게 되고, 뭇사제들은 모두 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백만검은 천천히 설명을 했다. "우리들은 빨리 이 녀석을 능소성으로 보내서 장문인에게 맡겨 처단 을 해야 하는 것이오.
일곱 분의 사매와 사제는 적의 수중에 들어 있 으나 장락방의 방주가 우리들의 수중에 들어 있는 만큼 그들을 괴롭히 지는 못할 것이오......."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말했다. "장(張) 사제, 왕(王) 사제, 조(趙) 사제, 세 분은 남방 사람이니 진 강성 안에 남아서 변장을 하고 수소문을 하도록 하게.
다행히 자제들 은 장락방의 무리들과 맞대면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사제들을 몰라볼 것일세." 장, 왕, 조, 세 사람은 그의 말에 즉시 동의를 표했다.
백만검은 다시 당부를 했다. "왕만익, 왕 사제는 기민하고 눈치가 빠른 사람이니 자네들 세 사람 이 그와 연락을 한 후에 그의 분부를 따르도록 하시게.
자기 자신이 보다 일찍 사문에 들어왔다 해서 사형이랍시고 거드름을 피워 큰일을 그르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네." 장, 왕, 조, 세 사람은 백만검을 상당히 존경하고 또 두려워하고 있 었다.
그들은 연신 대답했다.
백만검은 재차 입을 열었다. "이제 우리들은 이곳에서 날이 어둡기를 기다렸다가 동으로 강쪽으로 내려가서 장강을 가로질러 능소성으로 돌아가도록 하세.
길이 약간 멀 어지기는 하나 장락방에서는 우리가 그 길을 따라가리라고는 생각지 않을 것이네.
아마도 지금 그들은 강북까지 나아가 수색망을 펼치고 있을 것이네." 그는 장락방에 대해서 매우 꺼려하는 눈치를 조금도 숨기려 하지 않 았다.
얼마후 백만검은 사방을 한번 살펴본 후 사제들과 다시 함께 안에 모 여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들이 이번에 중원땅에 들어와 현소장을 불태우고 석중옥을 사로 잡기는 했으나 손, 저, 두 형제가 비명에 죽음을 당하고 말았네.
경 사제 등 나머지 사제들은 또 적의 수중에 들어가 있으니 본파의 명예 를 크게 꺾는 결과가 되었는데 이 결과를 따져본다면 모두 이 우형의 통솔력이 모자라서 그런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네.
여러 형제들은 이 우형의 과오를 용서해 주시게." 동문들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은 호연만선(呼延萬善)이 입을 열었다. "백 사형, 너무 자책하지 마시오.
기실 진짜 원인은 형제들의 무공이 아직 상승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외다......"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말했다. "모두들 똑같이 사부님에게 무공을 전수받았으나 본문에서 백 사형과 봉 사형 두 분 외에 사부님의 무공을 그저 수박 겉핥기로 배웠을 뿐 오묘한 점을 터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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