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파천은 깜짝 놀라며 외쳤다. "어이쿠! 어떻게 된 일이지요?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수아는 황급히 말했다. "오라버니, 저의 할머니에게 천천히 내력을 주입하세요. 너무 급하게 하시면 안 되어요." 노파는 다시 노하며 투덜댔다. "이 바보같은 녀석아, 내 목숨을 빼앗으려는 것이냐? 내력을 조금씩 주입해야 내가 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 아니냐? 다시 조금씩 주입하도 록 해라!" 석파천은 쩔쩔매며 말했다.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천천히 내력을 주입했다. 별안간 정불사가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부르짖었다. "제기랄! 우리 다시 겨루어 보자. 조금전의 겨룸은 해당이 안돼." 노파가 황급히 그 말을 받았다. "늙어서도 수치를 모르는군. 어쩨서 해당이 안 된다는 것이오? 분명 히 당신이 지고서도 그런 말을 하다니......" 그녀는 매우 퉁명스런 어조로 다그쳤다. "방금 그가 당신의 몸을 칼이나 검으로 찔렀다면 당신의 목숨이 아직 도 붙어 있겠어요?" 정불사는 자기쪽에서 억지를 쓰고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노파와 입 씨름을 벌이고 싶지 않아 획, 하니 일 장을 들어 석파천에게 후려쳤 다. "이 초식의 해소법을 내 이미 너에게 가르친 바 있으니 억지를 쓴 것 은 아니겠지?" 석파천은 재빨리 그가 가르쳐준대로 손을 뻗어 그의 일 장을 물리쳤 다. 정불사는 다시 일 장을 후려쳤다. "이 일 초도 역시 가르쳐준 바 있으니 내가 무뢰한처럼 젊은 사람을 괴롭힌다고는 할 수 없겠지?" 그가 펼치는 일 초, 일 초가 석파천에게 모두 가르쳐준 것이긴했다. 자기 자신의 신의를 지키는 군자임을 나타내려는 심산인 것 같았다. 그런데 갈수록 그는 손을 빨리 놀렸다. 십여 초를 후려치게 되었을 때 그는 침이 마를 여지도 없이 끊임없이 호통을 내지르고 있었다. "가르친 것이야, 가르친 것이야, 가르친 것이야......" 무작정 가르쳤다는 소리만 반복하여 지르면서 손발을 신속하게 움직 였다. 석파천의 자질이 뛰어나다 하나 하번 배운 것을 순간에 모조리 응용 할 수는 없었다. 상대방의 주먹과 다리가 신속하게 뻗어오자 그만 응수할 수가 없었 다. 수 초가 되지 않아 그는 정불사의 손아래 지고 말 것 같았다. 그가 손발을 어지럽게 휘두를 때 갑자기 노파가 부르짖었다. "잠깐! 할 말이 있소." 정불사는 손을 멈추지 않고 물었다. "소취,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오?" 노파가 석파천에게 말했다. "이봐 젊은이, 나의 몸이 불편하니 나에게 좀더 내력을 주입해주게 나." 정불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좋지! 주화입마로 경맥이 막혔으나 내 도움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에게 힘을 좀 쓰도록 하는 것도 괜찮을 거요. 이 젊은이의 무공은 형편없지만 내력은 지극히 강하거든." 노파는 싸늘히 코웃음치고 냉랭히 말했다. "흥! 맞았어요. 무공은 당신이 가르친 것이지만 내력은 당신이 가르 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무공은 형편없지만 내력은 고강한 거예 요." 정불사는 노해 부르짖었다. "그의 무공을 내가 가르친 것이라 할 수 있소? 나는 그에게 반나절을 가르쳤을 뿐이오. 만약에 그가 나를 따라 삼 년이나 오 년간 무공을 배운다면 아마 젊은 사람들 중에는 한 사람도 그의 적수가 될 사람이 없을걸?" 노파는 말했다. "설령 당신처럼 똑같이 무공을 펼칠 수 있다 하더라도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는 당신의 무공을 배우지 않고서도 당신을 패배시킬 수 있 었는데 당신의 무공을 배우게 된다면 오히려 당신을 패배시킬 수 없을 것이니 무슨 소용이 있느냐 말이에요?......" 정불사는 그만 말문이 막혀 어리벙벙해 있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의 이 초, 호조수와 옥녀첨침은 우리 정씨 집안의 무공이 아니란 말이오?" 노파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것은 정불삼의 손녀딸이 가르친 것이지 당신이 가르친 것이 아니 지 않아요? 젊은이, 그를 아랑곳하지 말고 빨리 내 곁으로 오게." 석파천은 얼떨결에 급히 말했다. "예." 그는 노파의 곁에 주저 앉아서 손을 뻗쳐 그녀의 영태혈에 갖다 대었 다. 그는 운기행공해서 그녀를 도와 경맥을 유통시키려 했다. 이번에 그 는 내력을 지극히 천천히 주입해 주었다. 노파는 천천히 팔을 올려 소맷자락을 자기의 얼굴을 가리고는 정불사 로 하여금 자기의 입을 못보도록 했다. 그녀는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와 싸우게 될 때 손바닥에 내력을 돋우도록 해라. 지금처럼 내력 을 권장에 돋우고 그가 손을 뻗쳐 후려쳐올 때 자네도 그와 똑같은 초 식을 펼쳐 그의 손바닥과 맞부딪치게 하란 말이야. 그리하여 내력을 그의 몸에다 쏟아넣어야 해......" 그녀는 다시 정불사가 있는 쪽을 살피며 나직이 속삭였다. "저 늙은이는 자네를 강물에 빠뜨려 죽여버리려는 모양이니까 내 말 을 잘 기억하게. 그가 어떤 초식을 펼치면 자네 역시 똑같은 초식을 펼쳐 내력을 쏟다내야만이 우리 세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네." 지금의 그녀는 석파천을 높이 사게 되었으며 말투마저도 바뀌게 되었 다. 약간 접촉을 해보니까 석파천의 심기가 선량하다는 것을 그녀로서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무작정 석파천에게 그와 같이 시킨다면 정불사를 괴롭히지 않으려고 양보를 할 마음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그녀는 세 사람의 목숨을 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여 전력을 다해 임하도록 부추긴 것이었 다. 석파천은 노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노파는 다시 한번 당부했다. [잠시 내력을 주입시키는 것을 중지하고 저 늙은이와 한번 대결을 해 보도록 하게......] 그녀는 은근한 음성으로 재차 당부했다. [저 늙은이와 싸울 때 손바닥이 서로 맞닥뜨리게 되면 지금과 같이 내력을 천천히 쏟아서는 안 되고 갑자기 한꺼번에 쏟아부어야 해, 빠 르면 빠를수록 좋아.] 석파천은 걱정스레 물었다. [그가 피를 토하지 않을까요?] 노파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닐세, 이 늙은 것은 주화입마되어 자네의 거센 힘을 주체할 수 없 기 때문에 피를 토한 것이네. 저 늙은이는 공력이 심후하여 좀처럼 그 런 일은 없을 것이네. 조금전 자네가 그의 등뒤에 있는 혈도를 짚었을 때도 이상이 없지 않았는가?] 그녀는 신중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만약 자네가 내력을 힘껏 끌어올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자네가 피를 토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 세 사람은 꼼짝없이 수모를 당하 거나 자결을 해야 할 걸세.] 석파천은 뜨거운 피가 끓어 올랐다. 지금 그는 노파와 소녀를 위해 당장 죽는 한이 있더라도 눈썹한번 찌 푸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실제에 있어 그녀들 두 사람이 착한지, 어떤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노파는 얼굴을 가렸던 소맷자락을 들어내며 말했다. [고맙네. 이제 저 늙은이와 다시 대결하게.] 노파는 이번엔 정불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흥! 이 노파는 일생을 통해서 적지 않은 강호의 영웅들과 호걸들을 만나 보았소. 그런데 뜻밖에도 죽음이 임박한 이때에 한 마리의 개영 웅을 만났으니 실로 원통하기 이를데 없구나.] 정불사가 노해서 눈을 부라렸다. [지금 그 말은 나보고 한 소리요?] 노파는 냉소하며 말했다. [정불사, 당신이 그를 때려 죽일 수 있을 것 같소? 흥! 무공을 제대 로 배우지도 못한 젊은이를 때려죽이려고 하다니, 정말 뻔뻔하군.] 정불사는 노해 부르짖었다. [정 노사가 그렇게 몰염치한 사람인 줄 알았다면 그건 인식 부족이 오. 내가 전수한 초식만 펼칠테니 잘 보시오.] 노파는 대답하지 않고 한숨만 쉬었다. 그녀는 정불사의 그와 같은 말 을 하도록 유도한 것이었다. 정불사는 코웃음치고 석파천을 바라보았다. [흥, 송편 같은 녀석, 이 일 초는 내가 가르친 역수행주라는 일초이 니 반격해 와야 돼. 잊지 않았겠지?] 그는 두 무릎을 구부리고 왼손을 아래서부터 위로 쳐올렸다. 석파천은 역수행주라는 이름을 듣고 이미 준비를 하고 있던 터라 역 시 무릎을 살짝 구부리며 왼손을 쳐올렸다. 정불사는 호통을 내질렀다. [틀렸어. 그렇게 해소시키는 것이아냐?] 그 말이 끝나기 전에 석파천의 외손 손바닥이 자기 왼손 손바닥에 와 닿으려고 하지 않는가? 정불사는 흠칫했다. (저 녀석의 내력이 나보다 강한 것 같던데 내력을 겨루게 되면 재미 가 없을 것이 아닌가?)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는 왼손을 즉시 거두어들이고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기봉돌기(奇峯突起)라는 일 초였다. 석파천도 따라서 기봉돌기라는 초식을 펼쳤다. 그는 삼성(三成)의 공 력을 돋우고 있었다. 정불사는 석파천의 장력이 별아간 칼날처럼 뻗쳐 나오는 것을 느끼자 속으로 의아하게 여기면서 초식을 일변시켰다. 석파천은 배운 초식을 상대방과 같이 펼치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에 초식을 해소시키기 위해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그는 점점 더 강한 공력을 쏟아낼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싸우기를 오륙십 초가 지났다. 석파천은 공력을 쏟는 요령이 생기게 되어 일권, 일 장에 획획, 바람 소리까지 나는 것이 아닌가! 한편 정불사는 상대방의 내공이 웅후하면서도 요상하다는 생각과 더 불어 상대방이 절정의 고수인데도 일부러 바보처럼 행동한 것이 아닌 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다시 십 초를 겨루었는데 정불사는 석파천의 손길을 피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졌다. 다행히 모방만 일삼는 석파천이 의표를 찌르는 공격은 하 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 상대방의 공격을 전연 경계하지 않고 재빠른 변화만을 일삼고 있었다. 다시 수 초를 싸웠다. 갑자기 정불사는 원을 그리며 비스듬히 후려쳤 다. 이는 흑좌흑우(黑左黑右)라는 초식으로 상황에 따라 오른손을 쓰든 가, 왼손을 쓰는 것이었다. (이제는 흉내를 내지 못하겠지.....) 아니나 다를까? 석파천은 상대방이 두 손을 연신 흔들고 있는 것을 보고 모방하기가 어려워서 물었다. [왼쪽을 공격하시겠소? 아니면 오른쪽을 공격하시겠소?] 정불사는 껄껄 웃었다. [하하하......어디 맞추어 보게!] 그는 연신 두 손을 흔들어댔다. 석파천은 속으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황한 그는 곧 에라 모 르겠다 하고 두 손에 똑같이 공력을 돋우고 정불사의 두 손을 한꺼번 에 후려치려고 했다. 정불사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흑좌흑우라는 초식의 오묘한 점을 살리지 못하는 석파천이었지만 역 좌역우(亦左亦右), 두 손으로 뻗어내는 공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정불사는 등골에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그는 좋 은 생각이 떠올라 두 손을 허공으로 쳐들었다. 이는 천왕탁탑(天王托塔)이란 일 초인데 원래는 허공에서 공격해오는 적을 공격하는 수법이나 석파천이 자기 흉내만 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초식을 펼쳐 석파천의 엄청난 장력을 피해보자는 것이었다. 석파천은 정불사의 그와 같은 변화의 이치를 모르고 역시 천왕탁탑이 란 일 초를 펼쳤다. 두 사람은 벌을 선 아이처럼 두 손을 허공으로 뻗친 채 서로의 얼굴 을 쳐다보았다. 정불사는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석파천은 역시 상대방에서 적의를 보이지 않자 덩달아 웃음을 터뜨렸 다. [하, 하, 하......] 선실 문에 기대어 서 있던 수아도 이 광경을 보고 방긋 웃었다. 노파는 대뜸 비난했다. [늙은 것이 염치를 모르는군. 이길 수 없으니까 그런 비겁한 수단으 로 어린 사람을 기만하다니!] 정불사는 자기의 임기응변에 득의양양해 하고 있던 참이라 그런 비난 을 받고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헤헤헤......이 녀석과 아무런 원한이 없는데 내력을 써서 이녀석의 목숨을 빼앗을 필요가 없지 않소?] 노파는 다시 비웃음에 찬 한마디를 던지려고 했다. 바로 이때, 갑자기 배가 크게 요동을 치면서 하류로 치달았다. 알고보니 이곳의 강목이 급격히 좁아지면서 물줄기가 십분 세차지고 있었다. 정불사 웃으며 다시 말했다. [하하하......소취, 벽라도에 다 왔소. 손녀인 수아와 이 송편 녀석 을 데리고 벽라도로 올라 가서 며칠 놀다가도록 하시오.] 노파는 안색이 변해서 떨리는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안 간다! 죽었으면 죽었지 도깨비 같은 섬에 발을 한 걸음도 들여놓 지 않겠다!] 정불사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며칠 묵고 간다고 안 될 것이 없지 않소? 몸도 불편하니 푹 쉬어 가 도록 하시오. 아마 굉장히 편할 거요.] 노파는 버럭 고함을 쳤다. [편하기는 개방귀가 편해?] 황급한 나머지 거치른 말이 거침없이 튀어나왔다. 강물은 도도히 흐 르고 있었고 파도는 사납기만 했다. 석파천은 정불사의 시선이 가는 쪽을 바라보았다. 멀리 앞쪽 오른편 강복판에 파란 산봉우리가 보였다. 어떻게 보면 팽이를 엎어 놓은 것 같았다. 정불사는 사공에게 명했다. [저 섬에 배를 대게.] 사공은 공손히 대답했다. [예, 나으리.] 정불사는 닻을 든 채 뱃머리에 가 섰다. 섬에 닿는 즉시 닻을 던질 모양이었다. 석파천은 입을 열었다. [영감님, 저 할머니께서는 가지 않겠다고 하시는데 왜 억지로......] 바로 이때 노파는 별안간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수아의 팔을 잡고 강 물로 뛰어들었다. 정불사는 크게 외쳤다. [안 돼!] 재빨리 손을 뻗어 붙잡으려고 했으나 노파와 수아는 첨벙, 하니 강물 속으로 떨어지면서 물방울을 튕겼다. 석파천은 깜짝 놀랐으나 배에 있는 널판지를 쥐고 역시 강물로 뛰어 들었다. 그는 힘껏 뱃전을 차며 물로 뛰어들었기 때문애 두 사람보다 늦게 뛰 어들었으나 두 사람이 곁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그 역시 자맥질은 전혀 먹통이라 강물을 들이켜 오른손으로 널판지를 잡고 왼손으로 허우적거리던 끝에 노파의 머리칼을 움켜잡을 수 있었 다. 혹시 놓칠세라 꼭 붙잡고 강물이 흐르는대로 몸을 내맡겼다. 세 사람은 거센 강물을 따라 곧장 흘러갔다. 거센 강물에 한동안 휘둘리게 되어 석파천은 많음 물을 들이켰다. 이 제는 정신마저 가물가물해졌다. 바로 이때 허리가 그 무엇에 세차게 부딪쳤다. 알고 보니 바위가 아 닌가? 그는 크게 기뻐하며 발을 바위 위에 올려 놓고서 노파를 잡아다녔다. 다행히 노파는 여전히 손녀를 두 팔로 안고 있었다. 하지만 수아가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석파천은 두 사람을 한꺼번에 안았다. 십 장쯤 앞쪽에 육지가 어렴풋 이 보였다. 석파천은 첨벙거리며 육지쪽으로 걸음을 옮겨 놓았다. 어느덧 마른 땅에 이르자 노파가 갑자기 큰소리로 꾸짖었다. [이 무례한 녀석아, 감히 이 노파의 머리칼을 잡아다녀? 그런 버르장 머리 없는 행동은 어디서 배운 것이냐?] 석파천은 어리둥절해졌으나 사과를 했다. [할머니, 죄송합니다.] 노파는 다시 투덜댔다. [네 녀석은......왁!] 말을 하다말고 그녀는 많은 물을 토해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수아가 민망한 듯 입을 열었다. [할머니, 이 오라버니가 우리를 구원하지 않았더라면 헤엄을 칠 줄 모르는 우리들은 이미......] 그러다가 그녀도 물을 토해냈다. 노파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이 녀석이 우리의 목숨을 구해준 셈인가? 그렇다면 나의 머리칼을 잡은 행동을 용서해주지.] 수아는 웃으며 말했다. [사람을 구하려는 급한 마당에 무슨 수는 쓸 수 없겠어요?] 그녀는 그윽한 시선으로 석파천을 바라보고 말했다. [누구인지 잘 모르겠으나 정말......고마웠어요.] 이때 그녀는 석파천에게 안겨 있었다. 두 쌍의 눈동자는 한 자도 되지 않는 간격을 두고 있었기에 그녀는 그와 같은 말을 할 때 감히 마주 쳐다보지 못했다. 사실 그녀들 조손은 석파천의 옷이 물에 완전히 젖어 있었기 때문에 물을 토해보았자 더 젖을 것이 없었지만 수아는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미안한 눈치였다. 이때 노파는 자기네들이 숲속에 들어와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자, 이제 내려 놓아주게. 이곳은 자연도(紫煙島)라는 곳인데 그 노 괴가 살고있는 곳과는 가까워서......] 그 말은 정불사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니 조심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 다. 석파천은 대답을 하면서 그녀들을 내려놓으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숲밖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녀석은 십중팔구 살아 있을 거야. 그러니 반드시 그 녀석을 잡아 야 해.] 석파천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정불사가 쫓아왔소.] 나직이 속삭이면서 그는 두 사람을 안고 덤불 속에 몸을 숨겼다. 곧이어 풀을 밟는 소리가 들리고 두 사람이 덤불 옆을 지나갔는데 그 들은 바로 한 노인과 한 소녀였다. 석파천은 그들을 보고 크게 놀랐다. 그들은 정불사가 아니고 바로 정 불삼과 정당이었던 것이다. 석파천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야단났어요...... 정 셋째 할아버지입니다.] 노파는 이상하게 여기고 물었다. [자네는 왜 그토록 겁을 집어먹고 있는가? 그들 조손은 자네에게 무 공을 전수하지 않았는가?] 석파천은 나직이 말했다. [정 셋째 할아버지가 나를 죽이려고 했고 띵땅은 자기 말을 듣지 않 는다고 나를 꽁꽁 묶어서 강물로 던졌던 것인데 마침 두 분이 타고 있 던 배가 지나가는 바람에 내가 그 배로 떨어진 것이지요. 마침 그 배 가 없었다면......] 노파는 웃으며 말했다. [자네가 그렇게 떨어졌길래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자네는 지 금쯤 물고기 밥이 되고 말았을 것이네.] 석파천은 인정했다. [예. 예.] 석파천은 어제 정당이 자기를 밧줄로 꽁꽁 묶던 일이 떠올라 여전히 두려운 안색으로 말했다. [할머니, 이번에 내가 그들에게 붙잡히기만 하면 큰일날 겁니 다.......] 노파는 처연히 말했다. [내가 주화입마만 되지 않았더라면 그까짓 정불삼쯤이야 두려운 존재 가 될 수 없지. 그가 감히 자네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있는지 없는지 볼까? 그를 이곳으로 불러와 보게.] 수아는 말했다. [할머니, 아직 무공을 회복하지 못하셨으니 잠시 정씨 형제를 피하도 록 해요. 몸이 정상으로 회복된 후에 다시 그들을 찾아가 겨루어도 늦 지는 않아요.] 그 노파는 화를 내며 말했다. [빌어먹을! 어쩔수 없이 참아야 한단 말인가?] 수아는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이 주화입마가 되었으니 빨리 치료를 한 후에 시원하게 복수를 하면 될 거예요. 너무 화를 내시면 건강에 해로우니 마음을 편 히 잡수세요.] 노파는 분연히 말했다. [오늘 내가 강물을 들이키다니, 나 사소취(史小翠)가 평생 동안 쌓아 올린 명성이 깡그리 훼손되지 않았느냐?] 그녀는 화가 나는 듯 점점 더 큰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석파천은 정불삼이 듣게 될까 두려워 급히 말했다. [할머니, 그들이 들으면 큰일나니 참으십시오. 제가 한 번 더 공력을 주입시켜 드리죠.] 그는 사 노파의 대답을 듣지 않고 운기행공하여 손을 그녀의 영태혈 로 가져갔다. 내려기 주입되자 사 노파는 더 말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정신을 모으고 운기행공에 힘썼다. 한데 석파천의 내력은 그 녀의 막혔던 혈도를 하나하나 뚫고 흐르는 것이 아닌가! 석파천은 그저 그녀가 떠들어 정불삼에게 들키는 일이 없도록 손에 돋운 내력을 끊임없이 주입시켰다. 사 노파는 크게 놀라고 말았다. (이 녀석은 이토록 내공이 심후한데 어째서 무공은 전혀 아는 것이 없을까?) 그와 같은 생각을 하자 그녀는 가슴의 기혈이 울렁거렸다. 재빨리 그 녀는 정신을 가다듬고 소양경맥(少陽經脈)이 유통되기를 기다렸다. 소양경맥이 유통되자 그녀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 다. [아, 수고했네.] 석파천과 수아는 똑같이 놀라 물었다. [행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까?] 사 노파는 대답했다. [발의 한 경맥은 유통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경맥이 유통되지 않았는 걸.] 석파천은 기분이 좋은 듯 말했다. [나는 아직 피곤하지 않으니 나머지 혈도도 유통시키는 것이 어떻습 니까?] 사 노파는 눈살을 찌푸렸다. [자네는 터무니 없는 소리를 하는군. 수아와 나는 함께 무망신공(無 妄神功)을 연마하다가 주화입마하였으므로 일반 풍증과 다르다네. 오 늘 한 곳의 경맥을 유통시킨 것만도 하늘에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이 네. 설사 달마조사(達摩祖師)와 장삼봉(張三峯) 진인(眞人)이 살아 돌 아온다 하더라도 하루 이내에 막혔던 경맥을 다 유통시킬 수는 없는 것이네......] 석파천은 겸연쩍게 말했다. [예, 예. 저는 그런 이치까지는 몰랐지요.] 사 노파는 석파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할 일이 없다면 우리 손녀의 족소양경맥(足少陽經脈)이나 좀 풀어주도록 하게.] 석파천은 곧 수아를 나무에 등을 대게 하고 앉혔다. 그는 그녀의 영태혈에 손을 갖다대고 사 노파가 가르치던 대로 내력 을 주입했다. 수아는 내공은 사 노파에 비하면 훨씬 약한 편이었다. 그리하여 사 노파보다 네 배의 시간이 걸려서야 그녀의 족소양경맥을 유통시킬 수 있었다. 수아는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사의를 표했다. [수고했어요......] 그녀는 자기의 할머니를 향해 말했다. [할머니, 우리들은 아직 이 오라버니의 함자를 모르지 않아요. 실례 가 되지 않도록 칭호를 분명히 해놓을 필요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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