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객행(김용) - 32편 (32/82)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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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객행(김용) - 32편 (3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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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도 몸이 아프지 않았다.
그러나 주위가 어둡고 침침하여 사물을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이때 그 누가 놀람에 찬 비명소리를 내질렀다.
그는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고 감히 입을 열어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는 곧 코속으로 한가닥 그윽한 향기가 스며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 다.
마치 장락방의 총타에 있는 자기의 침대로 되돌아 간 듯한 느낌이 들 었다.
약간 정신을 가다듬고 살펴보니 바로 자기는 이불 위에 떨어진 것이 었다.
코와 입은 어느 베개에 파묻혀 있었는데 베개가에는 다른 사람의 머 리가 있었고 그 머리통에 기다란 머리카락이 나 있는 것으로 보아 상 대가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되자 석파천은 깜짝 놀라게 되었고 아, 하는 비명소리를 내지 르게 되었다.
그러자 그 여자는 놀람에 찬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누구에요? 당신은......어떻게 된 사람이에요......" 석파천은 더듬거리며 말했다. "나는......나는......" 그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더듬거리기만 했다.
그 여자는 재차 물었다. "어째서 우리 배에 올라타게 되었느냔 말이에요? 내 한칼에 당신을 죽여버리고 말겠어요." 석파천은 그만 놀라며 부르짖었다. "아니오! 내 스스로 이 배에 올라온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나를 던져서 이곳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오." 그 여자는 석파천이 무슨 말을 하는건지 종잡을 수가 없어 급히 말했 다. "당신은......빨리 나가요! 어째서 내 이불 안으로 기어든단 말이에 요?" 석파천은 정신을 차리고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자기의 가슴팍에 요가 깔려 있었고 등에도 이불이 덮 혀 있었다.
얼굴은 베개에 파묻힌 꼴리었으며 이불자락에는 아직도 따뜻한 온기 가 남아 있었다.
그제서야 정당이 그를 내던지게 되었을 때 공교롭게도 조그만 배의 선실 안으로 날아가게 되었고, 침대 위에 깔아놓은 이불자락에 떨어진 것을 깨달았다.
야단난 것은 그 침대 주인이 여자라는 사실이었다.
만약 그의 손발이 묶여 있지 않았더라면 벌써 몸을 일으켜서 달아났겠지만 아지고 혈도 가 풀려지지 않았고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인지 부득이 사 과의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움직일 수가 없소.
제발 부탁이니 나를 좀 끌어내 주시오.
밀 어내도 좋고, 발길로 차내도 상관 않겠소." 발끝 쪽에서 한 늙은 부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 무엄한 놈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 빨리 한칼에 주여 없 애!" 눈앞의 젊은 여인이 말했다. "할머니, 그를 죽인다면 저의 이불자락이 모두 피로 물들게 될텐데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하죠?" 매우 초조한 어조였다.
노부인은 노해 부르짖었다. "도대체 저게 무엇하는 놈이냐? 이봐, 이 멍청한 녀석아! 빨리 기어 서 이리 나와!" 석파천은 급히 부르짖었다. "나는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단 말입니다! 보십시오.
나는 영태혈 과 현추혈을 찍혔단 말입니다.
전신이 꽁꽁 묶여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낭자인지, 부인인지 모르지만 한 이불속에 누워 있는 사실 이 알려진다면,,,,,,서로 난처해지지 않겠습니까?" 여자는 퉤, 하고 침을 뱉으며 외쳤다. "누가 부인이에요? 나는 아가씨란 말이에요.
나도 움직일 수 없어요.
할머니, 빨리 방법을 강구하세요.
이 사람은 정말 묶여 있어요." 석파천은 다급한 음성으로 말했다. "할머니, 부탁입니다.
수고스럽지만 저를 좀 끌어내 주세요.
저는 이 아가씨에게 죄를 지을 수가 없어요.
아......이건 정말 죄송하기 그지 없는 일입니다......." 노부인은 노하여 부르짖었다. "이런 후레 자식 같으니! 감히 누구를 비웃고 있는 거야!" 침대 위의 소저는 다급히 말했다. "할머니, 뱃고물에 있는 사공을 불러서 끌어내도록 해요.
그러면 되 지 않겠어요?" 노부인은 말했다. "안 돼! 안 돼! 이와 같은 광경을 어찌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 겠느냐? 거기다가 너와 내가 모두 움직일 수 없으니......" 석파천은 속으로 생각했다. '혹시 노파와 소저 역시 묶여 있는 것이 아닐까?' 이때 그 노파가 말했다. "이 후레자식 같으니! 못난 녀석 같으니! 하필이면 우리 배에 떨어질 게 뭐람.
어서 그를 죽여버려라.
이불에 핏자국이 묻게 된들 무슨 상 관이냐? 우리는 조만간 남에게 죽음을 당할 처지가 아니냐?" 소저는 맥이 풀린 어조로 말했다. "저는 이미 사람을 죽일 힘조차 없어요." 노파는 황급히 부르짖었다. "칼로 천천히 그의 목줄기를 톱질하듯 해서 따도록 해라.
그렇게 되 면 그 후레자식은 죽을 것이다." 석파천은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안 됩니다.
안 되어요! 저의 피는 아주 더러워요.
저의 더러운 피가 이 향긋한 이불자락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게 될 것입니다.
더군다 나.......더군다나 이불속에 시체가 누워 있다면 그것 역시 좋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자 획, 하는 소리와 함께 소저가 깜짝 놀라며 몸을 움츠리는 것 이었다.
이불 안의 시체라는 말에 놀란 것 같았다.
석파천은 내심 기뻐했다.
소저가 분명히 이런 행동을 보이리라 짐작 했던 것이다.
소저는 자기의 할머니에게 외쳤다. "할머니, 나는 칼을 뽑으려 해도 뽑을 힘이 없어요!" 석파천은 기쁨의 미소를 띄우고 흐뭇해져서 말했다. "소저에게 칼을 뽑을 기운이 없다면 더없이 잘 되었구료.
나는 지금 움직일 수 없으니 만약 소저가 나를 죽인다면 나는 뻣뻣한 강시가 되 어 소저의 곁에 드러눕는 꼴이 될 것이니까 그 얼마나 무지막지한 광 경이겠소? 내가 살아서 움직이지 못하니 강시가 될 것이 뻔한 노릇인 데 움직이게 되어 얼음과 같이 차가운 강시의 손이 소저의 목줄기를 어루만지게라고 된다면......" 소저는 그와 같은 말에 더욱더 두려움을 느낀 듯 자기도 모르게 부르 짖었다. "나는 당신을 죽이지 않겠어요! 나는 당신을 죽이지 않겠어요!" 잠시 후 그녀는 울음섞인 음성으로 떨며 다시 말했다. "할머니, 어떻게 방법을 강구해서 이 사람을 밖으로 내보내야 할 것 이 아니에요?" 노파는 무엇을 곰곰히 생각하는 듯 나직이 말했다. "나도 지금 그 방법을 강구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더이상 말 좀 시키지 말아라." 이때 어스름한 달빛이 구름에 가려지고 있었다.
따라서 선실 안은 칠 흑과 같이 어두워졌다.
석파천과 소저는 같은 이불자락을 덮고 있었으나 다행히 떨어질 때 한옆에 떨어져서 그녀의 몸에 부딪치지는 않았던 것이다.
어둠속에서 소저가 가쁘게 몰아쉬는 숨소리만 들려오고 있었다.
그 숨소리로 미루어 보아 그녀는 매우 당황하고 다급해 하는 것 같았 다.
한참이 지난 후에도 노파는 여전히 어떤 대책을 강구하지 못하고 있 었다.
별안간 멀리서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두 번 들려왔다.
정적만이 감 도는 밤인지라 그 휘파람 소리는 매우 귀에 거슬렸다.
곧이어 한차례 웃음소리와 더불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취(小翠), 하룻밤 하룻낮을 기다렸는데 어째서 이제서야 오는거 요?" 소저는 급히 말했다. "할머니, 그가......마중을 나왔는가 봐요.
어쩌면 좋죠?" 노파는 코웃음을 치고 말했다. "흥,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있거라.
나는 지금 진기를 끌어 모으고 있 는 중이다.
경맥이 조금이라도 유통되어 몸을 움직일 수 있다면 나는 저 강 한복판에 뛰어들어 이 세상을 하직하겠다.
그러면 저 늙은 요괴 로부터 당할 모욕은 면할 수 있다." 소저는 눈물을 글썽이며 황급히 말했다. "할머니, 그건 안돼요!" 노파는 노해 말했다. "나를 방해하지 말라고 했지 않느냐? 이 할머니는 이미 그렇게 마음 을 굳혔다.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나를 따르겠느냐?" 소저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저도 할머니와 함께 죽겠어요." 노파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리고는 다시 아무 말이 없었다.
석파천은 두 번이나 주화입마의 고통을 당한 적이 있었다. '알고보니 노파와 소저도 내공을 연마하다가 주화입마되어 움직일 수 없게 된 모양이군.
그런데 하필이면 이때 적이 나타나다니 정말 난처 하게 되었구나.' 하류 쪽에서 창노한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검으로 겨루어도 좋고 주먹으로 겨루어도 좋다.
정 넷째는 아무거나 응하겠다.
소취, 왜 대답이 없느냐?" 말소리는 이미 수십 장 밖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잠시후에 허공에서 철커덕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쿵, 하는 음향이 울려퍼졌다.
어떤 물건이 배에 날아온 것이었다.
그것은 다른 배에서 누군가 닻을 던진 것이었다.
석파천은 배가 한쪽으로 기울자 자기도 모르게 오른쪽으로 구르게 되 었다.
소저 역시 그와 같이 오른쪽 석파천에게로 굴러왔다.
석파천은 당황 하여 황급히 말했다. "이건......이건......당신은......" 그녀에게 자기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 녀 역시 자기처럼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곧이어 배가 쑥 가라앉는 것 같았다.
무거운 것이 배 위에 올려진 모 양이었다.
그러자 한쪽으로 기울어지던 배가 다시 수평을 되찾았다.
그 노인은 뱃머리에 서서 입을 열었다. "소취, 내가 왔소.
우리들은 곧 손을 써야 하지 않겠소?" 사공이 부르짖었다. "당신이 잘못 손을 쓰다가는 두 척의 배가 함께 뒤집히고 말 것이 오!" 노인은 노해 부르짖었다. "아가리 닥치고 있어!" 그는 닻을 던지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나란히 붙었던 두 척의 배는 떨어지면서 강물을 따라서 흘러 내려갔다.
사공은 그의 이 같은 실력을 보자 깜짝 놀라서는 아무 소리도 못했 다.
거의 이백 근이나 되는 닻과 쇠사슬을 들었다 던졌다 하는 것을 보고 놀란 것이었다.
노인은 득의의 웃음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소취, 나는 뱃머리에서 기다리고 있겠소.
왜 선실에 숨어서 암수만 펼치려 하시오? 나는 당신의 속임수에 넘어가는 그런 위인이 아니오." 석파천은 마음이 놓였다.
일시 그가 뛰어들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기다리고 있어 보았자 좋은 일이 생길 리 만무할 것 같았다.
노파가 만약 진기를 끌어 모으게 된다면 소저와 함께 강물로 뛰어든 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때 마침 소저가 석파천 옆으로 굴러오게 되어 그녀의 귀가 바로 자 기 입가에 있는 것을 보고 그는 나직이 말했다. "소저, 빨리 할머니께 강물에 뛰어들지 말라고 하시오." 소저는 체념한 듯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할머니는 저의 말을 듣지 않을 거예요.
반드시 강물속으로 뛰어들 거예요." 말을 끝내자 복받치는 슬픔을 끝내 참을 수 없는 듯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그녀의 눈물에 옆에 있던 석파천의 얼굴까지 눈물에 젖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녀는 흐느끼며 말을 이었다. "미안해요.
저의 눈물이 당신의 얼굴로 흘러갔군요......" 소저는 매우 얌전하고 예의가 바른 사람이었다.
석파천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소저, 미안할 것 없소.
눈물 쯤 나의 얼굴을 좀 적신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 있겠소?" 소저는 계속 흐느끼며 말했다. "저는 죽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저 뱃머리의 사람이 우리를 귀찮게 굴어요.
할머니는 차라리 죽어서 저 사람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것을 면하겠다는 거예요......저의......눈물은 미안하게 되었어요.
너무 탓하지 마세요." 이때 뱃바닥으로부터 삐거덕, 하는 소리가 나면서 선실 저쪽의 어떤 사람이 일어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석파천은 본래 얼굴을 베개에 파묻고 있었으나 조금전 굴러가면서 몸 이 옆으로 눕혀지게 되어 불편하나마 선실 반대쪽을 볼 수 있었던 것 이다.
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소저......당신 할머니가 일어나 앉았소." 소저는 순간 아, 하고 놀람에 찬 탄성을 내질렀다.
그녀는 얼굴을 석파천 쪽으로 돌려놓고 있어서 선실 안의 광경을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잠시후에 석파천은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할머니, 이 소저를 붙잡지 마십시오.
이 소저는 할머니와 함께 강물 에 뛰어들기를 원하지 않소이다......" 그는 더욱 더 큰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뱃머리의 노인은 선실 안에서 젊은 남자의 외침소리가 들려오자 이상 하다는 듯 말했다. "그 누가 큰소리로 호들갑을 떠는가?" 석파천은 기뻐서 외쳤다. "빨리 사람 좀 구해주시오.
부인이 강물 속으로 뛰어들려고 하고 있 소이다." 그 노인은 깜짝 놀란 듯 일 장으로 선실의 한쪽 귀퉁이를 파괴하고 오른손을 뻗쳐 노파의 팔을 움켜잡았다.
노파는 간신히 끌어모았던 진기가 거두어지면서 그대로 쓰러지고 말 았다.
노인은 그녀의 맥박을 짚어보더니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소취, 그대는 무공을 연마하다가 주화입마 되었구료.
어째서 이야기 하지 않고 지금껏 버티고 있었소?" 노파는 호흡하기가 벅찬지 숨을 한번 크게 쉬더니 간신히 말했다. "이 손 놓아요.
당신은 상관하지 말고 빨리 꺼져요!" 노인은 다급히 말했다. "경맥이 거꾸로 흐르게 되어 매우 위험한 상태이오.
빨리 손을 쓰지 않는다면 아마도 불구의 몸이 될 것이오.
내가 도와주겠소." 노파는 노해 손을 뿌리치며 부르짖었다. "내 몸에 손을 댄다면 몸을 움직일 수 없더라도 혀를 깨물고 죽어버 릴 것이니 알아서 해요." 노인은 재빨리 손을 움츠려들이며 말했다. "당신은 수태음폐경과 수소음심경, 그리고 수소양삼초경이 모두 흩어 져 있소.
이건......이건......" 노파는 그 말을 가로챘다. "당신이 나를 이기려고 했기 때문에 나는 무공을 연마하다가 주화입 마 되었으니 당신에겐 잘 된 일이 아니겠어요?" 노인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런 이야기는 이제 그만두기로 합시다." 그러더니 소저를 향해 다시 말했다. "수(琇)아, 너는 무얼하고 있는 게냐? 빨리 할머니를 위로해 드리지 않고......" 그 노인은 갑자기 두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어! 너는 어째서 사내와 함께 잠자리를 하고 있지? 그 사람이 너의 연인이냐? 아니면 너의 남편이냐?" 수아와 석파천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 "아! 아니에요.
우리들은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노인은 매우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곧이어 손을 뻗쳐 석파천을 움켜잡고 끌어당겼다.
석파천은 밧줄에 꽁꽁 묶여 있었기 때문에 허리는 물론 손가락도 펼 수 없었다.
노인이 그와 같이 잡아당기자 그는 마치 오뚜기처럼 이불에서 벌떡 일어서게 되었다.
노인은 그만 깜짝 놀라 흠칫했으나 순간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수아, 단오 명절은 이미 지났건만 이불 속에 송편을 숨기고 혼자 먹 고 있었느냐?" 수아라 불리우는 소저는 다급히 말했다. "아니에요.
그는 밖에서 이리로 날아들었어요.
내가 숨긴 것이 아니 란 말이에요." 소저는 정색을 하며 사실을 실토하였으나 노인은 여전히 믿지 않는 것 같았다.
노인은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너는 어째서 움직이지 못하느냐? 역시 너두 이 녀석처럼 송 편처럼 되어 있다는 거냐?" 이때 노파가 날카롭게 외쳤다. "감히 수아에게 손가락 하나라도 댄다면 사생결단을 내고 말테니 알 아서 해요!" 노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좋소.
내 그녀에게 손을 대지 않지." 그는 사공에게 말했다. "사공, 키를 돌리시오.
그리고 돛을 달고 내가 멈추랄 때까지 계속 나아가도록 하시오." 사공은 공손히 대답하고 키를 천천히 돌렸다.
노파는 놀람과 두려움 에 찬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어쩔려고 이러는 것이지요?" 노인은 담담하게 말했다. "벽라산(碧螺山)으로 가서 잘 조섭을 합시다.
이번의 주화입마는 결 코 가벼운 것이 아니오." 노파는 앙칼지게 말했다. "나는 죽어도 벽라산으로 가지 않겠어요.
당신은 나를 이기지 않았는 데 어째서 나를 당신의 개집 같은 집으로 데려가려 하는 것이에요?" 노파가 계속 떼를 쓰자 노인은 답답함을 금치 못하여 말했다. "우리들이 장강에서 무공을 겨루어 당신이 이기면 내가 절을 하고, 당신이 지면 내 집으로 간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소.
당신이 무공을 연 마하다가 주화입마 된 것은 바로 당신이 나를 이기지 못하게 된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소......"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말했다. "이번만은 반드시 벽라산으로 데려가야 하겠소.
그렇지 않으면 내가 수십 년간 간직했던 소원을 풀지 못할 것이 아니겠소? 이야말로 나에 게는 전화위복이 된 셈이지." 노파는 버럭 화를 냈다. "나는 가지 않을 것이오! 가지 않는다고......" 그 음성은 한 마디 한 마디 거듭될수록 점차 처절함을 더해갔다.
노인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싶지 않아도 가야할 것이오.
오늘은 마음대로 되지 않을 거요" 이때 석파천은 더 참을 수 없다는 듯 불쑥 입을 열었다. "그녀가 가고 싶지 않다는데 왜 강요하시오?" 노인은 대노해서 호통을 내질렀다. "네가 무슨 상관이냐?" 그는 손을 들어 석파천의 얼굴을 향해 치려고 하였다.
만약 이 일 장 이 그대로 석파천의 얼굴에 떨어진다면 석파천은 정신을 잃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고 이빨이 모두 부러져 나갈 것이다.
노인은 갑자기 석파천의 얼굴에 남은 손자국을 발견하곤 그만 어리둥 절해지더니 대뜸 손을 거두고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핫하하......이 녀석 봐라! 누가 너를 이 모양으로 묶어 놓았나 했 더니 원래 나의 질손녀의 솜씨였군.
너의 얼굴의 일 장은 나의 질손녀 가 때린 자국이지?" 석파천은 아리송해서 물었다. "당신 질손녀라니......누구 말이오?" 노인은 뜻밖이라 듯 계속 말했다. "너는 아직도 노부가 누구인지 모르는구나.
나는 정불사(丁不四)이 다.
정불삼은 나의 형님이시다.
나이가 나보다 많지만 무공은 나만 못 하지.
나의 질손녀로 말하면......" 석파천은 그의 모습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정불삼과 닮은 점이 많았 다.
옷차림도 거의 비슷했다.
다만 허리에 한 조각 누런 빛이 번쩍이는 금띠를 두르고 있는 것만 달랐다.
석파천은 그제서야 깨달은 듯 입을 열었다. "아! 그렇군요.
띵땅이 바로 당신의 질손녀였군요.
그렇소.
이 일 장 은 바로 띵땅이 후려친 것이오.
또한 나를 이렇게 묶어 놓은 것도 띵 땅이 한 짓이오." 정불사는 갑자기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핫하하......천하에서 당아만큼 짓궂고 말괄량이 계집애도 없을 걸 세.
좋아! 좋아! 그런데 그애가 어째서 네 녀석을 묶었지?" 그 순간 석파천은 슬픈 어조로 말했다. "그녀의 할아버지가 나를 죽이려고 했소.
나의 무공이 너무 뒤떨어지 고 또 백치라고 말이오." 정불사는 더욱더 흐뭇한 듯 허리를 구부리고 웃었다. "핫하하......셋째가 죽이려 하던 사람을 이 넷째가 만나게 되다니, 그렇다면......" 석파천은 놀라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당신도 나를 죽이겠단 말이오?" 그러자 정불사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정불사의 마음을 이 천하에서 그 누가 알아맞힐 수 있겠느냐! 너는 내가 네 녀석을 죽이려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일부러 죽이지 않겠 다." 그는 몸을 일으키더니 왼손으로 석파천의 뒷덜미를 움켜잡고 들어 올 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오른손을 칼날처럼 세워 그의 몸을 감고 있 던 밧줄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쭉 한번 그었다.
수십 가닥의 밧줄이 끊어지면서 이불 위에 흩어졌다.
그야말로 예리 한 비수보다 더 날카로운 솜씨였다.
석파천은 또 한번 놀라면 감탄했다. "영감님, 이 재간은 정말 훌륭하군요.
이 재간의 명칭을 무어라고 하 는 것인지요?" 정불사는 석파천이 칭찬의 말을 하자 그만 흐뭇해져서 으스대며 말했 다. "이 한 수의 재간은 물론 대단한 것이지.
천하에서 이와 같은 공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이 정불사 외에 달리 찾아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느긋한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 재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때 노파가 정신을 차린 듯 정불사의 자화자찬하는 소리를 듣자 냉 소하며 그 말을 가로챘다. "흥! 혼자 감동되어 자화자찬을 늘어놓고 있군.
그 한 수의 쾌도참난 마(快刀斬亂麻)는 한두 수 무공을 배운 사람이라면 모두 펼칠 수 있 지." 정불사는 침을 뱉으며 비꼬듯 말했다. "퉤! 무공을 몇 수 배운 사람이면 모두 쾌도참난마를 펼칠 수 있다 구? 어디 당신이 한번 펼쳐보시지!" 노파는 크게 노하여 붉어진 얼굴로 대들듯 말했다. "내가 무공을 연마하다가 주화입마 되어 기운이 없는데 그와 같이 비 아냥거리는 말을 하다니......" 노파는 석파천을 향해 말했다. "이것 보게, 송편.
자네에게 일러 두지만 어느 고을에서든지 무공을 구경시키고 고약을 파는 사람에게 한두 푼의 엽전을 주기만 해보게.
그럼 그 쾌도참난마라는 초식을 자네에게 보여줄 걸세." 이어 그녀는 더욱 힘주어 강조하듯 말했다. "바로 이 늙은 망나니가 펼치는 것과 전혀 차이가 없이 똑같다는 것 을 보장하지.
어쩌면 더 뛰어날지도 모르지.
이 세상에서 사람을 속이 며 밥을 빌어먹는 후레자식들도 아는 수법인데 뭐가 대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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